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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 18:06:11 조회 : 125         
Covenant About Circumcision(할례언약) 이름 : 함숙경(IP:121.149.196.155)
title : Covenant About Circumcision(할례언약)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Genesis 9:7~14(창세기)
date : 2017/01/25

The way God has a relationship with humanity or the way of salvation is beyond all religious ideas of human beings. This is a way that is completely outside human expectations and predictions, and so unfamiliar to humans. God's way denies any salvation attempt from the human side.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방식 혹은 구원방식은 인간들의 모든 종교적 아이디어를 벗어난다. 이것은 인간의 예상과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방식이며 그래서 인간에게는 너무나 낯설다. 하나님의 방식은 인간 쪽에서 접근하는 그 어떤 구원시도도 모조리 부정해버린다.

But for those who are caught up in the process of God, they are given the greatest freedom in that they no longer need to be swayed by all the ways the world pursues. If this happens, in fact, his or her life of a saint disappears. They deserve to exist only for the activation of the way God has presented. The reason why God refuses all the ways of man is because he is already dead, cursed, abandoned, exiled, and cut off from God. 그러나 하나님의 공정에 휘말리게 된 자들에게는 이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방식에 의해 자신들은 더 이상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최고의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도는 자기 인생이라는 것은 사실상 사라진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한 그 방식의 활성화를 위해서만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단호하게 인간의 모든 방식을 거절하시는 이유는, 인간은 이미 죽었고 저주 받았고 버려졌고 추방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The purpose of God's banishment of man must be maintained and kept alive. For this principle, every way the human side does should be rejected. Then why does God banish human beings and then come back? This is not for abandoned humans, but for the covenant God has made.하나님께서 인간을 추방시키신 그 취지는 한결같이 유지되고 계속 살아있어야 한다. 이 원칙을 위해서 인간 쪽에서 행하는 모든 방식은 거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추방시켜 놓으시고 왜 다시 인간을 찾아오시는 것인가? 그것은 버려진 인간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을 위해서이다.

In other words, it is to use human beings as a field to embody the covenant of God. It may be difficult to admit this point in human stand, but human sin is an essential element in implementing God's covenant. Man is joined in the fulfillment of God's covenant in the role of sinner. 즉 하나님의 언약을 구현하시는 장으로서 인간을 사용하시기 위해서이다. 인간입장에서는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구현하시는 데 있어 인간의 범죄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간은 죄인이라는 역할로 하나님의 언약완성에 합류된다.

The reason humans do not understand God's salvation is that they are involved in a negative role in achieving the covenant. Humans yearn for immortality without a curse in the circumstances of being driven out of the Garden of Eden. However, God presents a way of God that humans are uncomfortable with, while cutting off human desires and tricks. 인간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약 달성에 있어 자신들이 부정적인 역할로 개입되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주제에 저주가 없는 불멸의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이런 욕망과 꼼수를 잘라내시면서 인간들이 불편해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제시하신다.

In today's text God says to Abraham, 'Do circumcision.' God wants to establish a covenant of circumcision with Abraham and implement the covenant. But before God made a covenant with Abraham by circumcision, there was a covenant with Noah. The purpose of the covenant with Noah is linked to the purpose of the “circumcision covenant” we are considering today. The essence of this covenant is not "promised salvation", but "promised death". The agent in charge of this death is the "clean animal" who has accompanied Noah. Thus, the purpose of the ark is not to save Noah, but to be a “funeral coffin” for the subsequent death of the clean animals and birds that be supposed to be sacrificed after flood.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할례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을 구현하시고자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할례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기 이전에 노아와 맺으신 언약이 있었다. 노아 언약의 취지는 오늘 우리가 생각해보려는 ‘할례언약’의 취지와 연결되어 있다. 노아 언약의 본질은 ‘노아의 구원’이 아니라 ‘약속된 죽음’이다. 이 죽음의 담당자는 노아와 같이 방주에 동승해 온 ‘정결한 짐승’이다. 따라서 방주는 노아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제물이 될 정결한 짐승과 새의 차후적인 죽음을 위한 ‘장례식 관’이 되는 것이다.

In other words, clean animals and birds that are not to die of the flood, but to die of the covenant, are sure to be sacrificed. Noah was not immersed in the flood because of the subsequent death of this sacrifice, a sign of life seen on earth. The covenant of circumcision inherits this purpose of the covenant of Noah. Circumcision is to cut off the skin that covers the end of the male genitalia, exposing the inner flesh inside.즉 홍수에 의해 죽지는 않지만 언약으로 인하여는 필히 죽어야 될 운명이 바로 제물로 바쳐지게 될 정결한 짐승과 새이다. 노아가 홍수 속에 잠기지 않았던 것은 이 희생제물의 차후 적인 죽음 때문이며 이는 곧 지상에서 보이게 되는 생명의 징후이다. 할례 언약은 노아 언약의 이런 취지를 계승한다. 할례는 남성 생식기의 끝부분을 덮고 있는 피부를 잘라 냄으로써 그 안에 덮혀 있던 속살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The covenant of circumcision" is the very function of denying human fertility by circumcising genitals rather than building an ark as in Noah. The covenant of the circumcision shows that "Abram" steadily have covered "Abraham". Abram radiates the carnal attribute, the power of flesh inherited from the existing physical parents. 노아 때처럼 방주를 짓는 것이 아닌 생식기에 할례를 행함으로써 인간의 생식능력 자체를 부정(否定)하는 바로 그 기능이 ‘할례언약’이다. 이 할례언약이 보여주는 것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을 꾸준히 덮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브람은 기존의 육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성, 육의 능력을 발산한다.

