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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15:53:33 조회 : 217         
[행복한 나짜로] 영화평 이름 : 이근호(IP:119.18.78.122)

[행복한 나짜로] 영화 평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이태리 여성감독)


(줄거리)


1980년 이탈리아, 어느 험준한 산악 벽지 마을인 인비올라타마을은 여전히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모든 면에서 갇힌 채 목가적인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54명의 소작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농장주 후작 부인에게 속아서 무임금적 관계를 유지한다. 심지어 자식들이 서로 사랑해서 그 마을 떠나고 싶어도 소작인 신분이기에 후작 부인의 허가가 있어야 했다.


그 마을의 성당 신부는 기껏 탈곡할 때 미사나 드릴 정도로 후작 부인 편이었다.


담배 및 닭과 오리 사육과 각종 콩 종류를 재배하고 니콜라라고 하는 후작 부인의 하수인격이 남자가 도시로 왕래하면서 농산물을 판매하고 생산에 필요한 소모적 비용까지 농민들에게 빚으로 떠넘긴다.


그런데 그 농민 가운데 부모도 모르고 할머니하고 살고 있는 청년이 있다. 이름은 나짜로’.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그 인물, 죽었다가 주님으로부터 나흘만이 되살아난 그 나짜로를 영화는 패러디한다. 그는 마을의 궂은 모든 일에 대해서 군소리 않고 고분고분 수행하기에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충분히 이용당하면서 이용하는 줄도 그는 모른다.


심지어 후작 부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도련님(탄크레디)’에게도 사랑받는다. 도련님은 일방적으로 나짜로를 친구하고 부르면서 거의 자신의 심부름꾼으로 부려먹는다. 그래도 나짜로는 불평 한마디 없다. 도련님은 자기 엄마를 불법 업주로 간주해서, 나짜로에게 세상 모든 후작부인과 싸워라라고 격려하면 형제 맺었음을 증표로 새총까지 만들어준다. 자기 엄마 같은 자들과 싸울 무기라는 것이다. 그래도 나짜로는 착한 얼굴을 찡그린 적이 없이 그의 지시에 따라 시킨 대로 하기에 납치 자작극에 본의 아니게 가담한 셈이 된다. 도련님은 납치극을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칼로 자기를 찌르다가 겁이 나서 멈추고 난 뒤, 나짜로에게 칼을 건넨다 너는 스스로 너를 찌를 수 있나?” 나짜로는 변함없이 순박한 얼굴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찔려버린다. 도련님은 나짜로가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듣는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후작 부인의 충실한 집사인 니콜라는 일방적으로 자기 딸을 데리고 와서 도련님과 엮어보려고 한다. 반면에 도련님은 그곳 자체를 숨이 막혀 했다. 어떻게 하든지 도시로 나가려고 한다. 돈이 필요했고, 납치되었다고 편지를 엄마한테 보내고 스스로 범인인 것처럼 10만 리라를 요구한다. 엄마인 후작 부인은 뻔히 다 안다. 전에도 여러 번 그랬으니까.


이 과정에서 도련님은 나짜로가 쉬는 곳에 자신의 몸을 숨기면서 자기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그 와중에서 도련님과 나짜로는 늑대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야성을 지닌 늑대, 문명 외곽에서 문명 세계를 꾸짖는듯한 그 울음소리를 두 사람은 흉내 내면서 가볍게 넘긴다.


어느 날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 나짜로는 난데없이 그 비를 다 맞았다. 그리고 열병 걸렸고 그의 쉴 곳으로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산 위 벼랑 끝에서 떨어져 죽는다.


한편 엄마가 돈을 지정된 장소에 갖다 놓지 않자 도련님은 나짜로의 아지트에서 니콜라의 딸 테레사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데 테레사는 진짜 범인인 줄 알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그 마을은 외부 세계에 노출된다. 그 마을은 1977년 대홍수 이후 외부 세계와 차단된 마을이었던 것이다.


 후작 부인의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소실을 듣고 경찰 고위급 인사까지 직접 헬기를 타고 마을에 도착해보니, 그 마을은 여전히 근대질서가 작동했다. 벌써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소작제도를 폐지했지만 후작부인은 그것을 알면서 농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강제 조치가 취해져서 주민 모두 군 경찰서로 이동하고 신원조회 절차에 들어서고 후작 부인은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갈취, 사기, 탈세, 불법 담배 밀거래, 강제 노역, 등등으로 재산을 몰수한다. 은행에서 다 압류해 버렸다.


