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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2 22:04:25 조회 : 2957         
Re..광주강의(실로암교회) 19 - 고린도전서 7-3 이름 : 서경수(IP:)
광주 강의 7-3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영과 육에 대해서 나오거든요.  
여기에 보면, 아버지의 첩과 간통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5절에 보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간통한 사람이 천국 간다는 말입니까?  지옥 간다는 말입니까?  천국 가죠.  그래서 일반 교회 목사들이 이 본문 설교하기를 주저합니다.  ‘간통해도 천국 가네.’  이렇게 되면 자살하고 싶은 사람이 죽기 전에 간통하고 죽을 수 있어요.  그냥 한강에 뛰어들고, 약 먹고 하지 말고 간통을 원 없이 해보는 거예요.  그래도 “육신은 멸하여 죽고 영은 예수의 날에 구원 받고” 일거양득이지요.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 보통 목사들이 이 본문으로 설교하기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대로 가르치면 사람들이 머리를 굴려서 제 욕심 다 채우고 교회가 엉망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볼 때 함부로 봐서는 안 돼요.

5장 마지막을 봅시다.  13절입니다.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에서 ‘악한 사람’은 앞 절의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토색하는 자 이런 자들을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육이라는 것과 영이라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면, 육신은 멸하고 영은 예수의 날에 구원 받지요.  영은 바람이라고 봅시다.  성경에 나오니까.  영은 바람입니다.  육은 되풀이가 가능해요.  이것도 설명을 해야 하는데, 여러분이 바람을 잡을 수 있습니까? 영은 바람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이시고 하나님의 일을 바람 같아요.  바람 같다는 말은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좌지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영에 속합니까? 육에 속합니까?  영에 속하지요.  그러니까 자살하기 위해서 간통을 많이 해도 사단이 안 오면 그냥 있는 거예요.  영적인 것은 하나님 마음대로 바람처럼 불고 싶을 때 불어오는 것이고 안 불고 싶을 때는 안 부는 것이기에 우리가 조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교회 다니면서 이것을 모르고 있어요.  하나님의 일은 잡을 수가 없고 그냥 혜택 받는 거예요.  

오늘 빵을 사 오셨는데, ‘지난 주에 빵 사왔는데 이번 주에도 빵 사오세요’ 라고 요구한다면 영에 속한 것입니까?  육에 속한 것입니다.  육은 되풀이가 가능한 것입니다.  음행, 호색, 토색, 우상 숭배 이런 것은 뭐냐 하면 육에 속한 것인데 되풀이가 가능합니다.  마약, 술, 담배의 특징이 뭐냐 하면 되풀이가 가능해요.  예를 들어봅시다.  술을 마시면 우리의 마음이 향기롭습니다.  굉장히 가벼워집니다.  갑자기 붕 떠있는 느낌.  여러분은 술을 안 마셔봐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감미로움이 있어요.  이것 때문에 술을 마셔요.  울적했던 마음이 갑자기 향기가 나면서 감상에 젖으니까 울거나 실없이 웃거나 해요.  그러나 술이 깰 때가 되면 머리 아프고 속 쓰리고 해서 북어국 끓여달라고 하고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고 하고 위장약 좀 사오너라 난리를 피우지요.  그러면서 어제 술 많이 마신 것 후회하면서 다시는 과음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요.

그런데 다음 날 또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아서 술을 한 잔 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마음이 감미롭고 향기가 나고 기분이 좋아지지요.  울적할 때 한 잔 하면 기분이 상쾌해 진다는 것 때문에 울적하면 술을 마시는 되풀이가 가능하지요.  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되풀이가 가능한 것이 육입니다.

그런데 영은 ‘이쯤 하면 은혜 받을 때가 되었는데’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교회에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영을 육으로 만들어요.  특정 기도원에 특정 돌 위에서 기도하면 은혜 받는 거예요.  기술을 가르치는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도 이 자리에서 5일 굶고 은혜 받았다.’  이런 책도 있어요.  ‘일주일만 컴퓨터하면 나도 전유성처럼 할 수 있다.’  이 목사가 되었듯이 여러분도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뭡니까?  되풀이 가능이지요.  교인들을 부추겨요.  ‘김집사가 기도원에 가서 5일 굶고 은혜 받았는데 당신이 김집사보다 못해.  당신도 할 수 있어.’  

