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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18:40:09 조회 : 103         
The World Of The Ark 이름 : (IP:121.149.196.18)
title : The World Of The Ark(방주의 세계)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Genesis 7:6-12(창세기)
date : 2016/6/1

6.Noah was six hundred years old when the flood waters came on the earth. 7.And Noah and his sons and his wife and his sons' wives entered the ark to escape the waters of the flood. 8.Pairs of clean and unclean animals, of birds and of all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9.male and female, came to Noah and entered the ark, as God had commanded Noah. 10.And after the seven days the flood waters came on the earth. 11.In the six hundredth year of Noah's life, on the seventeenth day of the second month--on that day all the springs of the great deep burst forth, and the floodgates of the heavens were opened. 12.And rain fell on the earth forty days and forty nights.


What we should not miss today's text is that judgement and redemption are being made in parallel. In other words, the ark is the fact that it is floating on the water of judgment. This means that the righteousness that wins the judgment in the judgment is radiated through the function of the ark. God does this to show that this function, working in the ark, is the principle of kingdom of heaven. The construction of heaven is beyond human comprehension. God makes heaven by the principle of the ark, and the full righteousness of heaven comes through this ark, which floats on the judgment of the flood. This is the setting of God to show the full righteousness 오늘 본문을 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심판과 구원이 병행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방주는 심판의 물 위에 떠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심판 속에서 심판을 이기는 의로움이 방주의 기능을 통해서 발산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심은 방주 안에서 작동되고 있는 이 기능이 천국의 원리임을 알리시기 위함이다. 천국의 건설은 인간의 이해 밖에 있다. 하나님은 방주의 원리로 천국을 만드시며 천국의 완전한 의는 홍수 심판위에 떠 있는 이 방주를 통해서 나온다. 이것이 완전한 의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세팅이다.


So, what is the principle of a world submerged in the water of the judgement who contradicts the principle of ark? It is called the causality of the good and the evil system. The world builds its own world according to this principle and does its best to pursue happiness and heaven in its extension. From the conceptual level of sin and punishment for this sin, the Flood judgment is regarded as excessive punishment for human beings. Given the concept of sin and punishment, a great flood judgment is considered excessive punishment for humans. At the bottom of this consciousness lies the pride that "I am not supposed to be punished 그렇다면 방주의 원리와 대치되는 심판의 물속에 잠겨있는 세상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선악체계에서 나오는 인과원리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 원리에 따라 독자적인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최선을 다해서 행복을 추구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천국도 추구한다. 죄와 그에 따른 처벌 이라는 개념 수준에 볼 때 인간에게는 대홍수심판은 과잉처벌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의식의 바닥에는, “나는 벌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자부심이 깔려있다.


With this idea, people start to improve their relationship with the world around them, paying attention to themselves. And they carefully manage and plan and control themselves. They think that God will be pleased with them and will bless them throughout their life, and will send him into heaven when he dies, and will reward them according to their efforts. Man is self-centered from beginning to end, an idol worshipper that even God worships as idols.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주목하면서 주변 세상과 관계개선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계획하고 통제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도 그를 기쁘게 여기시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복을 주시고 죽어서는 천국에 들여보내 주시며 그의 노력에 따라 상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중심적이며 하나님조차도 우상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자이다.


But God laughs at these humans. From God's point of view, it is punishment, sin, curse, death, and evil to be born and live as descendants of Adam, who has sinned. On the basis of the saying, "Don't eat the fruit of a tree that knows good or evil, and on a day you eat, you will die." God regards man as already dead and ruined. Therefore, there is no human being.(Gen 2:17)." Therefore, there is no human.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비웃으신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출생하여 살아가는 것 자체가 형벌이며, 죄이며, 저주이며 사망이며 악이다. 하나님은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창2:17)”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인간을 이미 죽고 망한 자로 보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없는 것이다.


In spite of these circumstances, people who are ignorant of their own circumstances, and who are away from God's life, regard themselves as 'being' and eat, drink, marry, buy and sell to maintain and expand themselves, and engage in religious activities. For humans, that is all and that is the only thing that is meaningful. Therefore, all the most ordinary things that man does are the basis for the judgment of God. Human behavior is a sin committed under a curse whatever it is. Therefore, life itself is under God's judgment, and God still carries out judgment. 형편이 이러한데도 자신이 처한 형편에 대해 무지한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인간은 자신을 ‘있음’로 여기고 소유에 집착하며 자기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또한 종교적인 행위를 한다. 인간에게는 그것이 전부이며 그것만이 의미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일들 전부가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된다. 인간의 행위는 그것이 무엇이든 저주 아래서 행하는 죄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지금도 심판을 시행하고 계신다.


