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HOME > 성경강해 > 구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2007-01-24 08:15:09 조회 : 5934         
창세기 4:3-5 (96년 12월 13일 - cbs방송설교) 이름 : 우리교회(IP:122.47.57.66)
96년 12월 13일 - cbs방송설교

창세기 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예배라는 말만 들어도 고상하고 거룩해 보일 것입니다. 성도는 모두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자라는 인식이 세상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자기 백성과 교제를 나누시고 계시다는 것은 구약에 있는 시편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무조건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드리는 예배에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방금 읽어 드린 말씀에 보면, 가인의 예배가 있고 또 아벨의 예배가 있습니다. 한쪽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예배이고 다른 한쪽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신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23에도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곧 지금 이 때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예배하는 예배가 따로 있는 것을 보니 참되지 않은 예배도 인간이 드릴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을까요? 동생 아벨의 제사도 받지 않았더라면, 아, 하나님께서 그 어떠한 인간의 제사도 받지 않는구나 라고 알 터인데 실은 그것이 아니라 동생의 제사
는 받으시고 형의 제사는 안 받으신 것을 보니깐 이 두 제사 사이에 무슨 차이가 난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한쪽을 받으시고 어느 한쪽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11:4에 힌트가 나와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우리는 이미 아벨이 죽은 옛날 사람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직접 그분에게 이야기를 들어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벨 이 분이 응답되는 제사를 드린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벨이 드린 예물이 말하여 준다고 합니다. 아벨은 이러한 예물을 마련하게 된 배경에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을 말씀하십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 내부에 그냥 남아 있는 성질이 아니라 반드시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벨이라는 사람의 믿음이 밖으로 튀어나온 결과가 바로 형 가인보다 더 나은, 즉 더 바른 예물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 아벨이 드린 예물이 장차 오실 예수님을 일부 증명하고 증거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생 아벨은 비록 오실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예물로서 장차 오실 그분을 그려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란 단지 소유하고만 다니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뭔가 예수님의 일부분이라도 그려내는 인생을 살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믿는다는 말이, 단순히 오기와 고집이 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면 된다는 식의 투기나 모험을 두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믿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즉 믿음의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분명히 오실 예수님을 고대하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형 가인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은 가인은, 단지 동생과 자기 사이만 비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벨이 제사만 받으시니깐 안색이 싹 달라진 것입니다. 진정으로 가인이 믿음의 소유자라면 동생의 예물을 통해 같이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오실 분을 믿음 가운데 같이 기다려야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형 가인은 분통을 억누를 길이 없었고 급기야는 악의 노예가 되어 동생을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된 것입니다. 정신을 엉뚱한데다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형 가인이 사람 죽이는 전문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아벨을 죽일 마음이 생겼다는 말은 하나님께 제사는 드렸으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약속만을 사모하는 바른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의 자존심이나 충족시켜 주는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차이를 그 사람의 외모에 두지 않습니다. 믿음에 두십니다. 즉 얼마나 꿈과 비전이 위대하냐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인 예수님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느냐를 탐색하십니다. 가인은 자기를 보여주는 삶으로 나갔습니다 마는 아벨은 자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인은 자기 자신의 증인이었지만 아벨은 주님의 증인이었습니다. 가인의 예배 정신은, 동생과 계속 경쟁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담긴 정신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기도하고 무엇을 알기 위해 말씀을 듣게 됩니까? 소박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순수한 믿음으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즉 자기의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주님이 벌려 나가시는 일을 보여주시는 참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 이전글   다음글 ▷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