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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5 00:41:15 조회 : 1873         
짐승의 내부 140313 이름 : 이근호(IP:119.18.9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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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례(IP:203.♡.42.222) 14-03-24 07:51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a-이 근호 목사

다니엘 11장은 45절까지 길어요. 내용이 상당히 무미건조합니다.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것들을 이렇게 보여주는 건데요. 녹취하기는 쉬울 거예요. 죽 읽어가면서 그 왕 이야기만 딱딱 하면 되니까 성경 그대로 옮겨놓고.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메대 사람이라는 것은 바사, 메대 요렇게 연합돼 있거든요. 바사니까 흔히 아는 나라가 페르시아. 페르시아 하면 현재 어디냐 하면 이란을 옛날에는 페르시아라. 우리나라 노래에도 페르시아의 왕자인가… 그런 노래 가사가 있죠. 페르시아 하면  이란, 양탄자 타고 다닌다는 그 나라.

그 나라, 원년도 계시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2절에 보면 바사, 페르시아에 다리오 말고 또 세 왕인데 고레스, 또 다리오스 2세, 크세르크세스 왕, 이렇게 세 왕 그 다음에 네 번째는 다리오스 3세가 네 번째 왕인데, 2절에 네 번째는 강하고 부요하다 하는 다리오스 3세고요. “격동시켜서 헬라 국을 칠 것이며.” 헬라국은 어디냐 하면 헬라 국이 이 당시에 BC 330년경쯤 되는데 지도를 잠간 그릴게요.

지중해가 있고 여기가 이집트 시나이 반도, 진천의 중앙교회가 테러 당한 데가 여기입니다. 이쪽에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있고 터키 다음에 건너가면 그리스, 그리스 북쪽이 바로 헬라 국입니다. 거기(헬라 국) 빌립 2세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헬라 국이고 그 아들이 알렉산더란 유명한 사람 이예요. 20살 때 나라를 잡았고 전쟁했는데, 먼저 다리우스 3세가 헬라 국을 치게 됐는데 거기에 대해 나오는 영화가 ‘300’이란 영화가 있죠.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이게 누구냐 하면 376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납니다.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이 사람이 나이 서른 세 살 때 죽어요. 전쟁에 다 승리해 놓고 알렉산더가 온 제국을 다 차지해 놓고 독살당하고 나라가 네 개로 쪼개면서 그게 4절 이야기에요. 5절에 보면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갑자기 남방이 왜 나오느냐? 알렉산더 제국이 헬라인데 전에 페르시아 지역하고 전쟁해서 이겨서 땅을 다 점령하겠죠. 그러니까 전체가 원래는 헬라, 페르시아 따로 있는데 그 전체가 헬라 나라가 된 겁니다.

그런데 다니엘에서 이런 역사적 상황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이것이 짐승이라는 거예요. 다니엘에서 첫째 짐승, 둘째 짐승, 셋째 짐승, 넷째 짐승, 그렇게 돼 있습니다. 첫째 짐승은 바벨론, 둘째 짐승은 메대 바사, 세 번째 짐승은 방금 이야기한 바사를 쳤던 헬라, 네 번째 짐승이 마지막 짐승 이예요. 그 이후에는 짐승이 없습니다. 네 번째 짐승이 인류 역사 끝날 때까지 계속 죽 가는 나라, 로마 제국이 네 번째 짐승입니다.

나라를 짐승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좋게 보는 게 아니죠. 사람들은 행동을 엉망으로 하면 뭐라 합니까? ‘이 짐승만도 못한 존재다.’ 그러면 짐승이 아닌 나라가 뭡니까? 여기서 짐승이 아닌 나라, 현재 이스라엘이 있어요? 없어요? 이스라엘은 사라졌어요. 어디 소속돼 있느냐 하면 바벨론 첫째 짐승 안에 포함이 돼 있고 그런데 첫째 짐승 날라 가고 두 번째 짐승 되면 두 번째 짐승 안에 이스라엘이 포함돼 있고, 세 번째 짐승 헬라가 되면 헬라 네 번째 짐승 안에 또 이스라엘이 포함돼 있고, 네 번째 로마가 되면 그 짐승 안에 포함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 바벨론, 바사, 그 다음에 헬라, 로마, 이 전체가 짐승이란 말은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데 그것과 비교했을 때 짐승이란 말입니까? 그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들어있죠. 그때는 이스라엘이라고 말해도 되는데요. 이스라엘이 멸망했기 때문에 이 이스라엘과 구분하기 위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이스라엘! 그냥 이스라엘 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이스라엘!

그러나 약속하신 이스라엘이 들어있다는 건 알지만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구체화 돼야 되는데, 영토도 없어요. 주권도 없어요. 백성도 누가 누군지 몰라요. 모호해요. 그러면 이 나라는 세상 적으로 봐서 있는 나라입니까? 없는 나라입니까? 나라 없습니다. 나라가 없다는 말은 뭐만 있다는 말입니까? 그냥 짐승만 있는 거예요. 전부 다 이 세상은 곧 짐승이고 거기에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짐승에 복종해서 사는 것이고 짐승에 굴복해서 사는 짐승의 일부라고 보면 됩니다. 모든 인간이. 누구 보시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니 짐승의 일부기 때문에 거기에 속한 백성은 짐승의 힘을 이길 수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아까 제가 뭐라 했습니까? 그 안에 포함되는 걸 뭐라 했죠? 언약 공동체, 또는 참 이스라엘, 약속의 이스라엘이라 했죠.

이걸 신약 성경에서는 뭐라 하느냐 하면 이걸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럼 물어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짐승 안에 있죠. 하늘나라가 짐승 안에 있는 거예요.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고 바로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짐승 같은 너희 안에 하늘나라가 있다 이 말이죠. 주께서 만드실 거예요. 짐승 안에서. 완전히 만들어 내십니다. 뭐로 만들어 내시느냐 하면 하늘나라 주인 되시는 분이 이미 다녀왔고, 보통 어디 다녀갈 때는 견적 보잖아요. 견적 봐서 설교 도면대로 뭔가 여기서 만들 거예요.

간수라 합니까? 콩 갈아서 두부 만들 때 간수를 넣게 되면 조금 있으면 뭔가 엉기잖아요. 분명히 처음 넣을 때는 엉김이 없었고 그냥 맹물인데 물이면 물, 액체인데 간수를 넣으면 뭔가 엉기죠. 천국은 이렇게 분명히 없는데서 뭔가 생기는 거예요. 생길 때 그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뭐냐 언약, 새 언약입니다. 새 언약, 십자가죠.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이렇게 점점 더 천국이 가시화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짐승 나라는 짐승 나라 값을 제대로 해줘야 돼요. 그 짐승 나라가 해야 될 건 뭐냐 하면 이겁니다. 이 세상 나라 같은 나라가 천국이라고 주장들을 해줘야 돼요. 이 세상과 전혀 다른 나라가 아니고 이 세상보다 더 행복하고 잘 사는 나라가 아마 천국일 거야, 라는 이런 거짓말을 짐승 나라에서 계속해서 해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다니엘 11장의 내용이 지루하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리지만 11장 내용은 전부 다 짐승 나라입니다. 짐승 나라가 짐승 나라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고 하는 그 이야깁니다. 그러면 짐승 나라가 왜 성경에 기록됐는가? 짐승 나라인지 아닌지를 짐승 나라 하는 행세, 그 움직임, 활동을 보면서 파악을 하시라는 거예요.

그거 파악해서 뭐 할 건데? 장차 오실 주님의 나라는 11장에 나오는 짐승 나라 행동하는 것과 너무나 판이하다는 사실을 감 잡으란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감 잡는가? 예수님께서 속한 나라가 무슨 나라냐? 하면 유대나라죠. 그 유대나라 움직임이 여기 11장에 나오는 짐승의 나라를 그대로 흉내 내고 모방한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스라엘은, 짐승 나라는 어디냐? 오늘날 교회가 이 11장에 나오는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습니다. 천국은 어디 있느냐? 교회 안에 있죠. 그러면 교회는 뭐냐? 교회 안에 있으니까 참 좋은 교회네요? 아니에요. 교회가 짐승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 짐승 나라에 천국이 있습니다.

자,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해 보면 천국은 어디 있다고요? 짐승 나라 안에 있고 천국이 오기 전에 먼저 짐승나라라고 규정받아야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 활동을 짐승의 나라라고 이렇게 확정지고 규정이 되는 절차를 통해서 그 속에서 천국은 비로소 비칩니다. 내가 짐승의 나라에서 빼도 박도 못하고 속해 있다는 것을 자기가 스스로 자인할 때 그 사람에게 비로소 천국이 보이는 겁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11장 28절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너희(바리새인)가 짐승인데, 28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은 이 세상의 속성을 보여준다는 뜻이고요. 29절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이렇게 돼 있죠? 세간이 셉니까? 그 세간을 잡고 있는 집 주인이 셉니까? 누가 강한 자에요? 집 주인이 강한 자죠. 그러면 천국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이 집 주인이 말한 게 아니고 집주인한테 묶여 있는 세간에 있다가 이 사람이 성령에 의해서, 주님에 의해서 이제 천국의 백성이 되죠.