So, what is the principle of the ark, which is protected separately in the world being judged, considering that it is on the waters of the judgement? It is completely foreign from the principles of the world. It's something strange and stupid that the world can't understand or afford. It is a complete exclusion of human beings. It is to dismiss such a self-proclaimed distinguished human being as utterly helpless, incompetent, worthless and impossible. It recognizes and highlights only the effect and func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clean animals and unclean animals which are with Noah in the ark. 그렇다면, 방주가 떠 있는 곳이 바로 이 심판의 물 위라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심판받고 있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보호받고 있는 방주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의 원리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다. 세상이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낯선 것이며 어리석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그처럼 자칭 잘난 인간, 그 대단한 인간을 완전히 무력하고 무능하고 무가치하고 불가능한 자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방주에 동승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관계에서 발산 되는 효력, 기능만을 인정하고 부각시키는 것이다.


There is something Noah had to pay attention to in the ark. It was 'seven pairs of clean and two pairs of unclean animals' distinguished by God from other creatures. The center of the ark was not Noah himself. There was nothing Noah could do about this development. Seven pairs of clean animals and two pairs of unclean animals, which God had brought Noah to notice, had secured the representative position to determine the fate of all the other things in the ark. Compared to these animals, Noah and all other creatures were allowed to enter one pair after another, eventually placing themselves in a position subordinate to the two types of animals. 방주 안에서 노아가 주목해야 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 ‘일곱 쌍의 정한 짐승과 두 쌍의 부정한 짐승’이었다. 방주 안에서의 중심은 노아 자신이 아니었다. 이렇게 전개 된 상황에 대해 노아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노아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신 일곱 쌍의 정결한 짐승과 두 쌍의 부정한 짐승이 방주 내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표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들 짐승에 비해볼 때 노아를 비롯한 다른 피조물들은 모두 한 쌍씩 들어오도록 허락되면서 결국 이 두 종류의 짐승에게 종속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In other words, the main character of the ark was not a human Noah. Noah simply needs to enjoy what's happening outside him, the consequences of the main characters' actions. That means Noah is the result of the relationship and actions of these animals which God has made meaningful. Noah had to know that he was subordinate to the functions expresse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clean animals and a unclean animals which were with him. The same is true inside the ark, and the same is true after coming out of the ark. Noah becomes a righteous man only under the condition of subordination. This is the principle of the ark. 달리 말하자면, 방주의 주인공은 인간 노아가 아니었다. 노아는 그저 자신의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 즉 주인공들의 행위의 결과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노아는 하나님께서 의미 있게 부각시킨 이 짐승들의 관계와 행위의 결과적인 존재라는 의미이다. 노아는 자신과 동승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기능에 그가 종속된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 사실은 방주 안에서도 마찬가지고 방주에서 나온 뒤에도 마찬가지다. 노아는 종속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의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방주의 원리다.


It turns out that the purpose of God to make Noah and his family enter the ark was not simply to save them from the flood judgement. Rather, it is to show the righteousness of God, the life of God, the death of God, and the beauty of God's work in the special environment of the ark. In other words, God's attention was not to Noah's salvation, or to his righteousness or the beauty of his conduct. In the world of ark, all human elements, such as human nature and human activities, are excluded. 이로 보건데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을 방주에 들어가게 하신 목적은 단지 그들을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하여 내기 위함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보다는 오히려 방주라는 특수한 환경 안에서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생명, 죽음,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관심은 노아의 구원이나, 혹은 그의 의나 그의 행위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방주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의 활동과 같은 모든 인간적인 것은 배제가 된다.


In 2 Corinthians 5:21, God's purpose is not to make us righteous but to make us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 . In addition, Romans 3:26 says,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 So, where does righteousness which Noah is subordinated come from? It comes from being and the exercise of the attribute of the sacrifice accompanying Noah in the ark. 고후5:21에 보면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의인 만드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로마서 3:26에 봐도,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노아가 종속된 의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노아와 동승한 제물의 존재와 그 속성 발휘에서 나온다.


The word that the offering is with Noah means that he is totally affected by the offering. For Noah, however, not only does the clean animal affect, but also the unclean animal does. This means Noah's salvation is not a matter of his own righteousness or goodness. That is, what is caused b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lean animal and unclean animal means God's judgment, salvation, holiness, and righteousness. 제물이 노아와 동승했다는 말은 제물의 효력이 노아에게 미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노아에게는 정결한 짐승의 효력뿐만 아니라 부정한 짐승의 효력도 함께 작용한다. 이는 노아의 구원은 독자적인 그의 의나 착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부정한 짐승과 정결한 짐승 이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요 구원이요 거룩이며 의이다.


What we here should pay attention to is that God's judgment, God's salvation come from relationship with his hostile forces. In order to show this, there are clean animals and unclean animals together in the ark.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저항세력, 적대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방주 안에는 정결한 짐승과 더불어 부정한 짐승이 함께 동승해 있는 것이다.


