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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21:44:01 조회 : 12368         
창세기 1: 1- 5 / 창조에 담긴 뜻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창조에 담긴 뜻
http://222.231.1.74/woorich/성경강해/창세기-2001/001강-창1장,1-5(창조에,담긴,뜻)-gene010701.mp3
2001년 7월1일
본문말씀: 창세기 1장 1-5절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나오는 창조했다는 이 이야기가 요한계시록 끝에 가면 무슨 이야기로 바뀌느냐 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이야기로 바뀝니다.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마저 심판 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느냐 이걸 아셔야 합니다. 쉽게 생각해 보시다. 제가 진흙으로 개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개 입장에는 어떤 것을 생각하느냐 하면 "나는 진흙이다. 인간 주인이 만들어낸 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빠트리기 쉬운가 하면 "주인님, 주인님이 이왕 나를 힘들게 만들었으니 나를 심판하기는 없기요?"라고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저도 고맙게 여기지만 하지만 그 만들어 주었다는 그 이유 때문에 나를 심판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대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데 있어 창조하신 하나님 입장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그런데 이 자유 의지는 누가 만들어 넣어주셨지? 그래 하나님이야 고맙기도 하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자유가 있다. 하나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하나님이라고 해서 저에게 함부로 간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자유 의지를 빌미로 하나님을 이용하더라 이 말입니다. 창세기를 보던 요한계시록을 보던 창조하신 하나님 그 입장에서 자신을 되새겨 볼 줄 알아야 되는데 단지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아주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자랑처럼 여겨서 이제는 이웃이든 친구든 친척이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든 내 존재를 건드리면 나 가만있지 않는다는 심보를 가지고 평생을 버티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중의 철학적인 내용이라든지 모든 인간 학문의 뿌리에는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신이다"하는 정신이 항상 깔려 있습니다.
기업체를 가지고 사업을 하시든지 가정에서 집안 일을 하시든지 간에 그 모든 행위의 종착지점은 어디겠어요? 혹은 이것이 옳다, 그르다 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양심? 양심대로 이 땅을 살 수 있습니까? 믿음? 믿음을 갖고 있으면 하늘에서 저절로 돈 떨어집니까? 옳다 그르다는 기준은 내 존재가 얼마나 번창하느냐로 결정짓습니다. 내가 번창하면 그것은 곧 진리이고 남이 아무리 잘되더라도 내가 못되면 그것은 비 진리로 여기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런 식으로 교육받아서 우리의 생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개척 교회 할 때, 하나님이 이 개척교회에 사람을 모아 주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으로 여기고 개척교회에서 사람 떠나고 흐지부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저주하는 것으로 간주하더라 이 말입니다.

성경에 무슨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까. 저도 성경을 본다면 본 사람인데 성경을 아무리 봐도 "대구 지묘동에 '우리 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는데 여기에 사람 많아지는 것이 하늘의 복"이라는 내용이 어디 나옵니까? 성경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심판까지 하겠다"라는 내용입니다. 개척교회의 존재성이 개척교회에서 제일 문제 거리이고 골칫거리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내용 중에서 인간들은 무슨 속성만 빼내느냐 하면 '존재한다'는 것만 속성만 빼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실체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떤 내용을 담고 창조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백화점에 가서 소시지나 햄이나 우유 같은 것 살 때에 겉만 보고 삽니까? 유통기한이나 안의 내용물이 썩었는지 아니 썩었는지 판단하잖아요. 인간이 만든 우유에 대해서 우리들이 판단하게 되느냐 이것이 인간들이 이 땅에서 하는 일종의 심판 행위잖아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을 자유롭게 창조했으니 이제 나가서 너희들 마음대로 놀아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음 창조 할 때의 그 창조의 내용물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느냐"라고 물을 권한이 여전히 하나님에게 있는 겁니다. 개척교회 했다는 것으로 그 개척교회는 계속 존재해야만합니까? 개척교회 부서지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입니까?

