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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23:54:12 조회 : 332         
인격파괴 190319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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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민희(IP:59.♡.122.247) 19-04-01 23:10 
강남-요한복음 20장 19절(인격 파괴)190319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일단은 23절까지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23절까지.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이 문을 닫았는데 주께서 그 문을 통해서 닫은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그것 잘못입니다. 사람들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주님이 들어오시는 문은 없어요. 제자들은 그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거에요. 이게 이제 수준이 낮은거지요. 주님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문은, 문이 있으면 인간들은 문에 예속되요. 벽으로 못들어 오지요. 그 문을 통해서 들어오고 나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문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뭐냐 하면 문이에요. 예수님 자신이 문이 되어 가지고 예수님이 계시면 그 현장에 문이 새롭게 만들어 지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들이 예상하는 곳은 천국의 문이 아니라는 거에요. 인간이 예상하는.


인간들은 평소에 하는 버릇이 문이 있고 문을 통해서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가고자 하는 그것이 인간들의 생각의 한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문을 천국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알려달라는 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 있지요. 어디로 통하면 천국가는 길입니까?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가고자 우리는 갈 수 있는 그런 고난과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길을 몰라서 그렇고 문이 몰랐을 뿐이지 우리에게 길과 문만 알려주시면 그걸로 가서 천국에 같이 합류하거나 도달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는겁니다. 사람들이 어떤 문을 의식하기 때문에 그들은 주께서는 사람들이 의식하는 그 방식말고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어닥친거에요.


한쪽은 문을 기다리는 쪽과 한쪽은 문이 필요치 않는 본인이 문이 되는 분과의 합작, 같이 합류를 한겁니다. 합류를 했으니까 대화하거나 이 모든 것에 대해서는 우리의 해석을 우리의 모든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죠. 더구나 오늘 이야길 할 것이 중요한 것이 또 뭐냐 하면 여기 문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 방금 예수님을 제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문인 것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문되게 하신거죠. 그런데 지금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그렇게 문되게 하시는 그 방식을 예수님께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뭐로 만드느냐 하면 이 세상에 또 예수님같이 문으로 만드신 거에요.


그래서 23절에 보면 “너희가 누구든지 죄를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받은 사도가 사람들속에서 장차 그들의 구원의 천국가는 문이 된다면 여기서 어떤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되느냐 하면은 내가 천국에 들어간다 라고 해서 들어가는 주체자를 본인으로 계속 이렇게 쥐고있는 이 사고방식에 대해서 이게 변동이 있어야 돼요. 나는 여기 있는데 나중에 천국간다라는 것.


왜 그러느냐 하면 문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나는 멀쩡한 상태에서 문만 통과하게 되면 천국에 이제 곧 도달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기독교 장례식에 가보면 전부 이런 식이에요. 하나님께서 맨션 아파트를 하늘에 한 채 장만했기 때문에 가시면 이제는 들어가시면 편히 쉬시면 됩니다 라고 하거든요.


어디 천국에 놀러가요? 놀러가는 데처럼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기서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게 문이니까 들어가세요가 아니라 뭘 언급하느냐 하면 죄 사함을 언급해버려요. ‘죄 사함’을. 이 말은 뭐냐 하면 죄인 주제에 어디를 넘봐 하는 그런 취지에요. 이게 자기주제도 파악 못하면서 거룩한건 알아가지고 천국이 좋다는건 알아가지고 낼름 거기에 자기 부동산 하나 장만하려고 내 땅이야 이거는 내 좌석이야 자기 지분하나 얻을려고 그런 식으로 넘볼수 있는 입장이냐 하는겁니다.


사도가 성령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사도에게 성령을 하면서 사도가 해야될 일이 곧 성령이 하시는 일인데 성령이 하시는 일을 쪼개보면 무슨 일이 들어있느냐 하면요 죄사함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죄 사함에. 그러면 죄사한다는 말은 일단 죄인은 있어야 돼요. 죄인은 있어야 되고 그 죄인은 어떤 규정을 받느냐 하면 천국에 갈수 없는 존재가 죄인으로 규정되어야 돼요.


천국에 갈 수 없는 자가 죄인인데 이 죄인들이 자기 죄를 모르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메시아 믿어서 누굴 만나서 천국가겠다 라고 지금 자기 분수도 모르는 발설을 해버린 거에요. 그게 바로 성령님 보시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님 보시기에 그게 죄가 되는 겁니다. 사도가 보기에 죄가 되는 거에요.


따라서 나는 천국가고 싶다는 구원의 욕구죠. 구원에 대한 욕구, 그걸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그냥 구원파라고 보면되요. 구원파. 어떤 특정집단이 구원파가 아니고 모든 인간은 구원파에요. 예수고 하나님이고 자기 온 정신은 뭐냐 하면 괜찮은 사람 도움으로 내가 죽어서 구원받고 싶고 천국가고 싶고 이 땅에서는 지지리 궁상으로 고생 되게 했지만 죽어서는 낙을 봐야되지 않겠습니까? 무슨 보상심리 같은거 작용해가지고.


고생하고 또 지옥 가서 고생하고 그건 남는 장사 아니거든요. 고생할 때 무슨 보람이 있어야 이게 인내하고 기어이 참아낼 수 있단 말이죠. 버틸 수 있는거에요. 아까 버티다 이야기 했는데. 장차 좋은 나라 있기 때문에 이까짓것 이런 고난 내가 견뎌내야지. 견뎌낸 사람에게 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성경에는 참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거는 세상이 지어낸거고요. 작가들이 몰라서 그래요. 성경에 참는자는 복이 있다는 그런거는 성경구절에 없습니다. 찾아볼라고 애써도 그런 구절은 없어요.


어쨌든 참는 만큼 참는 동기 유발을 천국이라는 것이 좋은 미끼가 되어서 우리에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 받아서 인내할 수 있겠다 이렇게 버티지요. 로마서 5장입니까?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 대목 같은거 이렇게 그 대목 자꾸 생각하면서 참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참을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없어요. 참고 안 참고 할 것도 없이 근본적으로 참는 한이 있더라고 천국가겠다는 그게 바로 네가 그동안 몰랐던 죄가 되는 거에요.


천국이 나 천당 보내라고 준 나라가 아니에요. 그거는 그냥 오판입니다. 잘못 생각한거에요. 그런 것은 기독교라는 이름의 종교가 그런걸 가르치죠. 사람이 가만히 있어도 인간은 욕구가 천국가려는 욕구가 있는데 그 천국가려는 욕구는 결국은 나 잘 되기 위한거거든요. 결국은 그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볼 때 지금 보다는 모든게 내가 우수하게 될거라는 그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 기대감이 있다면 스스로 자기가 자기 힘으로 자기 지배를 하게 돼요. 자기 치료 방법을 가동시키는 겁니다.


천국은 분명히 하나님 계신거니까 하나님은 훌륭한 분이고 좋은 분이니까 아마 좋은 사람을 간택할것이고 시험 쳐도 좋은 사람만 합격시킬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내가 이 땅에서 할 것은 내가 나를 다스리고 관리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서 그걸 기본으로 해서 그 지배하고 난뒤에 뭘 집어넣는가? 도덕적인 처방을 나한테 가하는 거에요. 도덕적인 처방을.


인간은 기독교 이천년 역사고 뭐고 딱 짜보면 한약 그 삼베에 거친 삼베에다가 막대기 끼워서 옛날엔 한약을 그렇게 짰거든요. 야무지게 짰다고요. 쓰기도 해. 짜듯이 인간의 모든 그 행동 태도를 한약같이 짜보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도덕적 처방이에요. 도덕적 처방. 이걸 성경적으로 하면 선악 논리. 선악 논리가 너무 어렵다면 도덕적 처방하면 돼요. 날이 갈수록 내가 우수한 존재가 되기를.


짜보면 뚝뚝 떨어져 자기의 도덕이. 주님은 짜보면 피 밖에 안나오는데 인간은 짜보면 도덕밖에 안나와. 피가 안 나오고 도덕이 나오는 거에요. 주께서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자기 백성을 성령을 통해서 짜보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죄가 나오지요. 죄가 나온다고요. 인간은 자기 의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자기 의가 나오는데 대해서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 아주 흐뭇하게 여기고 대견하게 여겨요. 자기 자신을.


교회 나온 사람치고 스스로 안 대견하게 여기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오늘도 악마의 시험을 뿌리치고 교회까지 나왔습니다. 흑흑흑흑 만화책에 나오는 거에요. 흑흑흑. 주여 이러면서 자기 자신을 아주 뿌듯하게 대견하게 여기죠. 그 대견함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 나오는 그것이 죄다. 이게 죄가 나오는 것이다 라고 여기는 것은 성령 받은 사람 외에는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알지를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 대목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도덕으로 자기를 뭐한다 했습니까? 처방하죠. 도덕적인 처방을 내립니다. 도덕적인 처방을 내리는데 도덕적인 처방을 내리게 되면 여기에 막혀있는 인간세계와 막혀있는 하나님 나라 세계에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분명히 문이 있을 것이고 통하는 문이 있을거고 그 문에는 도덕적으로 무장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지금 제자들도 그런거에요.


그런데 제가 처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문을 이 문으로 오신게 아니고 닫아놓은 문에서 예수님 오신게 아니고 예수님은 그 자체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 자체가 문이라고 했지요. 인간이 다니는 문을 사용을 안해요. 왜냐하면 인간이 문을 의식한다는 것은 인간 + 문 그 전체를 자신이 구원받기에 필요한 그러한 환경이고 영역이고 그러한 용도로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했다는 말은 이것은 어려운 말로 하겠어요. 여러분들은 수준이 있으니까 어려운 말로 쓰겠습니다. ‘탈자연화’. 보통 세상의 과학이라는 것은 자연을 벗어난게 아니고 자연을 이용하고 활용하는 거에요. 자연의 변화를 이렇게 배열을 하고 정리 정돈을 함으로서 필요한 원리를 뽑아내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다 외우고 있는거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다 외우고 있는거. 이러면 거의 못 외운다고 보시면 돼요.


