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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23:53:42 조회 : 364         
어리둥절 190917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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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민희(IP:59.♡.122.247) 19-09-30 19:48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21장 24절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라고 되어 있지요.


이 말을 굳이 여기에다가 달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말이죠. 제 이야기가. 지금 여기 24절 25절이 없다고 하게 되면 주님께서 어떤 점에서 누락이 되는지를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이 말씀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이 빠졌다고 칩시다. 그럼 뭐가 손해에요? 뭐가 아쉬운게 있습니까? 이 말씀 기록하지 아니하면.


줄곧 예수님이 이야기했잖아요. 여기 24절 25절은 예수님 이야기 아니고 사도 요한 자기 이야기죠. 빼도 될 것 같은데. 이것을 뺐을 때 복음을 이해하면서 무엇이 그렇게 손실이 주어지는지를 생각을 해봐야 돼요. 평소에 성경 보실 때 이런 방법으로 보면 됩니다.


자, 이 본문이 빠졌다고 치고 나에게 무엇이 유익이 아니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모르게 되는거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말을 어렵게 했는데 그럼 쉽게 가겠습니다. 제가 글을 쓸테니까요 이 둘 사이에 차이점을 한번 보세요. 참 이 차이점이 오늘 강의에 결정적입니다.


나는 편안히 살고 싶다. 이 문장하고 나는 편안히 살고 있다. 차이점이 뭡니까? 여러분 1번입니까? 2번입니까? 어느 쪽이에요? 2번 되려고 노력하지 마시고요 2번 이게 정답인데 이걸 세자로 뭐냐? ‘결과물’. 기존의 모든 신앙은 다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결과물로 보지를 않아요. ‘지금 내가 조심하고 행위에 조심하고 뭔가 지킬거 지키면 뭔가 얻겠지? 뭐를 얻는가? 나는 편안히 살겠지’ 하는 것은 이것은 엉터리입니다. 그것 때문에 요한복음 제일 마지막에 사도 요한이 들어가있는 거에요.


왜 우리는 한번도 결과물이라고 생각을 안 합니까? 지금껏 살아온 것이 내 노력으로 내 노력의 결과라면 여러분 앞으로 장담 못합니다. 치매 걸리면 어떻게 할 건데요? 치매 걸리면. 한 5년 믿다가 나 안 믿을래 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주님의 결과물이거든요.


사도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나보다 먼저 존재하는게 있다는 거에요. 그게 뭐냐? 주의 말씀을 그 다음에 증거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사람이 나부터가 출발점이 아니라 나로 나 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 무엇은 인간이 수립하거나 정리할 수가 없다. 왜? 어떤 인간의 글도 나보다 먼저 있는 것을 다 담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다 담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합시다. 다시 합니다. 자, 나는 평안히 살고 싶다. 모든 인간의 희망사항이죠. 제발 좀 건드리지 마라. 편안히 살고 싶다. 주님도 나를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나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이거하고 나는 지금 편안히 살고 있어. 이거하고. 정말 나는 편안히 살고 있다 이거 미친거 아니야? 이거는 배짱이 배짱도 이런 배짱이 어디 있어요. 이런 배짱이. 어디 봐서 편안히 살고 있어요? 사는 꼬라지하고는. 어디가 편해요?


하지만 성경은 뭐냐 하면 결과물 2번이 맞다는 거에요. 이게 성도라는 겁니다. 왜? 결과물이니까. 성도는 편안하냐가 아니라 편안한 그 자체가 누구누구의 결과물로 나는 존재한다는 겁니다. 누구누구의 결과물로. 그러면 사도 요한같이 나는 뭘 지켰다 뭘 믿었다가 아니라 내가 지키고 믿고 그것도 할 그럴 필요도 없고 나를 나되게 하는 어떤 다른 어떤 분이 많은걸 남겼는데 그 남겼다는 사실을 내가 증거하기 위해서 나는 이 지점에 와 있습니다 라고 하는 거에요.


오늘 요한복음 마지막 날이거든요. 요한복음 1장부터 다 할 거에요. 다 할 거에요. 지겨울텐데? 전혀 지겹지 않습니다. 중간에 인물 하나 들어가기 때문에 전혀 지겹지 않아요. 그러면 결과물로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해야되느냐 하면 그 다음에 요한복음에 사도들이 하는 것은 뭐냐? 삭제입니다. 삭제. 계속해서 내 믿음이 삭제당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내 믿음이 있어버리면 내 믿음에 준한 새로운 결과물을 내가 잡고 끄집어내는 버릇이 있어요.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사도란 사도 요한, 사도란 역사와 전통을 원천적으로 삭제하는 자. 사도는. 사도가 전한 것은 예수님의 복음이잖아요. 요한복음이잖아요. 복음은 뭐를 삭제한다? 역사와 전통. 나의 스토리.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를 나는 이렇게 행동합니다를 삭제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삭제 안하면 내가 나의 결과물이 되고 나는 뭔가 노려야 되죠. 편안하게 살고 싶다 되고 그게 없고 “나는 이미 편안해. 왜? 이게 내 솜씨가 아니고 주의 솜씨이기 때문에 그러해” 하려면 그걸 방해하는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 이렇게 수모를 당했다는 것. 처참하게 인간 망가졌다는 거에요. 그거 왜 당하느냐? 삭제하라고 당하는 거에요. 삭제하라고.


주님의 결과물을 자꾸 내가 고생한 덕분으로 여기는 그것을 아예 삭제를 시켜줘야 되는 겁니다. 그럼 역사와 전통이 삭제되려면 뭐부터 삭제되야 하느냐 하면은 내 믿음도 삭제. 내 믿음도 삭제한다는 말이 상당히 어려운 말이죠. 목사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으시면 우리는 믿지 않아도 벌써 믿고 있는게 있어요. 우리가 놓치기 싫은게 있어요. 나는 꼭 이거 꼭 쥐고 살고 싶어 라는게 있어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믿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부모를 믿죠. 그것도 믿는 거잖아요. 믿음 없는 순간은 한순간도 없어요. 전부 다 삭제 대상인데. 삭제 대상인데 우리는 그것 없으면 안 된다고 죽자 살자 내 행함 내가 살아온 것 꽉 쥐고 있어요. 내 결과물이 아닌데 내가 행동 똑바로 했기 때문에 이런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게 삭제될 건데 믿습니다 함으로서 어떤 새로운 괜찮은 결과물이 주어질 걸로 생각하는 그것, 그거 삭제 당해야죠. 그 삭제해야죠.


그럼 여러분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 머리 좋은 사람은 아실 거에요. 12제자가 예수님께 붙어있는 이유가 뭡니까? 처음부터 요한복음 처음부터 붙어있으니까 이유가 뭡니까? 그들은 뭐한다? 무슨 대상이다? 삭제 대상이다. 삭제 대상이에요. 삭제 대상. 제자는 있는데 뭐는 없다? 사도는 없는 거에요.


사도는 역사와 그걸 결과물로 됐을 때에 사도지요. 앞에는 사도가 아니고 뭡니까? 12제자지요. 그 제자 속에 누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가룟 유다. 하나가 잘못했는데 11명이 다 도망갔잖아요. 결국 이 말은 뭡니까? 11명이나 배신한 가룟 유다나 똑같은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튀어나오는 거에요. 도망가거라. 도망갈 수밖에 없어요. 도망갈 때 뭐도 도망가겠어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할 때 베드로에게 뭐가 있었습니까? 믿음이 있었던거에요. 믿음이 없어서 도망간게 아니고 잘 들으셔야돼요. 믿음이 있어서 도망간겁니다. 자, 이 믿음은 뭐냐? 내가 평소에 내가 나는 내 처신에 의해서 나는 살아야 되겠다는 믿음. 나는 내 행동에 의해서 더 버틸대로 버텨보겠다는 그 믿음. 이런 믿음이 베드로는 그냥 믿습니다!! 믿기 때문에 소나기 올 때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도망친 거죠.


그러면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가 만난 것은 뭐냐 하면 베드로의 상처가 되죠. 상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배신을 당하도록 하고 닭 울었잖아요. 닭 울고 배신당하게 해놓고 다시 찾아감으로 말미암아 네 마음에 남아있는 상처는 그거는 상처를 가져야 이게 치료가 돼요. 상처를 감춘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상처를 덧나게 해야 돼요. 참 희한한 의사다 희한한 의사.


"아이고 고름 났어요?" "예." "짜드릴게요." 이게 아니고 "고름 났어요?" 내 고름 갖다가 붙여버립니다. "그것도 상처냐? 그것도 지금 상처라고 찔찔 짜느냐? 이게 나를 몰라도 너무 몰라. 그것도 고민거리냐? 그것도. 네가 왜 건방 떨어? 왜 고민하느냐? 네가. 네가 지금 뭐 될라고 너 도대체 뭐 될래?" "아 나 잘나고 싶습니다." 지옥에나 가라 거기 잘난 사람들 다 모여 있어요.


천국은 상처 받은 사람만 가는 거에요. 상처 받고 그 상처에 대해서 자기 상처 위에 누구의 상처가 덧입혀서? 예수님의 상처가 덧입은 사람이 천국 가는 겁니다. 아주 상처난 곳에 상처를 더 후벼 파버렸어. 상처가 나게 되면요 나는 조그마한데 상처 났어요 하잖아요. "주님 주여 해.주.세.요" 하면 아이구 그래요? 갑자기 주님께서 칼 들고 나와가지고 구멍이 요만한 구멍을 크게 도려내가지고 자! 네 속에서 전에는 내가 다른 건 멀쩡한데 요게 상처다라고 하는 그런 인간에게 자 너 중에서 상처 아닌 것 찾아봐라. 없지요?! 전부가 상처에요.


너 때문에 내가 그런 상처를 받았어. 나는 전부가 너로 인한 상처야. 너는 상처받은 나를 왜 네가 도망쳤느냐. 내 상처가 유일한 영생인데 베드로는 자기 배신이 부끄러워서 도망친거에요. 조그마한 상처 있다고 도망하면 그것이 무마되는줄 알았어요. 그게 아닌데.


상처난게 더 넓혀져야 되고 더 덧나야 되고 더 찢어져야 되고 그 구멍이 더 커져야 돼요. 아 그것만 아니면 괜찮은 인간인데. 그러지 마세요. 쫙쫙 더 찢어져야 돼. 그게 바로 너 증인 아니고 예수님의 우리는 상처난 예수님의 상처의 증인입니다.


