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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3 18:04:45 조회 : 935         
바벨론 강가에서 - 이미아 성도님의 글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바벨론 강가에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시편137편 1-9절>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물도 마시고 잠시 쉬었다 가게 했던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흘러가는 강물은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가는지...시작도 끝도 없는 강물처럼 자기들의 처지가 그러했음에. 때로는 잠시 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벨론 군사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에서 불렀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청하지만, 그 어느 강변 중 옆에 심어져 있는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고 적들을 위한 노래를 부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들은 복수를 위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이고, 예루살렘을 훼파한 그대로 반드시 되갚아주시라고. 어린 자식들을 큰 바위에 힘껏 내리쳐야만 하는 멸망의 참혹함을 당하도록 해주시라고.



한없이 약해진 나라. 이방나라처럼 강대국을 꿈꿨으나 오히려 그들은 그들이 사모했던 강대국에 의해서 짓밟힘을 당했다. 나의 꿈과 나의 가족의 안녕과 평안을 지켜주던 내 나라, 내 조국, 내 국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들은 나라 없는 설움에서 울었고, 회개 아닌 반성을 했고, 회복을 위해서 성전을 재건했다.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살 길이라고, 포로지에서 자식들 낳고 정착하며 살라고 선지자들이 그렇게 외쳤건만, 그들의 온 머리가 병들었어도, 온 마음이 피곤하였어도,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었을지라도,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었어도, 그들은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더욱 패역하였다. 귀환한 그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야망을 은밀하게 속에 감추어둔 채, 다시금 정신 바짝 차리고 완벽하게 말씀대로 지키면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내편이 아닌 것을 느끼면서도-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왔으면 까짓것 그 정도쯤이야 눈치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최면을 걸어서라도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율법을 쪼개서 세부적인 율례와 규례를 만들어 철저하게 지켜서 하나님을 돌이키게 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에 있을 때나 본토에 있을 때나 우상 숭배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뭘 망설이는가? 노래를 불러라! 이방에는 없고 오직 약속의 땅에만 있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시다. 재주는 잊을지언정 예루살렘 성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예루살렘을 잊거나 내가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더 챙기지 않으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하지만, 그것은 아무소용도 없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서 재로 변해야만 한다. 그게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잿더미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불꽃같은 성전의 실체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성전에 가두어질 수 있다고 여기는, 물건 같은 것이 주님의 이름이 아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빌었던 소원대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반드시 전쟁을 하실 것이고 전쟁에서 승리자로 면류관을 쓰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당연한 것이라면 그 이스라엘을 멸망케 했던 이방나라들 역시 멸망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까.



때가 찼다. 시간과 공간에 가득하게 찼다. 아담의 늘어진 시간에 혈통을 가두고, 아담의 넓어진 공간에 혈육을 가뒀다. 가둬놓고 가득하게 찼을 때, 예수님은 오셨다. 완료의 묵시를 가지고 미완료를 작살내기 위해서이다. 창세전의 언약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일점일획이라도 다 없어지지 않도록 다 소급해서 소환한다. 질서속의 혼돈이다. 혼돈 속에 질서다. 3년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들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신다. 메시아대망사상으로 곧 터지기 일보직전인 빵빵한 풍선 같은 그들에겐 예수님의 말씀은 접촉점이 없었다. 예수님이 죽겠다고 매달리려 했던 십자가!?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말씀은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알면 알수록, 전하면 전할수록 죄인 중에 괴수가 되게 한다. 이제 믿을 수 없는 십자가를 증거 하게 된 사도바울과 한패거리가 된 성도의 시간은 십자가로 해석당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공간도 십자가로 해석당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너희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속에 거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신다. 예수님의 다 이루신 십자가에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들어있었다. 그 누구도 말씀을 소유할 수 없다. 소유하기 위해서 한 발 다가가면 참 희한하게도 두 발 달아난다. 오히려 신기하게도 말씀이 와서 끌고 가신다. 말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만을 증거 하라고.