그 주기율표라는게 있어요. 화학의 주기율표 금속의 110가지 인공지능까지 하면 120개쯤 되는데 뭐 이런게 있어요. H 수소 리튬 벨릴륨 인 황 그 다음에 프로린 그다음에 네온 그다음에 마그네슘 이렇게 쫙 나와요. 이렇게 배열을 하니까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주기가 나오더라 이 말입니다 주기가. 이상하다. 금속들을 보니까 여기는 활성화가 높은거 있고 여기 끝에는 활성화 되지 않는 불활성기체라하는데 기체가 점점 나중에 고체가 되고 금속이 되거든요. 은이라든지 금같은 것은 79번인가 멀리 있다 이 말이죠.


이 주기가 있을 때 아 이런걸 잘 배열해서 잘 이용하면 내가 그 자연에서 이용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왜 이런 주기가 생길까? 과학자들은 그걸 자기 딴에는 밝혀냈다고 보는거죠. 과학은 핵이 있고 그 다음에 핵 주위에 전자기들이 돈다고 하는데 도는게 아니고 배치되어 있는데 에너지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뭐 이런게 있어요. 여기서 그들이 하나의 껍질을 전자의 껍질을 형성하고 그 껍질 안에는 전자들이 존재할 확률이 많은 그런 궤도같은게 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 궤도에서는 방 하나 되어 있는데 방 하나에서는 서로 전기장 때문에 같은 것은 같이 들어가지만 방향이 회전방향이 반대로 들어간다 이게 배타의 원리라는게 있어요. ‘파울리의 배타의 원리’. 그리고 방에 들어갈 때는 꼭 두 개만 들어간다 이걸 ‘쿤트의 원리’라는게 있어요. 화학에선 이걸 이렇게 이야기해요. 꼭 십자가 마을 방 배치하는거랑 똑같아요. 하나씩 하나씩 다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 끼어 들어가고 하는거에요.


이렇게 해서 여기서 빛은 왜 반짝이느냐 뭐 이렇게 왜 이것은 결합이 잘되고 전자가 하나 들어가면 여기서 이걸 잘라내면 유전자 잘라내고 새로운 화학제품이나 만들 때 이런걸 이용해가지고 쉽게쉽게 자연에서 얻어내는 거거든요. 이걸 ‘탈자연화’예요. 자연에 있는 원리를 알아내서 우리한테 이용하겠다는데 어디 이용하느냐 하면 내가 사는데 이용하고 내가 건강한데 이용하고 내가 많은 인구를 먹여살리는데 필요한 것들을 이렇게 과학에서 끄집어내면 경제는 그것을 생산과 분배를 하고 돈으로 변환시켜서 경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과학과 경제 그걸 잘 분배해놓고 거기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만드는게 뭐냐? 정치. 과학, 정치, 경제. 약간의 좀 배부르다 싶으면 이제 문화생활. 문화. 이게 세상이잖아요. 그 기원은 뭐냐 하면 우리는 살아야 되겠다는 거에요. 제가 이야기하는 정치 과학 경제 문화 가운데서 죄는 어디 있습니까? 죄는 없지요. 죄는 없고 뭐가 있느냐 하면 이게 있어요.


형법이 있어요 형법. 형법 또는 형법에 의한 형벌이 있지요. 형법. 형을 집행하는 법. 오늘 본문에 19절에 봅시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여기 유대인들 그다음에 뭡니까?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지요? 두려워하지요. 뭘 두려워 하는거에요? 형법을 두려워한거에요. 형법을. 나라에서 에너지를 백성들에게 골고루 분배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협의에 의해서 만들어 낸 그 법에 욕심내서 남의 것을 뺏어가면 도둑질로 간주해서 벌을 내리겠습니다 라고 그 공동체 내에 협의를 했으면 그건 뭐냐? 형법이 되는 거에요 형법이.


냉커피 왔는데 그걸 먹지도 않고 쏟아버린 경우에는 깔끔하게 닦아야 됩니다 라고 벌칙점을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그런 형벌을 내린다면 형법이 되는 거지요 형법. 그러면 유대인들이 그 제자들이 자기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알아요? 몰라요? 알지요. 그럼 하나님이 만들었으면 누굴 무서워해야 돼요? 하나님의 율법을 무서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지금 이 제자들은 누구를 무서워 합니까? 유대인들을 무서워하는 거에요.


그러면 어디에서 못 벗어 난거에요? 정치 경제 과학 여기서 그들은 못 벗어난겁니다. 그들이 못 벗어났다는 말은 죽기 싫다는 얘기예요 결국은. 죽기 싫다는 겁니다. 죽기 싫으면 그러면 죽기 싫으면 계속 유대인하고 같이 한통속되서 얼싸안고 예수 죽이는데 같이 가담을 하고 하지 왜 따로 노느냐? 죽기는 싫은데 그 다음에 남들이 모르는 추가적인 자기에게만 주어진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제자 자기들을 천국에 보낸다는 그 약속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제자들이 내부적으로 지금 모순이 벌어진거에요. 형법은 무섭고 그게 우선적으로 그것도 우선적으로 무섭고 벌벌 떨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아주 포기할 수는 없고 그 동안 쌓아왔던 우정이 얼마입니까. 3년동안 쌓아왔던 그 청춘이 아까워서 버리기는 뭐하고. 이 둘이 조합이 안되는 거에요. 오늘날 교회 가는 모습하고 똑같은 거에요.


가정은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경제적으로 별 탈 없고 과학적으로 세상적으로 좀 이렇게 유명한 직업으로 공부도 좀 많이 하고 이렇게 했으니까 일단 사는 것은 괜찮은데 남은 문제는 내가 죽어서 좋은 나라 가는가 그게 문제니까 내가 예수님을 내가 포기를 못하겠고 이게 내부적으로 이게 하나가 안되는 거에요. 내부적으로. 둘다 문제에요. 내가 예수 믿어서 구원받겠다는 것도 문제고 살겠다는 것도 근본적으로 문제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면 제자들이 무서워하는 그 시대의 그 정치 형법 있잖아요. 그 형법을 예수님 자신이 그걸 자기 손에다가 집어 넣은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20절에 나오는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이 생긴 상처는 뭐 자해한거에요? 어떻게 한거에요? 죽어야 돼!! 스스로 칼 가지고 자기를 찌른겁니까? 어떻게 된거에요 이게. 손과 옆구리의 그 상처는 뭐에요?


인간들을 제자들을 꼼짝 못하게 벌벌벌 떨게 만드는 무서워서 어쩔줄 모르게 만드는 그 법을 예수님이 삼켰다고 보면 되요. 예수님이 그 법을 삼켜버리면 그 다음부터 뭘 무서워해야 하면 되냐면 법을 어겼다는 것들이 형벌이 온다는 것 때문에 무서워하면 안되고요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이 곧 영원한 지옥이고 형벌이 되는 거에요. 예수 안 믿는 것이.


예수님께서 지옥 보내고 예수님께서 인간을 천국 보내고 지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현장에서 지옥을 만들어 내고 천국을 만들어 내는 거에요. 왜? 예수님이 문이시니까. 자꾸 우리가 예수님을 상대할려고 하면 안돼요. 예수님에 의해서 상대 당하는 자가 되어야돼요. 내가 상대할 때는 반드시 의도가 있어요. 음흉한 의도가 있다고요.


밥은 먹여주니까 감사한데 죽어서 천당가는 것은 주께서 보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증서라고 뭐 이렇게 도장 찍고 증서라도 하나 써주면 좋겠습니다. 너는 반드시 구원받는다는거 뭐 이런거 써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그렇게 되어 버리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어떤 정서라든지 이런거 공증 같은게 있어야 된단 말이죠.


예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한게 아니고 제자들 자체가 우리 성도 자체가 공증이 되게 하는거에요. 공증을 쥐고 있는게 아니고 너 반드시 천당가는게 아니라 제자들을 예수님 하는 일에 거기에 합류를 시켜줘버린 거에요. 제자들이나 성도는 주님이 하는 일에 소비자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아니고 같은 직원이죠.


소비자라고 하는 것은 주께서 다 해놓으면 돈주고 사거나 그걸 구매하면 되지만 생산자로, 소비자가 아니고 주님의 하시는 생산자로 들어가는 거에요. 그런 사람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 안에 일종의 공장같은 거에요. 공장이 되어가지고 늘 지옥과 천국을 계속해서 늘 거기서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성령받은 이 사도들은 이 제자들은 이제부터 예수님의 이야기했던 천국과 지옥의 문의 역할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자들은 천국의 문인 동시에 무슨 문이 되겠습니까? 지옥의 문이 되는 거에요.


23절 봅시다. “너희가 누구든지 죄를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죄가 없으면 천국이고 죄를 그대로 두면 지옥이고. 이걸 간추려서 이야기 하면 세상은 곧 지옥이고. 왜? 안 건드리고 놔두면 그냥 지옥이고. 그래서 88올림픽이나 월드컵 할 때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했잖아요. 지옥 나라 짝짝짝 짝짝. 지옥 이루어 진다. 지옥 별표 이루어 진다. 이런거 있잖아요. 그대로 지옥이에요. 그대로 지옥입니다. 거기는 뭐가 있다? 형법이 있고.


