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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2 10:59:10 조회 : 122         
[22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8 - 무면허 운전 이름 : 구득영(IP:183.102.224.162)
[22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8 - 무면허 운전

22,06,06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 !!

오늘은 교재 52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전쟁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냥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이라는 겁니다. 전쟁은 보통 나라와 나라가 벌이는 전쟁인데, 그런데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은 대리전쟁이라는 말이죠. 그것도 하나님을 대리해서 하는 전쟁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있어야하는 이유인데, 그래서 이름자체도 "하나님과 사람이 더불어 싸워서 이겼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을 대리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적을 불러낼 때 그 적은 사람의 적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원수라는 겁니다.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 자기 원수를 역사 속으로 불러내시는 하나님 !!

그렇게 하나님의 원수를 불러내는데, 어디에 불러내는고 하니, 역사 속에 불러낸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것은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여러분, 구원을 받으세요" 라고 하는, 즉 개인적으로 천국에 가는 사적인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성경전체가 그러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개인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나라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전쟁이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이게 어떤 전쟁인지, 그것을 우리가 한번 살펴보자는 겁니다.

여기 교재에 성경구절이 많이 기록이 되어있는데, 그 중에서 53페이지의 이사야서 37장 32절을 보겠습니다. '열심히'를 '열심이'로 고쳐주시고, 그리고 52페이지의 출애굽기 5장 2절도 보겠습니다.

(사 37: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출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여기에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은 히브리인들을 호락호락 내보낼 의사가 전혀 없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그렇다면 이사야서 37장 32절의 '나오며', '피하며' 라는 것, 그리고 출애굽기 5장 2절의 '보내겠느냐', '보내지 아니하리라' 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이냐는 겁니다.

* 나오며, 피하며, 보내겠느냐, 보내지 아니하리라 !!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그런 전쟁의 과정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온다고 하면, 그렇다면 이 세상전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원수, 즉 영적존재와 영적존재의 싸움에 있어서, 그게 역사를 통해서 어떻게 파악이 되느냐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나오며', '피하며', '보내겠느냐', '보내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는 것들이 나와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것으로 봐서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대결장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이고 이질적인 두 세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구원, 영생, 천국이란 것은, 기존의 세계에서 나오게 되면 그것이 구원이 되고 영생이 되고 천국이 되고, 반면에 기존의 세계에 머물러있게 된다고 하면, 그냥 지옥에 가야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전쟁은 "네가 기존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인간에게 속한 영적전쟁의 영향이라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라고 하는, 그것으로 파악이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손자가 의대에 다니는데, 이 세상에 속한 의대에 계속해서 다닐 것인가? 아니면 그만 두고 나올 것인가? 라고 하는, 또한 "우리 아버지가 직장에 다니는데, 세상에 속한 직장에 계속해서 다닐 것인가? 그만 두고 나올 것인가?" 라고 하는, 그래서 직장에 계속해서 다니다가 지옥으로 골인을 할 것인지, 바로 그 문제라는 것이죠.

* 당신은 떠날 마음이 있습니까?

요즘 손흥민 때문에 난리인데, "손흥민이 계속해서 축구를 할 것인지? 떠날 것인지?" 라고 하는, 바로 그 문제라는 겁니다. 혹은 "상추농사를 계속해서 지을 것인지? 그만 둘 것인지?" 라고 하는, 그 문제라는 말이죠. 과연 하던 일을 그만두고 떠날 마음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이 전쟁의 추이에 관해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당신은 현재 살던 고향에서 떠날 의사가 있습니까?" 라고 말이죠. 가족과 친척과 국가를 다 버리고 떠날 마음이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들 치고 버리고 나오겠다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 나의 살던 고향은 ♬

아니 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은 손자가 있는데, 그런 손자를 버리고 왜 떠나느냐는 겁니다. 다니던 직장을 버리면 당장에 굶어죽는데, 그러니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다는 말이죠. 정이 들었던 가족, 일가친척, 친구를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전혀 나올 마음이 없는데, 그게 이방민족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특수한데,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영적존재인 하나님으로부터 출발을 하지만, 반면에 우리 이방민족은 자기가 살던 고향에서 출발한다는 겁니다. 즉 자기 몸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 인간은 나올 의사가 전혀 없는데, '나와라', '피하라' 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오는 것도 싫고 피하는 것도 싫다는 말이죠. 그냥 살던 것을 그대로 굳혀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죠. 그게 몸에 베여있다는 겁니다.

