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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8 16:06:26 조회 : 134         
Humility 겸손 이름 : 함숙경(IP:121.149.196.6)
title : Humility 겸손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2: 1-4
date : May3, 2020

1.If you have any encouragement from being united with Christ, if any comfort from his love, if any fellowship with the Spirit, if any tenderness and compassion, 2.then make my joy complete by being like-minded, having the same love, being one in spirit and purpose. 3.Do nothing out of selfish ambition or vain conceit, but in humility consider others better than yourselves. 4.Each of you should look not only to your own interests, but also to the interests of others.

SUMMARY

The apostle Paul exhorts the Saints to do all things only with a humble heart in today's text. He is not now placing the burden of the law on the brothers by adding one more code of conduct for the saints. It should not be overlooked that the humility he speaks of here is the humility that comes from the Lord connected by the Holy Spirit. Given that the Holy Spirit is the Spirit of the cross, humility is not simply a property that can be done artificially by human character or a firm will, but is a byproduct of death through the cross and the way the Holy Spirit is now working.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에게 모든 일을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라고 권면한다. 그는 지금 성도의 행위규범 하나를 추가하여 형제들에게 율법의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겸손은 성령으로 연결되어 주님에게서 나오는 겸손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성령이 십자가의 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겸손은 단순히 인간의 성품이나 굳은 의지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하여 나오는 죽음의 부산물이며 성령께서 지금 일하고 계시는 모양새이다.

Here, before we look at the humility of the Holy Spirit, we need to look more specifically at the nature of humility, which is artificially performed without being connected to the Holy Spirit. In fact, the “humility” performed without the Holy Spirit is the “humility” of sinners who look at the speck of sawdust in their brother's eye and pay no attention to the plank in their own eye (Matt. 7: 2-3)”. Unless it begins with an upper heart that admits to being an inexcusable sinner in the face of Jesus' crucifixion, it is bound to form a rivalry between you and me, secretly comparing, judging and jealous of each other. Hence, the Bible calls such a mode of humility “pride”. 여기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겸손을 살펴보기 전에 성령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겸손이란 것이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성령이 빠진 채 행해지는 ‘겸손’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우리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마 7:2-3)’ 죄인들의 겸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앞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는 상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은 반드시 ‘너 대 나’의 경쟁구도를 형성하여 은근히 서로 비교하거나 판단하고 질투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성경은 그 같은 겸손의 모양을 ‘교만’이라고 부른다.

