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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2 11:20:47 조회 : 54         
The Name of The Lord 주의 이름 이름 : 함숙경(IP:121.149.196.6)
title : The Name of The Lord 주의 이름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2: 9-11
date : May 17, 2020

9.Therefore God exalted him to the highest place and gave him the name that is above every name, 10.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11.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SUMMARY

Human beings have their own story-based reality perception, in which they become the main characters, constantly evaluating and judging themselves and others. The self-assessment of humans who live completely separated from the true reality by the devil's deception is a serious error, illusion and illusion. They do not know that there is a center that runs reality and that the owner of reality is separate from them. In today's text, Paul the Apostle leads us to pay attention to the name of Jesus, the Lord of all things and the protagonist. 인간은 자기 스토리 중심의 현실인식을 가지고 그 속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자기 자신과 타인을 쉼 없이 평가하고 심판한다. 악마의 수작에 의해서 참된 현실과 완벽하게 괴리된 채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기평가는 심각한 오류이며 환상이며 착각이다. 그들은 현실을 운영하는 중심부가 있으며 현실의 주인이 따로 계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만물의 주시며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주목하도록 이끈다.

Therefore, before the name of the Lord Jesus, the names of false protagonists shall be retired to the outskirts, and their error-ridden perception of reality and self-evaluation shall be eradicated. A life that is disconnected from Jesus, the main character and center, has no meaning of existence. Anything that exists, or anything that is done, is meaningful only when the purpose is to “for the Lord,” and only that case is to glorify God.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 거짓 주인공들의 이름은 변두리로 물러나야하며 그들의 오류투성이의 현실인식과 자기평가는 근절되어야한다. 주인공이자 중심부인 예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있는 있는 인생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혹은 행해지는 그 무엇도 그 목적이 ‘주님을 위하여’가 될 때만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될 때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When Jesus said “It is finished” on the cross, everything God planned for before the creation was completed. Therefore, there is no other person who can glorify God other than Jesus Christ who came as “the name of the Lord,” and no other name has been permitted. Jesus came to this world by taking the body of sin according to the "fixed fate" implied in the name of the Lord, and disappeared from the world by the death of the cross as a sacrificial offering that no human being could follow while fulfilling the function of his name which was known earlier.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에, 하나님이 창세전에 계획하신 모든 일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다른 분은 없으며 주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은 허락된 적이 없다. 예수님은 ‘주의 이름’에 내포된 ‘확정된 운명’대로 스스로 죄의 몸을 취하시면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어떤 인간도 따라올 수 없는 희생제물로서의 십자가 죽음으로써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 일찍이 알려지셨던 그분의 이름의 기능을 다 이루셨다.

Therefore, the function of the name of the Lord, that is, the function of death, is repeated among those recruited with the name of the Lord. Their lives are involved in the work of the Lord's name, and their own impossibility is found repeatedly. They are also known in the devil's world. “the evil spirit answered them, 'Jesus I know, and I know about Paul, but who are you?'(Act19:15)". The devil gets the scent of that there are some different kind of human beings among the human beings. The devil is fully aware of the very reality that humans do not know. 따라서 ‘주의 이름’으로 모집된 자들에게서는 주의 이름의 기능, 곧 죽음의 기능이 반복된다. 이들의 인생은 ‘주의 이름의 일’에 연루되어 자신의 불가능성이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이들은 악마의 세계에도 알려졌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행19:15)” 악귀는 인간들 가운데 뭔가 다른 유의 인간들이 발생했음을 눈치 채고 있다. 인간들이 모르는 현실을 악마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The devil does his best with his power to keep humans from noticing that Jesus came in the name of the Lord and completed the structure and the principles of the kingdom where God is glorified. Indeed, the devil works diligently. “And even if our gospel is veiled, it is veiled to those who are perishing. The god of this age has blinded the minds of unbelievers, so that they cannot see the light of the gospel of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2Cor.4:3-4).” Therefore, no human being can escape from this evil power and see the truth of reality themselves. 악마는 예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오셔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나라의 구조와 하나님나라의 원리를 완성시켰다는 사실을 인간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위해 그의 권세를 가지고 전력을 다한다. 참으로 악마는 부지런히 일한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따라서 그 어느 인간도 이 악마의 세력권을 자력으로 벗어나서 현실의 진상을 알 수가 없다.

