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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18:22:15 조회 : 71         
Being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 있음 이름 : 함숙경(IP:220.93.207.32)
title : Being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 있음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Colossians 1:1-2
date : November 8, 2020

1.Paul, an apostle of Christ Jesus by the will of God, and Timothy our brother, 2.
To the holy and faithful brothers in Christ at Colosse: 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our Father.

SUMMARY

The apostle Paul, as always, here in Colossians wants to clarify the matter of the affiliation of himself and his recipients. In other words, he and brother Timothy and the faithful brothers in Colosse are together "in Christ" and belong to one Lord Jesus Christ. One thing to point out here is that being in Christ is a matter of transcendence beyond the reach of human power, and that it had determined by the one-sided choice of Jesus and is known by the Holy Spirit. 사도 바울은 언제나 그렇듯 여기 골로새서에서도 그 자신과 그의 편지를 받는 자들의 소속의 문제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즉 그것은 그와 형제 디모데 그리고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형제들은 ‘그리스도 안’에 함께 있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초월에 속한 문제라는 것과 예수님의 일방적 선택에 의해 이미 확정되었으며 성령에 의하여 알려진다는 것이다.

Humans constantly define their surroundings, including their bodies, as "inside and outside," according to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instilled by the devil, and repeat choices and decisions, constantly calculating which side is more favorable to them. Humans seek knowledge about being saved(having eternal life) under the illusion that even the matter of having eternal life (salvation) depends on their choices and decisions. But what human beings must know is that “knowledge” can never be a condition for salvation, and that the destiny of all things, including humans, is only subject to God's decision made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인간은 악마가 심어준 선악 적인 지식에 따라 자기 몸을 포함하여 자신의 주변을 끊임없이 ‘안과 밖’으로 규정하고 어느 편이 자신에게 더 유리할지를 끊임없이 계산하면서 선택과 결정 행위를 반복한다. 인간은 영생(구원) 문제마저도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달렸다는 착각 속에서 구원(영생)에 관한 지식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지식’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운명은 하나님의 창세 전의 결정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Therefore, God's work to those who are in Christ is to clarify that Heaven is not inherently relevant to them. Nevertheless, God makes them confirm how they became the people of heaven, their sins, impossibility, helplessness, and barrenness, allowing their selves to be dismantled by God's scissoring, as if a squid's chubby belly was scissored.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천국은 본래 그들에게 해당 사항이 아님을 확인시키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들이 천국 백성이 되었는지를 하나님은 그들의 죄와 불가능함과 무력함과 불모의 형편을 그들에게 확인시키시면서 마치 오징어의 통통한 배가 가위질당하듯 그들의 자아가 하나님의 가위질에 의해 해체당하게 하신다.

In fact,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Old Testament, God made the nature and way of thinking of “being in Christ” and “being outside of Christ” overlap within Israel. Here's a simple explanation of these two kinds of conflicting natures and ways of thinking: the former is to deny themselves because they know that their destiny is subordinated to the decision of Jehovah and the promise(the Covenant) he made, while the latter is to try to cultivate their own future by making choices and decisions using the autonomy that the devil planted them. 사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역사 내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 각각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이스라엘 자손 내부에 중첩되게 하셨다. 여기 이 두 종류의 상반되는 본질과 사고방식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전자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결정과 그분이 제시하신 약속(언약)에 자신들의 운명이 종속되었음을 알기에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고 반면에 후자는 그들이 악마가 선사한 자율성을 발휘하여 선택하고 결정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자 한다.

Originally, what Israel had to show to the Gentile nations was "subordination to the promise (the covenant)." This was the duty of “witnesses of Jehovah(Isaiah 43:10)”. On the night of the first Passover, their fate was subject to the blood of the Lamb. The blood of this Lamb was the blood of the covenant of the day, and there was the “Jehovah's name”. The destiny of Israel was subject to the staff held in Moses' hand before the Red Sea, at the time of the battle with Amalek, and before the rock for watering. 본래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 열국에 보여주어야 했던 것은 ‘약속(언약)에 종속됨’이었다. 이것이 택함을 입은 그들 “여호와의 증인들(사43:10)”의 책무였다. 첫 유월절이 있던 그 밤에는 그들의 운명은 어린양의 피에 종속되었다. 이 어린양의 피는 당시의 언약의 피였으며 거기에 ‘여호와의 이름’이 계셨다. 홍해 앞에서와 아말렉과의 전투 때에, 그리고 물을 내기 위한 반석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운명은 모세 손에 들린 지팡이에 종속되어 있었다.

In addition, their fate in the wilderness for 40 years was subordinated to the manna and Sabbath regulations, to the ark of the covenant when crossing Jordan, and to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where David built an altar when the plague broke out due to David's census(2 Sam. 24:22). At the time of the Battle of Jericho, the fate of Israel had to be subordinated to the way of thinking of the “prostitute Rahab,” bearing the true essence of Israel. Even the fate of their ancestor Abraham, was subordinated to his son Isaac, who was born through promise against all hope(Rom. 4:18). 뿐만 아니라 40년간의 광야생활에서의 그들의 운명은 만나와 안식일 규정에, 요단을 건널 때에는 ‘언약궤’에 종속되었고 다윗의 인구조사로 인해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다윗이 제단을 쌓았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이스라엘의 운명은 종속되었다(삼하 24:22). 여리고 전투 때에는 참 이스라엘의 본질을 품고 있는 ‘기생 라합’의 사고방식에 이스라엘의 운명은 종속되어야했다. 심지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롬 4:18) 약속으로 말미암아 얻은 아들 이삭에게 그의 운명은 종속되었다.

