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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23:54:08 조회 : 409         
인간이 없는 세계 180605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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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민희(IP:121.♡.203.222) 18-06-17 21:29 
강남-요한복음 17장 3절(인간이 없는 세계)180605a-이근호 목사


자, 첫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 선교단체 대학생이라면 제가 간사라면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할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제가 영생을 받는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성경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요한복음 17장 3절을 받아쓰세요 라고 빈칸에 쓰는거 있잖아요 쓰면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딱 썼지요? 물어놓고 이제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알았으니까 영생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물어보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합시다. 성경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이단되기 때문에 절대로 이단에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성경대로 해야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제 그 하나님 아시고 예수님 알았으니까 영생을 얻었어요? 안 얻었어요? 이렇게 물어보지요. 그러면 학생들이 한글로 번역된 한영으로 번역된 이것으로 하던 뭐 한글로 보라고 하면 또 꼭 영어로 찾아보는 사람 있어. 잘못됐는가 싶어서 그거나 이거나 똑같은 거예요. 헬라어도 마찬가지고.


어 그럼 우리 영생 얻었네요. 이렇게 한단 말이죠. 예 이제 영생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참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그러면 요한복음 17장 오기까지 창세기부터 구약, 신약에 모든 이야기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다 날라가버려요.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 이야기가 왜 필요할까요? 바로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 바로 예수님 보내가지고 나 아니? 나 예수다. 알겠습니다. 구원 영생 끝나는 문제이지요. 왜 구약 이스라엘이 왜 있고 이스라엘 역사가 왜 있고 광야가 왜 있으며 여리고 성이 왜 있으면 신약에 예수님께서 그냥 와 가지고 나 예수다 믿어라 나 예수거든 이렇게 해서 알려주고 영생 얻고 하지않고 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왜 그리 복잡한 절차가 왜 필요하냐 말이죠.


이게 뭐냐 하면은 영생이 인간 없는 세계예요. 인간이 없어요. 인간 없는 세계입니다. 천국은 인간이 없어요. 인간의 자리에 아들이 계신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천국이 아들의 나라예요. 사람은 빠져야돼요. 예수님이 제2의 아담이고 마지막 아담이거든요. 예수님에 의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만들어진 자, 그들만 영생의 혜택을 누리는 겁니다. 기존의 인간들아 가라 이 말입니다. 뭐 알고 자시고 믿고 필요 없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그거는 돌려보내버리는 겁니다. 단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담에 속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영생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취지가 단호한 취지가 창세기 3장에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취지와 딱 맞아 떨어져요. 생명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지금 식으로 하면 영생을 영생답게 보호하기 위해서 필히 인간은 영생이 있는 그 자리에 흔적 없이 그걸 퇴출시켜야 된다는 원칙. 그 원칙을 그대로 지금 요한복음 17장까지 끌고 오고 있습니다. 애들 모아놓고 간사되어서 자 노트 적으세요 그런 문제가 아니예요. 요한복음 17장3절 백날 외워보고 백날 해봐도 그래가지고 영생 되는게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여기에 대해서 이런 하나님의 취지에 대해서 인간들은 단호하게 거부를 하겠지요. 왜냐하면 본인이 속하지 않은 나라는 아무리 그게 천국이라도 나한테 실적이 없잖아요. 실적이 없으면 인간은 무의미하게 봐요.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돼요. 내가 그 자리에 참여돼야 돼요. 왜냐 인간들은 줄곧 그런 식으로 살아왔어요.


내가 존재함에 그걸 최종적 의미로 두고 살아왔다 이 말이죠. 자기가 여기 있음을 밝히는 그걸 최종적 의미로 두고 살아왔어요. 나 빼놓고 남들끼리 좋은 잔치 벌리는 것 어떤 파티 벌리는 것 그것은 아무리 그 잔치가 영광이 되더라도 그것은 나의 분노의 표적이 될 뿐입니다. 나를 도외시했기 때문에. 그런데 인간이 없는 세계예요 영생의 세계는. 영생은 인간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런데 이 영생이라는 것이 그냥 주면 될텐데 영생이 이 땅에 와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전쟁을 벌리지요. 그게 그 전쟁이 뭐냐하면 이겁니다. 무상으로 심판해드리겠습니다. 원래 공짜라 하면 되게 좋아하잖아요. 되게 좋아하는데 공짜로 공짜를 준다 이렇게 하게 되면 굉장히 좋아해요. 공짜라 하면 옛날 말에 양잿물도 마신다 했습니다. 어릴 때 양잿물 그게 괜찮은 주스인줄 알았어요. 어릴 때는 몰랐으니까. 주스 탄 물인줄 알았는데 아니였어요. 죽는 물이였어요. 공짜라면 챙기고 보잖아요.


주님께서 하신일은 뭐냐 무상으로 심판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자력으로 영생에서 떨어지지 않으니까 내가 공짜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공짜로 천국에서 떼어내 주겠다는 거예요. 너 분수에 맞도록 떨어져 나가도록 해주겠다는 겁니다. 이게 주님이 하시는 전도입니다. 우리가 아는 전도하고 완전히 180도 다르지요.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떼어내는 겁니다. 그게 누구로부터 떼어 내느냐 하면은 예수그리스도 앞에 얼쩡거리지 마라. 예수그리스도 앞에 얼쩡거리지 말라.



4절에 봅시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절에 보면 제가 방금 말한 근거가 나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자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로 선별해서 다른 장소에 따로 인간과 예수님 사이를 따로 구분 지을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것도 무상으로. 인간의 노력 말고 주님 자신의 노력으로 떼어낼 필요가 있어요. 주님의 심판은 무슨 심판이냐 하면 인간들과 예수님 본인을 혼자 떼어놓는 작업이 이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한 심판입니다. 내가 온 것은 심판하러 왔다고 되어 있지요. 그 심판이 뭐냐 하면은 바로 구분 짓는 거예요. 사람들 일부로서의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따로 다른 예수님 외에 모든걸 따로 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보게 되면 그 심판에 대해서 3장 또 유명한거 있지요. 3장 18절에 보면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뭐다?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되어 있지요. 지금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내가 내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심판을 위함이 아니요 라는 그 말만 들으면 하나님께서 봐주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게 아니고 봐주는게 아니고 노골적으로 본격적으로 심판 이미 받았다는 것을 들추어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거예요. 논리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시험할 때 산성이냐 알카리냐 할 때 그냥 아무것도 그냥 없이 가만보면 그냥 용액이예요. 그런데 뭐 하나 들어갔다 나와요. 리트머스 시험지를 해가지고 들어갔다 나오는 겁니다.


산성은 푸른색을 리트머스 푸른색을 붉은색으로 바꾸는게 산성이예요. 그래서 외울 때 이렇게 외웁니다. 푸른 산에 불난다 이렇게 외워요. 푸른 산이니까 푸른 산에 불난다 이렇게 외우는 겁니다. 거기에 뭐가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거 시험하기 이미 이전부터 그거는 산성이였어요. 이 세상은 그냥 있으면 심판이 심판 받는다는 것이 납득이 안돼. 왜 그냥 태어나서 그냥 살 뿐인데.


다시합시다. 다시. 오늘 17장 3절에 보면 영생은 하나님의 아들 그 보내신 아들 믿는거라 했잖아요. 했지요? 그러면 이 말은 영생에 대해서 언급한거예요. 영생에 대해서. 그런데 그 영생에 대해서 영생은 하나님과 그 보내신 아들 예수그리스도 현재 이 예수님은 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이 사람들 보기에 사람이예요? 하나님예요? 인간들 보기에. 그냥 사람이지요.


그러면 하나님 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계시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백성들이라고 보잖아요. 그걸 구분하는거예요. 니들이 아버지를 아는게 아니고 유독 오직 only 예수님 자신만 예수님 하나님 아버지를 유일하게 안다는 것을 알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겁니다.


왜냐 모든 인간은 자기를 하나님이 아는 자로 끼워넣기 하기 때문에. 그 끼워넣기를 빼는 것이 바로 이것이 무상으로 심판해주는 거예요. 예수님을 모른다 하면 아 내가 예수님 몰랐네 이게 아니고 예수를 모른다는 사실이 그냥 예수님 모른 것에 대해서 지식이 모자른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처음부터 심판의 대상이었다는 유일한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 단독적으로만 아버지를 안다는 것을 통해서 지금 증명해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예수님 빼놓고 나머지 인간을 보세요. 제자들도 마찬가지고 나머지 인간은 뭐냐 인간없는 세계예요. 영생은. 그 인간 없는 세계의 취지는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영생나무 하나 터치하지 말라고. 단지 영생나무 터치하지 말라고 그 자신이 만든 인간을 과감하게 저 저주받은 땅으로 내쫓아 버리잖아요.


그 저주받은 땅에 대해서 제가 아까 그 오기 직전에 유투브 첫 번째 강의할 때 뱀이 저주받을 때 배를 땅에 대고 온다 했지요. 배를 땅에 한번 대 보세요. 땅에 대면 시야가 뭐 밖에 안보입니까? 이거는 지평선 밖에 안보이지요. 모든 태어나면서부터 땅에 엎드렸다고 보게되면 땅이 자기 세계의 전부예요.


땅에서 출생하면 성공한거고 땅에서 실패하면 실패자로 보는 겁니다. 보는게 납작 엎드려서 밀착형 땅 밀착형 존재예요 인간이. 마귀가 그렇게 저주 받았으니까 인간도 마찬가지인거예요. 그 마귀의 품성 따라가니까.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이라는 그 테두리 범주 안에서 너 잘났다 나 잘났다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종교가 있고 신이 있고 하늘이 있지 않습니까? 물으면 그것은 뭐냐하면 땅의 밀착형이 여기에 이 땅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 되겠지요. 그걸 유토피아라고 하는데 미지의 세계. 없는 세계를 상상하게 되어 있어요. 땅이 있으니까 너무 고되니까. 땅에 밀착해서 땅의 것을 먹는다 이 말이죠. 땅의 것이라는 것은 뭐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죠 뭐. 돈은 하늘나라에는 필요 없거든요. 돈은 어디에 필요합니까? 땅에서 살기위해서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땅에서부터 나서 흙에서부터 나서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것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하면 목사님 그렇게 생각 안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다 그렇게 생각하지. 그게 제 말이에요. 그게 제말이에요 그게. 제가 그 말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조합니다. 그러면 또 동조한다고 기분 나빠해요. 그러면 천국은 누가 갑니까? 이렇게 또 삐진다고요. 동조해줘도 문제라. 천국 누가 갑니까?