As a result of being swallowed by the devil prowling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1Pet. 5:8), what Humans having problems recognizing reality do is futile for their own name. They diligently do things that seem good in their own eyes, such as worship, Bible study, evangelism, and volunteer work, but those are things for their own names, and they do not know the work of the Lord's Name and they are not favored by the Lord's Name. Their work only please the devil.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악마(벧전5:8)에 의해 삼켜진 결과 현실인식에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 하는 일이란 ‘자기 이름’을 위한 헛된 일들이다. 그들은 예배, 성경공부참석, 전도활동, 봉사활동 따위의 자기 눈에 선하게 보이는 일들을 부지런히 하지만 정적 그것들은 자기이름을 위한 일들이며 이런 일들을 통해서는 ‘주의 이름’의 일을 알 수도 없고 ‘주의 이름’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 그들의 일은 오직 악마만 기쁘게 할 뿐이다.

God completely excludes the possibility of 'human names' being put forward. In a situation where it has been confirmed that God is glorified only by the name of the Lord who died on the cross, there is no room for human names to enter. If there is any remaining work of the Lord that must be helped by human beings, it is not in line with the original character of the name, which implies a "fixed fate." Therefore, there is no longer any other hope that humans can secretly expect. If we hope for glory other than the glory of God's Father having been glorified through the fulfillment of God's will by Jesus coming in the name of the Lord and His crucifixion, the hope is clearly an idol.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이 내세울만한 가능성을 철저하게 배제시키신다. 십자가에 죽으셨던 주님의 이름에 의해서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 확정된 상황에서 인간의 이름이 새삼 끼어들 자리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만약에 인간이 거들어야만 완성되는 주님의 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확정된 운명’을 내포하고 있는 이름 그 본래 성격과 맞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은근히 기대할 수 있는 다른 소망은 남아있지 않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의 이름으로 오셔서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께서 받으신 영광 외에 다른 영광을 소망한다면 그 소망은 명백히 우상이다.

The Bible introduces several examples of those whose lives unfold in accordance with the fixed fate of the name called by the Lord. One of them, little Samuel hears his name called at night(1Sam. 3:6-7). It was God, not the priest Eli, who called his name. “Samuel, Samuel,” the name God called for the little Samuel was God's own name. This shows that God is not working with human Samuel, but with God's own name. Samuel's life, whose name was called by God at that night, unfolds according to the function of the "name of the Lord" given to him. Samuel was not supposed to regard the name as his own. The name Samuel did not mean the possibility that Samuel himself could show. Rather, he had to face his “impossibility” over and over again in his life. 주님에 의해 호명 받은 그 이름에 내포된 확정된 운명대로 그들의 인생이 전개되는 자들의 실례를 성경은 여럿 소개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어린 사무엘은 밤중에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삼상 3:6-7). 그의 이름을 부른 이는 엘리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향하여 부른 그 이름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무엘과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이름과 함께 일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그 이름이 호명된 사무엘의 인생은 그에게 붙여진 ‘주의 이름’의 기능대로 전개된다. 사무엘은 그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여겨서는 아니 되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사무엘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의 인생에서 늘 반복하여 자신의 ‘불가능’과 마주해야 했다.

The same goes for Adam. The name “Adam” is the name of “dust” as it is said, “for dust you are and to dust you will return(Gen. 3:19)” and is also the “God's name” coming as the last Adam(1 Cor. 15:45). Adam was the name of the "dust", the sinners that should precede before the "name of the Lord" came. In the end, it turned out to be the structure of the kingdom of the Son(Col. 1: 13-14) that the fate of the dust and the fixed fate of the Lord's name coexist within His people in the earth. 이점은 아담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이라는 이름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창3:19)”고 하신대로 ‘흙’의 이름이자 마지막 아담(고전15:45)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담은 ‘주의 이름’이 오기 전에 선행되어야할 ‘흙’의 이름이었다. 결국 흙의 운명과 주의 이름의 확정된 운명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 ‘아들의 나라(골1:13-14)’의 구조로 드러났다.