그 형법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법이 아니에요. 국가라는 체제 건드리면 너는 모진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형법입니다. 국가라는 것. 그 국가는 다니엘서에 보면 그걸 두자로 뭐라고 되어 있어요? 국가를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다니엘서에. 짐승이죠 ‘짐승’. 짐승을 달리 표현하면 괴물이죠. 거대한 공룡입니다. 욥기에 보면 거대한 리워야단, 공룡. 우리는 공룡의 비늘이고. 기능의 일부로서 붙어있는 거에요.


거대한 공룡이 이렇게 흔들거리면서 움직이게 되면 우리가 따라다니면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거 부르면서 같이 따라다니는 거에요. 외국에 나가게 되면 태극기 앞에 이렇게 따라다니고. 국가대표는 바로 공룡의 마크를 달고 저쪽 공룡하고 이쪽 공룡하고 붙는거에요. 일본 공룡하고 우리 공룡하고. 트럼프 공룡하고 북한의 새끼 공룡하고. 욕하는거 아닙니다. 작다는 뜻이에요. 핵 포기 때문에 붙고 있잖아요. 그래서 모든 뉴스가 다 지옥 이야기에요. 지옥 이야기.


지옥에 0.1% 에 들어가야 된다. 이게 스카이캐슬. 왜냐하면 성공해야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성공해야.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과 내가 지금 안 맞다는 겁니다. 이게 자꾸 틀어진다는 거에요. 좀 인기있고 자기 집안 돈 좀 있고 아주 10대가 술을 어디서 먹어가지고 술 먹는거 배워가지고 나이트 클럽 가가지고 하루에 1500만원 술값내고 까불때는 천하자기 세상 인줄알고 자기 아버지 고급차 승용차 몰고 돌아다니고 스포츠가 몰고 돌아다니고 두려움이 없지요.


없다가 이번에 나이트 클럽 형법에 걸렸잖아요. 사람들이 지옥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요 이런 이야기 해요. 참 요새는 도덕적으로 타락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도덕적으로 타락했다 했는데 도덕이라는 말은 사실은 요즘 세계에서는 참 구태의연한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그 도덕이 보통 도덕 윤리를 같이 봅시다.


도덕은 개인의 성품을 품량하는 것이 도덕이고, 윤리란 그런 도덕들이 모여서 하나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는걸 필요하다는 것을 윤리다 이렇게 보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조선시대때 이야기고 도덕과 윤리는 근대가 되게 되면 도덕과 윤리보다도 뭐가 위냐 하면은 힘이 위이고요 이 힘은 뭐로 측정이 되냐 하면은 돈인데 여유돈이라고 하지요. 여유있는 돈. 집에 돈 많아도 집에 빚이 많으면 소용 없잖아요. 여유있는 돈. 내가 자유를 느낄수 있는 돈. 힘.


힘이 뭐를 대신했습니까? 도덕과 윤리를 대신한거에요. 그래서 자녀 교육도 너 어릴 때부터 영어 배워야 돼. 왜? 그래야 네가 착한 사람 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영어를 강요하는 부모 봤습니까? 그런 식으로 안하지요. 영어 꼭 해야 돼. 왜? 그래야 너는 훌륭한 도덕적인 사람 되기 때문에. 이렇게 안하지요. 그게 바로 여유돈을 가지고 있는 힘이 되는 거에요, 힘이.


제가 혹시 주일 낮 설교 들은 사람은 제가 끝 부분에 예를 든게 있지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에 나왔지요. 그 때 영화배우 이름이 순간 생각이 안났어요. 주께서 생각 못하게 하셨는지 이제는 생각났는데 고현정이에요. 김태우하고 고현정하고 편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게 홍상수 감독이 나왔다 이 말이죠. 거기에 편지 내용에 보면 도덕과 윤리가 있습니까? 없지요. 자기 행복이죠. 자기 행복. 행복한거에요.


그 행복은 어디서 규합된 자료를 가지고 뭉쳐진거냐 하면 바로 이 지옥에서 행복하게 살기에요. 지옥 벗어나기가 아닙니다. 지옥 벗어나기가 아니에요. 제가 오늘 강의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 이야기에요. 인간은 벗어날 세계가 없습니다. 인간이 갖춰있는 그걸 제가 주일낮에 비빔밥 안이라고 했는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말이죠.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인간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다린거에요. 메시아가 나타나게 되면 바로 힘없는 유대나라가 아니라 힘있는 나라가 되요. 로마에서. 로마에서 벗어나서. 자기들은 다니엘에 나오는 그 짐승을 로마로 보고 그 로마에서 벗어날 때 진짜 나라가 그야말로 다니엘이 예언한대로 이 유대사회에 여호와 믿는 나라만이 우뚝하게 다윗 왕국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게 천국이다 라고 유대사회는 그렇게 이야기했잖아요.


힘으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메시아냐 하면 아직 나타나지 않는 메시아에요. 아직 나타나지 않는 메시아.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한거에요. 아직 성령을 못받았기 때문에. 제자들도. 그런데 정작 메시아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나타났습니까? 이미 나타났다고 되어 있거든요. 이거는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쇼크에요. 사람들은 이걸 지옥으로 보지 않고 대기상태로 보기 때문에 죽어서 좋은 점수 받으면 내신 성적 높으면 천국 일종의 대기 상태, 논산 훈련소가 되어 가지고 아직 자대 배치를 안했다고 본거에요.


여기서 중립지역이고 여기서 얼마나 자기를 잘 했느냐 따라서 천국 갈 사람 천국 가고 지옥 갈 사람 지옥 간다 이렇게 생각한거에요. 유대사회에서 오늘날 교회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러니까 교회가 지금 악마의 편드는 단체가 되고 말았어요. 진짜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이미 나타난 메시아에요. 뭘 안고? 손과 옆구리에 뭘 안고? 상처를 지니고 나타났어요. 그야말로 상처받은 분이에요. 상처받은 분으로 오셨다. 상처 받은 분으로. 멀쩡한 육체가 아니고 상처받은 상처가 있는 분으로 오셨다 이 말이죠.


여기 요한복음 20장 27절 누가 한번 읽어 보세요.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아멘. 이 말은 뭐냐 하면 그 상처가 어찜이뇨 하는 대목도 있어요. 그 상처가 어찜이뇨. 사도행전인가 나와요. 스가랴에 나오는가? 이사야에 나와.


그 상처가 어찜이뇨. 지금 사람들은 메시아를 원하지 상처를 보고자 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메시아를 원하는 그들에게 (너무 떠들어서 옆방에서 시끄럽다 할까 모르겠다. 형벌받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메시아를 원하는 자에게 상처를 앞장세워 들이미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이거늘” 십자가가 상처가 눈 앞에 보이는데 왜 네가 아직도 엉뚱한 발상을 유지하고 있느냐. 상처가 있다 상처가.


이 상처는 로마서 9장에 보면 사람을 넘어뜨리는 걸림돌이에요. 소위 하나님이고 뭐고 메시아가 어떻고 죽어서 천당간다 지옥있다 그런 논쟁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쓰잘데기 없는 논쟁에 불과한 것을 딱 보여주는게 뭐냐 하면 바로 상처에요. 메시아가 온게 아니고 상처를 준거에요. 이 상처 너하고 관련성 없으면 너는 끝났어 이런 뜻이거든요.


우리가 믿었고 우리가 알고있던 거룩하고 고상하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그거 다 찢어버려라 이 말이죠 그거. 그거는 그 자체가 지옥에 살아야될 사람들이 이 고통에서 면제하고 싶어서 면하고 싶어서 온갖 도덕적인 품성가지고 지어낸게 그거에요. 제가 아까 동영상 촬영할 때 두 번째 했던가? 메시아 이야기할 때 메시아 모습이 어떤한가. 대부분 갸름하다 그랬어요. 갸름하다.


이렇게 볼이 쏙 빠지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 그 사람처럼 수염나고 아주 보기만해도 인자하고 고상스럽고 또 우리나라의 동양철학에 보면 제사 지낼 때 병풍있지요? 그 안에 도인들 보세요. 전부다 얼굴이 뾰족해요. 뾰족하고 왜냐하면 똥배나오고 이런 예언자가 없다는 거에요 얼굴 통통하고 옥동자 같이 그렇게 생긴 사람 그런 메시아는 없어요. 지성적이고 누추하고 예민하고.


마치 애들보고 삼손 그려보라고 하면 전부다 울퉁불퉁 근육에다 근육질에다가 이래가지고 이렇게 그린다고요. 이게 머리카락 힘인지 근육의 힘인지 구분안되게. 선입견이란게 무섭지요. 하나님은 칼과 병기로 구원하는게 아닌데. 하나님은 의로 구원하잖아요. 의만 있으면 돼요. 의만 있으면. 나한테 없는 의. 내가 예상못한 의. 나를 계속 죄인으로 몰아세울만한 그러한 근거가 되는 의. 그 의는 바로 이미 우리는 상처나 줄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정적으로 알려주는 그 무엇. 객관적 증거. 그것을 앞장세워서 오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이분이 바로 진짜 예수에요. 다른 예수는 가짜입니다. 이미 오셨어요. 이미 오셨다고요. 그당시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제자들이 내몰려 도망친것처럼 우리도 똑같아요. 우리는 다른 예수를 계속해서 교회를 통해서 계속 다른 예수를 우리 마음 속에 세뇌받았어요. 다른 예수, 내 소원대로 이루어주는 예수, 기도에 응답하는 예수, 교회 부흥시켜주는 예수, 계속 엉뚱한 예수.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아픈 사람 건강하게 해주고 가족 화목하게 해주고.