우리는 갇혀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맴돌면서도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변하면 죽음이라는 종착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갇혀진 시공간 안에서 이미 죽어서 뺑뺑 맴돌고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쭉쭉 뻗어져 나가는 시공간의 결과물이 인생인줄 알았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노랫말 가사처럼.



아기 때는 젖 주면 좋아하고/아이 때는 노는 걸 좋아하고/저 가는 세월 속에 모두 변해가는 건/그것은 인생/철이 들어 친구도 알게 되고/사랑하며 때로는 당황하며/저 가는 세월 속에 모두 변해가는 건/그것은 인생/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네/영원한 시간 속에 잠시 서 있을 뿐/우리가 얻은 것은 진정 무엇이고/우리가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저 가는 세월 속에 빈손으로 가는 건/그것은 인생



그러나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공간은 짐승의 나라, 곧 이 세상나라에서나 통용되는 것일 뿐이다. 숨어있던 묵시가 덮치면 역사를 모두 다 품어서 십자가 사건으로 터져 나오도록 한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에서 승리자는 여자의 후손이다. 악마와 한패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데까지 내몰았던 악마와 이 세상은 멸망당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오히려 내몰도록 그렇게 말씀하셨다. 잘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예수님은 왜 화목과 행복을 주려고 오시지 않고 검을 주셔서 불화를 하게 하시는가 말이다. 죽이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염장 지르는 말씀만 하셨다. 혈육,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힘. 이 힘 앞에서 그 어떤 인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서 견뎌낼 재간이 있을까? 그러나 이 혈육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가 유복한 자다. 죽지 않고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만이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악마와 한패 된 자들에게 어린 자식들을 큰 바위에 힘껏 내리찍도록 만들 것이다. 이것이 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 십자가 피만이 복이다. 누가 내 어머니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우리의 욕망은 쉴 새 없이 품어져 나온다. 그 욕망을 밀어내고 밀어내주는 고마운 조력자가 있다. 악마다. 러시아워(rush hour)때 최대한 많은 승객이 타도록 전철 안으로 밀어주는 푸시맨(push man)처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완강하게 숨어있는 욕망을 밀어내어 표출하도록 하게 한다. 욕망에 사로잡혀서 왜 사는지 모르고, 오로지 옆에 있는 남만 쳐다보고 비교해서 남보다 더 잘 되기 위해 그냥 죽자사자 앞만 바라보고 가는, 황폐함의 포로가 되어 있음에도... 잘 살고, 더 잘 살고, 더 행복하기 위한 짓거리들이 악마의 조롱거리라는 것을 꿈엔들 생각이나 할 수 있을지...“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라는 양화대교 노래가 이 세대에게 왜 인기를 끌었는지를 알기나 할지.. 우리는 악마의 기쁨을 위하여 밤이면 건배를 하고 아침이면 일을 한다. 만물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위한 노래는커녕 악마를 위한 콧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이 좋다. 살 맛 나는 세상이다. 내 부모가 있고, 내 자식들이 있고, 내 일가친척이 있다. 울타리 쳐진 아담한 내 집 안에 들어있는 화목한 가족, 그 외엔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없다.



정말 그렇다. 그럼에도 어쩌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다. 때론 로또를 두 장(많이 사면 아까우니까)사면서도 떠나고 싶다. 때론 가족을 보면서도 떠나고 싶다. 때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떠나고 싶다. 때론 뭐가 어떻다 할지라도...떠나고 싶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이 행복이기 때문이다.