그러면 묻습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 나라보다 강합니까? 약합니까? 약하죠. 약하면 스스로 탈출이 가능해요?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능하지 못하죠. 그러니까 출애굽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아까 쉬는 시간에 김 중우 집사님이 얘기했지만 집사님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돈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벗어납니다. ‘응엥’ 하고 태어날 때부터 돈의 그물망에 매여 있고 이 그물망을 돈 벌기 싫다고 벗어날 수 있어요? 없어요? 안 돼요. 지리산 가도 거기도 전기세 내야 되고 전기 없으면 양초 값 하나에 천원 잡아도 양초 하루에 밝게 하려면 양초 몇 개 해야 됩니까? 그리고 그쪽 지리산 물가가 알 올라요. 그런데 지리산 밖에 장터에 가면 이미 물가가 올라져 있어요. 내 허락도 없이 올라 있어요. 전에 쌀 한 말 샀던 것이 같은 돈 가지고 못 살아요. 약초 캐도 전에 약초 캐서 쌀 한 말 샀는데 약초 캐도 이제는 쌀 반 말 밖에 못 사요. 왜, 이거는 바깥의 짐승이 물가를 올렸기 때문에.

결국은 지리산 들어간다는 것은 그냥 양식도 없이 그냥 굶어죽으라는 거죠. 죽어야 탈출이 가능한 세상! 심지어 죽어도 안 돼요. 죽어도 탈출 못하는 이 세상. 죽으면 이 세상에서 죽어서 지옥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그것도 탈출이 안 돼요. 짐승의 나라에서 죽고 짐승의 나라에서 다시 산다면 그건 탈출이라고 할 수 없죠.

누가 와야 됩니까? 주님이 와야 돼요. 그래서 주님의 성령 오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나야 천국의 백성입니다. 하늘나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주님의 모든 작업은 빈 공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이 세상을 짐승의 나라로 바꾸는 열심 있는 하나님의 착실한 작업이 선행되는 겁니다. 그 착실한 작업을 선행하면서 우리가 지금 다니엘 11장을 보려고 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는데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니까 다시 합니다. 11장의 내용이 나온 이유는 서로 서로가 싸우면서 그 싸우는 과정에서 짐승의 속성이 뭔가 그걸 보여주고자 11장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속성은 장차 올 인자의 나라의 속성과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 이예요. 너무나 다른 세상 이예요.

그럼 5절 계속 봅시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남방의 왕은 톨레미입니다. 톨레미 2세를 말하죠. 프톨레미 또는 톨레미를 말하는데 전에 나눠드린 프린트 꺼내세요. 뒤에 보면 5절부터 마지막 끝 절까지 해석이 다 돼 있어요.

5절에 보면 프톨레미로 돼 있죠. 외우기 귀찮거든 앞에 떼고 톨레미라 해도 됩니다. 강자가 남방 쪽이 뭐냐 하면 이집트를 장악했어요. 그래서 이걸 톨레미가 알렉산더가 죽고 난 뒤에 헬라 제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이 이집트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굴 지배했느냐 하면 팔레스타인, 다시 말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예루살렘도 있겠죠. 예루살렘을 장악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은 뭐하고 있었느냐, 오니아 사제가 있었어요. 사제는 제사장을 말합니다. 586년에 포로 잡히고 난 뒤에 520년경에 스룹바벨하고 여호수아가 포로 4만 5천 명 데리고 본국으로 옵니다. 그때가 고레스 왕의 명에 의해서 성전 짓기 위해서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사야에 보면 고레스를 메시야라 하거든요.

분명히 짐승의 나라에서 못 빠져나오죠? 그렇다면 고레스가 바사니까, 그들이 바사 나라에서 거기서 다시 귀환해서 예루살렘에 오게 되면 그건 어떻게 됩니까? 그건 빠져 나온 거예요? 빠져 나온 게 아니에요? 그냥 어떤 배려를 해준 거죠. 짐승의 나라에서 성전 지으라고 배려를 해준 것이지, 그게 거기서 성전 지으면 천국이겠습니까? 하늘나라 아닙니다. 하늘나라 아니지만 하늘나라 준비 단계로 그들이 왔었어요.

그들이 오고 난 뒤에 한 5년 간 성전을 못 지었습니다. 못 지었는데 스룹바벨이 포고령을 그때 다리우스 왕 이전에 캄파세르 2세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고레스 다음 왕인데 이집트를 치고 올라가다가 독살 당했어요. 올라 간 이유가 뭐냐 하면 그때는 헬라 아니고 바사나라입니다. 바사나라 이라크, 요즘은 이란, 페르시아 자기 형제 둘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이집트 치다가 도중에 올라가다가 독살 당했어요. 암살당하고 난 뒤에 귀족 여섯 명이 같이 가다가 죽어버렸으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차기 왕을 뽑는데 캄파세스 왕이 죽어버려서 이렇게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말이 제일 먼저 우는 사람의 말 주인을 다음 차기 왕으로 뽑겠다고 이런 엉뚱한 제안을 했거든요. 그런데 누구의 말이 울었느냐 하면 다리우스라는 사람의 말이 제일 먼저 울었습니다.

어쨌든 다리우스 왕의 말이 울어서 왕이 되어 4년 동안 모든 걸 평정했습니다. 평정하고 그 사이에 스룹바벨이 성전을 지으려 하는데 산발랏이라는 사마리아에 자치 총독이 있었어요. 예루살렘 북쪽 200킬로 위에 사마리아에 산발랏이라는 자치 총독이 ‘너희들 거짓말 아니야? 그런 일 없어.’ 하고 자꾸 방해를 하는 거예요. 방해 정도가 아니고 그 사람들을 죽여 버리려고 해요. 왜냐 하면 토박이잖아요. 텃세를 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포로 잡혔다가 왔으니까. 그래서 결국 못 짓고 있다가 포고령을 조사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포고령을 보니까 “나 고레스 왕은 성전 지으면서 모든 비용도 이미 허락을 했노라. 누구든지 이 성전을 짓는 걸 방해하면 즉결 처분한다.” 이랬다 말이죠.

그리고 난 뒤에 515년에 거세한 수소 100마리하고 양 400마리하고 12지파에 하나씩 속죄하는 의미에서 수 염소 12마리 잡아서 거대한 성전 봉헌식을 하는데 옛날 솔로몬 성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성전의 규모가 너무나 초라해서 울고 새로 지은 사람은 좋다고 웃고, 어쨌든 간에 그런 식으로 해서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완공되고 난 뒤에 500년 후에 다리오 왕의 술시중 드는 느헤미야란 사람이 다시 오게 되는데 와서 여기서 메시야 왕국을 만들려고 했어요. 첫째는 혈통이 깨끗해야 되고 율법대로 하려면 이방여자하고 혼인하지 말아야 되고, 메시야 오려면 전에 제사장 나라가 돼야 되거든요. 그러면 제사장에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십일조가 필요해요. 그 십일조를 거둬야 땅 없는 제사장에게 봉급을 주고 생활비를 주거든요. 그것을 통해서 일종의 유사 메시야 왕국, 모형적인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려고 느헤미야 때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죽고 난 뒤에 얼마 가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난 뒤에 다리오 3세 왕이 까불다가 알렉산더에게 깨져서 알렉산더 대왕의 전적을 다 차지했죠.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까지 찾아와서 전쟁하는데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요청해야죠. 예루살렘 귀족들은 아주 반겼습니다. 야! 우리를 해방할 분이라고 반겼지만 알렉산더는 다 작살내버렸습니다. ‘나 안식일을 지키고 싶다.’ 해놓고는 들어와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다 폐지시키고 수모를 당했어요.

그러니까 바사, 페르시아 짐승의 나라에서 지어진 성전을 그 뒤에 헬라 짐승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모독을 받고 훼방을 받는 겁니다. 그 알렉산더가 죽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네 명으로 쪼개지다가 나중에 다시 두 명으로 분리가 돼요. 북쪽은 셀류쿠스, 남쪽은 톨레미가 잡는데 톨레미가 예루살렘 이걸 점령을 하게 돼요.

지금 초점이 뭐냐 하면 항상 주변 역사를 이야기해도 항상 뭣에 초점이 있느냐 하면 예루살렘에 초점을 모아야 돼요. 왜냐 하면 결국 메시야가 어디 옵니까? 예루살렘에 오기 때문에. 메시야 오기 전에 예루살렘, 제가 한 취지는 뭐냐 예루살렘이 어떻게 짐승의 나라가 되었느냐 그걸 지금 보자는 겁니다.

예루살렘 거기에 왔을 때 그때 예루살렘은 톨레미로부터 오니아 가문이라는 게 있어요. 오니아 가문이 사독 가문이거든요. 사독 가문이 뭐냐 하면 다윗의 친척 이예요. 다윗 언약에 의하면 왕도 유다지파이어야 되고 제사장도 유다지파라야 돼요. 다윗 언약 이전에 모세 언약 때는 제사장이 제일 높았어요. 그런데 제사장이 엘리 제사장으로 망해버렸어요. 제사장으로서 제사 드린다고 해서 나라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다 드러나고 난 뒤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왕을 통해서 통치를 하는데, 왕 통치가 뭐냐 하면 왕 하나만 제대로 말씀대로 살면 다른 백성들은 덤으로 구원을 받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면 복 받습니까? 복 안 받습니까? 착하게 살면 복 받아요? 안 받아요? 나쁘게 살면 저주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이 시대는 그게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모세 언약 시대 때 이야기지만 이 시대는 모세 언약 이외 다윗 언약 시대고 새 언약 시대기 때문에 개인이 착하고 악하고 관계없이 개인의 운명은 누구의 왕, 우리를 대신하는 왕에 따라서 복을 받고, 아무리 착해도 왕에게 소속되지 않으면 저주받게 돼 있어요.

요번에 중국에 강의할 때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하나님이 솔로몬을 두 조각낸다 했죠? 솔로몬을 두 조각내니까 솔로몬이 율법과 지혜로 두 조각나잖아요. 두 조각났을 때 지혜 문서 중에 하나가 전도서입니다. 전도서 9장 2절을 이번 주일날 설교에 했는데 뭐라고 돼 있던가요? 제사를 드린 자나 안 드린 자나 착한 자나 안 착한 자나 관계없이 인간 돌아가는 것은 아무 영향 안 받는다. 이게 지혜에요.

