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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23:30:35 조회 : 302         
허상과 실상 누가복음 22:22 240402 이름 : 이근호(IP:112.165.4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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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민희(IP:115.♡.177.240) 24-04-16 01:10 
강남-누가복음 22장 22절 (허상과 실상) 240402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22장 1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성경에 깊이 모르는 사람한테는 부담이 되는 내용이죠. 유월절이 뭐며 무교절이 뭐며 광복절도 아니고 삼일절도 아니고 남의 나라 절기까지 굳이 신경 써야 되느냐 생각이 들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유대인은 그 현재 우리는 4월 달이지만 유대인은 1월 달. 1월 달도 중요하지만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그렇게 되어있죠. 목요일은 수요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 목요일이에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저녁이 되고 아침에 되니” 그걸 그대로 적용해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 유월절 준비의 날, 그 다음에 금요일 날. 드디어 금요일 날 유월절 및 무교절 축제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유월절이 무교절 축제 첫째 날이 된다. 유월절은 하루, 무교절은 일주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토요일은 드디어 안식일. 제칠일 안식일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잖아요 옛날부터. 영어 학원부터 시작해서 돈 벌어가지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그 다음에 일요일. 안식일 이후에 첫 주가 일요일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자, 이 날짜가 유월절 무교절인데. 유월절 무교절이 왜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양을 잡아서 피 흘려서 양고기는 먹고 피는 문설주에다가 발라놨더니만 저주를 주는 죽음을 주는 천사들이 그 집 만큼은 패스 그냥 통과한 거예요. 그것은 죽었다 치고 그냥 이거는 벌써 죽었다 치고. 왜냐하면 집에 묻혀있으니까. 피가 있다는 것은 죽었으니까 피가 있을게 아닙니까. 피가 있는데 또 죽일 필요가 없잖아요. “어이 천사 이집은 갔어. 죽었어.” 죽었으니까 그냥 건너뛰는 거예요. ‘passover’. 건너뛴다. 패스한다. 죽기는 누가 죽었느냐? 죽기는 양이 죽었지요. 그런데 양이 죽었는데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죽은 양이 살았다고 하고 살았다고 하는 그 이스라엘 장자가 죽었다가 되는 겁니다. 죽은 자가 영원히 살고 산 자는 죽은 자가 되는 겁니다. 바꿔치기가 돼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양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 잡았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유월절 양 살리기 위해서 죽을 사람 모집해서 죽여버렸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애굽 사람이야 어차피 다 죽을 사람이고. 그걸 신약에 오게 되면 죽은 예수님 살리기 위해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루어 주시는 겁니다. 그게 유월절이에요.


유월절은 율법에 의하면 하루고 무교절은 일주일 동안 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시간 루트는 시간 순환은 일주일이 끝이에요. 일주일이 끝입니다. 일주일 지나면 끝났어요. 일주일 지나면 종말이에요. 종말 되면 또 양 잡아야 돼. 또 안식일 또 지켜야 돼요. 양 잡아야 돼요. 그러니까 안식일을 순환시킨다는 말은 시작과 끝을 루틴, 반복해서 계속해서 활용하는 겁니다. 반복해서. 순회하는 시간이에요. 순회하는 시간. 그게 어디에 박혀있느냐? 율법에 박혀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안에는 뭐가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지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형과 그림자로 만들어 버리죠.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샘플이다 보면 돼요. 샘플. 설계사무소에 가면 자기가 설계한 아파트, 아파트를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조그맣게 모형 샘플 만들어놨지요. 이스라엘의 일어날 일이 온 지구상에 그대로 확산되어서 일어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샘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뭐가 주어지느냐?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 지키면 살고 못 지키면 저주받고 그렇습니다.


그게 이 세상 인류에 확산이 되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영생 얻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받고 그걸로 온 인류에게 75억, 현재는 75보다 더 돼요.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똑같은 문제지가 나가요. 똑같은 문제지. 수능이에요. 똑같은 문제지에요. 주를 사랑하느냐? 똑같은 문제가 주어지는 겁니다. 나는 절에 가기 때문에 예수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거 소용없어요. 벌써 내가 다 이야기했는데 출제 범위 다 이야기했는데 딴소리해. 나 알라신을 믿기 때문에 모른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알라신을 믿든 어르신을 믿든 그런 거 완전 묵살하고 이미 확정졌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애가 태어난 지 15일 됐는데. 15일이고 일주일이건 간에 그런 거 일체 고려하지 않습니다. 15일 된 애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네가 왜 판정해? 내가 사랑주면 사랑하는 것이지 네가 그 애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어. 우리 아버지는 치매 걸려가지고 옛날에는 교회 좀 나갔는데 치매 걸려서 몰랐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남의 사정 느그 아버지 사정 생각하지 말고 본인만 생각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유월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남자나 여자나 성별 관계없이 나이 관계없이 직업과 인격과 성격 관계없이 고루 똑같이 제공되는 겁니다. 마치 율법의 기능 같아요. 그러면 율법을 지킨 사람이 있더냐? 율법을 지킨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은 인간이 자기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출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문제를 내가 출제하지 않았어요. 내가 문제 출제하지 않았다는 말은 문제도 못 낼뿐더러 해답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해답을. 십계명 끝에 보면 탐내지 마라 나오거든요. 그런데 어디서 어디까지가 탐심인지 탐심인데 아닌지 그거는 본인이 몰라요. 출제자만 알지 모른다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문제를 내 놓고 하나님께서는 심판해버리는 겁니다. 인간들 입장에서 어떻게 됩니까? “이거는 반칙입니다” 이러거든요. 그럼 하나님은 “네 존재 자체가 반칙이야. 네가 생겨났다는 게 반칙이야”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바로 여기 3절에 나옵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사탄이 들어가요.


자, 이 말은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는 말은 가룟 유다가 사탄의 가현체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가룟 유다가 사탄의 가현체. 우리 보기는 인간이죠. 인간인데 이거는 허상이 되고요 허상, 가룟 유다의 실상은 뭐냐? 실상은 악마입니다. 악마. 악마가 인간 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허상이니까 허상은 뭐가 되느냐? 없다가 돼요. 그럼 실상은 있다가 되겠지요. 여기서 내린 결론은 뭐냐? 악마만 있다. 인간은 없고 악마만 있다. 모든 인간은 허상이 돼요. 이 허상이 실상인 척하면 안 되기 위해서 율법을 준 거예요. 율법을 본인이 인간이 감당을 못해요. 왜? 율법은 본인이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마태복음 26장 24절에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상당히 어렵고 난해한 말씀이 나왔어요. 어느 정도 어려운지 어느 정도 난해한지 이제 이 문장을 꼼꼼히 한번 생각해봅시다.


마태복음 26장 24절 가룟 유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는 예수님이죠. 예수님과 누구와 비교합니다. 가룟 유다와 비교합니다. 가룟 유다와 비교하면서 그 문장을 그대로 한번 써볼께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여러 가지 하신 말씀 중에 다 어렵지만 특히 이 말씀도 굉장히 어려운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가룟 유다한테 돌려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말씀을. 이 말씀을 가룟 유다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가룟 유다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어요? 못 알아듣겠어요? 못 알아들어요 이 말을. 왜냐하면 이 문장을 한번 분석해봅시다. “그 사람은”이라고 했지요. 그 사람이니까 이걸 뭐로 바꾸느냐 하면은 가룟 유다의 자아로 바꿔요. 자아, 나. 나1.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이게 뭐냐 하면은 자아2가 됩니다. 나2. 왜냐 하면은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서 “나지 아니하였더면”이라고 했어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인간에게 꼭 나는 태어나야 될 정당성은 인간에게 돌려줄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나니까 꼭 태어나야 돼 라는 말이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해당되지 않습니다. 되지를 않아요. 인간은 없는데서 생겨났다 이 말이죠. 없는데서 생겨나니까 인간에게는 뭐가 실상이냐 하면은 없는 게 실상이에요. 없는 게. 인간이 태어난다 할지라도 없음이 무효가 되지를 않아요. 없음이 무효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뭐를 지적하느냐 하면은 가룟 유다야 행동 똑바로 해라. 제대로 살아 이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가룟 유다야 너는 네가 없다는 그때를 너는 왜 평소에 생각을 못하느냐 이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너는 네가 없다는 생각을 왜 못해 이 말이에요. 이게 예수님 관점이에요. 예수님 관점이기 때문에 예수님 관점을 가룟 유다 개인적 관점에게 돌려줘도 가룟 유다는 못 알아들어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은 가룟 유다는 모든 예수님 말씀이든 뭐 공자 말이든 부처 말이든 어디서 와서 멈추느냐 하면은 자아1에서 멈춰요. 자아1. 나1에서 멈춰요. 아 다 나 잘 되라고 하는 소리구나. 나1에서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요. 모든 것은 나1에서 수집이 되어버려요. 멈추게 된다고요.