그런 예수. 노골적으로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너무 또 밝힌다 싶어서 끝내 참으면서 주를 위해서 고난 받겠습니다 하면서도 그 고난 받겠습니다 하면서도 그 뒤에 고난받으니까 내거는 일단 챙겨주셔야 됩니다 이런거 있잖아요. 겉으로 나타나는 그 기도내용과 그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그래도 좀 한번 봐주셔야되지 않습니까 라고 마지막 건지고 싶은 그 뭐 하나 그걸 보조 발전기라고 했는데. 거의 마지막 정말 이거 없이는 나는 안된다는 거 그거 하나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내가 정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정했는데 그건 내 자유에요. “인격파괴”. 인격파괴되지 아니하면 예수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인격은 자기가 자아됨의 마지막 마지노선이거든요. 진짜 이거 무너지면 나는 인간 아니다 나는 개다. 마지막 지키고 싶었던게 있는 거에요. 유대의 형법이 무섭고 하지만 예수님을 버릴수는 없고 제자들의 마지노선은 바로 문단속 하에 있는 꼭 지금 우리 같애. 문 닫힌 안에 있어.


문 닫힌 이 안에 있어가지고 다른 사람 뭐 로마군병 들어오기를 늘 감시해야 될거에요. 누가 똑똑~ 할거 같으면 고구마 잘 있나? 감자 잘 큰다. OK. 암호 통과하고 열어줘야 할 정도로 그들은 내부에서 벌벌 떨고 있었던 거에요. 그 제자들의 그 모임이 각각 제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내부인간 내부의 모습을 바로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문닫힌 최후의 모임 이 장소입니다.


자기 내부의 그런 공포를 갖고 있어서 그런거에요. 그리고 그들의 소원인 예수가 있다면 예수님은 이런 공포에서 벗어나 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겠어요. 자기한테 문제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자기가 지금 엉뚱한 예수 엉뚱한 다른 천국을 생각한지를 모르고 우리를 지켜주실 때 진정한 메시아답지 않습니까 라는 사고방식. 자기 자신을 지켜달라는 거에요.


마지막 인격이 나라는 인격 이것만큼은 좀 안 다치게 해주신다면 제가 진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라고 빼주겠습니다 할 정도로 그런 식으로 그런식의 사고방식이 제자들이에요. 그럼 제자들은 끝까지 제자들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거에요. 그들은 인간이 취할수 있는 마지노선을 보여주고 마지막 선. 그 마지막선을 주께서는 허락없이 그걸 무용, 그 마지막 선의 무용성을 이야기하죠. 아무짝도 소용없는. 그게.


마지막 내가 지키겠다는 그곳에 주께서 합류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여기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하는 주님께서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와버려요. 내가 기다리는 곳에 오지않고 내가 기다리지 않는곳에 가버린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그쪽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갈수가 없어요. 왜? 우리는 상처 없는 메시아를 원했기 때문에.


나로 인하여 다치지 않는 예수. 나와 메시아가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메시아. 그다지 메시아에게 상처주지 않는 ‘괜찮은 나’인 것을 동반해서 드러내주는 그런 메시아. 너 참 고생했다. 훌륭했다. 너 대단했어. 나 때문에 어려웠지? 라고 위로받을만한 짓거리를 한 것을 주께서 주로부터 인정해주는 그런 메시아를 원했던거에요.


27절 다시 보게 되면 도마가 이르되 27절 앞에 보게되면 25절 보면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제자들의 마지노선이라면 그 마지막 선에 마지막 그 지점에 누가 있는가? 바로 도마가 있습니다.


도마는 축구로 말하자면 최후의 골키퍼에요. 골을 지켜야될 마지막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과 인간의 순수성을 마지막까지 지켜줘야 될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도마에요. 도마. 저는 부엌에 가서 도마만 보면 늘 도마가 생각나요. 이제 도마에게 상처가 입혀질 차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상처가 도마의 상처가 되고 예수님의 상처가 베드로의 상처가 되고요. 예수님의 상처가 사도 요한의 상처가 되고 예수님의 상처가 오늘날 우리들의 상처가 됩니다. 왜? 우리 자신이 이제 문이니까. 천국가는 문 아니고 지옥가는 문.


다시 보겠습니다.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대로 둔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이걸 로마서 1장에서는 내어버려두는거에요. 답답할거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보고 실적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보고 실적을 요구하지 않아요. 몇 명 더 끌어 모아라 이런거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교인수가 8명 됩니까? 8명 돼요? 8명 거기에 에너지 확률상 2명될 때도 있고 12명될 때도 있는데 가장 분포가 높을 때 한 8명 된다고 봅시다. 그러면 노아입니다. 노아에요. 노아 몇 명 구원했습니까? 8명 구원했지요. 그럼 노아가 달랑 8명 딱 해놓고 천국가서 지금 벌 서고 있습니까? 내가 피를 흘렸건만 너는 달랑 8명?! 이 게을러 빠진 인간아 이러고서야 네가 천국을 오다니 손들고 있어 반성해! 이 게을러 빠진 이렇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렇습니까?


반대에요. 어떻게 하느냐. 너 9명 구원할까봐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어차피 8명 온다면 8명 타야지, 9명 오면 안되거든요. 그런데 같은 동네 동창이니 봐줘가지고 천국도 못가는데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이렇게 해가지고 안된다 이말이죠. 그래서 노아든 사도든 간에 그 모임 그 관계유지에 기준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가 눈 앞에 보인다.


십자가 복음, 십자가 피로써만 관계가 유지되야 되고 엮어져야 돼요. 부모도 마찬가지고 자식도 마찬가지고. 십자가를 거부하거든 그다지 성질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참 성격 좋은데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보시면 돼요. 윤리적 도덕적으로 자기에게 도덕적 처방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 이게 바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왜 윤리 도덕적으로 하면 이게 지옥가느냐 하면 윤리 도덕을 처방하게 되면 처방하는 대상이 나라는 대상이 계속해서 점차점차 더 건전하게 유지가 된다고 자기 역사를 써나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걸 제가 주일오후 설교에서 이걸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이게 관점의 상승이라고 이야기 했지요. ‘관점의 상승’.


관점을 늘 수정하면서도 뭔가 상승된다는 것. 독수리 날개처럼 올라간다고 스스로 그렇게 자부하는 거에요. 계속 자아 자신의 가치를 그 귀한 것을 포기를 못하는 겁니다. 자기라는 마지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거에요.


자, 지금까지 한 것 정리하고 10분 쉬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닫았을 때에 제자들은 그 문을 열고 다 들어왔기 때문에 문을 닫아놓으면 아무도 못온다. 그러면 제자들 바깥에는 뭐가 형성되어 있습니까? 형법. 무서운 형법 유대인의 무서운 형법이 있지요. 그런데 제자들이 거기서 두려움 속에 문은 닫았지만 닫은 안에서 바깥 두려움이 안쪽 두려움까지 여전히 계속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딱 들어오니까 갑자기 두려움이 뭐로 바뀌었습니까? 주님께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할 때 순간에 뭐가 없어져요? 평화가 주어진거에요. 그 말은 주님을 수입한다든지 주님을 이용해서 평화 얻어지는게 아니고 내가 안 깨지는 마지막 인격이 깨어질 때 그것도 주님에 의해서 깨어질 때 평화가 달리 평화가 뭡니까 그게 평화지요. 그게 평화인거에요.


왜냐하면 내가 내 주인공이 아니고 나는 주님이라는 일에 나는 직원으로서 이미 취직이 되어 있으니까. 복음 생산 업무에 포장이든지 맡아서 주님 공장직원으로 이미 한통속이 되어 버렸으니까 공장 부도나도 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10분 쉬는 수밖에 없지요.
 홍민희(IP:59.♡.122.247) 19-04-01 23:10 
강남-요한복음 20장 19절(인격 파괴)190319b-이근호 목사



제자들이 처해있는 환경은 바로 자연입니다. 그걸 자연이라고 해요. 인간은 자연에서 흙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자체를 못 벗어나요. 그런데 동양사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이 세상 이 대자연에 가을밤 같은 경우에는 위에서 유성비가 떨어진다고 했지요. 막 떨어지듯이 초월적인 사건들이 계속 떨어져요. 떨어진다고요.


그러면 이 자연에 있는 이 자연이 만든 신이 바알이라는 겁니다. 바알. 바알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고 이 자연 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요새 같으면 바알이 뭐냐 일종의 과학이죠 과학. 바알 종교 자체는 과학적이에요. 순환적입니다. 겨울 되면 죽었다가 봄 되면 부활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는 순환하는 것처럼 죽었다가 부활한다.


그래서 바알신은 소생의 종교고 그리고 풍요의 종교지요. 바알 종교가 한두가지 아닌데 여러 가지 수십가지 돼요. 보편적인 것이 뭐냐 하면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니냐 따라서 자연의 순환논리에 따라서 인간도 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산다. 그럼 죽은 사람은 어디 가느냐? 죽은 사람은 조상이고 따라서 다시 산다. 조상의 신, 조상을 섬기는 그 원리에요. 바알종교가. 조상 제사가 똑같은 겁니다.


조상과 현재 살아 있는 삶과 바알을 통해서 유대, 연대, 유대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이런 뜻이고 더 나가면 조상이 잘해주면 우리가 후세에 잘 풀린다 하는 그러한 종교. 보통 일반 종교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는 바알종교의 특징이 뭐냐? 정성이에요. 정성 성의. 뭔가 하는거 성의껏 하라. 정성을 다하여 열심을 다하여 성의껏 하라.


그런데 여호와의 종교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피에요 ‘피’. 피.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기존의 것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단절 속에서 새로움이 나오는거죠. 단절 속에서. 이쪽과 이쪽을 연결하는게 아니고 이쪽은 아예 없어지고 단절 속에서 없던 것에서 새롭게 나올 때에 과거 것이 현재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으로서 다시 제공된다. 제공되는 일의 연속. 이것이 바로 여호와에요.