당장 지금 착하게 살면 복 받습니까? ‘착하게 살면 복 받지.’ 나쁘게 살면? ‘벌 받지.’ 이러잖아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벌 받는 사람은 운 없는 사람이 벌 받고, 운 좋은 사람은 백날 사람 죽여도 아무렇지 않아요. 오히려 권력을 쥐면 사람 수천 명, 수만 명 죽여도 왕으로 살다가 왕궁에서 살게 돼 있어요. 북한의 김정은, 김일성 같이.

그래서 시대를 알아야 돼요. 이 시대는 이미 모든 법으로 해서 혜택주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법을 지키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못 지키면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받고, 그런 시대가 아니고 전부 다 저주받는 시대에요. 자기가 살사나, 못 사나 저주받는 시대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어디나라에 속한다 했습니까? 짐승의 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짐승 자체가 저주거든요. 그럼 저주받는 그 왕에게 소속됐으면 그 밑에도 자동적으로 저주가 임하게 돼 있습니다. 저주에서 못 벗어나요. 죽음에서 못 벗어나는데 여기 인자의 나라, 다니엘에 예언된 인자의 나라에 와 버리면 도저히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그 가운데서도 생겨요. 천국 백성이 생겨요. 강도가 되어서 자기가 지은 죄로 벌 받는 그 현장에서도 오늘밤에 낙원 가는 일이 생겨요. 옆에 있는 강도는 안 생기는데 이쪽 강도는 천국 가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세상을 계시로 봐야 돼요. 계시란 개인적인 계시는 없어요. 전체 질서를 다 보여주는 계시뿐입니다. 네가 어디 소속돼 있는가, 보여줘야 계시지, 너는 괜찮은 인간이라는 계시는 없어요. 전체를 보여주고 거기 네가 속했다는 쪽으로 계시를 보여주는 겁니다. 성령의 계시가 원래 그런 거예요.

예수님의 일을 근거로 해서 이 세상은 이런 세상인데 이런 세상 여기에 침투했다. 그리고 이 악한 세상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고 응어리지고 있다. 한 알의 밀알 같으면 속상할 텐데 그것이 자라나면 큰 나무가 되듯이 뭔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가 이미 개시되어서 꿈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 꿈틀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성경에 보면 내게 속한 소자, 내 형제, 소자한테 한 것이 누구한테 한 것이다? 이 나, 예수한테 한 것이다. 라고 예수님이 이야기했거든요. 십자가 중심으로 모인 그들이 바로 천국 백성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력으로 짐승을 못 이겨요. 사단을 못 이깁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생활은 뭐냐 하면, 이기는 생활이 아니고 다르다는 거예요. 다르다는 것을 알 때 이게 이긴 겁니다. 심지어 그들은 죽어요. 짐승의 세력에 매어서 순교 당하고 죽습니다. 죽어도 그들은 안 죽어요. 요한계시록 12장, 그들은 죽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이 주가 되신다는 것을 포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이란 것은 안 죽어야 생명이거든요. 안 죽어야 생명이잖아요. 그들은 이미 마귀가 그들을 죽이기 이전에 먼저 예수님의 생명이 그들을 죽여 버렸어요. 그래서 이미 그들은 안 죽는 이유가 그들이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으니“ 죽었는데 누가 죽이느냐 하면 주님이 우리 성도를 죽여 버려요. 십자가에 ”너 죽어. 죽어.‘ 하고 죽여 버렸어요. 주님이 죽였으니까 마귀가 와서 새삼 그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니까. 이미 죽은 놈을 어떻게 또 죽입니까? 죽어버렸는데. 살았다 할 때 죽는다는 게 위협이 되고 겁이 나는데 이미 주님이 와서 죽은 자 만들어 버렸는데  죽음이라는 게 의미가 없잖아요?

전체를 봐야 돼요. 개인을 보지 말고, 개인에서 출발해서 전체를 보면 이건 절대로 마귀를 못 벗어나요. 다니엘이 본 것이 뭐냐 다니엘 개인의 운명을 본 게 아닙니다. ‘내가 몇 살 살다 죽지?’ 그걸 본 게 아니고 전체를 봤어요. 큰 체육관에 가서 지붕을 본 거예요. ‘내 의자는 가열에 몇 번인가?’ 이걸 본 게 아니고 거대한 돔 구장 체육관에 들어서면서 ‘내 번호는 몇 번이지?’ 이걸 찾는 게 아니고 착 보니까 뭐가 보여요? 거대한 지붕 구조가 다 보인 거예요. ‘나는 은혜 안에 들어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 안에서 세상은 짐승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짐승의 나라 맘껏 짐승 하라 하세요. 왜, 우리는 이래도 안 죽고 저래도 안 죽는 이유가 이미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히브리인들이 출애굽 나올 때 그 사람들이 산 사람이라고 여겼잖아요? 어린양 때문에 살았다고 여겼잖아요. 사실은 어린양 때문에 산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 어린양과 함께 죽었고 어린양이 살아서 하니까 어린양 가는 곳에 가니까 어린양이 가는 곳이 뭐냐 하면 예수님 계신 곳이거든요. 어린양과 예수님의 만남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어린양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사람이 돼 버린 거예요. 신기하죠? 정말 신기하죠. 이게 언약 계통의 어린양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된 거예요. 어린양이 가니까 간 것이지, 그들이 가는 곳에 어린양이 간 게 아니에요. 어린양이 가기 때문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지, 자기들의 길 어둡다고 길 밝힌다고 조명발 세워놓고 불기둥 세운 게 아닙니다. 조명만 있으면 뭐합니까? 갈 바를 알지 못하는데. 조명이 백 개가 있어도 갈 바를 알지 못한다면 어느 길을 갈지 모르잖아요.

어린양이 가기 때문에 가는데 어린양이 가는 곳은 물이 없는 곳이고 양식이 없는 곳이고 아말렉 원수가 기다리는 곳이고 장대 같은 사람들이 자기 땅이라고 버티고 있는 그곳에 어린양이 가니까 갈렙과 여호수아는 ‘우리 힘으로는 못 들어가지만 어린양 가신다면 주의 사자가 저곳에 가라 하면 우리는 가뿐하게 갈 수 있습니다. 쳐들어갑시다.’ 했던 사람이 갈렙과 여호수아고, 딱 보고 난 뒤에 자력으로 들어가려 한 사람들은 울어버리죠. ‘어쩌려고 우리로 하여금 이곳에 왔는가. 공동묘지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느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이해 못하는 것은 항상 아침에 눈만 뜨면 나, 사적인, 개인적인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까 오늘도 내가 복 받을 좌석 번호표만 찾고 있지, 이 거대한 체육관 질서, 지붕, 모든 게 하늘나라를 위해서 세상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면, 자기 생각만 하다 보면 마귀가 와서 항상 우리에게 기죽이고 주눅 들게 만들고 자빠지고 엎어지고 우리는 맨날 혼자서 울고불고 혼자서 노래하고 춤추고 혼자 외롭다고 술친구 찾고 …맨날 그런 거예요.

이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 가 봅시다. 서로 싸웁니다. 여기 봅시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그게 뭐냐 셀류쿠스입니다. 남방의 왕이 처음에는 전체를 잡았는데 그중에 북쪽 왕 셀류쿠스가 남방의 왕으로부터 독립해서 셀류쿠스가 북쪽의 시리아를 장악했어요. 그리고 둘이는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톨레미 2세)의 딸(베르니스)이 북방 왕(셀류쿠스)에게 나아가서 화친을 했는데 그 공주가 완전히 죽임을 당해요. 이용을 당합니다. 이용을 당하고 난 뒤에 왕은 서지도 못하고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가 데리고 온 자들도 모든 자들도 버림을 당합니다. 이게 톨레미 2세가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톨레미 1세 시대 때 예루살렘은 톨레미 1세 소속 됐을 때 오니아 사독 계열의 제사장만이 제사장으로 메시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느헤미야 480 몇 년, 하여튼 그 당시에 느헤미야가 50년 후에 다시 왔다 했죠. 그래서 작은 메시야 나라를 구성하려고 메시야 나라 독립 국가 해보려고 애를 썼다 했죠? 그때부터 오직 다윗언약에 속했기 때문에 다윗 계열에 속한 제사장만이 진짜 제사장이라는 그 전통이 발생됐습니다.

그리고 그 전통이 톨레미 시대 때 예루살렘 시대에 이미 사독 계통의 제사장만 세운다 해서 오니아 가문이 거기 등장하는데 그때 톨레미 1세가 예루살렘 유대에 대해서 굉장히 자유를 주고 존중을 했어요. 그리고 유대인들을 포로 잡아 와 놓고 포로 잡아온 유대인들이 이집트 북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있는데, 알렉산더를 기념해서 알렉산드리아라 한 거예요. 톨레미 1세가 알렉산더를 얼마나 존중했는지 알렉산더 시체가 자기 헬라로 가는 도중에 쳐들어가서 시체를 훔쳐서 시체를 모셔왔어요. 우리가 정통적인 알렉산더 계열을 잇는다. 이렇게 해서. 그 정도로 알렉산더를 존중했어요. 준중해주면서 도시 이름도 알렉산드리아라 지었습니다. 도서관도 짓고 했는데 그 학문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지으면서 4천명을 데려와서 유대인을 대우해서 유대인들이 거기서 많은 자유를 느끼고 유대의 모든 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한 업적이 뭐냐 하면 70명의 언어학자를 불러다가 각각 딴 방에다 구약 성경을 번역하게 했거든요. 다 따로 번역 했는데 나중에 70명이 번역한 것을 나중에 대조해 보니까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다는 거예요. 그게 나온 것이 70인경입니다. 70인경은 히브리 아람어로 돼 있는 것을 헬라말로 고친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전체로 퍼져서 지금 예루살렘에 힘들게 살고 있는 그 유대 신앙을 하도록 도움을 줬죠.

