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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16:56:31 조회 : 86         
Pray in The Spirit on All Occasions무시로 기도하라 이름 : 함숙경(IP:121.149.196.6)
title : Pray in The Spirit on All Occasions 무시로 기도하라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Ephesians 6:18-20
date : 2020/ 02월/ 09

18.And pray in the Spirit on all occasions with all kinds of prayers and requests. With this in mind, be alert and always keep on praying for all the saints.
19.Pray also for me, that whenever I open my mouth, words may be given me so that I will fearlessly make known the mystery of the gospel,
20.for which I am an ambassador in chains. Pray that I may declare it fearlessly, as I should.

SUMMARY

Today's text makes it clear that we should not pray a prayer that is not related to the gospel. It means that we must pray only for the gospel to be preached. To do so, we must first recognize how detestable the prayers we have prayed for our preservation and comfort. 오늘 본문은 복음과 무관한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한다. 그것은 복음이 복음답게 전파되기 위해서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동안 자신의 보존과 안위를 위해 해온 기도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기도라는 것이 먼저 인식되어야 한다.

For this to happen, the saints have to go through a process of radical change in their perception of reality. In other words, they must be struck by the cross of Jesus. In other words, the fact that even once breathing for themselves is guilty of killing Jesus should be perceived as a lightning bolt shock. 이 일이 일어나려면 성도들은 자신의 실상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변화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즉 그들은 십자가에 의해 얻어맞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달리말하자면 자기를 위한 한 번의 호흡조차도 예수님을 죽인 죄라는 사실이 번개 맞은 듯한 충격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For this purpose, the Lord first confines the saint to a situation where he has no choice but to pray. At that time, they cry like this, “Please save me Lord, let me escape this situation!". The eagerness comes out in the form of prayer. Jesus prescribed this very prayer for his own safety as " Gentiles' prayer" This prayer has no relation to the covenant of God. 이것을 위해서 주님은 우선 성도를 절로 기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가두신다. 그때는 ‘살려주세요. 주님. 이 상황만 모면케 해주세요!”라고 하는 간절함이 기도라는 형식으로 터져 나오게 된다. 바로 이런 자신의 안위를 위한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기도'라고 규정하셨다. 그 기도에는 하나님의 언약과의 관련성이 전혀 없다.

But even if someone prays with God's covenant, that prayer could be a sin. This is the case with Old Testament Israel. They prayed for the fulfillment of the covenant. So they naturally considered their prayers answered. But there was a distorted their understanding of prayers. In other words, they prayed for the fulfillment of God's covenant on the premise that their kingdom should never be destroyed because they had received God's covenant. 그러나 누군가가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기도한다할지라도 그 기도는 죄가 될 수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기도해 왔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기도는 응답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거기에는 기도에 대한 자신들의 왜곡된 이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즉 그들은 자기 나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기에 절대로 망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전제하에 하나님 언약이 성취되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They tried to fill in for Messiah. They considered the Messiah's will to be the same as their's. But it was limited to the case where they still prospered. More precisely, if their destruction was to reveal the Messiah, they were not ready to agree on that. Israel misunderstood God's will. 그들은 메시야의 일을 대신하려 들었다. 그들은 메시야의 뜻과 자신들의 뜻이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번영하는 경우로 한정되어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만약 그들의 멸망이 메시아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거기에는 동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했던 것이다.

But Jesus' prayer for the gospel was fixed in content and purpose. Therefore, the prayer which is different from Jesus' cannot be answered. In other words, there is no any prayer to be answered except the prayer, "Lord, make me ruined here on earth for the gospel." 그러나 복음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그 내용과 목표가 확정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와 다른 기도는 응답될 수가 없다. 즉 “주님, 저를 복음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망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 외에는 응답되는 기도는 없다.

The Lord makes the saints pray to accuse the condition of the world revealed by the gospel. He also teaches them that it is sin that they have tried and wished for personal salvation. To this end, we must know exactly what the gospel says. 주님은 성도로 하여금 복음으로 인해 드러난 이 세상의 실정을 고발하는 기도를 하게 하신다. 또한 개인적인 구원을 시도하고 염원한 이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알려 주신다. 이 점을 위해 복음이 말씀하는 바를 바로 알아야 한다.

The gospel says that Jesus came to this world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In other words, human beings themselves are "sinful fleshes." If so, all the attempts to preserve the flesh, or to serve God with this flesh, such as to pray and donate, to worship God, to preach the gospel and to glory God are sin. 복음이 말하는 바는 예수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즉 인간 자체가 ‘죄 있는 육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육신을 보존하겠다든지 혹은 이 몸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는 모든 일들, 예컨대 기도하고 구제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겠다고 하는 일들은 모두 죄가 되는 것이다.