바벨론 강가에서 포로로 잡혀가게 된 신세 때문에 울었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일은 픽션이 아니라 넌픽션이었듯이, 우리네 인생도 돌아보면 그들과 별다를 것이 없이 그랬다. 하나님 잘 믿겠다고 했던 행위들이 다 나 행복하고자, 지옥이 무서워 천국에 가야만 하겠다고 쌓았던 바벨탑이었다. 내가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서 복음을 가리는 자인 줄도 모르고 오히려 늘 내 기준으로 정한 이방인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악하고, 일명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착하고, 안 믿는 직장 상사는 악인이고, 안 믿는 형제들은 다 핍박하는 자들이라고 여겼다. 주제파악이 안 된 가운데 홀로 이 세상 죄를 다 짊어지고 가는 자처럼, 홀로 의로운 자인 것처럼. 바벨론 강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이방에 앉아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주님 언제나 오시렵니까? 하면서. 주님 오실 날만 기다리며, 도적같이 오시리라고 하셨던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졸지 않고 기름준비 한답시고 교회라는 건물에 갇혀서 더러운 세상을 욕하고 스스로 등졌었다.



근데 열심을 내면 낼수록 왜 그렇게 허무했는지....믿으면 믿을수록 왜 그렇게 허무해서 미칠 것만 같았는지....하나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복을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아서 잘 살아야 되는데..시편73편의 고백처럼 끝없이 미끄러졌다. 믿지 않는 자들이 더 형통했고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고 고난도 없고 재앙도 없었다. 오히려 더 잘 먹고 잘 살았다. 부러웠다. 죄를 용서했다고 하는데 죄를 없이하지는 못했다. 하나님 믿으면 사랑만 넘치는줄 알았다. 그럴수록 커져가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살이라도 할까? 자살할 수도 없었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했기에. 지옥은 가기 싫었겠지...



계절이 바뀌어 어김없이 봄이 오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이 눈처럼 내린다. 실상은 하얗게 내리는 눈이 아닌데도 벚꽃 잎이 떨어지는 것을 멀리서 보면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실상이 아닌 것을 실상으로 여기며 내가 믿었던 하나님, 내가 믿었던 천국, 내가 믿었던 말씀, 내가 믿었던 십자가, 내가 믿었던 교회. 립 서비스하듯 남발한 내가 만들었던 감사였다.



그런데 때가 되매, 아!! 어느 한 순간에 성령의 바람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함박눈을 몰고 오셨다. 그냥 눈처럼 내린 벚꽃 잎이 아니었다. 소복하게 쌓이는 눈이었다. 그 눈 속에 모든 것을 파묻어버리셨다. 이제, 벚꽃 잎이 흩날리겠지만 그걸 하얀 눈으로 보지 않는다.









 이근호(IP:119.♡.94.40) 17-09-13 18:15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시 137:8-9)

   그래서 전 세계를 불로 심판하시는 예수님이 복된 분이십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빠져나가 천국가는 것이 세상(바벨론)에 대한 최고의 복수입니다.
 김태윤(IP:220.♡.116.84) 17-09-14 12:15 
봄이 되어 벚꽃이 눈처럼 휘날릴 때 나의 고상함에 취했다, 그 악마의 속사임에 동조하며
떨군 꽃잎조차 밞으면 상할까 조심조심 하는 그 고상함으로 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가 실화(fact)이고 쇠하는 꽃과 바짝 마른 풀이 실화인데...나는 취했다. 꿈과 망상에 취해, 술취함 같이 나의 존재 만을 꿈에 담는...
시편 137:1-9 말씀에 잠시 깨어나며...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이상현(IP:24.♡.134.52) 17-09-16 12:03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요19: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옶이 하소서 옶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계 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빌론이여...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살다보면
나의 존재와 행위에 몰두하게 되어

예수님의 죽으심도 잊어버리고
복음의 광채를 가리는 악마의 존재로 인해 눈과 귀가 멀어질 떄마다

선지자처럼
죄인임을 외치고
주님의 은혜를 상기시키는 지체로 인해

또 다시 깨어납니다.

성도는 한 성령 받은 우리가 맞습니다.

예레 미아
 공은주(IP:119.♡.152.148) 17-09-21 13:33 
행복이 가득해서 정신줄 놓습니다.
복음만이 증거되는 기쁨으로,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갑니다.
부끄럼이나 꺼리낌이 주어진다 해도
당당함으로 자랑스럽게 손들고 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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