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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23:52:48 조회 : 648         
지적질 180206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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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민희(IP:59.♡.64.246) 18-02-10 21:53 
강남-요한복음 16장 12절(지적질)180206a-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확정된 업무가 주어 졌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확정된 업무는 뭐냐 객관적 업무라고 해요. 객관적 업무.


객관적 업무라 하는 것은 변동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인간이 자기가 성령받았다고 치면 참 그게 엉터리죠. 성령 받았다 치고 그 다음에 뭐가 생겨요? 주관이 생겨요. 주관. 객관말고 주관이 생기겠지요.


이 주관을 억지를 부려서 뭐로 보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성령받아 뜨거운데 그러니까 이게 아마 성령님의 객관적 사역일것이라고 주관으로부터 출발해서 객관으로 억지를 부리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너무 일방적이죠. 그러면 주님께서 그 사람한테 성령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성령받았다고 우겨버리면 이 문제가 더 큰 문제가 되요. 의사한테 가기전에 자기가 치료받았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치료받을 기회조차 이제는 날라가 버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뭐가 문제냐 하면은 결국은 이것은 주관이 문제가 되겠지요. 인간의 주관.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객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인간은 객관이라는 것을 나서면서 주관을 못버리고 주관을 지닌체 객관하고 주관하고 일치 시킬려고 합체 시킬려고 그렇게 억지를 부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뭘 생각해야되요? 주님의 객관적인것을 먼저 잡을려면 내 주관의 문제가 있음을 자인해야됩니다. 이 내 느낌에 내 감정에 내가 스스로 속아넘어가고 있음을 전제로 해야되요. 내 느낌, 내 뜨거움에 내가 지금 속아넘어가고 있다. 그렇게 해야되요.


그러면 주님의 객관 이전에 나의 주관이 먼저 포함된곳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성경에 사탄의 객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림 한번 그려보면, 거울보면 자기 자신이 보이니까 자기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죠.


자기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니까 여기서 뭐가 나오냐면 주관이 나오죠. 그런데 성경에서는 뭘 이야기 하느냐 하면은 인간 배후에 있는 사단, 악마를 이야기 한다 이 말이죠. 아담 너의 조상 아담이 악마한테 사로잡혀서 그래서 너의 몸은 죄짓는 몸이 된겁니다.


죄 짓는 몸이 되었고 죄의 몸이 되었고 죄의 몸이기 때문에 이것은 결론이 뭐로 가느냐 하면은 로마서 6장에 보면 모든 인간은 죽음이고 로마서 3장에서는 죄있는 몸 이걸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 해요.


죄있는 몸, 로마서 6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3장에서는 의인은?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참 말씀이 재미있지요. 의인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늘나라는 의의 나라인데 의인이 없다는 거예요.


의가 없다는 말은 의의 나라를 사모하는 것 조차도 의다? 죄다? 이게 죄가 되는 겁니다. 구원 받고자 시도하는 것이 죄가 되요. 천국을 생각하는 것도 죄가 되는 겁니다. 이 주관은 객관에서 나온거예요.


사탄에 의해서 객관적인 사탄의 존재에서 이게 다양체라 하는데 다양하게 파급 되면서 각각 다양하게 인간은 다르지만 이게 각자의 주관이 되는 겁니다. 사단으로부터 이렇게 주어지거든요. 그런데 사단은 악마는 성격이 변하지 않아요.


악마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느냐 하면은 주님을 대적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거예요. 이게 이제 굉장히 어려운데 주님을 대적하지 누구는 대적하지 않느냐 하면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대적하지 않아요.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대적해요. 그래서 악마는 누구의 종이냐 하면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 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권세, 이 사탄, 보이지 않는 권세조차도 하나님께서 다루셔서 자기 아들을 뭐로 만드는데? 주님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도록 사탄으로 하여금  그렇게 활용화 시키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욥기에 나오지요. 욥기에 보게되면 없는 존재가 나옵니다. 없는 존재가 나오고 욥기에 있는 존재가 누구냐 하면 욥이 나와요. 욥이 나오고 하늘나라에 누가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앞에 하나님 앞에 누가 하나님하고 대화합니까? 사탄이 이야기하죠 사탄이.


하나님과 사탄이 이야기하고 욥을 겨냥해서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은 사탄을 이용해서 욥을 하면서 욥이 아닌 없는 그 무엇을 여기서 뽑아 내고 있습니다. 뽑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모든 성경 말씀은 누구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거예요.


욥이 고백합니다. 왜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왜 내가 내 주관이 납득이 안되는 이야기를 합니까? 계속해서 욥은 하나님보고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이야기 하기를 원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욥하고 이야기 하는게 아니고 욥을가지고 새롭게 자리를 만들 장차 오실 그 분을 겨냥하면서 욥에게 고난을 준거예요.


그래서 욥에게는 뭐가 없느냐 하면은 고난 받을 이유가 욥에게는 없어요. 고난 받을 이유는 어디 있느냐 하면은 욥 말고 장차 오실 이분에게 고난 받을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욥은 고난 받을 이유를 알아요? 몰라요? 당연히 몰라야 되죠.


친구들은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니가 고난 받을 이유가 너한테 있다는데 욥은 아무리 살펴도 자기가 고생할 이유가 없어요. 오늘날 우리 성도 같습니다. 성도 같아요. 우동을 먹는다. 우동을 먹었다. 나는 칼국수를 먹고 싶은데 우동을 먹으니까 칼국수 먹고 싶은데 우동 먹으니까 고난이잖아요.


이 고난인데, 지금 입춘인데 적어도 서울에 최저기온 한 0도 최고기온 한5도 정도 되야되는데 서울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갔지요 오늘. 이 고난이잖아요. 고난이다 이 말이죠. 왜 내가 여기 영하 15도에 살아야 됩니까.


지금 너한테 원인을 끄집어 내는게 아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사탄은 뭐냐하면 사탄은 끊임없이 나에게 원인을 끄집어 내는 거예요. 영하 15도 된 것이 니가 중보기도를 안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원인을 끄집어 내서 인간은 무슨 제공? 원인 제공자. 그리고 원인 제공자 인간이니까 그 결과의 책임은 누구 몫이다? 인간에게 결국 돌아가는 이 순환구조 안에 인간을 갇히게 만드는 이게 바로 사탄의 세계입니다. 사탄의 세계.


내가 하는 잘못에 내가 책임져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교회생활 아닙니까. 이게. 이게 교회생활이잖아요. 기도 소홀히하면 자식한테 화가 돌아간다. 자기가 기도생활 안하면 니가 잘못된다 하면 부모들 기도 안합니다. 뭐 까짓것 견디지 하는데 자식 건드린다 하면 어머 엄마야~ 자식 못되면 무조건 엄마야 하고 기도하게 되어 있어요.


하여튼 이 부모란 희한하지요. 참 인간이라 하는게 참 신기해요. 참 신기한게 본인이 어려우면 견딜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자식한테 뭐 어려움이 온다 하면 부모가 대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자식한테는.


그러면 자식이 그 만큼 의인은 없다 했는데 그 만큼 지킬 가치가 있는게 자식입니까? 그런걸 아예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내 자식은 이 세상 어떤 자식보다 귀하고 소중한 자식. 그리고 착하기 그지없는 자식, 그 자식, 그 자식 이쁜 자식.


세계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내 자식. 내 자식 주 예수보다 더 귀해요. 내 자식이. 고생은 내가 할께 호강은 니가 해라. 고생은 내가 할테니까 아픈것도 내가 대신 아파줄테니까 너는 건강해달라 건강해다오.


그래서 제가 언젠가 강의했지요. 자식을 통해서 부모가 밝혀진다고요. 보통 생물학에서는 부모를 닮은 자식이잖아요. 이게 생물학에서 이렇게 유전학에서 이렇게 하죠. 이런게 아니예요.


자식을 통해서 자기의 몰랐던 자기의 본색이 드러나는겁니다. 나는 죄인이다 죄인이다라고 하면서 그 죄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은 절대로 죄가 없을 자식처럼 그렇게 무의식속에 거기에 담겨져 있다는 것 그거 어떻게 설명할겁니까?


우리 동욱이는 어떤 고생하도 하면 안된다는 생각. 그거 어떻게 설명할거예요? 고생은 내가 다 담당하고. 자식을 통해서 부모가 두겹 세겹 다중인격자로 억지로 위선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티가 다 나버렸어요. 티가 다 나버렸어.


다시한번 정리해봅시다. 사탄의 세계는 어떤 세계라고요? 모든 인간에게 원인을 추궁을 하는 세계. 그게 이제 욥하고 다르지요. 욥은 욥의 친구 세친구가 자꾸 추궁을 해요. 회개하라니까! 회개해야 니가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할 것이다. 계속해서 추궁하는 겁니다.


욥은 아무리 봐도 이만한 고생을 할 정도로 악한짓을 안했어요. 왜냐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고아와 과부를 돌봤고 하여튼 성경말씀 그때는 성경말씀 없지만 전례되었지만 그 말씀대로 다 했고 그리고 자식들에 대해서도 자식들이 생일 잔치한다고 생일축하 합니다 하고 까불때도


저 철닥서니 없는 것, 생일 파티하다가 혹시 죄 지으면 안된다 해서 자기는 자식들은 친구들하고 할 때 자기는 혼자서 기도해서 자식들이 죄 안짓게 해달라 그 정도로 이렇게 했던 그 욥. 하나님도 칭찬했던 그 욥.


하나님이 의인있다고 칭찬과 그 칭찬과 그 고난이 매치가 안된다 이 말이죠. 매치가. 칭찬받았으면 고난이 없어야 된다는 것이 바로 이 사탄의 세계에서 통하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대로 제대로 살았냐 못살았냐 하는 것은 자기 인생이 지금 잘 풀리고 있느냐 그걸 따라서 지금 착하다 말씀대로 잘 살고 있다 그 여부를 측정할려고 해요. 잘 풀리는 집 알지요? 이사갈 때 휴지 잘 풀리는 집.


그래서 교회도 회개를 누가 강요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알아서 회개해요. 지난주 교동 사건 두건 있었고 뭐 어떻고 이렇게 해가지고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이것은 나한테 이런 징벌 받는다.