오늘 제목을 나중에 잊어버리니까 여러분이 이야기해주세요. 제목을 뭐라고 한다고요? 상처의 증인. ‘상처의 증인’.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존재입니다. 주여." "그래 걱정하지마 내 상처가 네 상처보다 더 커. 네가 나만큼 수모 당한건 아니잖아. 나만큼은 아니잖아. 찡찡 대지마. 찡찡 대지마. 나만큼은 아니거든." 뭐 세월호에 아이 빠지고. 그러지마. 나만큼은 아니잖아.


이제 슬슬 요한복음 1장부터 21장까지 관통할 준비 되었지요? 벌써 해답은 나왔지요? 상처로부터 상처로 쭉 가버린거에요. 그런데 아직 멀었어요. 끝가지 가려면 멀었어요. 그 다음에 이런거 한번 생각해봅시다.


나의 가치가 중요하냐 말씀의 가치가 중요하냐. 항상 제가 비교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교를 해봐야 그 사이의 차이점이 진리로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만 하면 믿습니다하고 덤벼 들어서 이게 말이 안돼요. 개코도 몰라도 좋아 보이면 믿습니다 하는데 차이를 두는 거에요.


차이를 두게 되면 그 차이를 네가 네 마음속에 그 차이성을 받아들이느냐 그거거든요. 나의 가치가 중요합니까 말씀의 가치가 중요합니까? 이건 뭐 여러분들에게 묻는 제가 나쁘지요. 당연히 이거는 말씀의 가치가 더 중요하죠.


그렇다면 이 비교를 제가 한 게 아니고 주님이 해요. 주님이 한 이유가 말씀의 가치는 나의 가치를 아까 삭제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말씀의 가치입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가 여기 있어요.


제발 나 좀 지옥으로 좀.. 지워주면 안돼요? 이거에요. 내가 있음에 주님의 골치거리거든. 자꾸 주님에게 얼쩡거리기 때문에 조금만 아파도 아프다고 징징 거리고 말씀의 가치를 위해서 나의 가치를 좀 제거하면 안됩니까? 그게 뭐냐 하면 사실은 요한복음의 줄거리에요.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제거하기.


뭘 제거한다? 말씀의 가치를 위해서 나의 가치를 제거하는 거에요. 이 비슷한 내용을 제가 저 먼 남해 여수에 가서 강의했었습니다. 생전 처음 마술도 아닌 것을 마술을 했어요. 생전처음이에요. 나 두 번 다시 할 생각 없어요. 어설프기 짝이 없어요.


카드 패를 두개 해놓고 두장인 경우에 앞에 패가 없애 줄때 뒤 패가 나오는데 뒤에 주님이 안계시면 앞에 패가 날라가는 것을 극단적으로 달려듭니다. 왜 자꾸 우리 보고 죄인이라고 하느냐. 뒤가 없어. 아무것도 없어. 뒤가 없기 때문에 앞에 것만 붙들고 있어야 돼. 교회 몇년 나왔습니다. 권사입니다. 장로입니다. 목사입니다. 신학했습니다.


자꾸 앞을 붙드는 이유는 행여나 이거 지워버릴 때 뒤에 구명조끼가 없을까 싶어서. 그야말로 진짜 주님이 계시면 알아서 앞에 것이 지워지거든요. 그런데 뒤에 아무도 없으니까 붙들어도 이것만 붙들어야 돼요. 나는 기도도 오래하고 헌금도 얼마하고 교회 봉사하고 이것 붙들어요.


 심지어 그렇게 붙든사람의 특징이 뭐냐하면 내가 기도해서 병이 낫고 기도해서 전도했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데 내가 기도해서 전도해서 내가 효과봤다는 것은 무엇이 빠져있느냐 하면 자기 부정이 빠져있어요. 십자가 빠져있어요. 십자가가.


아까 동영상 할 때 했지요. 자기 부인이 나오지 아니하면 자기 부정이 나오지 아니하면 그거는 안에 성령이 없는 사람이라고. 진짜 아닙니다. 결국 우회로 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기 인생은 자기 결과물이지 주님의 결과물이 아니에요.


다시 할게요. 우리는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결과물이라는 것은 너 어느 결과물? 나보다 먼저 말씀이 책에 기록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말씀에 의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살아가는데? 나는 편하게 살고 싶다가 아니라 결과물이니까 나는 이대로 편하게 살고 있어. 이대로. 주님 보시기에 최고에요! 최상이다. 가장 적합하게 살고 있어요.


그럴 때 나는 내 증인이 아니고 이거는 주님이 하셨잖아요. 제 솜씨 아니거든요 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죠. 그게 제자가 아니고 제자가 배신당하고 난 뒤에 생긴 누구라고요? 제자가 아니고 뭐다? 사도가 되는 겁니다. 제자는 목격자가 아니에요. 사도는 목격자입니다.


여기 나오거든요. 이 일들을 기록하고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있었으니 여기에 기록한 제자 증인이라는 뜻이 목격이라는 뜻 목격자라는 뜻이거든요. 이게 목격자, 증인이라는 것은 그 목격할 때 뭐를 목격했습니까?


내가 내 믿음 가지고 우기는 그것이 나로 하여금 주님 앞에 도망치게 했다는 그 사실도 내가 증거하는 것. 내 믿음이 나를 지옥 보낸다. 이 믿음 그대로 갖고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믿음 없어도 되는데 없어도 주님의 결과물이 되는데 믿음 없어야 내 믿음 가지고 내가 어떤 결과를 가져야 구원된다고 여겼던 이 미신, 그 악마 그게 뭐냐?


결국은 어떻게 핑계를 대고 주님 주님 영광 하지만 그건 누구의 가치입니까? 나의 가치입니다. 요한복음을 관통하는 핵심은 나의 가치를 지워버리는 거에요. 삭제해 버리는 겁니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자, 이제 요한복음 1장부터 총 정리할 마음 준비 되셨습니까? 아니요. 그래도 안돼요. 혼자 지가 했다 혼자 철회하고 그렇게 하는데 그 아까 상처의 증인. 상처의 증인. 베드로 같은 경우는 인간의 대표한 증거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요한복음 1장부터 죽 복습하면서 들어갑시다.


아니요.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적어드리겠어요. 안중근의 상처. 안중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죠? 1909년 10월 26일인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총으로 오른쪽 가슴에다가 3발 쐈어요. 3발 쏴서 3발 명중했는지 2발 명중했는지 1발 명중했는지 모르겠는데 죽였던 사람.


자, 안중근씨가 여기 앉아있다고 봅시다. 안중근씨가 앉아있다고 보면 10월 26일날 건사를 했는데 오늘 10월 23일인데 3일 남았는데 여기 앉아있다고 봅시다. 복음 듣는다고 칩시다. 천주교 신자니까. 안중근의 호가 뭐냐 하면은 토마스에요. 도마에요. 세례받은 것. 엄마가 천주교 신자거든요. 앉아있다고 칩시다.


그럼 그 앉아있는 안중근 그 사람한테 안중근의 상처에 대해 강의를 한다고 칩시다. 그럼 안중근 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역시 저 목사님 참 훌륭하다. 내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이런 상처가 있는 줄 알고 말씀으로 위로해 주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이제 착각을 할 게 아니겠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안중근의 상처 이거는 뭐냐 하면 저는 정신병. 정신병. 안중근이 정신병이라면 안중근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은 그 정신병 유사 정신병자 그 정신병에 동조하는 사람. 민족의 영웅 아닙니까. 안중근하고 같은 안중근이 기독교 신자인지 천주교 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중근하고 같이 맹세를 했던 사람이 12명이에요. 꼭 12제자 같애.


12명이 손가락을 끊어버립니다. 손가락을 끊는 그 행위 단지. 피가 나오겠지요? 피로 쓴 그림과 글씨가 뭐냐? 태극기 그려놓고 거기에다가 대한독립. 그 피 묻은 손을 가지고 탁! 피 묻은 손가락으로 탁 찍고 거기에다가 쓴 글씨가 대 한국인. 그걸 복사해서 차 뒤에다가 자가용 뒤에다가 붙여놓은 거 안 보셨어요 여러분? 봤지요? 남자는 한번 태어났으면 이래야 돼. 그냥 한국인 아니고 대 한국인.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정신병자다. 그 이야기를 요한복음 이렇게 이야기하기 전에 왜 하느냐? 요한복음을 백날 강의하고 들어도 결국은 우리는 이미 뭐냐 하면 안중근 부류에 지나지 않아요. 안중근 부류. 정신병자의 같은 부류가 되는 거에요. 나부랭이다 안중근 나부랭이. 나부랭이 아니라고요? 그럼 안중근 욕해보지요? 욕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없지요?


자기 몸 하나 희생해서 나라 살리겠다는데 그게 뭐가 나쁘냐 이렇게 나오지요. 로마서 5장에 보면 악인을 위해서 죽는 의인도 있다 이런 얘기 있는데 희생해서 그 희생정신이 우리가 본받아야 될게 아니냐 그 사람이 불교신자도 아니고 천주교 신자라면 자기 엄마한테 편지하는데 우선 천주께 영광부터 시작해가지고 편지 쓰거든요. 그러면 정상 중의 정상이고 한데 그게 어떻게 정신병이냐 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안중근하는 것을 생각해서 문제점을 모른다는 그것이 그런 사람들에게 안중근 뿐만 아니고 안중근에 대해서 나쁘게 보지 않고 좋게 보는 그런 사람들에게 요한복음 관통이라고 관통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 이 말이죠. 그게. 또 하나의 소영지주의로 빠진단 말이죠. 나도 요한복음 안다 이런 식으로. 뻔한데요.


분명히 우리의 가치는 말씀의 가치보다 우선할 수가 없어요. 어느게 더 중요합니까? 말씀의 가치가 더 중요하거든요. 나 자신의 가치보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걸 가만둡니까? 그걸 지워버립니까? 지워버리겠다는데 이 안중근같은 자세가 뭐냐 하면 이 고귀함을 왜 지워? 이 귀한 것을 왜 지워? 이 의로움을 왜 지우냐 이 말이죠. 나도 이런 결심을 하는데 얼마나 힘든데 하거든요.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베드로가 위대합니까? 안중근이 위대 합니까? 베드로나 안중근이나 마찬가지죠. 거기서 거기 그런 같은 부류지요. 내가 주를 위해서 목숨 바치겠나이다. 나오잖아요. 요한복음 13장 끝부분에 나오잖아요.


