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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5 23:48:45 조회 : 239         
포대기 191105 이름 : 이근호(IP:119.18.87.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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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민희(IP:59.♡.122.247) 19-11-19 02:03 
강남-요한복음 총정리(5)-요한복음 12장부터 (포대기)191105a-이근호 목사



오늘은 요한복음 12장부터 하겠습니다. 12장 초반에 보면 거기에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나흘만에 낫게 한 다시 부활시킨 그 나사로 가정 중에서 마리아가 있는데. 여동생이죠. 3절에 비싼 향유, 깨끗한 향수,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이렇게 되어 있지요.


이 이야기는 굉장히 간단해요. 인간학과 그리스도론의 만남입니다. 인간의 움직임을 주께서는 놓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을 다 하시는건 맞는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다 하셨다가 복음이 아니란 말이죠. 예수님이 다 하셨다가 복음이 아니라 인간과 그리스도의 만남에서, 만남에서 여기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복음의 내용이 나오는 겁니다. 만남에서.


그래서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 어떻게 하셨느냐만 보지 말고 그 인간들은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인간들은 어떻게 움직였는가. 만약에 그냥 예수님이 다 하셨다. 하나님이 하셨다가 되어 버리면 이것은 인간들이 알고 있는 상상의 상상한 그 신에 그냥 머물러 버려요.


그러면 신은 존재 한다 신은 모든 일을 하셨다 신은 모든 것을 하셨다 그런건 나오는데 그게 복음이 아니니까 천국에 가지를 못하네요. 그게 문제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하셨다 예수님이 하셨다 그렇게 해서 "이거 정답 맞지? 그렇지? 이거 하자 없지? 이거 누가 봐도 정답이잖아." "그래 정답이야. 지옥가라." 이렇게 되는 거에요. 정답이야. 지옥가거라. 지옥 가거라.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어떤 묘사나 설명은 할 수 있어요. 설명은 할 수 있는데 그건 복음이 아니다 이 말이죠. 왜냐하면 내가 관찰하고 탐색해서 하나님은 이렇다 이렇게 설명하고 규정할 수는 있어요.


하나님은 누구냐? 시험지에 나오면 하나님은 삼위일체부터 해가지고 시험 빈자리를 꽉꽉 채우면서 좋은 점수 맞기를 해가지고 아주 자기 신앙을 듬뿍 담아서 잘 쓸 수는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100점 하겠지요. 100점 맞고 지옥가는거죠. 이게 복음이 아니니까.


하나님이란 신을 자기가 객관화시켜서 자기가 설명자의 입장에 서 있으니까. 설명자의. 하나님의 일을 잘 설명을 해버리면 덩달아 누구의 가치도 같이 올라가느냐 하면 나의 가치도 올라가는 거에요. 나는 하나님을 잘 설명했다. 나 이 정도야 라고 되겠지요.


제 말이 잘 이해가 안 되실거에요. 왜? 성경은 인간학과 그리고 그리스도를 합체했는지. 하나의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눈먼 장님에게 총을 쥐어주고요 총을 쥐어 주고 그 사람의 아무 신체를 하나 툭 건드려 보세요. 그러면 장님은 그 기관총을 들고 자기 건드린 사람을 주저 없이 두두두두두 쏴버릴거에요.


자기를 불편하게 했으니까. 불편하게 만들었으니까. 장님이니까. 장님하면 복잡하니까 안대해가지고 눈을 감기고 애한테 작대기 하나 쥐어가지고 약을 올린다든지 한번 건드려보란 말이죠. 애는 이게 도자기인지 좋은건지 관계없이 무조건 쳐버려요.


이게 인간의 상상력이 나오는 그 결말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의 결말이에요. 내가 신을 알고 있다. 신을 알고 있는데 손에는 뭘 쥐고 있냐면 기관총 쥐고 있고 작대기 쥐고 있다. 결국 인간이 내가 상상한 신을 눈 감고 상상했으니까 신은 누구 편이란 말이죠? 내 편이죠.


내 편이니까 나를 건드리면 내가 갖고 있는 기관총이나 작대기 가지고 되는대로 다 치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을 아는데 네가 뭔데 건드리냐 이렇게 나오겠지요. 그게 바로 인간의 폐해 아닙니까. 인간이 저지른 진짜 도발이거든요 그게. 신을 안다는게 복음이 아니란 말이죠. 모든 인간은 장님들이에요. 상상한 신을 갖고 있다고요. 상상한 신을.


다시 이야기해서 하나님은 뭐냐? 객관화시킨거에요. ‘객관화’. 나를 건드리지 마라. 내가 하나님을 설명할테니까. 하나님을 잘 설명해드릴테니까 제발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내가 잘 설명해줄테니까 나는 건드리지 말라는 거에요.


인간이 자기의 상상력에 뭐가 문제인지를 몰라요. 그래서 교회 교인들 보면 예배시간엔 전부다 앞에 강대상 보고 있지요. 경건하게. 예배 마치면 전부다 작대기 들고 마음속으로 작대기 들고 이렇게 있다니까요. 전부다 검도하기에 나서지요. 톡톡 치고 검도하기에 나서지요. 서로 찌르고 난리도 아니에요.


장님이거든요. 상상력으로 빙빙 둘러 싸였어요. 상상력으로. 프로이트라는 사람은 꿈을 두개로 나눴어요. 하나는 무의식과 하나는 전의식으로 나눴는데요. 전의식 또는 의식. 꿈은 무의식에 나오되 꿈의 해몽은 의식에서 나온다 이렇게 봤어요.


꿈은 무의식에서 나오되 무의식은 미지에요. 몰라요. 모르는데 모르는 것을 의식적으로 조작해내는 겁니다. 응축해서. 응축+전의. 바뀌어서. 응축해서 바뀌어서 응축에서 바뀌는데 그것은 왜 응축에서 바뀌느냐 하면 지금 내 자신의 상상력에 부합되도록 조작해내는 거에요. 소설을 쓰는 거에요.


원래 꿈은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 꿈을 해석하면서 꿈을 설명하면서 자기 주인이 되는 내가 주인이잖아요. 주인 되는 나의 가치를 건드리면 안되거든요. 왜? 막대기 쥐고 있고 기관총 쥐고 있으니까. 남들한테 쏘는 것뿐만 아니에요. 내가 나에 대해서 뭐하면 쏠 거에요.


그래서 주님은 이런 인간의 상상의 둘러싸인 장님같은 인간에 대해서 주님은 너무나 무정하고 살벌하게 이야기하시죠. 주님의 살벌함. 이 주님의 살벌함을 여러분들이 아신다면 오늘 요한복음 12장을 보면서 아이고 마리아는 세상에 믿음도 좋아라. 그 아까운 향수를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 앞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어줬으니까 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얼마나 참 믿음이 대단하냐. 아 나는 마리아 못 따라가. 이렇게 될거에요.


뭐냐 하면 주님의 살벌함을 모른다면 자기 자신을 상상을 동원해서 상상, 상상을 동원해서 예수님 앞에 헌신하는 모습을 스스로 상상하고 객관화하는 겁니다. 그럼 상상하는 것을 방금 이야기했어요. 이게 뭡니까? 무의식입니까? 의식입니까? 의식에서 자기 내부의 상상력을 자기가 멋있어 보이길 조작한거에요.


조작을 거쳐서 의식화되는 겁니다. 편집한다 하지요. 조작을 거쳐서 의식하면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거에요. 나 이 정도로 괜찮다. 그러니까 인간은 장님이거든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요. 그런데 주님의 살벌함은 어떻게 살벌하느냐 하면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어느 어떤 시체가 발견됐는데 손이 잘렸고 현장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손이 잘렸고 발이 잘렸고 그것도 한발 아니고 두발 잘렸고 눈알이 빠져있는 시체를 봤을 때 이거 굉장히 살벌하지요? 이거 누가 죽였어? 이거 너무 잔인하다 이렇게 되겠지요. 살벌하지요. 이 범인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5장을 염두해 보세요. 범인 누구에요? 주님이죠.


누구든지 네 오른눈이 범죄 하거든 빼어버려라. 이거 아닙니까 이거. 이거거든요 이거. 한눈 애꾸된거에요. 한 눈 없지요. 손이 만약에 범죄하거든 오른손 찍어버려라. 이렇지요? 없잖아요. 발이 하거든 찍어버려라. 그러면 예수님 앞에서 인간학은 뭡니까? 완전히 토막살인사건.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텍사스인지 모르겠다만. 엽기적인 영화 있잖아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있잖아요. 몸체를 두른게 아니고 몸체를 마치 하나의 바비 인형도 요새 그렇게 바비인형도 질기게 나온답니다. 바비인형도 만들 때. 바비인형도 질기게 해야 애들이 집어 던져도 안 깨진다고. 바비인형 만들 때 아주 무기 만드는 식으로 아주 질기게.


하여튼 바비인형을 애들이 던질 때 다 깨진다고 칩시다. 조각 조각난 그 파편을 그 파편을 하나의 인형이라고 보지 말고 그게 내 모습이라고 보자 이 말이죠. 누가 그렇게 했느냐 하면 주님이 그렇게 한다고 하게 되면 주님이 우리 보는 시선이 얼마나 살벌하냐 이 말이죠.


오늘 제목을 살벌한 주님으로 할까요? 그 살벌한 주님 앞에 그거 향수 조금 갖고 한다고 그게 뭐 대수고 그게 뭐 헌신이겠어요? 그 아까운 신체가 다 토막 났는데요. 눈, 손 빠지고 발 빠지고 이런 이 아이템은 드라마에 나와요. 21번 드라마 보면 이런거 나와요. 모두가 거짓말인가 뭔가 거기 나오는데.


자, 주님이 이렇게 우리를 토막살인할 때에 우리는 거기서 마땅히 우리의 상상에 의한 신 있잖아요. 상상한 신이 여기서 반발하겠지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님 왜 그렇게 하십니까? 라고 대들겠지요. 왜 그렇게 우리를 밉상으로 봅니까? 왜 우리를 살벌하게 보십니까? 하면 이거에요.


오늘 복음입니다. 원인이 없어요. 우리가 인간이 그동안 악마한테 푸욱 젖었던 이유는 자꾸 원인을 찾기 때문에 그래요. 천국은 원인 없이 가요. 원인을 포기한 사람만 천국가요. 내가 천국 가는데 원인이 없어요. 우리 인간학에 의하면 우리 상상한 신에 의하면 원인 없이 가요.