나 참 행복해. 어디서 멈췄어요 지금? 연세 많은 아버지가 어디서 멈췄어요? 나에서 멈췄잖아요. “아버지 없는데요.” 그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뭐가 없어 내가 여기 있는데. 네가 미쳤구나. 내가 여기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 “아버지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왜 아버지는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없는데. 실상은 없는데. 없는 게 실상이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인간은 실상이 악마에요. 악마의 가현체가 인간입니다. 이것을 죄가 인간에게 왕 노릇한다는 뜻이에요. 죄라는 것은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악한 인격이 악마가 실상이고요 악마 말고 또 실상이 뭐냐 하면은 여자의 후손이에요. 뱀의 후손 실상이고 여자의 후손, 예수님 실상이고 그 외에는 없습니다. 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없어요. 그래서 가룟 유다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실상1, 악마죠. 악마가 허상1을 만들었고 허상1이 허상2를 만드는 거예요. 왜 그럼 가룟 유다에게 허상1으로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허상2라고 왜 하느냐?


가룟 유다가 자기 자신이 살아오면서 자기 욕망의 결여, 뭔가 충족되지 못한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자기 욕망이 충족되는 그런 이미지를 상상하는 겁니다. 나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2가 되는 거예요. 사실 가룟 유다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샘플이고 엑기스에요. 진액이에요 진액. 나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의 나1은 그 다음 이렇게 되는 나2를 목표로 해서 내가 내 욕망을 손질하겠다. 조절하든지 그걸 충족시키든지 그렇게 되는 거예요. 12제자 가운데서 인간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인간을 허상으로 만든 진짜 실상, 사탄이죠. 사탄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12제자 가운데 오직 누구밖에 없습니까? 가룟 유다밖에 없어요. 가룟 유다와 예수님이 관련이 되어줘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완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 바로 뒷면에, 뒷면이 아니죠. 가룟 유다 안에 사탄이 들어갔으니까 안에 들어갔으니까요.


이렇게 되어버리면 인간의 관점과 예수님의 관점이 이런 차이가 납니다. 인간의 관점은 하나님 제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데 제가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바르게 살면 천국 가는 사람으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방법 이야기해주시고 저한테 성령을 역사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옵소서. 누구한테? 저한테요 저. 저한테 그걸 주시면 제가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서 천국 백성 되겠습니다. 이거 12제자 가운데 11제자가 이 생각했어요. 예수님 알았으니까 예수님이 나를 구원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12제자는 전혀 주님의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허상이었어요. 그냥 허상. 실상을 보여주는데 11제자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관계되는 자는 가룟 유다였어요. 뒤에 보면 22장 17절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9절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했지요. 여기 잔, 예수님의 피입니다. 떡, 예수님의 찢기신 살이죠. 이 잔과 피를 제공이 되려면 12제자 가운데 어느 제자가 관여해야 피가 나오고 살이 찢겨집니까? 어느 제자입니까? 가룟 유다죠. 가룟 유다와 관련되어있어야 돼요. 다른 제자들은 먹기만 하고 아무 직접 관련성이 없어요.


그러면 이 십자가 사건은 결국은 가룟 유다라는 허상과 관련되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 누구죠? 악마와 예수님 사이에 단판 짓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누구 관점이다? 이것이 가룟 유다 개인적 관점이 아니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관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예수님 십자가 생각 안 들고 예수님에게 관심사가 없는 이유는 지금 그 이유가 가룟 유다를 통해서 이유가 드러났지요. 가룟 유다는 사탄이 뒤에서 작동을 해서 가룟 유다는 나1에서 나2로 갔어요. 나1에서 나2로 가면서 가룟 유다는 어떤 욕망이 있느냐 하면은 예수님과 같이 있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사탄이 딱 들어가니까 무엇이 와해되느냐 하면은 내가 원하는 예수님 이용하기 또는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하기가 이게 끊어졌지요. 그러니까 자기 욕망이 달성 안 되니까 어디로 도피했느냐 하면은 자기 자신에게로 도피해버린 거예요. 그 도피의 극단적인 모습이 뭐냐? 바로 자살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살하는 게 취미가 아니에요. 그냥 나1, 허상1이 있을 때는 자살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가룟 유다를 놔두고 외부요소, 실상요소가 누구냐? 둘이거든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악마와 예수님과의 그 투쟁과 충돌 여파에서 본인이 예수님과 이렇게 제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이 좌절되면서 그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망치는 방법이 내가 나를 죽임으로서 자기 생을 마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가룟 유다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의 주체는 ‘나’라는 것은 결여, 모자람, 부족함을 통해서 주체로서 한 평생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계속 현재의 나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기대하는 나 사이에 모자람을 그걸 어떻게 그걸 가까이 충족시키고 일치시키고 그걸 동질화시키는데 부지런 떨면서 등장하는 게 뭐냐? 나. 나나나나나나나나. 주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가룟 유다가 그걸 다 보여주는 거예요. 이게 마귀에 예속된 인간들의 특징이에요. 마귀에 예속 안 된 인간이 어디 있어. 다 그렇지. 그리고 거기서 무서움을 느껴요. 충족되지 않는 나의 욕망이 무서워서 인간은 계속 도피하고 도망치고 숨는 거예요. 숨다가 또 빼꼼히 얼굴을 가끔 내밀어 봐요. 가룟 유다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정상적입니다. 가장 인간의 원액이에요. 정상적이에요. 하루 눈뜨면 아침부터 해서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게 있어요. 원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어떤 욕망도 충족되지 않고 있다. 어떤 욕망도.


그리고 욕망이 어디까지 뻗힐지는 이거는 실상이 결정하지 허상인 나는 놀아나고 있어요. 농락당하고 있는 거예요. 뭐 이만하면 됐다. 이런 거 없어요. 이만하면 됐다가 어디 있어요. 이만하면 됐다가. 국산 차 타고 다니면 됐지. 아니야. 외제 차 정도는 타줘야 되는데. 외제 차는 어디까지? 세상에 길 가는 인간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세요. 너 인생 어때? 뭐 내 인생 이 정도하면 나는 됐어. 그런 인간 없어요. 나 이 정도하면 됐다는 인간은 없어요. 오늘도 계획 세워야지 이런 거예요. 오늘 전세에서 아파트,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야지. 맨날 사람이 목적이 없으면 사는 맛이 없다는 게 인간들인데요. 전부 다 허상이에요. 허상. 그러면 그것이 좌절되고 실망되면 어디로 간다했습니까? 인간은 자살 쪽으로 가지요. 자살 쪽으로. 제가 오늘 노래 안 틀 줄 알았지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는지 허상이면서 주체가 있으니까 내가 막다른 길에서 유일하게 감지되는 느낄 수 있는 감각될 수 있는 아무리 모든 게 없다 없다하지만 유일하게 있는 게 내 신체고 몸이니까 이 신체 몸을 가지고 뭐를 만드는가? 자아1에서 자아2를 목표로 했을 때 세상에 나와서 요령부리고 여러 가지 설치면서 애쓸 때 그게 좌절되었을 때는 인간에게 본심이 어떤 본심인지를 제가 노래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외로움에 길들여진 후로차라리 혼자가 마음편한 것을어쩌면 너는 아직도 이해 못하지내가 너를 모르는 것처럼언제나 선택이란 둘 중에 하나연인 또는 타인뿐인걸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나의 슬픔을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너



여기까지. 끝에 가사는 너 떠나면서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나와요. 이게 ‘서울의 달’이라는 노래거든요. 옛날 유명한 드라마의 주제곡이었습니다. 아시죠? 이 드라마. 촌에서 와서 서울에서 한번 버텨볼라고 애쓰다가 결국 외로움에 길들여진 거예요. 외로움에. 이게 일종의 자살이죠.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합류가 안 되는 거예요. 내 자리가 낄 듯 낄 듯 못 끼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탓을 누구 탓을 하지요? 그 탓을? 세상, 더러운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은 뭡니까? 자아1에서 나가지를 못해요. 내 배후에 실상은 내가 실상이 아니고 마귀가 실상이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농락하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유월절 이야기했잖아요. 유월절이 뭐라고 했습니까? 유월절은 양 살리고 나죽이는게 유월절이에요. 유월절 어린 양 살리고 날 죽이는 거예요.