영생이라는 것은 천국 갈 사람이 없어야 그게 영생의 나라예요. 왜 자꾸 갈 사람이 없다는데 왜 우기냐 이 말이죠. 마귀 심보예요. 못 들어가는데 안 들어가면 되지 왜 못 간다는데 왜 굳이 들어가야 되느냐. 천국에 갈 사람은 인간은 없습니다. 그럼 인간은 없다는 말은 그러면 여기 요한복음 11장에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따로 있는데 그럼 이 사람들 인간 아니냐? 있네. 왜 자꾸 없다고 우기느냐 이렇게 나올겁니다.


인간부터 출발합니다. 인간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사물로 바뀌어야 되요. 사물로 바뀌고 여기서 인간 또 나와요. 이 앞에 뭐가 붙어요. 뭐가 붙느냐하면 ‘새 인간’ 붙습니다. 새 인간 되려면 인간에서 새 인간은 안돼요. 인간에서 하나의 사물 물체 창세기 3장에서 뭐라 하느냐면 흙.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흙 죽음이죠.


그리고 그 에스겔 37장 말씀에 의하면 바짝 마른 뼈, 곧 흙이 되기 직전의 뼈. 그런걸 의미하는 겁니다. 인간에서 사물로 변하고 새 인간 되지요. 그러면 바라기는 이거는 그냥 기대 사항이지만 진짜 내 소원인데요 여러분들이 성령받아서 새 인간되기를 저는 소원합니다. 정말 너무 소원해요. 뭐 언제봤다고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은 그런 마음이에요. 여러분들이 새 인간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새 인간되려면 여러분들 인간으로 보면 안 되고 자기 자신을 뭐로 봐야돼요? 인간에서 사물로 흙이거든요. 인간에서 사물로 안 그러면 그 나무로 나무라 하는 것은 뭘 의미하냐 하면 바로 요새 장례치를 때에 나무에다가 육을 뿌리는게 또 유행을 탔어요. 돈 좀 비싸지만은. 뭐라하죠? 수목장, 수목장할 때 그 나무 잎사귀가 여러분 그 나무 잎사귀 줄기가 인간에서 사물로 인간이 결국 인간에서 사물이 된다는 이런 소설 써서 상 받은 사람이 있어요. 한강이라는 한씨고 이름이 강이라는 여자 작가가 이거 써서 상 받았어요. 이거 제가 평을 해놓은거 같은데. 하여튼 있습니다.


사물로 결국 인간은 사물이 된다는 거예요. 바짝 너무 다이어트 오래 하지 마시길. 새 인간이 될 경우에 새 인간은 인간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바로 나의 죽음을 전제로 해서 나오죠. 고린도후서 4장에 나오잖아요. 예수의 생명이 내 죽을 육체에 통해서 온다는 말은 예수님이눈으로 우리를 볼 때 뭐로 본다? 인간으로 보지 않고 죽을 육체로 보는 거예요. 하나의 사물로 보는 겁니다. 하나의 바짝 마른 뼈로 보는 겁니다.


뼈로 봐가지고 우리를 살려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자기 솜씨를 맘껏 자랑질할 수 있는 거예요. 너 같은 인간도 내가 살려냈잖아 라고 동네방네 자랑하는거. 그 자랑하는데 편승한 사람이 바로 사도요 전도자가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나를 생전 예상도 못한 인간으로 만들어 놨다. 오죽했으면 사도 바울보고 미쳤다고 이야기 했겠어요. 네가 미쳤구나. 그래 미쳤다 왜! 아이고 네가 미쳐야 되는데 못 미쳐서 내가 안타깝다 라는 겁니다. 못 미쳐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야 되는데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한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는 이 명제, 이 문장 자체도 이게 미친 사람 아니면 이게 어떻게 서슴없이 그게 나옵니까. 그것도 가족들 올케한테. 올케 시누이한테 이게 나옵니까? 혹시 시누이 계시면 이게 나오든가요?


아이고 형님 동서간에 형님 이래가지고 뭐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게 동서 형님 만난 인사입니까 이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속으로 누르고 누르고 눌러야지. 분명히 제가 이야기 했어요. 이 세상은 인간이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주인공 되는 세계를 세상으로 봐요. 그게 뭐냐 바짝 엎드려서 땅에 밀착형이기 때문에. 땅 외에는 안 보이고 믿을 거는 땅 밖에 믿을게 없어요. 땅에서 얻는 수확가지고 목숨을 부지하려는 악마가 내 안에 집어 넣어준 그런 생존의 방식 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거는 교회 가도 마찬가지고 교회 안 가도 마찬가지고 교회 다니나 안다니나 공통점은 뭐냐? 이 땅의 것으로 사는 것이 사는 거다.


그러면 그들에게 물어봐요. 영생은 뭡니까? 물으면 영생은 오래 길게 사는거다. 오래 길게 사는거. 창세기 3장도 안 읽어봤어. 오래 길게 사는 것을 염려해서 주님께서는 그걸 짧게 살라고 에덴동산에서 추방한거예요. 그들이 그 상태에서 그 썩어빠진 그 성질 가지고 생명나무 따먹어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이거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세상을 만든겁니다. 왜 우리가 태어났는가 왜 죽는가를 알리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이예요. 4월 15일 기억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거는 뭐 이야기 안합니다. 제 딸의 생일인데. 왜 태어났는가? 죽음이 뭔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태어난거예요. 이 땅에서. 왜 하나님은 인간을 안 받아주는가 증거하기 위해서. 왜 영생은 인간이 없는 나라인가. 인간이라는 것은 이미 인간 자체가 이미 수상한 인간이에요. 불신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라고 할 때에 결국 요한복음 16장은 뭐냐하면 창세기 이스라엘 역사 통해서 보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아니라고 했지요. 부활은 내가 안 죽는 지금 인간으로 계속 인간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부활이 생기기 때문에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 될 수가 없어요.


나 살겠다고 인간은 어떤 수단도 다 부릴 참인데 그 부활하니까 좋다고 굉장히 좋아해요. 교회 이름이 부활의 교회가 있어요. 뉴스에 나왔어요. 부활의 교회라고. 보이스피싱이 그 교회 앞에다가 보이스피싱하다가 부활의 교회 전도사들이 잡아가지고 신고해가지고 표창받은 그 이름 보니까 부활의 교회예요. 십자가 해놓고 무슨 부활의 교회라고.


주님께서는 이 영생 만드는 작업에 인간이 이렇게 무지하고 몽매해도 주님은 인간의 무지몽매하는 이유 때문에 영생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게 뭐냐 하면 무상으로 앞에 무상으로 하면 잘 이해 안 되니까 중간에 넣읍시다. 무상으로 그 다음에 친절하게 친절하게도 심판해주십니다.


이게 바로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내용입니다. 심판에 관한겁니다. 지난 그 대전 겨울수련회 할 때 세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제목이 엘리사와 엘리야인가 그런 제목에 보면 그런 이야기를 내용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왕 중심의 세계로 이스라엘 하다가 왕 중심의 왕 자체의 다윗 언약 이후에 이게 내리막길로 꽂아 내려가요.


왕으로 지상에 천국을 만든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줄기차게 나오는 왕 있잖아요. 그 왕이 점점 더 쇠락해져요. 아무리 훌륭한 왕이 등장해도 그 왕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왕 중심의 체계에서 뭐로 바뀌느냐 하면 선지자 중심의 체계로 바뀌는 거예요. 선지자 중심의 체계로. 바뀌면 왕 중심은 땅의 힘 지상의 힘으로 왕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나라를 건설하는 겁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뭐냐 하면 천상 위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선지자의 역할은 뭐냐 하면 세우는 것이 아니고 세우는 것을 헐어버리는 역할을 해요. 46년동안 지은 성전을 깨뜨린 취지도 그런 취지입니다. 그러면 건축물을 헐어버리면 거기서 뭐가 남겠습니까? 얼마 전에 4층 건물 무너졌는데.


자, 건축물이 허물어졌다. 그러면 뭔가 허물어 졌으니까 남는게 없겠지요. 그런데 시편 118편 22절인가 거기에 보면 남는게 있어요. 뭔가 있었는데 뭉게져야만 남아지는게 있어요. 읽어볼께요. 22절에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자, 그러면 그 버린돌 하나 하나님이 건져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용납하는 겁니까? 인간들이 세운 건축물이 세우도록 하나님께서 허용을 하겠지요.


그러면 인간들이 건축물을 세운다는 말이 성전을 의미하는데 인간들이 성전을 세우고 성전이 있다는 것을 통해서 그것을 어떤 느낌이 드느냐 하면 우리가 있으니까 성전이 있으니까 성전을 지었으니까 설마 우리를 버리지는 않겠지..가 되겠지요.


자, 다시 이야기 합니다. 인간이 성전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세웠습니다. 그러면 인간들 생각은 뭐냐 하면 하나님 지시한데로 성전을 세웠으니까 솔로몬 성전 세웠으니까 이 성전을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내치지는 않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내치지는 않는다. 우리를 받아준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세운 것을 허물어 버린다면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무슨 메시지냐 하면 성전을 허무는 정도가 아니고 내가 애초부터 너희를 내친다는 그 주님의 심중이 성전이 허물어진 그 성전을 허무는 그 사역에 작업에 담겨있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 완전히 결별되었지요? 그러면 허물어진 그 벽돌의 조각 하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에요?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가 되어 있지요? 그러면 그 중의 하나의 돌. 모퉁이 돌 그 버린 돌을 쥔다면 더 이상 그 돌에서 인간들이 자기 권리나 자기 천국 주세요 영생 주세요 하는 그 권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인간이 사물이 된 상태에서 나는 인간이니까 하나님이 만든 인간이니까 하나님이 저 만들었잖아요. 만들었으니까 천국 보내주세요 하는 권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그러면 대학생들 아까 모아 놓고 요한복음 17장 3절 글 써가지고 예수님 알고 하나님 알았으니까 영생 얻었다. 그런 소리 그렇게 한다고 영생 얻어지는게 아니지요.