그런데 여기에 그 오니아 가문의 조카 되는 요셉이라는 인간이 있는데 그 요셉이란 인간이 돈밖에 모르고 출세만 노리는 그런 인간이 있었어요. 그 인간이 톨레미에게 세금을 더 바치겠다, 해서 자기가 대장질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이 인간이 유대하고는 관계없이 아주 개판으로 사는 거예요. 헬라의 이방 풍습을 수입해서 엉망진창으로 된 거예요. 이 내용은 여기에 안 나오죠.

어쨌든 간에 톨레미 2세가 패배하고 7절에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에서 하나(톨레미 3세)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북방(셀류쿠스 2세)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 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그 다음에 “그 아들들(셀류쿠스 3세)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남방(톨레미4세)는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BC217년) 그 무리가 그의 손에 붙인바 되리라 그(안티오쿠스 3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이 인간이 나와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개판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이 전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시몬이란 사람은 북쪽 셀류쿠스 가문에 속한 게 아니고 톨레미 보호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전체 모든 유대 예루살렘의 법을 유대교 법으로 다 바꾼 사람 이예요. 안식일도 다 지키고, 만약에 안식일을 안 지키면 다 죽여 버렸어요. 그 정도로 율법을 가르치고, 그야말로 메시야 나라, 이상적인 메시아 나라, 느헤미야가 추구하던 그 나라를 이 시몬이란 이 제사장이 그대로 다 실행에 옮겼는데 그렇게 했는데 그때는 톨레미 남쪽 왕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북쪽의 셀류쿠스(안디오쿠스 3세)가 와서 이걸 완전히 박살을 내놨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결국 뭡니까? 짐승에게 속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역사 속의 예루살렘은 북쪽에서 내려오면서 힘들게 박살나고 또 북쪽에서 내려왔다 올라가면서 화난다고 또 싹쓸이하고 거기 맞추어서 예루살렘 내에 간신배들이 돈을 주고 지도자로서 섬기고, 결국 예루살렘 자체가 점점 더 무슨 나라로 바뀝니까? 짐승의 나라로 전체로 서서히 변해가는 거예요.

70이레 할 때 했죠? 7+62+1, 7이레가 성전 짓는 것이고, 62가 뭐라 했습니까? 지어진 성전이 이런 전쟁 통에 완전히 박살나고 완전히 웃음거리가 돼 버린 거예요. 짐승의 힘으로 지었던 그 성전이 짐승의 힘에 의해서 완전히 작살나면서 이제는 성전마저 짐승이 앞잡이가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그들이 짐승의 집약 체, 짐승의 실체가 뭔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아셔야 돼요. 짐승의 모습, 짐승의 얼굴, 짐승의 실체, 짐승의 진짜 본모습이 보고 싶습니까? 그거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만나면서 비로소 정체가 드러나요. 만약에 우리가 십자가에 관심 돌려버리면 이 세상 나라가 짐승의 나라인 것을 도저히 감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면 외롭고 뭘 생각합니까? 조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 연화 금메달 빼앗길 때 한국 사람치고 다 격분 안 한 사람 없죠. 다 격분했잖아요. 앞으로 월드컵이라든지 뭔가 할 때 또는 미국에서 프로야구 할 때 한국의 투수들이 던지고 치고 할 때 젊은 애들은 굉장히 뿌듯하잖아요.  여러분 일본하고 축구할 때 일본 이기라고 하는 한국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잖아요. 그럴 때 태극기 휘날릴 때 우리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잖아요. 그 눈물이 짐승의 눈물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뭐라 하셨느냐 하면 “처나 자식이나 아비나 남편이나 나보다 사랑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그러니까 우리가 육신으로서 처나 자식이나 이걸 미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미워하지 못하죠. 오히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우리자신을 미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미워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죄에서부터 자력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걸 분명히 하고 꾸준히 분명히 해주실 때 그게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게 뭐냐 성령을 받아서 신앙생활 하는 차이가 뭐냐 하면 착한 게 아니고 다르다는 거예요. 성령이 없을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이 긍정이 되지만 성령을 받게 되면 내가 이따위밖에 안 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파악하는 겁니다.

내가 이 짐승의 나라에서 하루라도 살려고 애쓰는 자체가 짐승하고 맞장구치는 짓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며칠만 굶어도 난리 납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40일 굶었어요. 맞죠? 주께서 난리 났습니까? ‘40일 굶겨놓고 일은 시키고 아버지 이럴 거예요?’ 이랬습니까? 40일 굶는 게 일이었어요. 40일 굶겨놓고 그 다음에 ‘떡 먹을래? 주의 말씀 지킬래?‘ 이렇게 나온 거예요.

주님께서 구주되는 게 쉽게 막 먹은 게 아니에요. 고생 꾀나 하셨어요. 세상에 견딜 수 없는 고생들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지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웠으면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 했습니다. 그걸 마셨어요. 그리고 주님만 마신 게 아니고 제자들도 마시고 지금 우리들도 마시고 있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나를 내가 미워해야만 된다는 사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지만 이게 미워져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언제 미워집니까? 자기가 원치 않는 죄를 지을 때, 우리는 한없이 밉고, 그리고 돈 몇 푼 때문에 치사하게 놀 때 ‘내가 정말 이렇게 치사했었나.’ 할 정도로, ‘내가 이렇게 치사한 놈이었었나.’ 그걸 절감할 때 어떻습니까? 죽고 싶죠. 딸 대학에 넣어놨는데 4년 장학금커녕 떨어졌을 때, 딸 붙들고 ‘너하고 나하고 같이 약 먹고 죽자.’라는 생각 안 들겠어요? 들죠. 아직까지 그런 일이 없으니 안 드는데, 만약에 귀하게 키운 딸이 엉뚱한 남자 데려올 때 머리채 쥐 뜯으면서 ‘고만 너 이 에미하고 죽자.’ 이렇게 나올 수 있죠.

실망스러울 때, 내가 실망스러울 때, 그게 주의 뜻입니다. 너도 짐승이었다는 거예요. 너도 짐승이었다. 그래서 지혜서에 보면 전도서에 보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게 말씀 지키는 것이 아니고 헛되다는 말씀이 나를 통해서 말씀이 그대로 실현될 때 우리가 걸어 다니는 계시가 됩니다. 내가 말씀 덩어리가 돼요. 앞에는 뭐가 붙어있고? 전도서 1장 1절이 있고. 나는 안개다. 나는 헛되다. 나는 하는 것 모든 것이 죄인 중에 괴수다. 나를 말씀 덩어리로 만드는 이 놀라운 작업, 이것은 성령이 임하지 않고서야 성사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여기 척 보니까 예루살렘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오지도 않죠. 나중에 나와요. 계속 해봅시다. 13절 “북방 왕(안디오쿠스 3세)이 돌아가서…” 14절에 “스스로 높아져서” 스스로 높아진 거예요. 제가 아까 짐승의 나라의 특징이 뭐라 했습니까? 스스로 높아지는 거예요. 바벨론도 높아졌고 두로도 높아졌고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 예루살렘을 건드려서 약탈해 간 모든 나라, 암몬, 11장 41절을 미리 봅시다.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이게 뭐냐 안티오쿠스 4세 이야깁니다.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에돔과 모압과 암몬, 이게 이스라엘이라면 에돔과 모압과 암몬이 이 동네거든요. 그 위에 아람이 있고 이쪽에 블레셋이 있고 여기가 앗수르가 있고, 바벨론이 있고 이렇게 되거든요.

이 모든 나라가 셀류쿠스 가문에 있는 안티오쿠스 4세와 한패가 돼서 누구를 괴롭히느냐 하면 바로 예루살렘을 괴롭히는데 일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이라 하는 것은, 한번 정리하면 짐승의 나라는 원리가 뭐냐, 뭘 가졌다? 힘을 가졌고 힘은 그 사람들을 우쭐되게 만드는 그런 속성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게 교회든 그게 무슨 신의 공동체라고 우기든 그것은 짐승입니다. 짐승의 나라입니다. 심지어 우리 가정이든. ‘내가 힘 있다. 내가 잘났다.’ 해도 그게 우쭐 거리거든 그게 바로 지금 짐승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사도바울은 사단의 가시가 들어와서 뭐라 했습니까? “내가 약한 가운데 강함이라.” 나는 내가 이렇게 밖에 안 되는데 주께 기도하니까 주께서 “네게 족하다.”는 거예요. ‘아하, 그렇구나. 내가 약해져야 되는구나.’ 백두산 노래 부른 사람은 여자야 약해지지 말라 했는데 내가 약할 때 그게 내가 은혜가 보이고 비로소 내가 약할 때 강함이라. 어떻게 강합니까? 내가 강할 때는 안 죽어야 된다는 게 같이 강해져요. 돈이 있을 때는 있는 돈 유지해야 된다는 같이 돈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내가 모든 게 없고 약할 때는 누구만 바라봅니까? ‘주여 내 영혼을 그냥 거두어 주옵소서.’

10분 쉽시다.
 이한례(IP:203.♡.42.222) 14-03-25 08:41 
가락-다니엘 11장(짐승의 내부)140313-35강b-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아까 시몬이란 사람이 톨레미 보아에서 마치 유대인이 진짜 유대인을 회복하고 메시아왕국처럼 있었던 적이 있다 했지요. 시몬이라 하는데 그 사람은 유대 안식일을 준수하고 그걸 신정체제, 하나의 신을 모시는 정치체제로 만든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안식일마다 나팔을 불었고요, 불면 모든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희생 제사를 드렸고 그러니까 구약에서 율법대로 하란 대로 그대로 한 거예요. 시몬이란 사람 주도하에. 그리고 절기에는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쏟아졌고 그리고 옛날에는 톨레미 당시에는 예루살렘 보호받을 때는 바깥에 나간 유대인들이 다 십일조를 했어요.

