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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 21:53:00 조회 : 980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2 - 힘과 기계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2 - 힘과 기계
                                                                                
                                                          15,10,19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30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인생을 아무리 고생을 하면서 살아도. 결국은 지금 '오늘' 이라는 것에 다 초점이 모이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이 고통스러우면 과거에 행복했던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그 마지막 현재의 가치에 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위해서 지난날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끝이 만약에 오늘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성도는 그날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끝이 지옥이라면, 그 이전의 것도 다 지옥이었다는 말입니다.


◈ 지옥이 왜 지옥인가?


여기 마지막에 보면 "그 끝이 지옥이라면, 그 이전의 것도 다 지옥이었다" 라고 하면서, 지옥이 나오는데 말이다. 이 지옥이 겁나고 고통스러운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단지 사는 환경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번 들어가면 빠져 나오지 못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지옥이라고 해도 고생을 10년만 하면 나올 수 있다고 하면, 힘들어도 견딜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나올 수 있다는 희망만 있다고 하면 말이다. 


그래서 지옥의 문제점은 무엇인고 하니, 희망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인데, 즉 다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인데, 이 땅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지만, 그런 보이지 않는 소망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기존 우리의 소망이 엉터리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가짜 소망을 진짜 소망으로 갈아치워 주시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고 절에 갔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죽어서 극락에 간다고 하는, 그 극락이 사실은 지옥인데 말이다. 그렇게 죽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도록 마귀가 가짜를 유포시켰는데, 그런 유언비어를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덕을 많이 쌓으면 죽어서 극락에 가십니다. 염라대왕이 보내주십니다" 라고 하는 마귀의 거짓말은, 그것은 자기가 아무리 똑똑하고, 아이큐가 180이 넘고, 박사학위가 몇 개나 되어도 전혀 알아차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 그런데 !!


이제야 이야기를 합니다만, 인간은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즉 "인간은 종교를 갖는 게 아니라 희망을 갖는다" 라는 것이다. 마귀가 이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그래서 종교가 없는 경우에도, 즉 절에도 가지 않고 교회에도 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결코 희망만큼은 포기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언젠가 내가 죽더라도 내 자식들이 제사를 잘 지내주면, 그러면 내가 죽어서도 잘 되겠지" 라고 하면서, 죽음 그 이후까지를 내다보는 희망까지도 나름대로 챙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희망에 대해서는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한 마디로 말해서 '영적 싸움터'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즉 "너의 희망이 진짜 희망인가? 아니면 내 희망이 진짜 희망인가?" 라고 하는, 그런 희망의 질적인 차이를 두고 벌리는 싸움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꿈과 희망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데, 하지만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마귀가 만들어준 거짓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듣고 있던 상대방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면 당신의 희망이 진짜라는 증거를 대보시오" 라고 나오는데, 즉 "다른 사람의 희망은 지옥에 가는 희망이고, 반면에 당신의 희망은 천국으로 가는 희망이라고 하는 증거를 대보시오" 라고 말이다. 


◈ 하늘이 열렸다 !!


그렇게 나왔을 때, 그것이 바로 에스겔서을 비롯한 선지서에 예언이 되어있는데, 즉 "하늘이 열렸다" 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는데, 그리고 에스겔이 계시를 받을 때도 하늘이 열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있을 때도 하늘이 열렸는데, 그때 천사가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온다는 것이다. 이게 야곱 언약인데 말이다. 


(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 28: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창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창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 28: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사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여기 이렇게 바늘구멍만큼 뚫린 구멍에서 희망이 쏟아지게 되는데, 그게 하나님의 언약, 즉 약속의 형식으로 희망이 쏟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애굽에서 모세가 설쳐도 되지 않던 그 해방,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으로 모세를 보내었을 때, 그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모든 것이 캄캄했지만,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를 통해서 그들은 탈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탈출' 이라는 것보다도 '분리' 라는 용어를 더욱 선호하는데, 즉 분리가 되었다는 말이다. 제가 왜 '분리' 라는 개념을 더 좋아하는고 하니, 이것이 그 다음에는 거룩이 된다는 것이다. 분리가 된다는 것은 결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개념이 아닌데, 이 분리라는 것은 바로 거룩의 개념이라는 말이다.


