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HOME > 자료 > 말씀의 조약돌
2006-12-07 17:39:51 조회 : 4179         
3 인간의 삶, 인간의 실존 이름 : 관리자(IP:220.81.176.151)

3 인간의 삶, 인간의 실존

이근호 2003-04-10 16:03:10, 조회 : 156, 추천 : 9

진리이기에 인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경향이 진리를 가로막게 된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민 4:20) 인간은, 날이 갈수록 예수에 대한 관심사는 뚝 떨어지고 자기에 대한 관심사는 굳혀간다. 살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판 함정이요 올무요 무덤이다. 왜냐하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상태에서 계속 하나님과 대처해야 하는 세월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여 아무나 붙들고 치사스러운 구걸을 하는 현상이다. 인간 앞에서 신과 악마도 동일한 의미만이 가치있을 뿐이다. 거저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소유하려 한다 인간의 일생은 두려움에서 출발해서 두려움으로 끝난다 인간은 자기 때문에 사는 존재이다.- 죄 아래의 인간성- 인간은 창조주와 구속주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인간에게 일어난 심적 현상은 책임의식이다. 우리가 성경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말씀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 하는 것은 나에게는 어떠한 권위도 없다는 말이고 오직 예수님에게만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성도는 신분이기에 등급이 없다 사람을 믿지 말라. 사귈수록 더욱 모르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가져야 하고 비신자들에게는 분노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 '제거된 죄악'이란 사상은 애초부터 인간에게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인간의 계속 신기한 것만 찾는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은 유혹에 목말라 하고 있다. 인간이 현실에 몰두하는 그 순간에도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벌써 꿈으로 변해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꿈을 미워하지 않고 도리어 현실을 미워한다. 이로서 인간은 늘 자기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의 꿈 이외의 꿈은 소용없다.

무엇이 인간을 구원 할 수 있느냐를 찾지말고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자초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십자가의 제자가 되는 길 이외에 부활한 주님의 영광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인간이 세상을 파악할 때는 모델을 통해 파악한다. 특정 모델을 머리 속에 그려놓고 그 속으로 들어가 사는 식으로 행위한다. 그러나 어떤 모델이 되었던지간에 모델 내부에는 저항과 장애요소가 발견된다. 그래서 또다른 모閉을 찾아 움직인다. 이로서 인간은 늘 위기를 만나게 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란 거창한 꿈도 실은 이처럼 늘 위기에 의해 도망 다니는 인생의 가련한 신세를 일컫는 것이다.

사람들의 불안은, 자기가 만든 세상을 보는 틀과 실제 현실에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신앙인의 남은 생은 자신이 만든 틀을 늘 부수는 작업의 연속이다. 자기의 꿈이 깨어질까봐 조바심을 내는 가운데 의미와 추억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없이 행동하는 자만이 진정 예수님의 공로로 주어진 보상의 가치를 믿는 자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없고 오직 언약에만 관심있다. 그 외의 인간은 내어버려 두신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줄을 아는 것이 은혜이다. 신앙인의 길은 일률적인 코스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모험을 늘 강요받게 된다. 출구가 없는 깜깜한 사태를 늘 맞이하는 것이다. 한 순간라도 자동적으로 신앙인으로 되는 경우는 없다.

인간들은 자기의 주인보다 보호자를 원한다. 성령이 자유의 보증인이요 책임자이다 인간의 행함은 철학에서 찾아야 하고 인간의 죄악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자유는 교회의 명예이요 상품이다 성도는, 역사 속으로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해서는 아니된다. 자신이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이미 완성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정할 때 인간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의 장래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오늘날 교인은 주님을 찾지 않고 교회를 탐구해서 소유하려는 경향이 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현실에서의 주님과의 교제를 즐거워하지 않는 자이다.

성도는 이미 사랑과 거룩과 영광과 의를 맛보고 있다 인생이란 한낱 꿈이다. 현재는 과거에서 꾸던 꿈의 연장이며 이 꿈 조차 미래의 꿈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듯 꿈으로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은, 누군가에 의해서 내던져진 운명의 또다른 한조각이다.

