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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11:07:29 조회 : 5012         
교회, 세상에 말을 걸다. 이름 : 박윤진(IP:210.182.130.141)

교회, 세상에 말을 걸다.


“우리아기 참 착하다!”



심부름 잘하는 아이, 자기 물건을 잘 정리정돈하는 아이, 아파트에서 뛰지 않는 아이, 동생 잘 봐주는 아이 등에게 어른들이 흔히 하는 칭찬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사실 이기적인 부모의 권력이 숨어있습니다. 착하다는 평가를 노골적으로 풀어쓰면 ‘내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했음’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풀어쓰면, ‘부모의 노동력을 절감하는데 도움이 되었음’이라는 뜻입니다. 한 번 더 노골적으로 풀어쓰면, ‘나에게 쓸모 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신의 자녀조차도 나의 노동력을 감소시키는데 쓸모 있는 아이에게만 ‘착하다’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이 긍정적인 평가를 더 받기 위해서 점점 부모의 말에 얽매이게 됩니다.



‘나에게 쓸모 있음’이 선악구조에서는 선(善)한 것으로 얼굴을 변장합니다. 결국 인간의 선악 판단이라는 것은 절대적 진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의해 판단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언어 시스템입니다. 인간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기존의 언어체계에 맞는 언어를 습득하여야 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이라고 해야지 ‘똥’이라고 해버리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화장실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잘못된 언어사용(배고플 때, 똥이라고 하는 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모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제재가 정당한 것은 이미 이러한 언어의 사용이 사회적으로 공인받아 통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언어체계를 무조건 따라하지 않으면, 즉, 언어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지배당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고 적응할 수 없으며 소외됩니다. 결국 죽습니다.



나에게 쓸모 있음이 강력한 힘으로 정교하게 구조화 된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죽습니다. ‘나에게 쓸모없음’이라는 언어는 곧 죽음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키울 때, 우리 사회가 쓸모 있는 인간을 요구하는 것, 자본주의식으로 말하자면, 돈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간으로 키우고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살기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의 부모는 마귀입니다(요 8:44). 모든 인간은 마귀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귀에게서 착한 아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교육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것이라면서 자신의 몸을 불 속으로 던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지배하에 있는 인간에게 과연 십자가는 어떤 언어입니까? 십자가에 지배당한 믿음의 흔적이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이 베이고, 톱에 잘리고, 외톨이로 광야에서 살고, 이 세상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사람들이 과연 세상의 부모인 마귀로부터 ‘우리아기 참 착하다’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참 복음은 마귀의 자녀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복음,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인간은 정확하게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고전 1:23-24). 예수님의 소유된 양은 그의 음성을 듣습니다(요 10:27). 예수님과 말이 통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녀들은 복음과 의 단절만을 절감하게 됩니다(요1 4:6).



그런데 교회가 수상합니다. 전도폭발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훈련하면 전도를 더 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불신자와의 소통단절을 거부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뿌린 알곡을 주님께서 직접 추수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세상과 말이 통하기 위해서 이 세상 부모가 ‘착하다’라고 칭찬할 만한 행위를 하기 시작합니다. 사회봉사, 밥퍼주기, 좋은 아버지 만들기 등등....



마귀의 말을 버리게 되는 유일한 길은 마귀의 자녀로서의 삶이 끝장날 때 뿐 입니다. 인간의 반성과 후회로는 도저히 그 말을 입에서 빼낼 수 없습니다. 복음은 세상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죽음뿐이라고 통보할 뿐입니다. 그 죽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을 잃어버린 자의 진짜 현실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육체로 보여주셨습니다.



참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심이 믿어지는 곳입니다(요1 4:2).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만을 하셨듯이(요 12:50, 14:24), 교회의 입에는 성령의 말씀만이 가득합니다. 그 성령의 말씀은 오직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고 찬양하는 내용 뿐 입니다(히 10:15-18, 요1 5:5-7).



그래서 참된 교회, 즉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인 사도바울은 예수와 그의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으며, 그 외에 모든 것은 배설물인 것을 깨달았고 결국 자랑할 것은 오직 십자가 뿐 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설득하거나 세상에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말씀으로 세상을 고발하는 피가 증언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1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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