하나님 뜻은 무슨 뜻이다? 나를 죽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안 죽으면 자꾸 내가 최종적인 실상이라고 우기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성경은 악마만 실상이 아니고 또 다른 실상이 있어요. 예수님이 또 실상인 거예요. 출발을 마귀부터 출발하는 건 아는데 주님의 뜻은 지금 뭘 바꾸느냐? 12 제자들을 악마에 속한 실상을 예수님 실상부터 시작하는 그러한 인간으로 바꾸는 겁니다. 악마는 실상이고 가룟 유다는 허상이 되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허상으로 보는 거예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제게 좋을 뻔했다” 할 때 ‘나’가 두 개 들어가잖아요. 중간에 뭐가 들어갑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2가 날라가버리죠. 나1도 날라가버리죠. 이 비슷한 이야기가 욥기에 나와요.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시련도 안 받을건데” 욥기 3장에 보면 그렇게 되어있어요. 성경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학문에서 이야기하는 그걸 더 뚫고 지나가는 거예요. 가룟 유다가 이렇게 한다면 가룟 유다는 결국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게 인간에게 실상이다.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뭐만 있다? 악마만 있지요.


그러면 악마에서 악마와 실상과 실상이 전쟁을 벌여서 예수님의 실상이 악마 실상 이겨버리면 그때부터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없음에서 새로운 있음이 시작되는 겁니다. 새로운 있음이 시작되는데 그 있음은 우리를 허상으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오늘 대목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 아마 성경에서도 제일 어려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6장 56절, 보시기 전에 다시 한번 마귀가 우리한테 뭘 했는가? 마귀는 실상이면서도 비겁하게 숨어있고 우리로 하여금 태어난 인간이 악마가 장악해서 태어난 인간이 계속해서 악마의 욕망의 시달리면서 그 욕망을 허겁지겁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서 맹목적인 투쟁과 노력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욕망이 끝도 없는데요. 거기에 농락당한 거예요. 쉽게 말해서 세상 모든 것은 그냥 사기입니다. 교회든 뭐든 다 사기에요. 그릇 사기 말고 다 사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허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이거 뭐예요. 예수님 자체가 실상인 동시에 그 실상 안에 성도라는 이름의 허상이 아니고 실상이 그 안에 박혀버리면 더 이상 여기에 추가적인 욕망이 침투를 못해요. 나 이거 되야지 하는 게 없어요. 내 안에 예수님 있고 예수님 안에 내가 있어 버리면 그 둘 다가 유일한 실상. 어린 양 안에서 우리가 새롭게 실상으로 생산된다. 만들어진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유월절 어린 양 안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기능은 피 흘리는 거예요. 피 흘림. 피 흘린 그 피 먹고 찢겨진 그 살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일체가 된다는 뜻이에요. 하나가 된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래서 여기 12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죠. 하나에 대해서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7장 11절 12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여기 우리가 누구냐 하면은 아버지와 아들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말해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지금 여러분들이 이걸 이해하려면 제가 또 이야기할 게 있어요. 그 이야기 듣고 이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시면 됩니다. 12절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이렇게 되어있지요. 이 일에서 악마의 허상에 불과한 우리가 여기서 뭔가 할 게 있어요? 없어요?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예수님이 알아서 다 해주는 겁니다. 지켜주는 겁니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라고 되어있어요. 여기 성경에 응한다는 말이 무슨 성경을 두고 이야기하느냐?


요한복음 13장 18절 19절에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라고 되어있어요. 예수님께서 여기서 시편 41편 9절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발꿈치를 들었다고 되어있지요. 여기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이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창세기 3장에 15절에 보면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무엇을 상하게 합니까? 발꿈치를 상하게 하죠. 이게 전부 다 말씀이 응하게 함이라. 말씀이 말씀대로 응한 입장에서 감히 인간 주제에 없던 데서 태어난 인간 주제에 우리가 할 게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전혀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우리가 할 게 없는데 또 질문합니다. 그럼 우리가 할 게 뭡니까? 방금 우리가 할 게 없다고 했는데 또 뭘 하면 됩니까 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거기에 답변은 뭐냐?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응해질 겁니다. 그럼 말씀대로 응해지는 게 뭡니까? 너희를 보호하사 멸망치 않고 예수님 안에서 실상이 되게 함이라. 이렇게 된다고요. 그럼 또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목사님 그건 안 믿어지는데요. 당신보고 믿으라고 하는 게 아니고 말씀대로 된다니까. 왜 당신 믿음이 왜 거기서 나와. 거기서 왜 나와 당신 믿음이. 나는 그게 안 믿어지는데요. 믿고 안 믿고 그거는 주님 앞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요. 주님의 결심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를 못해요. 뭐 언제는 믿었어요? 언제는 믿었습니까? 치매 걸리면 믿는 거 다 날라가버리는데. 언제는 믿었습니까?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된다는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문제. 김고은의 굿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물론 여기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왜냐 하면은 굿하면서 우리가 같이 죽어나가니까. 우리로 하여금 악마가 남긴 허상을 주께서 해소를 합니다. 해소를 해서 우리가 없던 데를 가요. 없던 데로 가게 되면 우리는 뭐냐 하면은 악마에 속했다는 실상의 노예, 실상에 농락당한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자, 여기서 그 악마의 종이 어떤 것인지를 제가 아주 빠른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뭐가 악마의 종인지? 스페인은 남쪽과 북쪽의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합니다. 통계적으로 북쪽의 소득이 남쪽의 2배가 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같으면 수도권과 지방권이 20% 차이가 나요. 그러나 스페인은 거의 두 배입니다. 스페인이 왜 소득차이가 나느냐 하면은 스페인이 옛날에 중세 때 북이슬람이 스페인을 반을 점령을 했어요. 반을 점령해서 북쪽은 기독교 남쪽은 이슬람이었거든요. 기독교가 자기 나라에 쳐들어온 이슬람을 쫓아내기 위해서 400년 이상 긴긴 세월동안에 조금씩 조금씩 남하하면서 그것을 니베리아 반도 전부 다 이슬람을 쫓아내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전쟁을 하면서 추방을 시켰어요. 오랜 세월이에요. 711년에 시작해서 1150년 마감됩니다. 거의 400년입니다. 그 전쟁을 하면서 그 전쟁을 하려면 왕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북쪽에 있는 주민들은 결집력을 하면서 그 촌락이나 마을이 안정권을 갖고 있었어요. 왕의 통치 안에서 안정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쪽은 이슬람이 지배하면서 이슬람이 세금만 빼가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은 안정권을 갖지 못하고 토지가 자기 토지가 아니고 전부 소작인이에요. 자기 농토가 아니에요. 북쪽은 오랫동안 있다 보니까 자기 것이 되고 자기 농토가 있어요. 자기 농토가 되는데 남쪽에는 자기 땅이 없고 뭐 했느냐. 이슬람이 압박을 하기 때문에 그냥 농사 못 짓고 목축을 한 거예요. 목축을 하니까 도시가 형성되지 않고 전부 다 촌락, 군데군데 쪼가리 난 촌락 숫자 얼마 안 되는 마을들만 있는 거예요.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목축이니까 또 다른 데 가야되니까.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이슬람 물러나고 산업화가 되면서 산업화가 되니까 철도는 놓이고 하는데 밑에 사람들은 교육을 못 받았어요. 교육을 못 받으니까 산업화가 되면서 산업화에 필요한 인재들을 취업을 할 수 없어요. 취업도 못하고 모든 자본들이 북쪽에 다 모여 있으니까 자금이 있어야 기업이 되고 기업이 돼야 공장을 짓고 공장이 돼야 물건 팔아서 해외수출해서 이윤이 남는데 남쪽은 목축하고 양치고 이래가지고는 안되는 거예요. 특히 교육을 못 받아서 회사에서 교육시켜 하려고 하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요. 일용직밖에 안되는 거예요. 재능들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가지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진 거예요.


