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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13:07:35 조회 : 124         
I Am Nothing 나는 없다 이름 : 함숙경(IP:121.149.196.6)
title : I Am Nothing 나는 없다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4:18-20
date : October 25, 2020
18.I have received full payment and even more; I am amply supplied, now that I have received from Epaphroditus the gifts you sent. They are a fragrant offering, an acceptable sacrifice, pleasing to God. 19.And my God will meet all your needs according to his glorious riches in Christ Jesus. 20.To our God and Father b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SUMMARY

In today's text, Paul the Apostle evaluates the gifts sent to him by the Philippians, who had heard the gospel from him, saying, "a fragrant offering, an acceptable sacrifice, pleasing to God". It is a great misunderstanding of the Word to hastily attempt or resolve to 'be a fragrant offering' while reading this passage.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서 복음을 들었던 빌립보인들이 감옥에 있는 그에게 보낸 선물에 대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도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야지’라고 섣불리 시도하거나 각오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대단한 오해이다.

The saying that the Philippians, who were by nature objects of God's wrath, became the fragrant sacrifices that God was pleased with, means that while the altar's offerings was burned, they jumped into the fire and burned down with it as well. God is pleased with his people's being destroyed by fire (Romans 12:1).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던 빌립보인들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다는 말은 제단위의 제물이 불태워질 때 그들 또한 그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 제물과 함께 불태워져 소실되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소실을 기뻐하시는 것이다(롬12:1).

The sacrifices that only watches the offering burning while leaving themselves alive is the sacrifices of pagans offered to demons for themselves. God is pleased that his people are united to Jesus, who is an unblemished sacrifice provided by God, and die with Jesus and resurrect with Jesus. This is the meaning of the apostle Paul's “I die every day--I mean that, brothers--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1 Cor. 15:31). 자신을 살려둔 채로 제물이 불태워지는 것을 구경만하는 제사는 이방인의 자기를 위한 제사이며 귀신에게 하는 제사일 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서 제공한 무흠한 희생제물이신 예수님에게 자기 백성들이 연합되어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되살아나는 일을 기뻐하신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라고 말한 의미인 것이다.

The Holy Spirit tells the saints repeatedly why they should be destroyed by fire in their daily lives. All human cares and problems stem from the fictional perception that they exist here. As long as humans regard themselves as beings, they cannot escape from numerous anxieties and problems, and cannot even dream of becoming a fragrant offering that God will be pleased to receive. 성령님은 성도로 하여금 그들이 소실되어야 할 마땅한 이유를 반복해서 매일의 삶 속에서 알려주신다. 인간의 모든 근심과 문제는 자신이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허구적인 인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자신을 존재로 여기는 한 수많은 근심거리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 더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However, humans can't, and have never done so, fundamentally think that they don't exist here. This is because human thinking is manipulated by the devil, the evil spirit that is currently working among those who hold the power of the kingdom of the air and the sons of disobedience. Because of this, the world is trapped in a self-centered thinking system and cannot recognize Jesus Christ, the only One who exists and the original master of the world.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고 해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공중 권세를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인 악마에 의해서 인간의 사고가 조작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세상은 자기중심의 사고체계에 갇혀 유일하게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세상의 원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Martha and Mary, Lazarus' younger sisters, clearly showed the reality of the objects of God's wrath by nature in front of Jesus. They revealed their bad(foul) mood, saying to Jesus, who visited them four days later after the death of their elder brother, Lazarus,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John 11:21, 32)." Such attitude of them stem from their overlooking of the Lord's position that they should pay attention to in order to maintain their own existing position. It's like the coordinates that should move around Jesus' position rather hold their location and demand that Jesus adjust to them.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의 이 같은 실상을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르다,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서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들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야 비로소 그들을 방문한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11:21, 32)”고 말하며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 그들의 이 같은 태도는 기존의 자신들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여 정작 주목해야할 주님의 위치를 간과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의 위치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할 좌표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는 고정시켜놓고 예수님이 거기에 맞춰주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The apostle Paul's message, “My God will meet all your needs according to his glorious riches in Christ Jesus" is a great temptation to those who regard themselves as beings and want to maintain their position. Those who have already confessed that they are nothing and only the Lord is being exist are also tempted to try this when they hear this message too. Then, from them, the position of Jesus will soon be pushed out of the center, their presence will be alive again, and their position will become the center of the world. 자신을 존재로 여기고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자들에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는 사도바울의 메시지는 커다란 유혹거리가 된다. 자신은 없음이고 주님만 있음이라고 고백했던 자들 역시 이 메시지를 들을 때에 그들의 육은 이것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유혹에 걸려든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위치는 어느새 중심에서 밀려나고 다시 자신의 존재는 살아나고 자신의 위치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The apostle Paul is pushing the saints to the extreme with the affirmation that, as Jesus did to Maria and Martha, "My God will fill all your needs according to his riches in glory in Christ Jesus." When humans are driven to their limits, they are bound to reveal everything inside them. In this way, the Holy Spirit makes the saints realize repeatedly that adhering to their own locations is manipulated by the devil and is nothing more than an illusion.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마리아 마르다 자매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단언으로 성도들을 극단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인간은 한계로 내몰리게 되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게 되어있다. 성령님은 이런 식으로 성도로 하여금 자아의 위치고수가 악마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며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수시로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The forty years of wilderness life passed by the Israelites could be said to be the site provided to reveal the purpose of the Manna. It was given unbroken until the first crop was harvested in the promised land(Josh. 5:12), even though all the exodus died in the wilderness except for Joshua and Caleb. On the part of God, a poor environment , wilderness and the Israelites complaining to God were needed to reveal that only Manna, the Word of life(Deut. 8:3; John 6:48-49), is being and man is nothing". This is the way of the grace and mercy of the Lord, who works alone 이스라엘자손들이 지나온 40년간의 광야생활은 만나의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 제공된 현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출애굽한 사람들이 광야에서 다 죽었어도 만나는 약속의 땅에서 첫 수확물을 거둘 때 까지 끊어짐 없이 주어졌다(수 5:12). 하나님 편에서는 생명의 말씀인 만나(신 8:3 ; 요 6:48-49)만이 ‘있음’이며 인간은 ‘없음’이라는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광야라는 열악한 환경이 필요했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이스라엘 자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주님 홀로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긍휼의 방식이다.