요한복음 글 쓰는거 자기가 썼고 이거 너희들 예수님 아니? 안다고 고백 본인들이 고백했어요. 그러면 거기에 주님이 버림받은 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없지요? 주님이 버림받은 모습으로 들어갈 자리는 아니다 이 말이죠.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나 이거 글 안 쓸래 간사님 나 안 쓸래 예수 안 믿어 이러면 몰라.


이러면 주님께서 버림받은 모습으로 갈 수 있는데 시키는대로 얼마나 착한지 요한복음 17장 3절 딱 쓰고 영생은 영생은 받아적으세요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겁니다 딱 적어놓고 이거 외워야 오늘 수련회 점심 때 짜장밥 주고 이거 안 외우면 짜장밥 안줍니다. 이렇게 되어가지고 이거 외워가지고 짜장밥 식판들고 영생은 하나님 아들 예수님 아는 겁니다. 합격.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거기에 무슨 버림받음이 들어갑니까? 내침이 들어가요?  무슨 심판이 들어갑니까? 지가 잘나서 영생 얻었는데.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전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네요 하는데 전도는 심판하시는 그것이 전도예요. 전도의 내용은 심판입니다. 아까 유투브할 때 했지요. 믿으라가 아니라 못 믿는다예요. 믿을 수 있는 재주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 했잖아요.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한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기 원해요. 여러분들이 영생 얻기를 원합니다. 또 얻은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바로 새로운 인간이 될 때에 전에 내가 알던 인간의 믿음 갖는게 아니고 어디에 감사해야 됩니까?


내가 할 수 없었던 것 그게 뭡니까? 나는 죽을 육체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이론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이게 죽을 육체를 질질 끌고 가는 겁니다. 광야에 장고가 관 끌고 가듯이. 이건 장고만 이야기 하는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이야기한거예요. 자기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관을 질질 끌고 자기 십자가를 질질 끌고 나를 따라오라.


그 자리에 영생 없는거예요. 네 모습 그대로 오는게 아니고 죽여서 오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인다는 것이 인간으로 이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하지요. 그러니까 무상으로 심판을 해준다니까요. 그것도 친절하게.


여러분 어깨가 좀 결린다. 그러면 평소에는 누가 내 육체에 손대는거 싫어해요. 하지만 어깨가 결린다. 팔다리가 저린다. 그러면 돈 주고 어디 갑니까? 돈 주고 마사지 샾에 가가지고 웃통 벗고 주물러 달라고 하지요? 그거는 돈 내야 되잖아요. 뭐 30만원? 고급스러운데 진흙 쳐 바르는데나. 오래걸리는데나.


그런데 그걸 주님께서 어떻게 한다고요? 고맙게도 30만원이 아니라 무상으로 심판을 해준다니까 발로 밟아 죽여준다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사물이 될 때 그것이 바로 주의 절차라니까 그게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짜 인간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절차에 이미 돌입한거예요. 오늘 제목은 인간 없는 세계예요. 인간이라는게 없습니다. 하늘 아래 인간은 없어요. 사물로 바뀐 겁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한 것 같아요. 육과 영과 혼에 대해서 질문을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대전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지금 육이냐 혼이냐 영이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고 육과 영과 혼을 따진다는 것은 뭔가 있다는 겁니다. 뭔가 있으니까 이걸 뭔가 있는 이걸 주께서는 어떻게 하겠지라고 하는 거예요.


뭔가 있는데 그게 뭔가 있는 그게 자아고 주체고 나란 말이죠. 내가 뭘 알아야 구원 받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대전강의에서 뭐냐 하면 뭔가 육이 됐든 영이 됐든 혼이 됐든 대전강의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육이 혼이고 혼이 영이라고요. 이렇게 보거든요.


왜 그렇게 따지지말고 개념상은 달라도 같이 보는 이유가 중요한 관건은 뭐냐 하면 내 몸이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옆에 외부에서 말씀이 하나의 말씀이 광야 이야기할 때 그 이야기 했어요. 주의 말씀이 나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달린 거예요. 내가 어떻게 정리정돈하는게 아닙니다. 서랍정리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예요. 내 정신세계를 어떻게 신학체제와 교리체제를 어떻게 내가 갖추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외부에서 누가 이걸 타결하느냐가 문제예요.


말씀이 와버리면 몸이 됐든지 혼이 됐든지 영혼이 됐든 관계없이 말씀이 나를 갖고 뭐가 되느냐 하면 하늘에 속한 형상을 만들어내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예수님 부활하고 난 뒤에 있던 승천한 형상있잖아요. 그 형상이 성도의 형상이예요.


그러면 그거는 어떤 경우냐 하면 말씀이 내재되어있을 경우에만 돼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 그걸 히브리서 10장에 이야기하게 되면 새 언약이 우리 안에 침투된 사람. 우리 안에 육이 됐든 혼이 됐든 영이 됐든 관계없어요. 하나님의 새 언약이 들어오게 되면 옛날 언약은 우리 앞에서 스탑돼요. 우리 앞에서 율법화되서 스탑되지만 그거는 옛 언약이고 새 언약은 율법의 완성이 우리 안에 허락도 없이 여기 안에 들어와버려요.


들어와버리면 내 안에서 이 언약이에요. 언약대로만 움직여요. 언약대로만. 심판을 한다니까요. 언약대로. 이 절차 인간에서 사물로 흙에서 인간 이 절차를 말씀이 알아서 자동적으로 그게 엔진이 가동되어 버려요. 그러면 기존의 육으로 육적 세상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을 육이라고 하거든요. 나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거는 뭐가 되느냐 하면 pinch 위기라고 합니다 위기. 위기가 발생돼요.


위기가 발생되면서 뭐냐하면 종교 중독 믿음 중독 이렇게 중독돼요. 신앙 중독 기도 중독 인간의 중독성을 드디어 거기서 드러내게 시작합니다. 왜? 중독성이라고 하는 것은 탈출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을 가지고 중독이라고 하거든요. 술 중독 담배 중독 마약 중독 등산 중독 낚시 중독 영화 중독 독서 중독 이런 것. 인간들은 계속 뭔가 거기에 어떤 취미생활 중독 매진하는 것은 다른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참 절망적인 것이 어느 지점에서 탈출했잖아요. 탈출 했는데 그 탈출이 미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새로운 미로를 만날 뿐이에요. 평생 그 짓해요. 평생. 이곳에서 벗어나면 이곳 미로 끝나면 새로운 미로가 나를 마중나오지 다른거 안 나와요. 역시 탈출구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그 옛날에 70년대인가 유명한 노래 남성중창단 노래 이런거 있어요. 술 한잔을 마시고 또 마셔도 취하는건 마찬가지라고 수련회 때 이야기한거 기억나지요? 여러분 한 번 물어볼께요. 마지막 술잔은 언제입니까? 마지막 마실 수 있는 마지막 마시는 술잔은 몇 월 몇 일쯤 되겠어요? 없지요.


어디서 마지막 술잔을 마실 수 있느냐? 어디서? 어디서 무엇이 돼서 만날까 이런거 있잖아요. 그거는 어느 화가가 예술하는 그런 제목이 있어요. 서양화가인지 한국화가인지 모르겠다만 어디서 무엇이 되서 만나랴. 한국에 김환기인가 모르겠어. 어디서 마지막 술잔을 먹을 것이냐?


인간은 늘 자기가 망가진다는 걸 미리 간파해서 항상 큰 소리치고 항상 결심에 결심을 합니다. 교회갈 때마다 새벽기도 할 때마다 결심을 해요. 두 번 다시 이런 짓하면 개다. 이런 짓하면 개다라는 뜻은 자기가 지금은 개 아닌 줄 알고있어요. 본인이 지금 본인에 대해서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사는게 중독이라고요. 사람 사는게 중독 다른 말로 하면 사람 사는게 탈출구가 없어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7번 결혼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5번 결혼하고 지금 사귀는 남자가 6번째. 이게 돼. 인물이 되니까. 인물이 되니까 까짓것 배부르거든요. 이게 되니까 이게. 인물이 안 되니까 한번밖에 못하지. 이게 되니까. 그런데 그것조차도 결국은 탈출구 영원한 탈출구가 될 수 없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준 것은 탈출구가 있다 없다? 탈출구가 없습니다. 믿음 백날 믿음 봐야 교회 가봐야 탈출구가 아닙니다. 구원 안 됩니다. 천국 못 갑니다. 그냥 몸부림 쳐보기 위해서 교회 가는거예요. 그냥 몸부림 쳐보기 위해서. 이거 아니지만 혹시나 이래가지고 가보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렇게 안 되는 이유가 있어요. 안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일의 목적이 너희를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란 인간들 무리 속에서 예수님을 따로 떼어내는 것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작업이 무슨 작업이냐 하면은 영생 작업이에요. 영생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고 그 다음에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를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이 자체가 인간 세계에 대한 이게 심판이 되는 겁니다. 어느 인간들 중에서 예수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 있다 없다? 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 되는 겁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전에 고백한 것은 그거는 베드로가 아는 것이 아니고 혈육이 아니예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아시는 거예요. 그 공로를 베드로 공로로 돌리면 안 됩니다. 겟세마네 기도할 때에 지금 제자들은 지금 곧 예수님을 배신할 타이밍에 와 있어요. 배신하는 겁니다. 배신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몰랐다는 거예요.