그럼 여러분 아는 이야기해볼게요. 모세가 나라 독립하겠다고 애굽 사람 압제하는 애굽 사람을 쳐죽였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셨습니까? 안 그러면 쓸데없는 짓 했다. 어느 쪽이에요? 쓸데없는 짓 한거에요. 그게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다운 태도가 아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자기는 히브리인이기에 그때 반대 되는게 뭐냐?


히브리인과 애굽인, 애굽인과 히브리인 둘 중에 하나는 맞을게 아니냐 하는데 성경은 둘 다 안 맞다는 거에요. 둘 다. 둘 다 맞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이 없으니까. 그럼 목사님 이야기하고자 하는게 뭡니까? 그럼 제가 안중근 이야기 할 거에요. 이야기 하는게 뭐냐 하면 믿음은 없는데서 나옵니다. 믿음은.


믿음은 없는데서 나와요. 믿을 사람 있고 믿을 사람이 믿음이 없는데 주께서 믿음 주신다는 그런 이야기입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고 일부러 비비 꼬는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믿을 사람조차 내가 믿지를 못하는 거에요. 내가 나를 못 믿을 정도로 믿음이 생긴다니까요. 내가 미쳤지 미쳤지.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믿음이 있잖아요. 내가 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그 안중근 있잖아요. 작은 안중근. 우리는 안중근이거든요. 자랑스러운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안중근이란 말이죠 우리가. 토마스에요. 토마스 안중근이에요 우리는.


그런데 그런 나도 못 믿을 정도의 내가 되어 버릴 때 우리는 나를 결과물로 여길 수밖에 없어요. 왜? 내가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인간될지 미처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그러면 나는 내 믿음과 더불어 나는 자폭해야 돼요. 내 믿음이 없는 거에요. 없는데 없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새로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면 뭐냐? 어떤 설명이 되느냐? 믿음이 있으면 믿을 사람도 새로 만든다 이렇게 되야지요. 베드로인데 그 베드로 말고 다른 베드로. 제자 말고 사도. 남들 보기에는 그 인간이 그 인간이고 똑같은 인간인데 제가 말고 사도.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거 말고 주님 하신 일에 목격자 되겠습니다 하는 사도.


내가 타락 안했기 때문에 구원했다 말고 나의 모든 이야기가 삭제당한 그런 사도. 오직 주의 말씀이 말씀으로 된 결과일 뿐이지 거기에서 내가 한다리 걸쳐서 내가 한몫했다는 그것조차 내가 스스로 인정할 줄 모르는 이상한 나. 다시 말해서 쉽게 말하면 믿음 없는 나. 믿음 없는 나. 제가 글을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이 ‘장부가’.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꼬. 동풍이 점점 차짐이여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분하다 한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 도적 이등이여 어찌 목숨을 즐겨 이을꼬. 어찌 이에 이르렀단 말이오 사세가 고연하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세여 대한 동포로다.


이걸 장부가라고 하는데 누가 지었는가 하면 바로 안중근이 지었어요. 안중근 그 사람이 지었어요. 평안도 부잣집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나가지고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지요. 그 사람이 어릴때 자기가 세가지 제일 잘했는데 하나는 뭐냐하면 술먹는 거하고 춤추는 것 그다음에 활쏘기하는 것. 노래하는 것 달리기도 잘하고.


그런 식으로 자기가 살아왔는데 나라가 위태롭다는 소리를 듣고 1905년에 을사조약 맺고 내가 이제는 장부가 기껏 내 즐거움이나 노닥거리면 되겠느냐. 그럼 장부가 해야 될 것은 뭐냐? 이 쓰러져 없어져가는 국가를 위해서 내 한 몸 바치리라. 이게 미친 짓 아니에요? 미친 짓이거든요. 이미 그 사람 속에 뭐가 생겼어요? 상처가 생겼지요.


왜 일본을 위해서 몸 바치지 않고 왜 대한독립을 위해서 대한조선을 위해서 몸 바칠까요? 자기 어디 소속이기 때문에. 자기 대한민국 소속 그때는 대한민국 없었으니까 조선 소속이죠. 조선이 일본한테 나라가 팔아먹었다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럼 이미 조선의 상처는 누구 상처다? 곧 나의 상처가 되지요.


나라 없는 것이 내 상처가 되는 근거는 어디 있습니까? 근거는 없어요. 근거는 없어요. 그럼 뭐냐 하면 안중근에게 국가라고 하는 것은 상상의 자기 현실. 상상의 세계, 상상의 세계에요. 국가라는 것과 나의 운명을 일치화시킨다는 것은 안중근의 자기 존재의 범주를 일방적으로 넓힌 거에요. 일방적으로.


야구를 좋아한다? 동네야구 하란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류현진 응원한다? 갑자기 뭡니까? 자기 범주를 넓힌거에요. 류현진 공 잘 던지라고. 축구하면 자기 동네에서 축구하란 말이죠. 그런데 손흥민이 두 골 넣었다 좋아한단 이 말이죠. 손흥민하고 같은 손씨 집안도 아닌데 왜 그리 좋아해요? 왜? 손흥민 이야기가 곧 누구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다.


손흥민이가 그동안 8게임을 못 넣었다. 그러면 손흥민의 상처가 누구 상처 되요? 내 상처가 되는 거에요. 방탄 소년단 애 하나가 교통사고가 났다. 전 세계의 16억 소녀가 울고 난리도 아닐 거에요. 안 다쳤으니까 천만다행인데. 왜? 그가 나고 내가 그니까.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요? 왜 인간은 자기의 범주를 넓힙니까? 넓혀야 안심이 되거든요. 넓혀야 안심이 되거든.


그래서 여기서 제가 일방적으로 적었습니다만은 정신병의 3종 세트. 정신병의 3종 세트. 첫번째 상처, 두번째 불안, 세번째 복수. 치토스 먹고 말거야. 복수. 상처, 상처받았다. 왜 받는데? 상처 왜 받아요? 자신이 결과물이 아니라고 본거에요. 나는 내 인생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겁니다.


참 악마가 교묘하지요. 악마가 인간을 이렇게 만든 겁니다. 악마가 이렇게 만든 거에요. 상처 생기니까 자기가 불안불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누구한테 탓을 돌립니까? 멀쩡한 가만히 있는 또 이렇게 말하면 또 좌파 우파인가 해서. 가만있는 일본 이토 히로부미 그거 모르는 사이에요.


안중근과 함께 당일에 있던 세 사람 있었는데 총 네 사람 갔어요.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이 세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가 어느 역에 내릴지 몰라 가지고 하얼빈 역 바로 앞에 채가구 역에 한 사람 가 있고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가 있는데 아침 9시에 거기는 러시아 땅이기 때문에 러시아 군인들이 이제 지키고 있었어요. 경호하고 있었는데 안중근이 뭘 잘한다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 사람보다 총 잘 쏘는 사람 없다고 어릴 때부터 이미 소문났어요. 딱하면 딱이야. 다 맞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래서 총 쏘고 난 뒤에 외친게 있어요. '코레아 우라' 하여튼 대한독립 만세 대한 만세 외치고 스스로 잡혔습니다. 그전에 안중근이가 국채보상운동 을사 1905년 이전에 그 이전에 국채보상운동 해가지고 일본한테 빚진 거 갚아주자 해가지고 거기에 모든 하청민들 기생과 백정들까지 다 참석하고 금가락지 빼서 갚고 했는데 그게 실패로 끝났어요.


안중근도 그거 하다가 그 많은 최고의 부자가 평안도 재산 받아서 다 냈거든요. 다 낸 뒤에 의병항정 독립운동에 해외왕래했는데 블라디보스톡에 가가지고 의병투쟁하는데 의병투쟁하다가 그가 큰 실수를 했어요.


무슨 실수를 했느냐 하면 일본군을 체포해놓고 자기가 세계와 동일한 국가의 법을 스스로 정의로우니까 정의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포로를 죽이지 말고 풀어주라고 하는 만국의 어떤 법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그 일본군을 풀어줬더니만 그게 미치고 발광된 풀어준 그 사람이 꼰질러 가지고 다 죽여버렸어. 자기 빼놓고 다 죽였어.


참 순진하지요? 정의롭게 하는 수단이 정의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아주 순진하고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거에요. 정신병자니까 뭘 못하겠어요. 그 의병 항쟁하면서 하는 결의서가 뭐냐 하면 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한번해서 안되면 두번하고 두번해서 안되면 세번하고 세번해서 안되면 열번하고 열번해서 안되면 백번하고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내년에 못하면 후년에 하고 기어이 독립을 이루고자 말리라. 알겠습니까! 선창하고 네! 이랬어요.


제가 이 이야기하면요 자꾸 듣는 사람들이 그게 뭐 정신병이고 그게 뭐 이상하냐? 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같은 정신병이에요. 본인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본인이. 너나 잘하세요. 나라 걱정을 왜 하는 겁니까? 제가 묻고 싶어요. 자기 공이나 차란 말이죠. 손흥민 왜 그렇게 좋아하는데요. 좋은걸 어떡해. 왜 좋은데요? 몰라. 결국은 몰라. 결국은 몰라.


상처 안 받으려고 해요. 상처 안 받으려고. 상처를 무마하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상처의 상처인지도 몰라 인간은. 모르는데 뭔가 국가 단위에서 찾아나설 때 내 국가가 일본이 독도 우리 땅이라고 할 때 괜히 내가 상처가 돼. 나 정신병자지.


그러면 목사님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이토 히로부미 그쪽 생각을 해야 돼요. 그쪽에 아들이 있었어요. 아들이 아버지를 목숨을 잃은 거에요. 그래서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안중근 아들이 누구한테 사과했다고요? 아들한테 미국 가서 사과한 거에요. 우리 아버지가 철딱서니 없어가지고 당신 아버지 돌아가게 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에 허무함이냐 하면 명분의 허무함. 명분의 허무함. 교회 다닌 사람들의 명분이 누굽니까? 뭘 위하여? 교회 다닌 사람은 주를 위하여. 이게 명분이에요. 주님 좋으라고 이러겠어요? 누구 좋으라고? 나의 범주를 확대시킨거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내 믿음을 주의 믿음이라고 간주해주세요 라고 하는 거에요. 믿음이 없으면 되는데 나는 상처받은 그냥 걸레라고 보면 되는데 자꾸 그 상처를 내 믿음 소망 사랑으로 말씀 성경 공부로 이걸 자꾸 그 틈을 메우려고 하는 거에요. 그 메워서 뭐 할건데요? 메우면 내가 멀쩡해지니까. 이게 나는 정신병이라고 보는 거에요 이게.