그 한번 단절할 때마다 단절시키고 단절할 때마다 주어지는게 뭐냐 하면 바로 언약이라는 겁니다. ‘언약’.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을 상대로 하지 않아요. 약속은 하나님이 누구와 하느냐? 하나님이 하나님 자기 자신하고 해요. 이걸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와 약속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약속과 약속했다’.


약속은 인간에게서 나온게 아닙니다. 없는 약속 만들어놓고 그 약속을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 약속을 자기가 지켜나가는 식으로 새로움을 제공하는 거에요. 그러면 여기서 뭐가 되느냐? 기본적으로 인간은 철저하게 배제, 인간 배제. 이 인간배제가 뭐냐 하면 과거 배제. 과거에 네가 열심히 했느냐 묻지 않고 그냥 배제하는거에요. 그 대표적인 것이 뭐냐?


사무엘이 사울과 이야기하면서 분명히 약속한 시간에 제사 드리기로 해 놓고 약속한 시간 되도 안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사울 왕이 제사를 딱 드리니까 하는 말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내가 오지도 않았는데 왜 했느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거든요. 진작 이야기하지요. 진작 이야기 안 해요. 왜? 새로움이니까. 새로운 법이 추가된 거에요. 뭘 통해서? 위반을 통해서.


그래서 오늘 본문에 제자들이 위반을 해줘야 돼요. 벌벌 떨어야 돼요. 두려워 해야 돼요. 그래야 평화가 의미가 있다고요. 예상한 평화가 아닙니다. 깜놀이죠 ‘깜놀’. 깜짝 놀랬어요. 예수님이 하는 방식 있잖아요. 잃었다가 얻었다 할 때. 잃은 자는 뭐까지 잃어야 되느냐 하면은 잃었다가 얻을걸 또 잃어버려야 돼요.


여러분들이 혹시 나중에 연세 많으면 갈수록 더 심하겠지만 건망증 있어가지고 진짜 지갑을 잃어버릴 경우, 경험 있잖아요. 완전히. 했을 때 다시 나올걸? 이라고 희망을 했을 때 절대로 못 찾아요. 아.. 진짜 잃어버렸구나 할 때 나와요. 일말의 희망도 그건 연결고리가 되지 못합니다. 일말의 희망도.


그걸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는 뭐냐 하면 믿음 소망 사랑 전부 다 이거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네가 갖고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어지지 않아요. 믿음 소망 사랑은 전부 다 은사 다시 말해서 선물입니다. 미리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사랑만이 온전해요. 사랑만이 온전하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3장에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죠.


사랑 이미 주님이 제자들 보고 사랑한다고 할 때는 제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사랑이 아니에요. 그 사랑이 실망으로 끝난 후에 낙담으로 끝난 후에 사랑 개코 사랑이야 이런 식으로 나는 두 번 다시 사랑 믿으면 나는 인간도 아니다 라고 모든 것 사랑마저 접었을 때 그때 등장하는 사랑이에요. 여러분들이 또 잔머리 굴리지 마세요. 내 사랑을 접었을 때 그때 나타난다고 그것마저 접어야 돼요. 그것마저 접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절대로 주도권을 주님은 인간에게 넘겨준 적이 없습니다. 만약에 주도권이 우리에게 넘어가게 되면 이건 온전함이 아니고 흠집이 생겨버려요. 집에 살림하는 여자분들이 집에 유리창을 얼마나 자주 닦습니까? 유리창을.


제가 보기에는 한 2년에 한번? 2년에 한번인데 사돈올 때 한번, 그리고 며느리 올 때 한번 딸 올 때는 안 닦아요. 그런데 며느리가 겁나. 며느리 올 때 한번 닦고 사위 올 때 한번 닦는 척 하는지 모르겠다. 아들 딸 오게되면요 엄마가 시어머니가 힘들어요. 왜? 청소한다고. 화장실 청소해놓고. 엄마 사는 꼬라지하고 하면서 뒷담화 할까봐서 이 형벌이 무서워서 하거든요.


자, 유리창을 닦을 때 깨끗하면 기분 좋지요? 온전함이니까. 그런데 손때 묻으면 본인이 봐도 더럽잖아요. 그래서 사랑의 온전함이란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사랑의 온전함’이란 인간이 행함을 할수록 그 온전함이 깨져요. 인간이 설치면 설칠수록. 애들 아이스크림 먹고 애들 한 살 두 살 먹고 자기 손 더러운거 모르고 막 엄마한테 달려들고 화장품 만지고 하면 얼룩덜룩 온 천지가 얼룩덜룩 하잖아요.


그래서 옛날에 이런 말이 있어요. 밭일 할래? 애 키울래? 밭일 한다고 하지. 그만큼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어요. 힘들다고. 왜냐하면 이게 어떻게 통제가 안 되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하나님께 예수님께 잘 보인다고 설치잖아요. 그게 자꾸 온전함에 때를 더러운 손때를 묻히는 짓이에요 그게. 자꾸 온전함만 다 깎아 먹어요. 온전함만 다 더럽힌다고요.


그럼 주님께서 성령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수시로 낙담하고 자기 행함에 대해서 자기 성과에 대해서 수시로 낙담하고 절망케 해야죠. “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도 소용없구나.” 원래 소용없어요. 원래 소용없어요. 소용 있을 것 같으면 주께서 상처로 오지 않지요. 창자국, 못자국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오지요. 상처가 있다는 말은 창자국, 못자국이 있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어떤 인간도 예상 못한 방법으로 온다는 겁니다.


그거는 왜냐하면 탈자연화. 자연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 자연은 어디냐 하면 인물. 한 인물에 이게 집약되기 때문에 그래요. 한 인물. 모든 대자연은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해서 움직여지도록 주께서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고린도전서 1장 16절의 말씀처럼. 자연을 자연으로 보면 안돼요. 인물로 봐야 돼요. 주님의 손길로 봐야 된다고요.


그러면 미세먼지도 포함됩니까. 포함되지요. 주께서 지옥 만드는 미세먼지. 예수님에 의해서 탈자연화 된다는 말은 인간들이 그렇게 원했던 자연의 법칙, 자연의 원리 과학이죠. 그것이 바로 뭐가 없느냐 하면 주님의 상처 입은 메시아가 아니라 그냥 추상적인 형이상학적인 신을 유발하도록 그렇게 인간들은 과학에 그렇게 생각한거에요.


대표적인 것이 창조과학이죠. 과학으로 신을 증명하겠다는 거에요. 이거는 마귀짓입니다. 과학에서 무슨 십자가가 나옵니까. 자 피를 분석해보자. 피 분석하면 죄 용서가 나옵니까 그게? 나오게 되어 있어요? 천국과 주님의 나라와 이 세상의 연결고리가 과학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따지면 따질수록 점점 더 자신의 관점이 상승해가지고 자기 악마성만 더 단단하게 굳어질 뿐이에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하는 것의 목적은 뭐냐 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윤택하기 위해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과학을 하는거거든요. 그러면 옛날에는 왜 과학이 별로 없었는가? 그만한 인구에 그만한 과학도 법칙도 통했던거에요. 그런데 인구가 늘어나면서 다 먹여살려야 되잖아요.


식기세척기가 언제 만들어졌느냐 하면은 19세기 미국에서 1800몇년도에 미국에서 중간에 만들었어요. 만들면 뭐합니까 살 사람이 없는데. 식기를 왜 세척해줘요. 손발이 있는데 왜 세척해. 안 샀습니다. 도태된 거에요. 전기 에디슨이 발견했잖아요. 처음에 인기 없었어요. 좋은 촛불 있고 좋은 등불 있는데 가스등 있는데 그걸 왜 돈 비싼걸 왜 사는건데요. 필요 없어요.


그러나 많은 인구, 식구가 많다면 처음에는 우리 교회도 우리 교회 얘기해서 죄송합니다만 우리 교회도 식기세척기 없었어요. 처음에 한 10년 동안. 없다가 너무 식사하시는 그 담당자가 노령화되가면서 감당을 못해서 식기세척기를 산겁니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모든 인구를 다 먹여 살릴려니까 바로 유전자 조작 농산물까지 연구한거에요.


결국 이것은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 속을 못 벗어나고 자연 속에 못 벗어난다는 것은 운명, 자연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이에요. 같이 돌아가고 있는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흙이죠. 아담이니까. 주일날 이야기했잖아요. 인간은 이름대로 간다고요. 아담이 흙이죠. 흙이니까 인간은 어디에 속합니까? 그냥 자연에 속한거에요.


자연에 속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가지고 예수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서 이 자연이 뭐가 된다고 했습니까? 자연에서 뭐다? 탈자연화. 자연에서 벗어나는 못 벗어나는데 인간은 못 벗어나요. 인간은 육체의 욕망을 이길 수가 없어요. 아무리 고상한 것도 일단 먹고 마셔야 돼요.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한테 시험한 첫 번째 시험이 뭡니까? 우선 너도 기도하고 우선 먹고 하자. 메시아인건 인정하겠는데 우선 예수라도 뭐 짬뽕이든 짜장면이든 시켜먹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거에요.


뭘 먹고 일을 해야지 안 먹고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겁니다. 네가 우선 살아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지 않느냐 여기에 대해서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자연으로 사는게 아니고 뭐로 산다 했느냐 하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산다 했어요. 다시 말해서 이 자연은 뭐가 없다? ‘산다’는 말을 이 자연은 없다는 거에요.