영생은 누굴 아는 거라고요? 영생은 누구를 아는거다? 예수님을 아는 건데 제자들은 알았다 몰랐다? 이 시점에서 지금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영생은 꾸준하게 영생작업을 고유의 작업을 인간들이 몰랐다는 이유 때문에 안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 실망했네 이렇게 삐지는 것이 아니고 바로 모른다는 모르게 된다는 그 자체가 바로 성공적으로 지금 움직이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정말 지금 성령 받아서 안다면 안다고 이야기 하면 안 되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즐긴다가 되어야 돼요 즐긴다. 아는 것은 지식으로 알면 안 되고 이게 여유있게 즐겨야 돼요. 만끽해야 된다니까요 만끽. 즐긴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즐긴다는 말은 이것은 새로운 환경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새로운 환경.


그런데 그 새로운 환경 조성이 즐긴다는 말은 인간은 자기로 인하여 즐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즐거움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를 자꾸 생각하기 때문에 즐기는 가운데도 불안해요. 여러분 그런 일이 있잖아요. 갑자기 아무 탈 없이 일이 잘 풀릴 때는 이상하게 겁나. 주님께서 복 줘놓고 내일되어서 다 빼았어가는게 아닌가? 사형수를 마지막 사형당하기 전에 족발이나 편육 먹이는 것처럼. 뭡니까 할머니 무슨 할머니? 원할머니 보쌈집에 가서 마음껏 먹이는게 마지막 통통하게 살찌워서 잡기 위해서 마지막 먹이는게 뭔가 불안해요.


인간이 즐기는 것은 끝이 뒷끝 있어요. 뭔가 이상해. 그러면 즐길 때는 나로 인하여 즐거워지게 되면 이것은 얼마 못갑니다. 나한테 일어나지도 않는 일인데 내가 원인을 제공 안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 짓도 안했어. 아무 짓도 안했는데 나와 무관하게 주께서 영생을 줬다면 그건 내가 영생 얻으려고 애쓴게 아니잖아요. 그럼 남는 일은 뭐만 남았어요? 즐길 일만 남았지요. 그래서 즐길 때 영생 아는 겁니다.


이거 17장 안 써도 노트에 이거 안 써도. 그러면 영생 못 받은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할거예요. 너는 어떻게 해서 그것을 획득했느냐? 어떻게 라고 묻지요? 어떻게 라는 말은 나한테 할 물을 말이 아니고 누구한테 물어야하냐 하면은 예수님한테 물어야 될 문제예요. 어떻게에 대해서 답변을 하시되 그 답변과정이 복음 전파가 되는 거예요. 뭐냐 하면 나 아니요가 되요 나 아니요. 복음은 본격적으로 계시되는 겁니다.


개뿔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즐기고 있어요 인생을. 개뿔도 아무것도 없어 돈도 없는데 즐기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돈 수천억 갖고 있으면서도 벌벌 떨고 있어요. 맨날 사과하고 사과하고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하고 있고 모녀가 다 같이 이런 사람도 있고 아들까지 이제  들어갈 판.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데 즐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이죠.


그럴 때 너는 뭐 믿고 그렇게 즐기느냐 할 때 어떻게를 이야기하면서 복음 전할 타이밍이 왔어요. 타이밍이.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의 이 내용은 지금 제자들을 배제하고 아버지와 아들 대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7장 끝에 가게 되면 처음에는 아버지와 아들만의 대화가 됐다가 나중에는 뭐가 되느냐 하면 물론 사람하고는 대화 안합니다. 기도 자체가 사람하고 대화하는게 아니고 아버지와 대화하는거 아닙니까.


그 내용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내가 이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관리 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이끌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어요. 따라서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이 기도내용은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 성도의 운명이고 성도의 일상의 원칙과 원리를 제공하는 근거로서 지금 요한복음 17장이 있어요. 성도라면 이런 식으로 인생이 전개된다는 진행된다는 겁니다. 초반부터 영생 나왔으니까 이거는 일단 받고 들어가는 거예요. 영생 받고. 영생 누리고 영생 즐기고 들어가는 겁니다.


즐길 때 입 확 닫지말고 내가 이렇게 즐기게 된 것이 예수님의 하신 일이라는 것을 예수님을 증거하라고 일단 우리를 영생주고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 전도를 못 할 이유가 없지요. 전도가 안 된다는게 이상한 일입니다. 왜냐 본인이 즐기고 있으니까. 마음껏. 이 영생 안에서는 자기가 뭐라고 했습니까?


다시 한번 봅시다. 영생 안에서 인간은 인간이 아니고 뭐라고 했나 하나의 사물이라고 했지요. 사물인데 고린도후서 4장에 의하면 이걸 죽을 육체라고 했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죽을 육체 우리는 죽을 육체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뛰고 왜 이렇게 머리가 자라고 왜 이러느냐. 예수님의 생명이 장악했기 때문에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생명이 나온다 이 말이죠. 예수님의 생명이. 그냥 생명이 아니고 예수님의 생명이에요.


예수님의 생명은 모든 생명 가진 인간들이 몰랐던 그 생명이라 이 말이죠. 예수님의 생명과 우리 생명이 달라요. 우리 목숨은 살다가 점점 더 이렇게 쇠락해지는 끝이 갈라지는 흙으로 수렴해 나가는 approach 해가는 그런 목숨이라면 주님의 영생은 갈수록 즐기고 또 즐기고 즐기는 그런 생명이에요. 예수의 생명이. 가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라니까요.


한쪽은 울고불고 한쪽은 지금 여유만만하고. 한쪽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 또 한잔을 마셔도 취하는건 마찬가지. 맨날 노래 이 노래 부르면서 또 핑계대면서 또 한잔 더 먹고 취하는건 마찬가지인데 또 먹고. 이게 하나의 해결책이 없는 탈출구를 찾다가 또 실패했다는 그 심정을 술집에 가서 또 달래고 있습니다. 술하든지 담배하든지 중독성 있는 일을 통해서 계속해서 자기가 즐길만한 것을 찾는거예요. 자랑질할만한 것 즐길만한 것.


젊은 사람들은 시간이 바빠서 죽겠다하지요? 은퇴한 사람은 시간남아 죽겠어. 시간 남아서 시간에 치여 죽겠다 합니다. 할 게 없어. 집에서 그냥 뒹굴지. 뒹굴면 허리가 아파. 집에서 뒹굴고 오후에 마사지 받고 집에서 뒹굴고 오후에 마사지 받고. 운동가다 다쳐서 또 집에서 쉬다가 또 쉬다가 담 걸려서 또 운동 더하고 또 다치고 또 집에서 쉬다가 다치고.


탈출구가 없어요. 여러 번 이야기 합니다만 탈출구 없을 때는 좋은 방법을 알려드릴께요. 그냥 선거판에 뛰어 드세요. 돈도 벌고 춤도 추고 남을 또 씹을 수 있는 그런 공적으로 허용된  씹는 시간까지 주니까 그 시간만큼은 자아를 잊을 수 있어요. 자아를 잊을 수가 있습니다. 아주 신이 났어 신이 났어. 남의 벽보 떼고 뭐 이런거.


즐긴다의 반대말이 뭐냐 하면 바로 피로 피로감입니다. 놀아도 피곤해요. 모든게 다 피곤해. 그래서 이 피로감에서는 인생 산 시간 보내는 자체가 피로해요. 피곤해요. 우루사 백날 먹어도 안 되고. 우루사 먹고 뭐 아로나민 골드 먹고 박카스 먹고 비타 600 비타500 뭐 먹어도 그건 안 됩니다. 썩을 육체를 저지 못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하기 때문에 즐길거리가 중독이 되는 겁니다. 해외여행 왔다갔다 맨날 그것만 생각하고. 비행기 타면 힘들고 집에 오면 비행기 타고 싶고. 또 나오고 싶고 나왔다 하면 두 번 다시 비행기 못 타겠다 하면 또 한달 지나면 또 짐 싸는 재미가 또 있어요. 캐리어 끄는 재미있잖아요. 또 나오고 싶어요.


그래서 움직이지 말아야돼요. 사람이 움직인다는게 뭐냐 하면은 폭주거든요 폭주. 그냥 시속 200날리듯이. 인생을 계속 움직이게 되면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생각이 많아지면 생각의 폭주가 일어나가지고 자기 자신을 종잡을수 없게 됩니다. 혼돈에 빠져 버려요. 제가 대구 강의할 때 이렇게 가운데를 뭐라 했냐 시야협착이라고 했지요. 시야가 딱 들어붙어 협착하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제주도 한번 안가고 바다 구경 못했어요. 대통령이 누군지도 아 그건 너무 심하다. 누군지 몰라도 괜찮아요. 감자심고 감자 잘 나는거 그 외에는 몰라요. 불행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온 맨날 해외여행 다니고 이렇게 하면 생각이 복잡해져가지고 자기가 똑똑한 바보 있잖아요. 자기가 많이 아는데 바보같아. 종 잡을 수 없어 본인이 본인을 종 잡을 수가 없어요. 그 끝은 자살이지 뭐. 마지막은 자살이에요.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그걸 과대평가 이걸 오늘날 SNS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과잉접속. 뭐 하나 놓치면 안 되나 싶어서 온갖 것 다 쑤시고 다녀요 다 쑤시고 다녀요. 접속. 계속 접속과 접속으로 이어져요. 좋아요 엄지 척 좋아요 막 아는 사람도 아닌데 언제 봤다고 좋아요. 좋아요 여러번 하고 이 과잉접촉이 어떤 탈출구 되려고 하는데 이게 사물이 되어가는 자기 자신을 도로 인간으로 인간이다 라고 끊임없이 고집 피우는 모습이에요. 나는 인간이고 싶다. 누구 맘대로 인간인데! 주님께서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데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인간이고 싶은거예요. 사람대우 받고 싶다. 나도 사람이다 이렇고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 접속에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걸 접속절제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어쨌든간에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평가할 수 있는데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어떻게 손 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손 댈 건덕지도 안 돼요. 그럼 이런 절망적인 것을 주께서는 어떻게 시도하느냐 그건 10분 쉽시다.
 홍민희(IP:121.♡.203.222) 18-06-17 21:29 
강남-요한복음 17장 3절(인간이 없는 세계)180605b-이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 7절에 보면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저희라고 하는 것은 제자들이죠. 지금 예수님하고 아버지하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자들은 지금 배제된거예요. 7절에 보면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가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 온 줄을 그 다음에 뭡니까? 알았나이다. 여기 안다는 말이 나왔지요. 그럼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가 어떤 사이인가를 아는 것을 아는 거고 또 알 때 그것이 뭐다? 영생이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 따로 알고 예수님 따로 알고 보탠다고 영생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는거예요.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일어난 어떤 일로 말미암아 영생이 생겼거든요. 그러면 인간은 영생 얻는데 자기가 기여한바 있다? 없다? 없는 것을 아는 사람. 아버지와 아들 그 두 분만 순전히 100% 다 끝냈다는 사실을 자기는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두 분 사이의 관계로 인하여 영생은 두 분 사이의 관계니까 그래서 영생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를 인정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영생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럼 영생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들 횡재했네 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지금 횡재했다는건 인간이에요. 사물되기 전의 인간이에요. 왜? 속의 것이 있으니까. 좋은 것 내가 가지려고 하니까. 이미 사물이 되고 죽은 육체가 되게 되면 내꺼라는 것은 없어요. 내꺼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인간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횡재했다는 말이 안 되고 횡재했다는 말은 성립이 안 되구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죠. 예수님을 영화롭게. 예수님을 높이죠. 영화롭게 한다 높인다.