평생 동안 인간이 마귀의 종노릇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자꾸 꼼지락 꼼지락 원인을 찾기 때문에 원인을. 그러면 주님께서 오신 이유가 아예 원인을 제거해버리는 겁니다.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을 저는 다른 말로 하겠어요.


그건 뭐냐 하면은 ‘말살’. 뭘 말살하느냐. 선입견 말살. 우리의 모든 선입견을 말살하는 거에요. 그러면 악마는 반대로 나가겠지요. 네가 그렇게 된 것은 이게 원인이었어. 네가 그렇게 된 것은 이게 이유였어. 앞으로 뜯어고쳐. 앞으로 정신 차려. 주님이 봤지? 오른손이 하면 빼버리라고 했잖아. 앞으로 오른 눈 간직하도록 해.


이게 지금 마귀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원인도 없는데 왜 원인을 자꾸 뒤에서 악마가 부추기는 겁니다. 네가 그렇게 된 것은 다 원인이 있다. 네가 그렇게 힘든 건 원인이 있다. 제가 과감히 원인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요 모든 말씀은 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간다. 주님이 자기 보고 이야기한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창세기 2장에 보면 선악과 따먹지 말라고 했지요. 악마의 교묘한 술책을 보세요. 이 악마의 술책은 날이면 날마다 가르쳐주는 게 아니에요. 특별히 경상도 말로 특별히 가르쳐 줍니다. 악마는 선악과 따먹지 말라하는 그 말씀은 주님이 하나님이 하나님보고 이야기 한거에요.


그런데 악마가 여자를 앞장세워서 거기에다가 관여하게 만들었어요. 따먹으라고. 모든 선악과 따먹지말라 라든지 생명나무 뭐 어떻게 하지 말라 라든지 모든 말씀은 예수님보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인간이 관여하면 안돼요.


관여했으면 인간이 만약에 주의 일에 관여해버리면 인간은 그때부터 신에서 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신이 되어버려요. 아니 신이 되는게 아니고 신인 척 해요. 신인 척. 자기도 안다 이 말이거든요. 독자적으로 나 스스로 완전할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스스로 신이 된다면 인간은 뭘 찾겠습니까? 최초의 원인은 뭘까? 이제 시작되는 거에요. 앞으로 어떤 원인을 갖고 있으면 어떤 좋은 결과가 주어질까? 이거는 인간이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신경 써서도 안 되는데 자꾸 배후가 뒤에서 악마가 부추겨가지고 "개선해야지 네 인생 만회해야지. 너 그러다가 지옥 가. 천국 가도록 네가 노력해야지."


자꾸 이렇게 해가지고 악마는 인간으로 하여금 천국을 객관화시켜가지고 저 천국 저기 있는데 너 안 갈거야? 너 안 갈거야? 노력해야지. 천국을 객관화해서 정보를 제공할테니까 거기에 맞춘 인생을 살아라. 행동도 거기에 맞춘 행동을 하게 되면 천국에 넣어준다. 네가 하기에 따라서 천국은 들어가고 말고 너 하기 나름이야. 계속해서 원인을 만들어내는 거에요.


그러면 이 마리아의 태도를 통해서 주께서 이야기하는건 뭐냐 하면 이게 왜 성경에 있느냐 하면 예수님 앞에 마리아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죠.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지요? 인간론은 인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요. 둘이 만나면서 복음은 어디서 생긴다 했습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늘이 어떻게 했다고 객관화한다고 복음이 아니지요?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하셨다 해도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고 했지요? 복음은 반드시 인간학이 동원되어야 돼요. 인간이 뭔가 꼼지락 거리고 인간의 움직임이 있어야 돼요. 인간의 움직임과 예수님의 움직임의 만남에서 복음이 나온다고요.


그 둘 사이의 만남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사랑 또는 주님에 대한 기쁨 때문에 내가 말살되어도 상관없다는 이벤트를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내가 말살되어도 상관없다는 이벤트. 나의 말살을 뭐로 표현했습니까? 향수를 탁 깨어버리는 거에요.


향수를 비싼 향수를 다 부어버리는 거에요. 그럼 그동안 기쁨은 뭐였어요? 여자니까 시집갈라고 향수를 모으는 기쁨이겠지요. 그럼 모아진 향수는 누굴 대변합니까? 나의 대변이죠. 상상한 나를 견지하고 있는 겁니다. 상상한 나를 끝까지 포기 못하겠다는 거에요. 내가 상상했다는 것은 뭔가 내가 기대하고 있다는 거에요. 욕심은 뭐냐? 기대하는게 욕심이에요. 기대하는 것.


우리 교회 집사님 아들이 전교 1등 했거든요. 전교 1등 했다고요. 그것도 대구 수성동에서 제일 대구에서 제일 좋은 학교에서 1등 했어요 전교. 그래서 대구강의에서 했어요. 이제는 전교 1등 아니고 전국 1등 해야지?


자, 뭡니까? 기대했지요? 그게 바로 욕심이에요. 악마는 계속해서 기대하게 만들어요. 그럼 기대하게 되면 가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드디어 그 달성목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인제공자가 되어야 되겠지요? 그래서 내가 원인자로 나서게 하는 거에요 이제. 나서는 거죠. 그러면 주의 일에 누가 개입해요? 내가 또 다시 거기에다가 끼어드는 거에요.


그거 실패했다고 좌절하고 또 잘했다고 까불고. 조금만 더 까불이, 까불이 까불이 하지요. 이 까불이 언제 잡을거야? 너 동백꽃 진짜. 지금 15회 넘었는데 아직도 까불이를 못잡았는데. 공효진 불쌍해 죽겠어. 위험해.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틈만 나면 까불려고 해서 내가 원인이 되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까불까불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안에 지금 누가 용수철처럼 뛰고 있습니까? 악마가 까불까불하고 있는 거에요. 원인과 결과를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거에요.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예수님 하나님이 자기 자신 보고 하신 말씀이잖아요. 그러면 성령께서 오셔서 이 말씀을 가지고 그 까불이 하는 우리를 어떻게 합니까? 다 송곳으로 찔러서 완전히 박살내놔야 되겠지요? 그래서 요한복음 12장을 우리가 시작하면서 이 12장 13장 14장 내용이 뭡니까? 우리를 말살하는 내용이에요. 이 내용이. 참 쉽지요? 참 쉽죠?


아까 12장 읽어보라고 했잖아요. 이거 가지고 전도 해보라 했잖아요. 전도 어떻게 할거에요? 완전히 상대방을 말살하는 거에요. 너는 지금 상상의 신을 믿고 있다고. 꿈의 신을 객관화시키고 있다고. 내 손으로 다룰 수 있는 신을 자꾸 상상하고 기대하고 엮어내는 거에요. 만들어내는 조작해내는 거에요.


그러면 그렇게 모든 것을 말씀으로 때려버리면 그럼 이 세상은 뭐로 만들었냐 하면은 이 세상은 이 일은 제가 실제로 본적은 없는데 거의 안 보는데 가끔 드라마 보니까 나오는 이야기에요. 이게 뭐냐 하면 수감생활 하다가 막 출소한사람 에게 뭘 먹입니까? 흰 두부 먹이지요? 그렇지요? 이 세상을 뭐냐? 두부판으로 만들어 버린다.


너 죄인이야. 두부나 먹어라. 두부나 먹어. 물론 제가 상스러운 말은 안하겠어요. 쳐먹어라는 말은 제가 안하겠습니다만 에라이 두부나 먹어라. 주님 보시기에 모든 인간은 말살 되어야 마땅한 눈알 빠지고 그리고 손, 발 다 잘린 그러한 도륙된 토막나도 괜찮은 환자에 지나지 않는 이게 바로 인간들이에요.


왜 그렇게 주님은 잔인하십니까? 잔인할 수밖에 없는 게 주님은 악마와 전쟁 중이니까 그 악마의 앞잡이를 그냥 두면 되겠어요? 잘라내야지요. 악마인데 뭐. 악마의 앞잡이에요. 선악과 따먹고 악마 되었는데 그거 뭘 위로해요. 뭘 배려합니까? 배려하려면 아예 지옥을 만들지 말아야지. 지옥을 놔뒀다는 것은 나한테는 배려 없다 이 말이에요.


천국은요 천국은 주님께서 자질을 묻기 위해서 문제 삼는게 아니에요. 참 이거 이야기하려고 30년 걸렸다. 주님께서는 자질을 문제 삼는게 아니고 성령으로 너한테 준걸 도로 너 뭘 받았어? 그걸 내놓으라고 해요. 구원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자질을 문제 삼는게 아니라니까요. "내가 준거 있잖아." "여기 있네요." "됐어." 합격이에요. 되게 간단하지요.


주께서 인간을 도륙한다고 할 적에 너무 과격하게 하지 마세요 라고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신명기에 여호수아, 사사기 여러분들은 완전히 부정하는 거에요. 민수기. 민수기 신명기. 그리고 출애굽기 까지 포함해서 그 이스라엘이 만들어진 이스라엘 때문에 그 주변 나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도륙 당했어요. 심지어 갓난아기까지 전부다 칼로 목 다 쳤습니다.


늘 이렇게 자애롭고 마음이 너그러운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이렇게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왜 내치십니까라고 여러분 나오신다면 여러분 상상의 하나님을 객관화시키고 그걸 객관화 시킨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선입관으로 꽉 쥐고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일에 까불거리고 시건방지게 지금 관여된 엉터리 자아에요. 이거는 마땅히 지옥 가도 마땅한거에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처럼 상상해서 신을 객관화시키는 이걸 가지고 추상화된 인간이라고 합니다. ‘추상화된 인간’. 어떻게 추상화된 인간 보니까 이 말 자체도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겠어요? 긍정적인 요소가 강하겠습니까? 추상화된 인간.