* 좋은 세상을 만들자 !!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자" 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영적인 전쟁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으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우리 다같이 힘을 합쳐서 좋은 세상을 만들자" 라는 것이란 말이죠. 여기 '좋은 세상'에 다른 것을 집어넣어도 되는데, 좋은 가정, 좋은 사회, 좋은 직장, 좋은 국가,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조금 전에 하나님의 영적 전쟁의 여파로 일어난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 백성을 보내라" 라는 것인데, 그러면 애굽에서는 "보내지 못한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니 "보내라 -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개입할 때 나타나는 특이현상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교회를 넣으면, "우리 다같이 힘을 합쳐서 좋은 교회를 만듭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좋은 가정, 좋은 사회, 좋은 직장, 좋은 국가, 좋은 교회, 이런 것들을 두 글자로 '발전' 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인데, 즉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추구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런 나은 환경이 자기를 더 발전시킨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발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자들이, 즉 자기는 발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 그런데 그것들을 다 버리고 나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기서 히브리서 11장 23절에서 27절을 보겠습니다.

(히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

여기 27절에 보면 '애굽을 떠나' 라고 하는데, 모세가 애굽을 떠났다는 겁니다. 그러면 모세가 애굽에 있을 때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지지리도 가난했습니까? 그것이 아니고, 오히려 모세는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었는데, 그러니 그야말로 최상위층이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기는 기존의 세계인데, 모세는 애굽에서 태어났고 애굽에서 자랐다는 겁니다. 여기 애굽에서 모세는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았는데, 그런데 모세는 믿음을 가지게 되어서 그만 이 애굽을 떠나려고 한다는 것이죠. 기존 세상에서 말이죠.

애굽의 바로 왕의 뜻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 다같이 힘을 합쳐서 좋은 애굽나라를 만들자" 라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백성들은 다 동의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그렇게 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제일 좋은 세상이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죠.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쌀밥을 먹고 소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좋으냐는 겁니다. 북한에서 그런 주장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그렇게 '우리끼리' 힘을 합쳐서 잘 살면 되는데, 그런데 왜 탈북을 하고 난리를 치느냐는 말이죠.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이만갑' 이란 TV프로에 보면, 북한의 고위층 간부가 탈북해서 북한체제를 욕하고 한다는 겁니다.

* 죄악의 낙 !!

그런데 여기 11장 25절에 보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라고 하는데, 모세는 자기가 애굽에서 살던 것을 두고 '죄악의 낙'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쌀밥을 먹고 소고기를 먹는 세상을 두고 죄악의 세상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것이 특이하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전라도면 전라도, 경상도면 경상도, 그렇게 자기가 태어난 곳은 누구나 긍정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강원도 출신은 강원도, 충청도 출신은 충청도, 그렇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죠. 억지로 팔이 바깥으로 굽는 것처럼 폼을 잡으면 곤란하다는 것이죠(ㅋㅋ).

그런데 모세의 경우에는, 자기가 살던 세계가 문제가 조금 있어서 나온 정도가 아니고, 아예 자기는 죄악의 세상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자기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게 아주 특이한 생각이라는 겁니다.

* 나는 죄와 정이 들었다 !!

누구나 다 자기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인정하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그만큼 정이 들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곳을 모세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정이 든 것은, 이웃과 정이 든 것이 아니고 죄와 정이 들었다" 라고 고백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믿음'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조금 전에 이야기한 "나오며, 피하며, 보내겠느냐, 보내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는 것, 즉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가서 사는 것, 이것을 두고 믿음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인데, 즉 자기가 태어난 고향, 가정, 직장, 사회, 그러한 모든 것을 죄악의 세계로 규정한다는 것인데, 물론 교회까지도 말이죠.

* 인간에게 '믿음' 이란 게 있을 수 있는가?

제가 다시 묻겠는데, 과연 이런 믿음이 인간에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엉덩이를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전쟁을 벌이는 개시신호와 더불어서 특이한 현상이 지상에 일어나는데, 그 장소가 이스라엘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성경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우리의 상식과 얼마나 위배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본성과 말이죠.

우리 인간의 본성을 발전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발전의 계기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이 바로 지식인데, 즉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는, 자체적으로 자기 세계를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강렬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간단한 예로서도 알 수 있는데, 미세먼지도 없고 바깥 날씨가 엄청 좋다고 하면, 그러면 집구석에 있기보다는 바깥에 나가는데, 왜냐하면 나가서 새로운 변화를 맛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란 것이죠. 그게 발전인데, 그래서 이 발전은 새로움을 맛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면 어떻게 됩니까? 흐린 날씨는 자기 과거를 회상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죠. 과거의 자기와 지금의 자기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흐린 날씨에는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흐린 날씨는 변화를 잊게 만든다는 말이죠. 따라서 흐린 날씨가 되면 인간은 자기에게로 돌아오는데, 즉 자기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끼게 만든다는 겁니다.

* 나는 발전해야한다 !!

