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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1:28:35 조회 : 491         
제3의 조건 180501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음성1             음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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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민희(IP:121.♡.203.222) 18-05-10 19:53 
강남-요한복음 17장 2절(제3의 조건)180501a-이 근호 목사


자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내용이 여기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평소에 상당히 궁금하지 않았던가요? 굉장히 궁금하지요. 예수님의 기도는 뭐냐 하면 예수님과 아버지에 관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기도예요. 모든 사람들이.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할 때에 그 말은 자기가 실컷 떠들어 놓고 뒤에다가 예수 이름 붙이는게 아니고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를 부자관계를 형성하는 그 내용 그 내용만 아버지도 고집하고 예수님도 고집하는데 그 결과가 뭐냐 하면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한다 그 내용입니다.



그러면 아들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결국은 아버지의 영광에 충족되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아버지 자신이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아들을 보냈고 아들을 영화롭게 하려면 이 지상에서 아들이 영 영화롭지 않은 영광스럽지 않은 그러한 지경으로 끝까지 아버지께서 몰아붙이는 겁니다. 제일 망가진 모습이죠. 영광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제일 망가진 모습까지 가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정리할 것은 영광스럽다는 것은 영광스럽다 또는 영화롭다라는 것은 뭘 이야기하느냐 하면 과정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어디서 어디까지? 제일 망가진 곳에서 찰나 이 과정이 없으면 안 돼죠. 이 과정이. 폼나게 마네킹에다가 이쁜 옷 입힌다고 영광되는거 아니예요. 그 과정이 과정자체가 빠져버리면 영광이 성립이 안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영광이 되는 조건이 뭐냐 하면은 철저하게 망가짐이죠. 망가짐이라 하는 것은 죄인이기에 받아야 할 저주성, 죄인이기에 마땅히 받아야 할 저주성, 그 저주가 이 저주가 만약에 찬란하게 된다면 이 저주에서 탈출에 성공한 셈이 됩니다. 저주에서 탈출이 성공한 셈이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외부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영광스럽게 되는겁니다.



어떤 가수가 무대에 서 있는데 무대 가만히 서 있는데 박수를 친다. 유명한 클래식 작곡한 사람은 작곡이 3분 얼마인데 곡의 내용이 뭐냐 하면은 그냥 가만히 있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오케스트라가 언제 연주하지? 처음에는 참습니다. 곧 하겠지. 지휘하겠지. 그런데 가만히 있는거예요 전부다. 그러다 한 10초 20초 지나면 웅성웅성 하겠지요. 언제하지? 벌써 한참 지났는데 왜 안하지? 무슨 일 있어? 피아노가 고장났나? 뭐 이럴거 아니겠습니까? 이 뭐 때문에 무슨 이유지? 그 웅성웅성이 음악이예요. 가만히 내가 정지시켰을 때 나오는 반응들의 집합 그게 음악입니다. 현대음악에 그런게 있어요. 현대 음악에.



마찬가지로 영광스럽다 하는 것은 주님이 그냥 폼잡고 좋은 옷 입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뭔가 부지런히 주님께서 이 망가짐에서 망가짐이란 뭐라 했습니까? 죄인이기에 받아야할 저주성이죠.



그러면 이 저주에서 의롭게 되는 죄가 없으니까 의로움에서는 보상이 영광이 주어지니까 의로움까지 저주에서 벗어나서 영광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이 바로 뭐냐하면 영광스러울 이유가 되고 조건이 되고 재료가 되는 겁니다. 그 이유가 그 영광스럽다는게. 한가지 예를 들면 그러면 이걸 이제 이야기 한다면 죄이기에 받은 저주성 이 죄부터 알고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죄라는걸. 그래서 요한복음에 2장을 잠시 한번 봅시다. 요한복음 2장을 보게되면 거기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요한복음 2장 13절 “보게 되면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았지요? 그러고 난 뒤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자, 성전을 46년동안 지었지요. 그 인간들이 그 지을 때 어떤 마음으로 지었겠어요? 하나님을 욕보이려고 지었겠습니까? 영광돌린다고 지었겠습니까? 성전 크게 지을 때. 영광 돌린다고. 그럼 성전 크면 클수록 더 영광스럽다고 생각하겠지요?



사람들이. 인간의 그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영광에 대한 염원이 외부로 가연체로 그의 모양새로 드러난게 뭐였다? 부동산이죠? 그렇다면 그 당시 사람들이 성전을 짓는 그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성전에 모든 정성을 집결한 것이 성전이라면 그러면 그 오늘날 사람들에 있어서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모든 하나님의 영광에 그 마음을 안에 있는 마음을 바깥에 드러냈을 때에 뭔가 가시적인 모양이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뭘 가지고 그걸 표현합니까? 바로 예배당이잖아요 부동산. 성전 지으면서 우리 노래방 만들자 그러면서 짓는 거 아니잖아요. 성전을 지을 때 굉장히 거룩하게 짓는단 말이죠. 이것이 이제 헤롯부터 해가지고 모두 이구동성이예요. 모든 마음이 하나가 된거예요. 거기에 이의를 거는 사람 없고 성전이 46년동안 얼마나 정성에 철저에 철저를 기했겠습니까? 모든 예술과 건축공학과 그리고 모든 재물들이 최고의 영광을 구현하기 위해서 모두가 모이는 거예요.



그러면 이러한 사고방식과 이러한 행위는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 올라갔을 때에 그때 산 밑에서 사람들이 뭘 만들었지요? 금송아지 만들었죠. 금송아지. 금송아지 만들고 금송아지 만든 이유가 우상 섬기는 이야기 아니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 금송아지 만들었다. 우리가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의 중간 과정에 개입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심적으로 묘사하는 어떤 형체를 그들은 만듦으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진심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이구동성 어누 누구도 예외가 없는거예요. 그런데 막상 시내산 위에 하나님을 혼자서 만나고 내려오신 모세 손에는 뭐냐 하면은 예배당 설계도가 들어 있는게 아니고 뭐가 있습니까? 십계명이죠 십계명. 말씀이죠.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언약입니다 언약.



언약이라 할 때에 제일 쉬운 예가 바로 노아방주예요. 노아 방주. 전에 이야기 했지만 언약을 위해서 심판이 있는 겁니다. 방주가 없는데 심판한다 이런건 안되요. 언약부터 먼저 주고 그 다음에 쓸데없는 것은 싹쓸이 해버리는 겁니다. 언약 떴다 나머지는 다 가라. 언약이 떴으면 나머지 것은 필요없다. 마지막 언약은 새언약이죠. 십자가 떴거든 부동산이고 예배당이고 교회도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 싸그리 불로써 다 사르지르는거죠. 천하 자식이나 아내나 남편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않다. 모든 것은 십자가 빼놓고 없는거예요.



십자가 빼놓고. 화목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영광의 가현체가 될 수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행복한 가정. 안되지요. 안됩니다. 정겨운 사이좋은 부부 안 되지요? 아주 똑똑하고 엘리트고 인텔리 공부 잘하는 자식들 안되는거예요. 사업을 크게 해서 부자된 거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의 요소가 될까요? 안될까요? 안 되는 겁니다.



어떤 교회는 사법고시 합격했다고 성전 입구에다가 예배당 입구에다가 붙여놨어요. 플랜카드를. 영광돌리겠다는거예요. 사법고시 합격했으니까. 우병우가 영광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제시를 안해요. 제시를 안하고 먼저 인간보고 네가 갖고있는 패부터 먼저 까라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은 나름 영광은 이런거며 하나님의 기쁨이 이런거라고 패를 까겠지요. 까놓고 그것보고 그중에 어느것도 영광이 되지 못함을 언약을 거기에다가 대조시켜서 까발려 버립니다. 그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이예요. 먼저 우리보고 패를 까라는거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



처음부터 요한복음 2장에 나오지요.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그 가나안 혼인잔치에 포도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뭐를 제공합니까? 물을 6동이 가져오라고 하지요. 물을. 이 물은 어디까지나 물이죠. H2O 물이죠. 물 가져올 때 하인들은 포도주가 필요한데 물을 왜 가져오지? 라고 해서 물을 물로 보게 만들어요. 물에서는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이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그리고난뒤에 그 물이 하인들은 알지요. 그 물이 뭐로 바뀌는지. 포도주로 바뀌지요. 물이 포도주로 바뀔 때 사람들이 보기에 이것은 기적이다 신기하다 뭐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이게 신기한게 아닙니다. 물로 포도주로 바뀜으로 말미암아 이 바뀌는 과정 이 연관성이 기존의 모든 인간들의 사고방식을 심판하는 근거가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을 심판해버리죠.



다시 말씀드립니다. 언약이 떴다 방주가 떴다. 나머지는 그냥 그냥 심판이예요. 그 사람들 나름대로 굉장히 부지런히 살았어요. 노아 빼놓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할거 다 했어요. 사고 팔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열심히 살았어요. 불꽃같은 청년들. 20대는 20대로 열심히 살고 30대 40대 가정주부는 가정에 충실했고 40대 50대는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정말 허리 아파서 누울 정도로 그 정도로 열심히 살았어요. 책임지겠다고. 가장으로서 책임지겠다고. 이것만은 하늘의 하나님이라도 이것은 이것 탓할 수 없을 거라고 자신만만해 하면서 가장으로서 가장 역할 다 하고



어떤 드라마 보니까 가장이 구두 해가지고 구두 집어가지고 아이가 몇 명이지? 4명인가를 다 키우는 가장이 있어요. 드라마에요 드라마. 그래서 그 복을 받았는지 부자 동창생을 만나가지고 지금 잘 되가고 나도 저렇게 가정에 충실하면은 혹시 아는가? 또 괜찮은 과부가 와가지고 할지 희망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함께 살래요? 그 드라마예요. 인간이 갖고 있는 패를 가만있으면 상당히 순수해보이지만 언약이 와서 그 패를 들추니까 자기가 생각했던 그 영광이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미치게 만드는 그런 가짜 영광이였다는 것이 들통납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성전을 짓는데 46년동안 성전을 지었다. 여기에 대해서 누가 이의를 걸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만약에 그게 영광이라면 주님께서 예배당 지었어요. 46년? 내가 해가지고 더 멋지게 성전 지을거야 이렇게 나와야 인간생각과 예수님 생각이 합체되는걸 하겠는데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이 성전을 그 다음에 뭐라고 했어요? 헐어버리라는 거예요. 왜?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질하니까. 방해하니까. 뭐가? 인간의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그 생각이 집결된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버리는 거예요.