정상이 아니면서도 무슨 흉내낸다? 마치 정상인 사람처럼.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아무도 없지요. 아무도 없으니까 주님께서는 그들의 상처에 의해서 복수당하고 보복당하고 도망친 그 상처를 이제는 네 상처 말고 주님의 상처로 덮어버리면 그게 치료가 되는 거에요.


내가 가해자가 찔렀던 창은 그 창자국이 내가 한 행위를 용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용서는 같은 질로 통해야 용서가 되지 같은 질이 아니면 용서가 빗나가게 되어있어요. 용서가 빗나간다고 용서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사업이 파산 났다면서요." "그래.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사업 잘못해서 파산 났다." "아버지 사실은 파산한 거 내 잘못이에요." "왜?" "제가 저번에 수학 100점을 못 맞고 90점 맞았어요. 저 때문에 아버지 파산 났지요."


아버지가 "야야 네 죄와 이쪽 용서가 핀트가 안 맞다." 이거 안 맞잖아요. 주님의 십자가는요 우리의 원초적이에요 원초적. 내가 어느 정도로 기어이 이야기한다면 명분 찾기에요. 이 명분 찾기 때문에 죽었는데 우리는 주의 말씀 어겼다고 그것 때문에 저 때문에 돌아가셨죠 이러고 있다고요. 누가? 한국교회 전체가 다.


"네가 뭐라고 너 때문에 내가 죽어. 네가 뭐라고." "주님 이거는 잘했잖아요. 그런데 이거는 잘못했기 때문에 잘못한 부분 때문에 주께서 돌아가셨잖아요." 이러고 있다고요. 주님이 어디 구두수선공입니까? 다른 데는 멀쩡한데 이 뒤축 갈아주세요. 이러면 뒤축 갈아줍니까? 그 부분만? 그래요? 아니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나의 명분, 내가 잘되기 위한 안중근처럼. 나라 잘되면 누가 잘된다? 덩달아? 내가 잘되지요? 그런 명분으로 만들어진 그 상상 허상, 그 허상을 삭제하기 위해서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거에요. 우리가 상상하는 그 무엇, 그 무엇이 다 거짓된 거거든요. 그게 제자들이였고. 예수님 덕분에 내가 잘되자. 그게 제자들이 했던 짓 아닙니까. 결국 그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기들이 도망치게 만들었잖아요.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눈만 뜨면 상상해요. 명분을 만들어 낸다고. 그 명분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의 상처를 억지, 억지 부린다 하지요. 무조건 억지는 악령입니다. 억지 부려서 주여 뭐 이정도 착한일 했잖아요 자꾸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밀지 마세요. 주님 짜증냅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죽은게 아닌데. 자꾸 자기 공부 못하는 거하고 주님 십자가하고 자꾸 연결시키지 마세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제가 질문할께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은 본인의 의지입니가? 사탄의 의지입니까? 요한복음에서.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히 나오지요? 누구 의지입니까? 사탄의 의지를 가룟 유다가 거부할 수 있어요? 없어요? 거부 못해요. 거부 못하는 줄 알고 주님께서 그렇게 한거에요.


너희 중에 하나는 사탄이다. 요한복음 6장 제일 마지막에 나오거든요. “너희 중에 하나는 사탄이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너희들 나머지도 다 내 결과물이 기어이 되고 말리라. 절대로 네 힘으로 되는 거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주지 아니하면 아무도 누구한테 올 수 없다? 내게 올 수 없다. 그럼 우리가 주님한테 왔으면 제가 온 게 아니고 떠밀려서 왔어요 그런 고백이 나와야지요. 떠밀렸어요.


지금 안중근은 그게 안된다니까요. 떠밀린 사람은 상처가 없어요. 상처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냥 사세요. 그냥. 그냥 사세요. 살고 싶다 하지 마시고 그냥 사는게 돼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지 그냥 그대로 그냥 이대로~라는 노래 있는데 그냥 사세요. 명분 찾지 말고. 잘 살았다는 명분을 굳이 그걸 만들어내지 마세요.


손흥민 두골 넣을 수도 있고 다음에 못 넣을 수도 있고 류현진이 7점 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7회말에 한점도 안 줄 수도 있고 그건 주님 마음대로지. 류현진만 주님 마음대로고  손흥민만 주의 마음대로고 우리는 뭡니까? 우리는 누구 마음대로죠? 주님 마음대로잖아요. 이게 어려워요? 강의 그만하고 싶다. 이게 어렵습니까? 이게?


주님 마음대로 앉아있는 거에요 주님 마음대로. 이걸 제자들은 몰랐고요 사도가 될 때 비로소 안거에요. 마지막에. 야 참 우리는 목격자일 뿐이구나. 나는 참이 아니고 나는 거짓이고 참은 누구밖에 없다? 예수님밖에 없어요. 예수님만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는 겁니다. 예수님을 증거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증거했다는 고백을 하기 위해서 두 구절이 있는거에요.


우리가 사도가 사도 요한이 증거한 거 말고 주님이 먼저 “너는 이러해야 돼”라고 주님이 시범을 보여준 거에요. 사도는 이러해야 된다고. 주님은 아버지를 위하여 그냥 몸을 바친 거에요. 너희는 그 결과물이고. 너는 보탬 아무것도 안 받을게. 안 받는다. 너 착함도 안 받고 아무것도 안 받을게. 그냥 내가 너를 너 되게 사도되게 해줄게.


자,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공식을 써 봅시다. 사도는 인간이 아니다가 돼요. 사도는 인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일 뿐이기 때문에. 야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 인간은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를 쉽게 이야기하면 개는 인간이 못 된다 그런 뜻이에요. 개는 인간이 못되고 개는 그냥 개일 뿐이다.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벌레다. 바퀴벌레는 컴배트만 있으면 되요.


바퀴벌레는 바퀴벌레다. 인간은 인간이다. 제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벗어나지 마세요. 그 노선에서 이탈하지 마세요. 이탈하면 추락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도는 그럼 인간이 아니라면 뭡니까? 인간 + 사명입니다. 인간 + 사명. 무슨 사명입니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


그럼 사도는 뭘 받았지요? 성령 받았지요. 그럼 우리는 성령 안 받았습니까? 그리고 결국 성령 받은 사람 특징이 뭡니까? 나는 인간이다? 인간 아니다? 그냥 인간도 아니다라는 말도 맞고 나는 그냥 인간일 뿐이다라고 해도 그 뜻이거든요. "나 하나님 아닙니다. 나 신 아니에요. 바랄걸 바래야지 주님. 저한테 뭘 바랄게 있어요. 뭘." 맨날 눈 뜨면 대한국인 하는데 나라 걱정이나 하고 있지요. 나의 가치 들먹이고 그게 뭐 그게 신입니까? 주님 아니잖아요.


인간이라는 인간에 불과한 인간에게 주께서 자신의 성령을 통해서 사명을 주니까 그 인간은 뭐가 됐다? 사도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고 이게 참이다. 이게 곧 진리다. 그러면 사도에 있어서의 할 일이 뭐냐 하면 정확하고 명확하게 바르게 그렇죠? 칼이 목에 들어오든 목이 칼에 들어가든 관계 없어요.


정확하게 사람 중에 내 추종자가 몇명이냐 신경쓰지 말고 우리 교회 몇명이다 신경쓰지 말고 바르게 정확하게 뭐를 걸고? 까짓 것 목숨 걸고 목숨 던지면서 나는 나의 가치와 명분 찾지 말고 나는 이렇게 하면 어떤 이득이 올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이게 무엇이 옳은가 바르고 정확하게. 그거는 성령 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주께서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집어넣은 거에요.


"남들이 나보고 공부 못한다고 해요."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나보고 키가 너무 크다고 해요." 그런데 신경 쓰지마세요. 작으면 작고 그런데 신경 쓰지말라고요. 무엇이 정확하냐예요. 무엇이 정확한 참이냐.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가 중요하지 내가 어떤 존재냐는 것은 그거 하지 마.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국가를 통해서 자기 존재를 안녕을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그냥 안중근밖에 안돼요.


어떨 때 안중근보면 소설 쓰고싶어. 소설 이름 정했어. 안중근의 상처. 안중근의 상처. 안중근은 상처 입은 정신병자다. 글쎄 좁은길 출판사에서는 아무도 안내준다. 제가 소설이나 쓸 필요 없지요. 안중근 증거하려고 하는거 아니거든.


첫째시간 한 것 한번 정리하고 쉽시다. 자, 안중근 이야기 왜 끄집어냈을까요? 우리가 그냥 조용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도 안중근처럼 보다 넓은 명분하나 믿고 아~ 그래서 나는 저 명분이 괜찮기 때문에 나는 살만하다라고 안중근, 제2의 안중근, 제 3의 안중근 나름대로의 국가까지는 안 나가더라도 나는 조국을 퇴진할 때까지 삭발하겠다.


삭발하면 괜찮아요. 왜? 또 자라니까. 손해 보는 장사 아니에요. 삭발하겠다. 그러나 중요한건 마음의 상처거든요. 삭발한다고 마음의 상처 없어집니까? 안 없어지지요. 그럼 그게 복수에요. 삭발로 하는 소극적 복수에요. 왜? 불안하니까. 왜 불안하지요? 조국이 법무부장하는 거 상처받았으니까. 그럴 때 누구 입장 생각한다고 했습니까? 응용문제 들어갑시다.


누구 입장 생각한다? 조국 입장 생각하는 겁니다. 너 같으면 내놓겠느냐? 그래 그 말이 맞아. 너나 나나 똑같애. 내가 만약에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겠어요? 내 5촌 조카라면. 참 돈 있어야 5촌 조카하지 돈 없으면. 내놓겠어요?


항상 한국 같으면 일본 생각하고 우리는 가룟 유다 생각하고. 난 명분 없이는 못살겠다. 난 나 무가치한 것 못 견디겠다. 그게 가룟 유다잖아요. 그게 마귀 들렸잖아요. 그러니 요한복음 더 이상 우리는 우리 자랑 할 수도 없고 예수님만 증거하면 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홍민희(IP:59.♡.122.247) 19-09-30 19:49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장부터 21장까지 정리합니다. 왜 정리해야 되는가? 다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한 4년? 엄청나게 오래 걸려가지고. 2장하면 1장 잊어버리고 3장하면 1,2장 잊어버리고 21장하면 1장부터 20장 다 잊어버리고. 그렇게 해놓고 뭐더라? 요한복음 1장부터 뭐더라? 이렇게 되는 거에요.