자, 이게 뭐냐?? 이게 바로 빈부격차는 인위적 요소가 가미되었죠. 무슨 세계에? 인간 사회에. 인간 사회가 인위적 요소가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오랫동안 정착했다는 말은 도시가 발달할 조건이 된다는 것이고 도시가 발달하게 되면 거기서 교육 인프라부터 해서 재산 인프라가 성립되는 거예요. 그리고 같은 마을끼리 결속력을 다지고 그것이 산업을 일으키는 인적 자원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떠돌이들은 소용없어요. 돈이 없으니까 애들 교육을 또 못 시켜요. 그때 먹고 입는 것밖에 못해요. 또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남쪽과 북쪽으로 되어 있는데 그 북쪽 섬은 너무 살기 좋아요. 너무 살기 좋고 평지고 산도 별로 없고 남쪽 섬은 300m 고봉이 1200km쭉 뻗어가지고 이거는 안돼요. 특히 서쪽은 산지고 남쪽 섬에 평탄하지만 이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습지, 여기는 비가 많이 와요. 비가 많이 와서 어떤 지역은 12000mm 왔어. 여기는 농사가 안돼요. 북쪽은 적도가 가까우니까 따스하다 이 말이죠. 그럼 이거는 인위적 요소가 아니고 무슨 요소입니까? 자연적 요소지요.


보세요. 방금 이야기한 인위적 요소, 자연적 요소 거기서 나타나는 것은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거죠. 이게 바로 마귀의 세상이에요. 이게 마귀의 세상이라고요. 방금 이야기한 게. 왜? 예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예수 있다가 안 되잖아요. 될 수가 없지요. 왜 예수님께서는 산업을 일으킬 생각을 안 하고 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 취직시킬 생각 안 하고 왜 예수님은 왜 마귀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매” 그것도 말씀을 하니까 사탄이 들어가매. 왜 마귀 이야기를 했을까요? 북스페인처럼 잘 살고 북쪽 뉴질랜드처럼 자연적 요소로 잘 사는 것, 이게 인간들을 뭐라고 합니까? 이걸 성공한 국가,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이라고 하지요.


자, 출세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어느 쪽과 같은 쪽이냐 하면은 출세한 당사자가 있지요. 출세한 당사자가 누굽니까? 나지요. 나. 내가 계속해서 뭘 추구한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서 내가 부자 되기를 원하지요. 부자 되기 원하는데 뉴질랜드 보세요. 됩니까? 안됩니까? 자연적 환경 때문에 안 되지요. 스페인은 어떻게 됩니까? 스페인 남쪽은 인위적 요소 때문에 안 되지요. 그러면 내가 부자 되기 위해서는 어딜 찾아가는가? 자연적 환경도 괜찮고 인위적 요소도 제도도 잘 구비되어있는 체제 있는 쪽으로 내가 이민 가면 되지요. 호주, 캐나다 뭐 이렇게 잘 사는 나라. 요새는 잘 살지도 못해요. 가면 되겠지요. 모든 생각이 하루 온종일 생각이 그 생각으로 돌아가겠지요. 그게 바로 허상입니다. 악마가 준 허상이에요. 왜 주님께서 인간이 원하는 것을 인간 관점에서 원하는 것을 왜 제공하지 않습니까? 왜 기도의 응답이 없어요? 주님의 기도 응답은 이것밖에 없어요. 내가 너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10분 쉽시다.
 홍민희(IP:115.♡.177.240) 24-04-16 01:11 
강남-누가복음 22장 22절 (허상과 실상) 240402b-이근호 목사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 보이는 것이 사탄만 있죠. 예수님께서는 인간 태어남 말고 다른 태어남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생산하는 것. 악마가 인간을 생산하듯이 예수님의 새로운 자기 자녀를 생산하는, 만들어내는 거예요. 만들어내는 모든 재료는 인간이 준비하는 게 아니고 친히 주님께서 준비하시는 겁니다. 그 준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졌잖아요. 여기에 지금 나눠드린 것 있지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아버지하고 하나님하고 합작해서 만든 게 유월절을 준비했어요. 그러면 유월절 할 때 유월절만 달랑 지키는 게 아니고 유월절 준비하기 위해서 사전에 주께서는 이 땅에서 여러 가지를 유월절을 위하여 꾸준하게 모든 것이 말씀에 응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말씀 따라서 한 발짝 두 발짝 접근했습니다. 다는 얘기 못하고 유월절 이전에 1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월절 이전에 7일 유월절 이후에 3일 합해서 1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셨다, 1번. 금요일입니다. 베다니가 어디 있냐면 예루살렘이 있다면 중간에 기슭에 감람산, 감람산 기슭에 겟세마네 여기 동쪽이에요. 동쪽에 이렇게 해서 넘어가면 여기 베다니가 나와요. 직선 거리로 약 한 3km 걸어가면 4km 엿새 전에, 여기 누가 살았냐면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가 여기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지냈어요. 그 다음에 두 번째 토요일 안식일 토요일날 이 날에 마리아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는구나” 그 다음에 세 번째 일요일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는데 베다니부터 예루살렘 성읍까지는 나귀 타고 가셔요. 뭐 환영 인파 없어요. 그냥 나귀 타고 가는 거예요. 이거는 솔로몬이 아버지로부터 일방적으로 왕이 되고 난 뒤에 나귀 타고 가면서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환호성을 불렀던 그걸 연상하는 겁니다. 어쨌든 나귀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나귀 타고 들어가면서 드디어 성문에 들어가니까 여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호산나를 부르면서 성문에 예루살렘 내에 종려나무 들고 했지요. 그럴 때 지도자들이 “좀 그 철딱서니 없는 것들 메시야도 아닌 데 난 메시야 아니라고 이렇게 좀 하지” 하고 핀잔을 예수님 주최 측에서 이렇게 한 거예요. 이렇게 하니까 예를 들어서 한동훈이 광주 유세하게 되면 유세해봐야 국민의 힘 광주에서 전라도에서 한 번도 안 될 걸 뭐 하러 하느냐? 할 때에 한동훈이 “내가 하지 않으면 돌들이 들고 날 것이다” 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하시고 또 예루살렘 전체를 보시면서 우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 다시 베다니로 예루살렘에서 들어가지요. 숙소로 돌아왔지요. 네 번째 월요일입니다. 월요일 날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숙소가 여기니까 얼마 안 되니까 또 가요. 가면서 목마른데 과일 없나,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해버렸어요. 그 다음에 성전에 가서 성전을 엎어버렸어요. 완전히 성전이 돈벌이 좋구나, 여기는 기도하는 집이지 너희들 돈벌이 하는데 아니야 하고 확 뒤집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장사하는 자들이 그 당시에 종교지도자와 커미션 관계에 있었어요. 네 얼마 하고 허락 받고 이익 보면 그 다음에 주기로 다 했어요. 삥 뜯는 사람 다 있었어요. 그걸 이렇게 해버리면 누가 화를 내느냐 하면은 뒷배 봐주는 종교지도자들이 돈 들어올 때가 없으니까 그들이 가만히 안 있겠지요. 그래서 다시 성전 정화하고 다시 베다니로 왔습니다.