Genesis 4 records the full story of humanity's first murders which occurred between brothers. To put the conclusion first, it was arrogance that had been embedded in his mind that drove his older brother Cain to kill his younger brother Abel. He raised a stone and struck his brother to death with the hand he was offering to God in the form of humility and gratitude. This clearly states that the heart of God worship and the heart of murder share its source, and that humans are arrogant in trying to deal with God with the spirit of murder. 창세기 4장에는 형제간에 벌어진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의 전모가 기록되어 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형 가인으로 하여금 동생 아벨을 죽이게 만든 동력은 그의 마음에 내재해있던 교만이었다. 그는 겸손과 감사의 모양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던 그 손으로 질투심에 가득차서 돌을 들어 동생을 쳐 죽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마음과 살인의 마음이 그 근원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은 살인의 정신을 품은 채, 하나님을 상대하려고 하는 거만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Cain's sincerity and humble attitude when he bring as an offering to the LORD were in fact pride disguised as humility. Cain's pride was hidden and crouched inside Cain until his younger brother's sacrifice was received and his own wonderful offering was rejected by God. However, when God stirred up Cain, it was revealed that the desire of sin (Gen. 4:7), which was crouching at Cain's door, and the reality of evil (the devil), were in control of Cain. 가인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보여준 정성과 겸손한 태도는 사실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었다. 동생의 제물은 받으시고 근사한 자신의 제물은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자극을 받기 전까지는 가인의 교만은 정체를 감춘 채 가인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인을 휘저어놓으시자 가인의 문 앞에 엎드리고 있던 죄의 소원(창4:7), 곧 악의 실체(악마)가 가인을 장악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Cain had his own. If you want to take your own, whatever you do it will result in 'for me'. Cain believed that God wanted a sacrifice, so he tried to make a deal with God for himself. As long as the object of love is established as Cain, his love for God, offerings, and worship are hypocrisy, falsehood, and illusion. Cain's disguised humility only reveals that his worship of God is false and that his thanksgiving prayer of "God, thank you" is empty. 가인에게는 ‘자기 것’이 따로 있었다. 자기 것을 챙기고자 들면, 그것은 무엇을 하더라도 ‘나를 위해서’로 귀결되게 되어 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제물을 원하신다고 판단했기에 제물을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과 거래에 나서려고 했던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가인 본인으로 확고해진 이상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과 예물과 예배는 위선이며 거짓이며 착각일 뿐이다. 가인의 위장된 겸손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예배행위의 거짓과 ‘하나님, 감사해요’라는 감사기도가 빈 말이라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But what we should pay attention to in Genesis chapter 4 is not the fact that Cain was evil and Abel was good. The basis for Abel's salvation is a matter of role, never a matter of individual goodness or works. He was given the role of being beaten to death by his brother Esau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the blood he shed was connected to the blood sprinkled by Jesus, the mediator of new covenant (Heb. 12:24). Mentioning the righteous blood of the prophets, Jesus also linked Abel's death to the death of Jesus himself on the cross, which would be in the future, by starting with Abel's blood (Matt. 23:29~35). 그런데 창세기 4장의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인은 악했고 아벨은 선했다’라는 점이 아니다. 아벨의 구원의 근거는 역할의 문제이지 그의 개별적인 선함이나 공로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에게는 형 에서에게 얻어맞아 죽는 역할이 창세전에 맡겨졌고 그가 흘린 피는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의 뿌린 피에 연결되어있었다(히12:24). 예수님 자신도 선지자들이 흘린 의로운 피에 대해 언급하실 때, 아벨의 피로부터 시작하심으로써(마23:29~35) 아벨의 죽음을 장차 당하실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연결시키셨다.

What the cross or the gospel simply says is that no one has the basis for salvation. We ourselves have no grounds for redemption. Therefore, if he is a saint, everyone has to say this. "My Lord, I have no reason to be saved, but why on earth do you save me?" This is an excess that cannot come from a man who inherited Adam's image (nature) and is extremely unfamiliar to him. The Bible calls this excess humility. 십자가 혹은 복음이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그 어떤 사람도 구원의 근거가 그 자신에게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근거가 조금도 없다. 따라서 그가 성도라면 누구나 이렇게 말할 수 밖 에 없다. “주여, 제게는 구원받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도대체 왜 저를 구원하십니까?” 이것은 아담의 형상(본성)을 물려받은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초과의 것이며 인간에게는 지극히 낯선 것이다. 성경은 이 초과의 것을 겸손이라고 한다.

Again, humility is the result of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e Holy Spirit pierces through the center of the saints, the sheep of the Lord, with the power of his humility(the message of the cross), the ability of a lamb who is being God but is also killed. The Holy Spirit applies the process of the Lord becoming the Lamb of God and the murdered lamb being the Lord to the saints in reverse order. The saints were first killed with the Lord, raised up with Christ, seated us with him in the heavenly realms in Christ Jesus(Eph. 2:6), and their lives have been hidden in God with Christ, who sat on the right side of God (Col. 3:1-3). 다시 말하지만 겸손은 성령님의 작업의 결과물이다. 성령님은 주님의 겸손의 능력, 곧 하나님이면서도 죽임 당하시는 어린양이 되신 그 능력(십자가)을 가지고 주님의 양들인 성도의 중심을 뚫어버리신다. 성령님은 주님이 어린 양이 되시고, 그 죽임당한 어린 양이 주님이 되시는 그 과정을 성도들에게 역순으로 적용시키신다. 성도는 먼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지고(엡2:26), 그들의 생명이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버렸다(골3:1~3).