요한복음은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미리 경험케하는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지옥 간 사람이 용서를 경험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죽었다고 경험하는게 아니라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살아 생전에 경험케 하는거에요. 요한복음이.


그게 복음이거든요. 복음은 죽으면 만난다는게 복음이 아니고 우리가 죽기 전에 미리 왔거든 미리. 이 요한복음도 복음이지만 우리 속에 들어온 것도 복음이거든요. 살아있는 우리 속에 지금 목 쉬고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속에 요한복음이 통째로 들어와버리면 이거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내 믿음은 소용이 없어요.


내 믿음 말고 죽어서도 경험 못할 왜 지옥 갔는데 무슨 영생을 경험하겠어. 베드로가 어떻게 경험하겠어요 그 처소를. 베드로 목숨 바쳐도 안 받지요. 왜? 죽어도 경험 못하는게 처소에요. 처소를 성령이 와서 주잖아요. 처소가 있다고. 죽어서도 만나지 못할 그 처소, 그 모든 것을 미리 앞당겨서 제공하는 것이 요한복음이에요. 당겨서 제공하는 것이.


이걸 간단하게 이야기하게 되면 뭐냐 하면 미리 주와 함께에요. ‘미리 주와 함께’. 미리 주와 함께 미리. 미리 입니다. 죽어서 골라잡는게 아니고 미리 주께서 함께 하는 거에요. 방법은 아까 무슨 방법? 삭제. 뭐를 삭제한다. 주님의 가치 앞에 말씀의 가치 앞에 뭘 삭제한다? 나의 믿음 소망 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이걸 하게 되면 죽어서도 경험한 것을 미리 경험케 한다 라고 할 때에 내 쪽에서 움직일까요? 아니 네 쪽에서 움직이지마. 주님 쪽에서 움직여요. 그게 말씀이 뭐가 되었어요? 육신이 된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거에요. 너 힘들어?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렇게 되지요.


네가 힘든 세상에서 나도 힘들다. 네가 뭔가 환경에서 네가 당한다고? 그거 나도 같이 당했잖아. 왜 또 징징거려. 나도 당했어. 너만 알아? 나도 알아. 네가 어떻게 당했는지 나도 안다고. 요한복음 1장 읽어봅시다. 시간관계상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했잖아요.


자녀는 없는 거에요. 누군가 오지 않으면 자녀라는게 없어요. 아들 없어요. 누군가 오지 아니하면. 죽어서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 미리 오지 아니하면 자녀가 없어요. 내가 나를 자녀 되게 하는게 아니고 나라는 자녀가 없어요. 그분이 와야 자녀가 생겨요. 그걸 나라고 우기지 마세요. 주님이 오실 때 그 파생상품으로 자녀가 생기는 겁니다.


사도는 없어요. 제자가 뭐된다? 사도되는 거에요. 목격자 사도라는 목격자. 목격자는 없는데 제자가 목격자 되는 거에요. 우리는 아들 아니에요. 믿음이 있어야 아들이지. 믿음도 없고 아들도 아닌데 주께서 아들 되게 하신거에요. 그러면 나라는 것은 삭제되는 거에요. 이해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기존에 있는 나를 주께서 아들 되게 하면서 기존의 아들 아닌 나를 삭제시킨다니까요 삭제.


삭제하는게 뭐냐 하면 너는 배신자야 나 피해서 도망갈 인간이야. 베드로 봤지? 그게 너의 모습이야. 그게 네 모습이다. 내 뜻대로 안된다고 삭제해버리는 것. 그 상처. 그만큼 우리가 고집이 세잖아요. 우리가 한 고집 하거든요. 없애버립니다.


요한복음 4장 봅시다. 1장부터 차례대로 하는게 아니고 그냥 건너뜁니다. 4장에 보면 16절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렇게 하니까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남편이 없지요?


남편이 없으면서 자, 남편이 없는 여자가 자기 입으로 남편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이 여자에게서 그 다음 나올 말을 누구한테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대신해버리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 했지요. 이게 뭐냐 하면 횡이에요.


인간은 수평적으로 변심과 이동 밖에 할 줄 몰라요. 남편 하나 있었는데 둘 있었는데 지금 세번째. 수평적 이동. 그게 인간이 기껏하는 변심이에요. 팔자 고치기 이런거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걸 안다고 이야기한거에요. 안다. 누구보고? 사마리아 여인보고 안다고 했지요. 이 안다를 사마리아 여인 속에다가 이걸 박아넣어버려요. 이 안다를.


그전까지는 뭐냐? 이건 나만 알 걸 이렇게 하지요.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일걸. 아니야. 알아. 왜냐하면 알고 싶지도 않은 어떤 부끄러운 것 그것까지도 주께서 먼저 "5명이지?" "어?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했는데." 그걸 미리 그러니까 기초공사할 때 미리 철근을 박아 넣었잖아요.


박아 넣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앞으로 새남편에게 잘할께요 라는 말이 필요치 않은 거에요. 왜냐하면 새로운 6번째 남편한테 잘할게요 이건 필요 없어요. 그 남편하고는 안 헤어지고 잘 살게요 라는 것은 기껏 횡에서 횡으로 변심하는 것밖에 안되니까. 그러한 변심들은 더 이상 나한테는 의미 없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의미 없는 거에요. 우리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경험할 수 없는 철근이 안에 박혀버린 거에요. 이게 요한복음 4장입니다. 네가 예상치도 못하고 경험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을 그것도 그냥 아니고 미리 천국생활은 미리 해야 돼요. 미리 박아버린 거에요.


그럼 내 인생은 뭐냐 하면 내가 경험하지도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거에요. 경험하지 않는 일이. 그러면 그 철심이 있어 버리면 그러면 이 사마리아 여자가 나는 남편 6번째다 그걸 자랑하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메시아 만났다를 자랑하겠어요? 어느 쪽입니까? 그게 오늘 요한복음 21장 본문 아닙니까. 예수를 증거한다.


오늘 본문하고 딱 맞잖아요. 마지막과 처음이 딱 맞아 떨어지잖아요. 삭제시키는 거에요. 남자가 5이든 6이든 12도 관계 없어요. 12은 좀 심했나. 관계 없어요. 그냥 삭제시키고 박힌 철근이 뭐였는가? 죽어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미리 경험케 하는 것. 철근이 들어온다는 것. 철근 들어온다. 결과물이죠.


살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다는 내 요청은 완전히 묵살되고 그냥 사는 거에요. 주께서 철근 심지를 심은 심지 채로 그냥 사는 거라니까요. 만약에 우리가 살고 싶다고 한다면 불안감이 생기죠. 정신병이죠.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서 온갖 착한 짓은 다 할 거에요. 변명도 다 할 것이고. 여러분 그 불안감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감당 못합니다.


여러분 얼굴 어두워져요. 제가 그런 설교 했지요. 어두운 얼굴 가지고 교회 올 권한 없다고요. 지난 수요일에 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교회 올 권리가 없어요 우리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교회에 올 그러한 권한이 없어요. 뭐 수심 인삼 잡수셨어요? 수심 있게. 참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우리는 슬퍼할 권한이 없다니까요. 뭐 잘났다고 슬퍼해요.


류현진이 공을 못 던져서.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래. 그걸 왜 슬퍼합니까? 독도 심어 놨어요? 마음 속에? 주님이 미리 심어놨는데 그걸로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그걸 자랑해야지 왜 5번째 남자가 괴롭혀요. 왜 그걸로 슬퍼하느냐 말이죠. 남자 5명 없지. 그런 경험 안 해봤구나.


자, 요한복음 2장 봅시다. 요한복음 2장에 결혼식. 연회장입니다. 연회장에 물 6동이를 해라 이 말이죠. 물을 아궁이 있는데 제가 또 가봤다는 이야기 굳이 해야 됩니까? 사진찍었다는 이야기를 우리 교회에 올렸다는 이야기를 굳이 해야 됩니까? 6동이를 했어요. 누가 봐도 이건 뭐냐? 물이에요. 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어머니가 요청한게 뭐냐 하면 물이 아니에요. 포도주죠. 그렇죠? 간단히 이야기해요. 자, 포도주를 누가 원했다? 마리아가 원했지요. 마리아가 원했지요? 그러면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서 포도주 언급한 마리아는 제거되겠어요? 제거 안 되겠어요? 아까 원칙에 의하면 삭제 대상이죠? 이거 명분 이거 없어져야 돼요.


마리아가 왜 포도주를 원합니까? 손님은 밀려오지요. 주최측에서 포도주 없다하면 얼마나 삐지겠습니까? 이거 잔치도 아닌게 포도주 떨어지고 이게 뭐야 이렇게 되겠지요. 그럼 명분이 뭡니까? 명분은 나의 정신병을 가리기 위한 상상이에요. 야 이집에 다른건 몰라도 포도주 하나는 맛있다라는 것을 누가 기대합니까? 내가 기대를 해요.


왜? 그래야 내가 가치가 높아지니까. 아까 했지요. 나의 가치는 무엇을 가린다? 말씀의 가치를 가리죠. 그러면 반대로 주님의 말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누굴 제거합니까? 너는 이것밖에 안돼. 제거해야 되겠지요? 예수님 뭐라고 섭섭한 이야기를 해요? 섭섭한 이야기해보세요. 무슨 섭섭한 이야기했습니까?


여자여 당신의 요구조건과 나와 무슨 상관있습니까? 애가 수학 문제 못 푸는 거하고 집에 부도난 것하고 무슨 관계있어요? 내 잘못한 것하고 주님의 십자가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관계없어요. 내 명분 때문에 죽으신 거에요. 내 명분.


교묘하게 나의 헛점을 가리는 내 의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내 의 반대말이 죄잖아요.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게 아니고 내 의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그 의를 죄라고 하는거에요.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 믿는 것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안 믿어서 돌아가신게 아니고. 우리는 안중근이거든. 자기 잘난 체 한다고.


이런 나를 하늘나라에서 알아주기를 바라잖아요. 이게 명분이잖아요. 나라 잘되면 나 잘된다. 주님한테 잘 보이면 나 구원되겠지. 이게 바로 죄에요. 이거는 내가 믿는 결과물이 내 결과물이 돼요. 이건 나 증인되는 것이지 요한복음 마지막에 주님 증거되는 거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누가 참되요? 예수 믿게 되면 내가 참돼. 이건 미친 짓이에요. 이거는.