그런데 파란 하늘과 푸른 잔디는, 그것도 5월 5일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마음껏 뛰놀고 싶다는 것이죠. 그때 아이가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에게 최고의 유혹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발전의 유혹이라는 말이죠. 자기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속해있는 가정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져야만 하고, 자기가 속해있는 나라가 최고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자기가 응원하는 야구나 축구팀이 이겨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LPGA US여자오픈에 이민지 선수가 우승을 했는데, 물론 호주선수로서 출전했지만 말이죠. 총상금이 무려 1,000만 달러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일본을 싫어합니까? 물론 좋아하는 자들도 있기는 있지만 말이죠. 그것은 바로 자기 발전을 방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 라는 존재는 나를 위한 발전을 결코 멈추지를 않는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인간이라는 말이죠.

물론 가끔 멈추기는 하는데, 그것이 흐린 날이라는 겁니다. 그때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서 숨고르기는 하기는 하는데, "나는 누구냐?"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가 바깥에서 친구를 만나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오월은 푸르구나" 라고 하면서 자기 발전에 나선다는 것이죠.

* 나를 위한 나의 전쟁 !!

제가 이런 이야기를 왜 합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은 자신의 살아온 자리에서 나갈 마음이 전혀 없다. 그 대신에 자기 자리가 발전하기를 욕망한다" 라는 것인데, 이 전체를 묶어서 '나를 위한 나의 전쟁' 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들도 나름대로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강의가 이 정도 진행이 되면, 여러분은 "과연 나는 믿음이 있는가?" 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발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 라는 것이, 하나님의 전쟁에서 나오는 그 여파, 그게 곧 떠나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는 과연 떠날 마음이 있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정말로 믿음이란 것이 있는지, 그것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아니면 모세와 같은 믿음이 있는지를 말이죠. 멀쩡한 이 좋은 자리를 왜 떠나야 하는지, 즉 "나의 살아온 모든 것은 죄악이었어. 나는 고난을 받는 것이 더 좋아" 라고, 과연 그렇게 나올 수 있느냐는 겁니다.

여기서 교재 55페이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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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아브라함의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하신다고 하면, 그러면 구태여 어린양의 피를 집의 문설주에 바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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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너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내 백성이다" 라고 한다면, 이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아브라함의 자손, 즉 혈육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추가적인 것들이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 이미 구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그런데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내가 손대지 않고, 애굽의 장자들만 다 죽이겠다" 라고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옆집에 사는 애굽의 장자들이 죽는 것을 구경만 했습니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히브리인들도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각자 집의 출입구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야 한다는 것이죠. 자기들의 피가 아니라는 겁니다.

* 어린양의 새로운 세계 !!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쪽은 애굽 사람, 이쪽은 히브리서 사람, 그렇게 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저쪽도 거부하시고 이쪽도 거부하시고, 그렇게 둘 다 거부하신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기에서 새로운 제3의 세계가 열리는데, 그게 바로 어린양의 세계라는 겁니다.

이 어린양의 세계, 이것을 새로운 공간이라고 하는데, 어제 오후시간에 잠시 언급했는데 말이죠. 이런 새로운 공간이 열리면서 어떻게 됩니까? 그 여파로, 아까 이야기한 '떠나라' 라고 하는 것, 즉 기존의 땅에서 내보겠다고 하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어린양의 새로운 세계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애굽이라는 세계에서도 빠져나와야 하지만, 역시 어디에서도 빠져나와야 하는고 하니, 아브라함의 혈육이라는 조건에서도 역시 빠져나와야 한다는 말이죠. 둘 다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를 들어서, 앞집에 사는 사람은 절에 나가고 자기는 교회에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는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구원이 되는 겁니까? 그것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3의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즉 어린양의 세계가 직접 들이닥쳐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절에 나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면 됩니까? 그것이 아니고, 어린양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던 사람도 역시나 마찬가지인데, 기존의 자기가 다니던 교회를 부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면, 절에 가도 자기 육체로 가는 것이고, 그리고 교회에 가도 자기 육체로 가는 것인데, 즉 육체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런 기존의 육체로는 되지 않고, 어린양의 피라고 하는 새로운 육체로 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죠.

* '주님의 전쟁' VS '나의 전쟁' !!

제가 또 다시 물어보겠는데, 우리 인간이 자기 몸을 버릴 의사가 있습니까? 없다는 겁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데, 평생 공을 들린 자기 몸을 버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필라테스에 해독주스를 마시고, 또한 아침마다 조깅을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겠다는 것인데, 자기 가정도 자기가 지키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교회는 우리 교인들이 지키는데(ㅋㅋ), 하지만 이것은 자기를 위한 '나의 전쟁' 이라는 겁니다. 자기 자존심과 체면, 그리고 과거에 자기가 공들였던, 그 값의 의미와 가치를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것을 정리해서 말하면, "하나님의 전쟁이 나의 전쟁에 침범해서, 나의 전쟁에 강력하게 발목을 잡힌 우리 자신을 빼내주신다" 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벌이시는 전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전쟁을 벌이시지 않으면 우리는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마태복음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만들어서 목에 걸라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는 그런 악세사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동차 안에 보면 십자가를 걸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차는 내 차가 아닙니다" 라고 하는 것을 인정해주어야, 그래야 그게 제대로 된 십자가의 의미라는 말이죠. 자기 차를 더욱 더 자기 차답게 하려고, 자기 차를 보호하려고 십자가를 걸어놓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 남의 자동차에, 무면허 운전 !!