어떻게 하는 족족 다 일이 다 안되는냐 이것은 뭔가 경고 조치다. 이것은 회개를 촉구하고 경고이고 만약 여기서 회개안하면 더 징계먹는다. 처음에는 지금 봐주고 있는데 만약에 여기서 회개 안하면 더 큰거 오게되면 이거는 나는 여기서 이제는 진짜 지옥까지 갈 수밖에 없다. 정신 차리자.


정신을 어떻게 차리는데? 원인을 원인수정하는데 누가 수정하느냐? 스스로 자가 수정. 스스로 원인을 수정해가는 거예요. 헌금을 평소에 교회올 때 만원 냈다가 스스로 인상 50%인상 만오천원. 교회활동 11시 5분에 왔는데 10시 30분에 막 온다든지 아주 미친짓이요.


이렇게 와가지고 찬양준비한다고 이렇게 오고 봉사다하고. 봉사해놓고 이렇게 하게되게 되면 원인수정을 하기 때문에 결과 원인수정을 뭘 야기 한다? 결과 수정으로 야기 된다면 이제는 자가 수정이 제대로 먹혔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가지고 뭐 성경쓰기 성경도 써보고 새벽기도도 나오고 해놓고 그 나중에 성적표를 보는 거예요. 과연 내가  옛날에 잃어버린 것을 원상으로 회복 되었느냐. 원상복귀 되게 되면 이 사람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갑니다.


영원히 이 족쇄에서 마귀가 못 빠져나오게 만들어요. 중보기도 했더니만 교회 나오더라 이러면 이 사람은 영원히 그 기도에 응답받은 사람하고 같이 지옥가요. 종교라 하는 것은 교회가 목사가 가르치는게 아닙니다. 교회가 가르치는게 아니예요.


교인들이 알아서 알아서 알아서 기었습니다. 알아서. 자기가 임의대로 종교인이예요. 나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신이 노하기도 하고 복주기도 한다고 본인이 이미 어디서 배웠는지 이것은 자체적으로 마귀가 준거기 때문에 배운것도 아니예요.


마귀가 그런식으로 협박 공갈 해왔고 인생을 그런식으로 계속해서 위협을 해왔던 겁니다. 뭐 새삼스럽게 성경 볼 필요도 없어요. 착하면 천당가고 나쁘면 지옥간다. 그 영화가 무슨영화 입니까? with GOD. 신과 함께. 맞지요. 이게 우상이죠. 사탄이죠. 사탄과 함께.


사탄이 부모한테 효도하게 되면 지옥에서 빼내가지고 환생한다. 이게 완전 환생하는 것이 보상이라. 참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겠어요. 사탄의 그래서 우리가 이 강의 첫 번째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사탄의 세계 원리,


세계 원리가 객관적인 것은 사탄은 눈에 안보이니까 숨어 있고 나타난 것은 각자의 주관적인 것, 주관적인것만 다양성하게 있어서 그 주관적인 것은 하나같이 이렇게 하나로 통일되요.


딱 하나로 통일되면서 이게 하나의 로봇태권브이 다섯명이지만 지구의 적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다섯명이 하나로 합치잖아요. 뭐 팩트는 아니지만 만화지만. 하나로 합치죠. 합쳐서 공격하잖아요.


모든 인간이 합칠 때 그게 뭐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죄와 죄끼리 모여서 합체된 그 결과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내치는 대구강의에 경멸한다 또는 모욕감을 주는 것, 쓸데 없다고 차버리는 것,


그게 무슨뜻이냐 그게 인간들의 속성을 다 들추어내는 예수님이 진짜 예수님이고 자기의 주관에 맞춤, 주관에 맞추어서 객관을 이거는 뭐냐하면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 다른예수가 되는겁니다. 다른예수.


예수가 다른 예수가 되요. 그래서 이게 다른 예수 중심으로 고린도 교회가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은 이미 그 고린도 교회가 다른 교회가 됬어요. 사도바울이 이야기하는 그 복음 버린교회.


다시 찾아간댔는데 찾아가지도 않았고 세 번째 편지도 소용없고 그걸로 빠이빠이예요 고린도 교회. 지금도 고린도 교회 없잖아요. 이 교회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어지라고 나온겁니다. 세상에 이 세상이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싫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독버섯처럼 생겨나야될게 교회예요.


인간들끼리 모여봤자 뭐합니까? 종교놀이 하잖아요, 종교놀이. 기도는 이렇게 해야되고 전도는 이렇게 하고 종교놀이 한다고요. 종교놀이 하는 그것을 뭐로 본다? 자신의 의로 보고 그 의 가지고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결과물을 뽑아내고자 하는 그런 산당에서 비는 그 짓을 그대로 현대의 모양으로 하는 거예요.


그 속에 하나의 권력이 자리잡고 있지요. 중이 머리를 깍는 것 그거 권력입니다. 추운데 머리깍으면 춥잖아요. 하지만 이걸 깍아야 돈이 나온다니까요. 신부들이 그 유니폼입는거 그거 권력이예요. 수녀들이 유니폼입는 것. 유니폼입고 그 뒤에 세라복처럼 머리 걸치고 이래줘야 돈이 나온다니까.


권위있어 보이고 거룩해 보이고 경건해 보이고 수천년 역사에 누적된 주관들의 인간들의 죄성이다 이 말이죠. 무슨 천국을 이거 걸친다고 옵니까?! 그래서 그 수녀와 신부들이 하는 행동들이 뭐냐 하면은 이거예요. 도피행각입니다.


계속 이걸 들뢰즈 철학자는 이걸 뭐라하냐 하면은 탈주라고 하는데 탈주. 계속 달아나기. 계속 달아나서 은신처에다가 그들이 모여가지고 달아난 이 세상을 떠나서 자기들끼리 은밀한 곳에 달아났음을 그들은 뭐로 보느냐 하면 하나님께 복받을 하나님의 의, 또는 구원의 근거로 이렇게 보는 겁니다. 중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제부터 좀 어려워요.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다 아는 이야기 했고 지금부터 상당히 어렵습니다. 성령께서 하는 작업 무슨 작업이라고 했습니까? 객관적 작업이죠. 주관아닙니다. 객관적 작업이죠.


그런데 성령은 누구의 영입니까? 예수님의 영이죠.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다 버림받았지요. 심지어 12제자한테 버림받았지요. 성령이 아니고서야 주를 알수 있다? 없다? 성령이 아니고서야 주를 모르죠. 논리를 잘 따라오세요.


예수님은 성령이 아니고서야 주라 할수 없잖아요. 성령이 아니고서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주라 할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어떤 인간도 예수님을 안다? 모른다? 모르죠. 성령이 와야 주가 주되심을 알지요?!


그러면 예수님 보는게 성령의 객관적 사역이라면 이 객관적사역에 대해서 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지요. 그래서 뭐냐?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을 하게 되면 여기에 두가지가 나와요.


하나는 뭐냐 하면은 인간들이 자기 몸 중심으로 자기 몸 중심을 아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이걸 주관이라고 했지요. 주관적으로 펼쳐지는 세계가 있어요. 또는 세상. 인간들이 주관적으로 펼쳐지는 세상이 있다고요.


이게 지구는 둥굴다 뭐 이렇게 은하계가 있네 이런이야기 과학이야기도 되고 뭐 여러 가지 철학 이야기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있어서 예수님 세계는 있어요? 없어요? 모르니까 없는거죠.


없는 세계를 성령께서 객관적 사역으로 여기에 들어오는 겁니다. 여기에 들어와 버려요. 들어와서 성령께서는 새로운 나름대로의 새로운 세계를 펼쳐버립니다. 그런데 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예요. 참 오늘 참 여러분 어려운거 합니다.


보이는 세계와 그 다음에 말해져야하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만 있다면 말할필요가 없어요. 보여주면 되니까. 그런데 보이는 세계 따로 있고 예수님의 성령에서 전파되는 말하는 세계있다는 말은 보이는 세계는 말하는 세계에 의해서 양보를 해줘야되요. 양보. 부정을 해줘야 된다.


모든 보이는 것은 부정하는 그러한 기능이 말해야만 아는 세계가 엄연히 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되는 겁니다. 사람에 인간이 있는 이 세계는 보이는 세계예요. 보이는 세계. 작게로는 현미경 크게로는 우주만원경. 계속 보이는 것을 넓히는 거예요. 안보이잖아요.


안보이지만 만원경 들여다 보면 거기에 안보이는 것이 보임으로 보임의 범주에 포함이 되요. 만원경을 보게되면. 너무 작아서 안보이잖아요. 그러면 전자 현미경으로 보게 되면 그 전자 현미경으로 봄으로서 비로소 보이는 그 바이러스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 보이는 세계에 편입생이라. 새롭게 여기에 편입된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계속해서 과학이 발달하게 되면은 추가등록을 계속 받는거예요. 추가 등록을. 계속 받는겁니다. 심해의 5000m의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미생물이 있더라. 플랑크톤이 있더라.


그러면 기존의 코끼리 이런거를 포기합니까? 아니죠. 코끼리도 있고 새롭게 어제 발견된 새로운 생물체도 추가해서 보태고. 그러니까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늘어나지만 어디까지 늘어날지 그 인계점은 아무도 몰라요. 계속해서 늘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존의 아는 것은 부정합니까? 아니면 그것을 더 확고히 합니까? 점점 더 추가해서 추가적으로 확고히 하죠. 그런데 왜 성경에서는 말하는 것으로 천국을 이야기 해야 되느냐.


보이는 세계와 다른 지층이 되는 겁니다. 다른 층을 이루는 겁니다. 보이는 세계말고 말해지는 세계있다는 말은, 보이는 것 가지고 보이는 천국을 설명할수 있는것까지는 단절되어 있다. 끊어져 있는겁니다.


그럼 왜 끊어졌느냐 하면은 이 보이는 세계 전체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인간의 주관에 의해서 판정나는 겁니다. 인간의 주관에 의해서 주관은 어떤 기능이 있다? 판정하는 기능. 그리고 다른거 하면 두가지 여러 가지 있지만 두가지만 봅시다.


판정하는 기준 수립이 되요. 기준 수립.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그이야기이고 선택이라 하는 것은 인간은 판정내리고 그 다음에 뭐합니까? 선택을 하지요.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게 원인이 되가지고 아까 이야기한 뭐를 은근히 기대합니까? 결과를 기대하지요.