* 질문 - 목사님, 그것을 '열렸다' 라는 개념으로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열렸다' 라는 것과 '거룩'을 연결시키게 되면, 이 거룩은 위에서 주셔야만 하는 것이지, 밑에서 우리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낼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소망과 희망 속에 거룩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거룩이 어려우면 '하나님의 의' 라고 해도 되는데, 말을 하고 보니 이것이 더욱 어려운 것 같은데 말이다(ㅋㅋ). 그래서 이사야서 45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의가 위에서 비 같이 위에서 쏟아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 45:8) 너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비 같이 듣게 할지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 인간은, 하늘이 밀폐된 상태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지금 오신 분이 있어서 다시 하겠는데, 그러면 "하늘이 열렸다" 라고 하는 것, 왜 이것이 충격적인고 하니, 하늘이 열리기 이전에, 즉 언약이 주어지기 이전에는 하늘이 어떻다는 말인가? 닫혀 있었다는 것인데, 그러면 "하늘이 밀폐된 상태에서 인간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것이다.


이게 오늘 강의에서 첫 번째 질문인데, 물론 우리 인간은 그런 상태에서도 희망은 갖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이고,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 인간은 희망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게 곧 바벨탑이고, 그래서 그 바벨탑의 모든 의미가 기어이 하늘에 도달하고 말겠다는 것이다. 


(창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러니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의 종교라는 것은, 그게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간에 말이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희망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로 성령을 받고 복음을 이해한다고 하면 이 거짓 희망에 대해서, 즉 인간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희망은 어떤 내용을 품고 있는지, 그것을 항상 파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거룩'과 '하나님의 의', 끝 !!


예를 들어서, 이번에 자기가 가게를 새로 오픈을 했다고 하면 희망이 무엇이겠는가? 가게가 거기에서 계속해서 번창하기를 바라는데, 그게 바로 자기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어떻다는 말인가? "아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런 것은 결코 나의 소망이 아니구나" 라고, 그렇게 단방에 캐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가까운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할 때 뭐라고 하겠는가? "하나님, 이번에 가게를 새로 했습니다. 대출을 좀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 잘되게 해주시고, 그렇게만 해주시면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한 복음전파를 위해서 헌금도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조건부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옆에 있으면 들리니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다가,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참된 희망이 아닌데" 라고 자기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희망이란 것은 무엇인가요?" 라고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게 바로 '거룩'과 '하나님의 의' 라는 것인데, 저는 이 지점에서 오늘강의를 끝내고 싶은데,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말이다. "아, 가을이다. 왠지 쓸쓸해. 뭔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 없을까?" 라고 하면서 희망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제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가을에는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편지를 봄에 써도 되는데 가을에 왜 쓰느냐는 말이다.


◈ 인간은 자기가 만든 희망 속에 갇혀있다 !!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자기 희망도 같이 사라질까봐서, 그래서 우리 인간은 사전에 미리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편지를 쓰던지 무엇을 쓰던지 해서 말이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 보면 되는데, 즉 "인간은 자기가 만든 희망 속에 갇혀있다" 라고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과 하나님의 의는 도대체 어느 누가 훼방질을 하고 방해를 놓고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것은 우리 인간이 만든 희망이 주님이 주신 희망을 가로막는, 그런 마귀 짓을 하고 있다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정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 부자는 지옥에 가서도 여전히 !!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거지 나사로의 앞집에 살았던 부자가 지옥에 갔는데, 그러면 그 부자가 지옥에 가서 희망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희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을 한 방울이라도, 그래서 자기가 알고 있던 나사로에게 물을 좀 가지고 오도록,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즉 나사로에게 편지를 썼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전히 희망이 있는데, 왜냐하면 부자의 태도는 "물만 있으면 지옥이라도 견딜 만합니다" 라는 것이니 말이다. 부자의 소원대로 우리가 보기에는 물 한 방울을 주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하나님은 단호히 거절하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니가 만든 희망이 너를 망쳤어"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누구를 보고 이단이니 삼단이니 말하기 이전에, 성경을 통해서, 즉 야곱과 스가랴 등을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의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가지고, 그것을 희망으로 만들어서 교회에서 선포하고, 또한 기도하면 얻을 수 있다고 했는지, 그것을 서로 비교를 해보라는 것이다. 