새로운 인간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이미 자기는 물 건너갔어요. 자기는 뭐 이거는 썩은 뼈니까 주님께서 쓰시면 쓰시고 말려면 말고 그것은 주도권은 주님에게 가 있으니까 자기 관심사는 뭐냐 하면은 예수님을 어떻게 높일거냐 그것만 관심있다 이 말이죠. 누가? 영생얻은 사람은. 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아는 사람.


지금 그런 논리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논리를 쭉 전개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해도 제자들은 몰라요. 하지만 나중에는 성령 오게되면 그게 이런 논리의 순서가 그대로 자기인생으로서 주입된다는 사실을 받고 감사하지요. 어쨌든 원리원칙은 인간의 개입해서 세우는게 아니고 예수님과 아버지의 기도로써 이미 끝내는 겁니다. 어른들끼리 이미 상의하고 끝내는 거예요. 거기에 우리가 들어가서 이렇게 훈수할 입장이 못 된다 이 말이죠. 내 믿음이 어떻고 내 소망이 어떻고 그런 소리 하지말라 이 말이죠. 무슨 사물인데 죽을 육체가 내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이 영생 얻은 사람과 얻지 못하는 사람의 그 차이를 이야기 한다면 자기를 잃을 위험에 다가서지 않는 한 다가서지 않는 자는 영생에 대해서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 사람 영생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잃을 위험에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한다 말이죠. 영생은. 다가서면 영생준다는 뜻은 아니고 이미 영생 있는 사람은 자기를 잃어버릴 위험에 그 위험에 노출된 것을 마다하지 않는 거예요. 반갑다 친구야 하면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오히려 반가워해야한다 이 말이죠. 뭐 반갑다까지는 할 사람 없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다니엘 세 친구입니다. 다니엘 세 친구는 무엇과 무엇을 아느냐 하면 우상에게 절했을 때의 결과와 절하지 안았을 때의 결과를 그들이 미리 알고 있었어요. IQ가 낮아서 무아지경 속에 안 합니다 이게 아니고 충분히 이성적으로 알고 있어요 이성적으로. 충분히 알아요. 절을 하지 않으면 법에 의해서 처단받아서 풀무불 속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또 뭐도 아느냐 하면은 풀무불이 뜨겁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경험상.


불이 뜨거워요. 피부는 단백질인데 이 단백질이 200도씨가 넘으면 이게 탑니다. 그래서 촛불 밑에서 이렇게 졸다가 머리카락 타면 고약한 아미노산 타는 냄새 나지요? 그것처럼 꼬랑내 나지요? 자기가 저 풀무불 속에 들어가면 자기는 불쏘시개 되어 가지고 탄다는 것을 누구 못지않게 충분하게  이건 뭐 과학까지 동원할 것도 없이 충분하게 납득을 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마약 주사 맞아가지고 정신없는 가운데서 나 절 안한다 이렇게 버티는게 아니고 생생하게 술 한잔 안 먹었어요. 생생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그 상황이 무슨 상황이냐 하면은 자기를 잃을 위험 상황이죠. 그런데 뭘 간파하느냐. 우상에게 절해서는 안 된다는 그 하나님의 부추김, 떠밈 그렇게 되어 버리면 다니엘 세 친구는 본인 인생을 본인이 어떻게 잘 간수하거나 관리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요. 왜냐하면 그 상황 자체가 내가 나의 인생을 관리한다고 내가 구원받을 세상에 우리가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땡기든 주님이 땡기든 땡기는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지 내가 내 임의대로 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은 못 되요. 내 인생 발걸음 세는 것부터 해서 머리카락 자라는 것부터 모든 것이 내임의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허락한적 없습니다. 그걸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부잣집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기 전에 나하고 상의해서 부모가 부자되고 이런거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받은 그 DNA 때문에 그놈의 DNA 때문에 일찍이 유방암에 죽은 여자도 있어요. 얼마 전에 가수 죽었지요. 유방암에. 어떤 사람은 DNA 때문에 대상포진 걸린 사람도 있고, DNA 때문에.


DNA 때문이라 하면이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거는 뭐냐 하면은 내가 잘하고 잘못하고 상관없이 내 인생은 결정났다는 겁니다. 나의 도덕적 윤리적 그 어떤 태도 관계없이 내 인생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종의 DNA가 DNA는 이것은 제가 보기에는 망상대체용이예요. 망상대체용.


무슨 말이냐 하면 망상이라는 그 정신질환은 어떤 것이냐 하면 길에 가는 모든 사람이 나를 욕한다고 생각하는 것, 망상이죠. 망상이라 하는 것은 그 안에 망상이라는 정신병 안에는 뭐가 들어있냐 하면은 영어로 ALL 모든이 모든이 다 들어있어요 모든이. 이 세상이라는 모든 것이 나하고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수군수군 한다든지 그것도 조직적으로.


그거 보니까 예전에 질문한 것과 관계된 것 같은데 뭔가 세상에 위기가 왔다. 그 위기 타파 안하면 난 죽는다는 것. 일종의 망상증 같은게 누구나 있어요. DNA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망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DNA에 의해서 인간의 모든게 결정된다. 과학이 만들어낸 과학적 망상이에요. 왜냐하면 성경에서의 모든 일은 요한복음 17장 2절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이게 하나님의 정답이에요.


권세를 누가 갖고 있는가? 예수님이 갖고 있는데 그 권세의 사용처가 뭐냐? 이 땅에서 아들만을 증거하고 아들만을 높이는 자를 뽑아내는데 지장이 되고 그걸 걸리는 모든 것을 다 해치고 제거할 수 있는 파워 강력한 힘, 힘을 누가한테 줬다? 예수님한테 준거예요. 따라서 자기 백성을 건지기 위해서 그 백성에게 대상포진 이라는 것을 허락하신겁니다. 아 말들어보니까 상당히 무시무시하지요? 자기 아들 자기 딸을 건지기 위해서 유방암이라는 그것을 작용하게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세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이 예수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거예요. 심지어 마귀까지. 어떤 것도. 이것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보지 마세요. 왜냐하면 내가 있어야 긍정인데 이미 우리는 나부터 심판의 대상인데 뭐 따로 나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 이렇게 자기가 뭐 따로 챙길게 있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보지마. 긍정적으로 보려면 예수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봐야하지 내 입장에서 긍정으로 보지 마세요.


항상 모든 것이 yes가 된다는 것은 내가 yes가 된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한테 모든 것이 yes가 되요. 예가 되고 아니요가 없어요. 예수님에게. 어떤 사람이 물을거예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이 된다면 그게 바로 개혁주의 주권사상 아니냐라고 하는데 개혁주의 주권사상은 예수님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추상명사에 이야기 하는겁니다. 그거는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거든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은 신이 다스립니다. 알라의 다스림이다.


이거는 모든 인간이 다 내부적으로 그런 잠복적인 그런 요소가 다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있어서는 그거는 뭐냐 하면은 예수님 본인만 돋보이게 한 그 심판행위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를 지옥보내는 주님이란 말이죠. 인간들이 익히 아는 것들 있잖아요.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이라는 그 추상적인 분에 의해서 지배한다. 이거는 종교를 안 가져도 상식적으로 아는 이야기다 이 말이죠. 그런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이 말이죠. 그럼 우리는 뭐라고 합니까? 그게 뭐가 나쁜데? 개혁주의 주권사상 뭐가 나쁜데? 개혁주의 주권사상 뭐가 나빠서 이게 죄가 되는데? 이렇게 하잖아요.


십자가 앞에서는 원래 죄야. 십자가 앞에서는 뭘 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죄였어. 십자가 앞에서는.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 졌기 때문에, 그 예수님은 죽고자 오신 분에게 앞에서 살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다 죄가 되는 겁니다. 자기가 죄인 것을 즐기세요. 자기가 죄인 것을 즐기지 않으면 사람은 몸가짐이나 모든 행동에 대해서 이게 뻣뻣해져요. 뻣뻣해지고 불안하고 장래생각하고 장래 계산적으로 하게 되요. 이런거 했을 때 어떤 복을 받을까? 이렇게 나쁜 짓을 했을 때는 계산적이 된다는 자체가 이게 뭐냐 하면은 관심이 누구한테 가 있습니까? 자기한테 쏠리게 되고 그렇게 쏠리게 되면 예수 십자가는 가리워져요. 크게 가리워집니다.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 했느냐 하면은요 자기를 잃을 위험에 다가서지 않는 자는 영생을 모르는 자다. 그럼 영생 아는 자는 본의 아니게 자신을 잃을 위험에 다가서게 되지요. 다가선다. 그러면 내가 몸이 아픕니까? 이라고 하는데 몸 아프면 자아를 잃습니까? 아프면 뭐 더 심도있게 자기 지키려고 하지요. 온갖 좋은 약, 한의사 다 찾아다니면서 하지요. 자기 몸이 아픈게 아니고 몸은 건강히 멀쩡해요. 정상체형. 흔히 30살 키 170 몸무게 68kg 이정도 표준아닙니까? 이정도 괜찮아요. 해당 사항 없지만.