둘 중에 하나인데. 부정적이겠어요? 긍정적이겠어요? 예? 추상화된 인간. 긍정이죠. 이 긍정에서 나오는게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인권입니다 인권. 하여튼 이거 삼청교육대 보내버려야 돼. 삼청 교육대. 성경에 어디에 봐도 인권이라는게 없어요. 왜? 인간 자체가 가짜이기 때문에. 악마가 만든게 인간이라는 겁니다. 악마가 만든게 인간이에요. 인간이라는게 없어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하나님께서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없으니까 뭐도 없어요? 인권이라는 것도 성립이 안돼요. 제가 지난 낮설교에 우리 모친께서 옛날에 옷 장사할 때 창고에 들어가 보니까 마네킹 많다 했지요? 왜 엉뚱하게 마네킹 이야기 왜 꺼냈느냐 하면 마네킹은 죽었어요. 머리도 홀랑 깎고. 죽어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누구만 모르느냐 하면 상상한 신을 갖고 있는 악마한테 사주를 받고 있는 모든 인간은 본인이 인간도 아니고 하나의 시신에 불구하다는 것을 인간은 본인에 대해서 본인을 몰라요. 초상된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학만 있어요. 여기에 누가 들어 닥쳤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가 들어닥친거에요. 그러면 복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그 인간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새롭게 발생되는 거에요.


자, 여러분들이 거울이 있다 합시다. 전신거울. 여기에 인간이 있고 여기서 예수님이 세워져 있다 하면 예수님이나 인간이나 복음은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은요 하늘에서 그냥 주는게 아니고 인간과의 만남에서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복음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존재 알면 지옥 갑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다가 복음이 아니고 십자가가 복음이에요. 십자가가.


십자가는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예수님은 너희들 원인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인간은 예수님보고 이 세상은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가 원인이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복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히 주님은 이 땅에 뛰어내려와야 돼요.


뛰어내려오든지 그냥 하늘에서 열리든지 아니면 갑자기 방사선 확 해가지고 어떤 사나이가 이렇게 앉아 가지고 터미네이터가 처음 나올 때 처럼 그렇게 하든지 하여튼 하늘에 열려가지고 오든지 온다 이 말이죠. 올 때 이 충돌의 결과물이 바로 복음이라는 겁니다. ‘복음’. 충돌의 결과가 복음이에요.


인간은 뭐냐 하면 우리의 장래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개척할 수 있습니다라고 우기는 거에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정보만 제공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아이템만 제공한다면 우리가 실체를 옮겨서 그리운 천국에 가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냐 하면 너 천국에 들어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너 자신이 원인을 너 자신이 네 행동이 원인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네가 나쁜 짓한다고 지옥 가는게 아니에요. 진짜 이 이야기는 미칠 이야기에요. 내가 나쁜 짓해서 지옥 가는게 아닙니다. 지옥가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옥 가는 거에요.


이걸 우리는 기분 좋게 이야기합시다. 이걸 가지고 기분 나쁘게 들으시면 아직도 자기가 말살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자기의 선입관이 자기 자신을 아직도 쥐고 있는 사람이이에요. 악마적 무의식을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참 다시 천천히 예를 들테니까 다시 여러분 한번 음미해보세요.


장님에게 눈이 감긴 안대를 한 사람에게 기관총을 들게 하고 그 다음에 옆에서 누가 툭 건드리게 되면 그 사람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뭘 보여야 상대를 가리지 그냥 앞뒤 가리지 않고 주변사람에게 막 총을 막 쏴대는 거에요. 총기 사건 미국에 많이 일어나지요. 자기가 마약을 하니까 정신이 없는 거에요.


집에 가장이 술 먹고 들어와 보세요. 지금 발 밑에 이게 밥상인제 자는 아이인지 관계없이 가운데 막 밟고 차잖아요.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만은. 만약에 예수도 안 믿고 권투 좀 했다. 술 먹는다. 이거 뭐 치면 마누라인지 뭐든지 치면 다 부숴지겠지요. 쳐놓고 필름 끊어졌다고 말도 안 되는. 필름 끊어졌다 이러고 끝나고. 필름 끊어졌다 이러면 집행유예. 참 살기 좋은 세상이네.


왜 그런 짓을 하느냐 하면 장님이기 때문에 그래요 장님. 장님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안 보인다가 아니라 모든 보이는 것은 자기가 상상의 결과물로 이미 자기 안에 꽉 채워져 있어요. 자기 영역에 패쇄된 영역 안에 어떤 기운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상상한 것만 가득 차있는 그러한 캡슐 안에 있는 존재.


그렇게 눈감고 있는데 저 옆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하니까 가지고 있는 총 가지고 당신은 메시야가 아니야. 당신은 참된 신이 아니야 두두두두 쏴 죽이는 거에요. 모든 인간의 본성상 악마의 사주를 받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미워하고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제가 아까 동영상 찍을 때 유투브 찍을 때 첫번째 강의 했지요.


두번째인가 첫번째인가? 그 바리새인과 십자가 밑에서 첫번째죠. 뭐라고 합니까? 당신이 지금 당신을 믿어줄 용의는 있는데 당신이 지금 십자가 풀고 알아서 풀고 내려오면 당신 메시아로 받아줄게. 라는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자기 딴에 뭔가 안다는 거에요 지금.


자기 딴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세상 돌아가는 거 알고 섞인 나의 내가 어떻게 훌륭한지를 본인이 잘 짐작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뭔가 내가 객관화할 수 있는 자질이 되고 그리고 나는 내가 원인이 되어서 어떤 결과를 이만한 인생을 살아왔다는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순순히 따랐습니까? 그것을 거부했습니까? 십자가 못 빼고 이렇게 천사 보내가지고 내려왔습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일부러 안하지요 일부러. 일부러 안한다고요. 왜? 십자가 믿을까 싶어서. 십자가 믿을까 싶어서.


상상한 메시야를 믿으면 그것은 천국이 천국답지를 못해요. 내가 당신 하는 것을 보니까 당신이 메시야구나 이렇게 되면 그걸 두자로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두자로. 이거 나만 알지. 물으면 안된다. 미안합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게 '원인'이 되어서 내가 알고 있다가 되잖아요. 그런데 아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은 뭐가 없다? 원인이 없는 거에요. 원인이 없는 거에요.


거울 있고 예수님 있고 거울 있고 인간 있고 서로서로 주고받는 거에요. "너는 원인 없어." 인간은 말하길 "내가 여기 있는데 왜 원인이 없다고 해 우리가 하기 나름인데." 라고 되받아오지요. 되받아치고 되받아치고 여기서 뭐가 생긴다? 복음이 생기는데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를 여기서 가위표했지요. 지워버렸지요.


내가 향수 뿌렸으니까 주께서 예쁘게 봐가지고 천국 보내줄거야 이런거 없어요 그냥. 주님 원인 없음이 너무 기뻐서 그동안 속아서 악마한테 속아 살아온 것이 너무나 분하지만 돌이켜보니까 이제라도 내가 원인 없이 구원받는 것이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서 까짓것 그동안 시집가려고 모아둔 향수 이까짓 것 에라이 예수님 발이 최고다. 그걸 갖다 쏟아버리잖아요. 이게 자유 아닙니까.


다시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자질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우리의 원인을 문제 삼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준 것을 내놔라. 성령께서 이야기한 것 내놔라. 주님이 너에게 어떤 주님이었다는 것을 가르쳐줬잖아. 성령을 통해서. 그거 내놔봐라 이 말이죠. 자질을 문제 삼는게 아니에요. 자격을 논한게 아닙니다.


이제 악마한테 우리는 그만 속을 때 되었지요? 기대하지 마세요. 그것 자체가 욕심입니다. 뭐든지 기대하지 마세요. 토막난 엽기적인 살벌한 주님 앞에 뭐를 조립을 해요. 살벌한데 주님은 살벌한데 오른눈 빼고 오른손 자르고 뭐 눈알 다 빼버리는데 뭘 다시 뭉친단 말입니까? 다 토막 났는데 어느 걸 내 것이라 할 수 있겠어요?


마태복음 10장 거기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흔히 여러분들이 그냥 잊어버리기 쉬운데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했잖아요.


주님의 우리 보는 관점은 너 지옥 가. 지옥 가. 그러니까 네가 지옥 가서 영원한 불로 들어간다는 걸 생각해 볼 때 너를 지옥에 보내지도 못하는 인간을 겁낼 이유가 뭐가 있느냐 말이죠.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지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너 수능 몇 점 나왔어? 그게 뭐가 중요하냐 이 말이죠. 전혀 중요하지 않는 거에요.


그리고 이 말한 예수님을 시인한다면 너 천국에서 내가 너 시인해줄게. 쟤 내 사람입니다. 시인해줄게. 방금 한 이 말을. 다시 말해서 쉽게 말해서 나 주님 보시기에 나는 진작에 지옥 갈 인간이에요 라고 그 예수님이 한 말을 수용한다면 나 천국에 널 데려갈 뿐만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 앞에서 저사람 내 사람이에요 내가 건진 사람이라고 내가 시인해줄게.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천국에서 너를 시인할 것이다.


자, 그동안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어렵다 난해하다 이거 뭐 전도하는데 어떻게 활용할까 이것 가지고 내가 어떻게 앞으로 이 말씀은 완전하게 지킬까라고 고민고민했던 것이 전부다 진정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엉뚱한 해석들 안에 우리가 휘둘렸고 시달렸고 쫓겼던 거에요. 겁을 내면서.


우리 교회 기도를 하시는데 제가 또 그렇게 또 약간 참고 들으시라고 이야기했어요. 뭐 기도할거 없거든 성경 귀절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예배가 중요하니까 했더니 하여튼 뭐 아 그 집사님 얼마나 순종을 잘하는지. 물론 그 성경귀절 뽑는 것도 나름대로 얼마나 본인 은혜됐기 때문에 뽑는거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그런 기도에 대해서 다른 교회 같으면 흠잡을건데 비겁하다 뭐 이렇게 할건데.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말씀을 앞장 세웠는데 누가 흠을 누가 잡아요? 본인이 은혜 받았다는데. 약간은 걱정되는 건 앞으로 다른 사람도 전부다 성경구절. 성경말씀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다시 말해서 기도 하나 하는 것도 왜 힘드느냐 하면 나중에 기도하고 난 뒤에 기도 어땠느냐 하면 자기 안대하고 기관총 가지고 누구야! 나보고 기도 어떻다 두두두두 쏘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건드리기만 해봐라. 쏴 죽여버릴라.