그 십일조 가지고 예루살렘을 먹여 살리니까 예루살렘이 늘 풍족했어요. 예루살렘이 풍족하니까 귀금속이 많으니까 셀류쿠스가 로마하고 전쟁해서 전리품을 보면 심심하면 예루살렘 내려와서 뜯어가는 거예요. 금 귀한 거 다 가져가고. 예루살렘이 잘 돼도 문제에요. 잘되면 뜯기고 못되면 힘없이 무너지고. 못되면 그 자체가 또 유대풍습이 사라지고 헬라풍습으로 매일 놀고 전차경기에다가 하여튼 세속적인 경기 있잖아요. 목욕탕 이런 시설, 하여튼 세속적이고 타락적인 것. 그런 것이 들끓고. 그래서 예루살렘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대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도자들은 시몬이후에 지도자들은 토비아 가문으로 바뀌어요. 셀류쿠스가 안티오쿠스3세가 셀류쿠스 속했다 했지요. 이쪽시대가 오게 되면,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돈을 많이 주는 쪽에서 지도자를 세워버립니다. 그러면 지도자 된 사람은 돈을 많이 줬기 때문에 자기는 어떻게 벌어야 됩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을 양아치처럼 뜯어가지고 자기도 많이 먹고 또 세금을 드리고 일종의 하청업자 된 거예요.

그리고 자진해서 유대교를 없애버리고 자진해서 자체적으로 헬라인 되겠다고 자처해서 나온 겁니다. 특히 11장36절부터 보면, 드디어 앞에 전쟁 이야기하다가 안티오쿠스4세, 안티오쿠스를 에피파네스라고 합니다. 에피파네스라 하는 것은 신이 등장했다. 자칭 신이에요. 여기 30절에 보면, “이는 깃딤(로마의 배)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며 거룩한 언약을 한하고 임의로 행하며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길 것이며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악행은 무슨 악행입니까? 안티오쿠스3세 이후에 이미 위에 셀류쿠스 가문에 속했다하면 이제 예루살렘은 망해도 보통 망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참고로 안티오쿠스4세가 나쁜 짓을 제가 죽 나열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나쁜 짓을 했는지. 나쁜 짓이라 하는 것은 유대인 입장에서 나쁜 짓이에요. 우선 안티오쿠스4세는 로마에 칼리쿨루라는 황제가 있지요. 아주 못되고 타락한 황제인데요, 그만큼 나빴어요. 성격이 사이코패스 비슷한 게 불안정한 소셜패스, 정신이상자 비슷한데 화려한 궁중의식을 즐겼고 모든 죄악에 대해서는 지루하게 느껴졌고 중앙광장에 안티옥, 지금의 안디옥이에요. 지금의 시리아에 안디옥 있지요. 안디옥의 중앙광장에 술에 취한 채 목욕을 했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값비싼 연고로 마사지하고 목욕탕에서 시종들과 함께 어울렸고 그런데 구경꾼이 그걸 낭비한다고 비난하자 이 안티오쿠스4세는 항아리로 그 사람 머리를 내어 치라 해서 내쳤고 군중들이 모여들어서 향유를 구하려니까 비웃었고 안티오쿠스는 고급망토를 걸치고 장미의 왕관을 쓰고 모든 사치는 다했어요.

백성이 쳐다보면 돌 던지다가 쳐다보는 인간도 돌 던졌고 밤이면 변장해서 사창가에 들락 했고 낯선 사람과 만나면 뜬금없이 폭행을 저질렀고 스스로 자기가 신이라고 불러달라고 했고 그래서 자기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신의 현현)로 불러달라고 이야기했고 또 백성들도 그렇게 칭했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는 유대인 보수주의 자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을 싫어했고 벌거벗은 운동선수를 일부러 장려했고 일부러 경기를 시켰고 또 이런 사람과 들러붙는 간신배가 있어요. 그게 야손 이예요. 야손이란 사람이 “ 임금님, 제가 헬라로 시키는 것에 대해서 유대교 전통을 없애는데 제가 알아서 잘해드리겠습니다.” 아부를 하면서 야손에게 돈을 더 주고 이권을 얻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시몬이 만들었던 시몬이 했던 토라, 말씀들을 다 격하시켰고 젊은이들을 할례 시켜 놓은 것을 다시 원상복귀를 시켜놨어요. 하여튼 원상 복귀시킨 것을 보면 수술도 대단해.

포피를 복귀시켜놓고 이것을 자랑해라 했고 그리고 그의 신복 멜라니오스를 보내서 자기 부하이기도 하고 친구라고도 하는데, 지금 안티오쿠스4세는 어디가 있는가 하면, 북쪽에 가있어요. 예루살렘은 남쪽이고 북쪽에 가있다고요. 예루살렘에서 멜라니오스가 하청 받은 거예요. 예루살렘은 내가 알아서 관리할 테니까 가끔 위에 올라가서 세금 드릴 테니까 정권을 저한테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조로 한 거예요. 그걸 처음에는 야손이 했는데 야손보다 멜라니오스라는 사람이 돈을 더 준거예요. 돈을 더 줘가지고 권리금을 자기가 갖고 이제는 전에 보다 더 심하게 유대교를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모세율법을 원하니까 사제를 세웠는데 이 멜리니오스는 사독 계통이 아니에요. 사독계통이 아니고 엉뚱한 혈통인데 유대인혈통이 아니고 혼혈아에요. 이 사람이 사제가 된 겁니다. 사제가 되어가지고 통치가 되었고 그리고 이 안티오쿠스는 신복 멜리니오스를 대동해서 지성소에 들어가 가지고 지성소에서 신성 모독했고 금촛대, 금제단, 제단에 올린 빵, 모든 귀한 물 다 가지고 갔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희생 드리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게 다니엘 11장에 나와요. 11장이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아까 봤던 30절 있잖아요. 거룩한 언약을 배반했다 이 말이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 메시아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자기한테 희생 제사를 바치라고 섬기라고 유대인들에게 했어요.

그 다음에 성전에 금을 상자에 가득 채운 채 이집트로 가서 모든 저항을 짓밟았고 안티오쿠스가 이집트로 가서 전쟁을 했어요. 그 다음에 안티오쿠스는 로마의 흉내를 즐겼고 그 당시에 이미 로마는요, 160 몇 년경에 점차 로마가 커지기 시작해서 고린도지역은 이미 160년경에 이미 멸망합니다. 그리이스와 그 옆의 이태리가 그리이스와 전쟁을 해가지고 로마가 이겨요. 이기고 그리이스는 강력히 저항했지만 저항을 로마에게 당해내지를 못합니다. 하여튼 로마가 그 시대입니다.

기원전 167년경에 안티오쿠스는 안식일에 계략을 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수천 명을 죽이고 요새 아크라를 세웠습니다. 안식일의 계략이 뭐냐 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살기 때문에 안식일에 전쟁을 합니까? 안 합니까? 전쟁을 안했어요. 그래서 다른 날은 가만히 있다가 안식일 날 전쟁 안하는 걸 알고 안식일 날 쳐들어가 다 죽였어요. 그러니까 전쟁이 되겠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는가, 안식일 날 피해서 다른 날에 공격해서 전쟁했어요.

안티오쿠스는 성전 안의 모든 희생 제사와 예배를 금지했고 안식일, 율법, 할례를 금지하고 이걸 어길 시에는 사형으로 처벌했어요. 또 돼지고기를 성전에 덧입혀 놨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67년 11월 6일 성전은 그리스의 국가 신인 올림피아 제우스 황제를 그 성전에다가 제우스신을 섬기는 신전으로 봉헌해 버렸어요. 그러니 철저하게 성전에서 창녀와 놀아났고 거룩한 성전에서 아예 놀이터로 만들었어요.

멜리니오스는 그것을 묵인했고 사람들은 성전을 향하여 행진을 했고 성전에 못 오도록 했고 그리고 사제들조차 강제로 벌거벗고 운동하는 올림픽 경기 보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안식일 지낸 자는 산채로 화형당하고 그리스에서 수입한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를 안 먹고 굶어죽었어요. 아이들은 할례 시킨 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 절벽으로 던져가지고 갈기, 갈기 찢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 있잖아요. 토라는 보는데서 다 찢어서 불태워버리고 사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걸리면 사형 당했습니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4세가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런 짓을 했잖아요. 돌아가고 난 뒤에도 그 일이 멜라니오스에 의해서 계속해서 반복되었습니다. ‘형님, 제가 알아서 그대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보내 놓고 지가 그 짓 또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안티옥(안디옥)가가지고 무슨 짓을 했는가 하면, 인형놀이를 했는데 갑자기 축제를 벌여놓고 인형 10명을 바닥에 내려놓고 난 뒤에 인형 속에서 자기가 튀어나와 가지고 짠하고 나타나서 춤추고 완전히 미쳐도 이런 미친 사람 없지요. 그런데 지금 이 나라가 무슨 나라입니까? 헬라제국에 속하지요.