자기를 잃을 위험, 이 위험이 자기 몸을 다치는 위험이 아니고 또 이런다고 위험한데 가지말고 수당 더 준다고 하지말고 자기를 잃을 위험이에요. 회사에서요 교대근무하면 50만원 더 준답니다 수당으로. 매력적 아닙니까? 50만원이 어딘데. 교대근무하면.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해도 못 쉬어요. 근무일시 날린다 하면 대모하고 난리납니다. 왜? 50만원 날라가니까.


인간은 자기를 잃을 위험이 아니고 자기를 얻기 위해서 자기 몸을 잃어버려요. 자기 자신을 더 곤고히 하기 위해서. 분명히 그 강화시키기 위해서. 순교한답시고 나대는 것 그거는 자기를 잃는게 아닙니다. 자기 몸을 담보로 해서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수작이에요. 그거는 마귀적이죠. 자기를 부인하려고 기도하면 기도 2시간 동안 해놓고 측정해라 내가 지금 어느 정도 자기를 부인했나? 이게 말이 됩니까? 자기를 정 부인하고 싶거든 프로포폴 맞으면 되요. 마취상태 들어가면 그 순간은 자기를 잃습니다. 그것도 기분 좋게 기분 좋게 잃습니다.


자기 잃는다는 말은 내가 없던 곳에서부터 출발하게 하는 것. 그것이 5절에 나옵니다. 17장 5절. 자기를 잃는다는 말은 자기 몸을 다치게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어떻게 없어지느냐. 어떻게 날라가 버리느냐예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모든 삶의 무게도 같이 날라가 버려요. 여러분 성도니까 그런 순간이 자주 자주 오지요? 순차적으로 올거예요. 자기를 잃어버리는 순간. 난데없이 기쁜 일이 일어날 때 자기를 잃어버려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자기를 잃어버리는 순간은 어떤 순간이냐? 내가 원인이 아닌데도 주어진 결과. 내가 그 일에 대해서 개입 안 했는데 주어지는 결과. 화가 났든지 너무 좋다 자빠지든 어땠든지 간에 그 순간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 그럼 5절에 봅시다. 아버지요 창세전에 나오지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영광으로써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게 시원. 영어로 origin 이라고 하는데 근원. 뿌리라는 말은 제가 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뿌리가 되려면 줄기하고 연결되기 때문에 뿌리는 되지 않습니다. 이게 끊어져야 되요. 끊어져야 되요. 예를 들면 바다가 이렇게 있는데 깊은 바다예요. 계속 250년 동안 계속 바다였어요 그냥 바다. 바다인데 어느 날 바다에서 섬이 하나 올라왔다. 섬이 이렇게 밑에서 융기돼서 올라왔다. 그러면 이 섬은 필히 뭐가 되느냐 이거 무인도죠. 육지가 있으면 육지가 있는데 육지에서 보면 바다였었어요. 바다가 있는데 갑자기 섬이라는게 왔다면 이 섬은 무인도가 될 것이고 없던 바다에 섬 생겼지요?


그러면 이쪽과 이쪽은 격리되었습니까? 연결되었습니까? 격리된거예요 이게. 격리라는 말 하려면 뭔가 있어야 되는데 아무것도 없이 새로 생겼기 때문에 이거는 육지에서 볼 때 격리된거예요. 있기는 있는데 어제 새로 생겼어요. 새로 생긴 섬이에요. 격리되었죠? 바로 이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 시원이고 근원이에요. 뿌리는 아니고. 시원과 근원이란 말이죠. 없는 분이 돌출한거예요. 이 세상에 나타나신거예요. 그러면서 본인이 뭐냐 하면 이것을 밑에서 솟아오르는데 주님이 뭐라고 하느냐 나는 하늘에서 왔다는 겁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다.


무슨 인간의 말 하면서 이런 불온한 발언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하늘에서 왔다. 너 아버지 목수잖아. 아니야 하늘에서 왔어. 너희들 보기에는 내 아버지가 목수 요셉으로 보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야 라는 발언을 예수님이 쏟아냅니다. 그러면 교회에 한 60년 70년 다니고 모태신앙이고 이렇게 해도 그 마음속에 성령 안 받으면 그 마음속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내가 지금 70년 동안 60년 동안 교회 다녔는데 사실은 내가 긴가민가 할 경우지, 과연 주님이 뭐 자기 아들이고 하는데 뭐 일단은 믿어주기는 하겠지만 그다지 그게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은 안 가져요.


적어도 내 목숨보다는 덜 중요해요. 내 목숨보다는. 나보다는 덜 중요해요. 내가 있고 예수가 있어야 예수를 믿어주는 내가 있어야 믿어준다는게 성립된다는 겁니다. 자기가 일종의 예수 믿는데 공로자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만 나타나면 ‘시원’이예요. 우리가 없을 때 계신 분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없을 때 계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는 그 시점에서 우리는 없는 자가 되어야 돼요. 오늘 표정들 보니까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없는 자예요. 없는 자. 있어가지고 믿고 뭐 주님 찬양한다 감사한다 그거는 필요없어. 아예 없는 자일 때 가장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거예요. 우리가 없는 자였다는 것. 가장 예수님을 높이는 방법은 예수님을 시원으로 대우해주는 방법은 내가 여기 없는 자다 이 말이죠. 없어도 되는 자고 없었던 자고. 오히려 있는게 이상해. 이게 기적이다. 왜 태어났지? 왜 태어났지?


유주용이라는 가수가 있어요. 유주용. 나이가 지금 그 사람 죽었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한 80되었을텐데. 그 사람이 불렀던 노래가 부모라는 노래가 있어요. 외국 노래를 번안해서 했는데 옛날에 그 사람이 윤복희하고 사귀었는지 뭐 그 이야기는 필요 없고, 왜 나를 태어나게 했습니까 할 때 부모가 하는 말 네가 나중에 부모 되면 안다는 그 제목이 부모예요. 부모 되도 몰라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인간은 탈출구가 없기 때문에 그냥 자기 자신의 뿌리를 자기 힘으로 찾아낸다. 중독되듯이. 성경 본문 보기 중독, 기도하기 중독, 읽기중독, 쓰기중독.


뭔가 양적으로 되풀이 하면 질적으로 도약 점프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법칙에 의해서. 양이 많아지면 언젠가 질로 바뀐다는 거예요. 대표적인 것이 촛불집회. 숫자 많이 모이니까 대통령 그만 두잖아요. 이게 마르크스의 유물적 변증법입니다. 물질과 정신은 따로 있지만 물질이 때가 되매 정신 새로운 정신으로 생산된다는 겁니다. 기원은 물질이 기원이고 물질에서 그걸 충실하게 되면 그 영적이 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여기 이게 무슨 동입니까? 이쪽이? 대치동 학원 오래 많이 다니면 성적 오른다하고 똑같은 거예요. 서울대학 간다고 하고 똑같은 겁니다. 애 학원 와서 노는데 집에서 못 노니까. 소용없어요. 되려면 학원가서 되는게 아니고 집에서 혼자공부해서도 돼요.


그러나 인간이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어요. 지금 내 행동을 건전한 행동 경건한 행동을 억지로라도 반복하는 거예요. 기도할 때 그냥 하는게 아니고 꿇어 앉아서 기도하고 뭔가 뿌리 뽑듯이 기도원에 가서 나무뿌리 뽑듯이 기도원 근처 나무뿌리 다 뽑힐거야. 외치고 외치면 정성을 주여~주여~~ 정성을 다하면 언젠가는 개과천선 되듯이 성령 받는다는 겁니다. 양이 쌓이면 새로운 질이 출몰한다는 거예요. 몸부림 치고 있어. 아주 환장을 해요 환장을.


교회는 뭐냐 하면 장소제공하는 겁니다. 자기들 무속신앙의 자리제공 장소제공한 것이 교회입니다. 뭐 교회마다 넓은 장소제공한 것도 있고 강남에 제공하는 것도 있어요 강남에. 강북에 제공한 것도 있는데 어떤 장소제공하게 되면 다담이 방에 손님들 많이 오잖아요 넓게 되면.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여럿이 기도하면 은혜가 더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기타 반주랑 피아노 반주 하나만 반주하는거 보다도 합주해서 반주하는 거 보세요. 노래가 막 살잖아요. 그렇죠? 맞지요? 노래 막 살잖아. 여럿이 합주하게 되면 거기에 막 자기가 막 거기에 휩쓸려가지고 자기 노래가 막 살지. 고독인가 독백인가. 막 살잖아.


주님께서 주기도문에 주님께서 하신 기도에 이런게 있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인간은 하늘이 다 거짓말이야. 인간이 만든 하늘은 땅에서 연장된 상상한 하늘이거든요. 그런데 진짜 하늘은 뭐냐 하면은 인간이 하늘 된다는 그것을 치워버리고 실제로 너무나 땅에라도 그렇게 땅 다울 수 없는 그런 양상으로 하늘이 여기서 그 창세전에 뿌리가 땅에 출발하게 됩니다. 그 순간 애들은 가라예요. 내 밑에 다 꿇어앉아 이거하고 똑같은 거거든요. 내 다음에 나온 인간들 다 꿇어 앉아 예요.