예수님께서는 이 마리아를 가지고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7절에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은 마리아는 그런 뜻으로 했는지 안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하는 그 자아말살이죠. 자기말살. 주께서 뭉개버리는 행동이죠. 뭉개는 그 행위를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했다고 보지 않고 예수님 자신이 자기한테 할 일로 본거에요. 왜? 십자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마리아가 한 것은 마리아가 한 행동은 예수님이 하실 그 십자가 하는 일에 마리아가 이미 예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여기에 그 기능, 역할로 일부 참여한 걸로 주님에 의해서 포대기 싸가지고 그냥 받아들인 거에요. 마리아가 안했다. 그거 내가 한거야. 내가 시켜서 마리아가 한거야.


이렇게 포대기 싸가지고 이렇게 담아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포대기 알아요? 애 놓을때 이렇게 애기는 생글생글 웃고 엄마는 시래기국 끓이고 있을 때 옛날 사진 보면 이런거 있잖아요. 그래서 애 울면 홱 돌려가지고 땡겨 가지고 저쪽으로 휙.


주님께서 마리아가 하는 것을 뭐라 하느냐 하면 내가 죽는 날 마리아가 생각날거야. 왜? 마리아는 그냥 일어난게 아니고 십자가 관련되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럼 마리아는 응? 생뚱맞죠. 왜냐하면 마리아는 원인이 없어요. 주께서 원인을 원인이라고 이렇게 원인 찾아서 집어 넣어놓으면 마리아는 졸지에 주의 하신 일에 주님의 원인에 합세한 바가 되는 겁니다.


이게 뭐냐? 추상적인 인간형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인간형을 설명해야 할텐데 추상적인 인간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어떤 문제해결을 위해서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 같은 인간들 인간1, 인간2, 인간3, 인간5647, 인간72억5476 지금 인간들 다 모으는거에요. 인간들은 개별자죠. 개인인데 이 전체 인간을 모았을 때 이게 바로 하나로 만들 때 이게 바로 추상적인간이다 이 말이죠. 인간형.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나라는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개티스버그에서 링컨이라는 모자 쓴 사람이 뾰족 모자 쓴 사람이 이야기했던거 아닙니까. 수염 이렇게 난 사람. 링컨이 이야기한 거에요. 전통종합 그거 성문종합영어 공부 안했어요?


거기 케네디 이야기 나오는데 국가가 너희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생각하지 말고 네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라. 그걸 교회에다 옮기면 또 마찬가지 되어버리는데. 이게 뭐냐 하면 주께서는 너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라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이게 뭐냐? 인간의 가치는 천부, 하늘에서 왔다.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고귀하고 소중하다. 여기서 나온 정치적 체제가 뭐냐? 민주주의에요. 민주주의. 얼마나 민주주의가 악마적 제도인 것을 알겠지요? 그 내부는 뭐냐?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인이 되어서 우리를 살리는 결과를 내자. 힘 모으자.


그런데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출애굽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보세요. 그런 민주주의가 거기에 통합니까? 안 통합니까? 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작살내어버리죠. 아예 박살내어버립니다. 도륙한다는 말 있지요? 잔인하게 다 죽여버립니다. 이방민족은. 이방민족은 잔인하게 다 죽여버려요.


그런데 이 유대민족은 또 착각해가지고 우리는 혈육적으로 전통적으로 이스라엘로 하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로마가 작살나야 되고 우리는 건재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럼 도대체 예수님께서 다른 이방민족에 오신 것이 아니고 왜 유대민족에게 오셨을까요.


그것은 뭐냐 하면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그 말씀을 인간이 보면서 인간의 자질과 능력으로 결코 그들이 개과천선할 수가 없음을 유대민족을 통해서 증명해보고자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끼어들 쨉이 못 된다 이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이야기할께요.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에게 준거에요. 우리는 원인제공자로 제시되는게 아닙니다. 아직 끝날 때 안됐지요. 조금만 더 해봅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요 우리에게는 일체 구원받을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처지가 아닌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죽어있는 자에요. 우리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어떤 인간도 자질이 없어요. 그래서 첫째 시간을 요약하라면 예수님이 주신 자신의 사명과 목적이 인간의 모든 의미를 깔아 뭉개버립니다. 아스팔트 공사할 때 둥굴게 바퀴 돌지요. 불도저라고 하잖아요. 모든 것을 다 깔아뭉개서 완전히 이거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두부판, 두부로 만들어 버려요.


이미 죄수라는 티를 내면서 너 이거나 먹어라. 너는 하얀 두부나 먹고 네가 죄인이야라는 모든 의미를 깔아뭉개버립니다. 그걸 앞서서 무너진 사람이 누구냐? 바로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입니다. 알아서 긴 거죠 알아서.


자기가 어떤 원인도 나한테는 성립이 안된다는 것을 알 때 이거 알고 참 안 기뻐하면 문제 큽니다. 정말 이건 죽은 마네킹. 정말 이거는 기뻐해야 돼요. 그동안 속은 것만 해도 화 나지만 둘이 악마하고 짝 되서 속았기 때문에 누굴 탓할 순 없고 이제야 비로소 내가 그야말로 오른눈이고 오른눈알이고 뭐 오른팔이고 다 짤려야 마땅한 너절한 시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우리는 마태복음 5장을 통해서 이제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돼요.


인권 같은 소리하네. 무슨 인권이 있어요. 인권 없어요. 같은 인간 모여 봐야 뭐 거기서 복음 나오겠어요. 똑같은 인간들인데. 유대인들이 마음을 안 합해서 예수님을 죽였습니까? 예수님 죽일 때 그들 혼자 독단적인 결정이었습니까? 마음 합한 결정이었습니까? 마음을 합했잖아요.


그 미가야 제가 얼마 전에 설교했잖아요. 그 미가야 할 때 400명의 선지자가 왜 그렇게 세상에 생각이 똑같은지 똑같은 생각을 가졌지요? 오후예배 때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미가 야만큼은 반대를 했습니다. 왜? 미가야는 뭐와 연결되어 있습니까? 관계가. 천상과 연결되어있어 가지고 너희 다 거짓말쟁이다 해가지고 그 소리했다고 또 귀때기까지 미가야 또 뺨을 맞지요. 예수님도 뺨을 맞았으니까. 쉽게 말해서 세상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말라 이 말입니다.


자, 나한테 원인이 아니란 말은 모세가 네 책임이 아니다 라는 뜻이에요. 네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너무나 기쁜 소식 이고 성령이 없는 사람은 너무나 화나는 소리이기 때문에 결국은 합세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됩니다.


너나 꺼져라에요. 나한테 그런 소리하려면 내 가치를 무산시키고 짓밟고 말살하는 그런 것은 나는 그런 것은 기관총으로 쏴 죽여버리겠다. 누구든지. 그러니까 내 기관총 맞고 죽어라해서 죽은 것이 누구냐? 예수님이고 그렇게 해서 없던 데서 새로 생긴게 뭡니까? 바로 복음이 생긴 거에요. 십자가 복음이.


그러니까 부활했다는 이야기 백날 해도 그거 복음입니까? 복음 아닙니까? 아니지요. 십자가 들이대야 우리가 어떤 존재인 것을 십자가를 통해서 안에서 새롭게 분명해지잖아요. 부활 들이대게 되면 아이고 좋아 은혜네 또 이런 거에요.


그래서 첫째 시간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 드릴 것은 이 인간학과 인간학+그리스도 행함, 그리스도의 고난 이게 같이 들어있는 사람이 바로 성도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뭐냐 하면 인간학만 있어요. 인간학. 인간학은 아까 뭐라고 했어요? 뭘 존중한다 했습니까? 인권이죠. ‘인권’. 장님이 기관총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인권이에요 인권. 건드리기만 하면 죽인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런데 성도는 인권인데 거기에 뭡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추가되니까 비로소 나라는 인간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그러한 악마의 앞잡이인 것을 드러낼 때 까짓것 향수가 문제입니까? 나는 늘 매일같이 말살당해도 마땅하지요. 말살당하는걸 아까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애초부터 내가 있어야 될 원인 자체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말살 당해도 그거는 당연한 거죠.


10분 쉽시다.
 홍민희(IP:59.♡.122.247) 19-11-19 02:04 
강남-요한복음 총정리(5)-요한복음 12장부터 (포대기)191105b-이근호 목사



인간학과 그리스도의 이중화 구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예수님의 복음에 십자가에 준하면 인간, 모든 인간들의 특징이 뭐냐? 원인이 없는데 자꾸 원인을 들이대는 식으로 예수님께 십자가로 몰아간다라는 결론에 도달됩니다.


자, 그걸 보고 12장 6절부터 보게 되면 나사로 때문에 사람들이 믿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지요. 유대인들이요. 그런데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이유가 뭐냐 하면 나사로 본인한테 백날 물어봐도 나사로 본인은 살아난 이유를 몰라요. 원인이 없다니까요.


없는데 유대인들이 걱정하는 것은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아 질까봐 걱정을 하는데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왜 안되는데요? 그것은 자기들이 기대하고 기대하는게 욕심이라고 했잖아요.


기대한 것이 뭐냐 하면 내 편 많기, 우리 편 많기에 지장을 준다 이 말이죠. 그럼 우리 편이 많으면 많기를 왜 고대합니까? 우리 편이 많으면 진리에 그만큼 진리가 더 가까워질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여기는 거에요.


같은 패가 많아지게 되면 우리는 진리에 가깝다는 마음적인 정신적인 안정감과 안심이 되니까 바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 죽어야 될 이유를 그들이 제공한 셈이 되지요. 그들은 계속 원인을 찾는거에요. 무슨 원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천국 갈까? 그 원인을 찾는 거에요. 나중에 죽으면 천국 가겠다는 기대가 욕심인 줄도 모르고.


여기에 12장 14절에 보면 13절에 종려나무 들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지요. 많은 사람이 이제 이렇게 하니까 이것도 이제 그 당시 지도자들은 또 이게 걱정이라. 또 팬들 많이 질까 싶어서.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해석은 성경해석 어떻게 한다고요? 인간학과 그리스도를 쳐서 예수님이 살아계시다가 아니라 복음이 십자가를 뽑아내는 식으로 해석을 해줘야 되는데 그 해석이 되려면 반드시 인간 원인을 찾는 인간들과 그리고 인간에게 원인을 말살하는 주님과의 만남과 그 충돌과 다툼과 투쟁 속에서 복음이 제대로 이게 생산되는 거에요.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모든 해석이 어렵지 않고 다 되는 거죠. 물론 그 인간학이란 그 인간 속에 우리도 평소에 포함되지요. 그래서 이게 말살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여러분들이 뭐를 말살하라는 말입니까? 라고 했을 때 말살이라는 의미를 쉽게 알려면 반대말을 동원하면 되겠지요.