헬라제국이 둘로 나눠져서 위쪽에는 셀류쿠스, 아래쪽에는 톨레미, 그나마 톨레미가 지배하고 있을 때는 유대인들이 자기 맘껏 유대전통을 지킬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누가 이겨요? 놀랍게도 톨레미가 지고 셀류쿠스가 이겨요. 그러니까 이 세상의 짐승은 가장 짐승다운 것이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이 짐승의 나라입니다. 거기서 하나님 은혜로 다시 은혜로 일어서고 이런 게 안돼요. 짐승의 나라는 철저하게 짐승의 나라여야 돼요. 왜? 어두움이 짙어야 새벽이 그만큼 빨리 오기 때문에 그렇지요.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두움이 짙잖아요. 여명이 트기 전에 가장 어둡듯이 극한적인 어두운 시대에 요것이 바로 다니엘에서 말하는 62이레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종말의 현상으로 어떻게 되느냐,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에 일어나는 환경으로 그대로 주어지지요.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에 이런 거 해봤지요. 신문이나 잡지에 있는 그림을 오려가지고 도화지에 딱 딱 붙여놓으면 나름대로의 색다른 멋있는 그림이되지요. 그 그림의 원본은 어떤 잡지 속에 신문 속에 일부였는데 그걸 가위로 오려가지고 새롭게 하얀 도화지에 놓게 되면 그 나름대로의 낯선 새로운 의미가 여기서 나옵니다. 바로 다니엘을 가위로 오리겠다는 거예요. 다니엘을 가위로 오려가지고 예수님 이후에 새 언약 시대에 모든 시대에 그 다니엘이 일어난 이 과정을 그대로 딱 놓아버리면 그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 됩니다. 다니엘 이래에 공포정치의 반복이 되는 거예요. 다니엘 공포정치의 반복!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부가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지요. 그렇죠? 그건 왜냐 하면 우리는 다 같이 짐승이기 때문에. 같은 짐승은 관대해요. 나는 관대하다. 다리오3세가 그거 하다가 삼백 명에게 잡혀 죽었지만. 이 세상은 무엇으로나 다 관대해요. 제가 주일 낮 설교에 하나님의 원수에 대해서 설교했잖아요. 성경에는 분명히 원수를 갚지 마라, 내가 갚는다 하고 나오잖아요. 성경에 원수가 나오지만 우리 일상에서 원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는 협상과 타협만 있을 뿐이고 친구나 덜한 친구 이것뿐이지 원수 만들면 누가 피곤해요? 우리가 피곤하고 우리가 스트레스 받아요. 원수 만들면 스트레스 받는다고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예요. 서로 맘에 안 들면 너는 너 갈 길 가고 나는 내 갈 길 가면 되지, 원수라는 게 성립이 안 된다니까요.

그런데 분명히 성경에는 원수가 있잖아요. 성경의 원수에 그 원수가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백성이 아닌 게 돼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주의 원수에 대해서 우리는 엮어져야 되고 그런 운명에 도달되어야 되는데 우리 힘으로는 안 되고 바로 주님께서 이 짐승의 역사를 반복시키는 겁니다. 가위로 오리는 거예요. 다니엘을  가위로 오립니다.

다니엘 다시 한 번 봅시다. 예루살렘이 잠시 빛 봤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요때 아주 뭔가 “야, 메시아 나라가 이런 거구나!” 그리고 느헤미야가 와가지고 십일조하게 하고 일체 이혼 당하게 만들고 진짜 유다혈통만 남아야 되니까 혼혈 잡혈은 되지 않도록 다하게 되고 율법제사 드리고 성경공부 할 때는 진짜 메시아가 이 기분이구나! 느낀다 말이죠. 마치 처음 복음으로 개척 교회할 때 처음에 몇 명 모여가지고 성경 공부할 때 재미나지요. 1년 지나면 그 중에 반은 나가버리고 반은 나가서 울타리 밖에서 망보고 있고. 반은 모이다가 그것도 1년 지나면 그만 합시다. 하고 다 가버리지요.

그 시기라니까요. 에스라, 느헤미야가 분명히 하나님 뜻 맞습니다. 학개, 스가랴 예언대로 에스라, 느헤미야가 와가지고 분명히 그런 이상적인 나라 만들었는데 그게 몇 년 갔습니까? 몇 년 가지도 않았어요. 그것은 그만큼 누구의 위력이 세다는 말입니까? 짐승의 위력에는 어떤 인간의 노력이라도 성경공부도 짐승을 벗어나거나 탈피할 수 없어요. 짐승이 핀셋 가지고 거기서 하나, 하나 다 끄집어냅니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십자가 보이다가 나중에 끄집어내면 뭐만 보입니까? 자기 자신의 존재가 제일 중요해요. 십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라는 이 존재, 존재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번에 중국 갔을 때, 존재냐, 기능이냐, 그거 아닙니까. 존재로 보면 성경에서는 엉터리고 기능으로 봐야 되는데 내가 주님의 속성을 보여주는 기능인인데 그걸 보지 않고 나는, 나는 구원받을까? 나는 천국 갈까? 맨날 출발점 자체가 이미 존재에요. 그 존재로 있는 이상은 그 존재는 짐승의 핀셋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니엘 다 끝나가니까 다니엘 다시 한 번 봅시다. 이스라엘이 있었는데 누가 덮쳤다? 바벨론이 덮쳤지요. 바벨론은 짐승이지요. 짐승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멸망케 했던 겁니다. 그럼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지요. 그러면 요 이스라엘 위에 바벨론 큰 원이 있고 큰 원 바깥에 누가 있다? 하나님이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벨론에 잡히게 하면서 여기다가 다니엘과 세친구중에서 뭘 비밀로 입수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장래 계시를 입수했지요. 요 계시가 무슨 계시인가 하면, 이게 바로 종말의 시나리오 아닙니까. 종말의 시나리오지요.

그러면 종말은 어디서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짐승이 짐승답게 될 때 그 안에서 태동, 회임하듯이 여자가 임신하듯이 거기서 싹이 돋듯이 그런 식으로만 천국이 비쳐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 짐승 앞에서 다니엘 세 친구는 칭찬을 받았습니까? 수모를 당했습니까? 수모인데 그 수모가 맨날 죽으면 죽으리 아닙니까. 니가 나한테 절하지 아니하면 니가 풀무불 속에 들어간다. 우리가 다음 내용을 아니까 편하게 읽지만, 막상 본인이 다니엘 세 친구라면 “참, 내 팔자가 더러운 팔자다. 씨!~ 그냥 곱게 늙어죽지도 않고 암에 걸리지도 않고 내가 삼겹살도 아니고 돼지갈비도 아니고 온 몸이 전부 다 불에 타서 죽는 역이에요. 또 다니엘 같으면 내가 알아서 자살해도 될 문제인데 그게 아니고 그 사자들에게 으스러지게 죽을 생각하면 주님의 시나리오가 이런 식으로 전부 다 진행됩니까? 드라마 작가 불러야 돼요. 오로라 공주 썼던 작가 부르던지 해서 드라마 좀 제대로 써야지, 너무 처참하잖아요. 비참하고 처참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계시 덩어리인 걸 어떡합니까.

다니엘 세 친구가 갔던 불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자와 만나면서 사자 입을 봉하게 했던 주님과 함께 있어, 하나님과 함께 있어 봉했던 그러한 종말의 살 수 있는 인간은 이런 것을 경험하고 이런 것을 극복한 자만이 비로소 종말의 최후의 종말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물론 지금은 사자굴이 없어요. 물론 지금은 유황불이고 풀무불은 없습니다만, 그걸 가위로 오린다니까요. 오려가지고 이 시대에 그걸 그대로 반복을 해버려요.

그러면 사자 굴보다 더 셀 수도 있고 뱀 굴이라든지 독사의 굴이라든지 이제는 완전히 진짜 굶어죽는 일이 있을 거고 앞으로 어떤 전제국가가 나타날 지 아무도 모르는 건데 어쨌든 간에 우리가 공통점은 뭐냐 하면, 내 힘으로 대책이 없다 말이에요. 신앙생활 좀 잘해보려 했는데 신앙생활 잘해보도록 놔두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다 이 말입니다. 주님이 가만히 놔두지를 않아요. 주님이.

다니엘과 세 친구가 나름대로 신앙생활 했지요. 채소는 먹지만 고기는 안 먹겠다 이거 아닙니까. 사실은 채소도요, 채소도 어느 땅의 채소입니까? 수입했어요? 채소도 바벨론 채소지만, 자기 딴에는 신앙생활 남보다 성의는 보여준 편이 되잖아요. 그러나 백날 성의 보여주면 뭐합니까. 그런 식으로 해방이 안 되고 그런 식으로 구원이 안 되는데. 착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니까요. 착한 나름대로 신앙인이니까 뭔가 성의를 보여준다는 거예요. 하늘나라에 내 이름이 있으니까 이제는 착하게 살란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성의 표시지만 이게 내 구원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예수님의 피지.

이제는 내가 타락안한 목사 된다고 해서 구원받습니까? 타락 안하면 타락 아니에요? 타락 안한다고 애쓰는 그것이 선악과 쪽으로 보면 그것이 타락이라니까요. “아이고, 나는 이제부터 어떤 누구보다도 착하게 삽니다.” 그게 타락이라니까요. 그게 짐승의 나라에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까 시몬이야기 봤지요. 안식일 지키고 안식일 지키라고 그렇게 광고해도 그 다음에 더 난폭한 안티오쿠스 4세 딱 오니까 톨레미시대 때는 괜찮았어요. 뭔가 생각처럼 잘한 것 같지만 더 큰 힘, 같은 헬라 짐승 내에서 전쟁이 다니엘 11장이잖아요. 다니엘 11장 전체가 헬라라는 짐승입니다. 짐승 내부에서 지금 뭐가 관여한다? 예루살렘을 관여해서 지금 짐승의 본 속성을 보여주는 거예요.

