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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1 22:00:47 조회 : 105         
[화풀이 인생]-송민선 성도님의 글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사회초년생 시절 함께 자취했던 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언니, 나는 왜 이렇게 구제 불능일까. 나름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는데 자꾸 친구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벌어져...”라고 하며 그 친구가 절교 선언을 했다고 했다. 다 큰 것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떠나기 전 그 친구가 마지막 남긴 말이 가관이었다. “너 때문에 교회 가서 회개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한 정신병자가 “나는 예수다”라고 소리치면 그 옆에서 다른 병자가 “아들아 잠잠해라”라고 말한다는 농담이 웃기지 가 않다. 농담이 아니었다. 사람은 타고난 신이고 신 중에서도 상대보다 더 센 신이기를 원하는 정신병자이다. 이런 인간 내부를 관통해서 들어가 마음이라는 막까지 뚫고 바닥까지 내려가서 보게 하시는 실체는 ‘나는 결코 지지않는다. 나는 흠이 없다’라고 가르쳐주고 응원해주는 뱀이다.

내가 나에게만 묻고 나에게만 답하며 원래부터 내 것인 선택권을 발휘해서 논리적 사고를 총동원해 ‘예’와 ‘아니오’라는 알고리즘으로 구축한 나만의 왕국에서 몸을 땅에 밀착시키고 최선을 다해 사는 표면적 삶이 전부이기에 내 세상에는 뱀의 왕국에는 하나님의 뜻은 없다.

내 세상을 흔드는 하나님의 재앙 속에 응축된 재판 사건이 틈을 비집고 터져 나와 전혀 차이가 없던 현실이 환상으로 뜯겨나가고 중첩된 새로운 이스라엘이 환상에서 현실로 출현하고 다시 사라지는 순환의 마침 점이 하나님의 진노가 집약되어 하나님의 아들에게 불 심판을 쏟으신 십자가이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의 몸에서 심판과 용서가 함께 뿜어져 나오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적인 자질 재능 소유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고 율법의 일점일획도 누락되지 않는 날카로운 심판의 기준 앞에서 차별이 없고 누구도 토 달수 없다.

이미 앞뒤 상황을 간파하고 성경을 책 읽듯 읽으며 들여다보는 다윗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참으로 의로운 왕이고 사울은 악신 들려 미쳐서 날뛰는 폭군이다. 사무엘 말씀이 우리 몸을 통해 동일한 사건으로 재현되기 전까지는 그저 옛날이야기일 뿐이지 말씀을 사건으로 해석할 수 없다.

사울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소경으로 다윗을 마주해야 했고 아무리 봐도 인간이지 초월적 존재가 아닌 다윗을 인간적으로 보듬어주고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신은 왕이고 다윗은 신하이고 자신은 관대하고 언제나 다윗을 용서해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다윗의 납득 안 가는 행동과 상황들이 신적 위치에 있는 사울을 도발하는 것에 나무토막도 아니고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주제 파악하도록 다윗을 위협해 줘야 신이 신답다.

문제는 사울이 아무리 대범하게 처리를 하려고 해도 늘상 정해진 위치는 다윗은 피해자이고 자신은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용서를 베풀 수 있는 관대한 자리는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데 이놈의 다윗은 일어나는 사건이 족족 사울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나를 항상 죄인 만드는 네가 나는 미치도록 싫다”