주님만이 기원과 근원이에요. 주님만이 창세전에 있었던 유일한 아버지의 대화 상대였습니다. 언약의 상대였고. 그래서 교회의 이런 이야기를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게 되면 이상하게 맞는 거 같거든 본인은. 이상하게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 맞는거 같은데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다지 안 좋아지느냐 이 말입니다. 안 좋아지는 이유가 뭘까요? 그래 그게 맞아 그게 옳았어. 내가 목숨 걸어야지 이런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그렇게 안 드는 이유가 뭘까요? 이미 중간에 마귀가 높여야 될 대상을 마귀가 점지해 줬습니다. 삼신할머니가 점지하잖아요. 보통 태어날 때. 이미 점지해줬어요. 우리가 영광 높여야 될 것을. 중심을 이미 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우리 자신, 우리 자신들. 마귀는 우리와 마귀가 한통속인 이유가 마귀의 그 욕구와 요구 사항이 우리 속에 이미 와 버렸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무슨 존재냐 하면 영적인 존재예요. 인간은 영적인 존재예요.


이걸 철학적으로 아무리 분석하고 DNA하고 뭐 시냅스 두뇌 파악 헤치고 인공지능 해봐도 인간은 무엇이냐에 대해서 그들은 갈수록 점점 더 몰라요.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그대로 만들고 싶어도 세포하나 못 만들어요. 거기는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것을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것을 누가 용납하느냐? 마귀가 용납을 안 하고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마귀가 이미 인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세계는 이미 영적으로 다 다루어집니다. 영적으로.


인간은 말하기를 내가 주인공이다. 그러면 내가 주일 오후에도 그런 이야기 했는가 인간이 내가 주인공이라면 새벽에 달은 왜 떠 있습니까?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예? 그 달 왜 떠 있는 거예요?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떴잖아요.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달이 떠 있다는 말은 달은 내 권한에서 일단은 벗어나는 거예요. 그렇죠? 이 성경책은 내 것이고 이 시계도 내꺼다. 이것은 내 권한 안에 있어요. 그러면 달은 내 것입니까? 달은 내 것 아니지요. 내 것이 아닌게 뭔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 앞에 있다는 말은 나에게 미흡함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내가 추스르고 내가 다듬는 인생에 항상 오류가 항상 언제든지 사단이 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강의하는 사람들 보게 되면 강의 하는 사람들 다 일단 강사의 말을 신임해서 모였는데 여기서 저 뒤에 다른 신천지에서 왔는지 해가지고 누가 또 내 욕하고 싶어서 뒤에 왔다면 그 사람들은 감시하러 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 강의하는 사람이 불안한거예요. 말 그냥 농담해도 알아주는데 뭐 이 목사 유행가 밖에 아니면 설교 못하나 이런 식으로 뒤에서 궁시렁 할 수가 있다 이 말이죠. 왜? 나한테 포섭이 안 되니까. 뭐든게 포섭이 안 되니까. 다르면 나한테 포섭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나는 무식한 자가 되어버려요. 내가 달이 왜 있는지 모른다 무식하다는 말은 내 인생을 분명하게 내가 보장하거나 확신할 수 없는 누락되는 요소들이 내가 확보한 요소보다 더 많이 산 죄가 있는겁니다.


그러면 인생을 살아도 이거는 헛 산 것이 되요. 뭐가 진리인지를 이거는 모르겠다. 결국은 모르겠다가 정답이 되요.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처럼 모르겠다는 겁니다. 목사님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인생이 뭐예요? 모르겠다는 겁니다. 모르는데 왜 합니까? 그냥 해보는거다 이 말지요. 뿌리를 몰라요. 뿌리도 모르고 출발점이 뭐냐 하면은 내가 알아야 되겠다. 아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다. 나부터 출발하니까 이게 잘못된거예요.


예수님은 어디서부터 출발합니까? 예수님 자신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면 잘됐네.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뭐로부터 바꾸면 되겠습니까? 예수님으로 바꾸면 될게 아닙니까? 그런데 바꿀 방법이 없네요. 이 나를 어디다 처리합니까? 음식쓰레기 할까요? 아니면 분리수거 할까요? 나를 어떻게 내가 처분할 수 있어요?


그래서 불트만이란 신학자는 말하기를 인간은 처분불가 존재라고 했습니다. 불트만이 볼 때 제일 골치 아픈 것이 뭐냐 하면 아무리 도를 닦고 아무리 신앙생활 해도 내일 내가 어떻게 나락에 떨어지고 어떻게 될지를 내가 보장 못 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달라 질지를 내가 보장 못하겠다. 인간은 날마다 내가 나를 붙들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내가 아무리 마음먹고 싶어도 마음은 그렇게 먹어도 주변환경이 나를 그렇게 가만두지 않는다. 주변 환경이.


주변사항이 가만 두지 않고 특별히 내 몸이 내 몸은 지금 건강하니까 정신은 맑아 보이지만 만약에 내 몸이 아프다면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원망과 불평을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가 사전에 그 상태를 미리 짐작조차 못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지금 입에 풀칠하고 밥이나 먹고있는데 만약에 진짜 내가 밥 못 먹고 몸 아프고 가정 다 깨어졌을 때에 내가 스스로 자살 안한다는 보장 있습니까? 자살은 왜 합니까? 부끄러워서 하거든요. 왜 부끄러워합니까? 살아온 것과 지금 모습이 현저하게 차이 나니까 더 이상 살 용기가 없어서 죽는거예요. 뭐 자살할 때 바람이 춥고 물이 차서 못 하는게 아니고 아직은 버틸만하다는 뜻이에요. 자살 안 하면 아직은 버틸만해요.


사람들 뭐라고 하면 도망치면 되니까 지리산에 가든지 어디 가든지 도망치면 되니까. 도망쳐도 따라온다 그러면 그때 죽든지 해야지. 방금 이야기 한 1분 동안 이야기한게 뭡니까? 인간은 뭐다? 내 몸인데 내가 처분 못하니까 답답하다 이 말입니다. 왜 내꺼라고 평소에 내꺼라고 우기면서 그리고 나에게 봉사하고 나에게 굴복하고 나에게 절하고 나만 치장하고 거울보면서 거울보면서 나만 내 관리 나서면서 왜 내 몸은 내가 처분을 못하냐 이 말이죠. 모르겠다 불트만은 모르겠다는 거예요 대체.


출발점을 우리가 모르면 정답을 내야 되는데 정답은 뭡니까? 처분할 필요도 없는데 왜 내가 처분해야 되냐 이 말입니다. 우리는 처분이 되든 안 되든 나는 내 문제는 내 문제 아니잖아요. 내 문제는 주님의 문제지 왜 자꾸 내 문제를 내 문제라고 합니까? 이 말이 이상하다만은. 내 문제라고 착각한 문제를 가지고 오지 마세요. 진짜 믿음이 얼마나 없었으면 자꾸 내 문제를 내 문제라고 여기는게 그게 믿음 없는거거든요. 그게 무슨 믿음이에요? 행함이지.


주는대로 맡기면 되잖아요. 그냥 주는대로. 영어로 lean 이라고 하는데 기대면 된다고 기대면 맡기면 된다고요. 죽을 육체인데요. 어떻게든 살리려면 살리겠죠. 죽은 육체를 살리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뭐만 높이면 됩니까? 예수만 높이면 돼. 예수님만 높이면 돼요. 제가 이렇게하면 아 그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렇게 대꾸 하는데 이게 어려운 문제입니까? 이게? 이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정신을 다른데 판 문제예요. 이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거울 보면 내 모습만 보이는데. 저는 거울 보니까 주님의 모습만 보이는데요. 이 몸이 주의 것이잖아요. 이 남방 입은 몸이. 주님이 남방 주신거 입었어요. 왜? 싫어요? 옷 다른거 입을까? 주님의 몸이잖아요 주님의 몸. 다른데 갔으면 벌써 나갔어요. 인상 쓰면서 나갔어요. 지금 많이 참아주고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는 사물입니다. 인간이 아니예요. 인간 대우 받을 필요도 없어요. 사물로 해준 그것이 영생을 아는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이미 새 인간 입장에서 보니까 내가 사물로 보이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요 사물로 안 보인다니까요. 창세기 3장에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할 때에 인간 입장에서는 백날 그 대목 봐도 인정 못해요. 무슨 흙이야 나 인간이지.


복음을 이야기해도 아까 이야기 계속 해봅시다. 누가 옆에서 복음을 해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게 진지하지 않고 그다지 고맙지도 않고 소중하게 느껴지지도 않아요. 왜냐 이미 섬기고 높여야 할 대상을 마귀가 시키는대로 나로 확정지었어요. 여러분들은 안 그렇겠지만 여러분 식구들은 특히 20대 아들 보세요. 천하 지정에 빠져가지고 차타고 돌아다니죠. 오토바이 삐리삐리 이거는 천하 뭐 어머니 효도해드리겠습니다. 성공한 나를 바라보세요. 기다려보세요 어머니 정말 아들 잘 나았다 아마 그런 호강하며 살 겁니다. 그 말이나 안하면 밉지나 않지. 그러니까 누구 하나 또 만나면 거기에 빠져가지고 다 주고 난 뒤에 연애 빠져가지고 헤어지자 하면 또 때려가지고 데이트 폭력 걸려가지고.


애들은 인간은 땅에 배로 엎드려 밀착되어 살잖아요. 보이는 것이 시선이 나이가 어리고 인생을 오래 안 살면 보이는 것이 이 앞에 것이 보여요. 그러면 눈 앞에 자극적인 것만 전부예요. 멀리 살아야 뭘 멀리 보지. 살아도 멀리는 안 보지만. 하여튼 코 앞에 있는 것, 술 모임 담배 피우는 것 뭐 이렇게 SNS해가지고 방탄소년단 하여튼 그런 노래 코 앞에 있는 것 밖에 안 보인다 이 말이죠. 그 앞에 복음 이야기 하면 어 그래그래 어 그거 참 좋으네 시답지 않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 왔다 갔습니까? 목숨보다 안 중요해요. 자기 이미 섬기는 자로 확정되었다니까요. 나와 내 가족과 내 명예와 체면이 최고 중요해요. 최고 중요해요. 우리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뭐라고 하면 너만 인간이냐? 나도 인간이다. 어디를 봐서 인간입니까? 주님께서는 이 무인도를 쑥 올려놓고 예수님만 계셔요. 이제 남은 것은 저 육지의 인간의 세계, 버림받은 땅이죠. 버림받은 땅, 약속의 땅 아닙니다. 버림받은 땅에서 주님께서 성령으로 그들을 시체로 만들어서 이 무인도에 데리고 옵니다. 데려와요. 이 기도를 한거예요.