But this physical reproductive capacity acts as a way of concealing, covering and persecuting the children of the covenant that will form the "Abraham line". "At that time the son born in the ordinary way persecuted the son born by the power of the Spirit. It is the same now(Gal 4:29)." In short, the obsession with his flesh of man, his happiness, his own salvation, is to take advantage of even the Lord's cross for his own salvation. Man is proud of his faith, his good deeds, and tries to maintain, preserve, and strengthen himself. All these things have covered the covenant flesh. The Lord comes daily with his double-edged sword to his saints and to remove the cover. This is the Lord's way of engaging with the saints.그런데 이러한 육적 생식능력이 ‘아브라함 노선’을 구성할 언약의 자식을 가리고, 덮고, 핍박하는 식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9) 쉽게 말해서 인간의 육에 대한 집착, 즉 자기의 행복, 자기의 구원에 대한 집착이 주님의 십자가조차도 자기 구원에 이용하려 든다. 자신의 믿음 자신의 선행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러한 자신을 유지하고 보존하고 강화시키려 든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언약의 속살을 덕지덕지 덮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은 양날의 날선 검을 가지고 자기 것인 성도를 찾아오셔서 그 덮개를 걷어내는 작업을 날마다 하신다. 이것이 성도와 관계를 맺으시는 주님의 방식이다.

Does circumcision cause the natural nature to disappear at once? No. Romans 12: 1 says: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God has never allowed man to acquire or possess salvation personally. The saints are engaged in the covenant work of God not for self salvation, but for God's covenant, which is a living sacrifice. This is the final point of the circumcision. In other words, the saints are not dying to live, not living by death, but dying itself is "death for covenant" that can radiate to this world.그렇다면 할례를 행하면 육적 본성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다. 로마서 12:1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을 개인적으로 획득하거나 소유하는 것을 허락하신 적이 없다. 성도는 자기 구원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하나님의 그 언약 작업에 휘말리는데 이것이 바로 ‘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할례자의 최종지점이다. 쉽게 말해서 성도는 살기 위해서 죽는 것도 아니요, 죽어서 사는 것도 아니라 죽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을 향해 발산해 줄 수 있는 생명의 ‘언약적 죽음’이다.

God puts the saints in the covenant. It is not that man keeps God's covenant and is saved, but the covenant brings them into the process of fulfillment of God's covenant. This is a state of being saved. The circumcision covenant is accomplished in God's way. But here is another thing to note. It is said to be circumcised on the eighth day. This is to highlight the meaning of the new creation supposed to be completed on the eighth day. That is, seven days belonging to the world of old creation have been covering the world of new creation. The new creation breaks down the old creation, completing eternal life and eternal curse. Thus, all who belong to the Abrahamic covenant must circumcise on thd eighth day. 하나님은 성도를 언약 안에 두신다. 인간이 언약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언약이 우리를 하나님이 자기언약을 성취하는 과정에 동원시킨다. 이것이 구원받은 상태이다. 할례언약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8일째 주어지는 새 창조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즉 옛 창조에 속한 7일이 새 창조를 덮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새 창조는 옛 창조를 부수면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저주를 완성시키게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 언약에 속한 모든 자는 8일 만에 할례를 행해야 하는 것이다.

Now, it is no longer an “Abram life,” but an “Abraham life.”The salvation that God had in mind was not of Abram, but of Abraham. This Abraham will be covered again and again by the attributes of carnal Abram throughout his life. In other words, the experience that Abram's fleshly desire to live hides the true life of Abraham will be repeated to him until his death. Thankfully, however, the power of the cross intervenes in all of this. The power of the cross exposes and cuts off the desires of the flesh. As night and day lasts as long as there is a world our fleshly desires will cover us every day, but the Lord's circumcision knife cuts us day by day as well. Thus, it will continue to be testified that the covenant was completed by Jesus alone. This is “the circumcision done by Christ”(Col. 2:11). 이제는 ‘아브람 인생’이 아니라 ‘아브라함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구원은 아브람의 구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구원이다. 이 아브라함은 평생 육적인 아브람의 속성에 의해서 덮히고 또 덮힐 것이다. 즉 살아보겠다는 아브람의 육의 욕망이 아브라함이라는 참된 생명을 가리는 경험이 죽을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모든 일에 십자가의 능력이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십자가의 능력이 육의 욕망을 노출시키고 또 잘라내신다. 세상이 있는 동안 밤과 낮이 쉼이 없듯이 우리에게는 육의 욕망이 매일 우리를 덮겠지만 주님의 할례의 칼 또한 날마다 산제물인 우리를 베신다. 이로서 언약은 예수님 홀로 완성하심이 계속 증거가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할례’이다(골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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