그래서 우리는 "평생 남의 차를 몰고 무면허 운전을 했다"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 남의 차가 바로 현재 우리의 육체라는 말이죠. 평생 우리는 주님이 주신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을, 그것도 면허증도 없이 평생을 돌아다녔다는 겁니다. 캐나다도 가고, 독일도 가고, 태국도 가고, 그렇게 남의 차를 몰고 자기 인생을 일구어왔다는 것이죠.

그러면 죽을 때는 어떻게 됩니까? 어쩔 수 없이 반납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동안 자기 차라고 여기고 천연가죽 시트에다가 최고급 오디오를 넣어놓았는데, 그런데 그만 차가 고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차가 매연도 발생하고 덜덜 소리가 나게 된다는 겁니다.

바꾸어 말해서, 관절이 아파서 계단에 잘 올라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팔다리에 어깨도 쑤시고, 그리고 조그만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어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러면 에너지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항상 힘도 없이 축 늘어져 있다는 겁니다.

자기는 시간을 통해서 자기 발전을 도모했건만, 그런데 그 시간이 자기를 배신해서 자기를 그만 맥이 빠진 인간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죠. 세월이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발전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아는 것도 다 까먹고 만다는 것이죠.

그 속도가 만만치 않은데, 급속도로 추락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공부를 해서 하나를 알면 열을 잃어버리는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는 말이죠. 젊었을 때는 하나를 공부하면 열을 깨달았는데, 그런데 나이 50을 넘어서게 되면 하나를 알면 다섯을 까먹고, 그리고 70이 넘으면 백을 까먹는다는 겁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고 하니, 이 차는 자기 자존심을 보존해주는 차가 아니고 주님의 전쟁을 위한 주님의 차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남의 차를 몰고 그동안 돌아다녔다는 겁니다. 20대에는 머리에 빨간 염색도 하고, 얼굴에도 부속품들을 좀 새로 해서 넣었다는 말이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 한꺼번에 모두 다 무너지는데, 그게 죽는 순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순간에는 주님에게 다 반납을 해야한다는 말이죠. 여러분은 여기에 대해서 억울한 마음이 드십니까? 왜 우리가 무한정 살아야 하냐는 것인데, 그러면 도대체 그 피해자는 누구냐는 겁니다.

* '쑥(SSUK)' 들어온 선악지식 !!

하나님이 바로 피해자인데, 그러면 누가 가해자인고 하니까, 발전을 항상 도모하는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죠. 선악지식이 우리 인간에게는 없어야 하는데, 그만 선악지식이 '쑥'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것을 영어로 'SSUK' 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것은 울산강의에서 했지 싶은데 말이죠(ㅋㅋ).

그러니 우리는 남의 차를 몰고 다니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말이죠. 우리는 하나님에게 "하나님, 저에게 왜 그래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왜?"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제 몸이 아픕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그것이 누구 차인데?"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가물었다고 비를 내려주시는데, 이번에 대구에 20미리가 오고 강원도에는 더 많이 왔다는 겁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에너지를 넣어주시는 것인데, 그러니 차 관리를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할 수도 없고, 주님이 알아서 모두 다 해주셨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의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 알아서 반납해라 !!

자기 것이 없으면 '나의 전쟁' 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데, 그렇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알아서 반납해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것도 해드리지 못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라고 했다는 말이죠.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것을 대단한 일이라고 착각을 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란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서 욕할 필요도 없는데, 그들은 매일같이 "삐리리리 삐리리" 라고 하면서 남의 자동차를 몰고 마구 돌아다닌다는 것이죠.

그러니 반납할 때 지옥에 가는 폐차로 할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 가는 차로 할 것인지, 바로 그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서 주님의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나의 요소' 라는 게 원래 없는데, 그것은 악마가 집어넣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것을 '주의 요소'로 바꾸는 작업을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게 전쟁의 전리품인데, 하나님이 친히 전쟁을 하셔서 '나의 요소'를 '주님의 요소'로 바꾸어주신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쟁으로 인한 여파가 무엇인고 하니, 출애굽의 경우에는 "애굽을 이겨서 이스라엘을 빼낸다" 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이라는 겁니다.

* '나의 이름'에서 '주의 이름'으로 !!