얼마나 헌금할 때 순전한 마음으로 누구 말대로 자발적으로 했겠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나름대로 순수제곱 순수예요. 곱하기 순수. 이가는 이 순수, 박가는 박순수 뭐 전부 순수하게 어떤 하나의 댓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이 몸 바치겠습니다 그 순수. 그 순수가 영광 가리는데? 영광을 가리거든요. 지금 신천지 이만희는 그냥 늙어 빠져가지고 괴물 다되었어요. 별거 없어요. 그럼 우리는 이만희 죽으면 신천지 무너질까요? 천만의 말씀이예요.



어떤 사람이 약사인데 같은 신천지 빠진 사람 약사인데 꼬셔가지고 자기 아버지는 뭐 대구에 큰 교회 장로고 그리고 삼대째인가 몇 대째 계속 그 기독교 집안이예요. 그런데 이 약사는 결혼은 안했는데 약사인데 신천지에 4년전부터 빠졌어. 빠졌는데 신천지에 빠져서 하는 일이 뭐냐 하면은 약사로 월급 받은걸 몽땅 다 신천지에 갖다 바쳤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은 누가 강요했을까요? 누가 그걸 안하면 너 저주 받는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대대로 그는 기독교 가정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바치고 가출했습니다. 신천지에 숙소로 갔지요. 그래서 가족들이 신천지에 빠진걸 알고 이단에 빠졌다고 하고 온 식구가 동원해가지고 납치를 했어요. 납치할 때 그 딸은 납치할 줄 알고 약사니까 머리 똑똑해요. 납치할 줄 알고 내가 납치되거든 대구 수서 경찰소에 신고하라. 납치해가지고 모처에다가 가둬놨어요.



그 가정에서 왜 딸을 강제로 납치했느냐 하면 그 딸이 말썽꾸러기고 지 맘대로 살거 같으면요 납치까지 할 필요 없어요. 이 딸이 약사라는 것. 이게 돈이 된다는거. 약사가 되고 되면 레벨이 결혼할 레벨이 높게 잡아서 의사와 결혼할수 있다라고 가졌던 서른살까지 가졌던 보람이 그 보람입니다. 약사 했다가 물론 인물 된다는 조건이 되야 되지만 인물된다고 치고 의사와 해가지고 그러면 부모 좀 어려울 때 사위는 의사, 약사가 되가지고 좀 빈대 붙어도 좀 이렇게 내가 널 얼마나 키워줬다고! 이렇게 큰소리 치면서 아이 하나 보고 250 뜯어낼수 있는 그런 경제적 기반이 되니까 아마 부모도 한거죠. 그런데 그 아이가 신천지에 빠졌다 이말이죠. 그 큰 교회에 신랑감 많이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신천지 빠졌거든요.



그러니까 그 딸을 납치하는 이유는 그 딸의 수입이 아까운거예요. 말썽꾸러기가 아니고 너무 착실하니까 납치를 했다 하니까 친구가 신고를 했고 신고해가지고 이제는 형사가 집에 오는 거예요. 나이가 열몇살이 아니예요 서른살이예요. 서른살 같으면 자기 결정이 있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납치해버리면 가족들이 처벌을 받지요.



이게 지금 말씀과 관련되니까 쓸데 없는 소리한다고 속으로 이야기 하지 마세요. 여기에 대해서 나한테 상담이 와있다니까 상담을 했다니까 상담을. 가까운 사람입니다. 상담을 해온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으냐? 그래서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지금 구분을 못하고 있어요. 이 세상이. 지금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잖아요. 기도할 때 16장 내용이 뭐였던가요? 성령이 온다는 조건하예요. 성령이 오신다는 말은 뭐냐 하면 제 3의 요소에 직면하게 된다는 이 말입니다. 제 3의 요소. 인간은 나와 너 제 2의 요소지요. 나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바깥에 있는 것이 너가 되요.



그 다음에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어요? 1요소가 나고 2요소가 타인이라면 하나님은 어디속하겠습니까? 이 2요소에 속하지요. 나 빼놓고 다 타인이니까. 나 빼놓고 타인이예요. 그럼 1요소 2요소 결합할 때는 내쪽에서 돌아서면 되는 겁니다. 내쪽에서. 성전을 짓든 십일조를 바치든 약사해서 월급을 바쳤든 그건 뭐냐 하면은 하나님에 의해서 내가 어떻게 자발적으로 그것도 순전한 마음으로 어떤 댓가도 없고 너무나 흔히 세상 교회에서 말하는 기쁨으로 그냥 기쁨이 아니고 무슨 기쁨? 성령의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이걸해서 30배 얻겠다는 그런 노림수도 하고 너무 귀해서 바쳤습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드린 마음으로 그 아가씨는 신천지에다가 바친거예요.



세상에 이런 요한계시록 이렇게 풀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 요한계시록 이 진리에 대해서 나는 내 인생을 여기다 걸었다. 기존에 내가 다녔던 이 기존교회 기성교회는 전혀 이런 진리가 없이 그냥 노는 곳인데 여기는 노는 곳이 아니고 진리로 시작해서 진리로 끝나는 그야말로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는 단체다. 이게 천지천지 신천지단 말이죠. 그러니까 아낌없이 바치는 거예요.



지금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왜 성전을 그렇게 거청하게 짓느냐 할 적에 강요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이만희 죽어도 관계없어요. 신천지는 누가 만든다? 거기에 자발적으로 헌신했던 자들의 모임이예요. 거기는. 그리고 기존 교회도 마찬가지고. 목사가 헌금을 강요한다고 내는 것은 억지로 낼 수 있지만 그러다 거기 오래 몸 담아보세요. 예배당 교회 자체가 제 2의 자아성이 되는 겁니다. 제 2의 나의 세계가 되는 거예요. 그거 손대면 나를 손대는 거예요. 그거 욕하면 나를 욕하는 겁니다.



남자들이 제일 화나는게 뭐냐 하면 내 차 손댈 때. 여자들이 화낼 때는 내 가방 손댈 때잖아요. 내 옷 손댈 때. 내 차 손댈 때는 나를 손대는 것하고 똑같은 거예요. 내 차를 차는 것은 차라리 내 무릎을 차는 것하고 똑같은 겁니다. 용납이 안되지요. 옛날 조선시대 때는 말을 건드리는 것이 나를 건드리는 거예요. 옛날 남자들은 말을 좋아하다가 요새는 차를 좋아하는거예요.



차나 말이나. 제 3의 요소가 필요치 않습니다. 내가 여기 있고 하나님이 YOU가 당신이 있다면 내쪽에서 시작해서 내쪽에서 순진한 마음으로 바치고 영광돌리고 감사하고 찬미하면 YOU 당신께서 기뻐하면 그걸로 종결되는 거예요. 그게 인간이 그동안 하나님 섬겼던 겁니다.



제자들이 있지요. 그 다음에 제자들 앞에 누구 있습니까? 예수님 있지요. 예수님께 영광돌린다. 제자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예수님을 사랑하면 되잖아요. 뭐가 문제예요? 여기 나 있고 누구있고? 예수님 있고. 끝나는 문제 아닙니까? 그런데 16장에서 누가 온다고 했어요? 성령, 성령이 왜 와야 됩니까? 성령이 왜 와야되냐 이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알아요. 제자들은 성령이 왜 와야되는줄을 몰라요. 예수님 있고 나 있으면 그걸로 족하지 성령이 왜 와야됩니까? 내가 교회다닌다. 예배 드린다. 영광받는다. 그러면 끝나는거 아니예요? 그러면 나 구원받는거 아닙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누가 와야되요? 성령이 와야된다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이 시대의 얼마나 중요한 문제 입니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몰라요.



17장에서 예수님이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나를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없다?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자들은 그걸 몰라요. 예수님 사랑하고 예수님 따라 다니고 예수님 죽기까지 따라다니면 예수님 영광스럽게 되는 줄 알고 있어요. 왜? 평소에 본인이 남하고 좋은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가 그런 성의를 표했고 자기 딴에 정성껏 대접하고 자기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에 그걸로 기뻐하고 영광되는 줄로 알았지요. 예수님이여 영광스럽습니다 이러면 영광되는 줄로 알고 있어요.