예루살렘에서 돈이 모이니까, 십일조가 모이니까, 그걸 박탈해가고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누구를 건드린 거예요? 주님을 건드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건드린 거예요. 그렇게 건드려 주면서 정작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런 대책은 없는 거예요. 이게 종말의 특징이에요. 안개로 그냥 주의 뜻이면 이것, 저것 하리니, 그냥 죽을 때 죽는 방법밖에 없어요. 짐승의 나라에서 우리가 빠져나오는 방법은 우리가 힘을 기르는 게 아닙니다.

기존교회에서의 교회라는 것은 결국 무엇의 덩어리입니까? 힘의 덩어리. 교인 수가 많다는 것은 힘이 많다는 것이고 그 교회의 유력한 인사, 청와대 인사, 판사 몇 명, 의사 몇 명,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만큼 우리 교회는 자체적인 힘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거든요. 그게 짐승한테 통합니까? 짐승이 그걸 보고 어머 놀래라, 어머 무서워라, 놀래요? 우리교회는 선교사 몇 명 보냅니다. 이러면 짐승이 아이고하며 벌벌 떱니까? 한 경직 목사가 당회장하면 그 짐승 안 오는 거예요? 본인이 짐승인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락교회? 영락교회는 영원히 천국 가는 교회입니까?  교회 이름? 하여튼 전도서 말대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을 아예 수긍해 버립시다. 아예 그게 속 편해요.

착하게 살아도 소용없구나! 전도서 9장2절 다시 한 번 추임새 넣고 해 봅시다. 이 말씀 정말 좋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똑같다) 의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똑같다) 선인과 죄인이며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똑같다)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똑같은)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부 다 똑같다.

종말 프로그램이에요. 종말은 누가 승리한다? 마지막은 누가 승리한다? 짐승의 팔이 올라가게 돼 있어요. 짐승 팔을. 괜히 그걸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마세요. 기도하면 복 준다고? 안 줘요. 안 생겨요. 16년 동안 기도해도 안 생겨요. 40 넘은 딸, 16년 기도해도 신랑 결혼감 안 생겨요. 그냥 나이트 가서 춤추다가 생겨요. 이미 결혼 안한 사람은 결혼하겠다가 이미 마귀의 유혹입니다. 짐승 안에서 노는 거거든요. 자기를 사랑하잖아요. 짐승 세계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체가 이 자체가 이미 마귀가 박수치는 좋은 생각을 지금 갖고 있는 거예요. 마귀가 좋은 생각 앞을 자르고 그냥 good, 좋은 생각하지만 마귀가 좋은 생각.

제가 어느 강의에서 중국 가서 했거든요. 여러분, 마귀가 보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곧 마귀의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곧 마귀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고 내가 사랑한다면 주께서 내 원하는 것을 채워준다고 우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이미 십자가는 날아가 버리고 그 자리에 마귀가 와요. 그걸 중국강의에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공식화시켰습니다. ‘나는 무엇이다.’ 이것은 마귀 적이죠. 앞에 있는 ‘나’를 뒤에 넣어보세요. “주님은 무엇이 되라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한다면 나는 어디입니까? 주어 자리에서 멀어지면서 뭐만 보인다? 십자가 보이는 주님만 내세운다면 이게 성령의 일이라 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이 공식을 만들었어요.

나는 이라고 출발하게 되면 무조건 이것은 마귀 일이고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무조건 성령께서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앞에 것은 미흡함이고 불만적이고 짜증이고 뒤에 것은 반대가 되지요. 범사에 감사하는 거죠. 내가 주님의 십자가 보이는 자리에 저는 저 끝에 가 있을래요. “전에 있던 내 자리는 항상 주님이 활동하고 계시는 자리이기를 원합니다.” 바로 요 공식을 짐승의 나라에다가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끄트머리에 있으니까 짐승은 주님의 자리에서 설치니까 우리의 성도는 항상 무시당하고 모독당하고 어떻게 됩니까? 인정받지 못하지요.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지금 이 세상 중심에 마귀가 뛰도록 누가 했다? 지금 바벨론이란 짐승이 뛰도록 바깥에 누가 계시다고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짐승이 마음껏 승리하고 활개 치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자리를 하나님께서는 바로 언약의 백성으로서 헬라 짐승을 통해서 그 자리를 구축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 12장 2절 봅시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는 이미 죽은 자지요. 죽은 자가 어떻게 된다고요? 죽은 자가 뭘 얻는다? 잠에 깨어 영생을 얻지요. 그러면 결국은 짐승이 있다는 말은 우리를 아예 죽이겠다고 하나님께서 작심을 하신 거예요. 죽일 때, 네가 병들어 죽는다. 늙어 죽는다. 사고 나서 죽는다. 하지 말고 짐승이 널 죽였다고 하고 그 짐승은 누가 작용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작용했던 그 짐승에 의해서 네가 이 땅에서 힘없는 자로서 맥없이 그냥 패배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고 망한 자가 되어라. 이게 네가 이 드라마에서 네 역할이다. 성도의 역할입니다.

그러면 그 드라마를 누가 해야 됩니까? 그 드라마 제가 할게요. 그 손을 드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빌립보서 2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걸 포기하지요. 포기하고 어디로 갑니까? 그냥 공동묘지에 안가지요. 자살해서 공동묘지 가지 않고 어떤 사건을 유발시켜서 죽지요. 무슨 사건입니까? 십자가지요. 왜? 십자가는 어떤 인간의 힘으로 십자가를 유발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가 없으면 우리는 구원 못 받아요. 그런데 십자가 자리가 나타났다는 말은 곧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종말 때에 자기백성을 데려갈 천국 갈 출입구가 마련됐다 이 말이거든요.

제가 어제 수요설교 때 한 걸 다시 언급하면 이렇습니다. 유리로 만들었는데 중간에 뽀족한 게 있어요. 거기다가 레몬이나 오렌지를 넣어가지고 손으로 갈아버리면 여기서 즙이 생기지요. 요게 뭐냐 하면, 십자가에요. 밑에 하나님의 언약세계에서 뾰족하게 삐져나오면 요 위에 뭐가 덮이느냐 이불이 덮여요. 이불이 역사에요. 역사 속에서 누가 왕초고 누가 대장입니까? 역사가 뭡니까? 짐승의 교체가 같은 짐승이 교체 되는 거예요. 심지어 헬라라는 짐승 안에서도 끊임없이 남쪽 북쪽, 북쪽 남쪽, 역사가 계속 바뀌지요. 심지어 예루살렘이 16번이나 바뀐다는 거예요. 예루살렘의 주인이 16번이나 바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죽을 맛이지요. 예루살렘은.

그런데 그 예루살렘의 주인은 전부 누구다? 전부 다 뇌물주고 돈 주고 그 짐승의 새끼짐승, 형님 짐승에 아우짐승, 나중에 그것을 맛디다스가 맛디아 혁명을 일으키는데 혁명 일으킨 유대 그것도 또 새끼짐승, 결국은 새끼짐승, 새끼짐승해서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이라는 새끼짐승,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 2살밑의 베들레헴 애들 다 죽이잖아요. 그것은 속성입니다. 짐승은 그리스도를 노려요. 세상 힘을 갖고 노립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한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이 세상은 누가 장악했습니까? 이미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악마가 장악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말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권세 잡은 이 세상의 권세들과 싸움이라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시면서 이미 그건 들통 났고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 밑에는 천국 있고 영생 있고요, 십자가로 하게 되면 이불이 찢어지지요. 찢어지면 강도도 세리도 창기도 이를 통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그 길을 마련한 겁니다.

다니엘 11장에서 예루살렘이 예수님이 당할 수모를 미리 당합니다. 수모를 실컷 당하고 예루살렘을 못살게 굴고 그렇게 괴롭히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그 놈이 바로 결국 무슨 스위치를 건드리는가 하면, 하나님의 언약의 스위치를 건드리죠. 결국은 극도의 정신병자가 되어서 언약의 스위치를 건드렸습니다. 가룟유다가 사탄이죠. 사탄의 종이지요. 사탄의 지시를 받아 뭘 건드립니까?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팔아먹는 작업을 하지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호위무사는 다 어디 갔습니까? 호위무사는 다 도망갔어요. 왕에게 충성하는 것은 기왕후가 하는 짓이지 예수님한테는 기왕후도 없고 호위무사도 없고 예수님 빼놓고 전부 다 도망쳐버렸습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많은 기적을 해도 베드로는 누굴 못 이겼다? 그 당시의 힘을 이겨내질 못하고 나, 저 분과 상관없는 분이고 나는 저분을 저주하며 나 저분하고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아가씨보고 그런 이야기했다니까요. “아저씨! 아저씨도 한패지요?” “어딜,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네.” “나, 저 분 모른다. 저 사람 저주한다.” 그 아가씨가 권력 있습니까? 아니지요. 아가씨와 대화할 때 주시하는 기존의 권력들 있잖아요. 죽 모인사람이 있다 말이죠. 이장도 있고 작목반도 있을 거고, 통장도 있을 거고. 권세에 속한 사람 다 있어요. 짐승의 녹을 먹는 사람 다 있다니까요.

그런데 유독 바보같이 짐승의 권력을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권력에 순종한 물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닭, 그 닭은 AI에 걸리지 않았어요.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은 닭이 있었어요. 그 닭이 몇 번 웁니까? 세 번 울지요. 닭보다 더 못한 인간. 그게 주님의 질서고 베드로는 세상 어두움의 짐승의 질서였습니다. 누가 탈출이 가능합니까? 탈출 못합니다. 누가 이겨요? 3년 동안 배우면 5년 동안 배우면 되는가, 아무도 탈출 못합니다.