Likewise, in order to reveal the meaning of the fragrant offering in today's text, the persecutors who hinder the fragrant offering are needed. The flesh of the saints, manipulated and distorted by the devil, is used for this very work. While God reveals their being sinfulness and the enemy of the cross, he repeats the work of putting out the body of Jesus Christ from them through the fire of judgment, God's Word as if he took a lump of charcoal from the fire. Hence, the body of the saint is a stinky, nasty ingredient that is put in with the blood of Jesus that the Lord needs to produce a fragrant offering.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의 향기로운 제물의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향기로운 제물됨을 훼방하는 훼방자와 핍박자들이 필요하다. 악마에 의해서 조작되고 왜곡된 성도의 육이 바로 이 일을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육의 죄악됨과 십자가의 원수됨을 드러내시면서 불 가운데서 끄집 낸 숯덩이를 취하시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심판의 불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끄집어내시는 일을 반복하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몸은 주께서 향기로운 제물을 생산하는 필요한 예수님의 피와 함께 투입되는 악취 나는 못된 재료인 것이다.

Salvation is the product of God's grace and mercy. It is the manifestation of God's will that " I will have mercy on whom I will have mercy, and I will have compassion on whom I will have compassion( Ex. 33:19)." Those who consider themselves to be existence cannot enter Heaven. That is the kingdom that can only be entered by those who show "I do not exist, and it is only Jesus Christ who exists." In other words, they are those who know that they only appear and disappear repeatedly as flickering coordinates placed around the cross to indicate the presence of Jesus, the position of Jesus, or the position of the cross.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산물이다. 그것은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33:19).”는 하나님의 의지의 발현이다. 천국은 자기를 있음으로 여기는 자들은 들어갈 수 없다. 그곳은 오직 ‘나는 없고 존재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를 보여주는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은 예수님의 존재, 예수님의 위치 혹은 십자가의 위치를 가리키기 위하여 십자가 주위에 포진된 점멸하는 좌표들로서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할 뿐임을 아는 자들이다.

They know that they have joined the body of Christ as an excess of God's grace, even though they are mere objects of God's wrath to be destroyed. God frequently reminds the saints of this through the case of Rahab, a prostitute who was saved in the midst of destruction when Jericho was destroyed. 그들은 자신들은 진멸당해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 불과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초과분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합류되었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은 여리고가 진멸당할 때 멸망가운데서 구원받은 기생 라합의 경우를 통해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수시로 상기시키신다.

Psalm 20:5, "We will shout for joy when you(Jesus Christ) are victorious and will lift up our banners in the name of our God. May the LORD grant all your requests. s." 시편 20편 5절은 “우리가 너(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If we read this verse again in the New Testament way, we can say, “Let me praise you, Lord who have overcome me. Let me exalt the victory of the Lord who made me realize that I am nothing. Let me praise you, Lord every day that I am defeated by you and that you have triumphed in me.” 이 구절을 신약의 방식으로 다시 읽어보면 “주님이 나를 이긴 것을 찬미케 하옵소서. 내가 없음임을 깨닫게 해주신 주님의 승리를 높이나이다. 나는 주님께 패하고 주님이 내 안에서 승리하신 것을 나로 하여금 날마다 찬미하게 하옵소서.” 이다.

The saints are the “the pieces left over” in twelve baskets(John 6:9-13) that the Lord's grace and mercy have generated." Therefore, they praise and thank daily for their Lord's victory over them. This condition is a fragrant offering, an acceptable sacrifice, pleasing to God. 성도는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발생시킨 12바구니에 가득 찬 ‘우수리’(요 6:9-13)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주님이 자신들을 이긴 것에 대해서 찬미하고 날마다 감사한다. 이러한 상태가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이근호(IP:119.♡.87.190) 20-10-30 19:11 
“성도는 십자가의 위치를 가리키기 위하여 십자가 주위에 포진된 점멸하는 좌표들로서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할 뿐이다.”
하나님의 새로움이란 인간의 협조가 아니라 인간의 방해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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