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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21:38:55 조회 : 6523         
창세기 3:15-21 /하나님의 징벌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하나님의 징벌
                                                         2001년 9월 30일

본문말씀: 창세기 3:15-21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우리가 무엇으로 아느냐 하면 약속을 통해서만 압니다. 각가지 기적 붙들어 가지고서는 엉터리 하나님을 신봉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안됩니다. 이미 약속을 내려주었는데 왜 모릅니까? "안 믿겠다, 나는 거부한다"라고 하면 이해하지만, "하나님을 누가 보았나? 누가 알아?"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는 것은 창세기 3;15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싸우고 결국에는 여자의 후손이 이기는 식으로 세상을 몰고 나가겠다는 겁니다. 벌써 이러한 것은 결정 난 사실입니다. 수정도 불가합니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결정 난 사항입니다. 변경이 안됩니다. "좀 봐 주세요"해도 안됩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에는 해가 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입니다. 이 우주의 질서는 변경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운명도 이미 결정 나 버렸습니다. 자연의 질서 속에 포함이 되어 버렸습니다. 애들 풍선을 빼앗아서 가지고 놀다가 그냥 터뜨려 버렸습니다. 그걸 보고 그 애가 "왕"하고 웁니다. 여러분, 애가 운다고 해서 이미 터져 버린 풍선이 전처럼 원상 복귀가 될까요? 안됩니다.

우리의 운명이 이와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 죽을 것인가?"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운명의 설계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미 확정되었습니다. 이미 확정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운명을 미리 알았다는 것만 해도 복 받은 것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다른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징벌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벌은 선악과 따  먹기 전에 주었던 말씀 속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창세기 2:16-17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약속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여자나 남자가 받은 징벌은 사실상 죽음의 징벌 안에 다 포함되는 겁니다. 죽기는 죽는데 어떻게 죽는가에 대해서는 창세기 3장에서 언급해 놓은 바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그러면 남자나 여자나 이제 죽는 것만 남아 있으니 성경은 더 이상 진행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 될 것입니다. 즉 "남자와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순간에 죽고 말았다. 끝" 이런 식으로 성경이 종결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창세기 4장에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는 쓸데없는 계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남자와 여자는 죽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평가를 더 살아야겠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신을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 출발해야 합니까? "왜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가?"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전도서 7: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여기에 보면,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는 겁니다. 참 희한한 말씀이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는 겁니다. 이토록 부정적인 발언이 또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보고 이제 다시 살날을 고대하는 겁니다. 이 얼마나 자신감 있는 인생의 고백입니까? 아담이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 즉 생명으로 불렀던 것도 이런 자신감의 발로입니다. 그는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발견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여자에게 내리는 징벌 속에서 생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 즉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뜻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여자의 비해서 남자의 이름으로 그저 '흙으로 돌아감'입니다. 따라서 흙으로 도로 돌아가는 입장에 놓인 자는 누구만을 바라 봐야 하느냐 하면, 여자가 받는 징벌을 바라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받는 징벌 안에서 생명의 법칙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자와 남자가 받은 징벌을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우선 여자에게는, 남편에게 지배를 받게 되며 아기를 낳을 때 해산하는 고통이 따른다는 겁니다. 남자의 징벌은 그야말로 처음과 끝이 다 저주의 모습입니다. 땅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사는데 그 땅이 호락호락 수월하게 농산물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의 범죄로 땅이 괴롭고, 그 괴로운 땅이 도로 아담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하지만 아담의 운명은 그 땅을 벗어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구차 없이 저주의 고통 속에서 평생을 보내다가 도로 흙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벌의 상황 속에서 아담은 자기 아내를 보고 생명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담이 자신을 보고 생명이라고 불렀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아내를 보고 그렇게 호칭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아담이 보기에 하나님께서 징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 하시는 약속에 함께 아내에게 주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아내의 징벌은, 생명 있는 자로서 이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 때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요 구원의 징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내의 징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선 아내는 남편을 본능적으로 사모하면서 도리어 그 사모하는 남편으로부터 눌림 받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겁니다. 좋든 싫든 말입니다. 이미 약속이 내장된 여인으로서의 이러한 태도는 진정 하나님의 약속이 고대하는 모든 자는 공통된 품성으로 아담은 이해한 겁니다.

즉 남편 자리에다 메시야를 넣어 보세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본능적으로 남편 되시는 그리스도를 사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 자세는 그 그리스도로 지배를 당하는 참된 신비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이 악한 세상에서는 성도들에게는 고통입니다. 마치 아기를 잉태할 때의 고통처럼 말입니다. 약속된 자식을 태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는 고통 속에 놓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내리신 징벌로서의 고통인 동시에 하나님이 내리신 약속의 성취하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즉 생명이란 고통 속에서 잉태되고 또한 그 약속을 유지하는 것도 고통이 수반됩니다. 함께 고통 당하는 아담의 고통은 약속을 잉태하는 고통이 아니라 저주로 인한 고통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자신을 향해 생명이라는 표현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생명은 자신이 아니라 아내 하와입니다. 자신의 운명은 아내의 운명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아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면 자신도 사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점을 놓치면 안됩니다. 여자가 남편에서 복종 당하는 징벌을 받았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를 더욱 놀리면서 더 부려먹으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차라리 여자이기에 남자를 사모하고 아내이기에 남편에게 복종하는 그 마음씨를 본받아야 합니다. 누구를 상대로 말입니까?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을 상대로 말입니다. 바로 남자든 여자든 예수님 앞에서는 이 여인의 마음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남편을 사모하는 신부의 마음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죽음 속에서 이미 생명을 보았고 믿었다는 진정한 자신감의 발로입니다. 남자들이 여성을 이해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이를 낳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무관심한 아이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자기 삶으로 덮어 키웁니다. 이것은 본능입니다. 그것이 고통인 줄 알면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생을 삽니다. 이런 모습이 또한 성도가 이 악한 현실 속에서 갖추어야 될 자세입니다.

여인은 고통 가운에서 자기 자식, 즉 자기 생명을 끝까지 껴안고 살아갑니다. 비록 그 자식이 자기에게 큰 고통을 준다고 해도 끝까지 책임지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징벌을 주시면서도 그 징벌을 통해서 약속이 구현되게 하셨습니다. 이미 생명이 우리에게 있기에 고통 없기보다는 그 고통마저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복종하는 자를 통해서 도리어 생명 있는 자의 자세를 배우게 하소서. 고통을 안고 사는 자를 통해서 생명이 그 안에 살아 있음을 발견케 하옵소서. 이미 하나님의 뜻을 알았사오니 이 외에 다른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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