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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21:39:20 조회 : 5787         
창세기 3:8-15 /하나님의 약속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하나님의 약속
                                                         2001년 9월 23일

본문 말씀 :창세기 3:8-15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가 여기 적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와는 다릅니다. 이 대화의 핵심이 뭡니까? 인간들의 고통 해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 왜 따먹었느냐?"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사정은 외면한 채 하나님의 자기 재산이 훼손된 것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심어놓은 나무 열매 하나 손실되었다고 거기에만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가지고 인간을 못살게 굴고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일방적으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의 표본인 것 같습니다. 선악과가 손상되었으면 그 나무 다시 심으면 되잖아요? 열매 하나 없어진 것이 뭐 그리 대수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 훼손을 놓고서 그 원인 자를 끝까지 추궁해서 규명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라는 나무의 물질적 훼손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도록 조치한 그 원인 제공자의 정체를 밝히는데 선악과가 사실상 이용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간과 마귀 사이에는 영원히 화해될 수 없는 관계로 고정시켜 버립니다. 쉽게 말해서 영원한 원수지간이 되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마무리 되도록 하는 것이 선한 하나님의 책무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이 세상에 나타나서 분쟁을 일으키고, 긴장을 조성하고 서로 투쟁하고, 그 분쟁이 영원토록 지속되도록 확정지어 버립니다.

거기에다 3:15절에 보면 이상한 표현이 나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에는 '뱀의 후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자의 후손은 곧 사람과 같은 인격자의 출현이라는 것은 누구도 동감할 것이지만 '뱀의 후손'이 글자 그대로 뱀 새끼의 되풀이에 불과 하기 때문에 사람과 같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서로 상대가 되어 싸우는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참 모호하게 들리지요. 또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은 뭡니까? 비록 신체적으로 여성의 태를 통해서 자식이 나오지만 그 자식을 아버지의 핏줄을 받은 남자의 후손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그냥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라고 고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 예언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예언의 말씀이 종잡을 수 없고 또한 그런데 취미가 없다고 해서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약속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채 놓쳐 버린다면 이것은 우리의 뿌리를 놓치는 셈이 됩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을 모르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채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 약속의 말씀을 이해하기는 힘들고, 알기는 알아야겠고, 지금 그런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외면하면 우리의 현실을 모르게 되고, 이미 아는 상식적인 현실관으로는 해석이 용이치 않고, 그런 상태입니다. 그러면 어떤 열쇠 고리를 가지고 이 본문에 들어설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죄'입니다.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인간이 자신이 고통받는 입장에서 생각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렇게 따지게 되면 선악과는 하나님이 한 번 양보하셔서 다른 선악과나무로 또 심으시든지 아니면 또 다시 열매가 맺혀 숫자가 보충되든지 하면 그만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아끼는 도자기를 깨트렸습니까? 그러면 아버지께서 백 번 양보하셔서 시장 가서 하나 더 사오면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그렇게 우리 일방적으로 결론지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담과 여자가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어떤 조치를 내리시는데 그 조치 안에 내용을 살펴서 거꾸로 죄의 실체를 알아내는 것만이 바른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 3:15절에 보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뱀의 후손'이라든지, '여자의 후손'이라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을 역추적해서 보면 애초부터 선악과는 단지 열매 하나 손실되었다는 차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신 것은, "선악과  나무를 따먹은 것이 이토록 무서운 죄이구나"하고 죄악의 근원까지 노출시키기 위함입니다. 사실 "하나님 같으면 꼭 인간에게 징벌을 내려서 고통스럽게 하시지 않고 얼마든지 철회하실 수도 있는 분이겠지" 라는 선입감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3:15에 나오는 약속을 보고서는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 입장에 되어서 자신이 자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던져주신 약속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선악과에 담긴 전체 내용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따먹는 것도 쉽게 따먹게 된 겁니다. 결코 아담과 하와가 이런 식으로 따먹은 것이 아닙니다. "저희 인간들이 이제부터 악마의 편이 되어 총체적으로 하나님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그 첫 작전으로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부터 의도적으로 훼손하기로 작정했습니다"라는 식은 아니었다 이 말입니다. 그저 과일을 쳐다보니 먹음직스러워서 그냥 따먹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징벌 속에는 인간들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내용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한 행동이 악의 정체를 밝히는데 있어 뚜껑 역할을 한 셈입니다. 뚜껑을 여니까 엄청난 내용의 악의 실체가 공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묻기를 "선악과 왜 따먹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에게도 "왜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뱀에게는 "왜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부추겼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뱀에게는 그 어떤 배려도 허용치 않기 위해서입니다. 뱀은 악의 최종자였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저주의 대상이지 구제의 대상이 아니 됩니다.

이런 취지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과 싸우게 되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정수리를 칠 것이고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로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화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싸움에 인간은 멋도 모르고 휘말려들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인간보고 "선악과를 따 먹어라"고 한 것은 그저 인간에게 맛있는 과일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갈라서도록 의도한 겁니다.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을 자기 사람 만들기 위한 겁니다. 왜 여성에게 해산하는 고통이라는 징벌을 주십니까? 그것은 호세아 13:13-14절에 보면,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비로운 진리가 내포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여자가 해산을 하는데 좋지 못한 자식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어머니가 고생 고생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저주와 죄를 머금고 태어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가 태어나는 문에서 아예 속죄를 해버리고 죄를 사해집니다. 그렇게 되니 더 이상 그 아이에게는 음부의 권세가 작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서 고통 한다는 것은 여자 위에 악의 권세가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인간 세계는 이미 악한 죄가 인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임신한 여자에게 고통이 찾아오는 것을 여자 본인이 어찌 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 세계에 대해서 인간 자신들이 악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벌입니다 인간들이 선악과 열매를 따먹는 순간부터 하늘의 전쟁이 땅에까지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여자의 후손만이 이 전쟁의 최후 승리자입니다.

남자는 비록 인간을 대표하지만 무능합니다. 어찌 할 수 없고 손 쓸 수도 없습니다. 악의 정수리를 치는 것은 시편 68:21절을 보니 하나님만 칠 수 있습니다.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인간은 악마가 있는 줄로 모르고 그냥 에덴 동산에서 평안하게만 살았지요. 이제는 인간 세계는 악마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이 안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만 고대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길 수 없고 물리칠 수가 없는데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대로 악의 정수리를 치기를 고대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 약속이 있고 난 뒤, 여자의 이름이 붙여집니다. 하와, 즉 '산 자의 어미'라는 말입니다. 분명히 모든 것이 이 세계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웬 생명?

자... 여러분, 여러분의 육체가 현실의 전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이름이 현실의 전부입니까?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약속으로 인해 더 이상 성도를 공격 할 죽음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바깥을 알아야 합니다. 그 세력에서 벗어나는 영생에 이르는 것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을 아는 것뿐입니다. 과연 누가 악마의 정수리를 쳤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조차 가두지 못한 분이 누구 신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몰랐던 세계가 선악과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누구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 것인 것을 분명히 결정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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