아이들이 학원 공부하는 것이 어떤 기대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아이 되면 나도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풀이할 수 있으면 나도 기술 배우면 가능한 거예요.  이런 희망을 가지고 학원을 가요.  수학문제의 경우 처음부터 막히는 수가 있어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요.  그러나 선생님이 풀이하는 것을 보면, 아 저런 식으로 하면 풀리는구나. 하고 무릎을 치지요.  또 다른 문제 앞서 있으면 또 막막하지만.
어찌했건 선생님이 풀이하면 나도 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나가는데 이것이 육이예요.

그런데 영은 누구 손아귀에 있냐 하면 하나님 손아귀에 있어요.  그래서 인간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그럼 교회는 뭐냐 하면, 교회는 육을 핍박해요.  육을 배척하고 거부합니다.  너 구원 받았으니까 나도 구원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이런 것이 교회에서는 허용이 안 됩니다.  박집사 구원 받았으니 나도 구원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박집사는 바람 같은 성령이 와서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바람이 안 옵니다.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람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흉내는 낼 수 있어요.  그러나 영을 받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서 ‘사단에 내어주고’하는 일이 영적인 일인데, 그 가운데 되풀이가 가능한 육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토색하는 자 등등.  이런 것은 나쁜 짓이지만 전도, 기도, 봉사 이런 것이 되풀이 되는 것은 나쁜 짓이 아니잖아요? 하고 묻는데, 이 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뭔가를 되풀이 하는 이유가 쾌감 때문에 하는데, 쾌감이 언제 생기느냐 하면 다른 사람이 허용할 때에는 쾌감이 안 생깁니다.  성경에도 “몰래 먹는 사과가 맛이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금지할 때 그 선을 넘을 때에 쾌감이 생깁니다.  이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4명을 간통했다.  그 다음에 4명 간통하면 재미없어요.  기도, 전도 처음에도 이런 것으로 목사에게 칭찬 받는 것이 쾌감이 와요.  그런데 두 세 번 하면 재미가 없어요.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이런 주장을 했어요.  ‘사람을 쾌감 없이는 못 사는 동물이다.’  인간을 정확하게 보았어요.  인간은 쾌감 없이는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두루뭉술했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산다.  행복에는 정신적인 것도 있고 육체적인 것도 있다. 등등.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사람은 자극 없이는 못 살고, 쾌감 없으면 못 산다.

음식도 더 맛있는 것, 더 달콤한 것을 찾아요.  고급 제과점에서의 고민이 이거예요.  기존에 유통되었던 것을 만들면 사람들이 싫증을 내요.  그래서 늘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해요.  사람들은 뭘 위해서 돈을 지불하는가 하면 쾌감을 위해서 돈을 지불합니다.  특히 쾌감은 언제 생긴다고 했습니까?  선을 넘을 때.  10원 내는 화투 처음에는 재미있어요.  그러나 좀 지나면 100원으로 판돈을 올려야 재미있어요.  그런데 100원도 몇 번 치면 시시해요.  그래서 또 돈을 올려야 쾌감이 있어요.
골프를 쳐도 국내에서 치면 재미없어서 해외로 원정을 나가요.  카지노도 국내는 재미가 없어서 마카오로 또 라스베가스로 떠나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요.  이것이 선악과 먹은 아담의 본성 이예요.

돈이 없을 때는 돈 벌고 싶어서 환장을 하지만, 돈에 여유가 생기면 쾌감을 찾아 나섭니다.
이런 것이 육인데 그런데 영이 있어요.  5장  7절 봅시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이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세상 인간들을 가지고, 만약 교회에서 이 대목 가지고 설교하라고 하면 100이면 100 ‘그러니까 음행하지 마세요.  토색하지 마세요.’ 이렇게 해요.  그것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선을 그어서 억지로 참게 하는 거예요.  억지로 참게 한다는 것은 결국은 폭발한다는 말이에요.