Therefore, “praying on all occasions" refers to the prayer of accepting and applying the covenant already fulfilled. In other words, the gospel has already revealed that humans are sinners whatever they do. The situation of the cross that Jesus went through as he left the world tells us this. 그러므로 ‘무시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미 성취된 언약을 받아들이고 적용시키는 기도를 말한다. 즉 복음으로 인해 이미 인간은 뭘 해도 죄인으로 드러났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빠져나가면서 겪으셨던 그 십자가 상황이 이 사실을 말해준다.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Matt 27:46)" This abandonment is our own situation today. The gospel made this known to the saint. Being called by the gospel means that the callers were brought to life only as "for the gospel." Therefore, the prayer of the saints is the prayer as a result of the gospel.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 이 버림받음이 오늘날 바로 우리 자신의 형편이다. 복음으로 인하여 이 사실이 성도에게 알려졌다. 복음에 의해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부름 받은 자들이 오직 ‘복음을 위한 용도’로만 살려내어졌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한 결 같이 복음의 결과물로서의 기도이다.

When this happens, the saints themselves become the “answer” of the Lord's prayer. The saint is the answer. It is the answer to everything the Lord has done and a witness of "It is finished." The event of Zacchaeus in Luke 19 is an example. Zacchaeus, unilaterally called by Jesus, no longer needs to take care of himself. For he is the result of what the Lord has accomplished. When Zacchaeus was visited by Jesus, he withdrew from himself. He no longer consulted with himself. 이렇게 되면 성도 자체가 주님의 기도의 ‘응답’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곧 ‘답’이다. 주님이 벌리신 모든 일의 답이요 ‘다 이루심’의 증거물이다.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의 사건이 그 실례가 된다. 예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삭개오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챙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성취하신 일의 결과물 자체이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방문을 받자 자기 자신에게서 손을 뗐다. 그는 더 이상 자신과 의논하지 않게 되었다.

Like Zacchaeus, the saint is a dead man in the world. Only they exist as records of Jesus. They are records of what the Lord has accomplished. The saints were incorporated into the documentary that the man who died of sin became the one who pray on all occasions according to the Word because of what the Lord has done. Therefore, the saints have nothing else to pray for but to enjoy and appreciate the situation in which he was entangled in what the Lord had achieved.삭개오처럼 성도는 이 세상에서 이미 죽은 자이다. 다만 그들은 예수님의 기록물로만 존재한다. 그들은 주님께서 성취하신 일의 기록물들이다. 죄로 인하여 죽은 자가 주님이 완료하신 일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무시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 다큐멘터리에 성도가 편입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이 성취하신 일에 자신들이 휘말려든 그 상황을 즐기고 감사하는 것 외에는 달리 기도할 것이 없다.

Mean·hile, the prayer of the saints is the channel through which they realize that their personal thoughts lets the gospel veiled. In 2 Corinthians 12, the apostle Paul prayed to God three times to remove the “thorn in the flesh.” God's answer to that prayer was this. “You yourself who have the thorn in the flesh are the answer.” The Lord said that the thorn in the flesh kept him from becoming conceited. Thus the prayers of the saints become God's work that makes them discover what they regard more valuable than the gospel and apply it to themselves so that they do not veil the gospel. 한편으로는 성도의 기도는 자신의 사적인 생각이 복음을 가린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통로가 된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빼주시도록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이것이다. “육체에 가시가 있는 네 자체가 답이다.” 주님은 바울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가 그를 자고하지 않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는 그들에게 복음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음을 발각시키고 그것이 복음을 가리지 못하도록 성도에게 적용시키시는 하나님의 일이 된다.

Therefore, the prayer of the saints is to confess that “Why am I saved from this sinful world? Lord, this is ridiculous for the one like me. This is only because of Your Crucifixion not of anything else.” The saints, like Paul, pray on all occasions that the gospel may not be tied even though the saints themselves are tied, and that they may act in line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for the mission of the gospel. The saints are honored and grateful for the fact that they are passing by the same fate as the Lord in the world where the Lord was been killed and left.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죄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어찌하여 제가 건짐을 받았나이까? 이것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터무니없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 덕분이지 다른 그 무엇 때문도 아닙니다.”를 고백하는 것이다. 성도는 바울처럼 자신은 사슬에 매이더라도 복음만은 매이지 않도록, 그리고 복음에 대한 사명을 위해서 자신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무시로 기도한다. 성도는 주께서 죽임을 당하고 떠나셨던 이 세상을 주님과 같은 운명으로 자신들이 지나가고 있음에 대해 도리어 영광으로 여기고 감사한다.

 이능우(IP:58.♡.142.78) 20-02-14 19:42 
이번에는 어떻게 요약해서 올려주실까 기다렸는데
역시나 아주 쉽게 이해하도록 요점을 잘 정리하셔서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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