제가 지난 오후 때 그런 이야기 했어요. 인생살이가 힘든 것은 인생살이가 왜 힘드냐 하면은 바닥에서 뭐가 올라오느냐 하면은 인간의 욕망이 올라오죠. 욕망은 그냥 올라오지 않고요 뭐냐. 뭔가 기대감 또는 소원 이걸 노리면서 올라와요. 바닥에서 욕망이.


항상 기대감 소원이니까 이 기대감 소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것은 뭘 의미합니까? 미흡을 미흡함 모자람을 뭔가 모자라거든요. 모자라니까 모자란 만큼 만족이 안되잖아요. 모자란 만큼.


모자라게 되면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감사와 고마움이 생길수가 없지요. 감사와 고마움이. 감사와 고마움은 뭐냐 하면은 내가 원인이 제공자가 아님에도 불과하고 결과로 주어질때나 감사와 고마움이 있는거예요.


그러면 이 보이는 세계에서 감사와 고마움이 나온다는 것은 보이는 세계에서는 기대를 해서는 안되요. 왜냐하면 인간은 보이는 세계에 대해서 바닥부터 욕망을 작용하기 때문에 항상 더 기대하고 원하기 위해서 뭘 하느냐 하면은 항상 판정을 내리고 나한테 계산을 해요 계산.


오늘 강의 제목을 계산으로 할까? 항상 계산해가지고 이 선택이 이 결정이 나한테 이익을 얼마나 많은 이익이 들어올까? 아니면 얼마나 많은 손실이 될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익과 손실 더하기 빼기 분주하게 돌아가겠지요?


해가지고 한 이천만원 비트코인사면 그래도 한 500억 건지겠다 하면 이제 선택하는 겁니다. 있지도 않는 화폐 있잖아요. 우리교회에 재미 본 사람 있어요. 비트코인 이야기 하면 씨익 웃습니다. 재미보고 빠졌거든요.


자, 시작은 보이는 세계에서 인간들이 바닥에 욕망이 있었고 보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 욕망이 있었고 욕망은 항상 기존의 것에 기대감과 소망을 추구하게 되어있고 그 추구는 미흡함에서 오지요.


이 미흡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본인은 뭐한다 했습니까? 계산하는 거예요. 얼마나 해야 이익이 있겠는가? 계산을 하고 그 계산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남는 식으로 어떤 자기의 행동을 선택을 하게 된다니까요. 누구를 찾아간다. 누구를 찾아가야되지?


두 번째 기도는 몇분이 적당할까? 몇분? 30분할까? 한시간 늘일까? 전에는 20분하고 마쳤는데 이런 막중한 기대가 있는 반면에 약 한 30분 더 늘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고3아이가 수능 앞두고 기도 시간이 갑자기 늘어나요.


기도하는 그것이 안일하게 할것이냐 스스로 자기를 힘들게 어렵게 할것이냐. 꿇어앉아 할것이냐? 평평한데 할것이냐 그런것도 다 계산한다니까요. 세 번째 그냥 하면 안되잖아요. 빈손으로 갈것이냐? 감사헌금을 얼마를 할것이냐? 그런 선택을 다 한다니까요.


이게 원인이 되어서 그 다음에 뭘 한다? 그 다음에 계산했으면 측정을 해야죠. 측정. 측정할 때 이 만큼 해 놓고 3개월 뒤에 또는 수능에 점수가 어떻게 올라갔는가를 함으로서 내 몸 중심, 아까 이야기 한 내 몸 중심에 세계가 이게 진리의 세계라는 것을 스스로 확정지을려고 하는거예요.


여기에 종교도 포함되고 누구한테 아부하는것도 포함되고 누구 권세 있는 사람에게 돈 많은 친척 찾아가는 것도 포함되고 고개숙이고 아부하는것도 포함되고 하여튼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이 미흡함을 채우기 위해서 내 욕망을 만족하기 위해서 이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이렇게 하는 것.


이렇게 함으로서 이 내 몸은 어떤 몸이 되느냐 하면은 절대로 내 몸은 다쳐서는 안되는 하나님이라도 하나님이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될 몸. 절대로 내 몸에 절대주의. 내 몸 절대성을 계속 고충하게 되는 겁니다.


이걸 구역에 누구에 의해서 다 깨졌다고 했습니까? 구약의 어느 책? 욥. 욥을 통해서 이게  다 깨진거예요. 욥을 통해서.


내 몸을 그동안 내가 이 몸만큼 내 판정 이성적인 기준과 선택에 우수한 선택, 빈틈없는 선택, 확실한 선택, 착오를 제일 모든 실수를 다 줄이고 줄이고 최선의 선택에 의해서 했던 그 모든 것이 비현실로 드러났습니다.


구약에서는 욥이고 신약에서는 누구냐 하면은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청년. 부자청년은 어릴때부터 십계명 다 지켰습니다. 원인으로 집어 넣었지요. 결과가 뭐로 나온다? 십계명 지켰으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하나님께서 나한테 뭘 준다?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것이 내 판단과 내 결정 내 주관이 옳다는 것을 측정해 보기 위해서 누구를 찾아갔느냐 하면은 예수님을 찾아가지요. 예수님께서 추가적인 추가적인 원인을 집어 넣습니다. 추가적인 원인.


모든 것을 다 팔고 그건 십계명에 안나오는거예요. 모든 것을 다 팔고 가난한 사람한테 주고 이게 첫 번째 예요. 두 번째 어떻게 했는가? 나를 따라오라 할 때에 그 부자청년은 따라 왔습니까? 흥칫뿡 해가지고 삐져가지고 다시 옛날 사탄의 세계로 돌아갔지요.


이게 이제 오늘 강의 제일 어려운 대목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세계는 없어요. 아까 욥이 생각하는 세계는 없다 했지요? 없는데 그 쪽에서 올 때 그쪽에서 어설프게 가져오는 사탄의 세계 그 자체가 없는 주의 실제말씀의 세계가 그것을 부정함으로서 새롭게 생긴겁니다.


예수님이 펼치는 세계는 마귀가 펼치는 세계 없으면 예수님이 펼치는 세계가 나타나지 않아요. 그냥 말해지는 세계예요. 말해지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가 될려면 여기 반드시 인간들이 저지를 해줘야되.


인간들이 마귀와 단짝이 되어서 이것이 말씀에 도전을 해줘야 말씀의 세계가 보이는 세계가 되는 겁니다. 참 어렵지요? 이게 제가 인디아나존스 제 3탄 이야기 한거예요. 인디아나존스 제 3탄 보면 잃어버린 성배을 찾아서 영화거든요.


여기에 이제 아버지가 숀코네리고 그 아들 이름이 해리슨포드가 가는데 아버지는 늙어서 잡혀있고 아들이 가는데 길이 여기까지 왔는데 길이 없어요. 없고 도저히 뛰어 갈수도 없고 깊은 수100m 낭떠러지 있고, 이쪽에 길이 있는데 걸어갈수가 없어요.


그런데 보통 인디아니존스 영화보면 꼭 뭐 할 때 암호 해결할수 있는 암호같은게 있잖아요. 그런걸 딱 기억하니까 ‘믿음으로 디뎌라.’ 성배를 찾는데 예수님이 마신 그 마지막의 그 새 언약에 그 포도주 담은 그 잔을 찾는데 믿음으로 가야될게 아니냐. 믿음으로 디뎌라.


그래서 해리슨포드는 바보같은 짓을 한거예요. 바보같은 짓. 바보같은 짓이 뭐냐 하면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속이는 짓이예요. 인간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방법은 같이 속이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속아서 믿어야되요. 정신차려서 믿으면 그것은 지옥가는 겁니다. 주님이 속여줄 때 같이 속임을 당해야 되요. 해리슨 포드가 바보 같은데 허공에다가 발을 딛습니다. 믿음으로 디뎌라. 믿음으로 디뎌보니까 나중에 색깔이 똑같애.


바위하고 똑같은 색깔이 있으니까 이게 눈에 안보였던 거예요. 시각적착란에 의해서 이게 눈에 안보였던 거예요. 다리가 있는데. 이 바위색깔하고 이 무늬가 똑같이 되어서 없이 바위색깔이 계속 비치니까 없는걸로 보이는 거예요.


믿음으로 디디니까 비로서 피할길을 주실걸. 아이고 은혜롭지요? 되게 은혜로와요. 주께서 어려움 당할 때 피할길을 주신다는 고린도전서에 말씀처럼 디디니까 비로서 있고, 있으니까 해리슨포드가 그 뒤에 재미있어요. 흙을 가지고 허공에다 뿌려버립니다. 흙을 뿌리니까 비로소 다리가 딱 생기는 거예요. 흙이 있으니까.


이게 뭐냐 하면은 없는 세계인데 사탄이 시비를 걸어줘야되요. 사탄이 들이대야되. 이렇게 시비를 걸어줄 때 없는 있는 다리가 없어보이는 다리가 있음으로 보이고 그 위에 그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십자가 길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성령께서 조성해가는 성령만의 세계. 사탄이 없으면 인간들의 불신이 없으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아요. 불신으로 달려들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여기고 아까 있는 공식있지요.


내가 원인이 되어서 어떤 결과를 얻겠다는 이 악마적 발상이 없으면 우리는 십자가 가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자기 부인의 길이거든요. 이렇게 욕하지만 이 사람이나 우리나 똑같잖아요.


아! 우리가 이런 철딱서니 없는 마귀에 속아넘어 가가지고 내가 원인자가 되어서 내 원인으로 집어 넣어서 내가 원하는 결과 나온다는 식으로 그냥 내 삶속에 뺑뺑이 도는 거예요. 이게 순환구조 인데요.


인간은 아무리 교회가도 자기가 원인이 되고 그 결과를 따먹는다는 자기 순환구조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귀가 원래 인간을 그렇게 뺑뺑이 돌도록 만들었으니까. 모든 발상들이 신앙생활합니다 하고 들어보면 그것도 가만히 들어봐야되. 신앙생활 이렇게 어렵습니다.


들어보게되면 항상 그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말미암아 나로 돌아가는 그 순환구조를 그 성경구절 다 동원해가지고 그런식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쭉 표현하고 있다고. 그전에 사전에 항상 뭐하느냐? 계산해요. 얼마를 바치면 되겠습니까 예요. 얼마 바치면 얼마 이익 오겠습니까? 이런 계산하면서.