아까 누가 질문한 것처럼 왜 단절이 필요합니까? 왜 단절이 필요한가? 인간들은 몰라요. 그런데 성령은 무슨 영이냐 하면은 성령은 십자가의 영이예요. 십자가 영. 이말은 십자가지지 아니하면 성령이 안옵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하는 말이 나는 너희들이 예수님이 죽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알아란 말이 아니고 너 때문에 죽은 예수를 알아라 이 말이예요. 너 때문에 죽은. 너로 인하여 죽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 죽은 것에 보탬했다고 우리가 구원받는줄 아십니까? 아니예요. 남편이 술 먹고 와서 여자의 뺨을 치고 머리를 밟았다. 밟아놓고 남자가 하는 말이 너는 밟혔으니까 천사고 나는 밟았으니까 악마지. 니가 천사되는데 내가 보태줬으니까 너 나한테 감사해라. 이게 말이 되요? 말이 안되지요. 말이 안되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예수 죽는데 보탬했기 때문에 우리 구원해 달라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예요? 밟았으면 미안해서라도 입에서 구원이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되지요. 그래서 십자가를 짊으로 말미암아 어떤 인간도 입에 구원이라는 말 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어떤 인간도. 너희 십자가 지기까지는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렇게 했지요? 그러나 십자가 지고 난 뒤에는 전부 다 입 다물어야 되요. 입 다물어야 되요 전부 다.



요한복음 3장에 이런 말씀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이르지 못하잖아요. 이르지 못한다고요. 죄를 범했으매. 그러면 왜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습니까? 죄죠. 그러면 처음부터 죄인이죠. 그 죄인이 정성을 모은다? 그 죄인이 정성 모으면 죄의 꽃다발. 죄의 꽃다발이죠. 죄의 정성 모으면. 그렇잖아요. 죄인이 정성을 다하면 정성을 다해 죄짓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정성을 다해서 십일조, 그러면 십일조가 죄가 되는 거예요. 정성을 다해서 선교, 선교가 죄가 되는 겁니다. 예배당 짓는거 다 죄가 되는 거예요.



제가 어제도 여러번 이야기 했습니다.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말씀 아닙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뭐가 아니다? 네모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죠. 그러면 교회는 교회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교인으로 만들지. 교회에 등록된 사람으로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위에 계신 분이 쳐주지를 않는다니까요. 쳐주지를 않아요. 위에서 가짜라는데 왜 밑에서 우기고 난리예요. 저 사람은 예배당 짓는데 이번에 집을 팔아서 자기는 전세로 옮기고 여분의 돈만 바쳤다. 바쳤겠지. 그래서 생긴게 훌륭한 예배당이다. 예배당 챙겼겠지요. 그게 뭐! 뭐! 뭐 어쩌라고 그게. 어쩌라고. 그게 뭔데 그래? 뭔데!



신천지나 구천지나 똑같아요. 똑같은 전부다 똑같은 이단들이예요. 똑같은 이단들이예요. 인간이 지금 그 약사 아가씨 제일 잘못은 뭐냐 하면 신천지라는게 이게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기존 교회가 의미 없듯이 신천지도 의미가 없어요. 이것도 주의 영광이 안된다고요. 신천지가요. 구천지도 물론이고. 왜? 본인의 영광이 안되니까. 본인의 결정과 선택이 이게 뭐냐 하면은 이걸 오기라고 해요 오기. 오늘 제목을 오기라고 할까? 이건 오기되요. 오기란 말은 뭐냐 하면은 내 앞가림을 내가 선택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 오기입니다. 내 앞가림을 내가 선택해서.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한 뭐냐 하면은 제 3의 요소가 1의 요소와 2의 요소 밖에 없어요. 제 3의 요소는 없는 거예요. 제 3의 요소 성령이 오게 되면 내가 어떤 결심 어떤 오기도 죄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요. 내 결심을 해도 소용없고 안해도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그럼 제가 목사님 그 말이 맞기는 맞는거 같은데 문제는 그래가지고 교회 교인 몇 명 남겠습니까? 이렇게 하거든요. 목사님 그런 생각 안듭니까? 혹시 목사님이 그런 생각 들든 사모님이 말리세요. 둘다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만.



요한복음 6장 39절인가 보면 나오지요. 예수님께서는 자기 택한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지요. 이걸 안 믿는거예요. 이게 성령을 안 받았으니까 이걸 믿지를 못하는 거예요. 교회가 50명 있었는데 다 나갔다. 그래도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 실수다? 실수 아니다? 예수님이 거기서 안달납니까? 아이고 내 양을 네가 다 놓쳤구나. 천국 갈 사람 다 빠져버린다. 이걸 어째. 이를 어찌해. 어떡하지. 천국 올 사람 없어서 어떡하지. 지금 예수님 걱정하고 있습니까? 50명 교인이 다 나가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게 가지치기를 했다. 가지치기. 주께서 가지치기를 한거예요. 오지 않을 사람은 제발 못오게 하겠다는 겁니다. 쳤다 이말이죠.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가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네가 거기서 뭐를 증거했느냐? 그 교회에서 뭐를 증거했느냐? 라는 겁니다. 목사인데 교인이 하나도 없다. 얼마나 잘된 일입니까? 얼마나 잘된 일이예요?! 예?! 교인이 오천명이다. 이거는 필히 목사가 자기 영광을 포기 못합니다. 나 오천명 교회 당회장이다. 자기 영광 포기 못합니다. 그런데 교인이 한명도 없다. 개코 영광 돌릴게 있어야 영광 돌리지. 강아지나 키울까? 교인들 한명도 없으니까. 영광 돌리고 싶어도 주께서 허락을 안하니까. 뭐 교인이 있어야 영광을 돌리지 있어요. 나온 열명도 다 가버렸는데. 있어요. 없는데.



이번 수련회 교재를 이번에 제가 다 썻거든요. 쓰면서 이 내용이 나와요. 부재를 읽어라. 부재라는 말은 뭐냐하면 없음. 없음을 읽어라. 없음을. 없음의 영광, 없음의 고마움, 없음의 가득참, 없음의 진리성, 이런걸 파악할 수 있어야 되요. 있음이 없음의 영광성을 있음의 영광성이 계속해서 훼방놓고 있습니다. 방해하고 있어요. 있음에 인간들은 환장해 버렸습니다. 환장해 버렸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있음을 없음으로 바꾸는 거예요.



요한복음 16장에서 15장에서 14장에서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나 지금 너희 눈에 있지만 나 없다. 없어진다. 나 없어진다.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 다시 말해서 너희 눈앞에서 나 없어질걸. 없어지고 다른 분 누가 오십니까? 다른 보혜사 성령이 오십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있는 사람 준다고 있음을 추구하는데 내가 없어질 때 너희는 나를 다 떠날 것이다. 왜? 또 다른 있음을 찾기 위해서. 없는걸 어떻게 붙듭니까? 없는건 이제 치우고 또 있음을 향해 가는거예요. 목사님들은 쉽게 이해하는 거예요.



어느 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당회장하고 티격태격 거렸다. 그러면 또 어디 가야되요? 다른 있음의 교회 가서 부목사해야 방금 태어난 아이 우유 값이라도 얻을거 아닙니까? 전도사들 애는 왜 그리 많이 낳는지. 하여튼 고신 전도사들은 아이 3,4 그냥 낳아. 알아요? 어떤 고신측 교회를 알거든요. 유아실에 가면 전부다 부목사들 아이들이예요. 4명씩 낳아요. 왜? 주께서 먹을걸 주실줄 믿습니다 하고 있다고요.



구미의 어떤 목사는 12명 낳았어요. 이거는 완전히 국가 예산을 완전히 이거는 청와대 청원감이예요. 12명되니까 이거는 가만있어도 가만있지는 않았지만 아이 기저귀만 갈아도 한달 적어도 300은 나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앞 일을 생각하면 그 아이들 전부 다 나중에 일꾼으로 필요하겠지요. 주일학교 기본적으로 12명이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믿음이라고 하거든요. 주실줄 믿습니다.



그게 믿음이 아니고 뭐냐 하면은 오기예요 오기.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있기에 나는 있음만 추구한다. 그것을 주께서는 몽땅 없음으로 바꾸어지게 하는 거예요. 있기 때문에 있음만 추구하는 나를 그렇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영광이 아니고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 거예요. 있다는게.



너희들은 나처럼 없는 사람 되야 되요. 없는 사람. 저승사자. 투명인간. 없는 사람. 있어도 없는 사람.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예수님은 잠시 나타났다가 곧장 이에서 사라질분이잖아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된 것은 요단강에 세례받아서 그렇죠. 성령 세례. 요한복음 1장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3장에도 나오고. 성령의 세례를 받고 난 뒤에 예수님은 성령세례 받은 분으로 살아가요. 성령세례 받은 분이 자기 백성에게 뭘 준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겁니다.



제자라고 하는 것은 지난 낮설교에 그런 이야기 했는가? 낮설교 인지 오후 설교인지 모르겠는데 세례라는 것은 단회성이예요. 단회성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요소가 정지되고 단일화된 체제, 확정예요. 세례라는 것은. 그 안에 놓인 거예요. 그걸 저는 쉽게해서 물을 확 뿌리는게 아니고 물이 확 덮쳐버리면 우리는 물 속의 인간이 되는 겁니다. 성령 받으면 성령 속에 있는게 되요. 성령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덮친다니까요. 그래야 한번입니다. 그래야 한번이잖아요. 덮치고 그 안에서 성령의 요소를 반복해 나가는 겁니다. 덮친 상태에서. 그래서 한 번 온 성령은 철회가 되지 않습니다. 한 번 성령을 받았으면 그 다음부터는 철회가 되지 않아요. 지속적인 성령을 받은 것이 되는 겁니다.