◈ 자기를 후벼파는 설교가 아니라면 !!


제가 잘 아는 어떤 분의 언니가 저에게 대해서 그런 소리를 하니까, 그분이 자기 언니에게 "이근호 목사의 설교를 찬찬히 들어봐라. 그리고 나서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해라" 라고 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들어보게 되면, 복음이라는 것이 지식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마구 후벼판다는 것이다. 자기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이근호든 삼근호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만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지 간에 말이다. 하늘이 열리면 받으면 되는데, 그런 하나님의 의를 받는데 무슨 김성수 목사가 도와주고 해야 하는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우리도 잘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사고방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교회도 잘되고 십자가 마을도 잘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그런 세속적인 희망을 마치 참된 희망처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주신 믿음 소망 사랑이 아닌, 다른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동원될 가능성이 있고, 또한 그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사실은 가능성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자신이 주님의 일을 망치는 짓을 스스로 하고 있는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일이 망쳐지지는 않는데, 이미 구원이 되었기에 말이다. 베드로가 아무리 주님을 부인해도,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그렇게 설치면, 자기만 힘들어진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피서철만 되면 피서를 온 사람들이 고민이 하나 있어요.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가야산 해발 450미터로 시원한데, 내일 다시 대구시로 내려가 보세요. 대단히 덥죠. 그러니 어제 시원했던 것이 지금의 더위를 조금도 감소시키지 못해요.


◈ 막 산다 !!


여기에 보면 "어제 시원했던 것이 지금의 더위를 조금도 감소시키지 못한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게 맞다는 것이다. 이렇게 순간 순간이 현재이고, 그런 현재의 감정을 두고 '기분' 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인간은 기분대로 산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세 글자로 '막 산다' 라고 할 수가 있는데(ㅋㅋ), 그게 전혀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 아이가 이번 시험성적이 나빴다고 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쁜데, 그런데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괜찮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라고 하는데, 그런데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데 그런 성적을 받아오면, 엄마는 그만 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요란함 속의 정숙 상태 !!


그러니 그 모든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자기 기분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을 주님은 잘 알고 계시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을 두고 어제 설교시간에는 '요란함 속의 정숙 상태' 라고 했는데 말이다.


이번 겨울에 할 요한계시록 강의안을 서경수 목사님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보통은 서 목사님이 먼저 살펴보고는 문맥도 살펴보고 어려운 표현들도 좀 고치고, 그렇게 교정을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 일찍 보내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면 저는 제 손을 떠났으니 홀가분해지고 좋지만 서 목사님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ㅋㅋ).     


◈ 당신은 천국을 봤어? 지옥을 봤어?


저는 이번 강의안이 상당히 만족스러운데, 거기서도 지옥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당신은 지옥이든 천국이든 가봤나?" 라고 나오면, 어지간히 복음에 대해서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무식하게 나오면 답변을 하기가 궁해진다는 것이다. "천국을 봤어? 지옥을 봤어?" 라고 나오면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또한 아시고 친절하게도 구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장차 보아야 될 천국과 지옥을 그들의 역사로 만들어서 구체화를 시켰다는 것이다. 그게 잠언서 8장 35절과 36절에 나오는데,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잠언서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살펴보자는 말이다.


잠언서 8장 35절과 36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잠 8: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잠 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 생명의 힘과 사망의 힘 !!