자연은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보여주는 거에요. ‘죽음’을. 살겠다고 애쓰는게 뭐냐? 죽음의 형태 중에 하나에요. 네가 죽어있다는 표시가 뭐냐? 살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이미 죽은 시체되어 간다는 뜻이에요. 누구나 앞장서 가고 그 다음 뒤따라가고 그 뿐이에요. 일종의 수용소 같은 것이니까. 여러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을래요? 포로수용소에서 거기서 춤이나 추고 식빵에다 미군 크래커나 먹고 있을래요? 아니면 수용소 나올래요? 어느 쪽입니까?


그 수용소는 현대 재벌있지요. 삼성 그룹도 있어요. 수용소에는. 한진그룹도 있고 유명한 한화그룹도 있고. 거기는 좋은 대학도 많이 있어요. SKY 서울대학도 있고 좋은 대학도 많아요. 그러나 천국은 아니에요. 그건 지옥이에요. 지옥의 분가라고 할 수 있죠. ‘지옥의 분가’. 어디가도 다 지옥생활해요.


사람들이 그 남편이 놀다가 오랜만에 직장생활 한다고 하면 아내는 그렇게 그게 흐뭇하고 결혼한 보람을 느껴요. 그래서 나중에 저녁때 한 7시쯤 8시쯤 되어 가지고 남편이 피곤한 모습을 보게 되면 아내는 생전 안하는 앞치마를 해가지고 앞에서 깔끔 떨면서 이렇게 해가지고 여보 된장찌개 맛있게 해놨어요. 어서오세요. 수고하셨어요 이렇게 하거든요. 아내는 지금 소꿉놀이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바깥은 남편은 뭐냐 하면 이제는 신입이 되어 가지고 신입이 되가지고 하루 10시간 내내 잔소리 들었어요. 그따위로 하려면 때려쳐! 세상에 나사도 거꾸로 해가지고 정비사 따서 누구 사고 낼 일 있어! 인간극장 나오는 이야기에요 지금. 지금 남편은 나이 40-50 가까이 되가지고 47쯤 되가지고 꾸지람 듣고 이게 지옥인지 내가 더러워서 내가 돈만 있으면 이 정비소 다니나. 속으로 몇 번 참았지만 하지만 뭔가 푼돈이라도 벌어야 되니까 “예예” 하면서.


직장 가는게 지옥이에요. 직장 가는게. 오죽했으면 내가 이거 때려치워버린다. 백종원한테 배워가지고 골목식당한다. 골목식당은 아무나 합니까? 국민불효자 되야 돼지 이게. 그게 아무나 되는줄 알아요. 더러워서 내가 직장 못 다닌다. 다닌지 얼마 되지도 않아가지고 그만두려고 하는데 안된다 나 임신했다고 아 그래 10개월만 참자. 지나서 도저히 못 참겠다 사표다. 아 좀 참아라.


그런데 그게 여자는 돈만 벌어다 주면 공주에요. 공주에요. 라이언 일병구하기. 공주 구하기. 이 세상에 공주가 없습니다. 전부 다 바깥에 지옥에 의해서 내가 약간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 것 뿐이지 바깥에 지옥. 남편은 월요일만 되면 막 찡그리면서 나가는 거에요. 또 가야되나. 그러면 당신 뭐 대책 있나? 내 친구 이번에 주식해가지고 갑자기 100배 벌었대. 또 쓸데없이 바람 들어가지고 주식. 부동산 어디 하나 해놓으면 된다는 거. 여보 대출해서 부동산 해놔라. 대박났어. 대박나가지고 어디 우리만 아는 비밀인데 자기만 아는 비밀은 전세계 다 아는 비밀.


그것도 아내가 그거 맞는가 싶어서 허허 하다가 보증서가지고 다 날리고. 대출 갚는다고 여자가 밖에 나가서 지옥생활하고 “여보 걱정하지마 남편이 있잖아. 내가 살림 잘 할께.” 살림 잘 하겠다. 설거지도 못하면서. 그러니 이 세상 자체가 모든게 우리 남편 돈 잘 번다고 해도 돈 잘버는 그 남편 하루 생활 캠코더로 한번 찍어보세요. 얼마나 서러움 서러움 그런 서러움이 없습니다.


오늘 제목이 뭐라고 했습니까? ‘인격파괴’에요. 인간성 그거 찾으면 안돼요. 그야말로 미생이에요. 미생에 유명한 대사가 있어요. 이 회사는 전쟁이다. 하지만 바깥에 나가면 지옥이다. 전쟁할래? 지옥갈래? 그야말로 인간끼리 경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인간이 만든 메시아, 다시 말해서 이런 고통 인간의 지옥의 고통에 푹 김치 절이듯이 젓갈 절이듯이 푹 젖게 해요.


지옥 체험에 젖어서 그들로 하여금 바로 가짜 천국, 가짜 메시아, 가짜 하나님을 유발하게 만들지요. 가짜 하나님을. 뭐냐 하면 내 고통만 어떻게 면해준다면 뭐 부처라도 예수라도 뭐라도 내가 믿겠습니다라는 탄식이 나오게끔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고 있어요. 이 세상이란게. 진짜 못 죽어서 한이에요. 정말 자살할 수도 없고 사는게 죽는 것보다 더 고역같은 세상. 이게 이 세상 아닙니까.


가정에 그러다가 누구하나 아파보세요. 온 집안이 갑자기 행복하고 아빠 힘내세요 하다가 온 집안이 전부 지옥 되죠. 누구하나 아프면. 그 정도로 우리는 그만큼 내 영역은 취약해요. 내 것이라는게 그만큼 취약합니다. 그러면 소망은 뭐냐 하면 버티기. 소망은. 내 것이지만 뭔가 유지되기를 이 상태라도 제발 별 탈 없기를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다니는거에요. 아부하는 식으로.


신이시여 하나님이여 뭐 예수라도 좋고 누구라도 좋으니까 내 것만 안 건드리시면 제가 십일조까지 바치겠습니다 라는 거창한 딜을 돈 없으면 제가 선교해서라도 내가 사람들 꼬시는 것 까지는 잘하니까 그것가지고 헌금 없는 것을 퉁 치는 쪽으로 퉁 칩시다라는 쪽으로 자기만의 자기를 살리기 위한 자기를 위한 그런 생활을 교회와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자기로부터 못 벗어나요. 자기라는 흙에서 못 벗어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이걸 탈자연화된 자연을 자연이 지향하는 바가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거든요. 그 자연이 지향하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자연이 예수님을 예수님답게 할 때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일이 있어요. 자연은 예수님을 어떻게 위대하게 만들었습니까? 처참하게 만들었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처참하게 만들었지요. 이 점을 놓치면 안돼요.


잘 들어보세요. 자연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어떻게 증거하느냐 하면 예수님을 비참하게 만드는 쪽으로 자연이 증거했다라고 한다면 결국 자연은 뭡니까?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말처럼 자연은 지금 썩어가고 있는 거에요 이게. 예수님이 자연을 닮은 거에요. 자연 자체가 후패하고 썩어가고 냄새나고 파괴되고 무너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죄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의 조치가 그거에요. 무서워요. 자연은 아들이고 죄 지은 것은 용납 없다. 용서가 없어요. 따라서 인간들도 그리스도가 죽는 마당에 자기는 왜 행복해야 됩니까? 말이 안되지요. 저기 의존교회 근처가니까 신월동에 교회 이름이 무슨교회라고 했던가요? 행복나눔교회. 제가 아는 대구에 칠곡에 교회 이름이 행복한 교회에요. 우리나라에 행복한 교회가 한 100군데 될걸요? 그렇죠? 많지요? 행복한 교회.


뭘 주겠다는 거에요 도대체? 뭘 주겠다는 거에요? 행복 안하면 그 헌금 돌려드립니다. 그런 뜻인가요? 행복 안하면. 행복하겠다는 행복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주님이 행복한게 아니잖아요. 누가 행복하겠다? 교회 다니는 내가 행복해주지 아니하면 나는 이 교회 안다니겠다는 그런 각오로 다녀라 이 말이거든요.


주님 살아계십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 행복해집니다. 내가 보장할께요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지금 뭘 빼놓느냐 하면 자연에서 자기만이 초월적 존재로 행세하는 거에요. 마치 자기가 자연의 혜택을 원리를 안 받는 것처럼. 자연은 후패해도 자기는 후패 안하는 것처럼. 짐승들은 생존 먹잇감 때문에 울부짖어도 자기는 인간이기 때문에 먹는 것 입는 것 초월한 것처럼 착각들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자연을 초월한걸 가지고 어려운 말로 뭐라고 하느냐 이걸 가지고 형이상학이라고 합니다. ‘형이상학’. 철학에서. 관념적인 거에요. 관념적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이게 뭐냐? 살기 위한 명분 챙기기. 명분 챙기기, 형이상학. 옛날 선비들 했던 것에 못 먹어도 나는 선비의 도를 지킨다. 조상님의 대대로 명을 받아서.


아까 이명직 목사님하고 식사를 하고 오는데 이명직 목사님이 이 근처 “목사님 저기 보세요.” 저기 제가 다닌 교회라고, 교회 이름이 묘동교회 있어요. 아주 부자들 다니고 학력들이 높은 그런 교회. 제가 그 교회 다녔다고. 하는 거에요. 보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거 보지 말고 파란불이나 보라고 했어요. 이게(묘동교회) 바로 형이상학이에요. 이게(파란불) 뭐냐 실용적이에요.


인간이 실용적으로 살면 짐승됩니다. 수준 낮은 사람이 되요. 교양 없는 사람이 되요. 그럼 교회에서 뭐냐? 명분을 찾는거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형이상학으로 계속 가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예수님 가신 길로 가야 되요. 뭐냐 하면은 썩어 문드러져야 되요 이게.