왜? 왜 덮치느냐 하면은 제 3의 요소는 제 1의 요소와 관계되는 제 2의 요소, 제 2의 요소가 누구지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죠. 제 2의 요소는 우리죠. 우리가 제 2 예수님을 우리 죄 때문에 이 예수님이 사라집니다. 사라진 그 자리에 다른 보혜사가 와버리면 우리는 뭐가 되느냐 하면 내가 예수님을 죽게 만드는 죽게 만들었다. 예수님을 망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로 제 3의 요소인 성령 앞에 우리가 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있잖아요. 있음이잖아요. 있음과 관계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까 순전한 마음으로 정성으로 열심을 다하여 예수님을 하고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이 있음, 예수님의 있음이 뭘로 바뀌었습니까? 없음으로 바뀌면서 성령이 와버리면 이 있음이 예수님의 영광을 가렸다. 훼방했다 이렇게 되어 버려요.



그러면 이게 뭐냐 이걸 가지고 성령의 객관적 사역. 객관적 사역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우리는 뭐한다? 책망하는 거예요.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곡해 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내가 현재 나 있는 나를 잘 되는나, 죽어서 천국 가는 나로 자꾸 오해해서 일을 한거예요. 오해해서 받아 들인거예요. 아 나 잘 되라고 주님께서 포도주 줬구나. 나 잘 되라고 뭐 어떻게 했구나. 오병이어 줬구나. 그런데 오병이어 주고 난뒤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히려 오병이어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그 많은 제자들 사이에 12제자 말고 갈라서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잖아요. 갈라서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요.



지금 제가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 그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이냐? 성령 없이 볼것이냐? 성령 있이 볼것이냐? 그래서 이 성령은 우리의 뭘 뜻하느냐. 바닥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바닥은 예수님 망가지심 그게 우리의 바닥이예요. 예수님 망가지심. 그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위해서는 뭐를 경유해야 되냐면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죄라는 것을 경유해야 됩니다. 경유. 이걸 경험하고 가셔야 되요. 예수님이 경험하고 가셔야 되요.



그렇다면 성령세례에서는 두가지 절차가 있지요. 성령세례는 절차가 과정 두가지 첫째는 뭐냐면 의인이 뭐되는 것이다? 죄인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죄인이 뭐 되는 것이다. 의인되는 것이다. 이 두가지 과정이 성령세례 안에 있습니다. 성령세례 받은 예수님께서 의인이면서도 망가졌잖아요. 이 땅에서. 이단소리 듣고. 마귀의 고수다라는 소리 듣고. 망가지신거예요.



그리고 난 뒤에 그 죄인이 의인되시면서 사라져 버렸죠. 사라져 버리면 모든 있음의 존재의 세계는 뭐가 되느냐 하면 예수님께 대드는 예수님께 달려드는 예수님의 적이 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천국에 못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영광의 나라가 천국 아닙니까? 천국에 갈 수 없다 이말이죠. 아무도 갈 자가 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음으로서 모든 사람이 다 죽은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4절인가 나오지요? 그런데 이런 사실을 교회들이 모르고 교회는 그냥 인간의 종교심을 자극해가지고 보다 건전한 것 다 끄집어 냅니다.



십일조 돈을 다림질해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티를 묻혀가지고 내라. 그냥 빡빡 다려서. 어느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지요. 헌금은 우리가 하려고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헌금한거라고. 우리의 모든 생활비는 주님이 주시는 헌금을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어디에 뭐하라고? 살라고? 아니 죽으라고. 죽으라고 생활비 주시는 거예요. 죽으라고. 있음을 있다는 그것이 착각이고 없다라는 것이 진실이라는 겁니다. 진실. 투명인간. 있어도 없는 삶. 분명히 있는데 사람 눈에는 없이 보이는 거예요. 투명인간 또는 택한 백성. 사실은 저승사자는 천사 같은 존재예요. 시키는대로만 하는 거예요. 천사의 특징이 뭐냐 하면 시키는대로 하는 거예요.



제가 어떤 설교에 그런거 했지요. 뭐냐하면 왜 사람이 긴장하는가? 긴장하는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시키는대로 안 하니까 긴장하는 겁니다. 내가 시켰으니까 긴장하는 거예요. 일이 사단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시키는대로 하게되면 느긋하지 논리상 당연하거든요. 시키는대로 하면. 그런데 시키는 제 3의 요소가 없을 때는 누가 누굴 시켜야 되요? 내가 나를 시켜야 되니까 시킬 때는 결국 나의 인생이 어떤 나보고 어떤 지령을 내리고 명령을 내려버리면 명령을 해버리면 나는 있음에서 성과를 내야된다는 부담을 갖고 있는거예요. 성과를.



한 목사님은 인생 살면서 어떤 성과를 냈습니까? 아이 3명 낳은거. 인간에게는 성과라는게 없어요. 왜 성과가 없느냐하면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댓가는 뭐냐? 처벌은 뭐냐하면 죽음이예요. 죽는 겁니다. 병든 자의 영광을 부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병든 자의. 이미 죽기로 된자의 영광은 이거는 뭐냐면 언약 밖에서 통용되는 거예요. 언약 밖에서. 언약 밖에는 물 아래 있다고 보면 되요. 저주 아래 있다. 먹든지 마시든지 시집가든지 장가 가든지 뭐를 하던간에 그게 저주 아래 있는 거예요. 딴딴따딴 딴딴따딴 했잖아요. 그게 저주예요. 저주 아래서 지금 결혼식 하고 있다고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결혼도 저주 아래서 하고 있어요. 저주 아래서.



야구 있잖아요. 오늘 야구할거예요. 야구도 저주 아래서 하고 있어요. 남북회담 저주 아래서 하고 있어요. 남북회담. 저주아래서 하고 있어요. 뭐 이 세상에 저주 아닌게 없어요. 아들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뭐가 오고? 요한복음 3장에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저주가 오고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단촐한 문장이잖아요. 간단한 문장이잖아요. 간단한 문장. 어려운 문장 아니예요. 간단한 문장이예요.



그런데 있는 자, 있음이 믿는다는 것은 있음에서 제 1의 요소, 제 2의 요소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 죄가 믿는다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오기 또는 성과내기 또는 자기 기대에 부흥하기 이런거란 말이예요.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는거예요. 모든 죄는 욕심에서 나오거든요.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뭐를 낳습니까? 사망을 낳잖아요. 사망을.



제가 그 지난 낮 설교 하면서 질문드린걸 했잖아요. 어떤 사람을 질문하기를 이렇게 했어요. 뭐라고 했느냐 하면 술 먹은 사람은 성령 안 받은 사람이죠? 라는 질문을 했지요? 술 먹은 사람은 성령 안 받은 사람이다. 이 질문 듣고 분노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겁니다. 성령 받아도 술 먹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 있잖아요. 성령을 받게되면 있는 인간이 무슨 짓을 하던지 그 바닥을 드러내는데 그 바닥이 예수님께서 의인이면서 죄인되는 그 과정, 과정에 일부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성령받은 사람이예요. 술을 먹는 것이 바로 이것이 옳은 일이 아니고 나쁜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물어봅시다. 술 안 먹는 것은? 술 안 먹는 것은 옳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술 먹을 때는 여러분 술 안 먹어봐서 모르지요? 술 먹는 다는 것은 술 먹는 것에 집중하는게 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술 안 먹을 때는 술 안 먹었기 때문에 엉뚱한데 집중하겠지요? 그게 죄가 되는 거예요. 술 먹어도 죄고 술 안 먹어도 죄라는 것을 성령 받은 사람은 아는 겁니다.



따라서 그 사람에게는 술 먹습니까? 안 먹습니까?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전부다 사소한 일이 되는 거예요. 사소한 일. 사소한 일을 키우는 것이 바로 뭐냐 하면은 이게 악마의 일이예요. 악마가 그런 짓해요. 왜냐하면 이 악마는 이 있음을 전제로 해서 있음에서 괜찮은 성과를 내야하는 성과주의. 오기, 성과, 행함, 결정, 자기 결정권 이걸 통해서 자기 어떤 의로움 경건함 성과를 내도록 악마가 계속 부추기는 겁니다. 이걸 누가 했냐? 이걸 바리새인들이 한거예요. 바리새인들이 바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그들은 인간인 뭘 할 수 있고 하게 되면 완전 성과를 낼수 있는데 왜 그걸 전면적으로 부정하느냐 이 말이거든요. 10분 쉽시다.
 홍민희(IP:121.♡.203.222) 18-05-10 19:54 
강남-요한복음 17장 2절(제3의 조건)180501b-이 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합시다. 첫 번째 시간 끝에 이런 이야기 했지요. 욕심을 안 냈을 경우에는 욕심이 안 났을 경우에 그 의식은 가만히 있겠느냐 말입니다. 욕심을 안 냈을 때.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잖아요. 그럼 나 욕심 없어. 그건 욕심 아닌가요? 가만있습니까? 인간이? 머리가 딴 데 가지요? 딴 데 갈 때 그냥 가는게 아니고 그 방향에 대한 새로운 성과와 기대와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 기대와 목표라 하는 것은 여기 나 있음과 관련성 있어요. 나를 키운다든지 나를 지킨다든지 나의 생존에 유리하다든지 나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라든지 인간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여기서 펌프질하고 있는데요. 생존에 대한 욕망이 계속 세포가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이 말이죠.



가만히 있는게 뭐예요? 인간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니까.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머리카락이 자라는데. 심장은 뛰는데 잠잘 때도 심장은 뛰는데요. 가만히 있는게 뭐예요? 가만히 있어 해가지고 어디 시위할 때 데모할 때 가만 있는가?



왜 인간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냐 하면 하나님이 가만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그 인간을 가만두지 않고 계속 손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손길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가만있지 않아요. 멈출 때 그 기회 그 작전 그 계획 그 프로그램이 뭐냐? 그게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계속 세상을 움직여요. 예수그리스도의 속성은 계속 움직인다고요. 버림받을 자는 버림받아야 되고 구원될 자는 구원되야 되고, 내가 일하니 아버지도 일하고 아버지가 일하니 내가 일한다는 것은 이것은 인간이 일 그만하세요 노세요 쉬시지 이게 안돼요.