자, 다시한번 요한복음 들어가 봅시다. 요한복음 16장 8절 한번 보겠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라고 되어 있지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이 말은 쉽게 말해서 어떤 대상이 먼저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예요. 무슨 대상이 있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데 죄라고 이야기 못하잖아요. 뭐가 있어요. 그 뭐가 있느냐? 그 뭐가 있느냐 하는 것은 먼저 성령이 오시기전에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보혜사라는 것은 보혜사가 이미 왔다는 거거든요.


그 보혜사가 누구지요? 성령님이 다른보혜사 같은면 보혜사는 누구입니까? 이만희예요? 누구예요? 예수님이잖아요. 예수님이 먼저 오시고,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이 세상이 어떤 동네라 하는 것을 대립적으로 대조적으로 다 밝혀 주신거예요.


그것도 예수님이 말씀만하면 저쪽에서 아주 난리도 아니야. 예수님한테. 욥에대해서 욥의 세친구하고 똑같애. 그냥 난리 난리 치면서 예수님을 결국은 예수님 체포를 해가지고 죽였잖아요. 이미 자기 정체는 다 드러난거예요. 이 세상이라는게.


놀라운 것은 그 중에 한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거예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어요.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은 사람은 있지만 예수님처럼 아버지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온전한 사람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 믿었다고 해서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면 안되요.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지금껏 영원토록 예수님 한분 뿐이예요. 그래서 예수믿는 내 이름으로 구원받는게 아니고 끝까지 우리는 예수이름으로 구원받지요. 이 말은 나의 이름을 내 이름을 알아서 탈락시켜라 이말입니다.


예수믿는 나는 가치 있으니까 내 이름도 가치 있다고 자꾸 우기지 말고 주님앞에 헌금했으니까 헌금한 나는 성령과 함께 있기 때문에 괜찮은 존재라고 우기지 말고 계속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되요. 또 부정할만 하고.


맨날 해 봐야 또 자기 영광으로 돌아오는데 그 부정할만하지요. 그게 정답이겠어요? 그런식으로 주님께서 이미 한번 보혜사로 오셔가지고 다 정체를 밝혀놓고 그 다음에 주님의 영이  오니까 그 다음에 뭡니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을 하지요. 그 책망을 하게되면 그 현장에서 뭐가 발생되느냐? 뭐가 발생되느냐 하면은 죄가 발생되고 심판이 발생되고 그 다음에 또 뭐가 발생되느냐? 의가 발생되겠지요.


그러면 이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 눈에 보이는 세계안에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자체적으로 뭘 갖고 있게 되느냐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예수님에 대해서 죄인으로 몰아세웠고 예수님에 대해서 이 기준에서 심판했고 예수님을 재판함으로서 자칭 자신들이 그런 선택과 그런 결정에 대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가 의로운 행위를 했다고 자부한거예요.


이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의 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한분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전부다 하나로 통합되어 있거든요. 이 통합된 것이 공격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죄와 심판과 의라는 이 세가지의 개념으로 통일이 가능해요.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것은 단수죠. 1이죠 1. 이말은 뭐냐? 세상의 모든 개성이라든지 개성, 취향 이런거 전부 불도저로 다 밀어버려도 괜찮아요. 왜? 이런 모든 다양성은 결국은 이 단일성에, 단일성으로 최종 결론날 다양성에 불과한거예요.


일시적이고 일시적인거예요. 일시적인 것. 이 세상에 일시적이란게 결국 뭐냐 하면은 우연적인거지만 우연적인 것을 이렇게 나중에 최종 결론내리는건 뭐냐? 우연이 아니고 그리스도 앞에서 전부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죄와 심판과 의를 나름대로의 자기를 고수하게 된겁니다.


이것이 바로 무슨 체계냐 하면은 바로 이것이 선악체계잖아요. 선악체계.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선악체계는 어디서 온겁니까? 이거 누가 준거예요? 인간에게 온 것이 아니고 인간 외적에서 온거죠. 인간에게 이런 선악체계를 누가 줬습니까?


친절하게도 사탄이 악마가 선악체계를 따먹으라 했잖아요. 왜냐? 악마가 이미 선악체계속에 있기 때문에. 선악과 따먹은 날에는 정녕 어떻다? 죽으리라. 누구한테만? 피조물에게만 해당되는 거예요. 사탄은 피조물이예요? 창조자예요? 피조물이죠. 피조물은 선악과 알게 되면 어떻게 된다? 필히 죽게 되어있죠.


그러니까 못먹는감 찔러나 본다고. 자기는 이미 지옥가기로 작정이 되어 있으니까 그걸 그대로 인간에게 최고의 창조물 인간에게 찾아와가지고 그 자리를 포습을 한겁니다. 뱀이 되가지고. 뱀속에 들어가서. 여자 유인해가지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유인해가지고 한통속이 된거예요. 한통속이 됐다는 말은 인간이 DNA가 다르고 얼굴이 다르고 지문이 다르기 때문에 다 개성이 있다고,


물론 문화적 개성 차이가 있지만 그 모든 개성이라든지 환경이 따라 달라진 조성된 다양성도 그 다양성도 일시적 다양성이지 결국은 전부다 예수그리스도를 죽인다는 쪽에서는 의견이 일치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어요. 전부다.


특히 이제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겨울에 태어난~아름다운 당신은. 겨울에 태어났는데 너는 여름에 태어났고 나는 겨울에 태어난 다양성이 있더라도 결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합쳐보면 뭡니까?


그리스도 앞에 죽이자는 악마적 선악적 본성을 드러내는데 조금도 차질 없습니다. 모든 것이 동일해요. 모든 인간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거예요. 인간은 죄인이다가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의를 추구한다 이말입니다. 이 의를 추구해요. 이 의를. 그런데 성령이 와서 이 죄에 대해서는 죄로, 의에 대해서는 의로, 심판에 대해서는 심판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근거로 해서 이걸 쳐버린다는 말은 이 친 것을 어디로 가져갑니까?


오고오는 모든 세상의 긴긴 역사속에 모든 다양성속에 이것을 이제는 저수지 댐 터지듯이 모든 집안에 모든 구석 어떤 집에 애가 두명있고 부모 있다면 네명이잖아요. 4명있지요. 평창동에 그런데 한끼줍쇼 찾아가잖아요.


강호동이 찾아가서 한끼 얻어먹을려고 하는데 4명 전부다 뭐가 팝업됩니까? 이 새로운 죄 심판, 의 기준이 찾아가는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찾아가지요. 찾아가게되면 여기서 뭡니까? 어떤 한사람도 예외없이 모두다 책망 받을거예요.


그럼 여기 교회가 있다. 교인이 한 500명된다. 그럼 여기에 성령이 오게되면 어떻게 됩니까? 500명 그 개인마다 전부 다 예외없이 다 주께서 찾아가겠지요. 다 찾아가게되면 성도같으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십자가 언약이잖아요. 언약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복과 저주 두 결과를 내게 되어 있어요.


하나의 결과만 내는건 없어요. 언약의 결과는 두 개의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는 뭘 받고? 복을 받고, 아브라함에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가라지와 알곡.


여러분 가라지가 가라지와 알곡 이야기 할 때 알곡 될려다가 안된게 가라지가 아니고 처음부터 가라지는 가라지대로 따로 심고 알곡은 같이 심어져 있어요. 같이 심어져 있다고요. 그래서 누가 심었나?! 이러잖아요. 심은거예요.


언약에 의해서 지옥갈사람과 천국갈사람을 이미 따로 심는겁니다. 사랑받기로 작정된 야곱과 미워하기로 작정된 에서를 같이 심어요. 그래서 성령의 새언약이 여기 가게되면 지옥갈 사람 천국 갈사람을 분류시키는 분류작업이 이제 시작되는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되는 거예요.


이 구원받은 사람은 회개할것이고 회개한다는 것은 반성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잘못 선택했다 이것이 아니고 이 구조 자체에 대해서 이 구조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내가 잘못해서 내가 지옥가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잘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되요.


내가 잘못해서 내가 지옥가는 내가 원인이 되어서 이 원인으로 인하여 내가 지옥가는게 아니라 천국가는 백성을 주께서 죄짓게 하신 그 공로로 간다 이 말입니다. 그래야 이 사탄의 고리에서 이 순환구조에서 벗어날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지난 낮설교에 어려운거 했거든요. 율법을 어겨서 죄가 아니예요. 율법을 어겨서 법을 어겨서 죄가 되는게 아니고 율법이 죄를 만들어 낸다니까요. 율법 때문에 죄가 있어야 되고 죽음이 있어야 되요.


내가 죄 지어서 율법 어겼어요 했다하는것은 이것은 계속 선악구조 사탄의 구조에 계속 거기서 뺑뺑이 돌고 있는 순간입니다. 뺑뺑이 돌고 있는 그 모습이예요. 율법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여야 했던겁니다. 나보다 율법이 주의 법이 먼저예요. 나보다.


그러니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 여러분 새삼스럽게 내가 뭘 어떻게 새롭게 할것이 남아있지를 않아요. 여러분 새롭게 남아있다하면 어떻게 되요? 이거는 계속 미흡함이 된다고요 미흡함이.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이 이건 빈말이 되버려요.


뭐 율법하면 죄라하면 뭐라합니까? 화살을 이렇게 쐈는데 어디 양궁합니까? 그게 표적이 어긋나서 뭐 했다. 그러면 똑바로 해서 화살 똑바로 해서 쏘지! 그러면! 하여튼 원어가 문제라고 원어가. 원어를 분석하는 인간이 죄인입니다.


원어 분석왜 하겠어요? 이거 분석잘하면 뭐 온다? 구원받겠다. 벌써 원인을 따지고 있잖아 원인을. 내가 뭐 하게되면 무슨 결과 나온다. 계속 원인을 집어넣으니까 이것은 해결안나지요. 해결안니니까 10분 쉬어야 된다.
 홍민희(IP:59.♡.64.246) 18-02-10 21:53 
강남-요한복음 16장 12절(지적질)180206b-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한다 할때는 이것은 어느하나 빠짐없이 세상 전체를 심판하는 거예요. 세상전체를. 일괄해서 일괄적으로 다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한번 생각해보세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신다가 그게 의고 그게 제대로 된 죄의 기준이고 그게 바로 심판에 대한 기준이 되겠지요. 일괄적으로.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이 먼저 인간들로부터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이미 심판을 받아버렸어요.