Hence, the saints are now accidental beings who have been sent to the world by the Lord as witnesses of the cross participating in His humbling Himself as well as His being exalted with the image(the old self) of the first man Adam being put into them just as was the dead Jacob put into living Israel.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 주님의 높아지심과 더불어 주님의 낮아지심에 참여하도록 주님에 의해 십자가의 증인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건적인 존재들이다. 물론 이스라엘 안에 죽은 야곱이 넣어졌듯, 그들 안에 첫 사람 아담의 형상(옛사람)이 집어넣어진 채로 말이다.

The apostle Paul, who has been sent by the Lord, gives a testimony as follows give a testimony : “For it seems to me that God has put us apostles on display at the end of the procession, like men condemned to die in the arena. We have been made a spectacle to the whole universe, to angels as well as to men. 10.We are fools for Christ, but you are so wise in Christ! We are weak, but you are strong! You are honored, we are dishonored! 11.To this very hour we go hungry and thirsty, we are in rags, we are brutally treated, we are homeless. 12.We work hard with our own hands. When we are cursed, we bless; when we are persecuted, we endure it; 13.when we are slandered, we answer kindly. Up to this moment we have become the scum of the earth, the refuse of the world.” 주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4:9-13)

The Lord treats this apostle, whom the Lord has already given the citizenship of heaven and has even taken to the third heaven before, as trash and mop in the world. This is the situation in which the apostle who was involved in the Lord's humbling Himself is in. Participating in the Lord's death means being put in a state where there is no “self” to take care of, and being put in a state treated as a kind of thing and machine that personality is excluded. The willingness to accept this situation of oneself is a mind that cannot come out of sinful nature of human being, and therefore the saints themselves wonder at this unfamiliar attitude of their own. At this moment, all they see is Jesus' mercy and Jesus' having been abandoned and Jesus' one-sided sacrifice. 이미 천국의 시민권을 주셨고 삼층천까지도 데려간 적이 있었던 이 사도를 주님께서는 이처럼 세상에서 쓰레기와 걸레처럼 다루시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낮아지심에 참여된 사도가 처한 형편이다. 주님의 죽으심에 참여한다는 것은 스스로 챙길 ‘자기 것’이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며 인격성이 배제된 일종의 사물과 기계로 다루어지는 상태에 놓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이런 처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은 자연적인 인간의 죄악된 본성에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마음이며, 따라서 이 같은 자신의 낯선 태도에 성도들 본인도 의아해한다. 이런 순간이 되면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자비하심과 버림받으심과 일방적인 희생뿐이다.

For this purpose, the saints must face other people, or the world named 'church'. They must be found guilty of sowing for the sake of their own flesh in the field of deceiving and being deceived. Their false modesty and deceit, their quarrels and vanity and meanness should be known to themselves. Their sins of killing the Lord must be notified to them. Now, a crack occurs within them between sowing for their own flesh and sowing for eternal life. Through the process, the saints finally share fellowship in excess of their limits with each other by the Holy Spirit. Hence their sharing is like this : “I kee trying to survive, so kill me, please.” This is the very humility of the Spirit spoken by the apostle Paul. 이를 위하여 성도는 타인들, 혹은 ‘교회’라는 이름의 세상과 마주쳐야 한다. 그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현장 속에서 자기 신들이 바로 육체를 위하여 썩을 것을 심는 죄인들임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들의 거짓 겸손과 속임수와, 다툼과 허영과 비열함이 그들 자신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들의 주님을 죽인 죄는 반드시 그들에게 통보될 필요가 있다. 이제 그리하여 그들 안에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과 영생을 위하여 심는 것 사이의 균열이 발생된다. 그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성도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과에 속한 교제를 서로 나누게 된다. 따라서 이들의 교제는 이런 것이다. : “제발 저를 좀 죽여주세요. 저는 자꾸만 제가 살아남으려고 하네요.”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성령에게서 나온 겸손이다.

 이근호(IP:119.♡.87.190) 20-05-08 16:45 
"자신의 낯선 태도에 성도들 본인도 의아해한다" - 이 의아함이 계속 의아함을 낳고 이어가기에 자기에게 부딪혀 오는 모든 경우를 이기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는 여전히 본인은 의아해 한다. 이처럼 일상에서 쉬지 않고 자신을 뺀다. 이것이 겸손의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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