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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12:30:48 조회 : 44         
The Strength to Leave from Oneself 작별능력 이름 : 함숙경(IP:121.149.196.6)
itle : The Strength to Leave from Oneself 작별능력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4:13
date : October 11, 2020

(4:13)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SUMMARY

What the apostle Paul calls "strength" in today's text is not the ability of man to help highlight himself. This is not the power needed to enhance one's own value, one's excellence, or self-esteem. Rather, it is the strength to destroy oneself and make humans leave from oneself. The apostle is saying that he is not bound to any circumstances of his own, because he lies within the strength of the Lord.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능력’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능력이 아니다. 이 능력은 자기 자신의 가치나 자신의 훌륭함, 자신의 자존심을 높이는데 소용되는 것이 힘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그 능력은 자기를 부수며 또한 자기에게서 떠나게 하는 능력이다. 사도는 주께서 주시는 이 능력 안에 자신이 놓여있기에 그는 자신의 그 어떤 사정에도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The goal of the “strength” which God gives is only to realize God's promises. Its ability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ability humans desire and expect. Its character is different, its source is different, and its effects are different.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 목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 능력은 인간이 욕망하고 기대하는 그 같은 능력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의 성격도 다르고 출처도 다르며 그것의 작용의 결과도 다르다.

Humans pay attention to power and want to possess power, and they are intimidated in front of power and are proud of power. Those who have power pretend they are God. Pilate showed this aspect of the world's powerful man against Jesus fully. 인간은 힘에 주목하고 힘을 소유하기를 원하며 힘 앞에서 주눅 들고 힘으로 인해 자만하기도 한다. 힘을 가진 자는 자신이 하나님인인 것처럼 행세한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대하여 이러한 세상 권력자의 면모를(근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Pilate said to Jesus, "Don't you know that I have the power to release you and the power to crucify you?(John19:10)" This is the answer Jesus gave him : "You would have no power over me if it were not given to you from above(John19:11).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If it were, my servants would fight to prevent my arrest by the Jews. But now my kingdom is from another place(John 18:36)." 그는 예수님에게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John19:10)”고 말했다. 이 말에 대해 예수님은 대답은 이것이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요19:11),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John 18:36)”

The “power” Jesus spoke to Pilate is a “other power” that does not belong to the human world. Those who have received this other authority are the children of God. :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John 1:12-13)”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말씀하신 ‘권세’는 인간 세계에 속하지 않은 ‘다른 권세’이다. 이 다른 권세를 받은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Therefore those who were given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are attacked by the power of the world just as their Lord has experienced in this land. But this power breaks through the power of the world.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그들의 주님이 이 땅에서 경험하셨던 것과 동일하게 세상 권세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이 권세는 세상 권세를 뚫어버린다.

Man's power is the power provided by the devil and controlled by the devil. With this power, man has protected himself, show off himself, suppressed others, and ruled others. But this power does not free the man who owns it from anxiety, impatience, and ever-present fear. Rather, it makes humans constantly desire what they don't have, distort the truth, and stand against the gospel. 인간의 권세는 악마에 의해 제공된 것이며 악마에 의해 조종 받는 권세이다. 인간은 이 권세로써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과시하며 타인을 억압하고 또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 권세는 그것을 소유한 인간을 근심과 조바심과 끊임없이 찾아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욕망하게 하고 진리를 왜곡시키며 복음을 대적하게 만든다.

The reason people are under control by the devil is because they are still obsessed with themselves and what they have. It is because one's will takes precedence over God's will. This is why no matter how competent humans are, they have no choice but to be the devil's plaything. 사람들이 이처럼 악마에게 휘둘리는 이유는, 여전히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역시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은 아무리 유능해도 악마의 노리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But the strength which God gives breaks through the power that has held control over 'oneself'. When Jesus said to Zacchaeus that "I must stay at your house today(Luke19:5).", it happened to Zacchaeus that a hole was made in the center of the strength he had built his whole life to protect himself.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은 그동안 자신을 장악하고 있었던 권세를 뚫어버린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고 하셨을 때 그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일평생 구축했던 그 힘의 중심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Like this, Jesus puts the cross into the very center of the human heart. This spot is the place where "self", which gives humans the meaning and reward of life in the world, is settled. The power of the cross destroys the “self” and makes you say goodbye to “self”. This power is also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promised from the Old Testament.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인간의 마음 바로 그 중심부에다 십자가를 꽂아 넣으신다. 그곳은 인간에게 세상사는 의미와 보람을 제공해주는 ‘나’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십자가의 능력은 그 ‘나’를 무너뜨리고 그 ‘나’와 작별하게 한다. 이 능력은 구약에서부터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이기도 하다.