그러면 실제로는 무엇인고 하니, 우리 안에 있는 '내 요소'을 빼버리고 '주님의 요소'를 집어넣는다는 말이죠. 여기에서 '나의 요소'를 '나의 이름' 이라고 하고, '주님의 요소'를 '주의 이름' 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쉽게 말해서, 가짜 차 주인이 진짜 차 주인으로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죽어서 반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진짜 차 주인이 운전대에 앉는다는 말이죠.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기가 주인공이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교재 53페이지에 나오는데, 거기에 시편 9편 2절에서 5절 말씀이 있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시 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 9: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시 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시 9: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

여기 2절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라고 하는데, 그리고 5절에 보면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시편 7편 17절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시 7: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그러니 자기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시편 자체가 우리의 이름을 빼고 주의 이름을 집어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우리 이름을 뺄 때는 우리의 명예, 그리고 우리가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소유성이란 것도 같이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 이름과 이름의 전쟁 !!

여기 교재 53페이지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른 이름을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이름만 남기고 심판하시는 전쟁이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벌이시는 전쟁이라는 말이죠. 애굽과의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빼내주는 차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의 이름과 주님의 이름이 벌이시는 전쟁, 그게 바로 여호와 전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구원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주의 이름이 곧 우리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이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우리의 멱살을 쥐고 흔드시는 분인데, "왜 남의 차를 몰고 마음대로 돌아다녀?" 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만약에 제가 경찰청장이라고 하면, 오토바이 폭주족들을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하지 싶은데, 특히 여름밤이 되면 여기 도로에 "빠라라라 빠라라" 라고 하면서 돌아다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합니까? "내 오토바이를 내가 타고 기분을 내겠다" 라고 나오는데, 바로 그것은 자기 명예와 자기 이름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 멈출 수 없는 질주본능 !!

그게 질주본능인데, 즉 "여기에 나만 존재한다" 라는 것을 만끽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런 자들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사업을 하면, 그 사업체를 오토바이로 여기고 자기만 살려고 질주를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크게 된 것이 대기업이고 재벌이라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자동차는 현대고, 휴대폰은 삼성이다" 라는 것인데, 그게 질주본능이라는 겁니다. 현대나 삼성이란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 이름이 아니고 자기 이름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전쟁은 바로 자기 이름을 돋보이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려는 것, 그게 적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원수라는 말이죠.

그러니 만약에 교회가 자기 교회의 이름을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인데, 교회가 아니고 사단의 집단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벌이시는 전쟁이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그런 것은 전혀 모르고 관심조차도 없다는 말이죠.

* 결코 자기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 !!

제가 또 다시 물어보겠는데, 인간은 자기 이름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결코 포기하지 않는데,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도 자기 이름은 포기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한 평생을 그 얼마나 자기 이름에 신경을 쓰면서 살아왔는지 모른다는 말이죠.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이름이 최고라는 겁니다.

"내 이름으로 살아왔다" 라는 것에 대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자기 명예라고 해도 되는데, 즉 "나는 나의 명예를 위해서 살아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나를 건드리면 죽여버린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육체를 건드리는 게 아니고, 여기에서 '나' 라는 것은 자기 이름의 외부체, 즉 외부적으로 표현을 한다는 것이죠.

* 현재진행형, '광산 김씨' !!

자기 육체를 건드리는 것은 그래도 용서할 수 있지만, 자기 이름을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죽이겠다' 라고 하는 것은, "내 이름은 나의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는 중이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이게 현재진행형인데, 여기에는 양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물론 실제로 죽이게 되면 자기만 손해니 죽이지는 못하고 악담을 마구 퍼붓게 되는데, 그래서 "얼른 지옥에나 가버려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왜 이런 악담을 합니까? "너의 존재가 나의 존재에 위협이 되고, 그것은 나의 명예에 먹칠을 하기 때문이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상대방에게 악담을 하는 이유라는 말이죠.

그래서 남편이 계속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여자가 어떻게 나옵니까?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를 않으니, "이 인간아, 나가서 죽어버려라" 라고 하면서 저주를 퍼붓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아들을 보고 "저 인간이 나가면 얼른 문을 걸어버려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남편을 보고 "당신, 오늘 또 가게문을 닫고 화투를 쳤지?" 라고 하는데, 이게 '광산 김씨' 이야기라는 겁니다(ㅋㅋ). 백옥자가 김언중에게 그렇게 나오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모두들 공감을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리이고 신학이고 모두 다 때려치우고, "내 이름은 내가 지킨다" 라는 겁니다.

그러자 남편이 화가 나서, 차마 아내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강아지를 발로 차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면 "당신이 지금 내 강아지를 찼어? 너, 오늘 죽었어" 라고 나오는데, 왜냐하면 그 강아지는 자기가 이름을 지어준 강아지라는 겁니다. 자기 소유물인데, 그러니 강아지를 건드리는 것은 자기의 일부를 건드리는 것과 똑같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같이 만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전쟁에 원수의 모습으로 만나고 있다는 겁니다. 남의 차를 몰고 평생을 돌아다니는데, 그렇게 자기 차인 것처럼 착각을 하다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어버리면, 그 죽는 순간이 반납하는 순간이라는 말이죠. 돈을 내고 랜트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남의 차를 몰고 다녔다는 겁니다.