받고 난 뒤에 그게 아니야 라고 함으로서 어떤 인간도 구원 받을 수 있는 자격이나 그러한 자질이나 능력은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지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구원될수 있는 자격과 능력과 그것도 없을뿐더러 그게 없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구원을 시도 하겠다는 그 노림수.


나는 죽어서는 세상에서는 고생했지만은 죽어서는 편하게 한번 살아보자라고 하는 그 의도자체 조차도 이게 악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 의도 자체가. 그런데 그 의도를 인간이 타고 났기 때문에 나 그 의도 없다 라고 할수 있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젊을때는 세상을 향하여 뭐 이렇게 가지만 늙으면 슬슬 다른 세계를 생각을 하잖아요. 생각하지요.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그게 상상입니다. 상상. 상상의 세계는 자기만이 꾸민 소꿉놀이. 자기만이 꾸민 소꿉놀이예요.


자기는 현실세계라 하지만 현실세계라는 것을 포함시킬 변수를 모든 인간이 공유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만이 상상한 현실세계를 고려하지 못하고 자기가 필요하다고 자기의 상상에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나는 이것을 현실로 간주한다 라고 딱 규정해버리는 겁니다.


예를들면 이렇습니다. 차를 타고 가로수길을 온다 이 말이죠. 가로수길을 쫙 달려가지고 오니까 주인이 물어요. 당신은 오면서 가로수에 나뭇잎이 총 몇 개 입니까? 물었단 말이죠. 그거 가로수 나뭇잎 그거 헤아려서 뭐 할건데? 그러면 몇 개인지 몰라요?


그러면 색깔은 어떻습니까? 색깔도 모르죠. 색깔 알아서 뭐할건데. 난 이 사람 만나러 왔지 뭐 색깔보러 왔습니까? 그런데 같이 차 타고 온 사람이 그거 노란색이였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 사람이 전공이 뭐냐? 산림학 전공이예요.


자기가 관심두는곳으로 세상을 거기에 패턴화 시켜서 보는 거예요. 인간은. 인간은 자기가 관심있는 곳에 늘 주의깊게 보고 그 사람은 저 사람이 관심있는 곳, 이사람은 이 사람이 관심있는 곳으로 그런 요소를 뽑아 뽑아서 꽃다발을 만드는 식으로 자기나름대로의 세상을 사는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부자는 집에 먹을거 입을거 있는데 자살하잖아요. 왜요? 왜 자살합니까? 자신의 명예를 돋우기 위해서 해야 되는데 집에 통장에 돈 있어요. 세끼는 먹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들면 노후연금 나와요. 그런데 자살해 버렸어요. 못살겠다고.


여기에 쌀 있고 라면 있는데 못살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주 어려운 노숙자 같으면 그걸 왜 못살까? 가스 넣어가지고 이렇게 돌리면 불 나오고 라면 물 끓을 때 넣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왜 못살아요?


미국에 어떤 유명한 여자 모델은 맨하튼 고급 아파트 살면서 자살했어요. 옛날처럼 인기 없다고. 옛날처럼 인기 없다고 자살해버렸어요. 옛날처럼 인기 없다고. 연예인 보면 그런거 많지요 그런거. 뭐 김광석부터 해가지고 죽은 사람 많습니다.


뭐 점점 더 30대 점점 더 멀어진다고 자살해요. 점점 더 멀어져~ 점점 더 멀어져 간다고 안그런 사람 누구예요. 자고 나면 점점 더 멀어지는데. 인간이 세월 헤아리기가 참 이게 이상해요.


보통 숫자는 1 다음에 2, 이래 쭉쭉 가가지고 16다음에 뭡니까? 16다음에 17이죠. 40다음에는 41, 52 다음에는 53 쭉쭉 간다 이말이죠. 그런데 90다음에는 91. 죽어버렸다.


그러면 뭐 됩니까? 제로가 되거든요. 이게 이상하잖아요. 91다음에 92되야되는데 왜 제로가 되요? 제로란 말은 없다잖아요. 없으면 계산을 이렇게 해야죠. 인간들의 논리에 의하면 이게 맞는다 이말이죠. 이게 맞아요.


이러한 방법이 있어요. 뭐냐하면은 더하기를 하지 않고 빼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이제 두 번남았다 세 번남았다. 이런식으로 계산해야되는데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서 사는 사람 없지요. 왜? 죽는 것이 소원이 아니니까.


60대에 어디에서? 날더러 날 불러 오라 하거든 아직 애가 못커서 못간다고 아뢰라 이런식으로. 그 백세 인생 노래 나오잖아요. 60세에 뭐~~날 보러오거든 아직 애가 안커서 못간다고 아뢰라. 가사 그대로 아닌데 바꿔보면 그런 가사예요.


인간은 얼마나 보세요. 주관적이고 착각속에서 평생을 착각속에서 살아갑니다. 세상을 보는데 이렇게 보니까 자기가 말하는 진리, 이게 진리겠어요? 욕심이지. 일방적인 우김이죠. 우김. 일방적 우김이다 이말이죠.


그러면 교인들이 무슨 성경을 보겠습니까? 자기 우기는 거 해달라고 부처한테 빌 듯이 빌뿐이지. 나는 성경이 궁금해? 그렇게만 된다면 희한한 사람이예요. 왜 성경이 궁금하죠? 의도가 수상하다니까요. 성경 알아서 뭐할건데? 잃어버린 청춘을 또 보상해달라고 하는가?


현실세계에서는 문제는 뭐냐? 이 상상이예요 상상. 상상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나름대로 이걸 꾸며요. 꾸밀 때 자기가 관심있는것만 뽑아서 꽃다발 만들어 놓고 나름대로의 나는 잘살았다고 우깁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강의인가 그런 강의했죠. 설교도 그런 얘기 했습니다만은 설교도 그런 얘기 했어요. 자기는 잘샀다고 하지만 홈쇼핑하는 순간 재래시장 상인들 4명 죽어나간다고 했지요. 제가. 홈 쇼핑, 인터넷 쇼핑 많이 해버리면 영세민들 죽어요.


그 뻔하잖아요. 추운데 누가 바깥에 나가서 삽니까? 백화점도 안나오는데. 집에서 택배 받아가지고 택배 쌓아가지고 문도 안열리게 이 만큼 쌓아가지고 하잖아요. 그러면 시장에 재래시장에 아주머니들 나와가지고 자기 가족들 못 먹고 살잖아요.


그래놓고 나는 오늘 참 값 싸게 샀다 하고 자부심을 갖지만 그 자부심 때문에 두세명은 벌써 문닫았어요. 그 자부심 때문에. 나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 나가 떨어지는 지를 그런 변수는 고려하지 않고 왜 나는 성실하게 살았노라.


성실하게 살아가지고 몇 사람들 굶어 죽었어요 그래. 성실하게. 인간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남한테 피해주는 겁니다. 피해주는 거예요. 그 상상을 아주 예민하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 있어요.


인간의 간 이식하는거 있잖아요. 간 반 없어져도 살 수 있다는 이것이 그걸 듣고 난뒤에는 이 간 반을 도대체 누구한테 줘야된다는 것 때문에 늘 이렇게 양심에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 장로님 아니십니까?


이걸 누구한테 떼어주느냐. 후보감을 정해요. 사촌이냐, 삼촌이냐, 동네 이웃집이냐, 교회 장로님이냐 반 떼어주고 반 떼어줘도 살수 있다는 이것이 그 이론을 듣는 순간 자기는 죄인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이걸 간 이식을 못해서 환장을 하는 거예요. 간 이식을 못해서.


착한게 취미가 되는 사람있잖아요. 착한게. 착한게 취미가 되는 사람들. 남 못도와줘서 정신병 지금까지 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 없어서 다행입니다. 그런 사람 있으면 저 큰 교회 가야되요. 거기가면 앞자리에 다 앉아 있어요. 전부 다.


결국 간 떼어주고 주여 간 떼주는거 천사보고 스냅 사진 찍으라 하고 떼줍니다 주여 하고 나는 이 사람한테 간을 떼주는 대신 첫시간 했지요 누구는 잘된다? 내 자식은 잘 됬으면 좋겠다.


간 떼줬는데 삼대가 작살났다. 아무도 간 안떼줍니다. 자기 마음속에 내가 원인자가 돼서 착한일을 하게 되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나 주님께서 갚아줄줄로 뭐하다? 믿습니다 하거든요.


그럼 내가 건방지게 하나님이라면 내가 그거 채워줍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있는데 간 떼줬다. 뭐라고 하느냐. 삼십배, 육십배, 백배를 줄줄로 믿습니다 하는데 내가 하나님같으면 백배가 뭐냐 천배나 갚아주께 해가지고 오늘 아침에 영하 15도. 서울지방. 왜?


영하 15도라고 하는 것은 그 안에 뭐가 있다? 공기가 있고 질소와 산소의 혼합체가 있잖아요. 몇배로 줬어요? 내가. 천배나. 만약에 광주나 제주에는 뭐가 온다? 눈이 오지요. 눈이 어떻게 옵니까? 천배의 은혜로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우리는 뭐냐 하면은 선함의 값없이도 이미 천배나 하나님의 복을 은혜를 지금받고 있는 중이예요.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간 떼줬나? 난 이미 다 줬는데. 내 피까지 줬는데. 그 피 말고 내 자식 잘되는거 그거 줘야지요.


그게 바로 뭐냐하면 바로 그게 뭡니까? 내 몸 중심주의의 죄를 발각당하는 거예요. 죄를 발각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까 배웠던 공식을 써 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진리의 나라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원래 없는건데 어디서 생긴다 했습니까?


마귀의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이 들이댈 때,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건데 어디서 보인다 했던가요? 먼저 선제된 마귀나라가 있음으로서 그걸 부정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비로서 현상적으로 나타나죠.


그게 바로 하나님의 구약의 하나님의 신이 작용하는 작업이 그 작업이예요. 이 구약에는 하나님의 신, 신약에는 하나님의 성령. 자, 신에서 성령으로 차이가 나고 어떻게 바뀌는가? 신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은 새 언약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게 차이점 나지요.