여기 36절에 보면 대비가 되는 두 개의 개념이 나오는데, 하나는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망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에 보면, "니가 사망한다" 라고, 즉 "니가 나중에 죽는다" 라고 하지 않고, "니가 사망을 사랑한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사랑한다' 라는 동사가 어떤 것이고 하니, 사랑의 대상체가 반드시 전제되었을 때 성립하는 동사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사랑한다" 라고 하면 안 되고, 당연히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대상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미친 사람이고 말이다. "나는 사랑한다. - 무엇을? - 가을을 사랑한다" 라고, 혹은 "조국을 사랑한다. 아내를 사랑한다. 주님을 사랑한다" 라고, 그렇게 특정한 대상이 있어야 사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특정 대상을 자기가 사랑한다는 것이 성립된다는 것은, 그것은 그 특정 대상이 자기와 함께 있다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 사망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생명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이스라엘 속에 현재화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사망을 사랑한다는 것이 말이다.


이것은 장차 늙어서 죽는 그런 죽음이 아니라, 그것은 동사이고, "지금 뭔가 사망이 작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너희들이 사랑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호와께 은총을 받지 못하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사망을 사랑하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차 늙어서 죽는 사망이 아니라, "지금 현재 여기에 사망이 작용하고 있다" 라는 뜻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어디 사망만 작용하는가? 생명도 역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35절에 보면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여호와께 은총을 얻는 자는 생명을 얻는 자이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내부에는 두 개의 서로 살아있는 성질이 같이 충만하고 덮쳐져 있는데, 서로 대결상태에 있다는 말이다. 하나는 사망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힘이라는 것이다. 


◈ 다시, '하늘이 열렸다' !!


이것을 한 번 적어보겠는데, 즉 '사망의 힘'과 '생명의 힘' 인데, 방금 지운 "하늘이 열린다" 라는 것이 조금 아까운데 말이다. 그것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는 갇혀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바늘구멍만큼이라도 좋으니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늘이 열리면, 거기에서 우리의 희망하던 것이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갇혔을 때는 모르던 희망이 구멍을 통해서 위에서 내려온다는 것인가? 우리가 갇혔을 때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하는 하나님만의 것이 구멍을 통해서 내려오는데, 그런데 그 바늘구멍을 뭐라고 했는가?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누었던 자리로 내려오는데, 그게 바로 언약이라는 것이다.  


언약이 이만큼 중요한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낼 때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으로 보내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교인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설교시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가 도대체 설교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 말인가?


평소에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희망을, 자기들이 만든 하나님에게 부탁해서, 그러한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 것이니, 이것은 전혀 폐쇄된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 결국은 교회가 아니라 갓바위이고, 동화사의 법당이라는 것이다. 전부가 다 그렇다는 말이다.


◈ 너희는 아무 것도 몰라 !!


어떤 분은 이근호 목사의 설교가 굉장히 강하다고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제가 스스로 생각해보았는데, 정말로 그렇게 강하고 센지 말이다. 만약에 사도바울이 오늘날 설교를 하면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예수님이 설교를 하신다면 뭐라고 하시겠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경우에는,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물으니 답변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너는 몰라도 돼!" 라는 의미인데,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은 제대로 갇혀있기 때문에 그 무슨 말을 해도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열려있는 상태라고 하면, 그것은 갇혀 있는 상태를 박살내려고 오신 것이기에 우리가 모르는 것이 오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거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를 주장하면 안 되는데, 그것은 다 죄악된 것이란 말이다.


이렇게 "하늘이 열렸다" 라는 것은 요한계시록에도 나오는데, 그러니 계시는 언제나 신약에서 하늘이 열린 것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너는 모른다. 너는 니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른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계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이미 천국과 지옥이 !!


그런데 이스라엘에게는 그것이 열려있는데, 왜냐하면 그게 야곱의 언약이니 말이다. 이스라엘에게는 알려주었는데, 어떻게 알려주었는가? 장차 올 천국과 지옥으로, 그것을 미리 맛보기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현실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에게 "니가 지옥을 봤어?" 라고 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 속에 이미 지옥의 흔적과 천국의 흔적이 같이 병행해서 이미 있다는 것이다. 