말살의 반대말은 뭐냐 하면 조바심이에요. 조마조마 조마조마. 지금 수능 일주일 밖에 안 남았지요? 조마조마 조마조마 일주일 더 남았나? 고3 있는 부모들 얼마나 지금 마음 졸일거에요. 우리교회 수요예배는 수능 앞두고도 꼬박 참석하니까 고3 있어요. 아주 얼굴이 밝습니다. 얼굴 밝은 사람하고 상대하라고 했잖아요. 얼굴이 아주 밝아요. 조바심이라는게 어디에도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바심이 생기거든 아직까지 또 말살 될게 올라왔다 할 때는 성령께서 두부를 먹입니다. 에라이 이거나 먹어라. 두부를 먹이는데 그게 성령께서 우리의 원인성을 잘라버려요.


네가 이번에 되어질 결과는 네 원인하고 아무 상관없고 네 자질, 착하다 훌륭하다 악하다 아무 상관없다. 너는 아예 일어난 일에 대해서 네가 일체 관여한바 없다. 다만 소급해서 너에게 일어난 일을 내 일이라고 소급해서 포대기에다가 싸가지고 업어버리지요. 오늘 제목 ‘포대기’. 이 단어를 잊어버릴라. 기억해라. 포대기 싸가지고. 나중에 다 기억이 안나요 하여튼. ‘포대기’.


그 다음에 20절에 봅시다. 20절 왔을 때 이방사람들이 몇 명 와요. 헬라인 중에서 20절에 보면 왔다 이 말이죠. 그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렇게 갑자기 24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주님께서 제공하는 원인은 나는 죽음이 원인이 돼요. 예수님이 죽어야 그 다음에 뭐가 생긴다? 구원이 발생되고 천국 백성이 만들어지는 거에요. 천국 백성 생기는 거에요. 인간들이 기피하는 그것이 바로 주님이 제공하는 원인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죽음 쪽으로 가자 하니까 갈사람 아무도 없지요. 아무도 없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니까 우리가 구원받는 거에요. 우리가 원인을 제공 안 하니까 구원받는 거에요. 이제 여러분들이 이해되십니까?


구원 받는데 우리가 일체 한 것이 없기 때문에 구원, 천국 가는 거에요. 왜? 천국가면 일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많고요 지금도 그런 궁금한 점이 있을 텐데 내가 예수 믿는데 저 사람 다 같이 복음 아는데 저 사람처럼 나는 달리 사는데 그럼 나는 구원되는 거 맞습니까? 라고 걱정을 할 수가 있어요.


왜? 우리는 맨날 원인을 또 육신이 약하므로 만들어내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뷔페 식당에 보세요. 뷔페 식당에 집에서 뷔페 식당에 집에서 접시 가져갑니까? 아니지요? 식탁 밑에 접시 딱 있잖아요. 초밥 뷔페가면 접시 쫙 있다고요.


동일한 접시에 똑같은 것을 담습니까? 자기 취향 따라 담습니까? 취향 따라 담지요. 십자가 피라는 쟁반 위에 뭐를 담아도 괜찮아요. 누가 묻습니다. 당신은 그 음식 어디서 가져왔습니까? 십자가에서 가져온 겁니다.


십자가 묻힌 음식 같으면요 어떤 음식이라도 우리의 원인을 잘라낸 음식이기 때문에 다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겁니다. 어?! 내가 온 것은 어떤 사람은 초밥을 안 좋아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초밥 없고 중국음식 탕수육만 담고 잔치국수나 뷔페 2만원 내고 잔치국수나 두 그릇 먹고 아 그런 사람 있다 이 말이죠. 누굴 보고 이야기하는건 아닙니다만은 잔치국수에 김치 놔보세요 맛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초밥을 가져온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초밥은 가져오되 밥은 먹기 싫어서 밥만 다 떼 내고 회만 먹다가 심지어 뷔페 가가지고 싸우는 사람 있어요. 있어요 그런 사람 있다고 하니까 미국에 계시는 이 목사님. 미국 스타일이니까.


돈 내고 내 맘대로 먹는데 네가 왜. 손님 그렇게 드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밥 내가 다 먹었어요. 그 본인이 뭘 담든 오뎅을 담아오든 뭘 담아오든 접시는 그 집 접시 아닙니까. 주님께서 인간을 동일하게 살게 하지 않으셨어요. 행여 남 따라 갈까봐. 저 사람처럼 되야 저 사람처럼 살아야 천당갈까봐 라는 그런 원인을 또다시 만들까 싶어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에요. 동일한 접시,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접시에 담아야 합니다. 왜? 어떤 인간도 주님을 욕되게 하고 주님을 죽게 안 만든 인간이 없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께서 죽으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고백이 그 다음에 그 인간이 어떤 인생을 살든 그 사람의 성격과 자질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성령이 준 십자가가 쟁반이니까. 쟁반이니까.


물론 이런 이야기를 고3 보고 하면 곤란하겠지요. 엄마 나 대학 안 갈래. 나 공부 안 할래. 나 엄마 아는 복음으론 같이 알았어 이래 가지고 실제 그런 일이 있어요. 10살 먹은 아이인데 이름이 민준이라는 애가 있어요.


민준이라는 애가 교회 가니까 사우디에 있는 한인교회 가니까 그 교사가 전도사인지 그런 이야기했어요. 이 세상은 지구는 멸망한다고 했어요. 그 소리 듣고 10살 먹은 애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엄마 지구가 불로 멸망한데.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 막 이러는 거에요. 왜 그러냐? 내가 너무 사는게 힘들어서.


엄마가 생각해보니 왜 그러나 보니까 숙제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숙제. 얼마나 믿음이 좋아요. 글쎄 믿음이 좋은지 나중에 두고 봐야 알겠지만. 세상에 멸망한다는게 복음이 아닙니다. 그 멸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문제 있어요. 진짜 내가 천당간다는 것은 욕심이거든요. 왜? 기대니까.


우리는 천당가는 것 조차도 욕심, 죄가 되고 욕심이 되는데 천국은 뭐냐 하면 거기 가기 전에 아예 천국 갈수 없다는 것을 자기가 자각해야죠. 아무리 천국 좋지만 내가 갈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그 나라는 쟁반에 있어야 되고 예수님의 죽음에 담긴 내 인생이 되어야 돼요. 내 평생이 되어야 되거든요. 그것이 하나의 밀알 되는 거에요.


하나의 밀알이 되 버리면 그 죽음은 사라지는게 아니고 죽음은 그 뷔페 식당처럼 죽음은 밀알 안에 껍데기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붕어빵 구울 때 앙꼬 다 집어넣지요? 예수님이 자기 죽음을 다 집어넣어요.


그러면 그게 성령인데요.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께서 성령께서 말살해 줍니다. 원인을 말살해요. 사람 죽인다는 뜻이 아니고 계속 원인을 말살하지요. 원인을. 네가 너 된 것은 네가 아니라 나의 은혜라고 계속 이야기를 해주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주의 은혜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이 너 바보야 하면 내가 죄인이니까 마땅한 이야기했지. 바보라고 할 때는 너는 마네킹이야. 너는 죽은 마네킹이야. 자기가 죽어있으면서 죽은 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 다음에 12장 39절 봅시다. 39절에 보면 또 아까 첫째 시간에 해석한게 또 이게 응용이 돼요.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자, 첫째 시간의 말씀을 여기에다가 적용시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원인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가 돼요. ‘인정하지 않는다’. "야 나 그 말씀 듣고 깨달았습니다." "응 아니야. 아니야 그거 아니야." 깨달았다면 그건 결과적으로 깨닫게 해주신거죠. 제목이 뭐라고 했습니까? ‘포대기’. 후차적으로 오신 성령에 의해서 포대기 담아보니까 아, 주께서 성령에 의해서 깨닫게 하는 것이지 내가 어떤 능력이 되고 똑똑해서 깨닫게 된 것은 아니지요.


자, 41절에 보면 왜 그렇게 인간을 차단시키고 인간을 말살하고 인간을 완전히 엽기적으로 잘라버리고 사람을 시체 취급하느냐? 그것이 뭐의 영광이냐 하면은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돼요. 그것만이. 노래에 그런 노래 있지요? “그것만이 내 세상~~” 하는 그런 노래 있지요? 전인권이가 부른 노래인가?


다음 주 낮 설교에 내가 살아있으면 올릴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는 노래가 김광석 노래 나올거에요. “일어나~~일어나~~~”.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원인성을 잘라낼 때 그게 영광이에요. 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에.


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인간이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어요. 이거 대구 강의에서 했지만 상대적 죄 밖에 모르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을 누구한테 줬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거에요. 그래서 기어이 예수님께서 의인은 하나도 없게 하시는 그 작업을 제발 우리가 나서서 말리지 맙시다. 우리가 아는 체하고 까불이 되가지고 말리지 말자 이 말이죠.


주께서 얼마나 우리 자신을 말씀의 포대기에 담아서 우리가 나 된 것은 전부다 말씀의 계 잡은대로 계약서대로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감사해야 돼요. 말살되는 즐거움이 있어야 돼요. 말살되는 즐거움.


45절 봅시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빛과 어둠이 나올 때 지금 우리교회 낮 설교가 빛과 어둠이에요. 다음주도 계속 돼요 계속 되는데 제가 이렇게 설교하면서도 한구석에 늘 미흡함을 느끼는 것은 빛과 어두움이라는 이것이 그러니까 이게 실체가 없거든요.


그런데 성경에는 분명히 나오잖아요. 빛과 어둠. 나오니까 지금 우리 교회는 안 그러겠지만 지금 사람들은 뭐냐 하면 나 개별자 나 천당 보내 달라고 지금 이 말 듣고 있으니까 설명하기가 굉장히 난처한 거에요. 빛이라는 것은 개별자보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어둠도 개별자에 속한게 아닌데 이거는 남 말고 나 오늘 교회 나왔으니까 나 천당 보내달라 하니까 개별자로 들이대니까 자기가 태양열 태양광 판넬도 아니고 태양열을 왜 자기만 받아야 돼요.