이것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신이 가동되는 겁니다.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면 다윗 있잖아요. 소년 다윗.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하고 이쪽에는 사울이 진두지휘하는 이스라엘하고 전쟁할 때에 다윗이 소년다윗이 여기서 끼어들어요.


끼어들므로 말미암아 두 성인들이 소년 다윗과 이 골리앗과 사울관계가 이 관계가 철폐되고 다윗으로 말미암아 다윗과의 어떤 새로운 관계가 정립이되요.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합니까?


소년다윗과 하는 순간 이쪽에서의 승패, 이쪽에서 누가 옳았고 누가 그르다는 것은 이것은 무색케 되지요. 무의미하게 되는 겁니다. 성신의 역할이예요. 성신의 역할은 니가 옳다 내가 옳다 하는 가운데서 성신이 임하므로 말미암아 둘다 옳지 않았다를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뭐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하는 기능이 이미 구약때부터 이미 있었던 거예요. 그 대목을 한번 보자 이 말입니다. 민수기 9장 22절 한번 보겠습니다.


민수기 9장 22절 보기전에 제가 민수기 9장 15절부터 한번 읽어 볼께요.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다


그 다음에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고 17절에보면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람들이 50만 어떨때는 60만됐는데, 50 만내지 60만되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 본인이 야 가자가자해서 움직였습니까? 모세가 가자가자해서 모세가 가자해서 움직였습니까?


누가 뜨면? 누가 움직이면 가자해야 되요? 누가? 여기보면? 누가 움직이는 거예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이 이끄는데로 가야되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떠오르는 지점이 있어요. 어느 지점입니까? 성막이예요.


그런데 성막은 거기에 누가 있어요?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거기에 상주하는 사람 없지요. 제사장이 왔다갔다 하지 출퇴근하지 거기 상주하는 사람 없지요. 보세요.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을 보세요.


없음이 있음을 새롭게 생산해 낸다니까. 있음을. 그런데 없음이 있음을 생산할 때 있는 이스라엘이 말 안들으면 없애버리죠. 자, 그렇다면 하나님 입장에서 있는 것이 기본입니까? 없는 것이 기본입니까? 없는 것이 기본이예요.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이 뭐냐? 나는 없다. 나는 이땅에 없어도 괜찮다 부터 시작해야되요. 없는데 햇빛 주시고 공기 주시고 부모 주시고 태어나게 DNA주시고 정자 난자 결합해서 애 태어났다. 항상 출발점을 없는 것으로 출발해야 되요. 없는 것으로.


90다음에 92가 아니예요. 91다음에 제로가 되버린다니까요. 다시 환원되어 버려요. 없을때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1살부터 91살 까지는 이건 뭐냐? 임시땜빵이라. 이거는 내가 꼭 살아야 될 이유가 나한테는 없어요. 나한테는. 이게 세상 사람하고 차이점 아닙니까?


세상사람들은 태어나게 해주니까 그다음부터 우기는 고집이 무슨 고집이냐? 남은 죽어도 남은 굶어 죽어도 나는 꼭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외손녀 관찰해보거든요. 본의 아니게 관찰을 오래하게 됬는데.


관찰을 해보게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에 뛰어 놀면서 내 밥달라 내 밥. 밥 먹는 시간 한시간이예요. 밥 먹고 그 다음에 엄마 까투리. 엄마 까투리 30분 보고 그 다음부터 저한테 달려들어서 컴퓨터 올라가가지고 컴퓨터에 있는 자기 얼굴 보여 달라고 하는데 그게 벌써 한시간 넘어가요.


해가지고 넘어가면 간식달라고 오거든요. 간식먹고 자러가요. 보세요. 도대체 왜 태어났습니까? 도대체. 왜 태어난건데. 뭐 할라고 태어나요?


그러니까 어릴때부터 계속 순환적으로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은 나는 마땅히 먹어야 마땅하고 나는 내가 즐기고 싶은거 즐겨야 마땅하고 내가 보고싶은 것은 봐야 내가 만족스럽고 무조건 나는 부모가 나는 키워줘야 되고 나는 행복해야되고 이거하다가 자러가다가 히히 이러거든요.


그게 커서 어른되도 또 마찬가지예요. 어른되도. 어른되도 꼭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나중에 91되서 죽었다. 그러면 왜 왔어? 이 세상에.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데요? 이 세상에 왜 태어났어요? 돈 벌을려고? 돈 왜 벌어야 되는데? 남줄려고? 미쳤어요?


그러면 나 살려고. 그거는 뭐냐 하면은 결국은 자기 사랑이죠. 제가 지난 오후설교에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이란 것은 직불카드라고. 사랑사랑같은 소리 하지말고 현찰주고 사랑해라. 현찰 보더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현찰. 그것도 약속어음도 안되요. 손에 딱 쥐어줘야되요.


사랑은 돈으로 하는거지 말로 하는게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릴때부터 우리는 어릴때부터 그런식으로 커 왔어요. 팩트입니다. 우리 외손녀를 봐도. 이것은 사실이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뭡니까? 명령을 받아요. 어떤 상태에서? 명령이 어긋나면 광야에서 죽여버립니다.


그러면 죽여버리면 인간으로서는 손해입니까? 본전치기 입니까? 예? 답이 굉장히 간단한데. 내가 죽으면 손해예요? 본전이예요? 본전이잖아요. 그런데 본전 같으면 주님은 손해냐? 주님은 손해가 없어요.


없는 것을 만들어서 없애는 그 과정속에서 없애야 될 이유가 나오지요. 그 이유가 뭐냐 바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하나님의 취지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취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없는 인간 만들어서 90평생 살다가 없앰으로서 너는 죄값으로 죽고 의가 없어서 죽는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명령자를 줬는데 그 명령자는 없어요.


없어. 그냥 불기둥은 있는데 구름기둥은 있는데 그 안에 나같은 형상의 사람은 거기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냥 예예 알았습니다. 모세는 지금 누구 보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회막 앞에서 하나님의 지시 받고 오는 거예요. 누가 지시하던가요? 없어요.


지시하는 사람이 눈에 안보여 없어요. 참 이 기이하고 신기하지요? 그렇지요? 기이하고 신기하지요? 이 기이하고 신기한 것 신약 때 성령 받은 사람이 그래야만 한다는 겁니다. 이 구약에 지금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은 민수기 17장 이야기를 먼저 하기전에 10장 9절 이야기할 때 이야기 하겠는데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은 민수기 11장에 보게 되면 하나님의 신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할 때 사람들은 오해해요. 뭐라고 오해하냐 하면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이제 이스라엘 잘 되겠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신을 주셨겠지 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민수기 10장 11장 보면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10번씩이나 하나님 앞에 대들면서 모세보고 이야기 했어요. 민수기에 나옵니다. 이럴거 같으면 우리를 애굽에서 왜 데리고 나오느냐. 이럴려고 나왔느냐 누가 하는 말처럼. 여기서 죽일려고 나왔느냐 하는거예요.


이게 일리가 있어요. 백성들이 일리가 있다고요. 백성들은 이미 젊어서부터 어디서 나온 사람들이예요? 애굽에서 나왔지요. 그럼 애굽에서 나왔으면 이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태생이 애굽인이예요. 물론 혈족으로는 히브리인이지만.


모든 문화적 사고방식은 그 의식상태는 뭡니까? 애굽인이라고 애굽인. 애굽인들의 특징이 뭐냐? 지도자 있는거예요. 지도자. 그 지도자는 조건이 있어요. 최소한의 입을 것 먹을 것 보장해줄 때 그 지도자가 지도자 다운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광야에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먹을 것 줬습니까? 마실거 줬어요? 기어이 줄거면서 줄거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자율차 같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요구하는데로 가지 않고 성막이 지시하는데로 가면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은 물이 있는곳으로 가는게 아닙니다.


항상 물이 없는 곳으로 가요. 약을 올려도 보통 약을 올리는게 아닙니다. 물이 없는 곳으로 가요. 그러면 물이 없는 곳으로 가니까 애굽출신 인간들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대로는 못산다. 때려 죽어도 이렇게는 못산다.


자, 이런식으로 우리는 살수 없다 할 때 그들의 의식에서 뭐가 빠졌습니까? 우리는 원래 처음부터 없어야 되 라는 사고방식이 어디로 갔는지 날라가 버리고 마땅히 우리 외손녀처럼 마땅히 먹어야되고 마땅히 나는 살아야되고 살이유가 뭔데?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죄를 지적하면서 이유도 같이 포함되는 것이지 존재 자체가 이유가 없어요. 사는 이유가 없다니까요. 미국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하는 이유가 뭡니까? 없어요. 북한에 김정은이가 핵폭탄 만드는 이유가 있습니까? 없어요. 없다니까요. 아무 이유 없어요.


서울시장이 그 청년들 돈 50만원 준 이유 있습니까? 없잖아요. 미세먼지 있다고 이틀동안 교통비 안 받는 것 그거 이유 있었습니까? 미세먼지 더 많이 생겼는데. 세상에서는 아무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어요. 엘지화학에서 신약개발 이유가 있습니까? 없어요.


왜냐하면 그 약 먹고도 죽으니까. 결국은 91세 되면 죽잖아요. 90 다음에 91 그다음에 제로라니까. 숫자 계산이 이상해. 붕 떳어. 91이 아니고 마이너스 91, 마이너스90, 마이너스. 내가 보기엔 한 40되 보이는데 지금 많이 봐주는거다. 마이너스 40.


그만큼 죽음에 가깝다 이말입니다. 더 어쩔수 없는 세계에 가는 거예요. 구약을 제대로 보세요. 구약은 나 여기 있고 하나님 도와준다. 그게 구약이 아닙니다. 구약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는 거예요.


구약은 뭐냐 하면은 없어도 되는데 지금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사느냐 이걸 되묻는다 이말이죠. 자꾸 없애버려요. 주께서 이상해. 만들어 준거 키워 건사하고 보호할 생각 안하고 자꾸 없애버린다고요.


