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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4 08:06:04 조회 : 5772         
창세기 32:24-28 (97. 9. 19 cbs방송설교) 이름 : 우리교회(IP:122.47.57.66)
97. 9. 19 -cbs방송설교

창세기 32:24-28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인간이 참으로 못된 죄인인 것이 드러나는 시점은 하나님한테도 대들 때입니다. 야곱은 하나님하고도 직접 싸웠던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 때까지 야곱의 입장은 이러했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대드는 자는 나는 용서하지 않겠노라" 라는 정신이었습니다. 이것이 죄악된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본질과 만나야 했고 실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힘에 의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약속의 백성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었습니다. 뭐든지 힘으로만 해결하려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단지 야곱의 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마저 적이 되어야 될 정도로 야곱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과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야곱에게 끈질기게 찾아오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버지 이삭에게 준 약속 때문에 그러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겨야 한다는 하나님의 자기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했습니다. 야곱은 약속된 인물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내려 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방 민족과 싸워야 하는 나라를 이룩해야 될 입장에 놓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전혀 하나님 사람이 아닙니다. 사는 방식이 섬기는 방식이 아니라 도리어 빼앗고 속이고 훔치는 식의 인생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인간적인 방식에 준해서 얻어 보려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 야곱과 씨름에 들어갔습니다. 승리자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패배자로 들어간 것입니다. 야곱에게 또 하나의 승리와 성공을 안겨 주려 야곱과 씨름한 것입니다. 그의 승리를 통해 인간적 승리의 한계를 보여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거의 승리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쳐버렸습니다.

야곱의 인간적인 힘은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야곱은 알았습니다. 밤새도록 자기가 맞서 싸운 대상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것을 눈치챘습니다. 환도뼈만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적은 형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형의 맏이 권을 빼앗기 위해 팥죽을 끊인 자기 행위도 소용없었으며,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따내기 위해 어머니와 합작해서 속임수를 쓴 것도 이제 와서 다 소용없는 인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축복이란 가상적인 하나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모든 힘을 파괴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그는 떠나려는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야곱의 머리맡에 오르락내리락 하던 그 밤의 천사를 이제 와서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장자의 에서를 붙잡던 그 손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붙들고 간구하며 울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과거를 소멸시켰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서 새로운 사명을 부여합니다. 새 이름은, 이스라엘 즉 사람과 하나님을 모두다 싸워서 이긴 인물이라는 호칭입니다. 야곱은 이제 명실공히 장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명이 지닌 장자입니다. 남의 것을 갈취하고, 속이고, 힘가지고 밀어붙이는 장자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섬기기 위한 장자입니다. 어린 자를 섬기는 장자의 원 모습으로 이스라엘은 돌아 온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분명 주가 되실 분이지만 그 주가 되시는 과정은 섬김을 받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바쳤기에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교회란 바로 이런 분을 머리로 모신 단체를 두고 말합니다. 머리되시는 분이 섬기시는 분이라면 그
몸의 지체들도 서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즉 야곱식의 인생관이 아니라 이스라엘 식의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야곱처럼 하나님에게 얻어맞아 전 힘이 주저앉은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 흔적이 바로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겸손히 바로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체적인 힘을 근거로 해서 옆 사람과 싸움을 벌려 나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하나님마저 무시하면서 마구 공격하고 놀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무너진 것입니다. 원초적인 힘은 여전히 마구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야곱식 삶의 방식 때문에 십자가 지신 모습으로 하나님이 오셨다는 것은 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또 다시 예수님을 못박게 하는 그런 완력이 큰소리치는 그런 단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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