요새 그 태양광 그 사업 반토막 났어요. 하지 마세요. 수입도 없고. 태양 그 태양이 있는데 태양광 패널 차지해가지고 내가 그 혼자 독점해 얻겠다는거 그거 안 되거든요. 이거 없어야 되거든요. 빛과 어둠이라 하는 것은 이거는 그래서 이거는 뭐냐 하면 이걸 신화적 개념이라고 말 쓰는데 말 써놓으니까 내가 후회했어. 신화적 개념이 더 어려워.


자, 이 말을 하지 말고 초월적 개념이라고 해야 해요. 언어를 초월한 개념이에요. 빛과 어둠. 이것을 제가 쓰면 욕 얻어먹겠는데 지금 주님이 쓰시고 있다 이 말이에요. 너희는 어둠이었는데 빛을 보았다. 너무나 이거는 초월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가 아니거든요.


내가 빛으로 세상에 왔으니 세상은 어둠이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 어둠에 거한 자 믿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믿는 자는 이렇게 되면 이 믿는다는 말은 개별자를 말하는 이 믿는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다? 빛과 관련 되서 추가적으로 추후적으로 제공되는 예수님의 연장된 일이 되겠지요.


왜? 어두움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어둠아 너 믿음 있잖아. 빨리 그걸 믿음 끄집어내.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고 어둠은 완전한 깜깜이에요. 어두워야 돼요. 그들의 믿음 소망 사랑도 다 쓸모짝 없는 어둠이 된다고요.


그러면 빛과 관련해서 믿으려면 믿을 수 있는 새로운 빛과 관련된 태양광 패널이 또다시 여기서 택배로 직구로 하든지 택배로 하든지 또 주어져야 된다 이 말이죠. 그거는 성령이 오고 난 뒤의 일이에요. 성령이 오고 난 뒤.


성령은 우리 믿음까지도 말살해버려요. 왜? 주님의 믿음 있을 자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믿음이 방해되지 않도록 잘라버려요. 우리의 소망 사랑 다 잘라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우리의 자질을 문제 삼지 않지요? 왜냐 하면 내가 성령을 너한테 보낸다 이 말이에요. 마지막 날에 성령을 보내는 거에요. 그럼 마지막 날은 언제냐 하면 바로 마지막이라는 이 말 조차도 우리가 아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직선 된 시간이거든요.


자, 이 그림 여러분 잊지 마세요. 시간이 일직선 된 시간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이 과거의 직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거는 우리 생각에 원인 결과를 모으다 보니까 원인 결과만 모아서 이게 역사가 된 거에요.


그러니까 역사가 시간은 단선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들어낸 거에요. 인간이 지어낸 거에요. 과거라는 것은 없어요.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고 있는 것은 자기의 몸뚱아리밖에 없어요. 몸과 관련된 주님의 언약, 프로그램 그것밖에 없다니까요. 이게 성경의 이야기에요.


그런데 인간이 있다면 인간은 자기의 몸을 생각하면서 과거와 자꾸 연결하다 보니까 과거를 자꾸 과거가 지금 나에게 영향을 줬다고 자꾸 생각하는 거에요. 왜? 과거가 원인이 되니까 지금 결과가 나왔고 그 외에는 달리 지금의 나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배가 고팠는데 육개장 먹으니까 배부르다. 지금 배부른 이유는 내가 육개장을 먹은 조금 전의 사건이 지금의 나를 배부르게 한다라고 자기의 배부름을 설명을 하는데 그게 맞다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뭐냐 하면 그 배부른 육체 가지고 오른눈이 범죄 하거든 오른눈을 빼버리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배불러서 채워놓은 이 오른눈이 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걸 빼야 돼요. 그러니까 주의 말씀대로 하게 되면 손을 이 배에 가져와야 돼요. 지금 배가 뚱뚱한데요. 뱃속에 집어넣어야 돼요. 그럼 창자 있지요? 창자를 끄집어 밖에 던져버려야 되요. 배를 자르고 창자 집어던질 때에 내 안에 있는 과거라는 것을 집어던질 수 있어야 돼요.


집어던져야 돼요. 왜?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거든요. 아 과거에 잘 나갔는데 과거에 잘 나갔는데. 있지도 않은 과거 가지고 계속 잘나갔는데. 이 집 중국집 맛있는데 주인 바뀌고 난 뒤에 왜이리 맛이 없지? 4일 굶고 그 집에 가보세요. 맛있지. 그러니까 과거에 옛날 주인이 그냥 좋은 재료에다가 막 덤으로 더 주던 것이 생각나가지고 지금 짜장면이 맛이 없어.


참 인간이 이 정도로 지금 빗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선과 인간의 시선이 빗나가고 있는데 이게 바로 빛과 어둠이요 악마와 성령의 차이점입니다. 악한 영과 선한 영, 성령의 차이점이 이만큼 이렇게 엇나가게 만들었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말하는 종말은 뭐냐? 이렇게 해가지고 꽃신. 꽃신 보면 신발이 있는데 앞에 보면 이렇게 휘어지죠? 스키같은 거 있잖아요. 우리는 분명히 미래가 있는데 예수님 십자가 죽고 난 뒤 그 다음부터는 시간이 휘어져서 누굴 향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을 향하여 와버려요.


그러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역사적인 어떤 실존인물이라 생각해서 역사 속에 한 일부를 차지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고 난 뒤에는 일부가 아니고 예수님이 구름 타고 위에 올라가지요. 올라가면 예수님의 마지막 때는 어디를 겨냥합니까?


예수님 쪽으로 다 쏠리게 되어 있어요. 과거로. 소급해서 과거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일어난 일이고. 예수님의 펼침, 예수님의 전개. 예수님 이야기의 펼침이다 이 말이죠. 이걸 펼쳐 버리면 역사가 되고 이걸 접어버리면 예수님 중심이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제자들이 사도행전 1장에 묻지요. 예수님 어느 때에 그런 일이 있어야 됩니까? 그 날과 그 시에 대해서 네가 알바 아니요. 너는 예수님만 알면 되지 네가 알고 있는 시간 의식에 근거해서 그거 계산해서 뭐할라고. 그 계산하는건 666 문신 받지 말고 그거나 하라고 해요.


핀란드같은 그런 나라에서는요 핀란드. 거기는 인공지능으로 재판하는 나라거든요. 소액재판. 인공지능으로 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손목에다가 바코드를 다 심어놨어요. 얼마나 편리한지. 띠릭. 띠릭. 띠릭. 바코드.


그러면 그 나라 666입니까? 악마의 나라에요? 그러면 그 나라 하지 말고 아예 IS거기 살지. 이미 인간 안에 암호가 들어 있습니다. deoxyribonucleic acid. DNA. 인간은 육신은 처음부터 암호화됐어요. 암호화 되서 그 DNA를 편집하고 조작해버리면 인간이 원하는 그런 아기가 생산될 수 있어요.


그것도 귀찮으면 아예 따로 인공자궁을 만들어서 그냥 정자만 제공하고 난자만 제공해가지고 고통 없이 거기에서 기계로 아이를 놓되 그냥 낳는게 아니고 IQ 150 이상 모든 옵션을 다 집어넣어요. 옵션을.


내려오는 당뇨병, 집안내력 당뇨병 다 빼버리고 그 유방암 요소 그 유명 여배우 있잖아요. 그것처럼 젤라인가 졸라인가 그 사람처럼 하지 말고 DNA내려오는 그 모든걸 다 제거 안젤리나 졸리처럼 수고스럽게 하지 말고 아예 그러한 DNA 암을 유발하는 요소를 다 빼고 당뇨 빼고 그리고 살찌는거 다 빼고 간 나쁜거 다 빼가지고 괜찮은 아이를 생산하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뭐 윤리같은 소리하고 있네. 돈 앞에 무슨 윤리가 있어. 돈 보면 나중에 윤리가 없지요. 필요 없다 이 말이죠. 마지막 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인간의 모든 원인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행함 일체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령을 보내셔서 구원하는 그때가 마지막 때입니다. 그때가 마지막 때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성령 오게 되면 이미 우리는 골로새서 3장 4절의 말씀처럼 이미 우리는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내안에 없어요. 왜? 나는 이 육신은 세월 따라 곧 죽어야 될 몸이고 다 무너져야 될 몸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의 생명은 따로 보관했습니다. 손탈까 싶어서. 악마가 손탈까봐.


다시 말해서 내 행함과 자질이 주께서 주신 영생에 흠집을 낼까봐 보관을 아예 하늘로 따로 챙겨놨어요. 우리가 까불 까불 까불이 해도 구원받아요. 왜?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 안에서 따로 보관해 놨기 때문에. 주님의 책임지고 그렇게 생명을 보관해 놓습니다.


누구의 생명 말입니까? 라고 물으면 예수그리스도의 피 쟁반, 피 위에서 만들어진 인간은 다 그렇게 해요. 피 안에 피가 들어있는 생명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우리가 말살 당하면서 알지요. 이거는 성령께서 알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그러한 획기적인 정신이 획기적으로 눈을 뜬다 할 거에요. 성경대로 하면 눈을 뜬 상태거든요.


그렇게 획기적으로 내 자신을 아는 경우는 성령이 아니면 몰라요. 이거는 근원적으로 이거는 지금 잘못했습니다가 아니라 아예 근원적으로 나는 처음부터 뭔가 잘못됐다.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뭔가 이상해. 잘못되게 태어난 거에요. 이걸 성령으로 오는 순간 소급해서 한꺼번에 아 내가 어지간히 엉터리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겁니다. 참 이게 알아요.


그러면 우리의 남은 인생은 뭐냐 하면 바로 주께서 음식을 담잖아요. 음식을 담을 때 천국가면 음식을 다 버린다해요. 여기 기타 있잖아요. 줄 달려 있거든요. 만약에 기타를 제가 잘 쳐가지고 빈센트 노래 한번 탁 불렀다고 “Starry Starry night~” 갑자기 와~~짝짝짝!! 할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 쟁반은 노래 잘 부르는 그 쟁반은 천국가면 소용없어요. 왜? 전교 1등한 것도 소용없어 갖다버려요. 그게 방해되기 때문에 그래요 방해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광은 뭐냐 하면은 내가 못 믿어야 되는데 믿게 되었다는 그 사실만 남아야 영광이에요.