예수 믿는게 아니고 예수님을 욕보이는 거죠. 내가 인생 살면서 헛점을 내 믿음으로 치료하겠다는거에요. 내가 나를 치료하겠다는거에요. 쥐어박고 싶어. 지옥에나 가거라. 왜 우리 치료가 안되느냐 하면 경험한 것 가지고 나를 치료하기 때문에.


미처 살아있을 때 경험한 그것 가지고 나를 치료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기억가지고 나를 회복시키려고 만회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한테 서운한 이야기 들어야 됩니다. 여자여 그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포도주 없습니다. 주님이 안 들어줍니다. 이런 포도주 없어요. 끝났어요 이제.


그러면 마리아의 포도주가 의미하는 것은 뭐냐 하면 너는 포도주를 달라고 하지만 기껏 뭐 밖에 안된다? 이거는 물 밖에 안된다. 물밖에 안돼요. 인간이 기껏 요청해봐야 이거는 물 밖에 안돼요. 그러면 물에서 포도주 될 가능성은 없지요. 주님도 그런거 안 들어주고.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했고 물에서 포도주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믿음은 믿음 없음에서 믿음 있는 경우는 없어요. 없어요. 그럼 있는 것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 누구밖에 없어요? 오직 있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지요. 예수님에게서 뭐가 나옵니까? 포도주가 나오는 거에요. 신자는 예수님만 보여야 돼요. 왜? 나는 삭제당했으니까.


주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거에요. 없어도 되는데 오늘도 없어도 되는데 주님 때문에 오늘 이런 일이 생긴 거에요. 주님 때문에. 이거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 이런 신앙은 정말 이거는 성령 아니면 모릅니다. 이 이야기 몰라요. 뭐 30년 믿었습니다 50년 교회 다녔습니다 그 소리하지 마세요. 그건 소용없어요. 주님 때문에 있는 거에요. 주님 때문에 있어요.


그러면 나를 있다고 해야 됩니까 있음을 주님한테 붙여야 돼요? 주님 계심에 나는 없는데 주님 계심의 증인으로서만 있는 거에요. 왜? 나는 인간일 뿐이니까. 나는 없는 존재니까. 없는 존재인데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위해서 나는 없는 존재가 주님 입장에서 볼 때 있는 존재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제자가 아니라 사도에요. 사도는 지난 시간에 했듯이 베드로가 네가 원치 않는 죽음을 죽게 될 것이다. 네 죽음을 통해서 나 있음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이게 사도의 가는 운명입니다. 내 상처가 있더라도 주님 상처가 덧입어 버리면 이제는 내 상처가 아니고 누구의 상처냐. 주님의 상처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운반체. 아 십자가 때문에 존재하고 십자가 때문에 나는 이미 천국 생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주님만 계시는 거에요. 그게 주님 나라니까.


우리는 그분의 이미지로서 찬양하지요. 원래 천사한테는 존재라는 말을 하면 안돼요. 천사한테는 뭐냐 기묘자라고 해요 기묘자. 분명히 있는데 없고 없는데 있고. 만지면 없는 것. 참 희한하죠. 요한복음 20장에도 나오지요. 예수님 보고 만지려고 하니까 만지지 말라고 하지요. 있다는 자는 만질 수 없고 없다는 자만 만질 수 있는 것. 그겁니다. 녹취하면 희한하겠다. 목사님이 날리는데 쭉쭉쭉 수제비 날리듯이 모르겠어요 하여튼 저는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포도주는 마리아가 요청해서 나온게 아니고 예수님의 자기 증거하기 위해서 나온거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이걸 가지고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이걸 표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표적은 나중에 해답이 나오는걸 표적이라고 해요. 남들 보기에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들어간 내용은 주께서 나중에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 할 때 그것과 연계하면 비로소 의미가 나타나는 그것, 그게 바로 표적이거든요.


그런데 한국교회가 기적을 원해요. 기적은 마귀가 줘요. 왜? 그래야 내가 혜택 입으니까. 하나님한테 챙길거 챙겼으니까. 그런데 표적은 뭐냐? 표적은 삭제거든요. 너는 너 때문에 사는게 아니라 나 때문에 있다는걸 보여줄 때 아 내가 여기 있음에 내가 오늘 사는 하루에 내탓하면 돼요? 안돼요? 왜 자기 탓합니까? 자기 탓하면 안되지요.


지난주 이발하니까 여러 군데서 이발이 뭐 잘못됐다 이게 왜 내 탓입니까? 내가 깎았습니까? 우리는 하루 살면서 하루 어떤 일과도 자책하지 마세요. 그거는 시건방진 거에요. 그 미친 거에요. 왜 발걸음을 왜 자기가 지탄합니까. 어디 뭐 주님이 내 솜씨 받아요? 안 받아요.


1장에서는 누가 왔다는 것. 누가 오심으로 아들 됐다는데 그 아들은 내가 아니고 아들되게 난 있고 내가 나 되고 싶은 것은 삭제당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어도 죽어요. 그 점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봅시다. 3장 30절 제가 읽어볼테니까 맞는가 보세요. 그는 흥해야 되고 제가 읽어볼테니까 맞는가 보세요. 그는 흥해야 되고 나도 같이 흥해야 되고 맞아요 틀려요? 아니죠.


그는 흥해야 되고 나는 뭐해야 되고? 쇠하여야 되고. 그게 뭐냐 하면 앞에 카드가 없어져야 뒤에 카드가 나오니까. 이걸 가지고 선지자. 이게 선지자에요. 선지자의 그 모든 행동은 뒤에 오시는 분이에요.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고 오시는 분이에요. 세례 요한은 오시는 분이고 지금 우리는 성령이니까 함께 계시는 분이고, 같은 말이에요. 함께 계시는 분이고 세례 요한은 뒤에 오시는 분.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섰다 하니까 이걸 누가 논리가 맞습니까?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서 있다. 나보다 뒤에 태어난 분이 나보다 앞서서 계신 분이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뭐 시합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선문선답이죠. 내 뒤에 계시는 분이에요. 다시 말해서 너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다. 그게 세례 요한도 경험했고.


요한복음 3장 27절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맹탕이다. 우리는 원래 맹탕이에요. 맹탕이 부끄러우니까 상상하는거에요. 예수 믿고 천당간다고. 그거 맹탕이에요. 그거는 무엇이 없어요? 무엇이 누락됐어요? 내가 죽어야 된다는게 누락되어 있지요. “나는 마땅히 지옥가야 돼”가 누락되어 있잖아요.


그거는 복음이 아닙니다. 그거는 예수 믿는 자기 자신을 증인이기 때문에 요한복음과 다른 노선이에요. 지옥 갈 노선이에요. 천국 갈 노선이 아니에요. 제가 또 이렇게 강의하고 녹취하고 다 올려놓으면 결국 또 나오는 질문이 목사님 그럼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내가 공사장 인부도 아니고 내가 철심을 내가 철심이 있어야 박지. 없는데. 성령 주시는 분이 박지 내가 박습니까? 나는 그냥 증인인데. 그럼 나는 못한다 밖에 할 수 없지요. 못하면 당신은 왜 하느냐. 나는 죽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못한다 하면서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언제 죽을지 몰라요. 그래서 죽잖아 그래. 쓸모없다고 죽자나. 뭐 할 말 있어? 없어.


내가 못하니까 죽잖아요 그래. 나는 죽어도 주님은 살아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은퇴해야지요. 은퇴하는데 좀 오래 걸리지만 매일같이 은퇴해야지요. 사라지는게 죽는게 은퇴 아닙니까. 재밌잖아요. 베드로보고 하나님이 네가 죽음을 통해서 어떠한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겁니다. 은퇴해라 이 말이죠.


베드로 하는 말이 "쟤는요?" "쟤도 은퇴해 왜 그래. 사도 요한도 은퇴한다고. 너나 생각해 저기 생각하지 말고." 삭제입니다. 없애버립니다. 심지어 철심이 꼽혔습니다. 갑자기 제목을 철심으로 바꾸고 싶다 갑자기. 자, 요한복음 다 못하겠네. 다음시간으로 미뤄야지 억지로 하려고 하면 무리다. 다 못하면 남겨둡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니기 때문에.


요한복음 2장 봅시다. 이 성전을 내가 사흘 동안 일으킨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 성전이 누구냐 하면은 성전이 46년 동안 짓고 있는 성전 있잖아요. 이 성전과 예수님 성전 있지요. 46년 성전은요 차곡차곡 있기 때문에 있음, 있음, 있음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성전은 예수님 있음, 있음이 아니고 중간의 뭔가 결정적인 현상이 일어나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있음에서 뭐가 됩니까? 없음이 되야 돼요.


없음이 되면 어떤 인간도 이 성전을 믿고 따라올 사람 다 여기서 다 되돌아가게 되어있어요. 있어야 믿지 없는데요. 없고 홀로 사흘 만에 있음이 되어버렸어요. 그럼 성전은 내가 찾아가고 다가갈 수 있는 성전이 아니고 이 있음이 없음을 가지고 있음이 없음이란 것을 앞장세워서 우리 있다고 찾는 46년 성전을 완전히 삭제하고 부정하게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살아계신 성전입니다.


아이고 복잡해라. 제가 지금 복잡하려고 일부러 하는게 아니고 이 말이 맞아요. 복잡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이게 맞아요. 정확한 거에요 정확한 거.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 이것만이 정확한거에요. 없음이 게재되는게 정확한거에요. 이렇게 하면 복 받습니다 위로하는게 정확한게 아니고 당신은 위로 받을 자격이 없다는게 정확한거에요. 위로 받을 자격도 없고 교회 나와봐야 소용없습니다. 지옥갑니다 라는 것이 정확한거에요.


3장 봅시다. 3장. 정리하자고 하다가 몇 년 가겠다. 여기에 3장 4절에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참 요한복음은 한결같아요. 삭제 당할 것을 사람의 입으로 예수님 앞에서 자기가 알아서 삭제당할 내용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도록 유도하지요.