그렇게 보시면 여러분들이 뭘 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왜 문둥병자 왜 병든 자를 고쳐줬는가를 여러분 이해되실 겁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본 모습이기 때문에 그래요. 귀신들린 자, 병든 자, 마치 귀신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을 내세워서 세리와 창기를 내세우는 이유는 그 이 시대가 이 시대가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 시대인가를 대변해줄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자연의 인물과 그들의 인물을 결합시키는게 유일한 결합 통로가 그거에요. 저 귀신들린 자고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유일한 결합 통로에요. 그리스도를 만나는 본드는 그것밖에 없어요. 다른 것은 안돼요.


다시 이야기 해보겠어요. 역사 지평에 뭐가 온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건이 떨어진다고 했지요. 아까 바알 이야기 했잖아요. 그런데 이 바알 이야기 했는데 이 초월적인 사건이 떨어지는데 여러분들이 성경을 해석하실 때 하나의 좋은 아이디어가 될지 싶어서 마태복음 족보 보셔도 되고 외우실 분은 외우셔도 되고요.


마태복음 1장에 족보가 쭉 나오잖아요. 누굴 낳고 누굴 낳고 이렇게 낳다 나오지요? 역사의 지평이에요. 역사의 지평인데 여기에 뭐냐? 3절에 유다는 다말에게서 나오지요? 그 다음에 라합에게서 5절에 나오지요? 그 다음에 5절에 룻에게서 나오지요. 6절에 보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에게서’ 나오지요. 그리고 여기에 마지막에 보면 16절에 보면 마리아에게서 나오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역사의 초월이 주어지는 거에요. 그리고난 뒤에 마리아가 성령이 임해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잖아요. 그러면 성경을 볼 때 어떻게 보느냐 역사의 지평은 지평대로 두고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사건, 역사가 예상 못한 새로운 사건이 우드득 우박 떨어지듯이 계속 쏘아대는 거에요. 뭐하라고? 이 세상을 파괴시키는 거고 이 세상이 이 세상은 이 세상 살고 있는 본인들에 이 세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는 거에요.


그 똑똑한 박사들 아무것도 몰라요. 그저 자연을 이용할 생각만 해요. 자연을. 그리고 살아있다고 우기고 사실은 죽어가고 있으면서 살아있다고 우기고 계속 살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아까 화학 주기율표 약간 언급하면서 그 화학원리를 왜 하느냐? 화학원리를 알아야 그 다음에 그 약품들을 구조를 알아야 잘라내고 잘라내가지고 적당한 감기약도 만들고 뭐 이렇게 인공지능도 만들고 다 한다고요.


왜 그걸 하느냐 이 말이죠. 안 죽을려고 하는거에요. 그게 얼마나 무지의 소지인지 안 죽는다는건 없어요. 인간은 안 죽는다는게 성립이 안돼요. 이거는 공부를 하나 안 하나 살려고 한 사람에게 그럼 당신의 5대 할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죽었지요. 보세요 죽었잖아요. 돌아가셨잖아요 이미. 이순신 장군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낳고 낳고 해봐야 뒤에 다 죽음이 삼켜요. 낳아봤자 삼키고 낳아봤자 삼키는 거에요. 창세기 5장도 마찬가지고 아담이 누굴 낳고 셋을 낳고 해도 계속 죽는거에요. 하지만 에녹 보세요. 안 죽었잖아요. 안 죽었다 이 말이죠. 그 말은 우리가 죽어도 안 죽는 수가 있구나 뜻이 아니고 이 세상은 나에 대한 세상이, 나에 대한 역사가 아니고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님에 관해서 성경도 마찬가지고 세상 돌아가는 모든 자연도 이 세상도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있는거에요. 이걸 과학자들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 증거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이 이야기하길 예수님의 존재를 증거하기 위해서. 아니에요 존재가 아니고 상처 옆구리와 손에 상처를 위해서 십자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에요.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고. 왜냐하면 사건이니까. 멀쩡한 예수님 잘 생긴 얼굴보고 돌아다니는게 아니고 예수님이 사건 있잖아요. 그 사건으로 집약하는 거에요. 모든 대자연이.


그래서 예수님은 처참하게 망가지는 겁니다. 그게 빌립보서 2장에 나오지요. 모든 사람이 가지 못한 길. 바로 죽기까지 복종한 것이 곧 뭐다? 십자가 죽으심이라고 했잖아요. 십자가 죽으심은 유일한 사건이에요. 이거는 어떠한 인간도 거기에 가담될 수가 없어요. 청학동 양반 백날 해봐야 십자가 사건에 가담될 수 없습니다. 어떤 누가 도 닦아도 십자가 질만큼 도를 닦을 위인이 없어요. 도 닦아 봐야 도 닦는 자기 자신은 점점 더 괜찮은 존재가 되고 말아요.


아까 그랬잖아요. 행함은 할수록 그 유리창이 손때 묻는다고요. 우리가 때 묻혀놓으면 성령께서 닦아내시고 때 묻혀놓으면 닦아내시고 나도 뭐했습니다 하면 닦아 내시고 너는 아무것도 한것 없어. 했습니다. 닦아내고 너 아무것도 없잖아. 온전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냥 우리를 그냥 사랑하신거에요.


요한복음에 20장 올 때까지 13장부터 내내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는 뭡니까? 너희가 날 사랑한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버리지 않고 다시 올게. 떠나지 않을게. 내가 기어이 사랑할게. 계명은 다 없어지고 한가지 계명만 남았다. 뭐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계명.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계명. 이 계명은 우리가 추가될게 없어요. 우리의 행함으로 보탤게 없어요. 보태면 안돼요.


사랑한다는 말은 나 가는 길로 기어이 가게 해줄게. 이런 뜻이거든요. 그걸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이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처참하게 돌아가셨지요. 내가 너로 하여금 기어이 처참하게 해줄게. 나 참 좋은 메시야지? 그렇지? 이렇게 묻는거에요. 이 처참한게 우리 쪽에서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마다하고 싶어서 제가 이걸 완화한다고 뭐냐 하면 이걸 제목으로 ‘인격파괴’.


이거는 인간도 아니에요. 나는 인간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이거 마지노선 이것만큼은 내가 인간이라고 쳐주세요 라고 약간의 적금 넣은게 있어요. 어디 뭐 비트코인이라든지 이렇게 몰래 비자금 마지막 나는 여전히 괜찮은 존재야 라고 숨겨놓은 비자금같은거 있어요? 그거 작살나야 됩니다. 성령을 통해서.


주님께서 상처와 못자국은 아이고 고생했구나 여기에 감동받는 것이 아니고 찾아가는 거에요. 이 주님이 받은 상처와 나의 인과성, 나의 관련성이 있는 그 지점을 형성시키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 상처는 뭐가 흘러나온 상처지요? ‘피’. 피가 흘러나왔다는 말은 나의 진짜 나의 나 다움은 주께서 피를 흘려야만 사죄가 될 그것이 나의 본질에 속한다는 그 본질과 이 상처를 연결시켜주기 위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겁니다. 피만 드러낼 때까지 성령은 작용해요. 성령께서는 우리 십자가의 피를 드러내는 겁니다.


주님의 그 다시 한번 보세요. 주님의 상처에서 뭐가 나왔다고 했습니까? 피가 나왔지요. 자, 여기서부터 이제 약간의 복잡한 것 어렵긴 하겠습니다. 여기서 구약 레위기가 새롭게 이해되어야 되요. 뭐냐 하면은 그 레위기의 법칙이 뭐냐 하면 피와 섞여서는 안돼요 인간은. 왜냐하면 제사에서 사용된 피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허용되는 피이기 때문에 거룩한 피에 속해요. 그래서 제사장 외에는 그 피를 흘릴 수도 없고 그 피를 다뤄서도 안돼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잡은 피를 내야 될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성소에서 잡아야 돼요. 제사장이 잡아줘야 돼요. 잡아야 돼요. 이 말은 절대로 인간의 피와 희생되는 피는 섞여서는 안된다. 왜? 한쪽은 왜냐하면 인간의 피를 인간의 생명이라면 어린양의 그 제물의 피는 그건 제물의 피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대한 생명이기 때문에 기존의 생명과 차별화 되어야 되기 때문에 피를 섞어서는 안되는 거에요.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0절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6장 53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뭐가 없다?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다. 피를 먹고 마셔야 되잖아요. 피를. 피를 섞어야 된다는 거에요 이거는. 자칫하면 통일교 되요 통일교. 통일교 피 가름은 결혼을 통해서 되요. 자기가 주례해야 된다고. 그것 가지고 히트 쳤잖아요.


기존의 혈육의 피는 거룩한 피가 따로 있어 그 피를 계속해서 결혼을 통해서 유전자가 전달하게 되면 다 천당 간다 이게 문선명의 주장이거든요. 여러분 들어보면 그 소리를 믿는 인간이 이상하지요? 여러분 신천지 이야기 믿는 사람이 이상해요. 안상홍의 이야기 하나님의 어머니 이야기 믿는게 좀 이상하죠.


왜 그걸 믿느냐 하면 그 기분은 뭐냐 하면은 결국 그쪽에서 하는 것은 당신은 행복할 수 있고 더 넉넉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래요. 다시 말해서 이거는 기존의 교회에서 수단 방법과 마찬가지인데 지금 당신이 불행한 것은 그 원인이 당신에게 있다는 거에요. 조금만 처방받아서 고치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행복을 건강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방법이 신천지 방법이든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방법이든 방법은 아무 문제 아니에요. 이미 찾는 고객 자체의 마음가짐이 나를 속여주세요 라고 나를 겁탈하세요 하는 식으로 온다니까요. 그냥 내 소원대로만 해준다면 뭐든 돈이든 몸이든 온갖 다 바치겠다는 거에요. 내 소원대로 해준다면. 네 소원이 무엇인고? 부채도사. 죽어서 천당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받겠다. 이게 언제적 개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부채도사. 부채도사 이 바알종교.