왜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가? 이미 주께서 하나의 밀알 될 때 우리도 같이 죽은 자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죽은 자에게 기타 쳐가지고 뭐 “Starry Starry night~” 노래 불러봐야 뭐 의미 있어요? 죽었는데. 땅에서 찬양하면 하늘에 녹음되어 있다고요? 하늘나라 어디 방탄소년단 있을 리 있어요?


13장 봅시다. 마지막 때 성령 오게 되면 다 살린다. 이거 꽃신 있지요. 스케이트처럼 휘어서 주님 안으로 쏠리는 거에요. 그래서 몇월 몇일날 오는게 아니고 주님이 오시지요. 재림은 주님이 오는 겁니다. 몇월 몇일날 오는게 아니고. 그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거에요. 너희 캘린더 계산 내가 다 인정 안한다는 거에요.


13장 봅시다. 13장에 보게 되면 거기에 예수님께서 유월절날 예수님께서 그걸 하지요. 발씻어 주는 대목 나오지요? 발 씻어 주는 대목을 이렇게 생각하면 제일 쉬워요. 애들 초등학교 애들 선생님이 애들 숙제 잘하면 푸른 도장으로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 주지요. 도장을 찍어 주듯이 발을 씻겨 준거에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 도장 여기도 찍어주고 여기도 찍어주고. 도장은 참 잘했어요 한방만 찍어주면 되요. 그 도장이 뭐냐 하면은 너희들을 끝까지 사랑한다. 이게 내 스케줄이다. 이게 예수님의 스케줄이에요. 예수님의 스케줄이기 때문에 이걸 우리의 스케줄로 가야 돼요? 가지 말아야 돼요?


이 스케줄을 진행하면서 성령께서는 뭡니까? 우리들의 원인성과 우리들의 스케줄을 잘라내는 작업을 병행해줘야 그래야 성령께서는 주께서 하신 일만 드러날 뿐이거든요. 그게 바로 요한복음 16장 뒤에 나옵니다.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님의 하신 일만 드러내고 거기에 인간이 방해되는 어떤 것도 다 차단시켜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여기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에 10절에 보면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라고 한 것은 목욕했다는 증거로 발을 씻었다 이 말이죠. 이미 목욕된 상태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너희는 너희들이 스스로 자기가 더럽다 하지 마라.


더럽다 아니다는 너보고 네가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에요. 우리는 더러운게 아니고 우리는 더러운게 아니고 죽은 자이지요. 우리는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죄인이라니까요. 그 차이를 생각해야 돼요.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죄인이에요. 있는 죄가 발산되지 새삼 죄 짓는다고 죄가 더 추가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그 죄는 뭐냐 하면 예수님의 스케줄을 막는 것, 예수님의 완성을 막는게 죄입니다. 죄는 다른 복음은 뭐냐? 다른 복음은 다른게 아니고 십자가 그 천국가는 그 구멍을 가리는게 죄지요. 뭐냐 하면은 십자가의 가치를 막는게 그게 죄에요. 아이 패죽였다고 죄가 아니고 십자가 복음을 막는게 그게 죄라니까요.


유일한 천국 가는 길을 틀어막는다니까요. 누가요? 목사들이요. 왜? 교회 키우기 위해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이런 노래 불러가면서. 교회가 성령 없이 운영됩니다. 성령 없이. 그럼 성령 와서 운영하면 안 되느냐? 성령 오면 교회가 운영이 안돼요.


왜냐? 교회 자체가 주님의 복음을 가로막기 때문에. 날마다 교회를 없애버리고 한주 지나면 교회 만들고 또 흩어지면 교회 없애버리고 또 만들고 그렇게 되게 하지요. 있는 교회가 나타나는 것이지 인간이 쥘 수 있고 붙들 수 있는 교회는 주께서는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 교회는 발생되는 것이지 존재하는게 아니에요. 이거 끝나고 가면 복음 교회 없다 이렇게. 없습니다.


그 다음에 18절요. “내 떡을 먹는 자는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다음부터 계속해서 나오지요? 다시 한번 합시다. 예수님이 하는 일은 예수님 자기 스케줄입니다. 그런데 스케줄을 하는데 예수님의 스케줄 존재를 스케줄로 보지를 않습니다. 계획으로 보지 않아요.


예수님과 누가 만나요? 계속해서 인간과 부딪히잖아요. 부딪쳐야 십자가가 발생되는 거에요. 우리 같으면 예수님하고 인간하고 상대 안하면 되는데 꼭 상대를 해요. 꼭 상대를 해서 부딪힘이 있고 거기에서 뭐냐 하면 거기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천국은 그 십자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26절에 보면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렇게 되어 있지요?


자, 아까 제가 인간학과 예수님의 이중학이라고 했어요. 이중학 구조. 인간학과 예수님의 만남에 의한 이중학, 중복됨, 이중학 구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이런 이야기를 지금 인간들, 그러니까 제자들한테는 예수님이 이야기해버리면 제자들은 자기 인간됨을 포기 하겠어요? 포기 안하겠어요? 절대로 포기 안하지요?


"아 참 주님께서 좋은 약속해 주셨다. 기다리자. 끝까지 사랑한대." 계속해서 자기한테 문제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끝까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어요 이렇게 나오더란 말이죠 나중에 베드로처럼. 완전히 이 사람들 이 인간학 거덜나잖아요. 내가 거덜나야 내가 말살되어야 비로소 내 안에서 주께서 활동하는 것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거에요. 내가 거덜나야.


제가 주일날 설교에 뭐라고 했습니까? 지금도 하늘에서는 성도가 실패해서 오길 기다린다고 했지요? 실패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거에요. 그게 천국이니까. 보세요. 실패했잖아요. 다 지금 실패했잖아요. 있는 그거는 학원에 뺏겨버리고. 좁은데 앉아가지고. 언제 올까 백날해도 지금 소식도 없어요 지금. 학원 장사만 잘 되는거 같애.


만사가 우리 뜻대로 지금 모든게 실패로 끝나는 것이 그 재미가 솔솔하다니까요 이게요. 그런데 지금 가룟 유다는 보세요. 가룟 유다는 이중화가 되어 있어요. 뭐냐 하면 인간이 자기만 기대하고 자기 행동에 어떤 자기 행동에 대해서 의미를 두는데 그 의미가 떡 하나 먹어보니까 그 의미가 사라지고 가룟 유다가 감당을 자기가 사탄이 들어온 것을 자기가 본인이  감당을 못해요.


주님께서 마귀한테 시켜서 들어가라 했으니까 감당을 못하지요. 이게 인간이 이정도 밖에 안돼요. 원래 이정도 밖에 안돼요. 지옥 안 가고싶어도 주께서 사탄 집어넣고 사탕이 아니고 사탄. 사탄에게 굴복하게 하게 되면 아 그동안에 기도하고 아들 신학교 보내고 뭐 십일조 꼬박 다 내고 적금 붓듯이 다 넣어도 지옥 가야 됩니다.


그게 인간이 갖고 있는 이중화 구조에요. 인간은 본인을 몰라요. 영의 세계에 통치받게 되어 있어요. 통치받게 되어 있다고요.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 이 말입니다.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고 지옥가고 있는걸 지옥간다 해도 눈감고 기관총 들고 쏴 죽일려고만 하니까 말고 함부로 못하겠고.


가만 보자 하니까 하는 모든 이야기가 십자가를 가리고 그냥 가립니까? 교회 열심히 다니고 봉사하면서 가려버리니까 이거는 어떻게 대책이 없는 거에요. 그 십자가 아니라고 하면 이게 십자가 아니지만 십자가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령이 주신 충만함으로 마음으로 봉사하니까 이건 말리지 마라 이런 식으로 나오니 이거 뭐 자기긍정이에요 ‘자기긍정’.


십자가가 뭔지도 몰라요. 십자가로 용서해주니까 "야 하나님이 널 사랑한다. 십자가로 용서해줄게. 이제 십자가 믿었으니까 이제는 십자가 은혜에 감복해서 네 몸을 헌신케해라. 마리아처럼 뭐 바치고 헌신케 해라." 하니까 "예 앞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개별자 자기 자신의 긍정 여기에 계속해서 있는 거에요. 말살되지 않고.


천국은 나 하기 나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조금만 삐딱선 하면 또 회개한다고 또 어디서 봤어 주여 두번 다시 안하겠습니다. 두번 다시 안하겠다는 말을 벌써 백번이나 했어요. 주님의 영광은 31절에 봅시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라고 되어 있지요.


참 얼마나 역설입니까. 역설이에요. 죽었는데 영광. 사람의 실체, 사람의 정체, 인간 세계의 어둠이 어둠으로 들추어냄으로써 예수님은 자기 할일을 다 한거에요. 자기 할일 다 한거에요. 일가친척한테 혹시 복음 전할 기회 있거든 전하세요. 손 털어 버리세요. 올케 마네킹, 시동생 마네킹, 아빠 마네킹, 엄마 마네킹, 남편 마네킹, 아내 마네킹, 애들 세명 세명다 마네킹 머리 홀딱 없는 마네킹들.


성령의 포대기가 날라와야 되는데 그거는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지요. 그냥 불쌍히 여기는 것 그게 바로 기도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 기도거든요. 기도 다른게 없어요. 아이고 불쌍해라 그게 기도지 뭐에요. 복음에 근거해서 이야기하니까. 그러니까 이 영광을 얻었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그 다음 절차가 뭐겠어요? 자기가 얻은 영광 있잖아요. 하나님께 버림받은 거 있잖아요. 버림받은 것을 이제는 자기 제자들에게 다 집어넣어요. 다 집어넣어요. 마치 붕어빵에 앙꼬 집어넣듯이 다 집어넣어버려요.


집어넣으면 그 제자들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인생이죠. 이 버림받는 것이 너무 섭섭하게 들리십니까? 그러면 제가 편하게 이야기해드릴게요. 떠나는, 이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에요. 떠날 때는 이렇게.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떠나야 돼요. 떠날 때는 이렇게 떠나는 거에요 이렇게.