* 성도는, 발전요소를 삭제 당한 자 !!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에게는 인간의 자기 이름을 떼고, 거기에 어린양의 이름을 붙여주셨다는 말이죠. 그렇게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서 이스라엘은 호주가 바뀌게 되는데, 어린양이 호주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름이 바뀌는 것인데, 육체의 주인이 바뀐다는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전쟁은 바꿔주시는 전쟁인데, 과거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조치로 이름이 그만 뒤바뀌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두고 '성도'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성도는 자기 내부의 발전의 요소가 강제로 삭제를 당해버린 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발전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아까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쑥' 이라는 말이죠. 뭔가 '쑥' 들어온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안다' 라는 겁니다. 즉 인간은 무엇이 자기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그것을 안다는 말이죠. 과연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그것을 나름대로 안다는 것이죠.

* '쑥' 들어온 선악지식 !!

그러면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자기에게 유리하면 선이고, 반면에 자기에게 불리하면 악인데, 그래서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채택하고 불리한 것은 그만 버린다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지식이고 앎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이 지식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는 것, 그게 우리가 안다고 해서 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공짜로 주셨다는 말이죠. 우리가 무엇을 알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번에 충청도에서는 각 기관들이 나서서 기우제를 드렸다고 하는데, 그게 표를 달라는 것인지 비를 달라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렇게 해서 비가 왔는데,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기우제를 드린 덕분입니까?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교회에 모여서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만, 비가 왔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기도덕분입니까?

울산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기도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겁니다. 먼저 이방인들의 기도가 있고, 그리고 주님의 기도가 있다는 말이죠. 이방인들의 기도는 그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무엇을 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마태복음 6장에 나온다는 말이죠.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반면에 주님의 기도는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달라고 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님이 아신다는 겁니다. 이번에 중국의 상하이가 코로나로 봉쇄가 되었는데, 그래서 주민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서 난리가 났다는 말이죠. 하지만 주민들이 달라고 해서 주는 게 아니고, 시진핑이 알아서 주는데, 그가 저와 나이가 동갑이라는 겁니다(ㅋㅋ).

그러면 그동안 여러분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도움을 받아서 살았는데, 이 육체의 소유권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은 자기 관리에 나서시는데, 그래서 우리는 사는 것도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죽은 것도 마음대로 죽지 못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자기 차가 아니라는 겁니다.

* 성령이 임하게 되면, 비로소 !!

이런 것은 주의 영이 임해야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것을 강력하게 고집한다는 말이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름의 명예를 스스로 접을 의사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성령이 와야만 가능한데, 성령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 그 사건을 있을 때만 올 수 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성령을 주실 만한 위치에 올라갔을 때 성령에 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았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겁니다.

(행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행 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내 이름에 흠집을 내지마 !!

인간에게는 지식, 즉 '안다' 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데 이것을 어디에 써먹었는고 하니, "내 몸은 내가 지킨다" 라는 것에 써먹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이 아는 선악체제가 누구와 적이 되는고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맞서게 되는데, 즉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기 이름, 즉 주의 이름의 희생에 근거해서 은혜를 주시는데, 그런데 인간은 자기 노력과 자기 희생에 근거해서 인생을 살아왔다고 버티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나의 이름에 흠집을 내지 말라" 라고 하면서, 완전무장을 하고 자기방어에 나선다는 겁니다.

예수님이신 어린양의 희생에 의해서 발생된 마지막 은혜가 무엇인고 하니, 그게 주님이 하신 기도의 응답이라는 말이죠. 그것이 "사랑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것인데, 그 성령 안에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것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너의 죄는 이제 없어졌어 !!

이것을 신약적으로 표현하게 되면 "너의 죄는 이제 없어졌어" 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이죠. 달리 말해서, "너는 발전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발전이란 것이 우리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어떻습니까? 우리 인간은 10억이 있으면 100억을 원하고, 그리고 100억이 있으면 1,000억을 원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자가 되면 될수록 돈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지는데, 그러니 이 발전이라는 유혹이 그야말로 골치 덩어리라는 겁니다.

초등학교가 과거에는 한 학급이 60명이 넘었는데, 심지어 80명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놓인 책상도 그 줄이 상당히 길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 줄에서 1등을 하면 기분이 좋은데, 그 다음에는 반에서 1등을 하면 좋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전교에서 1등을 하면 좋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그렇게 인간에게 발전에 대한 유혹은 끝이 없는데, 그래서 전혀 만족할 줄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족하지 못하면 자기가 퇴보할까 싶어서 공포가 찾아온다는 말이죠. 즉 "나는 망하면 안 돼" 라는 것이 공포로서 우리 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겁니다.