그런데 인간은 제1요소 제2요소 자기를 표적으로 삼다보니까 계속 내가 일 안하면 지금 세상이 안 돌아가고 있는 줄 알고 있어요. 목회는 누가 합니까? 주님이 하셔요. 제일 중요하죠. 왜? 택한 백성과 안 택한 백성을 철저하게 가려내니까. 가짜를 용납하지 않거든요. 슬그머니 발 하나 집어넣고 천당가려고 이렇게 꼼수 쓰는 사람들을 여지없이 전부다 다 가려내서 다 발 빼! 어디 개다리 집어 넣는거야. 다 빼게하고 철저하게 완벽에 완벽을 기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에 보면 1장에 보면 2장인가 거기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no가 아니고 전부다 yes가 되는 거예요. 빈틈이 없는 거예요. 빈틈이. 쉴 수도 없고 빈틈이 없어요. 미션 임파서블. 우리 입장에서는.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possible 모든 것이 가능해요. 불가능은 없습니다. 가능한 미션인거예요 전부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성령이 와야 알지요. 성령이 안 오면 모든 측정을 내 인생 조져놨다 내 인생 잘 풀렸다 이걸 측정을 판단을 누가 하느냐 하면 있는 내가 판단해요. 내가 판단하면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어요.



그 영재들이 나오는 아이들 영재들 나오는 tv가 있어요. 어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보는 아이가 하는 말이 뭐 들은 풍월은 있어 가지고 7살인가 9살인가 그런데 나의 재산은 책이다. 아~멋진 말이죠. 9살인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하는 아이인데. 나의 재산은 책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명언을 자기가 그냥 그대로 그만큼 똑똑하니까 이걸 인용할 줄도 알죠. 똑똑하니까.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래서 내 재산은 20만원입니다. 이게 뭐야 이게 사단났어 이게. 여기서는 얼마나 고상해요. 책 안에 있는 모든 지식이 나의 재산이다. 이렇게 했는데 그래서 내 재산은 20만원이다. 그 아이가 어른되어도 20만원에 족하겠습니까? 어른되어도?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아는 만큼의 그 사람의 월드예요. 세상이예요. 자기가 아는 그 세상은 참고되는 아는 만큼만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 판단하는 그 판단은 전부다 하늘에 이르지 못합니다.



공자가 지가 뭘 알고 맹자가 지가 뭘 압니까? 공자 맹자 형제간 아닙니다. 소크라테스가 지가 뭘 알아요. 소크라테스는 자기도 모른다는 거예요. 니가 뭘 모르는데 그걸 이야기 해야지. 뭘 모르는지를 몰라요. 자기가 모른다는 그 개념조차도 정리가 안돼있어. 자기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자꾸 우기는 겁니다. 석가모니가 지가 뭘 압니까. 머리만 깎았지. 석가모니가 머리 깎았나? 모르겠어요. 지가 머리만 깎았지 알기를 뭘 알아요. 지가 죽어 봤어요? 이 땅에 있는 존재가 없는 존재 돼 봤어요? 없는 존재가 다시 살아나 있는 존재가 되어 봤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앞에서는요 자기 인생의 서글픔과 낭패를 논하지 마세요. 그것은 사치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 되는게 진리가 아니예요.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걸로 진리가 끝이예요. 모든 진리는 마감되어 버렸습니다. 그 앞에서 목회가 되니 안 되니 우리 아이가 아프니 장로님 지금 허리 아파서 누워있고 이런거 어떤 것도 tv가 고장났니 이런거 있잖아요. 이거는 그야말로 극히 지극히 사소한 문제예요. 너무나 사소한 문제입니다. 입에 담을 필요도 없어요. 모든 것이 끝났어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끝났어요. 우리가 증거할 것은 그것만 증거하면 되요. 내 인생이 이렇게 화려하다 그거 증거하면 안돼요. 그 증거할 필요도 없고. 남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더라. 어떤 사람이 와서 내 돈 사기쳐서 가져갔다. 그런 것은 고민거리도 안 들어갑니다. 거지돼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고 중요한 것은 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1일의 문제 가지고 제 3의 문제를 통해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관한 문제가 그게 진리지 내가 천당가는게 진리가 아닙니다. 내가 산다는게 진리가 아니예요. 영생 얻는게 진리가 아니예요.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게 진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뭐냐 하면은 있어도 없는 사람 되어 버리죠. 왜? 신경 뚝, 신경 쓸 필요 없기 때문에. 있어도 없는 사람 이게 투명인간이잖아요. 투명인간. 저승사자. 저승사자의 특징은 시키는대로 한다는 거예요. 천사들이 시키는대로 하는 거예요. 애굽에 천사들이 와서 사무라이처럼 칼 들고 와가지고 집집마다 다 쳤습니다. 쳤는데 그 하늘나라 사무라이가 딱 보니까 어떤 애가 갓난아이가 너무 불쌍해. 맞이인데, 첫 아이인데. 너무 이뻐. 이제 60일 됐는가 그래요. 두 달 되었어요. 죽일까요? 아닐까요? 죽일까요? 안 죽일까요? 맞이인데 맞아들인데. 죽일까요? 안 죽일까요? 답변해보세요.



죽이지요. 어차피 걔 커도 죽으니까. 죽이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 뭘 없앴느냐 하면 모델로 없앤거예요.  있음이 찾는 그 모델을 애초부터 없애버리고 그 죽음, 현장에 나타난 모델 무슨 모델이죠? 어린 양. 어린 양, 피흘린 어린 양 그게 유일한 모델이 되는 겁니다. 그게 유일한 모델이예요. 이걸 가지고 언약이라고 해요 언약. 요한복음 17장에 들어와서 16장 이야기를 왜 했느냐 하면은 이쪽과 저쪽에서 단절되어 있는 겁니다. 이쪽과 저쪽에서. 이쪽이 어느 쪽이고 저쪽이 어느 쪽인지 알아야 되니까.



이쪽은 여러분 성령받았으니까 이쪽은 우리 편 예수 편 합시다. 저쪽은 성령 없는 사람. 이쪽과 저쪽을 나눌 때 여기에 뭐가 되느냐 단절되거든요. 단절될 때에 왜 단절이냐 하면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 올수가 없는거예요. 왜 없느냐? 그것은 저쪽 사람들의 그 바닥을 조사해봐야되요. 바닥을. 바닥을 조사해보니까 그거는 뭐 되냐 하면 죄로부터 시작되더라 말입니다. 이 바닥이. 그들이 시도하는 그 모든 영광 그들이 시도한 모든 경건 바리새인이 시도한 율법 지키기 모세 숭배하기 모세대로 살기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주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가 되는 겁니다. 죄니까 이거는 뭐냐 그 저주에서 뭐가 소복히 쌓이겠어요? 하나님의 저주가 쌓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왜냐 단절되었기 때문에 이쪽은 없는 거예요. 이쪽은 없는 세계입니다. 없는 세계이니까 인간 세계에는 자기들 밖에 없으니까 따로 이쪽세계를 설정할 수 있는 그러한 그 자질이나 능력이나 그런 상상은 소용없는 거예요. 어떻게든 이쪽에서 자기들 있음에서 있음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그런 궁지에 몰려있습니다. 말씀은, 율법은 줬고 모세의 율법은 받았고 그 율법대로 살아야 복을 받는다고 하니까 온갖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서 그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거예요. 그러나 지키면 지킬수록 그들은 점점 더 자기의 저주성만 노출될 뿐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걸 안한다고 해서 이걸 안한다고 해서 인간의 의식이 멈추어져 있는가? 그거는 아니지요. 안하면 또 딴거 생각한다니까. 딴거 생각해도 그것도 저주가 되요. 이래도 저주 저래도 저주. 왜? 갇혀있으니까. 있음의 세계에 갇혀있으니까. 우선 있는게 내가 있고 그 다음에 있는게 남이 있고 그 다음에 세상에 다 해와 달과 별이 있고 다 있음의 세계로 구성된 있음의 현실, 있음의 세상, 이것 외에는 다른 것은 의미 없다고 인간들은 이구동성으로 거기서 확정해버렸어요. 있음의 세계에서 만든게 바로 성전 있음이 아닙니까. 성전 있음.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걸 뭐라고 합니까? 헐어버려라. 이 있음을 뭐로 바꾼다? 없음으로 바꾸는거예요. 없음으로. 오병이어에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그 기적에서 사람들은 뭘 따라오느냐 하면 떡을 먹고 배부른거죠. 떡은 어떻습니까? 떡은 있지요. 떡을 먹는 나도 있잖아요. 있음이 떡을 먹고 있음이 더 생존되고 크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예요. 살과 피를 마셔라. 식인종 되라는 말입니까? 육회 먹으란 말이예요? 선짓국 먹으라? 아니거든요. 살과 피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 이거는 죽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죽음을 마셔라. 죽음을. 죽음을 마시는 거예요. 죽어라 이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런데 죽을려고해도 안돼요. 살아있는데 죽어버리면 또 기대하게 되요. 죽고 난 뒤에 뭐 주렵니까? 또 기대하게 되어서 안돼요. 그냥 죽어라. 그냥 죽어라. 죽어라 이 명령은 성립이 안됩니다.