잘먹고 잘살아 이것들아 그냥 떠날 때는 너는 원인이나 챙겨라 나는 원인 없이 간다. 원인 없이 가는 그렇게 가버리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게 바로 사도들이 해야 될 전도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영광을 받고 난 뒤에 십자가 지고 난 뒤에 어디로 갔습니까? 아버지께로 떠났잖아요. 그 코스가 이제 마련이 된 거에요. 그 길이.


그 길이 마련됐는데 그 길 따라 가는데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게 되면 성령께서 어디로 인도하느냐? 주님 가신 그 코스대로 가는 거에요. 가면서 이제 빠이 빠이 안녕하고 떠나는 거에요. 남편한테 밥상 차려주면서 이게 당신에게 주어질 속으로 속으로 마지막 밥상입니다. 잘먹고 잘 살다 지옥 가서.


예수 안 믿는 엄마 아빠한테 절하면서 복음을 아는 아들이 설날 절하면서 그래 올해도 공부잘 하고 잘 뛰어 놀고 너는 올해 꼭 시집가고 너는 취직하고 그러면 속으로, 속으로 속으로 아들이 아버님 안녕히 가세요. 아버님 같이 있는 사탄 있잖아. 사탄과 더불어 같이 사는 곳으로 영원히 지금 가시는 걸 깨달으세요 뭐 이렇게 되겠지요.


그 다음에 34절에 봅시다. “새 계명을 주노니” 계명 줘 봐야 소용없습니다. 새 계명은 어차피 모든 계명은 누가 하신다? 주님이 하시기 때문에 새 계명으로 우리가 포대기 싸이는 것을 의미하지요. 앞으로 네가 어떤 포대기에 싸였는가 보라.


그게 뭐냐 하면은 개별자가 날라가 버려요. 개인으로 구원받는 것은 없습니다. 벌을 안 받겠지만 보통 벌 받을 때 단체 벌 받을 때 억울하지요. 군대에서 왜 단체 벌이 주어지느냐 하면은 개인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에요.


똑같은 유니폼에다가 군복에다가 똑같이 훈련시키고 똑같이 이렇게 벌을 주는 것은 단체 벌을 주는 것은 개인의 자아가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어요. 희생정신이 반영이 안돼요. 전우애가 없어요. 고생을 해도 같이 고생해야 나중에 네가 다치면 내가 총 들고 내가 싸워야 되니까. 그처럼 여기 35절도 “서로 사랑하라”.


자,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사랑은 1이 아니고 2가 성립되야 사랑이에요. 2가 성립되면서 여기서 1이 되는게 아니고 2가 성립되면서 여기서 0이 돼요. 이건 물리학에서 상소멸, 입자 상소멸이라고 해요.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서 사라져버려요.


사라지는게 이게 정상인데 안 사라지고 남아있는게 이게 뭐냐 하면 바로 물리학에서 양자물리학에서 이걸 물질의 최초의 물질이라고 하는 거에요. 최초의 소립자. 모든 것은 플러스 마이너스 없어져야 되는데 안 없어지고 이게 뭔가 자연이 장난질쳤는지 어떻게 되가지고 남아 있는 입자, 그게 입자가 소입자가 뭉쳐서 뭐냐?


바로 원소기호를 장식하는 금속이 되고 철이 되고 금이 되고 수소가 되고 그런 거에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지구의 맨틀과 또 내핵과 외핵을 장식하게 되면 그 지구에 인간이 살고 그 지구에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바로 이 지구의 원소적인 요소가 인간에게 다 수혈돼요.


물같은 것 단백질 탄수화물 전부다 인간의 생명은 이 물질에서 부터 DNA의 우연한 합성에 의해서 단백질이 만들어 졌는데 단백질이 진화되어서 인간이 된었다는 거에요. 그 인간 자체가 뭐냐? 물질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친다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뭐냐 하면 우연이죠.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형체들은 없어졌죠. 2가 소멸됐어요. 사랑이 이와 같아요. 사랑은 분명히 둘이 했는데 나중에 사랑이 생겨버리면 사랑 앞에 우리는 둘 다 없는 존재가 돼요. 둘 다 죽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뭐만 줬기 때문에? 사랑만 있으면 아무 것도 안 해도 괜찮아요.


그래서 심수봉이 불렀던 사랑밖에 난 몰라. 사랑밖에 난 몰라. 사랑만 한다면 나는 죽어도 좋아. 그것만 남는다면. 그런데 여기에 주님께서 성령을 준 사랑은 쌍소멸, 양쪽 다 소멸되기 때문에 날마다 사랑을 사랑되기 위해서는 뭐가 되야 돼요? 날마다 개별자 의식이 모가지쳐야돼요. 날라가는 거에요.


날아가는 방법이 뭐냐? 네가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찍어 버려라. 오른눈이 범죄 하거든 빼버려라.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사람취급과 인간취급을 안하지요. 하나님의 스케줄을 위해서 잠시 존재해야 될 그런 대상으로 보는 거에요.


인간은 예수님을 객관화 보지만 주님은 인간을 객관화 보지요. 서로의 의견 충돌이 뭐를 발생했다? 십자가. 그래서 십자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그 사랑을 통해서 쌍소멸된 두 분을 따로 뽑아낼 필요가 있어요. 그게 해석이에요.


십자가 해석은 한쪽은 죄인인 우리를 뽑아내고 죽어 마땅한 우리를 뽑아내고 한쪽은 그 죄로부터 죽었다가 희생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뽑아낼 때 그것이 바로 성도가 천국에서나 지금부터 해야 될 일이 그겁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 존재 위상을 다시 발견하는 거에요. 그래서 사랑하라 이 말은 내 제자니까 예수님은 여전히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6절 봅시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자, 이거하고 마치겠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아까 제가 그 스키, 앞에 굽어진 스키 또는 신발 굽어진 이야기하면서 공간이 예수님 쪽으로 했다고 했지요? 그건 예수님 죽음으로 한 시간이란 말이죠.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예수님 죽음의 공간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 공간 이야기가 14장입니다. 14장 이야기에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공간개념은 원인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이 원인을 잘라버리기 때문에 인간의 공간 개념은 제거됩니다. 제거되고 예수님 중심의 새로운 공간 개념을 가지고 뭐냐 하면 이것을 가지고 처소라고 이야기하고 이 처소를 가지고 바로 누가 마련을 하는가? 성령님이 마련을 하십니다. 성령님이. 처소를 성령님이 마련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살아있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살게 한다는 그 표준을 성령께서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소에는 예수님 생각 이만큼도 안하고 내 생각만 하는데 왜 그러냐. 그거는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작용 가운데서 계속해서 십자가가 나올려면 우러나올려면 계속해서 우리가 십자가 유지되는게 아니고 아까 그랬지요? 제거되야 될 대상으로서 십자가에서 또 인간학과 그리스도가 또 갈라져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십자가가 생산되니까. 그때 누가 필요하냐? 악마가 필요한거에요. 마귀가 또 다시 우리를 까불이로 만드는 거에요. 까불이로. 저 사람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가지고 나는 복음 아는데 왜 지지리궁상이고 쟤는 복음 모르는데 왜 잘 먹고 잘 사느냐. 또 이렇게 세상에 나가서 또 인간 대 인간의 능력을 근거로 해서 또 비교를 하는거에요. 또.


그런데 14장 전체 이야기는 뭐냐 하면 처소를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서 만들어 주게 되면 처소를 만들어주지요. 쉽게 말해서 포대기가 만들어지는 거에요. 그럼 그 포대기는 둘이겠어요? 하나겠어요? 성령님은 세명의 성령님 네명의 성령님 없어요.


성령님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 성령 안에 있는 자는 모든 것이 한 몸이 되고 같은 처소에 동기생이 되는 겁니다. 같은 막사에 같이 사는 거에요. 형제가 되고 자매님이 되고 하나가 되는 거에요. 그런 사이에 통용되는 사랑은 십자가 외에는 어떤 사랑도 통용되지 않습니다. 십자가 외에는.


그래서 십자가 안 나오거든 상대하지 마세요. 또 뭐 상대하지 말라는 시리즈가 계속 되는데요. 얼굴 안 밝은 사람 상대하지 마라. 변화되지 않은 사람 상대하지 마라. 복음 안 나오거든 상대하지 말라.


그러면 같이 식사하다가 이렇게 복음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밥.먹.자. 그냥 꾸역꾸역 밥만 먹어야지. 밥 먹자 하고 재미없으면 조국이 어떻고 정치 이야기하고 어차피 못 알아 듣는데 밥이나 먹고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오늘날 교회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정치 이야기하는 거에요. 복음도 모르고 교인들의 관심사에 동원해서 우리 교회 교인으로 붙들어서 십일조 빼먹기 위해서 그 짓하고있는 거에요. 좋은 아버지 되기, 좋은 어머니 되기, 좋은 가정 되기.


여러분 길거리 여호와 증인 간판 보세요. 여호와 증인 간판이 뭡니까? 훌륭한 가정, 행복한 가정 걸어놨잖아요. 그걸 여호와의 증인만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신천지도 하고 모든 단체가 다 그래요. 그 모든 단체가 뭐냐? 그들의 단체는 그들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전, 신전을 짓는 거에요. 이게 십자가를 가리는 짓이거든요. 십자가를 가리는 짓이에요.


너희 교회 몇 평 짜리냐? 이런거 있잖아요. 너희 교인수 얼마냐? 그 집합체가 공간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공간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밝혀지지 않아요. 집단이 하나 될 때 "아 저 사람 복음 알아? 나도 복음 아는데 아니 이게 왠 기적이지?" 이럴 때 비로소 너희 두세사람 모인 곳에 내가 함께 있다는 새로운 공간이 우발적으로 생산이 돼요.


하나의 사건으로 생산되는 법이지. 어느 장소에 모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교회라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늘 교회되어야 되지요. 늘 복음 전해야 되고 저도 마찬가지고 몇십년 됐다고 자동적으로 신자라고 하지 마세요. 그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몰라요. 조국 이야기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그거 교회 아닙니다. 목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다가 복음이 아니라 인간들 속에서 우리들 앞에서 우리와 결탁해서 어떤 희생을 남기느냐 그 십자가가 복음인 것을 알았사오니 그 십자가 포대기 안에서 우리 자신을 원인으로 여기는 그 모든 악마적인 것이 말살되고 뭉개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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