 나짜로는 죽고, 마을은 얕은 개울을 경계로 해서 모두 다 사람 않는 세계가 남겨지게 된다. 그동안 주민들은 얕은 개울가 건너 바깥 세계로 나갈 염두도 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2030년 지났을까? 늑대로 죽었던 나짜로를 깨운다. 착한 냄새가 나서 늑대가 차마 나짜로를 잡아먹을 수가 없었다. 나짜로는 전혀 늙지 않는 얼굴을 하면서 산에서 살아 내려와 후작 부인이 살던 집에 들어오는데 마침 수십 년 만에 도둑이 되어 옛적 자기 마을로 들어와 후작 부인 집의 물건을 몰래 훔치려는 그때 두 남자를 만나게 된다.


 한 젊은 남자는 안토니나라는 그때 아기 엄마(안토니나)의 아들 피포이고 다른 늙은 남자는 안토니아의 그 후에 도시로 가서 만난 남자다. 그곳 주민들은 도시에 갔지만 모두 한결같이 극빈민의 신세로 근근이 사는 형편이었다. 허름한 삼륜차 끌고 와서 도시에 가서 팔아먹을 것을 찾아 그곳까지 왔다가 나짜로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만난 것이다.


 두 남자는 자신들이 범행이 현장에서 들킨 것을 두려워 칼로 나짜로를 죽이려 했지만 나짜로는 선한 얼굴로 이삿짐 옮기려고 왔다는 그들의 말을 믿고 도리어 그들의 짐 나르는 것을 도와준다. 나짜로, 자신과 형제의 의를 맺은 도련님, 탄크레디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자 그들은 도시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고는 매정하고 훌쩍 차 타고 먼저 떠나버린다.


 한참을 걸어서 도시로 나가는 길로 나선 나짜로. 첨탑으로 형성된 기지국이 있는 풍경을 접하면서 조금씩 도시에 접근한다. 저기 일단의 이슬람 난민들을 만나서 같이 섞여 길을 걷는다. 이슬람 난민들 가족은 인력시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거기서 인력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늙은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자가 바로 악덕업주인 후작부인의 충실한 일군으로서 소작민을 노동력을 갈취했던 그 니콜라였다.


 그는 인력시장에서 이슬람 난민들을 상대로 저임금으로 농장에서 일한 일꾼들의 모집책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당 4.5 유로를 받아야 될 시간당 임금을 그는 현장에서 1유로만 받고도 일할 노동자로 전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니콜라는 나짜로를 알아먹고는 귤을 던지면서 재수 없다고 가라고 했다. 나짜로는 계속 도시 속으로 들어갔다. 길을 가다가 어느 편의점 딸린 주유소에서 강도짓을 하는 두 사람을 만나고 나짜로는 반가워하는데 그들이 바로 안비올라타 마을에서 도적질하는 먼저 차 타고 갔던 그들이었다. 삼륜차 뒤 화물칸에서 조금 전에 듣던 음악 소리를 듣고 나짜로가 알아봤다.


 유통기한 지난 과자만 강탈한 채 세 사람은 삼륜차를 타고 일단 두 사람이 가족과 사전에 약속한 장소로 데려갔다. 도시는 한창 택지 개발로 사방이 중장비 소리로 요란스럽다. 그 약속 장소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안토니아는 전혀 늙지 않는 단박에 나짜로를 알아보았다. 분명히 죽은 사람이었고 그리고 전혀 늙지 않는 나짜로를 신()의 현존으로 확신하고 안토니아는 나짜로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나짜로를 그들이 살던 곳으로 데려간다. 전에 무슨 가스를 임시로 저장하는 듯한 계란 세워놓은 모양의 철 구조물이 그들이 살던 집이었다. 바로 옆에서 시끄럽게 전철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 계란 모양의 철 구조물 안에서 안토니아 가족만 사는 게 아니었다. 거기서 나짜로는 옛날 안비올라타에서 함께 소작민으로 지냈던 다른 주님들도 만났다. 그들은 나짜로를 다 알아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함께 모여 살고 있었다. 도시에서 살 형편 달리 없었던 것이다. 생계 수단이라고는 그저 장물을 속여서 팔되 그것도 속여서 팔아먹고 동정심을 발휘한 협박성 구걸로서 겨우겨우 살아가는 식이다.


 여전히 한때 소작민이었던 그들은 나짜로의 존재로 그들의 삶에 짐처럼 여겨지지만 안토니아 만은 어쨌든 붙잡아 두려고 한다. 나짜로는 산만한 주변지 근처에서 먹을 수 있는 풀들을 알려주고 그것들을 채집해서 시장에다 내다 팔면 된다고 알려준다. 나짜로는 도시에 들어온 목적을 분명히 주변 사람들에게 밝혔다. “나는 나의 형제인 탄크레디를 찾으러 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느 날 불쌍하고 약해 보이는 개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개 이름 에클레를 누군가 멀리는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개 주인이 바로 탄크레디(도련님)였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난 중후한 중년의 풍채를 보이고는 있지만 실은 그 남자는 그저 개발업자 흉내를 내면서 사기 치는 것이 직업이 된 자이다.


