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성도의 칼럼
2020-01-06 07:31:49 조회 : 171         
제 3의 세계 -송민선 집사님의 글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어떤 요리사가 이런 말을 했다. “모두들 요리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데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 중 하나가 요리입니다. 제가 오늘은 아주 간단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법을 하나 알려 드릴게요. 우선 냉동실을 열어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인 양고기를 꺼내서 해동시킨 후 찬장을 열면 어느 집에나 볼 수 있는 바질 가루와 불포화 지방이 풍부한 호두오일을 꺼내서...” 채널을 돌리며 올라오는 생각은 딱 하나이다. ‘장난하나...’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불바다 된다고 할 때 누구도 믿지 않았고 식구들이라도 챙기고 싶어 좀 더 강하게 권했을 텐데 도리어 ‘농담’으로 여기며 웃었다. ‘장난하나...’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오히려 신기한 것이 기생 라합은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 이미 세상에 퍼진 애굽 탈출과 홍해사건 그리고 그 외의 소문들로 간담이 녹고 정신을 잃을 정도라고 했다. 그녀에게는 그 소문이 장난이 아니었다. 안 믿는 사람이 이상한가 믿는 사람이 이상한가. 그녀는 그 현장에 없었고 오직 소문으로만 이 모든 걸 들었는데 믿었고 나 자신도 지금 보지 않은 것을 그 말씀을 듣고 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약속의 첫 계명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부모가 이미 하나님 자식의 역할이 되어 받은 중요한 무언가를 자신의 자식에게 전해야 하고 그 자식은 또 그 후대의 자식들에게 이것을 전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신다. 이것에 중요한 핵심은 그 전달의 통로들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속해야 하는 것과 그 생명 안에 담긴 원리 원칙대로만 약속이 전달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이 인간 속 부모 자식 관계에서 정상적으로 전달 될 수 없음을 하나님은 아셨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원리 원칙을 지킬 자들이 아님을 아셨다. 하나님은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시니 결국 영생하는 생명이시고 아버지와 참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실 수 있는 진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다.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아시는 아들. 그래서 유일하게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실 수 있는 약속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두 분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하면 될 일인데 왜 이 죄가 창궐하는 세상으로 아들을 보내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만이 아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함께 느끼게 할 양자들이 이 세상에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은 가망이 없고 양자를 찾아서 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해 줄 끈을 쥐고 계신 분이 주가 되신 주님뿐이시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땅인 ‘주 안에’ 오직 하나님이 주님을 통해 만드신 자식이 들어감을 허락받고 주 안에서의 순종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순종이기에 모든 것이 ‘예’가 된다.

이제 자신의 욕망으로 점철된 자기 방식으로 주님에게 순종하고, 그 순종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식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더 할 수 없이 화목한 주님의 가정이라는 허상을 지우개로 싹싹 지우고 외형을 다 걷어버리고 다시 보자고 하신다. 주 안에 있는지 주 밖에 있는지,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지 자신이 자체 생성한 약속을 믿고 사는지, 선악 구조 안에 있는지 쪼개진 사이에서 발생한 제 삼의 구조에 편입되었는지를 보자고 하신다.

나는 어느 쪽인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제 삼의 요소가 인간 쪽에서는 스스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가 아버지 주신 재산 다 탕진하고 집에 거지꼴로 다시 돌아왔을 때 인간 쪽에서 만들 수 있는 대립 구조는 착한 아들과 나쁜 아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립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던 맏아들과 죽었다가 살아난 잃었던 둘째 아들이다. 잃어버렸던 아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그것, 자신을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제 삼의 요소가 있었다. 인간의 겸손이나 선함으로 조작할 수 없는 요소.

이제 출발점은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고 가족이 없는 지점이다. 내가 없는 지점이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부모의 마음으로 친히 전하시는 복음 앞에 양자의 영을 받은 자들의 역할은 항상 주 안에서 하나님의 보증하신 것을 전달하는 용도로 매일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다.

이제 기생 라합처럼 간담이 녹고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율성을 찬송하며 감사해야 한다. 언제? 바로 지금 이 상황에서. 아버지가 생산해 주시지 아니한 모친이나 형제는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우리도 나라를 배신하고 가족을 배신하고 부모를 배신하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을 배신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세미하게 느껴지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미 주변에 낯선 어떤 모습이 자신을 통해 비치고, 그 입에서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한 말에 대한 반응들이 나타날 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일하심을 감 잡으며 감사하면 된다.

이상한 것은 그 감사는 내가 감사하고싶은 상황이 아닐 때 하는 감사이다. 어떤 분이 그러셨다. 사람들이 감사하다는 말이 너무 흔하고 식상하고 가식 같다고. 참으로 동의한다. 감사할 상황이 아닌데 감사하는 게 도리어 이상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때가 바로 자신을 배신할 때구나. 내가 누구이기에 감사할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분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배신할 때이다.
  ◁ 이전글   다음글 ▷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