유도한 방법은 뭐냐 하면 주님이 말을 툭 던져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나라 못 간다. 툭 던져버려요. 그러면 그때 그 말 듣고 인간이 숨겨놓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막 나오는 거에요. 아이디어가. 그 아이디어는 인간이 기껏 인간일 수밖에 없는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으로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면서 아이디어 나옵니다.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다시 태어납니까? 라고 이야기하죠. 그럼 그 방법은 오늘날 와서는 가능하지요. 뭐냐 하면 DNA가 DNA + 단백질이 있으면 다시 태어날 수가 있어요. 냉동인간.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런데 주께서 DNA를 어떻게 알았는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육에서 난 것은 뭐가 되요? 100번 태어나도 소용없다. 냉동 백날해도 냉동식품밖에 안돼요.


아무것도 안돼요. DNA가 육이거든요. 그러면 육이 아닌건 뭐냐? 없어요. 없는데서 태어나야 돼요. 없는데서. 성령 자체가 없는거에요. 왜? 바람 자체가 없는거니까. 붙잡을 수 없는거니까. 없는데서 태어나야 돼요. 그래서 아까 그랬잖아요. 믿음은 없는거라고요. 없는데 생겼어요.


진짜 미친 것도 아니고. 없는데서 생겼다니까요. 그러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줄 아세요? 믿음 없는 사람이. 너는 생겼는데 나는 왜 안 생기냐 이렇게 따져요. 너는 생겼는데 나는 왜 안 생겼느냐. 그러면 우리는 나도 안 생길 줄 알았지. 나도 안 생길 줄 알았는데 생겼어.


둘 다 시집가가지고 한 5년 됐는데 둘 다 애기 못 낳는 거에요. 어느날 만났는데 카페에서 만났는데 친구가 나 애 생겼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요. 너는 생겼는데 나는 왜 안 생기냐. 몰라. 모르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따라잡을 수 있고 흉내내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이 너 거듭나면 나도 거듭난다고 하는거에요.


니고데모는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같은 종족 인간으로 보는 거에요. 주님을 하늘로 봤다면 나도 뭐든지 따라잡을테니까. 안돼. 나는 있지만 너는 있어도 없는 존재가 돼. 자리에 없는 존재 되게 하셔서 있게 하시는 거에요. 나 따라와라. 왜냐하면 예수님이 없다가 있었잖아요. 그 코스 그대로 가야 돼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미리 경험하는 거에요. 미리 있는데 미리 있는게 이게 주께서 없는 존재로 간주해가지고 개무시해버리는 거에요. 그러면서 나타나는 거에요. 있는데 내 몸이 아니고 누구 몸이다? 주의 몸. 이거 더러운데? 아까 구멍을 상처를 구멍을 더 뚫어버리죠. 걸레 밖에 안되는 나를 주께서는 거기에다가 속을 꽉꽉 채워가지고 주님의 십자가에 모든 의로움을 채워놔서 주의 의로움으로 구원받게 한다니까요.


그러면 혹시 우리 안에는 없지만 혹시 여기 안 믿는 사람 있으면 목사님 백날 해봐야 나는 안 믿어집니다. 안 믿어집니다 이러거든요. 그 이야기를 굳이 나한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나는 당신은 믿어진다 안 믿어진다가 당신이 당신 뜻을 증거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주의 증인을 찾지 내 기분 어떻고 내 마음 어떻습니다 굳이 내가 듣고싶지 않습니다. 어어어어어~~나 안 들을래. 당신이 어떻다 나는 이러합니다 듣기 싫어요. 성령은 주님만 증거하기 때문에. 여기 기록된게 전부다 예수님 증거하는데 반드시 인간의 한계를 동반시켜서 내놓는 증거들이에요.


그 다음에 뭘 보느냐 하면은 3장 20절 봅시다. 할 수 없다. 이거 최종 정리하는데 몇 주 갑시다. 내가 그냥 하려고 하니까 내가 답답한게 있는데.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뭡니까? 행위가 뭐로 드러난다? 드러날까 함이요.


빛의 반대말이 뭐냐 하면 행위가 되죠. 행위는 뭐를 구축하느냐. 내가 행했다. 나는 내 행함의 결과물이다를 이걸 고집하는 거에요. 고집하는 거에요. 빛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빛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은 나는 나로서 만족하니까 굳이 빛으로 갈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그럼 이걸 오늘 본문과 하면 이건 누구의 증인입니까? 나의 증인이죠. 나의 증인은 나는 이렇게 잘 행하고 있습니다가 이게 바로 어둠이죠.

그런데 여기에 보면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했죠. 빛으로 왜 옵니까? 내가 원천이 아니고 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결과물 고무줄 탁 놓으면 어디로 옵니까? 고무줄 쥔 손으로 황급히 되돌아오지요. 우리는 되돌아갈 자리가 있어요. 왜? 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자랑하면 그건 주님의 증인이 아니니까 주께서 하셨습니다 하고 후딱 주님 쪽으로 오는 거에요. 빛으로 오는 거에요. 그래서 성도는 예수로 인하여 기뻐하고 예수로 인하여 자랑하는 겁니다. 어떤 경우라도.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나님 앞에 행한 것은 예수님 밖에 없으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잖아요 라고 하는거죠.


그다음에 요한복음 4장하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요한복음 4장 넘어가면 5장 나오겠지요. 자, 5장에서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5장 9절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되어 있지요. 38년된 병자 이야기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아 이거는 아까 동영상 강의에서 했는데 움직이고 있어요. 움직인다.


움직일 때 못 움직이는 사람이 움직였어요. 못 움직이는 사람이 움직입니다. 그러면 제가 아까 했지요. 죽어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미리 경험한다고 했지요. 이 사람은 못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몇 년입니까? 38년 동안 못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38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는데 움직였다 이 말이죠. 그러면 여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 있잖아요.


바리새인들이 쭉 보면서 뭘 보느냐 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가 남을 대할 때 예수님 빼고. 당신이 어떤 행동을 했기에 움직입니까 라고 이야기하겠지요. 예수님 빼고. 그럼 바리새인들이 볼 때 뭘 보느냐 하면은 율법의 차원에서 보겠지요. 그러면 바리새인들의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증거입니다. 내가 이만큼 의롭다를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법들을 다 동원시킨거에요. 내가 의롭다는 것을.


내가 의로울 필요가 없어요. 내가 내 믿음이 필요가 없어요. 너 믿음 없지? 하면 “네” 하면 되요. 당신 예수 믿나? “아니요” 하면 된다고요. 왜 굳이 그 사람한테 내 믿음 있다 없다 내 증거를 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지금껏 여러분 그렇게 살았으면 이제부터 고치시기 바랍니다. 누가 믿음 있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이야기하세요. 그것도 웃으면서. 기분 좋은 듯이. 아 나 기분 너무 좋아 믿음 없어. 나 믿음 없는데 이렇게 살아. 네 믿음이 그 꼬라지냐. 믿음 있으면 자꾸 써먹으려고 해요 문제가.


표적인데 주님의 표적을 내 기적으로 바꾸려고 하는거에요. 티낼라고. 나는 이런 이런 거 받았다. 기적 받았다. 자꾸 표적인데 표적이 아니고 표적을 기적으로 바꿔가지고 자기 자랑 하려고 하는 거에요. 내가 예수한테 부탁했더니 예수님이 내 아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꿨다. 맨날 지 자랑하면 안되겠지요. 그렇죠? 뭐 빠진거에요?


“여자여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를 완전히 빼고 왜곡된 편집을 한거에요. 마리아가 그럴 리 없지만. 물이 포도주 된 것은 너는 인간도 아니다 그런 뜻이거든요. 바리새인은 율법을 합니다. 그러면 움직일 때에 이 38년 병자가 움직일까요? 1번 38년 병자가 움직인다. 2번 예수님이 움직인다. 몇 번입니까? 2번이죠. 병자가 움직이는건 이건 예수님 증인하는거 아니에요.


38년 병자는 자기도 생전에도 이런 경험 못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기도 어리둥절해요. 오늘 제목 진짜 어리둥절해요. 제목을 바꿔야 되겠다 정말. 이게 확 오네. 주님 저를 왜 천국 보냅니까 어리둥절한 거에요. 믿음도 없는데 가고 있거든요. 주님께서 38년 병자를 이용한겁니다. 네 믿음 좋은게 아니고 배후에 예수님께서 38년 병자를 조작해가지고 누구를 겨냥하느냐?


이 율법주의자, 안식일날 들고 가면 안된다는 이들과 예수님의 율법관의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애매하게 중간에 욕 얻어먹는 경계선상의 경계선의 존재를 38년 병자를 한거에요. 그게 우리 처지하고 똑같은거에요. 우리는 중간에 끼인 존재가 되가지고 괜히 욕 얻어먹어. 믿음 없는데 천당간대. 이게 정확하게 맞는건데 남들은 믿음 없다고 지옥간대.


아까 그랬죠.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믿음을 갖는다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들어갈 틈이 없다니까요. 믿음이 있으니까. 그들은 믿음이 어리둥절하지 않아요. 용 써서 얻은거에요. 랄라랄라 기도원 가서 삼천배해서 얻은거라고. 용 써서 한게 어리둥절한게 아니라니까요. 자유가 없어요.


그 다음 기적을 유지하려면 또 빡씨게 또 자기절제, 자기 조심 또 해야 돼요. 함부로 죄 지으면 안되고 행동 조심 이래야 또 복 준대. 그거 안하면 저주 온대. 애가 아프던지 집안 불나든지. 얼마 전 우리교회 불났거든요. 불날 뻔. 밑에 어떤 사람이 담배 펴가지고. 소방차 10대 왔다는데 나는 뭐 교회 없었으니까 몰랐지요. 모르면 되지.. 그런데 다 끄고 갔답니다.


믿음으로 불 끄게 하옵소서 안했는데 알아서 그냥 살아요 우리 교회도. 진짜 불날 수 있어요. 불나면 불나는거지. 살지 뭐. 뭐 어떻게 할건데. 뭘 대비해요? 착함으로 대비할까요? 어디 마귀같은 그런. 착함으로 대비할까요? 그래서 대비하면 누구 증거입니까? 착함으로 대비했다는 누구 증거 돼요? 내 증거 되잖아요.


내 상처를 내 식으로 내 경험한 것으로 메꾸려고 하지 마세요. 그게 바로 요한복음 5장입니다. 뭐냐 하면 주님은 해놓고 너는 빠져라. 너는 빠져라 내가 직접 어둠과 상대하겠다. 자, 그러면 어두움은 분명히 그냥 어두움은 있어요. 어두움은 있는데 어두움의 특징은 뭐냐?