 그러나 나짜로는 도련님의 현 형편을 문제 삼지 않고 오직 형제였다는 사실만 강조하고 만나게 된 것을 기뻐한다. 나짜로서 옛적 안비올라타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데려가자 거기서 도련님은 또 허세와 허풍을 떤다. “내일 오후 1시 반에 제가 여러분을 초대해서 점심 식사 대접하겠습니다고 약조한다.


 옛 주민들은, 귀족인 후작 부인의 아들의 점심 초대에 잔뜩 기대를 품고 나름 좋은 옷들로 갈아입고 알려진 주소로 찾아가면서, 빈손으로 갈 수 없다고 가장 고급진 빵을 사 들고 주소에 적힌 집을 방문하지만, 아예 도련님은 내다보지도 않고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된 나콜라의 딸, 곧 테레사만 초라한 행색으로 문을 빼꼼 열고서는 초대한 적이 없답니다라고 냉대해서 돌려보낸다. 그리고 잠시 문을 열리더니만 후회하는 표정으로 일행에게 부탁한다. “이왕 가져온 빵을 그냥 저에게 주시면 안 되겠어요? 은행에서 저희 재산을 몰수 했어 저희들 사정이 너무 딱하답니다.”


 흔쾌히 빵을 몰락한 귀족 집안에 주고 돌아서는 일행은 타고 온 삼륜차가 고장 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차를 이제 집까지 밀고 갈 판이다. 이 그런데 어디에선가 아름다운 웅장하고 감미로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어온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일행들이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수녀가 그들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지금 비 의례적인 행사이니 나가주세요라고 거부한다.


 오르간 연주자가 바깥 상황을 잠시 보고 다시 연주하려는 전혀 오르간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음악이 그 성당 밖으로 빠져나가 고물 삼륜차를 낑낑대면서 집까지 가는 그들을 따르고 있었다.


 어느 날 나짜로는 깨끗한 시내 사무실에 나타났다. 은행이다. 순서표 뽑지도 않고 은행원에게 직접 다가서자 주변에 있는 은행 고객들이 권총 강도로 오인해서 겁을 집어먹는다. 은행원도 침착하게 나짜로에게 말을 건넨다. “돈을 금고에서 우리도 함부로 끄집어낼 수 없습니다고 말하자, 나짜로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탄크레디 후 루나의 재산을 다 그에게 돌려주세요


주변에 있는 은행고객들이 나짜로의 뒷주머니에 있는 것이 권총이 아니라 새총인 것을 뒤늦게 알고 발로 사정으로 나짜로를 밟고 때린다. 나중에 경찰이 와서 나짜로를 살펴보는데 나짜로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다.


 도시 거리에 웬 늑대가 나타나 차로 한가운데서 달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


후작 부인은 내내 천주교에 충실하며, 수시로 성경 이야기로 주변인에게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철두철미하게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것이 따로 있는데 그것이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온 사회적 질서이다. 즉 성경 내용보다 더 우선적으로 자아성의 토대가 되는 것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 체제가 무너지면 자아성도 같이 무너지기에 자아를 굳혀주는 자신의 체제를 종교의 힘을 빌려서라도 사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종교는 나에게 궁극적인 진리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더 근원적이다. 나는 나만이 궁극적인 진리다!”이다. 종교니 새로운 정치 질서니 하는 것은 모두가 다 핑계요 변명에 불과하다.


 영화는 내내, 인간은 사회적 환경이 주는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근본적 인간 개조는 성립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사회 유지책에 필요한 역할자들만 그 사회가 생존시킬 뿐인 것이다. “사회의 말을 듣고 네 자신을 잊으라이것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개별자에게 강요하는 명령이다.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운 것은, 바로 이런 절망성을 인식하고 벗어날 길이 없는 절대 존엄한 인간성에서 본능적으로 내뱉어진 서러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환상이란, 자신을 잘나고 고귀하고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록 더욱 부풀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어제의 환상 대신 새로운 환상으로 갈아타는 오늘이 되어보려고 다들 분투 노력하고 있다. 진리도 없고 정답도 없고 해답도 없는 세상! 모두가 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라고 낙관하며 견디려 한다..


 목가적인 시골 풍경, 하지만 그 밑에는 착취당함과 억압적인 자들의 무지한 희생이 있기에 유지되는 모양새라는 사실을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사로를 빗대어 외치고 싶었던 것이 감독의 취지다. 하지만 감독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정의추구 의지에 의해서 살해당하신 분이라는 점을! 따라서 부활이란 예수님만의 부활이다는 것을!


  (덧붙여서)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것이 아니라 KBS [독립영화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영화입니다.( 2021717020분에 방영)


 첨부파일 : [행복한 나짜로] 영화평.hwp (88.5K), Dow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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