없애버리면서 중간중간에 유월 되는데 하나님의 신이 임합니다. 신은 뭐냐? 심판이예요. 심판의 당위성, 심판의 정당성. 너희들은 죽어도 싸다. 죽어도 싸다. 그런데 이점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애굽에서 성장했고 사고방식이 애굽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마실물과 고기와 양식은 먹을떡은 있어야 되요. 이 사고방식에서 그들은 스스로 문제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사람사는게 이게 전부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명이라 하는 것은 물이나 떡이나 양식가지고 고기 많이 먹어서 사는 동네가 아니거든요. 물, 떡, 고기는 눈에 보이잖아요. 보이는 세계는 그거는 죄의 세계예요. 보이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안에 순환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무슨 세계냐? 말씀의 세계입니다. 그게 신명기 8장에 나옵니다. 너희에게 만나를 준 것은 마음을 낮추어서 사람은 네모로 살지 않기 위해서 네모가 뭡니까?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님을.


떡과 매치된 인생이 애굽인생이라면 이제는 떡과 매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생명과 매치를 시킬려면 떡 없어야 되는 인간으로 달라져야되요. 그러면 떡을 안먹는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뭐로 산다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4장에서 그 광야에서 예수님 시험할 때 뭐로 산다? 말씀으로 사는 거예요. 그런데 말씀으로 산다고 하니까 교회에서 뭐하느냐 말씀을 자꾸 보는 거예요. 일독했다. 2독했다. 그냥 처 넣는걸 먹는다 하잖아요.


말씀도 처 넣어야 깔대기로 벌려가지고 처 넣는걸 하는데 말씀을 먹을때는 이렇게 성경지식을 신학을 하는게 아니고 말씀에 죄를 지적받는거예요. 죄를 지적받는거예요. 다시 원형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없어도 되는데 주님의 은혜로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자꾸 없어도 됩니다 라는 쪽으로 돌아가는게 그게 말씀을 먹는 거예요. 왜냐? 말씀과 나의 눈에 거울앞에 보이는 나는 대척 관계이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없더라고 말씀이 있다면 나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게 요한복음 1장 4절에 나와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다음에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있었으니. 그러니까 우리는 죽어도 말씀이 건재하다면 그 건재한 생명이 생명으로 인하여 우리는 계속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이것은 사람의 뜻으로 육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자가 다시 말해서 말씀에 의해서 말씀에서 난자들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신이 이 만큼 중요해요. 신의 역할은 뭐다? 심판하는 역할. 우리 출신이 애굽출신이거든요. 애굽출신이니까 이걸 지적질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강의 제목 지적질.


민수기 10장 9절 봅시다. 민수기 10장 9절에 보면 10장에 보면 나팔불어요. 나팔부는데 전에 그 저 은밀한 나라에 보면 나팔의 기능에 대해서 제가 소개해놨어요. 나팔의 기능은 준비하는 기능이 아니고 이미 모든 것이 완료되었을 때 부는 나팔이예요. 전쟁이 마감되었을 때.


대표적인 것이 바로 뭐냐. 여리고성돌 때. 떡줄놈은 생각도 않는데 뭐부터 마신다? 김칫국부터 마시죠. 그 김칫국이 나팔이예요. 떡은 나중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떡은 나중에 먹으면 되요.


예수님의 피는 먼저 마셨어 이미 구원 받고 난 뒤에. 보자~ 내가 도대체 얼마나 죄 지었기에 예수님의 피 아니면 구원이 안되냐. 보자 라고 91살까지 사시면 되는 겁니다. 구원은 챙겨놓고. 구원 챙겨놓고.


도대체 이 구원이 나의 행함과 연관안되고 예수님의 일방적인 피과 성령의 선물로만 구원이 됬는지를 보자하는 마음으로. 보자~~~~보자 하는 거예요. 그러면 보자 하는 이 행위에 대해서 이 행위가 완벽합니까 아니면 보자 하면서 살피는 이 행위가 이 자체가 완벽합니까? 아니면 이게 부족한것이고 미흡한겁니까?


이게 완벽한거예요. 보자 하는게. 이게 자유거든요. 자유라하는 것은 누구한테 예속된 것을 자유라 합니다. 자유라 하는것은 반대말 예속의 같은 말이예요. 누구에게 예속되었냐? 인간세계에서 자유라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예속된 것을 자유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에게 예속된 것을 자유라 해요. 예수님께서 보자 하게 하시면서 제한된 우리가 이 세상을 다 못살잖아요.


제한된 환경, 제한된 부모, 제한된 재산, 제한된 가정에서 태어나서 제한된 학업과 제한된 장사, 제한된 어떤 행위 그 속에서 뭘 발견하느냐? 나름대로의 뭘 발견하느냐? 죄를 발견하는거예요. 죄를.


니가 살면서 아는 죄와 내가 살면서 아는 죄가 이야기 해보면 서로 다르지만 그 죄는 아까 처음에 이야기한 그 죄라 하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내가 원인이 되어서 어떤 노림수로 결과로 노림수를 노리겠다는 이 사고방식.


내가 착한일해서 천당가겠다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을 보자 보는 거예요. 보게되면 이게 없어집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오늘 강의에서 진짜 중요한 이야기 하는데 죄가 없어지겠어요? 죄가 점점더 늘어나겠습니까? 안그러면 없어지겠습니까?


늘어나잖아요. 죄가. 늘어난다고요. 죄가 늘어나요. 왜? 점점 더 살다보면 경험이 많아지니까. 아! 이것도 죄였어? 아니 이것도 죄였어. 헌금도 죄고 강의도 이 강의도 죄고 설교도 죄고 선교한다고 저 알래스카 간것도 죄고. 아 그것도 죄였구나. 보자~아 이것도 죄네.


죄가 점점 늘어나는 즐거움이 있어야되요. 죄가 늘어나는 즐거움. 어떤 울산에 있는 미친 여자분이 계신데 세를 줬거든요. 세를 주니까 나중에 가보니까 입구부터 해가지고 온 쓰레기가 음식 쓰레기 냄새나는 쓰레기가 쌓여있어요.


계속 쌓여있어. 무려 3년 2개월 동안 쌓아놓은 쓰레기가 이만큼되요. 그런데 만약에 한 93세까지 살아보세요. 얼마나 쌓이겠어요? 이 쓰레기 쌓인다고 회개하는 그것도 쓰레기예요. 회개도 쓰레기 회개도 쓰레기예요.


회개도 쓰레기고 성령으로 헌금한것도 쓰레기입니다. 전부 쓰레기라니까. 쓰레기 외에는 우리는 할줄아는게 없어요. 이 쓰레기 모으는 것. 이 죄짓는 것 외에는 할줄아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보자~~이게 보자예요.


왜 이런 것이 정당하냐 하면은 민수기에서 한번 봅시다. 보자. 민수기 11장 17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18절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잼있었다 그 다음에 거기 보면 그 앞에 보면 애굽에 있을 때는


11장 5절에 보면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애굽에 무슨 마트 있었어요?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그 다음에 뭡니까? 먹는 것이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생각!


이것이 사고 방식아닙니까? 이 사고방식을 어떻게 빼냅니까? 어떻게 지워요 이 사고방식을. 짬뽕 맛있는걸 맛있다하는데 이걸 어떻게 지웁니까? 맛있는건 맛있는건데 이게 죄든 뭐든 간에 맛있거든요. 이걸 어떻게 지워요?


주여 짬뽕 생각하지않고 천당가게~ 이게 됩니까? 이제는 라면 그만 먹겠습니다. 그래서 구원받겠습니다. 라면 그만 먹고 구원받은 사람이 없어요. 이게 호사스러워서 그런게 아닙니다. 우즈베키스탄처럼 못사는 나라 있잖아요. 누가 우리에게 우유한컵 줄꼬? 우유가 아주 최고급이라면 그래도 그게 오만이고 교만이예요. 그게.


가난하다고 천당가는거 아닙니다. 부자라고 다 지옥가는게 아니예요. 죄 알기 위해서 부자되게 한겁니다. 죄 알기위해서 재벌 3세 되게 했고 죄 알기 위해서 목공소딸 목공소에서 일하게 만들었어요. 도경이하고 둘이 시안이하고.


전부 다 우리 일어난 모든 지점에서 그러니까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잠언서에 나오지요. 남의 일에 보증서지 말라고. 괜히 또 보증서 가지고 수십억 빚져가지고 또 하지마시고. 왜 남의 인생에 그렇게 관여합니까? 주께서 각자 죄 느끼는 방식이 다 달라요.


부부요? 살아온 환경 다르잖아요. 뭐 맞춰나간다고요? 뭘 얼마나 맞춰 나갈건데? 태생자체가 가정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맞춰나가요? 그저 이혼했다고 치고 사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지. 이미 이혼한거예요. 이혼했는데 아직 때가 안됬음에 때가 이르지 않음에 그냥 사는거예요.


마음을 그렇게 먹어야 범사에 감사하지요. 뭐 요구할게 그리 많으면 무슨 감사가 되요? 요구할게 많은데. 각방쓴다. 원래 각방쓰게 되어 있어요. 총각 처녀일 때 각방썼어요. 붙어 있는게 이상하지. 뭐든지 각방 써도 감사하고 붙어쓰면 더 감사하고 이러면 되지.


꼭 이래야 된다는 원칙과 모델을 짜지 마세요. 그것은 자기가 살아온 환경에 의한 조성된 본인만을 위한 상상의 자기 세계입니다. 소꿉놀이 하는 거예요. 소꿉놀이. 남의 소꿉놀이 따라 할 필요는 없고요. 어차피 죄를 알기 위해서 주신거니까. 마음껏 거기서 죄 지을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한다? 바로 성신이 임함으로서 이 형편에 대해서 성신이 임하지 않을때는 뭡니까? 그들이 뭘했어요? 원망을 했잖아요. 왜 기본도 안해주는냐 기본도. 적어도 기본은 해줘야지 기본은.


마실거 입을거는 줘야지 라고 했는데 성신이 와보니까 아하 우리는 다른 생명, 인간들이 알고 있는 이런 나라 말고 전혀 다른 나라, 떡으로 살지 않는 나라, 물로 살지 않는 나라, 그리고 죽어도 죽지 않는 나라.


그 나라로 우리가 지금 혼자가지 않고 성막과 더불어 불기둥과 같이 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성령과 성신과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마음껏 느끼게 만들어요. 그런데 11장 17절에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뒤에 29절에 보면 29절아니고


10장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 할려고 하냐 하면은 10장 거기에 9절 제가 읽어볼께요.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아까 나팔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빠져 버렸다.