성경에 보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신 상태가 얼마나 불량한지 이 말씀을, 개척 교회 하는 자들이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면
"하나님, 우리 모두들 자기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잘 부인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래도 우리 개척 교회를 부흥 발전 아니시켜 줍니까?"라고 걱정합니다. 이런 자세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농락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왜 하나님은 개척 교회를 하게 하느냐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감추어진 본색을 하나님이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대단한 신앙인양 착각하는 그 착각에서 벗어내어 주기 위함입니다. 개척 교회라는 환상에 파묻혀 그동안 몰랐던 우리들의 죄를 속속들이 드러내기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면 우리 바짝 긴장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는 곧 심판권도 같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창조 때부터 예수님이 담아서 해 내고 있습니다. 홀로 이룬 그것을 우리에게 '있음'이라는 창조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봉사, 충성한다고 해서 그것은 창조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경찰서에서 범인을 잡아놓고 심문을 하지요. 그 때 수사관이 그 범인에게 묻습니다. "당신 왜 이런 짓을 했어요?" 그 때 범인이 대답하기를 "나도 먹고살려고 이런 짓을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이 대답 속에 다른 인간들의 모든 답변이 다 들어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간주하기에 존재케 하기 위해 무슨 일도 다 하고자 합니다."라는 대답입니다.

여러분 방금 답변한 그 범인의 대답이 과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본래의 뜻이던가요? 우리는 이 설교 시간을 통해서 이것을 확인해 봅시다. 과연 하나님의 창조의 뜻이 이것인지 말입니다. 우리가 과연 자신의 존재 욕구와 하나님이 본래의 창조의 뜻과 일치되는지 여부를 성경을 펼쳐놓고 하나님께 물어보려는 생각을 갖기는 가진 적이 있습니까? 단순히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절대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아예 물어 보지도 않지요. 그래서 성경을 볼 때에 자기 존재 번창에 유리하다고 짐작되는 구절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에 관한 모든 것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 구절들을 주워 모아 자기 절대화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위해서 하나님은 따뜻한 지옥 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조에 담긴 뜻이 무엇일까요? 다들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농사도 짓지 않고 창고로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먹이신다. 들에 핀 들 풀과 백합을 봐라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그 입히신 것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뛰어났다."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란 참새의 자기 생존 의지가 아니라 참새 속에 외부적인 하나님의 은총이 그 참새 안에 담겨 있을 때 그 자체로서 참새는 하나님의 영광 체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 참새는 멋진 참새입니다. 참새 본인의 것이 내부에서 생산되었기에 영광이 아니라 외부에서 제공된 은혜로 인해 영광입니다. 백합이나 들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백합이나 들풀을 창조하실 때 신경 쓰시어 집어넣은 어떤 은혜가 있을게 아닙니까.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한 그 참새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입은 어떤 옷보다 하나님께 영광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취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 이제는 인간으로 돌아와 봅시다. 인간 속은 무엇이 잠겨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분은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아니 그것도 모릅니까 인간은 밥 먹고 살아야지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마는 여기에 대해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너 같은 인간은 참새보다 더 못하다"고 하실 겁니다. 혹은 "인간이란 화려한 옷을 입고 남들에게 뽐내는 것입니다"라고 하실 것이지만 예수님 말씀은 "솔로몬이 입고 있는 모든 영광이 이 들풀이 입은 영광보다 못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그 자체가 어떻게 되어서 참새나 백합보다 더 못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오늘날 인간들이 교회 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입고자와 관련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먹고자와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우리 교회'에 다니지 마시고 '참새 교회'에 다니시기 바랍니다. 이런 인간은 바로 창조에 의한 심판 대상 인물입니다. 원래 창조의 목표점이 왜 빠져있느냐고 다그치십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담겨야 하나님께 영광입니까? 예, 그 나라와 의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늘 나라의 의입니다. 그리고 이 하늘 나라의 의가 담겨 있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구분하는 것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전화로 이런 질문을 해 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선택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택을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지옥은 만들어 놓았는데 이 지옥을 채울 대상과 과정이 필연적으로 주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친히 지옥을 만드신 하나님의 손이 부끄러워집니다. 지옥을 만들어놓았는데 지옥이 텅텅 비면 이런 난처한 일이 또 있을까요? 지옥이 부흥 발전 성장해야 합니다. 