사실은 인간에게는. 안되지만 왜 명령을 하시는가? 성령이 오게 되게 되면 정말 죽어요. 이때는 죽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의 이미 죽었던 이미 죽으신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 움직이는 살아가는 존재의 등장. 이게 성령받은 성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그 죽음이 동력이 되어서 에너지원이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 나는 이미 죽었다고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확정지어 놓고 이 땅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120세. 너무 키웠나?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이 땅에서 살게 하는 겁니다. 저승사자지요 뭐. 투명인간이고.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유명한 말씀있죠. 내가 날마다 죽고 내 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사는 것. 그것은 성령이 왔을 때 그거는 우리가 멈추세요 라든지 하지마세요 라는 말이 소용없어요. 주님이 그렇게 하겠다는 건데 어떻게 합니까. 주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계속 적용시키겠다는데 누가 말려요. 말릴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네가 한다는 말이 아니고 네 속에 성령이 그렇게 하게 하신다는 뜻이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네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있는 성전이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겁니다. 이거는 지금 성령을 안받았으니까 예수도 내가 믿고 십자가도 믿고 그 다음에 그러므로 그 다음부터 착한일하러 나서기. 누가한다? 성령받은 자기가 나서서 한다는거예요. 자기가. 자기가 나서서 한다고 하니까 이게 안 돼요. 무시로 기도가 안 돼. 시도때도 없이 기도가 안 되는 거예요. 시간 정해놓고 기도해요.



그럼 시간 정하면 오후 2시 하고 7시 하면 4시간 동안 뭐하는데? 4시간 동안 기도해야지. 쉬지 말고 복음 전하라. 어떻게 쉬지 말고 복음 전합니까? 잠 안자고? 꿈속에서 복음 전할까요? 성령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바닥을 간다는 것은 계속해서 그 단절성을 성령께서 그 단절성을 계속해서 각인시킵니다. 확인시키고 확인시킵니다. 너 죽었잖아. 왜이래. 네 생각 뚝! 네 인생 뚝! 너 죽었어.



이럴 때 어떤 미친 인간이 생각나네요. 자기가 닭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외부에서 자기를 공격하게 되면 방어가 안 된다고 걱정하고 있는거예요. 그 의사가 6개월 후에 당신은 누구인가요? 닭이예요. 아니예요. 사람이예요. 사람이예요. 아이고 이거 나았습니다. 정신병원 나오자마자 다시 튀어 들어갔어요. 왜? 나는 내가 사람인줄 알겠는데 나는 내가 신자인줄 알겠는데 남이 나를 신자로 안 알아주면 나 어떡해 이거랑 똑같은 거예요. 제1의 요소와 제2의 요소가 여전히 살아 있어요. 여전히 살아있어.



주님의 성령을 받게되면 제1의 요소가 인간이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 죄인입니다. 우리가 이 있음이 자아내는 모든 죄를 성령이 와서 바닥까지 들추어내는 작업이  제1단계 아닙니까? 의인이 하늘에 계신 의인이 뭐가 됐다? 죄인이 됐다. 예수님의 이 단계를 우리에게 적용시켜 버립니다. 적용시킬 때 적용시킨 그 대상자는 제 2단계 그 죄인을 뭐가 된다? 죄 사함에 의해서 의인이 되는 그 과정에 이미 그 사람은 그 안에 들어와 있는거예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목사님 그걸 내가 알겠는데 나는 믿는데 다른 사람이 안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나오면 답없다 정말. 저 정신병을 어떻게 고치지. 그래서 나는 아는데 남이 내가 그런 믿음이 있다는걸 안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왜 남이 구세주입니까? 남이 구원자예요? 왜 남한테 물어보고 왜 남한테 물어봅니까? 왜 남한테. 왜 그걸 확인받으려고 합니까?



성령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찾아가서 하신 그 일은 제자들에게 이미 주신 그 모든 말씀, 이 말씀이 이제는 내 안에서 그 말씀이 위배되는 그 상황이 계속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우치게 될 때 우리는 이미 성령받은 사람입니다. 죄인 앞에 제 3의 요소 성령께서 십자가 이미 구원 하시고 십자가 주셨음에 1단계 의인이 죄인 되고 죄인이 의인되는 1단계 2단계 다 작용한다고 했지요? 작용하게 되면 우리한테 그대로 적용시키게 되면 우리가 죄 인임이 들어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거든요. 예를 들면 카게무샤라는 말 들어 본적 있습니까? 카게무샤. 카게무샤라 하는 것은 뭐냐하면 위장대역이라는 뜻, 또는 카게무샤 원래 뜻은 그림자 위상. 옛날 일본에 영주쯤 되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똑닮은 사람을 무사들을 쫙 한 몇 명 둬요. 해가지고 자기를 대역해가지고 그 사람을 여러사람을 보냅니다. 왜? 그래야 이게 암살을 안당해요. 암살을 당해도 자기는 살아남기 때문에. 스탈린이 그랬고. 어떤 사람들은 얼마전에 김정은 왔잖아요. 김정은 아니고 김정은 대역하는 배우라고. 진짜 정신병자가 있데요.



그런데 소위 성령을 받지 않은 인간이 자기 대역을 계속 양산해 만들어 내요. 자기 대역을. 카게무샤를. 계속해가지고 그림자 무사처럼 예수 믿는 나와 안 믿는 나와 자기가 만들어 내는 거예요. 하나 실패 하면 또 하나 밧데리 하나 집어넣는 것처럼 하나 없어지면 하나 가지고 들이밀고. 그런데 결국 어떤 인간 앞에 카게무샤 대리 위장대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이 것 가짜인 나도 여유분이 있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전략입니까? 이게. 성령이 오게되면 바로 내가 이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를 고백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에 예를 들어야돼요 그냥 하면 무슨 말인지 몰라.



‘맹세하지 말라’라는 말씀있지요? 맹세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딱 듣게 되면 내가 여기서 뭐를 발동 뭐를 출동시키느냐 하면 맹세하지 말라를 지킨 나와 지키지 못한 나를 발동을 시킵니다.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를 못 지키는 나가 없어져도 맹세하는 나가 있으니까 주의 말씀은 지킨 셈이 되지요. 이해 못하는 모양이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성경을 보잖아요.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할 때에 인간은 여러 가지 하는데 빛과 소금을 한 20% 가동, 20%는 빛이고 나머지 80%는 어둠이 되는 그런 나를 또 생각할 수 있고 70%가 빛인 여러 가지 경우를 우리가 생각해가지고 20% 인정하는 70% 가지고 복 타내겠다는 그것을 우리가 이 말씀 보는 순간 이런 자기 대역을 임의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말입니다. 만들어 내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성령을 통해서 보여준 바닥을 드러낸 하나의 증거가 된다 이 말이예요.



그런데 성령 받고 난 뒤에 나는 빛과 소금됐다 이 말은 이거는 뭐냐 하면 빛과 소금됐다면 카메라 한번 찍어보자. 빛과 소금인지. 그 사람 일거수 일투족 다 찍어 봐요. 빛과 소금인지. 아니거든. 인간은 자기 이익 자기부터 챙기게 되어 있지 자기 챙기는 빛이 어디있어요. 자기부터 챙기는 그런 소금이 있습니까? 소금이란 희생의 의미인데 미쳤다고 희생을 해요. 미쳤다고 희생을 해요. 자기 이득 없는데 일을 벌리지 않아요. 자기 손해 되는데 일을 벌릴 인간 없어요. 이 땅에서. 성령을 받고 뭘 받건간에. 그러면 자기 이익을 해 놓고 조금 미안하잖아요.



하지만 이익 받은거 중에서 조금은 그래도 10%는 어려운 사람 도와줬잖아. 이게 말하는 카게무샤라니까요. 자기가 봐도 이거는 온전치 못한 것을 알기 때문에 이거를 앞장세워놓고 뒤에는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여 해놓고 진짜는 다치기 싫은 그 주인공은 따로 또 뽑는 그런 식으로 위장대행으로 도망치는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산다 이 말이죠. 누가? 성도와 성도 아닌 자 모두가.



그런데 성령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 모델이기 때문에 그냥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 십자가 죽은 것 외에는 알지 않겠다 했잖아요. 어떤 예수입니까? 죽었던 예수님이거든요. 죽었던 예수님에서 예수님이 죽으셔야 성령이 와요. 죽었던 성령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지요.



멀쩡한 예수님 드러나게 되면 제자들처럼 멀쩡한 것 붙들고 이렇게 된단 말이죠. 성령께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려면 멀쩡한 주님이 아니고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전면에 딱 내세우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내가 예수의 죽은 것 외에는 너희가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이 말이죠.



그 십자가를 우리가 하루에 몇 초를 좋아할까요. 별로 안 좋아해요. 생각나지도 않고. 그러면 그 한 5초동안 좋아한다 칩시다 십자가. 그러면 나머지 24시간 5초 빼고 23시간 59분 55초는 뭐합니까? 누구 변명해요? 누구? 나 변명하잖아요. 나. 그때 누굴 모델로 삼습니까?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요? 다른 사람을 모델로 삼습니까? 다른 사람을 모델로 삼는 거예요.



장사하면 장사 잘 되는 옆에 가게 모델로 삼고 저 집은 왜 장사 잘 되지? 우리는 손님 하나도 안 오는데...항상 인간은 모델을 그냥 자연스럽게 평소에 자기가 욕구하는게 모델로 등장합니다. 모델로 등장해요.



그게 바로 악마가 욥에게 찾아오도록 우리 주님이 허락했지요. 마귀야 너 가서 욥 한번 건드려 봐라. 보낸 것처럼 지금도 주님은 악마를 우리한테 보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외에 다른 모델을 계속 찾게 만듭니다. 찾게 만들고 왜 나는 저거 안줍니까? 애들 장난감 떼쓰는 것처럼 나는 저거 왜 안줍니까?