나팔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필히 무엇이 전제 되어 있느냐 하면은 너는 전쟁을 해야되요. 자, 먹을 것도 지금 제대로 못챙겨 고기도 먹고 싶은데 고기도 없어 떡도 없어 그런 판에 또 하나님께서 뭐를 또 갖다 붙이십니까? 당해야될 적군까지 왔을 때.


이거는 뭐 자기것도 안정되지 못한데 적군이 왔다 무슨 되가지고 이기겠어요? 결국 적을 이긴다는 말은 결국 못이기죠. 못 이겨요. 못이기는데 못 이기는 사람들 모아놓고 뭐라고 하냐 하면은 이겼다를 외치라고 이길것이다가 아닙니다 이겼다! 이미 완료된 상태로 불러야 될게 뭐냐 나팔부는 겁니다.


나팔은 여리고성 할 때 여리고성 치러 가기 전에 이미 여리고성을 접수한거예요.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거예요. 김칫국 다 마시고 나니까 떡이 절로 열렸어요. 그러니까 예수의 피를 미리 한사발 예수님의 피와 살을 한 사발 먹고 나니까 비로서 세상이 보인다 이 말이죠.


아!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이는 거예요. 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이 세상에 지저분하게 살게 하셨구나. 아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 지저분하게 살걸. 뭐라고 내가 고상한척하고 온갖 또 되지도 않는 도리 한다고 회개한다고 돈은 돈대로 교회에 다 뺏기고 아이고 미쳤나 목돈 다 뺏기고 내가 속았다.


이게 속아져야되 또! 안속지면 안되 절차라. 목돈 날려줘야되. 목돈 날려주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구원도 못 받고 그래야되. 그래야 정신차려. 안그러면 정신 못차려요.


전부 다 이거는 이미 한사람이 먹고 난뒤에 시작이다. 그러면 피에 취하겠지요. 피에 취하든 술에 취하든 이미 취한인간 취한인간은 눈에 뵈는게 없어요.


그래서 성령 이야기 할때는 에베소서 5장에서 무엇과 대비합니까? 뭐 취하지 말고? 술 취하지 말고 성령 취하라고 하지요. 뭐 그거 알기 위해서 또 술을 한번 마셔봐야되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술 먹어 본적이 없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한 방울도 포도주도 먹어본적 없잖아요. 포도주도? 그렇죠? 술취하는게 어떤 느낌인줄 모르지요? 주께서 행여나 먹으라고 하는게 아니고 눈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강제로 해가지고 입에 넣어가지고 술취할 수는 있어요. 그것도 주의 은혜라 생각하고 감사하세요.


주여 죄인인데 이럴수가 있습니까 하지 말고 성도인데 이렇게 하지말고 그것도 범사에 감사하시고 그냥 먹히세요. 먹으라는 소리 안했습니다 제가. 말 조심해야되요. 강제로 먹이면 먹히되 아 이게 취하는거구나.


완전히 헤롱헤롱 이런게 헤롱헤롱 이구나. 아무데나 오줌싸는게 이게 술 취한 것의 결과구나. 그렇다면 우리는 왜 취해야 되냐? 우리는 이미 죄에 취했어요. 죄에. 틈만 나면 죄짓는 거예요. 틈만나면. 하지말라하면 더 하고 싶어. 말리면 더 하고 싶어요.


죄에 취하세요. 참 좋은거 가르친다. 그런데 본인이 고르지 마세요. 주어진 환경이 나중에 뒤돌아보면 죄 아닌게 없습니다. 다 살아온 것이. 왜 죄 아닌게 없느냐? 감사가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때 이미 수상합니다. 분명히 그거는 죄 작용하고 있어요.


범사에 감사하지 않는데 ‘엄마 이번에 또 떨어졌어요.’ ‘너 죽었다.’ 이럴 때. 뭔가 감사 나오지 않을 때 이미 꿍꿍이 따로 있습니다.


이거는 천국에 부합되지 않는 천국의 성질과 전혀 맞이 않는 오히려 천국과 배척이 되는 애굽적인 사고방식을 벌써 또 주께서 내 속에 성령께서 내 속에 없는 죄를 또 유발시켜 놨어요.


율법이 있음으로서 우리가 뭐한다? 죄를 짓는거예요. 어려서 죄짓는게 아니고 율법을 율법되게 하기 위해서 죄 지을 수밖에 없듯이 성령이 성령되기 위해서 없는 죄를 자꾸 유발시켜 주는 겁니다.


왜? 그래야 십자가 피의 모든 완료가 우리 안에서 완료가 발생되거든요. 성령께서 이렇게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는데 어디로 인도한다고 했습니까? 아까 복습한번 잠시 해봅시다.


물 없는 곳, 양식 없는 곳, 고기 없는 곳, 그 다음에 또 한가지 적군을 만나도록 그렇게 인도해요. 그러면 적군 만나기 물 먹기 그전에 애굽에서는 누구 힘으로? 내가 갖고 있는 나의 노동의 힘으로 이것을 뚫어 볼려고 했어요.


자, 여기서 질문합니다. 이것을 통과했다 칩시다. 적도 이기고 재벌 되어가지고 먹는거 해결했다 칩시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게 뭘까요? 누구의 영광이겠습니까? 자신의 재주와 자신의 놀라운 인내력과 자신의 성실함과 참음의 결과겠죠.


그러면 그 사람이 가는 나라는 뭡니까? 천국이 아니고 어느나라? 그냥 지옥이죠. 지옥. 그냥 지옥인거예요. 그리고 이런 내 찬양, 내 찬미, 나에 대한 옹호와 나에 변명과 이 비겁한 변명 이런 것이 우리가 육이 있는 이상은 안나올수가 없지요. 아무리 은혜 받아도 배고프면 밥먹어야되잖아요. 진라면 먹던지 해야된다 말이죠.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을 때 성령을 받은 사람은 ‘아 주여 감사합니다. 라면 끓여 먹는 이것도 죄였군요.’ 라고 감사의 기도 하고 오늘도 죄를 맛있게 먹자 해서 이렇게 먹는데 성령 없는 사람은 ‘주여! 오늘 이거 먹고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그럼 그거 안줬으면 영광 안 돌릴 참이였어? 기본적으로 라면도 안주고 집에 물도 안주면 영광 안돌릴 참이였어? 그럼 원망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기본적으로 안줬으니까 하나님께 원망해도 하나님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런 시비조 인가요? 그런건가요?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을 자기가 만들었습니까? 이 공기를. 밤중에 심장 뛰는 것은 이것은 자율신경이거든요. 자율신경. 교감부교감 나오지요. 교장 부교감 말고. 자율신경이라고 이거는. 의식없이 자동으로 뛰게 되있어요.


새벽 2시에 일어나가지고 뛰어라 뛰어라 이래서 자고 한시간 쉬고 뛰어라 이래서 심장 뛰는줄 알아요? 살려주는 것은 발걸음도 헤아리는것도 다 은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돈주고 샀습니까?


여러분 열심히 돈벌고 요령껏 버텨냅시다. 왜? 그게 죄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럼 의를 행하자. 의는 없어요. 의는 없다니까요. 행하는 내가 행하는데 무슨 의가 있어요. 그러면 의는 어디 있습니까?


죄를 뭐로 바꿀때만? 죄를 피가지고 바꿔줄때만 그게 뭐 된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주님의 공로가 되고 그 주님의 공로 그게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그냥 사시면 되요. 왜? 그 상황은 살고자 하는 모든 맞닥뜨리는 그 상황은 내가 조성하는게 아니고 주께서 계속 주어지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밀어내지 마시고 아니요 하지 마시고 그냥 받아주세요.


망가지는것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망가짐의 끝은 뭡니까? 이밤의 끝을 잡고? 망가짐의 끝이 뭐예요? 감사지요. 감사! 그동안 안 망가진 것이 감사를 안나오게 만들었잖아요. 버티니까 감사가 안나오고 오기만 나왔잖아요. 그런데 망가지니까 감사만 나온다고요.


제가 그 망가지는 방법에 대해서 지난 낮설교에 마지막에 진짜 상세하게 이야기 해줬어요. 추운날 통 넓은 유리에 따듯한 오후 2시에 햇빛들어올 때 진짜 아무소리도 안들리는 조용한 가운데 홈드레스 입고 커피잔들고 커피 마실 때.


이거만큼 망가진게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한잠 푹 자는 것, 범사에 망가졌거든요. 망가지면 뭐 나온다고요? 범사에? 보일러 안틀었는데 햇빛 나왔으니까 범사에 감사하잖아요. 모든일에 감사하잖아요.


그러면 누가 싫어해요? 원인은 주님이 줬기 때문에 누가 싫어합니까? ‘니가 똑바로 해야 지금 이 좋은 상태를 유지할수 있어.’ 또 마귀가 또 달려 들어요. 니가 이정도로 여유있는 삶을 살려면 니가 기도를 얼마해 되고 성경 하루 몇장 읽어야되고 헌금 십일조 반드시 해야되고 기본이고.


계속해서 내 육이 자꾸 나한테 부담을 계속 주는 거예요. ‘니 인생이니까 니가 책임져야되. 니가 책임 안지면 너 삼대가 작살나. 작살나면 좋겠어?’ 성령받은 사람은 ‘작살나세요 작살나지 없는데.’ 이렇게 나오면 마귀가 기분나빠서 가버려요.


다음에 보자 두고볼 거야 그러고 오고. 만약에 그걸 감당 못하고 ‘그래 맞아 이러면 안되 이 시간에 기도해야해.’ 이렇게 나오면 그 다음부터 계속 악마한테 시달리게 되는 겁니다. 기도 그렇게 하면 안되 꿇어앉아서 해야되.


왜 이렇게 손 모으듯이 안아프지? 아프도록 해야되. 계속 내가 지어내요. 더 난코스. 핸디캡을 계속 줘요. 핸디캡을. 계속 핸디캡을 주는 거예요. 찌릿찌릿 더 찌릿찌릿해야되 이제는. 아이고 속아 넘어가 속터져서 기도하고 마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만 속게 하옵소서. 이미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을 해 버렸는데 성령께서 하셨는데 아직도 나 자신에게 무슨 미련이 남아서 독자적으로 잘났다 소리 그거 과시할려고 악마한테 사로잡히고 놀림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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