다섯 번째 화요일, 아침에 또 출근하죠. 출근하는데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놀래가지고 “어제 예수님이 저주한 데가 바짝 말랐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십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처럼 이스라엘도 바짝 마를 것이다.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할 때에 아까 첫째 시간 끝부분 이야기한 것 잠깐 염두에 두세요. 인위적인 노력과 자연적인 환경에 잘 적응하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서 밥이라도 먹고 산다. 국가가 형성되어 힘, 단결할 수 있다라는 게 인간의 자기가 허상인 것도 모르고 마귀가 있는 것도 모르고 그냥 내가 여기 있으니까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그러한 풍경을 먼저 여러분들이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염두에 두어야 예수님이 하는 일이 참 별난 일이에요. 이 쓰잘때기 없는 이 일을 왜 하느냐 이 말이에요. 그 무화과나무 저주를 왜 해요? 그냥 없는 사람 밥이나 주지, 이게 누구 생각이냐 하면 ‘가난한 사람 나눠주면 되지 않냐’ 이게 가룟 유다 생각이에요. 그러면 예수님한테, 인기 있어가지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모실 건데 이거는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한테 두 번째 시험할 때 마귀가 이미 예수께 제안한 겁니다. “뛰어내리시면 메시야 역할 제대로 성공리에 마칠 수 있습니다. 한번 뛰어내려보세요” 주님께서 하나님 시험하지마라 했지요.


그 다음에 화요일 날 뭘 했느냐 성전에 출발해가지고 예루살렘에 갔어요. 가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논쟁을 했어요. 논쟁을 하고 그 다음에 제자들이 물었어요. “야 성전 크지요?” 하니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돌 위에 돌을 남기지 않고 다 멸망할 것이다” 그렇게 했고 논쟁하면서 유대인 지도자들이 “어제 왜 성전 가서 행패했느냐? 상 왜 뒤집었느냐?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하느냐?” 그렇게 논쟁이 벌어졌는데 어떤 논쟁이냐 하면은 “당신이 메시야 맞냐?” “그래 구름 타고 온다” “그게 말이 도냐? 무슨 사람이 구름 타고 와” 이런 식으로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러면 어떻게 다윗의 후손이 다윗에 추가되느냐” 하면서 논쟁이 그게 대화가 안 되죠. 여섯 번째 수요일, 이 수요일은 성전에서 그냥 성경 내용은 안 나오고 성전에서 가르쳤고 사람들이 듣기 위해서 성전에 왔고 쉬는 것은 감람산에서 쉬었어요. 그리고 수요일날 예수님은 그런 활동했지만 다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22장 오늘 본문에 “유월절이란 무교절이 가까우매” 2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까 하니 이는 백성을 두려워함이라” 그래서 어떻게 죽이는데 지금 유월절 날 각지에서 흩어진 유대인들이 많이 오잖아요. 소요가 일어날 수 있다고요. 소요가 일어나면 로마 당국한테 밑보이잖아요. 그래서 유월절 끝나고 난 뒤에 죽이자 이게 계획이었어요. 끝나고 난 뒤에 죽이자 그런 계획이었는데 가룟 유다가 와가지고 미리 선수 쳐가지고 “내가 예수님 제자인데 제가 알아서 예수님 갖다 바치겠습니다” 하고 먼저 들어오는 바람에 이게 유월절 끝나고가 아니고 조기에 예수님을 체포하고 처형하게 되었어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일곱 번째 목요일, 목요일 날 누가복음 22장7절부터 쭉 여기 나옵니다. 누가복음 7장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유월절을 준비하자” “어떻게 준비하는데” “네가 물병 든 사람을 만날 거다. 우리가 유월절 지킬려고 하는데 적당한 장소, 객실이 있습니까? 물어봐라” 물어보니까 12절에 큰 다락방을 보이는 거예요. 그 다락방이 유명한 마가 엄마의 다락방이에요. 그때는 마가가 스무살 밖에 안 되었을 때니까 어렸을 때니까 자기의 소유 아닌 엄마의 소유에요. 준비했어요.


장소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유월절 음식을 또 준비해야 되지 않습니까? 어린 양을 또 성전에 갖다 바쳐야하니까 어린 양 또 준비해야 하고 손님 방도 확보해야 되고, 그 다음에 구운 양고기 쓴 나물 무교병, 무교병이라 하는 것은 누룩이 들어있지 않는 그런 떡, 과일 소스 포도주 큰 거 네 잔 준비가 되었어요. 보통 그렇게 준비를 한답니다. 그 다음에 다락방 떠나서 성전 골짜기 여기 기드론 골짜기에 계곡에 내려가서 감람산 기슭에 있는 겟세마네 가가지고 거기서 잠을 안 자고 철야 기도합니다. 언제? 목요일 날. 목요일 날 거기서 울기도 하는데요. 운다는 것은 히브리서 5장7절에 보면 우는 걸로 나와 있어요. 인류의 절망적인 운명을 아시고 웁니다. “이 허상들아 이 마귀에게 속한 허상들아 너희 실상이 안 보이지? 너희 자신이 실상인 줄 알지? 너희 유월절 되면 끝났어. 유월절 너희 모르면 영원한 하나님께 저주 받는거야” 하고 날이 새니까 금요일 되지요, 금요일 새벽6시에 체포됩니다. 왜? 대낮 되면 또 소요가 일어나니까 빨리 잡아 처리해야 되니까, 유다가 뺨에다가 뽀뽀하면서 예수님을 지목했고 성전 경비원이 체포를 했습니다. 금요일 날. 금요일 하루 동안에 여러 가지 예수님의 몸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되게 바빴어요.


이거 한번 보세요 여기. 금요일 날 유월절 및 축제가 시작되지요. 예수님께서 일대기에 중요한 것이 바로 유월절에 집중되어있어요. 그런데 유월절이 되려면 누가 도와줘야 됩니까? 제자들은 소용없어요. 가룟 유다가 도와줘야 돼요. 가룟 유다가 도와줘가지고 유월절 끝나고 잡힐 일을 가룟 유다가 나서서 앞당겨서 유월절 타이밍 맞춰서 예수님이 유월절에 돌아가셔요. 체포되고. 그날에 체포 되가지고 그날에 돌아가셔요. 새벽6시에 체포 되가지고 골고다 언덕에 달리신 것은 아침 9시에요. 세 시간 만에. 오후 3시까지 6시간 달리셔서 운명하십니다. 그렇게 속전속결은 별로 없어요. 우선 체포가 되었고 그것을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심문 받고 이게 전임 대제사장인데 워낙 영향력 있어가지고 그냥 대제사장 해요. 그 당시에 대제사장 가야바인데 가야바 장인입니다. 가야바 장인이 위치가 크니까 안나스에게 그때는 초짜라 잘 몰라요. 안나스한테 심문받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성전을 헐라고 사흘 만에 지었냐? 네가 메시야 맞냐, 인자냐?” 이렇게 하죠. 너 메시야 맞냐? 그래 메시아 맞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신성모독죄로 걸려가지고 또 현직 가야바한테 심문 받고 이미 성전모독죄로 사형에 해당된다고 선언을 받았고요. 그 심문 받을 때 누가 있었는가 현장에 베드로가 있었고 베드로가 그걸 눈으로 같이 시선을 마주쳤고 휙 돌아봤고요. 베드로는 예수님과 눈을 맞추었고 그때 닭 울었고 그 소리 듣고 베드로가 대성통곡을 해가지고 예루살렘 거리로 사라져가버렸어요. 도망친 거죠 뭐.