애들 보면 진짜 괴물 키우는 거예요. 분명히 약속을 했거든요. 호두과자 5개 주면 5개주고 해야될거 아닙니까? 그런데 5개 받고 빨리 가면 되거든요. 빨리 동생 받고 하면 되는데 받은 그 자리에서 형한테 두 개 더 줘서 7개주면 동생 5개 다 던져 버려요. 형아는 7개주고 나는 5개 밖에 안주고. 싫어 싫어. 처음에 받을 때는 감사하다가 다 던져 버립니다. 왜? 모델이 바뀌었으니까. 모델이 그 5개로 종결될지 알았지. 7개짜리 모델이 나왔어. 7개 짜리가.



교회에서도 없는데서 한 10명 오게 되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지요? 50명되면 처음엔 좋아합니다. 이거는 계속해서 모델 바꾸는데 마귀가 그렇게 해요. 마귀가 그렇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닥을 드러내요. 우리의 바닥을 다 드러나게 만들어요. 역시 나는 있음의 한계에서 못 벗어난다. 뭐니뭐니해도 손에 쥐는게 최고다. 이 이야기 해놓고 왜 내속이 시원하지. 뭐 복음이고 진리고 예수던 간에 손에 있는 현찰이 최고예요. 채권도 싫어 현찰. 현찰 박치기. 현찰이 최고예요.



왜 그 본성이 바로 본성으로 인하여 아버지께 영광이 되지를 못하는 겁니다. 자, 그런데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니까 개인이 기도하게 되면 자기 개인 기도밖에 기도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기도하면 포괄적이예요. 주님의 모든 계획 전체가 다 한덩리가 되어서 기도 내용에 담깁니다. 기도 내용에 담기는데 기도 내용의 초점은 뭐냐? 전체를 아우르지만 초점은 달랑 하나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 2절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그다음에 뭐냐 하면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죠. 택한 백성.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와야되죠.



성령 줄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아무나 성령 주지 않아요. 성령 줄 때는 근거가 뭐냐 하면 예수님의 기도에 부합되어서 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예수님의 기도인데.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무조건 ok입니다. 성취돼요.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이거는 마귀가 흔들어도 인간이 흔들어도 우리가 도망가도 기도가 따라오죠. 기도의 응답이.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요나잖아요. 요나의 내용은 구약의 요나서의 내용은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요. 계속 죽음입니다. 계속 죽음이예요. 처음의 죽음은 다시스로 가다가 잡혀와가지고 잡혀와가지고 죽지요. 요나가 날 죽이라고 하지요. 선원들보고. 왜?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들한테 피해가 가니까 미안하니까 날 그만 죽여버리세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죽어요. 진짜 죽는줄 알았죠?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났어요.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게 성령이 오게 되면 요나의 내용이 오게 되어 있어요. 왜냐면 요나의 완성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요나를 요나의 표적을 예수님이 완성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이 들어왔다는 말은 요나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겁니다. 요나에게 들어오게 되면 나는 이미 죽은 자인데 이게 살아있어요.



이게 본인이 알아요. 본인이 닭이 아니고 인간인지 본인이 알아요. 그런데 이걸 남한테 이야기 할 수가 없어요. 왜? 본인이 아는데. 이게 남들한테 참 좋은데 뭐 말할 수가 없네. 이게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요. 이미 자기는 죽었어요. 죽었는데 누가 살렸어요? 고기 큰 고기 물 속에서. 하나님이 살렸잖아요. 죽었는데 살렸다고요. 이미 죽었는데 살았어요. 죽음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죽었는데 살았으니까 살았다하는 것은 사명 때문에 살았다 여기고 사명을 전합니다. 사명을 전하는데 원래 받은 사명이 뭐냐? 40일 되면 다 망하라고 했는데 이게 망하지를 않아요. 사명이 뭐 잘못되었어. 전달 과정에서 잘못 되었는지 사명이 주신 분과 하청업자가 본사에서 받은 설계도와 달라요. 자기는 사명대로 했는데 사명대로 그 결과가 안 나왔어요. 도리어 회개했다는 것을 처음에는 그런 언급이 없었어요. 그들은 전하게 되면 회개할 것이다. 그 회개할 것이다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그게. 원래 그냥 망하기 때문에 망한다고만 이야기 한다 했지 망하면 그들이 심지어 닭부터 해서 모든 사료까지 다 끊고 짐승까지 해가지고 다 금식했어. 그래서 살 것이라는 내용은 없다 이 말이예요.



없으니까 그 죽음이 누구한테 갔느냐 하면 그 죽어야 될 죽음이 요나한테 와버린거예요. 차라리 저를 죽이옵소서. 저를 죽이옵소서. 요나가 자살하려고 합니다. 계속 죽음 이야기예요. 죽음의 길이 바뀐거예요.



여기서 아는 죽음과 그 다음에 아는 죽음은 또 달라요. 여기서 아는 죽음은 내가 나빠서 죽어 마땅한 죽음이라면 이거는 뭐냐하면 내가 주님의 사명과 틀려버리니까 이건 내가 살아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명 자체가 내가 아는 사명과 내가 아는 주님과 다르기 때문에 삐져셔 자살해버리는 거예요. 할 때 이 죽음은 바로 그들에게 니느웨에게 주었던 그 심판이 요나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요나한테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북이스라엘에게 전달됩니다. 왜? 북이스라엘이 선지자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회개치 않으면 너희도 망한다는 것을 니느웨가 회개하면서 보여주는 거예요.



지금 요나가 왜 삐졌습니까? 요나는 자기가 있음이예요 있음. 그런데 니느웨는 왜 심판에서 면제되었어요? 있으면서 그들은 내가 있는 것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죄 지음의 있음이니까 우리는 저주 받아도 마땅하다 라는 것을 금식으로 보여줬거든요. 어느 쪽이 주의 뜻입니까? 있음을 유지하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고 이게 우리가 진작에 없어져야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북이스라엘 요나가 아니고 바로 니느웨를 통해서 보여 준거예요. 요나는 거기에 하나의 심부름꾼이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네가 구원이 아니고 언약의 살아있음. 너희의 살아있음이 아니고 내 속에 우리 속에 언약이 살아 있기를 바래요. 언약은 뭡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언약이죠. 그 죽었다 살아난 것이 무슨 뜻이예요? 의인인데 죄인 찾아왔다가 그 죄인을 뭐로 바꾼다? 의인으로 바꾸어서 데려가는 그 작용이 현재 네 속에서 가동되고 있다.



따라서 너는 의인되야돼? 죄인되야돼? 죄인 되야 되는 거예요. 죄인되면 죄인이라는 것은 있음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바닥에 드러나 있는 꽉 차있는 죄는 죄다 다 드러내는 겁니다. 그게 바로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냥 . 편하게. 내 잘난 모습으로 내 자존심 위해서 그걸 뭉치면 내 영광을 위해서. 내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이용하고 예수님 이용하고 남을 이용하고 사기치고 전부다 자기 잘 되기 위해서예요.



우리는 우리 잘 되기 위해서 내 가정 내 자식 잘 되기 위해서 내 남편 잘 되기 위해서. 전부다 내 교회 잘 되기 위해서. 항상 그겁니다. 내가 깃발처럼 중앙에 누가 꽂혀 있어요? 내가 꽂혀있는 이 인생이 바로 주님을 죽게한 바로 그 낮짝이였다는 것을 성령이 와서 다 뜯어내는 거예요. 뜯어내서 그 낮짝을 그대로 공개하는 겁니다.



그 뜯길 때마다 내 영광은 이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요. 그게 바로 주의 영광이잖아요. 나는 믿을게 못 된다는 것을 알지요. 그게 바로 주님에 대한 믿음 아닙니까. 같이 있으니까요. 혼자 있으면 용써 해봐야 혼자서 아무리 천국 가봐야 혼자서 아무리 천국 가봐야 혼자거든요.



김정은이라는 그 사람이 평양에서 혼자서 가상 문재인하고 미국하고 대화해봐야 안 알아주잖아요. 실제로 판문점까지 내려왔잖아요. 판문점 왔으면 혼자예요? 둘이예요? 둘이잖아요. 둘. 어떤 노래보면 가사 이런게 있어요. 운명을 알아낸 것이 둘이다 뭐 이런 노래 있어요. 그 노래 알아요? DNA라는 노래. 방탄소년단 노래.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가사를 잘 모르겠다만. 둘이 있다는 것은 혼자 있는게 아니잖아요. 혼자 있으면 신자 아니고 둘이 있으면 신자고 그래요. 혼자 있으면 성령 안 받은 사람이고 둘이 있으면 성령 받은 사람이예요 둘. 십자가 지신 분의 영.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뭐가 아니다?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다.



자, 그 다음에 계속해 봅시다. 목적은 정해졌습니다. 모든 힘이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성령을 줘서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어떤 경우냐 하면은 예수님이 가셨던 그 경로를 경로에 포함이 되는 거예요. 포함이. 이게 수도 파이프 관인데 수돗물이 흐른다. 여기서 뭐 이빨 좋으라고 불소 가루를 탄다면 그 불소가루는 어디에 흐릅니까? 이 관 밖에 나갑니까 안 나갑니까? 안 나가지요. 이 수도관 타고 계속 흐르겠지요.