있는데 그냥 있지 않고 예수님의 미리 오심, 메시아의 마지막 때 오시는게 아니고 미리 오심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양상으로 어두움이 나타납니다. 낯선 어리둥절한 체험을 미리 받았는데 남들은 교회 50년 다녀야 얻을 수 있다고 할 때 그게 바로 어두움이에요. 바리새인들이. 목사 섬겨야 되고 뭔가 십일조해야 복 받는다고. 십일조 안해서 저주 많이 받았다고 그런 식으로 해서 인간의 행함을 증거하는 것.


인간의 행함을 증거하는 그것이 어두움이에요. 그게 바로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거에요. 예수님은 나한테 그런걸 요구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요구한거에요. 그게 있어야 명분이 있기 때문에. 뭔가 덜 허전해. 이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 같고. 믿고 뭔가 기적이 있어놔야 내가 믿는가보다 하고 약간 안심이 되는 것.


전도할 때 먹혀가지고 예수 믿을께 울면 아 역시 나는 성령과 함께 있는구나 하는 거에요.  그런 것들이 십자가가 빠져버린 모든 고백입니다. 십자가 빠진. 요한복음 5장 있는데 그다음에 5장 39절 유명한 말씀이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누구를 증거하는 것이라?


너희가 아니고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너희가 아니요 하는 것 보니까 너희에게서 예수께 오는 방법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없습니다. 내가 성경 상고해보니까 예수님 나오더라. 이런건 없어요. 우리가 시작한 일은 절대 예수님 안 나옵니다. 예수라는 명분이 나오겠지요. 예수는 안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증인은 우리가 예수를 버렸다라는 내용을 같이 포함해줘야 예수의 증인됩니다. 나는 주의 일에 협조했다 이렇게 나오면 증인될 수 없습니다. 6장 봅시다. 6장 어딜 보느냐 하면 6장 48절에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그 다음에 먹었어도 그 다음에 뭡니까? 죽었지요. 먹었어도 죽었지요.


만나가 땅에서 농사지은 겁니까? 하늘에서 온 겁니까? 하늘에서 왔지요. 그럼 하나님이 주신거지요. 하나님이 주신건데 살았다? 죽었다? 죽었다 이 말은 죽으라고 먹인거에요. 죽으라고. 인간의 본디 애초부터 죽어야할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하늘에서 만나 주신 거에요.


만나가 뭐냐 하면 그거에요. 제초제에요. 제초제. 죽으라고 독약 죽으라고 주는 거에요 만나가. 그럼 무엇과 극한 대조를 이룬다? 너희는 만나 먹어도 죽었잖아요. 그러면 그 이야기를 왜 합니까?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내가 생명의 떡이라면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면 안돼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앞에 뭐가 있어야 되요? 만나를 대조시켜야 돼요.


만나를 누가 먹어요? 만나를 그들이 먹지요. 만나 먹어서 죽었는데 내가 나를 먹는 자는 뭐가 됩니까? 안 죽는다가 돼요. 안 죽는다가 되지요. 왜냐 하면 죽음을 이기기 때문에. 이미 죽은 만나 오고 주님의 십자가 더해 버리면 만나는 죽으라고 준거죠? 그러면 이미 죽은 자이죠? 죽은 자이기 때문에 내가 살려내는 거에요. 안 죽으면 못 살려내요.


참 어렵다. 내가 안 죽은 자라면 살려낼 수가 없어요. 퍼득퍼득한 놈은 망치로 머리를 완전히 힘을 쫙 빼야 돼요. 그래야 온전히 주님만 자랑하죠. 이래도 안 죽어. 상처. 더 상처 받아. 내꺼 나는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되는게 주의 뜻이야. 내세울게 없게 만들어요.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무슨 떡이니? 살아있는 떡. 내가 바로 먹어도 사는, 먹는 자는 영생하는 떡이 돼요. 내가 떡이다.


그 떡을 사람이 뺏어먹을 수 없고 딸이 아버지 떡을 뺏어먹을 수 없고 아버지가 쪼개준다고 영생 얻는 것도 아니고 이거는 인간 쪽에서 그 떡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만나 같으면 주워 먹으면 되지요. 이게 인간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살지를 못하는 거에요. 내 쪽에서 행함을 시도를 하기 때문에 영생을 못 얻는 거에요. 어리둥절 해야 돼요.


이 떡이 옴으로써 더 이상 나는 내 행함으로 영생얻는게 아님을 아는 자는 이미 성령 받은 사람이고 이미 구원받은 생명의 떡이 작용하는 주님의 증인으로써의 기능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 하루하루가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는 겁니다. 내 행함 때문에 얼굴 찡그리며 그렇게 살지 마세요.


그 다음에 6장에 65절에 보면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되어있지요. 언젠가 이 강의할 때 했는데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않으면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할 때에 올 수 없다 뺴놓고 나머지 다 지우세요.


그럼 남는게 뭡니까? 올 수 없다지요. 그걸 주목 해야 돼요. 올 수 없는 거에요. 예수님을 얼굴 더듬고 같이 사진 찍고 예수님 껴안고 있고 그래도 예수 몰라요. 올 수 없어요. 여러분 남편하고 아내하고 한 몸입니까? 처음 신혼 때는 한 몸인거 같지요? 살아보니 뭡니까? 아 딴 몸이구나 이렇게 되지요.


부산 강의할 때 그런 예를 들었잖아요. 남편이 질질질 울면서 남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품고 있다가 이야기한다고 내가 너를 가정을 위해서 헌신하고 내가 상처 나면서 고생하면서 다 줬다. 그러니까 너도 내 말 들어줘야지 내가 가족으로서 너 이렇게 먹여살렸잖아.


이렇게 자기 공로를 하고 아내한테 당부를 할 때 아내 쪽에서 준비된 멘트는 뭐라 했던가요? 혹시 부산 강의 들어본 적 있습니까? 경상도 말로 일부러 부산에서 하니까 경상도 말 썼어요. 표준말 안하고. 나는 표준말도 경상도 말이지만. 뭐라 했냐 하면 유명한 멘트인데 "내가 니끼가?!" 그 한방에 남자는 그로기 상태가 돼요.


남자는 내가 여자한테 잘 해주면 여자가 내 심정을 알고 내꺼 될 거라는 착각 곱하기 착각, 플러스 착각. 남자는 이상하게 이걸 이 착각에서 못 헤어나와요. 때로는 명품 가방 들고 어때? 옷 하나 사입을까 이래가지고 이 말하면 여자가 남자한테 뭐 푹 빠져보이는 것처럼 하지요. 푹 빠져보이는 것처럼 하는 거에요.


또 나올게 있을 거니까. 죽은 송장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소원이나 들어주자. 이런 식으로 해주는거죠. 손해날 거 없으니까. 인간은 누구의 것이다? 아니다? 아닙니다. 심지어 자식 마저도. 자식은 더하고요. 아빠한테 빼먹을 것만 생각하고요. 아빠 좋아? 엄마 좋아? 아 요즘 나한테 이런거 묻는 사람이 있어요. 손녀가 좋아요 손주가 좋아요? 미치겠다. 아 참 답변 곤란하게. 당했어 당했어 난 당했어.


올 수 없습니다. 교회 예배당에 아무리 봉사해도 갈 수 없어요. 이 원칙 분명히 하는 겁니다. 그럼 올 수 없는데 구원받은 사람은 뭐냐? 올 수 없는 예수님께서 떡 속에 이미 그 사람을 만들어 논거에요. 만들어놓고 그 앞에 삭제한거죠.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 놓고. 없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올 수 없는데 아버지가 보낸 자 있잖아요. 6장 몇 절이냐 하면 요한복음 6장 39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아버지의 뜻이 뭐냐 하면 그 다음에 뭐가 돼요? 내게 주신이죠? 내게 주신 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알까요? 그 명단을 인간이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만 갖고 있어요?


예수님이 갖고 있지요. 명단 가진 분이 일방적으로 찾아가는 거에요. 성령을 통해서. 구원해달라고 손들고 너라고 해주지 않아요. 그냥 기다려. 줄께. 갈께. 인간은 그냥 안 기다립니다. 인간은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에요. 자기가 믿음을 만들어내요. 멋있는 믿음을 성경대로 믿음을. 이건 어리둥절한게 아니죠. 자기가 공들여 만든거에요.


그런데 그 공들여 만든 것을 누구나 다 그런데, 누구나 그래요. 그러나 막상 성령 오게 되면 갑자기 공들인 믿음이 이게 거짓인게 탄로가 나면서 그동안 내가 무척이나 헛수고 참 많이도 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 저는 마지막 오늘 할 말이 이거밖에 없네요. 내가 얼마나 나한테 못된 짓을 많이 했는지.


진짜 주님이 나를 쳐죽이기 전에 내가 나를 쳐죽이고 싶어. 뭘 하나 했다고 복 받을 것이다. 뭘 나쁜짓 했다고 저주받을 것이다. 왜 그리 호들갑을. 주님 팔짱 끼고 멍하니 쳐다보고 자기가 자기 기분에 취해가지고 마귀에 농락당하면서.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요. 언제까지 자기 기분에. 자기 정당함. 자기 증인되면서. 성경은 주님 증거하라고 하는데.


마지막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7장에 보면 7장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에 7장 48절요.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그 다음에 49절 봅시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그 다음에 뭡니까?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뭐다? 저주를 받은 자로다. 저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저주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저주 받았지요. 예수님은 저주 받았어요. 그러면 우리는 저주 안 받을거다 하면 안되겠지요? 우리는 태어남 자체가 저주에요. 죄 지은 사람이 저주 받아야지 뭐 받아요? 멀쩡하지도 않는 인간이 멀쩡한 행세하면 안 되잖아요. 저주하면 저주 받아야지요. 우리는 다른 선택사항이 없어요.


살면서 고생이다. 그걸 아는게 다행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인걸 아는 것 자체가 다행이에요. 마치 고생 안해야 되는 것처럼 여기지 아니하고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이에요.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이라고 알면 모든 게 감사, 감사지요. 고마움, 고마움 밖에 없어요. 저주 받아야 되는데 이게 왠 은혜인지 왠 사랑인지. 자기 증거 하겠습니까? 다 누구 덕분입니다? 다 주님의 덕분이고 주님의 결과물입니다 이렇게 하겠지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언제까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 모르지만 90이 되도 80이 되도 또 살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을 주께서 너무 잘 아시니 감사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진심으로 주님 덕분에 살고 있음으로 고백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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