이 세상에 특별한 인간은 없다. 다만 특별한 일을 맡은 사람만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사명자의 모습이 예수님의 일생이라면 성도에게도 받들어어야 된 하늘의 뜻이 사명으로 주어져 있다. 성도는 자신의 자유를 주님께 반납해야 한다. 그래야 주의 종이다 나이 먹는다고 사람되는 것 아니다(욥기 32:7-9) 성도는 뛰어난 자들이 아니라 다른 자이다. 곧 성전이며 죽음의 의미를 세상에 산 채로 나타내어야 될 자들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독립해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사명으로 인해 자유로운 자이다 나를 살리는 진리의 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를 죽이는 진리의 길은 반드시 있다. 살기 위해 살지 말고 나를 죽이는 진리의 길이 어딘지를 찾아 보라. 사명이 없는 자는 결국 자살하고 사명이 끊어진 자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그 자체로서 위대한 자는 아무도 없다 일시적인 성공은 실패를 의미한다. 계속적인 실패만이 최종 성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하나님을 버려야 성공되는 삶이라면 본질이 잘못된 인생이다. 인간들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 할지라도 자기 정당성 만큼은 꼭 쥐고 있다. 타인을 공격하면서 다른 한편 타인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이중성은 자신에게 공격하는 즐거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은혜 받은 것을 늘 감사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인간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고귀한 존재이다 인간의 고독은 자기가 행한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군중 속에 있어도 인간은 얼마든지 고독을 느낄 수 있다. 이 정도로 인간은 이기주의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에 있어 제일 골칫거리는 실수가 아니라 자기 의를 자랑하는 행위이다 살고 죽는데 구애받으면 하나님의 일이 안된다 봉사하려면 위기 의식을 가지고 하라 거룩이란, 자기가 받은 것을 보여지는 실존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죽음이다 (고후 4:10-11)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될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요 도와야 할 위치에서 도리어 하나님의 일에 방해를 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느끼는 자유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유이다 성도는 세상 것에 대해 구역질을 느껴야 한다 성도의 인생은 자기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을 봐서 그 사람의 소속을 가름할 수 있다 삶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빌려준 것이다 돈으로 떳떳하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로 떳떳해야 한다.

인간은 자기를 생각할 때 가장 큰 비관을 가지며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가장 큰 소망을 가진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사람이다 성도는 생존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서 사는 자이다 현 세상의 남자는 아담의 연속이요 여자는 하와의 연속이다 성도는 환란과 핍박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으로 보여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사는 것이 은혜이므로 자기 인생이 좋으니 나쁘니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 신앙심이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신앙이 있는 그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의 생존 문제를 최고의 진리로서 간주해놓고서 활동한다.

인간의 윤리적 행동은, 몸의 컨디션에 죄우된다. 극한 빈곤 하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배부른 사람들에게 모두 교양없는 행동이다. 환경 때문에 죄짓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죄인이기에 적절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 뿐이다. 잘 사는 자는 교만 죄를 나타내고, 못사는 자는 남을 저주하는 죄를 나타낸다. 인간에게는 새삼스럽게 실수라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인생 자체가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인간이 되지말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라. 운다는 것은, 아직도 많은 자존심이 많이 남았다는 증거이다. 손 바닥보다 더 짧게 사는 동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다.(시편 39:5)

풀과 인간은 같은 동료이다.(베드로전서 1:24) 인간들이 일부러 지옥을 선택했기에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지옥으로 통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연약한 것은 그만큼 사랑의 많이 받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들이 사는 모습에 부러움을 가져서는 안된다. 인간들은 모두 각자 신인 것처럼 행세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는, 자신만이 신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물러준 것은 저주이다.(시편 51:5) 자식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그 저주의 길을 앞장 서서 가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법없이도 산다. 아니 법을 귀찮아 한다. 자기 자신이 곧 법이요 신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심판 광경이, 모든 인간의 끝자락이다. (마태복음 27:49) 인간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말하지 말라. 먼저 자기 자신들이 하나님을 계속 차버리고 있다. 인간이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 "죽어서는 안 되!"라는 생각이 죄의 시작이요 "죽어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의의 시작이다

부질없는 인생을 의미있는 것으로 바꿀려고 할 때부터 죄는 시작된다 기꺼이 남의 종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말해야 한다 자기 딴에 남들보다 훌륭하고 깨끗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상사가 끊임없이 찾아 들 때, 비로소 이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 인생이란, 배부른 육체가 만든 연극(허구)이다 인생이란, 장난감 놀이이다. 하나님의 주신 것들을 각자 가지고 놀다가 허물고는 사라져 버리는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소유물에 스스로 갖혀 있는 존재이다. 소유물이 깨어지면 곧 죽음이라고 여긴다. 과학 문명이란, 인간의 충동을 가시화 시킨 산물이다. 인간들이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를 무조건 진리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 문명이 생겨났다는 것 자체를 선한 것으로 여긴다. 창조론은 종교적 충동을 과학으로 탈바꾼 것이고, 진화론이란 과학적 충동을 역사적 종교로 탈바꾼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도와준다고 만족할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자기 영광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요한복음 5:44) 인간의 상상력은 거울과 같아서 자기만 보인다. 자기가 달라질 것으로 여기고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잘못 안 증거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인간의 허무성을 현장 검증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은, 자기만이 신이 될 때까지 만족함을 모른다.