아브라함에게 미리 주어진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믿음 노선에 있음을 믿는 것이 하나님에게 의로 여겨지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될 야곱은 이미 용서받고 사랑받는 노선이라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짜고 치는 고스톱의 동일한 맥락으로 다윗과 사울 또한 선택의 여지가 인간 쪽에서는 배제되어 있기에 인간은 완전히 무능함을 발각당하며 넣어 주시는 대로 말씀이 응하게 하는 방향으로 몸이 쓰이고 움직인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뱀의 둥지에 더부살이로 얹혀서 한 사람 예외 없이 뱀과 함께 저주 아래 있음을 견고히 하시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받은 율법을 저주가 저주답도록 잘 가르쳐주고 이끌어준 마귀 덕분에 친절히 지옥으로 안내받는 자와 저주의 수렁에서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하나님의 약속만을 의지하는 주님의 선택이 만들어낸 집단이 출현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거짓말쟁이이기에 거짓의 하나님이 오셔서 나의 하나님을 박살 내고 나의 가치를 빼앗아 주셔야 비로소 내가 거짓임을 알게 되고 내 의미가 소실되는 은혜를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주를 배신한 배신으로 자신을 배신하는 사건의 현장으로 인도받는다. 나를 배신한 채 본인 의사를 거슬러 뿜어져 나오는 말씀만이 또한 듣는 우리 속에 똬리를 틀은 죄를 튀어나오게 해주고 무의미의 자리로 옮길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습니다. 부족합니다’라고 매일매일 인생 사진 고이고이 남기고 있는데 느닷없이 ‘너희들은 아무것도 한 거 없잖아’라는 율법의 칼이 날아들 때 그래도 뭔가 나름 한다고 했다는 행위를 주장하는 마음을 들키며 일괄적으로 집단 땡처리 당하는 발언에 반발심이 올라오는 사건을 마주한다. ‘지금까지 한 게 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 왜 이렇게 산 거지’라는 마음과 함께 ‘I am God, too’가 튀어나오고 그 모습 그대로 인증샷 찍어주시는 주님 앞에 할 말을 잃는다. 내 조작과 연출이 들통나는 순간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주의 이름이 오셔서 만들어내는 사건인 것을, 말은 입이 하는 것이 아니고 몸이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마귀가 율법의 몽학선생이 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행위에 의지하도록 사람을 잘 보육했기에 인간은 성령께서 만들어내시는 사건을 이해할 수 없어서 오해라는 것을 한다. ‘도대체 왜 멈추지 않고 폭주해서 벽에 박아버리는 거야. 함께 죽자는 건가. 네 몸이니까 브레이크 밟아서 스스로 컨트롤 잘해야지’라는 오해 앞에 ‘내 발을 주관하시는 분이 따로 계셔서 그분 뜻대로 하니 저는 무능합니다’라는 말이 구차한 변명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을 난도질한 말씀의 칼이 자신을 먼저 찢고 입을 통해 뱉어지는 것을 안다는 것이 동일한 성령 안에서 서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기에 가능이 아니고 불가능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눈에 보이는 몸으로 저주 아래로 들어오셨을 때 이 세상이 주님을 감당 못 할 것을 아시면서 그 오해 속에 몸을 던지셨다. 그 최종점인 십자가에서 마그마처럼 분출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덮인 주님의 지체들에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주의 의미가 흘러나오기에 부득불 예수님이 세상에 그려놓고 가신 사건과 같은 증상을 발현한다.

오해가 안팎으로 뚜렷하게 두 개의 노선을 만들며 가르기를 해주니 사는 것이 마땅하기에 오해로 상처받은 마음을 호소하는 원망의 노선과 죽어 마땅함을 알게 된 이미 용서받은 야곱으로 주님의 몸에 참여 되어 가슴을 치며 ‘주님 아무리 해도 저는 안됩니다. 이 마귀 짓이 안 고쳐집니다.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노선이 나란히 달린다.

피를 자랑하고 용서만을 증거 해야 하는데 불쑥불쑥 죄의 작용이 올라오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 자기 의로움이라는 때를 묻히는 짓을 멈출 수 없음에 애통해하고 그러하기에 저주가 당연함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깨닫는다. 심판의 엄중함이 더할수록 예수님 희생의 무게가 커지며 용서가 더욱 빛을 발하기에 불 속에서도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다.

“네가 죄를 아는구나. 고칠 필요 없다. 나는 오직 아들의 피를 보고 용서로만 구원한다”라는 하나님의 특급칭찬이 잠시 머무르다가 사건과 함께 다시 사라진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한결같이 생명 나무의 고귀한 가치를 지키는 쪽으로 일하시듯 지금도 주님은 쉬지 않고 자신의 살과 피를 불속에서 회수하시는 작업을 차질없이 진행 중이시다.
 이근호(IP:119.♡.87.190) 21-02-11 22:01 
“율법의 일점일획도 누락되지 않는 날카로운 심판의 기준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얕잡아 본 것이 대세가 된지 오래다. 신을 함부로 평하고 우습게 여겨주어야 대인배로 우대받는 분위기다. 반면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증거를 얻고서는 마치 천하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쫄장부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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