If you present God's promise (the covenant) that determined the fate of the Old Testament Israel in one word, it is 'circumcision'. In other words, "This is my covenant with you and your descendants after you, the covenant you are to keep: Every male among you shall be circumcised. You are to undergo circumcision, and it will be the sign of the covenant between me and you(Gen. 17:10-11) 구약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했던 하나님의 약속(언약)을 한 단어로 제시하면 그것은 ‘할례’이다. 즉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17:10-11).”

“At a lodging place on the way, the LORD met Moses and was about to kill him. But Zipporah took a flint knife, cut off her son's foreskin and touched {Moses'} feet with it. "Surely you are a bridegroom of blood to me," she said(Ex. 4:24-25).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출 4:24-25)”

If any of Israel does not have the blood of this circumcision covenant, he will be abiding outside the Lord God, betray the covenant, and be cut off from the people (Gen. 17:14). In other words, Israel absolutely had to subordinate themselves to the "blood of the covenant." Therefore, all thoughts and actions intended to be independent had to be eliminated. 만약 이스라엘 자손 중 누군가에게 이 할례언약의 피가 없다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 밖에 거하는 자가 되고 언약을 배반하는 자가 되며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이다(창17:14). 즉 이스라엘은 ‘언약의 피’에 절대적으로 그들 자신을 종속시켜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독자적이고자 하는 모든 사고와 행위는 마땅히 제거되어야 했다.

In the New Testament, Jesus, who came as the mediator of the new covenant (Heb. 9:15) according to the promised law of the Old Testament, declared,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John 6:53)". Jesus made it clear that his blood to be shed on the cross is the substance of the 'blood of the covenant' and said, "All that is written concerning me in the law of Moses and in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and in the psalms must be fulfilled(Luke 24:44)", and it was done on the cross as he said(John 19:30).신약에 이르러 구약의 율법을 따라 약속대로 새 언약의 중보자(히9;15)로 오신 예수님은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실 자신의 피가 곧 ‘언약의 피’의 실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24:44)”고 하신대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요19:30).

To be 'in Christ' means to be in the space of 'surplus' caused by Jesus' death. This is a heavenly space that has penetrated the world, and it is a space prepared by God for those who love him that “No eye has seen, no ear has heard, no mind has conceived(1 Co. 2:9)”. Here, the lives of those who have eternal life are kept taking from the Lord every day, and their iniquity is revealed in detail, but the cry of “"Woe to me!", "I am ruined!(Isaiah 6:9)”, rather, bursts with joy and thanksgiving.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초래한 ‘잉여’의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세상에 침투한 천국의 공간이며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공간으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고전2:9)” 것이다. 여기서는 영생 얻은 자들의 목숨이 날마다 주께 빼앗기고 그들의 죄악은 낱낱이 들춰지지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사6:9)”는 그 외침은 오히려 기쁨과 감사 가운데 터져 나온다.

Therefore, they regard independent self-planning, self-management, andtheir own righteousness as something deserving to be thrown into pigs. They only have the scene under the direction of the Lord and the teaching of the Holy Spirit who interprets it retrospectively. Because they are already dead and it is Jesus Christ, their Lord, who lives in them. 그러므로 이들은 독자적인 자기 계획과 자기 관리와 자기 의 따위는 돼지에게나 던져 줄만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오직 주님의 지시를 받는 현장과 그것을 소급하여 해석해주시는 성령님의 가르치심만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죽었고 그들 안에서 사시는 분은 그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The saints are those whose source of bleeding(chromodacryorrhea) called “sin,” has been replaced by the blood of Jesus Christ, like a woman freed from her suffering(Mark 5:25-29). Therefore, their bodies of sin(Rom. 6:6) which daily reveal their own unclean 'source of blood' to show the replacement made 'at once and forever are offered to God as instruments of righteousness(Rom. 6:13), which strange things, that 'no mind has conceived', happen repeatedly.성도는 혈루증이 나음을 입은 여인(막 5:25-29)처럼 ‘죄’라고 하는 ‘혈루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교체되어 버린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몸은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진 그 교체를 보여주기 위해 그들 자신의 부정한 ‘혈루 근원’을 날마다 드러내는 ‘죄의 몸(롬6:6)’으로서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낯선 일들이 반복해서 발현되는 의의 병기(롬6:13)로 하나님께 드려진다.

The love of the “covenant blood” that came to them is the grounds for making them “always bear, always trust, always hope, always persevere(1 Cor. 13:7)” There is “grace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for these people. 그들에게 찾아온 ‘언약의 피’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고전 13:7) 근거가 된다. 이런 자들에게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다.
 이근호(IP:119.♡.87.190) 20-11-13 20:44 
인간이 지상에 쏟아지는 땅을 더럽게 하는 피, 곧 죽음의 피다. 따라서 그 피로서는 생명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반면에 예수님의 내놓으신 피(생명)은 예수님께서 다시 자기 안으로 거두어지면서 ‘예수 안’은 유일하게 생명처가 된다. 베드로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지만, 예수님의 의해서 거절당한다.(요 13:36-38) 처소가 새삼 마련되어야 한다. 그 마련된 처소가 ‘예수 안’이다. 이로서 세상의 운명은 사실상 끝났다. ‘생명 바깥’, 곧 저주의 공간이다. 이래도 세상은 행복타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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