어쨌든 살아남는게 아니냐. 이런 본성을 어느 누가 거기서 자유로울 수가 있어요? 아이고 우리교회는 복음 없어도 교회 다닙니다. 왜 다닙니까 그거! 혹시 천벌받으면 안되니까. 천벌을 받으라고 성령을 주신거에요. 천벌을 받은 대표자가 누군지 알아요? 주님 아닙니까? 그래서 상처났잖아요. 옆구리에. 내가 천벌받았다 이봐라. 천벌받았다. 너 나 따라 오너라. 이거거든요.


성령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걸 감사할 수가 있겠어요. 누가 천벌을 그리워하겠습니까? 누가 성령을 받지 않고 미친 사람 아니면 누가. 천벌이고 만벌이고 좀 떨어지면 좋겠다. 이게 성령 안 받은 사람이면 어떻게 이게 여러분 감당하겠어요? 이게? 여러분 이걸 감당하시겠어요? 네? 감당하시겠어요? 김주영은 아니지만. 감당하시겠어요?


반대로 모든 삼위일체 예수, 교회 모두 반대로 하신거에요 반대로. 목사 욕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 자신을 욕하세요. 우리 자신을. 메시야는 이미 왔다니까요. 기다리지마 이미 왔는데. 우리가 기피하는 모습으로 왔지요. 내가 원치 않는 길로 가겠다는 내 쪽에서 얼굴을 돌리죠. 내 쪽에서. 망할라고 교회 다닌다. 미친 그런 미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잘되려고 하나님 살아계시니까 사랑 많으시고 전능하시니까 우리의 성과보고 아까 이야기 했지요. 바알종교의 특징이 뭡니까? 성의와 열심과 열성이잖아요. 조직신학 모르고 성경 몰라도 그저 주여! 하고 빌면 되겠지. 빌면. 열심히 매달리면 되겠지. 새벽기도 이거 다 두드리면 되겠지. 자기 손바닥만 아프지 뭐. 두드리고 매달리고 붙들고 소나무 뽑고 기도원 근처 나무 다 뽑아놓고 나무 또 뽑아야 된다고. 나무 뽑고. 자기가 나무 뽑고 자기가 열 내놓고 갑자기 땀나니까 은혜 받았다고 우기고.


그러고 집에 와서 또 부부싸움 한바탕하고 은혜받은거 다 날리고 다 쏟고 다음 달 은혜 받았다고 또 기어 들어오고 자기가 뭐 충전기 입니까? 부채표 네 개 세 개 스마트 폰 충전하는거같애. 왜 그런 짓 한거에요? 계속해서 악마가 너는 너 자신을 놓으면 안돼. 악마가 계속해서 우리를 격려해줬잖아요.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서면 된다고요.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이니까 참으면 네가 천국 간다고요. 이미 왔는데.


내가 가는게 아니고 내가 예수 안에서 우리 자신이 이미 천국의 직원인데요. 그리스도의 종이고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됐잖아요 이미. 아들이 아들 다음에 상무 될라고? 뭐 진급할거 남아있어요? 아들이면 다 온거지 아들이면 다 왔잖아요. 다 왔는데 뭐 새삼스럽게 머슴 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아들인데. 아들다운 대우해주겠다는 거에요. 네가 손 안 대도 온전해요.


사랑은 온전한 겁니다. 믿음 소망 사랑 온전해요. 그것은 우리의 행함에서 나온게 아니고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온전한 한 인물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을 주신 겁니다. 예수님이. 성령 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성령 달라고 해서 성령 받으면 이건 가짜 성령이에요. 다 주께서 그냥 성령을 주신 겁니다.


성령을 주셔놓고 뭐냐 하면 내가 이 세상에 성령으로 오게 되면 성령이 오시게 되면 성령은 주님의 시련과 아픔을 내용으로 담고 있거든요. 성령 안에. 그래서 성령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고통하는 영이라고 해요. ‘고통하는 영’ 또는 다른 말로 하면 탄식하는 영. 로마서 8장에 나오지요? 우리 보기에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 아닌데 성령은 되게 심각하게 보시는거에요.


로마서 8장에 보게 되면 우리는 빌 바를 알지 못하는데 자녀라는 이유 때문에 마음을 같이 하시는 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친히 성령이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니” 8장에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여기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그 다음에 뭡니까?


“말할 수 없는 탄식”이죠. 이걸 표현하면 “휴우.....아이고 인간아....인간아....네가 온전함을 또 왜 믿지 못하느냐”. 또 첨가제를 뿌리고 미원 막 타고 미원 알아요? 미원 모르죠? 인간 조미료 감미료를 왜 타느냐? 이 말이죠. 때만 끼는데 왜 타? 너는 못난 사람이라고 했잖아. 왜? 처음부터 못났었었어요. 게을러서 못난게 아니고 애초부터 못났는데 그동안 위장술에 능해가지고 악마가 주는 위장술로 해가지고 수고하고 짐을 너무 짊어지고 있었던 거에요.


오늘 서울 최고 기온이 17도라고 하는데 여기에 만약에 외투에다가 옷 잠바 오바 있는거 다 덧입어 보세요. 그게 얼마나 무겁겠어요. 이제는 하나 벗어도 괜찮잖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라 이 말이죠. ‘나’라는 짐. 내가 의로워야 한다는 짐. 나는 천국가야 될 짐. 천국가고 싶어서 간 사람 천국에 한명도 없어요. 그쪽에는. 다 지옥 가 있어요. 천국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제가 주일 낮에 초반에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예수 믿게 된다고요. 그래서 세상에 누가 건드려 줘야 “주님이십니까?” 하지 제가 알아서 이러면 100% 가짜입니다. 주께서 건드려 주니까. 주님 저를 왜 건드리십니까?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는 거에요.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여기는 못자국과 창자국이 우리를 건드려 주는거에요.


예수님께서 도마야 내 얼굴 한번 봐라. 그 인물 아직 짱짱하게 살아있잖아요. 인물 봐. 잘 봐 나 잘 봐. 이게 아니고 창자국 못자국을 보여준거에요. 나머지 예수님의 이건 부록입니다. 진짜 예수님의 창자국 못자국에 응축된 거에요. 그만큼 너는 내 쪽에 올 수 없었다. 내가 너를 불러줬기 때문에 성령을 줬기 때문에 너는 천국에 속했다. 이 방식 외에는 다른 천국 가는 방식은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나는 인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제자들을 통해서 분명히 하는 겁니다.


천주교에서는 자기를 베드로의 제자라고 우겨요. 천주교에서는. 교회의 반석은요 교회의 기초는 이게 베드로지요. 이건 아니에요. 시몬은 아닙니다. 주께서 이름을 시몬을 뭐로 바꿨습니까? 베드로로 바꿨지요? 그럼 이 이름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성령의 이름이죠. 성령의 이름이에요. 주님의 이름이에요. 베드로를 통해서 시몬을 통해서 베드로같은 역할을 맡기는  거에요.


그러면 모든 교회는 뭐냐 하면 바로 이렇게 주께서 역할을 맡긴 자의 부록이에요. 공통체란 말이죠. 천주교가 이걸 근거로 해가지고 모든 사제들에게 삐딱하게 앉아가지고 뭐 고민했습니까? 제일 먼저 묻는게 뭐냐 하면은 고해성사 한지 얼마 되었습니까? 이거 형법이 막 주어져요. 그만큼 네가 이 땅에서 고민거리가 있다는 것은 주께서 형법을 내려가지고 내가 너한테 벌 줬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이제는 내가 시키는대로 처방전을 받고 하루에 식후 30분후에 먹으라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신부가 처방을 남겨요.


주기도문 10번 외우고 뭐 이런 처방전을 남긴다고요. 그래서 성질 못 이겨가지고 열혈사제가 되가지고 깡패하고 싸우고 그런 잘생긴 사제도 있긴 있지만 가끔 있지만. 사람이 그걸 신부를 찾아온다는 그 사고방식 자체가 이게 마귀적이에요. 얼마나 성령을 안 받았으면 믿을 구석은 인간밖에 믿을게 없다는 거에요. 사제를 뭐라고 하느냐 PAPA 자기 아버지라고. 자기 아버지라는 거에요.


근거 대라고 하면 일만 스승은 있어도 아비는 너밖에 없다는 사도 바울의 본문을 대고 하는데 아비의 심정이라는 뜻이죠 아비의 심정. 그런 아버지 같으면요 생활비는 왜 안대죠? 그런 형이상학 좀 이야기하지 말고 실용적으로 생활비도 대주고 아비라면 왜 아버지라고 안하겠어요. 정비소에서 욕 얻어먹지 말고 집에서 놀면서 아버지가 다 벌어다 주면 될 거 아니에요.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바로 그겁니다. 사랑이 이 사랑에 흠집 내지마라. 만약 흠집 내면 성령이 와가지고 또 다시 털어내는 거에요. 너는 너 자체가 온전해. 아들이면 온전한거야. 자꾸 네가 너보고 나무라지 말고 다그치지 말고 조급하게 굴지 말란 말이죠. 하나님의 일은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 대자연이 예수님의 뜻이 아니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있어요.


모든 일어나는 일은 전부 다 주께서 조성한 겁니다. 지난 낮설교에 제가 엄청 은혜 받은 이야기했지요. 내가 파리를 잡은게 아니고 파리가 힘이 약해 나한테 잡혀준거에요. 내가 이만큼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엄청난 업무를 맡았다는 사실을 전에는 몰랐습니다. 그저 구원받는데 급급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이미 그리스도의 하는 일의 연속성으로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천사가 부러워하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일에 넣어주니 감사합니다. 이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인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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