Therefore the judgment and salvation of God are to fully reveal the attributes of Jesus, who has become a clean beast, and it ends with the creation of heaven and hell. Jesus is a perfect righteous man and a complete sinner who at the same time has taken on all the sins of his people. He is the only clean offering acceptable to God that God is pleased with while being the unclean offering that is covered with all the sins of his people. Jesus has these two elements of a sacrificial offering.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정결한 짐승 되신 예수님의 속성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천국과 지옥을 생성하는 것으로 마감된다. 예수님은 흠이 없는 완전한 의인이시면서 동시에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떠맡아버린 완전한 죄인이시다. 즉 그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깨끗한 제물이시면서 자기 백성의 모든 죄가 덮어씌워진 부정한 제물이시다. 예수님께는 희생제물의 이 두 요소가 겹쳐져있다.


Therefore, all creatures, along with unclean animals, benefit from a fellowship offering, which is represented by clean animals. This fact is later embodied as a sacrifice by a clean animal when it comes out of the ark. For the subsequent work of the clean animal, once the ark becomes a world of sacrifice. The world of the offering is later focused on Jesus Christ. There is a whole world in him, and he becomes a sacrifice to God, and when it expands, the world is organized into two parts: hell and heaven, heaven and hell.그러므로 부정한 짐승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들은 전부 다 정결한 짐승으로 대표되는 화목제물의 혜택을 입는다. 이 사실은 나중에 방주 밖으로 나왔을 때, 정결한 짐승의 희생제사로 구체화 된다. 그 정결한 짐승의 차후적인 작업을 위해서 일단 방주 안은 제물의 세계가 된다. 그 제물의 세계는 나중에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초점이 모아진다. 예수님 안에 모든 세계가 들어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이 되고 그 제물이 확대되면 지옥과 천국, 천국과 지옥, 두 부분으로 세상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게 된다.


The ark's world is a world where the covenant of God is involved in everything. Inside it, there is still an unclean beast, 'ego', which is Adam's nature and lives on its own goal of winning. 'Ego' is the child of the serpent under the rule of the devil. The LORD fights his own war against the devil, who has taken control of me, a unclean beast that is the offspring of a serpent. But what is to be pleased is that this war has been confirmed and completed by the victory of the Lord There is no room for human intervention in the Lord's war. Man is not in a position to assist Jesus. On the contrary, human beings only display their true nature as vipers. It is the righteousness, life, heaven and beauty of the Lord that springs from the course of this war. 방주의 세계란 모든 것에 언약이 관여하고 개입하는 세계를 말한다. 그 안에서는 여전히 아담의 본성을 지니고 자신의 승리를 목표로 살아가는 부정한 짐승, 곧 ‘자아’가 있다. 그 ‘자아’는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곧 독사의 자식인 것이다. 주님은 정결한 짐승으로서 독사의 새끼인 부정한 짐승인 ‘나’를 장악하고 있는 악마와 상대하시면서 주님 자신의 전쟁을 벌이신다. 그런데 기뻐할 것은 이 전쟁은 주님의 승리로 이미 확정되고 완료된 전쟁이다. 주님의 전쟁에는 인간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인간은 예수님을 조력할만한 처지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독사 새끼로서의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뿐이다. 이 전쟁의 과정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바로 주님의 의, 생명, 천국, 아름다움인 것이다.


Rome 15:16 says, "to be a minister of Christ Jesus to the Gentiles with the priestly duty of proclaiming the gospel of God, so that the Gentiles might become an offering acceptable to God, sanctified by the Holy Spirit." The word "in the Spirit" here is God's way of blocking all human manipulations and acts. In other words, humans do not have the authority to decide their own fate. Human beings are only going to hell if they are endowed with the attributes of hell as Jesus assigns them, and to heaven if they are endowed with the attributes of heaven. For humans have no initiative. This is exactly what the provision of the covenant contains.로마서 15:16에는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성령 안에서’라는 말은 모든 인간의 조작과 행함을 일체 차단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즉 인간은 자기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말이다. 인간이란 단지 예수님이 할당하시는 대로 지옥의 속성을 부여받으면 지옥 가는 것이요, 천국의 속성을 부여받으면 천국으로 갈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주도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 안’이라는 규정이 품고 있는 내용이다.


Thus, the saints are only witnesses of Lord's war, and only those who have been joined to the Lord as the spoils of the Lord's war to complete the covenant. The Lord took them from the devil and make them His. Absurdly, the Lord gave them the title of sons of God. Therefore, the saints are those who live with thanksgiving for the children of God being loved only owing to the covenant of God and the cross of the Lord. This is the world of the ark, the world of the kingdom of heaven.이처럼 성도란 주님의 전쟁의 목격자일 뿐이며 언약을 완성하시고자 치루신 주님의 전쟁의 전리품으로서 주님께 합류된 자들일 뿐이다. 주님은 마귀에게서 그들을 빼앗아내시고 그분의 것으로 삼으셨다. 터무니없게도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약 때문에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며 사는 자들이다. 이것이 방주의 세계, 천국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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