그 다음에 심문 받고 본격적인 최종 심문이 산헤드린 이거는 71명으로 구성되어있는 국회의원들 반은 바리새인 반은 사두개인 그리고 중재자는 대제사장. 35명 35명 +1명 이렇게 해서 그 당시에 국회의원들에게 심문을 받았습니다. 전체 다 불러가지고 심문 받고 나오고 가룟 유다는 자살하고 그 산헤드린 심문 받은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 동쪽에 이 건물이 산헤드린 여기서 심문 받고 사형 공식 판결 받고 그 다음에 사형 시킬 수 있는 권한은 유대인들은 없었습니다. 자치제는 있지만 그 죽이는 것은 총독의 로마의 지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빌라도한테 받는데 원래 빌라도가 평소에 예루살렘에 여기에 오지를 않아요. 욥바, 현재 예루살렘 텔아비브 그 위 쪽에 가이사랴 여기에 있는데 소요 사태가 유월절 날 사람들이 여기 많이 모이니까 치안 문제 때문에 여기 예루살렘에 잠시 와 있었어요. 안토니아 요새라 하는 곳이 성전 북쪽에 여기 있었어요. 거기서 빌라도가 보고를 받았고 “그럼 내가 사형에 해당되는지 심문할게” 심문을 했어요. 하고 내린 결론은 ‘무죄, 죄 없다’ 이거는 로마법에서 사형시킬 건덕지가 전혀 없는 거예요. 어떤 종족의 자기 종교 문제 가지고 사형 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빌라도가 하나 꾀를 내요. 뭐냐 하면 죄도 없는 예수님을 사형해달라 요청해달라는 거 보니까 유대인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말이죠. 빌라도가 어떤 꾀를 내냐 하면 “거봐 이 예수란 작자 아무 것도 아니야. 메시야 같은 게 어딨어? 내가 한번 때려볼까?” 그래서 일부러 불쌍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매를 때리고 조롱을 다 일부러 하게 했어요. 뺨까지 때리면서 이렇게 했거든요. 그 전에는 이게 어쨌든 살리기 위해서 또 마누라가 꿈자리가 안 좋대요. 그 사람 때문에 꿈자리 사납다. “그래? 안 그래도 그런 생각했는데 죄도 없는데 풀어줘야지” 마침 또 유월절에는 죄수 하나를 풀어준대요. 죄가 애매모호한 죄 같으면 자칫하면 예수님을 안 풀어줄 수가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극한 대비가 되는 죄수 하나를 딱 해가지고 “너희들 유월절 날 축제 기간에 사면하는 제도가 있는데 그 권한 내가 쓸께. 여기 극악무도한 살인강도가 있다. 여기에는 예수라는 별 볼 일 없는 아무 반항도 없는 사람이 있어. 여러분 어느 쪽을 죽이고 어느 쪽을 풀어줄까요?” 빌라도는 극악무도한 것을 죽이고 예수님을 풀어줄 줄 알았죠. 그냥 일반 서민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강도를 풀어줘라 하는 거예요. “그럼 이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죽여라 죽여라” 합창을 해요.


빌라도가 생각을 해보니까 이거는 도저히 자기가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죄 없다” 하니까 “만약에 당신이 이 사람 풀어주게 되면 우리는 직접 로마 티벨리우스에게 고소할거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고소하면 당신은 치안도 제대로 감당 못한 행정관 되어서 당신 잘려. 당신 잘린다고” 여러분 여기 빌라도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요. “아무 것도 아닌 이 사람 여러분 보기에 왕다워요? 왕 아니잖아요. 이 사람 정신병잔데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여기다가 신경을 집중합니까?”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하는 말이 “우리의 왕은 로마 왕이 우리 왕입니다” 이러거든요. 빌라도가 지금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빌라도는 예수님의 재판을 장난으로 별 의미 없는 아무 진지할 필요 없는 애들 장난 같은 걸로 몰아넣는 거예요. 왜? 무엇이 진지하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굳건함. 국가의 굳건함. 스페인과 뉴질랜드의 굳건함. 인간적인 상식으로 사람은 한 사람이 난 메시야다 이게 지금 먹히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정신병자는 언제든지 그런 소리 할수 있다고요. 그래서 빌라도는 상식적인 입장에서 그 당시의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풀어줄라고 그렇게 애를 쓴 거예요. 언제? 금요일 날. 유월절 해도 저들의 축제지 빌라도와 무슨 관계 있습니까?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유대인들은 진지해요. 이상해요. 그걸 도저히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나중에 빌라도가 독이 올랐어요. 유대인들이 요청하기를 “저 십자가할 때 그 십자가에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세요.” 빌라도가 화가 나서, “자칭? 자칭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나는 너희들 요구대로 사형을 줬기 때문에 나도 내 주장 펼치자” 그냥 ‘유대인의 왕’으로 했어요. 그 전에 본디오 빌라도가요 1차 심문한 뒤에 이거는 종교 문제고 저하고 관계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 당시에 헤롯 안티파스가 분봉왕이었어요. 내부적인 치안 책임자가 따로 있어요. 그 사람도 이제 유월절을 맞이해서 예루살렘에 잠시 와 있었어요. 그 사람한테 넘겼는데 헤롯 안티파스란 그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냐에 관심보다도 들리는 소문에 기적을 많이 행해서 백성들이 따른다는 소식을 듣고 그 신기한 기적을 본인은 직접 본 적이 없지요. 물 위를 걷는다. 병자가 낫는다. 귀신 쫓아낸다. 그게 굉장히 신기한 거예요. 그러니까 파묘 영화에 나오는 김고은 잡아놓고 “너 굿 한번 해봐라” 굿 한번 하니까 거기서 뭐가 나왔어요? 뱀이 나왔지요. 귀신 한번 불러볼래? 신기한 거 신기한 거를 찾는다는 말은 나는 정상이고 추가적으로 정상인 내가 호기심에 입각해서 내가 굳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지만 그거 재밌잖아. 신기한 그거, 기적 그거 흥미거리거든요. 헤롯 안티파스는 행정관이니까, 행정관은 뭘 담당하는 거예요. 현재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집합, 국가를 질서를 잡아야 될 행정관이 책임자니까 그거 잘못하면 또 로마한테 잘 못보이면 모가지 날라가요.



그런데 여기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회’가 뭐냐? 제가 질문해볼께요. 답변해보세요. 사회가 있습니까? 개개인이 있습니까? 개개인이 있지요. 사회는 없지요. 나 사회가 좋아 이런 것 없지요. 사회보다 누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그러면 뭡니까? 사회가 실제로 있다는 것은 어떤 조건이냐면 내 몸이 실제로 있다는 조건 하에 사회가 좋은 겁니다. 사회는 나중 문제예요. 이 사회가 마음에 안 들면 이민 가면 되는 거예요. 전쟁 일어나가지고 유치원 애들도 군에 가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난 안가” 하고 엎어지겠죠. 그럼 엄마가 뭐라 합니까? “야 우리 일본으로 튀자” 왜냐하면 사회란 게 없어요. 내게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라는 것을 임시적으로 네트워크를 그냥 인정할 뿐이에요. 민감한 문제지만 의사한테 의사가 있습니까? 국가가 있습니까? 한의 말고 양의. 의사한테 의사가 있어요? 아니면 국가가 있는겁니까? 의사 본인이 있지요. 그런데 본인이 수입이 좀 줄어든다. 결사적으로 데모를 해야 될 것 아니에요. 돈 버는 경쟁자가 많아지는데 어떻게 됩니까? 양보 안하죠. 국가든 뭐가 되었든 눈에 없지요. 돈 벌라고 살지 내가 돈 수억 들여 의대 공부하는 게 그거 때문인데. 돈 벌려고 하는 거예요. 그거 외에 다른 목적 없잖아요. 뭐 나이팅게일 누구신데 그거 필요 없어요. 내 수입 줄어들면 끝나는 거예요. 인간은 사회라는 게 없습니다. 내가 사회보다 더 중요해요.