Another is Simon Peter, the disciple of Jesus. Jesus said to Simon,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Mat. 16:18)." Peter, the name of the rock is actually the name of the Lord (1 Pet. 2: 6–8). Simon is a human name that shows that human power can never escape from the power of the devil, while Peter, the name called by Jesus, is the name of the Lord, whose church of the Lord is built on it. The lives of these characters show that God planned so that 'the name of the Lord' would be revealed as it competed with 'the name of man,' or 'the name under the power of the devil.' 또 다른 이는 예수님의 제자 시몬 베드로이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6-18”고 말씀하셨다. 베드로, 곧 ‘반석’이라는 이름은 사실 주님의 이름(벧전2:6~8)이다. 시몬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악마의 권세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의 이름이며 반면에 예수님에 의해 호명된 이름인 베드로는 그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주님의 이름인 것이다. 이 인물들의 인생은 ‘주의 이름’이 ‘인간의 이름’, 곧 ‘악마의 권세 아래에 있는 이름’과 경쟁하면서 드러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계획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The LORD says to my Lord: "Sit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your enemies a footstool for your feet." The LORD will extend your mighty scepter from Zion; you will rule in the midst of your enemies(Ps.110:1-2)” This verse in the psalm tells us that the place of the Lord is a place of war. It is the Lord's name to wage war against all the idols of the world and all the names of the world. Another verse says, "You will rule them with an iron scepter ; you will dash them to pieces like pottery(Ps. 2:9)".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시110:1-2)” 시편의 이 구절은 주의 자리는 전쟁하는 자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곧 세상의 모든 우상들과 세상의 모든 이름들과 전쟁을 치루는 것이 주의 이름이 하시는 일이다. 또 다른 구절에서는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2:9)”라고 말씀한다.

Another verses also praises the name of the Lord of War :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 From the lips of children and infants you have ordained praise because of your enemies, to silence the foe and the avenger.” The Lord's name is the name of defeating the enemy, and the Lord's name is the name of the victor. The poet's following confession is true : "Some trust in chariots and some in horses, but we trust in the name of the LORD our God(Ps.20:7)". 또 다른 구절에서도 전쟁하시는 주의 이름에 대해 찬양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시8:1-2).” 주의 이름은 원수를 쳐부수는 이름이며 주의 이름은 승리자의 이름이다. 다음과 같은 시인의 고백은 참이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It is absurd and impossible from the start that humans living by the name of the dead, the name of the dust, try to know the Lord with their own wisdom. It is correct to say that humans are born in order to die, perish, and be unhappy because of their sin. The saying, "All the people they put to the sword until they completely destroyed them, not sparing anyone that breathed(Josh.11:14)" is not simply the fate of the Old Testament Canaanites, but also actually the fixed fate of all human beings living by their own name. 죽은 자의 이름, 티끌의 이름으로 사는 인간이 그들 자신의 지혜로 주님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았기에 죽고 망하고 불행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옳다.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수11:14)”라는 말씀은 단순히 구약의 가나안 족속만의 운명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처해진 확정된 운명이다.

This seemingly harsh disposal toward the Canaanites is a direct demonstration of God's wrath against sin and God's attitude toward sinners. Above all, it was confirmed by Jesus' cross. Despite the circumstances, the idea that humans have the right to be happy and have the right to be treated with dignity, or the idea of entering the kingdom of heaven with the name of a human being, the name of a sinner, is a illusion and delusion and only devil's trick. 가나안 족속에게 내려진 이 같은 가혹하게 보이는 처분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죄인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그것은 확정되었다. 형편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자신들에게는 행복할 권리, 존엄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인간의 이름, 곧 죄인의 이름을 가지고 천국까지도 입성해보겠다는 아이디어는 착각이며 망상이며 악마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In this sense, being alive to humans is a luxury in itself. So it is surprising, embarrassing, and puzzled that someone deserved to be cursed is listed in the book of life in the Lord's name. The Saints learned that the fixed status given to them was because Jesus' name had covered their names. Therefore, they are the ones who repeatedly meet another “impossibility” that delights in their names’ being denied, which isn't able to come out of the first Adam. 이런 점으로 볼 때, 인간에게는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도 사치이다. 따라서 저주받아 마땅한 누군가가 주의 이름의 생명책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너무도 놀랍고 당황스럽고 의아한 일이다. 성도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확정된 신분은 자신들의 이름을 예수님의 이름이 덮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자들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첫 아담 안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 곧 자기의 이름이 부정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또 다른 ‘불가능’을 반복적으로 만나는 자들이다
 이근호(IP:116.♡.244.205) 20-05-22 16:22 
"악귀는 인간들 가운데 뭔가 다른 유의 인간들이 발생했음을 눈치 채고 있다. 인간들이 모르는 현실을 악마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유의 인간- 성도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변화는 오직 이것 뿐이다. 성도 본인도 이 변화가 낯설고 거북스럽다. "주여, 왜 저를 다른 유의 인간으로 만드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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