사도 바울의 해결책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요.  ‘당신들이 이것을 하세요.’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이런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억울한 죽음, 희생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쾌감을 맛보는 재미로 사는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은 억울하게 희생되셨습니다.  희생으로 다가오지요.  이것이 바로 영적입니다.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육적이란 것은 되풀이가 가능하다고 했지요.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의 선을 넘고 그것을 또 후회하고.  이성의 본심이 반성에 있어요.  이성은 따지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아니에요.  진짜 이성의 본심은 뭐냐?  스스로 자기 잘못을 자책하는 것이 이성입니다.  자기 반성하는 능력이 이성입니다.  그래서 반성할 줄 모르는 것을 짐승이라고 하잖아요.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산다고 했습니까?  쾌감.  인간은 쾌감 때문에 살잖아요.  쾌감은 어디에서 생긴다?  금지한 것을 소망할 때 쾌감이 생깁니다.  선을 넘을 때 행복합니다.  선을 안 넘으면 미칩니다.  선을 넘고 나중에 이성으로 반성하면 되니까.  선을 안 넘으면 사람이 미치겠고, 그래서 일단 넘어놓고 반성하면 되지요.  얼마나 편리합니까?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하면, 쾌감을 얻기 위해서 금지한 선을 넘고, 곧장 돌아서서 스스로 자신을 자책하고, 다시 쾌감을 찾아서 떠나고, 또 반성하고.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성경을 들이대도 소용이 없어요.  잘못 됐다고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해결책은 되풀이가 가능한 육적인 것이 아니고 육은 그냥 나눠요.  육은 말린다고 해도 반성까지 하면서 계속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본인이 잘 못 했다고 반성하는데 그기에 대해 무슨 소리를 합니까?  이럴 경우에 인간보고 뭘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너 같은 인간을 위해서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 하나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구원이 십자가 사건에서 구원 받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현재 예수님의 희생을 인정하므로 구원 받습니까?  십자가 사건으로 구원 받습니다.  이것이 정답인데, 십자가 사건이 안 믿어지는 사람은 뭘 하는가 하면, 이성은 무슨 기능이 있다고 했습니까?  반성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날 위해 희생했는데 나는 바보같이 또 죄를 지었구나.  주여 다시는 제가 그런 짓 안 하겠습니다.’ 반성하면서 이것으로 구원 받으려고 여기는 사람들은 다 엉터리입니다.

십자가는 2,000년 전의 사건입니다.  반성은 오늘 나의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2,000년 십자가 사건이 날 구원한다고 생각지 않고, 오늘 내 마음가짐이 어떠냐를 가지고 구원 여부를 따져요.  이것이 잘못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자꾸만 옛날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 사건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가 그기에 있습니다.  제발 네 자신의 힘과 수단으로 구원 된다는 생각일랑 제발 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십자가 사건의 능력으로.
주님의 믿음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은 행함에 불과합니다.
자기 믿는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신 선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선물 받은 사람의 특징은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셔서 받았기에 이것은 은혜라고 하지요.

자기 관리해서 선을 안 넘고, 혹은 넘었지만 반성하고 하는 이런 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기대해서는 아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음행, 토색, 사기 등등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해결책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런 짓 하지 말라가 아니라 ‘너희들 중에 그리스도의 희생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책입니다.  

목사가 강단에서 “제가 어느 기도원에 가서 어느 돌 위에서 기도하니까 예수님 나타나시고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할 때, 교인들은 ‘그 기도원 어디 있습니까?  나도 가서 은혜 받고 싶습니다.’ 라고 나오는 것은 목사가 은혜 받았으니까 나도 된다는 가능성으로 되풀이 할 때 이것을 육이라고 합니다.

음행, 토색, 사기의 되풀이나 마약 성분 떨어져서 마약 되풀이 하는 것이나 기도 효력 떨어졌다고 기도원에 올라가는 것이나 이런 것들 전부는 영이 아니고 육에 속한 것입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의 행함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내 행위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반박을 합니다.  목사님 주장대로라면 ‘예수만 믿으면 나쁜 일 해도 구원 받으니까 나쁜 짓해도 상관없다는 말이네요?’ 라고 시비를 겁니다.  이 문제는 고린도전서 5장 초반에서 했지요.  아무나 죽는 것이 아니라고.  바람같이 죽을 사람만 죽는 것이라고.  간통했다고 다 죽는 것이 아니고 사단에게 내어준 자가 따로 있단 말이지요.

이제 5장 정리해 봅시다.

육은 뭐가 가능하다?  되풀이가 가능하다.  그러나 영은 선물, 주님의 선물이기에 되풀이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것은 영이 아니라 육입니다.  주께서 원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행동을 잘 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네 속에 뭐가 들어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있으면 그 피로 구원 받습니다.  계시록에 어린 양의 피로 씻음 받았다고 하니까 너무나 구원이 간단해요.  예수의 피로 구원 받습니다.  천국에서는 그리스도의 피만 봅니다.  우리가 세상 살 때 어떤 일을 했고, 무슨 사고를 쳤고 이런 것 따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그 속에 있으면 천국 문을 통과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절제하고 선행을 해도 예수의 피가 없으면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육적인 것에는 일체의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2005. 7. 12. 9:55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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