인간이 스스로 이미 사이비한 신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는, 개개인이 '자기 역사'를 나름대로 지니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생의 길이란 전부 실패 뿐이다.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목회이다. 인간이 신이 되고 난 뒤, 하나님의 모든 일을 그대로 흉내낸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성경이 뒤따라 이 지상에 주어졌다. 과연 인간들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일을 비슷하게 모방하게 된다. 이것이 종교이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바르고 확실하게 일 하고 계시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님 홀로 잘 난 것을 가지고 인간이 덩달아 자신도 잘 난 존재로 드러나려고 해서는 안된다.

실패를 자기 인생의 본질로 받아 드리지 않는 사람은 회개 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인간의 영원한 즐거움과 취미는 '자기 자랑' 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개인적인 원한과 억울함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독받을 때만 복수에 나서신다. 인간은, 때로는 이타주의로 나서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기주의 자들이다 세상에서는 인격을 팔아야 돈이 된다 죄인은 용감하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죄란, 예수님의 공로를 가리는 것이다.

회개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게임에 속아 사는 존재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무서운 사람은, 많이 알고 똑똑하고 많이 갖고 있는 자가 아니라 회개하는 자이다. 인간이 구태어 자기 것을 가질려고 하기에 십자가 정신과 무관하다. 인간의 소유는 욕망의 증거물이 된다.

인간쪽에서 복을 얻는 방법은 없다. 주시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인생의 성공보다 영생을 원하라! 선악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행함의 법칙을 만들려는 자는 믿음을 놀이로 바꾸려는 자이다. 마땅히 본인의 생존을 보장할만큼 당당한 의를 가진 자는 이 세상에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인간에게 제일 하기 힘든 일은 자기 꿈을 포기하는 일이다. 자기 꿈을 포기해야지만 그것이 신앙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 의로움을 사수하기 위하여 행해진다.

다같이 망해가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우리 중에 성공한 자가 있다니 이게 말이 될 법한 이야기인가. 인간들의 제일 큰 착각은, 이 세상이 마치 자기를 위한 자기 세계인 양 여긴다는데 있다 주님은, 성도를 성공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성공이 필요치 않는 자로 만드신다 돈 밝히면서도 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나아가서, 살고자 하면서도 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하나님 언약에 의해 예속되어 있다. 그래서 독자적인 육과 정신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외부적인 것이 들어 올 수 있는 여지가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없다. 신앙이든 이웃 사랑이든 인간이 수납해서 형성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외부적인 것은 자기의 관리 대상으로만 삼기 때문이다. 인간은 알게 된만큼 죄 지을 것도 많아진다. 인간에게는 완벽하게 죄 지을 가능성만 남아 있다.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의미없다. 단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아있는 자만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의미있기 때문이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과감하게 살아가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제일 큰 스트레스는 존재의 세계가 자기 뜻와 상관없이 움직인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인간은 참된 하나님에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타락의 길을 가므로 자기 자신의 무모한 과오에 대해서 과도한 처벌을 내리려 한다. 이런 것도 십자가의 은혜에 도전하는 자기 정당성 확보 행위이다. 맞닥뜨리지 않는 일을 상상하는 것은 불신앙적이며 죄이다. 문명이란 인간들이 자연 안에서 자기 것만 따라 뽑아 세우는 것이다.

차라리 거지로 살지언정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외면하므로서 인간은, 자기 반성의 기회를 갖고 싶지 않는 본색을 드러낸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저주하거나 심판하거나 파멸할 권리가 없다. 저주받고 있는 사람(불신의 사람)을 보고 제발 부러워하지 말라.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법을 자신에게 집행시켜 죄를 늘 발각당하는 삶이다. 자기보다 강한 자와 다투지 말라(전도서 6:10) 과학이란 죄를 가리는 작업에 불과하다. 조건이 붙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인간들의 게임이다. 조건은 도리어 진리를 막는다. 허무를 즐기는 것은 자기 사명, 자기 책임을 기피하는 심성이다. 다양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 이전글   다음글 ▷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