그러면 이 인간들이 뻣뻣해가지고 오겠어요? 자기 잘난 체하고 똑같은 한통속인데.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이들에게 예수님이 심판 당하심을 이들의 심판 당함으로 대체해버립니다. 제가 주일 낮에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 내 인생을 끝났다. 쫑났다 이 말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 내 인생을 쫑났어요. 내 인생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색종이 풀리듯이 프로그램이 풀리면 그것이 나를 휘감으면 그게 내 인생이에요.


십자가에서만 나오는 그 새 언약의 원리가 나로 하여금 안개가 이렇게 휘몰아치듯이 나를 휘몰아쳐서 문어발처럼 나를 감아가지고 낚아채 가지고 가버리면 가는 곳이 바로 주님의 처소예요. 지금 이 기도가 지금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그 기도내용입니다. 그 순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문어이야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옛날에 킹콩영화 보신적 있지요? 킹콩이 여자 이렇게 손으로 감싸잖아요. 문어라고 합시다. 문어에는 뭐가 있어요? 빨판이 있지요? 빨판. 문어는 다리가 8개 입니까? 문어본체 이걸 머리고 다리 쪽을 지체라 해요. 졸지에 예수님이 문어됐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리에 통하는 원리가 지체 끝까지 통한다는 거예요. 같은 피가 흐르니까. 해가지고 이걸 휙 감아버리죠 우리를. 여기서 휙 감아서 우리를 뭐라 하느냐 하면 압살해버려요. 압살. 압축을 해가지고 부셔버려요. 부셔버리죠.


우리는 꼼짝을 못하는거예요. 숨이 막힐 정도로. 이러려고 복음 알았나? 이러려고 십자가 알았나? 그러면 주님께서 이렇게 해요. 그럼 싫어? 그럼 나가려면 나가라 이 말이죠. 나가려면 나가라. 나가는데 성공한 사람 이거는 문어발 속에 없는거예요. 괜히 문어발 옆에 구경만 한거예요. 아무리 빠져나갈래도 못 빠져나온 못 빠져나올 판에 그거는 어떻게 됩니까? 못 빠져나온 판에 뭐예요? 즐겨야지요. 복음을 즐겨야돼요.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결과로 인하여 내 인생이 진척되도록 진행되도록 맡겨야 되지요. 내가 하지 않은 것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라고 했지요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그걸 모델로 보여주신 거예요. 이 관계를 아버지와 무슨 관계? 아버지와 아들 관계예요. 아버지와 아들 관계.


영생은 아버지와 아들로 끝나는 겁니다. 따라서 영생 얻을 자에는 반드시 아들이 되어야 되요. 그래야 아버지와 아들로 끝나는 그 범주가 계속 유지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아들만 구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디모데전서 2장에 이야기하지요. 목사님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는데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왜 여기는 모두라고 되어 있습니까? 라고 하길래 제가 데살로니가 3장 이야기 하면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모든이라는 것은 인간이 생성된 위계질서 직업 이런 인간이 정해놓은 구분구분을 주님께서는 그걸 돌파해버리고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에서의 모든, 모든 뜻이 되요 모든.


북한 사상이라든지 직업이라든지 수입이라든지 출신이라든지 남녀라든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 주님의 문어빨은 다 투입되게 되어있습니다. 야간 근무하든지 주간 근무하든지 상관없이 전부다. 계약직이든지 정식이든지 관계없어요. 놀아도 놀든지 직업 있든지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오게됩니다. 오게 되면 그 사람의 갖고 있던 인간들이 정해놓은 모든 그 계급이라든지 구분지음 질서 그것은 주님한테는 일체 그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 중에 하나가 삭개오 이야기죠.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그 삭개오가 그 당시 세리인데 세리는 모든 권리가 박탈되었어요. 하도 로마 편에 서가지고 유대인을 뜯어 먹으니까 유대인에서 왕따시켜버린거예요. 유대민족이 왕따시킨 그 세리를 돈만 아는 세리를 세리는 돈만 알아요. 납작 엎드려 있으니까 배로 깔고 사니까 인생이란 원래 그런거죠. 뭐 인간은 돈이 최고죠 뭐가 있어요?


그런데 그 아까운 돈을 뭐 어떻게 했다? 4배나 갚겠나이다 라고 내놨다는 말은 이렇게 엎드려 살다가 이 지상에 오는 창조 전에 시원을 내가 나 있게 하신 그 분을 알게 된 거예요. 그러면 그 복음의 가치보다 무슨 가치가 적겠습니까? 돈의 가치 돈이 자기 자존심을 인정하니까 받쳐주니까. 이 돈에 가치보다 예수님이 더 귀한 거예요. 따라서 그까짓거 하고 4배나 갚겠나이다. 4배 갚아야 구원받는다는 뜻 아니잖아요. 그렇죠? 돈이 더 있어도 관계없어요.


그러나 무엇이 중요하면 무엇이 더 중요한걸 알게 된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삭개오가 변할 때에 삭개오가 예수님을 초청한게 아니라는 점이예요. 누가 먼저 누가 누굴 초정했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나라에 삭개오를 초청한겁니다. 예수님의 집에 삭개오가 간거예요. 그러나 남들 보기에는 너희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되어 있어요. 너희 집에 삭개오의 집에. 그럼 삭개오의 집에 삭개오의 집은 날라가버리고 삭개오 집이 그 순간 예수님이 오는 순간 그 집은 누구 집이 됩니까? 예수님의 집이 되고 삭개오가 오히려 손님으로 초대받은게 됩니다.


자기 생각안하지요. 할 필요가 없지요. 즐기면 되니까. 이 주님과 함께 있음, 전에는 나 혼자 살았는데 지금은 나 있던 자리에 주님이 시원적으로 원초적으로 오리지널적으로 계신분이 내 자리를 내 엉덩이를 차버리고 그 자리에 앉았다는 그것만으로 그게 바로 그분에 의해서 내가 마음껏 처분되어도 자기는 상관없다 이 말입니다. 삭개오 이야기가 왜 성경에 나왔겠습니까? 이게 구원의 모델이기 때문에 구원의 원전이잖아요.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뽑아서 그 사람을 자기 집에다가 초청한겁니다.


그걸 제가 대구강의에서 뭐라고 했냐 하면 불러냈다는 겁니다. 불러낸거예요. 주께서 어두운데서 불러낸거예요. 어두운데서 불러냈으니까 불러내고 난 뒤에 한번 뒤돌아보세요. 내가 있던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어두운 자리죠. 그 어두운 자리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교회 다니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목사 하라는 데로 다 했고 복음 믿으라 하면 다 적고 요한복음 13장 적어가지고 영생은 그 노트 이만한 노트 한권씩 가 가지고 있지요? 전부 다 옛날에 제자훈련할 때. 그 노트에 1단계 그 다음에 2단계 3단계 아이고 나 언제 12단계 올라가냐 해가지고 결국 12단계는 돈 내는게 문제였는데 그것도 모르고 공부하면 되는 줄 알고 전부 그게 얼마나 내가 나를 살처분하기 위한 탈출구였다 이 말이죠.


누리지를 못했어요. 그냥 누린다는 게 뭐냐 하면은 남 씹는 재미, 산 위에 올라가가지고 이제 자기는 이제 중견간부 된거예요. 5단계니까. 자기보타 밑의 단계 초보단계 온 사람보고 얼마나 씹어댔겠습니까. 저 기도 꼬라지 봐라 저거 10초하고 끝난거 봐라 저거. 나는 벌써 처음에는 10초 했지만 지금 했다하면 25분 한다고. 저 위에 있는 사람은 25분도 기도냐? 난 했다하면 두 시간이다. 아이고 음매 기죽어 음매 기살어. 이런 재미로 살아요 교회가 이런 재미로.


그런데 이게 어두움이거든요 이게. 이게 나 홀로 사는거 아닙니까 나 홀로. 크리스마스 때 맨날 틀어주는거예요. 아이가 악! 하는거 이거 면도하다가. 나 홀로 집에 3,2,1 진짜 인간은 나 홀로 집에 나 홀로 집. 자기 혼자 살아요. 자기 혼자. 누리는게 없어요. 즐기는게 없고. 또 뭐해야 되고 뭐 해야 벌 안 받고 또 뭘 해야 나중에 내 자식까지 복을 받고 맨날 생각하는 것이 자기가 자기를 처분하려고 탈출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 원칙은 그게 아니예요. 아버지여 내가 아들된 것처럼 저들도 아들 되게 하옵소서. 그런데 아들 된다고 아들한테 맞먹으면 안 되고 예수님을 그들 자신을 높이다가 이제는 예수님을 높이는 자 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그들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는 기도가 이 기도내용이에요. 아들을 영화롭게 해서.


자, 기도내용 봅시다. 기도의 모든 내용의 중심은 뭐다? 예수님을 높이는 것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그게 끝이에요. 뭐 수능 앞두고 기도하고 시험 잘 치고 전방 가지말고 후방 빠지게하고 그게 아니예요. 몸이 아파서 유방암에서 낫게 해주고 그게 아니예요. 대상포진 낫게 하면 또 아픈데? 아픈 채로 예수님 높이는 것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내 소식만을 잘 되기를 기대했던 우리에게 주님의 소식은 심판이요 곧 그것이 구원이요 영생의 절차인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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