지옥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어떤 인간이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그 때의 인간이 아닌가를 알리기 위해 우리들을 하나님은 복음 전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 가는지 그것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존재 우선으로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옥을 하나님 스스로 부정하고 철회하시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전부 다 천국 보내는 것으로 여기시면 안됩니다. 창조의 본래의 뜻을 모르고 말입니다. 마치 진흙으로 만든 개가 말하기를 "주인님 저를 일단 진흙으로 개를 만들어놓았으니 앞으로 더욱 예쁜 개로 만들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보게 되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루 하루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면 보기에 심히 좋은 하루로 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하나님에 창조의 뜻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합니다. 첫째 날은 빛이요 둘째 날은 하늘을 만들었고 셋째 날은 땅과 초목을 만드셨고 넷째 날은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고 다섯 째 날은 공중에 나서는 새와 물 안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째 날은 땅에 사는 모든 것을 만들었고 그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보면 갑자기 땅에서 가시가 생겨나고 엉겅퀴가 돋아나고 헉헉거리면서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리게 되고 여자는 아기를 생산하는데 고통이 따르게 이게 바로 저주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지금도 학생들이 내일 시험 친다고 교회에 와서도 시험 준비하는 것이나 어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것이나 모두 정상이 아니잖아요. 뭔가 잘못되어도 확실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어진 창조의 내용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우리 자신의 내용물을 바꾸기 위함입니다. 교체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란 결국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창조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달성하십니다. 창세기 1:26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요소가 나오는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약에 와보면 이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오늘 아침에 본 히브리서 1장에 보면 나오지요. 아드님은 '본체의 형상'이라고 되어 있지요. 이 아드님의 영과 마음을 우리들에게 집어넣으므로 말미암아 겉 사람은 썩어 들어가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열심히 하는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교체'에 관한 문제입니다. 뺄 것 빼고 집어넣을 것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성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겉 사람 가지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겉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얼굴을 수술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옷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인간이 못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나라와 의'입니다. 그 나라와 의는 우리가 받아들어야 될 문제이고 우리가 기댈 문제이고 푹 빠져야 될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어야 될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못 만듭니다. 예수님만이 십자가에서 만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못 만듭니다. 그래서 인간은 예수 이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이름이 없습니다. 교체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일찍 죽는다고 지옥 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지옥 보내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지옥 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너는 코스모스야 나는 백합이야"하는 식으로 사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돈 때문에 존재하는 자를 위해 지옥은 만들어져 있습니다. 원래 창조의 뜻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창조를 압니까? 고린도전서 2:11-12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창조 자체도 우리에게 은혜요 선물인 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성령을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은혜가 은혜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봐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창조를 공부하면 그 모든 결과가 자기 잘되는 것으로 치달려서 창조의 본래의 뜻이 훼손된 상태가 됩니다. 나라는 존재, 개척 교회 존재만을 위해 하나님은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엉터리입니다. "이것 할 테니까 내 놔라"는 것과 "지금 있는 것도 은혜이다"라는 것이 얼마나 차이나는 생각들입니까.

끝으로 사도행전 17:24-25을 제가 읽어 드립니다.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돈을 받고 은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주시고 또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도행전 17:31에 보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마냥 주시지만 마지막 심판까지 이어지게 하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지옥, 알면 천당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심판까지 이끄는 창조입니다. 창조에는 마무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은혜를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보지말고 우리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말씀을 통해 점검케 하옵소서. 과연 우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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