“I will give you a new heart and put a new spirit in you; I will remove from you your heart of stone and give you a heart of flesh. And I will put my Spirit in you and move you to follow my decrees and be careful to keep my laws(Ezek.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When Jesus went in the house of Jairus, the synagogue ruler, Jesus saw a commotion, with people crying and wailing loudly for the dead child. Only after he put them all out, Jesus took the child by her hand and said to her, "Talitha koum! - "Little girl, I say to you, get up!" (Mark 5:41)”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죽은 아이를 위해 울며 통곡하는 자들의 소동하는 것을 보시고는 그들을 모두 내쫓으신 후에야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달리다굼’-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다.

Wailing for the dead is a demonstration of their understanding of death and at the same time a familiar way of life for humans to cope with it. There is human stubbornness in it. Crying is also the product of the 'stone heart' in itself. Because crying contains resentment and resistance to loss, self-pity, regret, guilt and even self-purification. In a word it is a sin. 죽은 자를 위하여 통곡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죽음에 대처하는 인간들 나름의 익숙한 삶의 방식이다. 거기에는 인간들의 고집이 들어있다. 또한 우는 것은 그 자체로서 ‘굳은 마음’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운다는 것에는 상실에 대한 원망과 반발 그리고 자기 연민과 후회와 죄의식 그리고 심지어 자기 정화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것은 죄다.

The purpose of the Lord's coming to this land is to take his people out of the realm they have been accustomed to and to take them into the realm provided by God's Father. There, the saints abandon the way of thinking and life they were used to, and instead they are drawn daily to a unique and unfamiliar way of life.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그들이 익히 아는 영역에서 빼내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공하신 영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이다. 거기서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했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버리게 되고 그 대신 그들은 특이하고 낯선 삶의 방식으로 날마다 이끌림을 받는다.

Jesus presented this strange way of life of the saints as a parable of an unjust judge and a widow who has keep bothering him in order to get justice(Luke 18: 1-8), which is to pray without giving up(Luke 18: 1-8). Of course, saints are not those who try to get something for themselves that they lack. They don't even have to. All the prayers of the saints have already come true. Because the Holy Spirit came. However, the saints were given a calling to continue to annoy the unjust world like the widow's act in this parable. Of course, the saints come to know that the unjust world is within them first.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 그를 번거롭게 한 어떤 과부에 관한 비유로써 성도의 이런 낯선 삶의 방식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낙망치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눅 18: 1-8). 물론 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자기에게 결핍된 뭔가를 얻어내고자 떼쓰는 자들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성도의 모든 기도는 이미 응답되었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셨기 때문이다. 다만 성도에게는 이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처럼 불의한 세상을 지속적으로 성가시게 해야 할 소명이 부여되었다. 물론 성도들은 그 불의한 세상이 먼저는 자신들의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된다.

When the saints receive the power of the Lord, the saints come to be involved in pursuing and revealing their vanity, falsehood, and wickedness to the end by breaking through with Jesus the fundamental and demonic nature of the world that attacked Jesus. Thus, it often happens to the saints that they reveal the reality of the devil who has deftly deceived them with law, order, ethics, and good and evil systems. This is the way the Lord treats his people, and this is something that only saints can do in the world. 성도가 주님의 능력을 받게 되면 성도는 이때부터 예수님을 공격한 이 세상의 근원적이고 악마적인 속성을 예수님과 함께 뚫고 나가면서 그것의 허망함과 거짓됨 악함에 대해 끝까지 추궁하고 드러내는 일들에 연루된다. 그리하여 성도에게는 법과 질서와 윤리와 선악체계로 그들을 교묘하게 속여 온 악마의 정체를 까발리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이것이 주님이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방식이고 또한 이 일은 세상에서 성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하다.

To the saints, it is a matter of prayer to bother the world, accuse the world's evil tendencies, and rebuke it. Jesus makes the saints continue this work without giving up. This power of prayer is the strength that the apostle Paul received from the Lord,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the power of the gospel. 세상을 번거롭게 하고 세상의 악질성향을 고발하며 그것을 책망하는 이것이 성도에게는 기도하는 일에 해당된다. 예수님은 성도로 하여금 이 일을 낙망치 않고 계속하게 하신다. 성도의 이 같은 기도의 능력이 바로 사도 바울이 주께 받은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이며 복음의 능력이다.

Through this strength, for the saints it repeatedly happens that they break away from the devil's deceit and their natural bloodline and join the Lord's line, and each time they burst into joy and gratitude. This is the Lord's strength to make them do everything, regardless of their circumstances, and to make them leave from themselves. 이 능력을 통해 성도에게는 그들의 일평생동안 악마의 속임수와 혈육의 노선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노선에 합류하는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그때마다 그들에게서는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온다. 이것이 형편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기 자신에게서 떠나게 하는 주의 능력인 것이다.

 이근호(IP:119.♡.87.190) 20-10-17 15:45 
“죽은 자를 위하여 통곡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죽음에 대처하는 인간들 나름의 익숙한 삶의 방식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나를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악마의 팔뚝이 보인다. 악마는 말한다. “너는 사소하지 않고 예수는 사소하다. 너는 나에게 그렇게 배워왔다. 나에게 배운 대로 따르라” 누가 이 악마의 사주를 뿌리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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