악마는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는데, "네가 그렇게 하다가는 훅 간다. 망한다. 부모노릇을, 자식노릇을 못한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길들여지지 않는 개가 사람의 어디를 뭅니까?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게 악마는 끝까지 우리의 자아성, 즉 "네가 잘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것을 여기에서 포기하면 되냐?" 라고 하면서 집요하게 공격하는데, 그러면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래, 내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망하면 안 돼"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런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심이 올라온다는 말이죠.

* 공포의 전화걸기 !!

이번에 강원도에 비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너거들 집은 괜찮아?" 라고 하면서 갑자기 전화를 하고 싶어진다는 겁니다. 강원도에 사는 자식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죠. 물론 전화를 해도 괜찮은데, 문제는 그게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오는 전화걸기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공포를 이기지 못합니까? 그것은 악마가 아가리를 벌리고 이빨로 우리를 물고 있기 때문인데, 악마가 놓아주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죠. 악마는 "너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라고 나오는데, "너의 과거를 아는 자들이 너를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개가 한 마리 같으면 발로 치우고 가겠는데, 7,000마리의 개가 달려들어 보라는 겁니다. 귀신들이 떼거리로 들어와서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나'에게, 때로는 희망을 주고 격려도 해주면서, "너는 네 자신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라고 하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겁니다.

* 전설의 고향 !!

제가 어릴 때 '전설을 고향'을 보면서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르는데,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다 있지 싶은데 말이죠. 그러면서도 그 드라마를 보았다는 겁니다. 그 드라마의 경우에는, 극본을 쓴 작가들이 시청자들을 얼마나 골탕을 먹이는지 모르는데, 주인공이 꼭 궁지에 몰리게 한다는 말이죠.

007 영화도 그러한데, 제임스 본드라는 주인공 옆에 붙어있는 본드걸들을 보면, 그 여자들이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주인공이 그대로 있으라고 하면 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꼭 찾아와서 일을 더 꼬이게 하는데, 인질이 되어서 주인공을 난처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전설의 고향도 그러한데, 꼭 주인공이 없는 사이에 강도들이 와서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아이를 협박하고 하는데, 그러면 시청자들은 "주인공을 뭐하노? 빨리 와서 일을 해결해야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범죄 수사극도 그러한데, 사건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경찰이 등장한다는 말이죠. 마동석이 실컷 얻어터지고 나면 온다는 겁니다(ㅋㅋ).

그렇게 인생을 살면 악마들이 달려드는데, 그때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오게 되면, 그 많던 악마들이 다 떠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게 되면 "걱정하지 마라. 너의 죄는 모두 없어졌어"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저주는 죄가 있을 때 주어지는 것인데, 그러니 죄가 없어지면 저주도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 목사 탓을 하지 말고 복음을 믿지 않는 자기를 탓해야 한다는 말이죠. 자기가 자기를 지키려고 하니, 교회에 가서 "목사님, 제가 성경을 얼마나 읽고 기도를 얼마나 해야 공포가 없어지겠습니까? 우리 집안의 문제가 해결이 되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자기가 아예 귀신을 찾는다는 겁니다. 차라리 서장훈 보살에게 물어보라는 말이죠(ㅋㅋ).

* 왜 복음을 떠나가는가?

제가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하겠는데, 십자가 마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왜 사람들은 복음을 버리고, 그 복음의 곁을 떠났는가?" 라는 것인데,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죠. 복음을 전했더니만, 하나 둘 떠나고 만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전했는데 왜 떠나느냐는 것인데, 참으로 희한하다는 말이죠.

복음은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이고, 그래서 저주가 없는데, 그러면 망한다고 하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던 과거의 습관이 남아서, 자기 인생도 아닌데 자기 인생이라고 여기고, 자기가 알아서 챙기고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런 자기 지식과 상관이 없는, 주님이 알아서 일방적으로, 즉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했다고 하는 사실이 찾아와서 우리를 잡아갈 때, 그러면 그 순간만큼은 우리에게 붙어있던 일곱 귀신들은 다들 떠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너는 이렇게 하다가는 훅 간다" 라고 하는 협박과 공갈은, 우리에게 해당사항이 없다는 말이죠.

* 기쁨의 환난 !!

사도들이 갔던 길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었는데, 그러면 그들이 복음을 버리고 주님을 버렸습니까? 그게 아닌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까, 사도행전 14장 22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라고 되어있다는 말이죠.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것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섰다고 하는 기쁨의 표현인데, 억지로 환난을 겪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게 아니고, "와라, 환난아!"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환난이 오면 올수록 점점 더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하는 증거가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것처럼 신나는 일이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사도들은 그런 협박과 공갈에 전혀 위축이 되지 않았는데, 결코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런데 왜 사람들은 복음을 버리고, 복음이 없는 곳으로 떠나가고 마느냐는 겁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죠. 여러분도 떠나고 싶습니까?