탈출할 구멍은 하나밖에 없어요. 미리 성령에 의해서 피 받고 죽는 겁니다. 피 적시고 죽는 거예요. 강아지한테 죽는 시늉하라 하면 강아지 ‘엎드려’ 하면 죽는 시늉하잖아요. 주님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주체에서 벗어나서 저 서술부 끝으로 밀어내고 그 주체는 예수님을 다시 한 번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하는 거예요. 마귀는 반대로 저기 있던 우리가 다시 아침 눈만 뜨면 나를 나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삼는 일을 마귀가 그렇게 해내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혼란한 사이에 성령이 밟았다가 마귀가 밟았다가 완전히 예루살렘 같아요. 완전히 걸레조각, 이런 걸레조각 없습니다. 그러다가 죽어요. 죽으니까 12장 2절에 보니까 그 때 무릇 땅의 티끌가운데서 구원받는데 이 사람들은 1절 끝에 보면 누굽니까? 아무나 이렇게 부활됩니까? 12장 1절에 누가 부활됩니까? 책에 기록된 사람이 구원돼요. 책은 언급이 없었는데 왜 책이 등장하지요? 그 때 내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되어 있어요. 책에 기록된 자.

그러면 분명히 책에 있다는 말이고 이 말은 다니엘 7장 23절에 보면,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천하를 삼킨다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다니엘에서 짐승나라지요. 27절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이 영원한 나라가 묵시나라입니다. 묵시나라에서는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는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책에 기록됐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책에 한 번 기록되면 시간이 지나면, 기록이라는 말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고정돼 있다. 이 말이거든요. 고정성은 시간성을 초월하잖아요. 그래서 여기 하나님의 책이라는 말은 결국은 그의 나라는 그의 나라를 도드라지기 위해서 그동안 많은 시간의 흐름들이 있었지만 그게 이제 털털 털려버리면, 떡에 콩고물을 털털 털어버리면 떡의 몸체가 드러나는 것처럼 그냥 쓸데없는 세상 짐승 털고 나면 그 중에 있던 진짜가 오는 거예요. 그 진짜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지요. 고생을 성도만 한 게 아니고 누구도 했습니까? 사실은 주님이 고생 제일 많이 했지요. 주님이 고생한 그 고생에 함께 동참한 자만이 결국은 주님과 더불어서 부활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12장 11절 어려운 거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일 어려운 대목이니까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오시면서 꽉 쬐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말씀이 와서 꽉 쬐지요. 제가 어느 설교에서 예를 들었지요. 최 두식 성도님 집에 갔다가 잠 잘 잤다고 이야기했지요. 그 때 메모리폼이라는 게 있어서 자고 일어나니까 복원력이 있어가지고 다시 원상태로 가는데, 꽉 조여 주는 느낌, 잠 잘 잤어요. 그런데서 처음 자 봤거든요. 예수님 오실 때 감은 게 말씀이 꽉 쬐어줍니다. 꽉 쬐는 말씀가운데 다니엘이 들어있다고 보면 이해돼요. 꽉 쬐어져서 다니엘이 들어있으면 주님께서는 본인자체가 인자가 되거든요.

인자가 된다면 인자가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그 주변에 자기를 꽉 쬐는 모든 세력이 짐승세력임을 그리고 다니엘에서 예언된 그 짐승세력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 구원은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도 인간은 탈출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딱 오니까 광야도 그렇고 모든 곳에 오니까 “탈출 안 돼!” 하고 짐승이 달려들지요. 과연 짐승의 힘이 세요. 예수님을 창을 찔러 죽여 버렸으니까. 결국은 누가 승리합니까? 짐승이 승리하지요.

예수님께서 그냥 짐승을 칼로 칠 수 있는데 예수님이 다니엘 자리에 가요. 다니엘 자리까지 내려가니까 다니엘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느브갓네살이 힘이 있지요. 그러니까 다니엘 자리에서 다니엘이 받았던 모든 계시를 예수님 홀로 다 받는 거예요. 다 받으면, 그 다음에는 어려워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이 성령이 찾아왔다는 말은 결국 이 사람에게 뭐가 터졌다는 말입니까? 다니엘이 과거 이야기가 아니고 그 사람한테는 뭐냐, 현재 벌어지는 상황이 되겠지요.

그러면 다니엘11장, 12장, 10장, 9장, 8장, 다니엘 1장, 2장 전부 가 그 사람한테는 뭐냐, 지금 실제상황인 거예요. 그 사람이 다니엘 되는 거예요. 그럼 다니엘 되니까 굴 파고 포항제철에 가서 용광로 속에 들어갈까요? 그럼 사자굴해서 동물에 들어가서 한 번 이렇게 들어가야 됩니까? 다니엘 반복이라는데. 그게 어려운 거예요.

다니엘 반복이라는 게 뭔 뜻이냐 하면, 일단 다니엘 반복이 아니고 그 중간에 누가 끼어들었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끼어들었지요. 그러면 다니엘 반복은 예수님의 반복이 되고 예수님의 반복이 우리에게 반복되지요. 갈라디아서3장 1절에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지요? 십자가가 눈에 보이지요. 그러니까 캡슐 알약 하나, 십자가라는 알약 하나가 우리에게 삼켜버리면 우리 인생은 무슨 인생이 되느냐 하면, 내가 십자가 안에 있는 인생이 되고 십자가 안에 있으면 세상은 나에게 죽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지요. 건드리지 마라, 나는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노라, 사도바울이 왜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사도바울이 왜 다니엘, 다니엘, 다니엘 이야기하지 않고 왜 자꾸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 이야기합니까? 고 십자가 안에 뭐가 들어 있어요? 다니엘이 반복되는 거예요.

이제 어려워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다니엘 속에 들어올 때는 안 들어오면 다니엘은 역사는 흘러갑니다. 다니엘 끝에 보면 1335일하고 앞에 11절에 보면 1290일도 있지요. 시간은 자꾸 흘러가잖아요. 62이레 흘러가는데 거기에 예수님이 들어갔단 말이에요. 예수님은 책을 갖고 들어갔고 예수님은 묵시지요. 역사가 아니고. 시간이 흘러요? 안 흘러요? 안 흐르지요. 안 흐르는 분이 역사 속에 들어와 버리면 여기서 동결, 울산강의에서 했어요. 흐르는 역사가 얼음이 돼요. 얼음.

예수님이 와버리면 스톱, 창세기 스톱, 스톱돼 버려요. 그 중간에 누가 있고? 예수님 계시고. 아브라함이 뭘 보기를 원했다? 예수님이 보이는 거예요. 자기가 일으킨 사건 속에 주님이 장차 함께 하게 되면 자기는 같이 동결되고 그러면 아브라함은 죽은 자가 아니고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 이삭과 야곱, 다 살아있는 하나님이에요. 예수님이 살아있기에 모든 게 살아있는 하나님이에요. 엘리야도 살아있고, 모세도 살아있고, 변화 산에 같이 등장했고. 이것도 천국에서는 동결된 상태에요. 동태 됐지요. 다니엘은 동결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뭐가 동결되느냐 하면, 사자 굴도 동결되고 용광로 불도 동결되지요. 별로 안 뜨겁지요. 레잇고 레잇고, 손만 대면 다 동결돼요. 겨울왕국.

주님이 가신 곳이 전부다 스톱이 돼버리죠. 스톱이 되면 여기 다니엘 9장의 말씀처럼 내 백성도 고정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내 백성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 동결된 주님께서 다니엘의 그 짐승, 그걸 보셔야 되는데. 이게 한 번 스톱되면 그 사람은 움직이고 다른 사람은 스톱되는 게 있지요. 예수님만 빼고 다 스톱이 되어 버려요. 스톱이 되면 그걸 그대로 우리에게 가져오게 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스톱이 되고 바깥에서 보면 지금도 뭔가 역사 속에 시간 속에 같이 늙어가고 있고. 그런데 실제 우리의 본 모습은 십자가만 바라보면 스톱되어 버리고. 안 보면 움직이고.

이미 우리는 구원받았고 이미 우리의 명단은 책에 있고, 다니엘에 있던 모든 혜택은 이미 주어졌고 그런데 요 생각이 2초 내지 3초 딱 지나면 다시 아우, 버려야 될 건데. 몸은 아파서 언제 병원은 가야 될 텐데. 주사 맞아야 돼! 아이고, 오른 쪽이 또 낫긴 나았는데 언제 한번 안양에 가야 돼. 계속 시간은 흘러가는데 십자가보면 딱 죽어있고. 죽었다고 보니까 옆에 누가 있고. 엘리야 있고 모세 있고, 아브라함 있고, 주님 계시고. 지금 미친 소리하고 있는 거지 지금. 안 믿는 사람에게는 이게 미친 소리에요.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를 꼬시더냐, 누가 너를 꾀더냐, 이 세상이 짐승이기 때문에 “니는 잘 되어야 돼!" "발전해야 돼. 돈 더 벌어야 돼” “네가 가장인데 오래 살아야 돼” 온갖 꼬시는데 십자가 보는 순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었고, 살고 어떻게 움직이는 것은 나는 바짝 얼었기 때문에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리니. 주의 뜻이지 내 뜻이 아니다 말이죠.

그런데 고개만 돌려버리면 모든 게 내 뜻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앞으로 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래요. 성경이 정말 영의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에요. 성경은 영의세계와 접촉하는 것은 십자가밖에 없어요. 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니엘에서 모든 묵시가 종결되어서 얼었지만, 예수님이 실제로 구체화 시켜버리면 그게 1290일, 아직도 종말은 시간은 남아있어요. 짐승은 활개를 쳐야 되고 우리는 핍박을 받아야 되고 하지만 믿는 자는 알아요. 핍박을 받던, 폭풍이 오든 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살았다는 사실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에서는 우리보고 이미 살았다고 했는데 우리는 살고자 합니다.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고, 날마다 십자가 생각하고 주님 생각할 때마다 그 차이는 바로 세상과 그리고 주님 안에서의 차이인 것을 날마다 확인하는 재미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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