이게 언약이라면 이게 성령이라면 성령 안에 우리는 이 하나의 죄인으로서 계속 흘러가는 거예요. 이 안에. 포함해서 덮친다 했잖아요. 성령세례 안에 우리가 계속 흘러가는 겁니다. 흘러가고 있을 때 이거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 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둘이 되게 되면 여기는 뭘 하느냐 하면 아까 그 방탄소년단처럼 운명을 알고 원천을 알고 원리를 알고 세상에 모든 것이 어떻게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이제는 아는 거예요. 왜냐면 왜 아느냐 하면 자기 중심, 자기 이익 중심으로 안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 이익중심으로 안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성령께서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어떤 교회에서 한 20억되는 예배당을 지었다. 혹시 복음을 아는 목사가 있다면 있는 사람 같으면 짓지도 않겠지만 20억 돈도 없겠지만 하여튼 지었다 칩시다. 교인들이 자기가 정성해가지고 영광 돌린다고 난리도 아니겠지요. 그런데 목사가 여러분 이거 이 예배당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이거는 뭐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그 원천과 운명과 우리의 미래를 지금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정성의 집결인 예배당이 거기에 빠져가지고 왜? 자기가 돈 냈으니까. 그리고 내 교회니까 우리 교회니까. 그것이 뭘 가리는 거예요. 바로 십자가를 가리는 거예요.



그러면 교인들 중에 손들고 그래도 예배당 많이 지어서 십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 알리면 더 좋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많은 사람에게 십자가 알려버리면 그 교회는 점점 더 커지겠지요. 지금 그걸 기대하잖아요. 그런 성과를 기대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점점 더 그 교회는 진짜 성과가 계속 남아 있는 한 뭐가 가리워집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십자가가 십자가를 가려버리는 겁니다. 십자가 복음이.



그러면 뭐 목사님 나보고 뭐 어떡하란 말이예요? 이 불소 알갱이 덩어리가 본인이 어떡하라는게 없어요. 왜냐? 이 수돗물에 휩쓸려가기 때문에. 휩쓸려가잖아요. 그러면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성령께서 유발시킨 상황들이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이. 이걸 가지고 오늘 본문에 기도에 뭐냐 하면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말이죠.



권세가 왔을 때 하나님께 권세 있는거하고 아들에게 권세 있는거하고 달라요. 하나님께 권세 있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끝이겠지만 예수님에게 권세 있어버리면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군요 하고 십자가를 증거하는 힘, 십자가를 증거하는 용도의 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내가 예배당 이거에 미쳐서 하는 이것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군요 하는 거예요. 내가 자식에 미쳐서 자식에게 흠씬 빠졌을 때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가리는 일이군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자식 사랑하지 말까요? 하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자식을 안 사랑합니까? 그런 재주 있습니까? 그런 재주 있거든 사랑하지 마세요. 우리는 자식 안 사랑할 재주가 없어요. 자식을 남의 자식 볼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 없습니다. 아무리 애 먹여도 내 자식하고 남의 자식 구분할 줄은 다 알지요. 그렇죠? 구분할 줄 알잖아요. 구분한다는 것은 차별화 시킨다는 거예요.



내 아이가 팼을 때는 학교에서 패버리면 용감한 다윗 같은 인간이 되지만 얻어맞고 왔을 때는 그 다음에 그 애는 깡패가 되는 거죠. 모든 것이 내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이것을 이 수도관의 불소 알갱이처럼 같이 하면서 그걸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 수돗물이라 하는 이것이 수돗물이 아니고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이예요.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살과 피. 예수님의 살과 피 통해서 우리는 흐르고 있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오늘 밤부터 남부지방 비 온다고 하는데 비는 왜 오느냐? 비는 하나님에게서 오는게 아니예요. 바로 예수님에게서 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비가 오는 겁니다. 모든 만물의 권세는 아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 없는 비는 없습니다. 왜그러냐 하면 지금 시대가 십자가 이후 새 언약의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약을 앞장세워서 하는 거예요. 언약을.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어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원수한테 밥 퍼주라는 이야기예요? 밥차 만들어가지고 없는 사람 도와줘라 그런 이야기 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남편을 사랑하라. 자식을 사랑하라 뭡니까? 십자가 복음을 전하라. 참 갑자기 기분 좋아지죠. 왜? 돈이 안 드니까.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잘나고 못나도 넌 죄인이야. 그걸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게 우리가 살과 피 속에서 불소가 움직이기 때문에 불소 덩어리가 움직이기 때문에 이것도 시도 때도 정한게 아니예요. 성령의 지시 따라 전해야 되요. 안 그러면 자기 오기가 되고 또 어떤 성과를 기대하면서 억지를 부리는게 되니까 전하면서도 고맙지도 감사하지도 않아요. 복음을 전할 때 성령으로 전하는 느낌이 뭐냐 하면 전하는 그 모습을 보고 본인이 주님께 감사가 되어야해요.



내가 전하니까 몇 명 더 건졌다가 아니라 내가 이런 나같은 이런 돼지같은 인간 속에서 이 더러운 인간 속에서 이런 고상한 내용의 은사가 울려퍼진다는게 그게 이게 나온다는게 어떻게 죄인을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사용하십니까? 본인이 깜놀. 본인이 깜짝 놀라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두 시간 동안 돈 들여 가지고 밥 퍼주면 먹였는데 네가 안 믿어? 이럼 성과가 되어 버리니까.



이것은 안 되지요. 이것은 마귀짓이지요. 하면서도 어떻게 내가 이 무식하고 모르는 내가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진짜 로마서에 나와요.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여 이렇게 나오잖아요. 어떻게 아름다운 소식을 그게 복음 아닙니까. 복음소식을 상대방의 반응도 상관하지 않고 서슴없이 편하게 전할 수 있을까? 이거는 성령의 도움이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성령의 일의 특징이 있어요. 항상 고맙고 감사해요. 뭘 하든지 고맙고 감사해요. 어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결정하지 않았는데 주께서 이렇게 조성해 내시는 그 손길이 어떻게 고마운지 지금 죽어도 괜찮은데 안 죽이시고 일을 더 시키시고 내 죄를 더 들추어 내셔서 죄를 아는 마음으로 뭘 보느냐 하면 죄인이니까 볼 거 없고 나한테 볼 거 없어요. 없고.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했다는 그 죄사함의 실제성. 지난 낮 설교에 이야기 했지요. 인간의 자아는 뭐의 실제성이라고 했습니까? 힘의 실제성이라고 했지요. 힘의 실제성과 그 다음에 설교 끝에 부분에 했어요.



뭐냐하면 죄사함의 실제성을 충돌시킨다 했지요. 이 현실세계에서. 세상은 모든게 힘이예요. 힘이 있어야 사니까. 힘이 있으면 되니까. 이것밖에 모르는데 있어서 주께서는 힘을 주는게 아니고 죄사함의 실제성. 힘이 진짜다 힘이 현실이다 힘이 전부다 할 때 이쪽은 뭐냐. 죄사함이 진짜다. 죄사함이 진짜다. 죄사함이 진짜고 나머지는 진짜가 아니고 그건 악마의 허망한 것들이다. 허망한 것들. 죄사함만 실제다. 죄사함이 되려면 주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를 따로 만나 계속 만나게 하고 부딪히게 하고 상황 만들어 가면서 내가 바로 내가 얼마나 나를 구원하느냐가 내가 바로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고백케 하는 겁니다.



둘다 십자가만 바라보는데 부부생활이 안 좋을래야 안 좋아질 수가 없지요. 여보 내가 정신이 없어 현금 지급기에서 현금 50만원 빼놓고는 그냥 가가지고 다시 가보니까 돈 50만원 날라갔더라. 아내가 뭐라고 합니까?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지. 뭐 싸움이 일어날 이유가 없지요 싸움이. 싸움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니까요. 잘했군 잘했어 하는데 뭐. 등신 아니면 성령 받은 사람. 둘 중에 하나 둘 중에 하나예요. 지금 내가 하는 소리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서 잘했군 잘했어 하는 것인지 진짜 알고 잘했군 잘했어 하는 것인지.



다 이루었다 하는 그 성령이 오게 되면 마지막 영이 성령이예요. 다 이루어진거예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언약을 우리에게 그냥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장착시켜버린겁니다. 그래서 지난 낮설교에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복음을 빨아당기는 장치가 장착되어 있는지 한번 보라고. 복음을 쑥 빨아당기는. 그 복음 빨아당기는거 없는 사람은요 가족이라도 이야기 할 것도 별로 없어요.



성령 안 받은 사람한테 이야기 할 일이 뭐 자기가 허세와 허풍밖에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가 잘난줄 알아요. 자기가 잘난줄 알아요. 꼭 댓가 바라고 자기가 한걸음 더 월등하게 된 것처럼 우수한 것처럼 있음이 있음의 티를 내잖아요. 그럴 때 성도는 딱 보면서 물끄러미 그냥 보지말고 물끄러미 봐야되요. 보면서 당신 사랑이나 내 사랑이나 똑같은데 단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찾아왔음과 찾아오지 않았다 그 차이뿐이예요. 사는 것은 똑같아요.



힘의 실제성, 힘 있으면 자랑질 하고 없으면 음매 기죽어 사는게 있는데 성도한테는 죄사함이 힘보다 더 중요하니까 이런 복이 어디 있어요. 이런 행운이 어디 있습니까? 로또 천번을 해도 되는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복을 받은 것을 어떻게 내가 죄 짓는다고 날라가는 것도 아니예요. 왜? 오히려 더욱더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무심코 있어도 우리는 나만 생각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고개 끄덕이면서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자기 긍정이죠.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 오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우리를 책망케 하신다는 그것이 날마다 우리의 현실이 됐다는 그 자체로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알게되었습니다. 우리의 영광말고 주께서 기쁘고 하나님이 기쁘다면 더는 소망 갖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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