그러면 헤롯 안티파스 빌라도 그리고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 그 사람들에게는 유대 나라가 중요합니까? 본인이 중요해요? 어떻습니까? 본인이 중요하죠. 유대 지도자는 성경에서 나오는 세겔 아까 성전 엎었죠? 돈 받고 그 커미션이 중요한 거예요. 왜? 저들은 노동하지 않고 떼돈 벌 수 있거든요. 그들의 권한은 바리새인 사두개인 권한은 어떤 권한이냐 하면 세리들에게 세금권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세리도 얼마 먹고 자기도 얼마 먹고 자기는 누구한테 바치면 됩니까? 로마에 예속되어있으니까 세금은 그쪽에 내고 중간은 자기가 뜯어먹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 메시야 구약성경 하나님 다 뭡니까 전부 다? 다 자기를 살리기 위한 구실이고 변명이고 핑계일 뿐이에요. 예수라는 그 존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자기 수입이 늘 수도 있고 줄을 수도 있다 이 말이죠. 자기 수입이 자기 생존의 존재의 유일한 실상인 자기 자신이 생계 어려울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아까 스페인 할 때 이야기했잖아요. 스페인에게 국가 질서가 결속력이 단단해지면 거기서 나오는 수입이 훨씬 더 많은 거예요. 왜? 법들이 안정적으로 질서가 체계되게 되면 그만큼 하나의 돈을 버는 데 있어서의 비용이 적게 들어요. 왜? 국가체제가 안정적이니까 하던 대로 하면 돈이 나오게 되어있어요. 뉴질랜드 같은 경우에는 이민을 많이 뽑거든요. 인구가 400만 밖에 안 되니까 근데 이민 뽑아도 소용이 없어요. 남쪽으로 안가요. 오클랜드 거기에 공항 근처에 다 있어요. 왜? 빨리 공항에서 튈라고. 이민만 오면 공항 근처에 살아요. 이민 왔다가 3년 만에 가는 사람도 많아요. 못 살아서 너무 힘들어서 환경 보고 왔다가 환경이 재미 하나도 없어요. 일주일 보면 다 봤어요. 제주도 일주일 살기 한 달 살기 그건 끝날 거예요. 제주도는 돈 될 게 없어요. 푸른 바다 그거는 이틀 만에 다 봐요.


그러니까 헤롯 안티파스나 빌라도나 그때 예수님 죽으면서 바리새인 사두개인이 다 같이 친구가 되었다. 생각하는 게 전부 다 공통적인 생각을 예수님 때문에 그들은 숨기지 못하고 노출되는 거예요. 인간들의 생각은 별반 다르지 않고 똑같다는 것, 동일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예수란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손 대지 않을텐데 내 생활을 내 생활비를 혼란을 준다면 이거는 이유가 뭐냐 신성모독죄 그거는 핑계고요. 이거는 제거 대상이에요. 왜 우리들이 생각한 것과 동일한 생각을 왜 갖지 않느냐? 그게 죄목입니다. 왜 특이하냐? 왜 달리 생각하느냐? 우리 관점에서 같이 동참하면 되지 우리 관점 말고 다른 관점을 왜 하느냐?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희한한 일이 벌어져요. 드디어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해서 아침 9시에 십자가에 하는데 강도 둘하고 같이 처리를 합니다. 그런데 로마 십자가는 보통 사흘 동안 방치를 해요. 그 짐승들이 와서 뜯어먹는. 죄 지은 인간의 처참한 모습까지 끝까지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국가에 대드는 십자가가 국가반역죄입니다. 노예들이 반역할 때 2000명까지 십자가 길거리에 가로수처럼 죽였던 거거든요.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할 때, 그처럼 십자가는 국가반란죄 급에 해당되는 거예요. 강도도 마찬가지고 사회 치안 질서가 최고급 치안 질서 잔인한 모습으로 강도도 그렇게 죽였습니다.


사흘 동안 있어야 되는데 유대인이 또 재촉하는 거예요. 왜? 유월절이기 때문에 빨리 처리해달라는 거예요. 빨리 처리해가지고 강도도 덩달아 빨리 처리하면서 다리를 꺾어버려요. 예수님 대해서는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희한하게 일찍 죽었어요. 죽어서 확인 차원에서 창으로 예수님의 배에다가 창을 찌르고 찌르니까 거기서 피와 물이 함께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걸로 모든 것은 이 세상 이 ‘사회’ 편에서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일이 처리가 된 거예요. 로마의 유월절의 소요 사태도 이제는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 십자가 달릴 때에 난데 없이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어요. 아주 거대한 천막 같은 건데 그게 찢어졌어요. 그건 인위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인위적인 요소가 들어가지요. 자연적이 아니고. 인위적인 요소가 찢어졌지요. 그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어요. 때 맞춰서. 돌이 깨질 정도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자연이 반응을 나타내요. 누구 죽음에 대해서? 예수님 죽음에 대해서 자연이 반응을 하고 그 여섯 시간 동안 해가 점점 어두워졌다는 말은 진짜 정오 때인데 깜깜해졌다는 말이에요. 해가 반응을 나타내요. 그리고 그 당시에 예루살렘 근처 무덤에 있던 자들이 무덤이 열리면서 죽었던 자가 부활을 하고 다는 아니겠지만 부활한 자가 나타나가지고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심판’이에요. 심판, 저주의 심판. 다시 말해서 심판의 기준 되시는 분이 누구냐? 그것이 실상이에요. 실상. 비로소 사탄에 의해서 예수님이 죽음으로써 사탄만 악마만 실상이 아니고 사탄 말고 다른 실상이 예수님이라는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가 드디어 자연이 반응하고 인위적인 사회가 인간의 의도와 상관없이 반응을 한 겁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은 휘장 뒤로 아무도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또 제사장 가봐야 휘장은 멀쩡해야 돼요. 다음에 또 들어가야 되니까. 그런데 아예 휘장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휘장 자체가 찢어졌다는 말은 예수님이 누구였다? 예수님 자신이 그동안 막혀있던 휘장이었다 이 말입니다. 그 휘장이 찢어짐과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어떻게 돼요? 예수님의 죽음이 유일한 천국 가는 길이 된 겁니다. 길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열린 겁니다. 여기서 아까 봤던 요한복음 6장 56절 다시 보겠습니다. 아직 금요일 끝나지 않았어요. 금요일 많은 일이 있었지요. 6장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지진이 일어났지요, 그 다음에 죽은 자가 부활을 해서 일어나 돌아다녔지요 다는 아니지만. 해가 어두워졌지요. 휘장 찢어졌지요. 그러면 그 일 일어나면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내가 있습니까? 그런 일 일어나더라도 어떻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자동적으로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내 안에 계시고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일어나도 없어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하면서 요한복음 19장30절에 보면 “다 이루었다” 했습니다. 말씀을 다 이루었다. 따라서 금요일로 세상의 죄에서 어린 양의 피가 다 이루었지만 금요일 말고 또 무슨 날 있지요? 금요일 다음에 또 뭐가 있지요? 그 다음에 토요일 있겠죠. 이 금요일 날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하느냐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가족 묘에다가 예수님을 안장을 해놨어요.


이거는 이사야 53장의 성취입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9절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이사야 53장 9절의 말씀을 성취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리마대 요셉이 와서 할 때에 누가 도와줬느냐? 니고데모가 와서 도와줬어요.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산헤드린 회원이죠. “예수여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 갈 수 있습니까?” 할 때에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 했어요? “네가 다시 태어나지 아니 하면” 다른 말로 하면 “네가 하늘에서 태어나지 아니 하면 이거는 하늘로 갈 수가 없다”라고 되어있어요. 왜냐하면 육으로 태어난 것은 못 가니까. 육으로 태어난 것이 왜 못 가느냐? 십자가로 막혀있으니까요. 어떤 육도 휘장 넘어 갈 수가 없어요. 어떤 육도. 뚫어서 휘장이 찢어졌으니까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 안돼요. 그건 예수님만 가는 거예요. 예수님만 가는 것이지 인간이 휘장 해가지고 천국 못 갑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있는 자만이 예수님 가는 길을 답습해서 빠져나갈 수가 있는 거예요. 그거는 실상만 가지 허상은 못 가요.