* 복음이 나를 욕한다 !!

이것은 제가 칠판에 크게 적어보겠는데, 사람들이 복음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저 복음이 목숨보다도 귀한 나 자신을 공격한다" 라고 여기기 때문이란 겁니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복음이 나를 욕한다" 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인간의 기본인데, 누구든지 자기 이름을 욕하고 흠집을 내면 떠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과는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가 않은데, 헤어지고 싶다는 말이죠. 그런데 복음이 자기를 욕하니, 그 복음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그만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디로 갑니까? 자기를 욕하지 않는 곳으로, 그런 교회로 간다는 말이죠. 그래서 자기를 위해주는 단체를 만들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교회는 목사가 어떻게 설교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욕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것을 모두 다 끌어 모은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여러분을 모독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을 보고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발전을 도모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해서 여러분이 원하시는 발전의 욕망에 도움이 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게 기존교회라는 것이죠.

설교시간에 "여러분이 회개를 하시면 복을 받습니다. 마음을 낮추시면 복을 받습니다" 라고 하는데, 얼른 들으면 굉장히 복음적으로 들리지만, 전혀 아니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제일 마지막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당신은 성공할 겁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구원은 기본이고, 보너스로 가정이 복을 받고 하는 일이 잘 된다는 것인데, 그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한다는 겁니다.

* 설교시간에 등장하는, 돼지 3마리 !!

그래서 설교시간에는 1대지, 2대지, 3대지, 그렇게 돼지 3마리가 등장하게 된다는 겁니다(ㅋㅋ). 먼저 1대지에서는 "우리는 십자가가 아니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함으로서 자기는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확인해둔다는 말이죠.

그리고 나서 2대지에서는, "십자가에서 멈추지 마시고, 여러분에게 닥치는 모든 환난은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주신 것이니,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3대지에서는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목사가 교인들을 가지고 노는데 있어서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십자가를 이야기하니 정통이 맞구나" 라고 나오는데, 그렇게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죠. 사실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이용하는 것인데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같이 놀아났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목사를 욕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자기 안에 뭔가 두려움이 있다는 말이죠. 그게 "나는 망하면 안 돼" 라는 것인데, 자기 자동차라는 겁니다. 자기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데, 도무지 주의 이름과 바뀐 적이 없다는 것이죠. 물론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말이죠.

* 악마는 나를 물고 늘어진다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게 영화제목이지 싶은데,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악마는 나를 물고 늘어진다" 라고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공포인데, 그 공포가 찾아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래, 망하면 안 되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 악마가 자기를 물고 늘어지면 생기는 것은 공포라는 겁니다. "기도를 좀 더 오래할까? 성경말씀을 더 볼까? 헌금을 좀 더 할까? 전도를 좀 할까?"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런 공포로 인해서 자기가 자기를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그래서 성경말씀도 차용하고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런 공포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고 하니, 이 육체가 자기 것이 아니고 주의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죽게 되면 이것을 주님에게 반납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반납하게 되면 지옥에 가고, 그래서 그 이전에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죠. 자기 이름이 아닌 주의 이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모세는 애굽의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바로 그 코스를 지금 우리도 똑같이 가고 있다는 겁니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이제 이것만 하고 마치겠는데, 이사야서 37장 3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 37:32)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이제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싶은데, 뭔가 피하고 빼내준다는 말이죠. 악마에게 속한 인간을, 즉 우리 인간이 "내가 안다" 라고 하는 것에서 주님이 빼내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가 한다는 겁니까? 우리 인간이 아니고, 우리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여기에서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출애굽기 5장 2절도 다시 보겠습니다.

(출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애굽의 바로 왕은 히브리인들을 호락호락 보낼 의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 성경말씀이 이야기하는 것은, 한 쪽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고, 그리고 주님은 거기에서 빼내려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 당기고 밀고 하는 것이 성경내용인데, 우리는 거기에서 늘어지고 말이죠(ㅋㅋ). 그러니까 "내 것이다. 놔라" 라고 하면, 저쪽에서는 "안 돼. 도저히 보내지 못하겠다" 라고 하는 싸움인데, 우리 인간이 여기서 어떻게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바로 왕이 모세를 보고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보내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이 다 이루심으로 공포는 사라지고 구원이 주어지게 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주님의 차로 바뀌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차이니, 주님이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주님이 주님 자신의 세계로 빼주시는데, 바로 여기에 해당이 되는 자들이 구원을 받은 자들이고 주님의 백성들이라는 말이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 속에 들어있는 나만의 요소가 삭제되게 해주시고, 그리고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지식들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22,6,12 오전 10시에 마침.

더워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인해서 늘어지게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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