그러면 마귀에 속한 허상인 우리가 예수님에 의하여 실상으로 다시 생산되어야 돼요. 그걸 제가 일방적으로 지어냈지만 ‘누에’라 해요. ‘누에’. 누에 특징은 번데기에서 실을 뽑아내서 고치를 만들어내요. 누에고치라 하잖아요. 만들 때 자신의 신체를 소진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내 살과 내 피로 구성된 내 살과 내 피가 재료가 된 새로운 생산물을 예수님 안에서 만들어내는 거예요. 뭐로? 말씀으로, 말씀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 할 때 우리 보고 마시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거는 예수님 몫이에요. 예수님 자신의 역할이 할 일이에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는 게. 유대인들이 어렵다고 다 떠난 것은 당연한 거죠. 드디어 일곱 번째 토요일 날. 토요일은 무슨 날입니까? 안식일이죠. 안실일 날 로마 군사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났어요. 군사들이 기절했습니다. 기절하고 깨나 그 자리에서 경비 안하고 도망쳐서 보고했어요. 지진이 뭐라고 했습니까? 십자가에 대한 누구의 반응? 자연 세계의 반응. 뉴질랜드 남쪽 섬의 반응. 지진이니까. 지진을 인간이 흔든다고 지진이 일어납니까? 쿵쿵 한다고 지진이 일어납니까? 효과는 있겠다만은. 팝 가수들이 콘서트할 때 발을 구르면 순간적으로 2.5의 지진이 일어난답니다. 뭐 여진은 없고요. 그러나 그걸 말하는 게 아니겠지요.


자, 해도 어두워졌다. 휘장도 찢어졌다. 지진이 일어났다. 이 말은 뭐냐? 인간은 지금 자연에게 포위되었다는 말이에요. 자연 세계에. 예수님 하시는 일만 관련되어있는 이 자연이 예수님 중심으로 응집되어있다는 뜻이에요. 그걸 인간은 몰라요. 인간은 왜 모르는가? 허상이면서도 악마가 인간을 농락을 해가지고 악마가 사기를 친 거죠. 인간은 본인이 유일한 실상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되고 내가 교회 다니면 되고 자꾸 내 쪽에서 뭘 할 생각을 해요. 예수 믿으면 됩니까? 기도하면 됩니까? 내 쪽에서 할 생각을 해요. 허상인데. 그것도 하나의 욕망의 모습 욕망의 출발점인데. 허상1이 허상2가 되기 위해서 천당 가는 내가 되기 위해서 뭔가 내가 시도하는 거예요. 자기의 바탕을 몰라. 자기의 토대를 몰라요. 시작점을 몰라 우리의 시작점은 뭡니까? 내가 없는 거예요. 내가 없는 거. 그래서 언약은 없는 데서 있게 하고 그다음에 죽은 데서? 그게 십자가 아닙니까? 죽은 데서 살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에요.


기절하고 보고하고 그 사이에 누가 가느냐?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살로메는 예수님의 이모입니다. 세 명의 여자가 무덤에 갔지요. 무덤가고 그 다음에 두 여자가 있었고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고 그 다음에 막달라 마리아는 다시 왔어요. 다시 빈 무덤 왔는데 그 빈 무덤에서 최초로 만난 분이 누구냐? 바로 예수님을 직접 만났어요. 요한복음 20장에 “만지지 말라” 그 대목이에요. 처음에는 천사를 만나가지고 예수님이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났다 하고 천사를 만났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만난 것은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예수님을 직접 만났어요. “아직 내가 아버지께로 갈 때가 아니다.” 일요일 날에 부활했어요. 그 다음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났고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보면 한꺼번에 500명에게 나타났어요. 그 다음에 일곱 제자에게도 나타나고 그 다음에 도마 빠진 열 제자에게 나타나고 도마 포함해서 열한 제자에게 또 나타나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베다니 근처에서 주님께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감람산에 보면 무슨 교회가 있느냐? 승천교회가 있어요. 예수님 승천한 장소 승천교회가 있습니다.


자, 이렇게 보게 되면 결국은 이 이야기는 뭐냐 짧게 이야기하면 이 세상의 인간이 보는 모든 것은 사기다 허상이다 허망하다. 진짜는 예수님이 하신 일이 숨어있는 진짜 실상이다. 그리고 지금도 숨어있는 마귀가 진짜 실상이다. 인간은 거기에 전부 다 악마에 속아 넘어가고 있다.  자,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문제예요. 그렇다고 해서 예수가 내 안에 내가 예수 안에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거 백날 성경 봐도 옛날에 아 그랬었지 옛날에 그랬구나 지금 나는 아무 상관없지요. 여기서 마가의 다락방이 나와요. 베드로가 복음 전하다 옥에 갇혔지요. 다시 돌아온 곳이 뭐냐? 마가 어머니의 다락방으로 왔어요. 그때 문 안 열어줘가지고 로데가 “누구세요?” “나 베드론데” “유령 왔구나” 하는 그 모임 장소가 마가의 다락방 아지트에요. 그 아지트에서 그들은 120명이 기도했고 모여서 기도한곳도 마가의 다락방 드디어 성령이 온 곳도 마가의 다락방. 그때부터는 뭐냐? 성령이 왔다는 말은 주님이 죽으신 분으로 살아있어서 그때부터 이 성경 말씀을 이제는 예수님이 다 이루심이 이제는 허상인 악마에 속해있는 우리에게 다 이루심으로 삽입 시켜주는 성령의 작용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 구절을 막 읽는다가 아니라 단박에 다 오지요. 성령을 통해서 단박에 다 믿어지는 거예요. ‘아 주님이 다 하셨구나.’ 주님 자체적으로 일을 이렇게 하시고 이렇게 하시고 세상 끝까지 주님 손에서 이루어졌구나 라는 그러한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았지요. 그때 제자들이 몰랐어요. 세상에 무슨 그런 일이 어떻게 말 한 마디 했는데 무화과나무가 바짝 저주받았어요. 어째 그런 일이? 라고 의심을 했는데 이제는 성령 받은 성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째 그런 일이 아니에요. 그거는 당연한 거죠.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성도는 뭘 보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마귀에 의해서 어떻게 시들시들 지옥 가고 있는가가 보이는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마귀한테 어떤 식으로 농락, 죽어가고 있는가를 잘 몰랐는데 뭐 우연히 지나가다 드라마를 보니까 이런 내용이 나와요. ‘여왕의 눈물’인가 드라마인데 보니까 장기 알에 묻혀있는 약물에 재벌이 의식이 시들시들 잃어가고 있어요. 회장님이. 못된 여자가 하나 들어가가지고 장기 두는데 약물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드라마 있어요. 몰라도 돼요. 재산 다 빼앗아버리는 그래서 몽땅 재벌이 와가지고 촌살이하고 있는 지금 그 대목까지 왔어요. 그게 10회에요. 장기 알에 묻어있는 약물, 시들시들 죽어가는 회장님. 그 회장님이 세상 사람이고 내가 쓰는 돈과 명예와 권력 이거는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악마의 약물이죠. 거기에 빠져있죠. 그게 실상이고 진짜인 줄 알고.


그러면 우리는 뭐냐? 우리 이 세상에 살게 하는 것은 주님께서 전략이죠. 왜냐면 그 악마가 어디서 나온 겁니까? 무저갱이죠. 그들이 감옥에서 나온 거예요. 일부러 열쇠 줘가지고 거기서 한시적으로 이 세상의 사람들을 사기 치라고 퍼뜨린 거예요. 주께서. 퍼뜨려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내가 실상이 아니고 세상 권력에 미쳐있는 귀신한테 단짝이 되어있는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이 재벌만 대우받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그게 부러워서 저게 내 모습이어야 되는데 저게 내 실상이어야 되는데 하고 허덕이면서 성령 십자가와 우리의 육체의 욕망과 감사하고 기뻐하게 만드는 거예요. 뭘로? 예수님 다 이루었다 하심으로써.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의 어린 양, 너무나 짧은 내용이지만 그것이 바로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그 피가 있음을 그 피가 보임을 우리는 이제는 제대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서 우리가 생산되어있고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주님 입장에서 우리는 허상이 아니고 주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것을 실상인 것을 감사할 수 있는 매 순간마다 세상과 더불어서 새삼스럽게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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