만나가 그 대표적인 것인데, 만나를 어느 제과점에서 만들었는가? 우리나라의 제과점을 초토화시킨 파리바게트의 제품인가? 물론 만나를 먹는다는 것은, 그 당시의 현장에서는 과자 부스러기를 먹는 것과도 같지만, 이게 계속해서 이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라"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우리에게는 힘이 드는데, 왜냐하면 말씀은 물체가 아니기에 말이다. 우리의 습관대로 하지만 먹는다는 것은 어떤 물체를 집어먹는 것인데, '먹어라' 라는 동사와 '말씀' 이라는 명사가 우리 인간시대에서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나' 라는 것이 누구이며, 어떻게 얻는가?


그렇다면 잠언서 8장 35절에서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라고 했을 때, 그 '나' 라는 것이 누구인가? 없는데,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를 얻는다는 것이 사귄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명함을 주고 받는 식으로 인사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요한복음 6장에 보면 그 '나'를 얻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란 말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몸으로 교체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우리에게 몸이 이렇게 있는데, 피가 있고 살이 있다는 것이다.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그런 우리의 살과 피는 예수님께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혈액투석이라도 하면 되는가? 피를 다 뽑아내면 말이다. 그리고 살은 어떻게 난도질이라도 하면 구원을 받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들의 몸을 내 몸으로 바꾸어주겠다" 라고 하는 의미인데, 그러면 그것이 어떤 방법인가?


◈ 예수님께서 어떻게 몸을 바꾸어주시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하나님에게 받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 비둘기처럼 오시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뜻마저도 거부하고 아버지의 뜻만 거기에 담는다는 것이다. 즉 거절하고 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눅 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그래서 '오병이어'의 경우에도,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그냥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면서 축사를 하시는데, 즉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 물어본다는 것이다. 12제자를 뽑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마 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특별히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것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성령께서 도와달라고 하는, 그런 뜻이라는 말이다.


(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리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는 천사도 와서 도와주는데, 또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난 뒤에도 와서 음식을 대접하면서 도와주고는 말이다. 그런데 목사들은 '겟세마네' 라는 장소만 나오면 기름을 짜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 겟세마네는 올리브 기름을 짠 곳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기름을 짜듯이 기도를 해야합니다" 라고 말이다.


다들 들어본 적이 없다는 표정들인데, 그래도 참깨는 참기름이라도 나오지만, 사람에게는 그것조차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ㅋㅋ). 그래서 기도를 할 때 "주여, 주여, 집을 사주세요" 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기도를 흉내낸다는 말이다. 쌍둥이 아이들이 나와서 그렇게 기도하는 유투브가 있는데, 작은 무당 둘이 나와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


여기 잠언서 8장에서 생명은 천국을 의미하고, 사망은 지옥을 의미하는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여호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보낸 자가 바로 '나' 라는 것이다. 즉 "기대려봐라. 내가 어떤 분을 보내주겠다" 라는 것인데, 그게 시편에도 나오고 히브리서 10장에도 나온다는 말이다.


(잠 8: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잠 8:36)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히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복음은 간단해요 !!


다시 말해서, "모든 말씀은 니가 지키는 것이 아니야. 두루마리에 있는 말씀의 내용대로, 그것을 완성시킬 어떤 분을, 한 몸을 하늘에 예비했는데, 드디어 구멍이 뚫리고 하늘이 열리면 내가 그분을 보내주겠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은 간단한데, 복음이 매우 간단하다는 말이다.


하늘이 열리고 그분이 오셔서, 그분이 우리를 데리고 가면 천국이 만들어지고, 그러면 깨끗하게 끝이라는 것이다. 그냥은 갈 수가 없으니 십자가로 죄를 용서하시고 말이다. 그게 하나님의 의가 되어서, 즉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 거기에 딸려 나온 자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다고 하는 자격을 얻는, 그런 의인들이 모인 집단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극단적이고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인가? 결코 아닌데, 그런데 왜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자기가 기대하는, 그런 자기가 만든 믿음 소망 사랑이 그만 쓰레기가 되고 마니까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잘남과 자기 가치가 그만 시궁창에 처박히니 말이다. 


◈ 아이 엠 '쓰레기' !!


그런데 성령을 받게 되면 뭐라고 하는가? "저는 쓰레기가 되어도 희망만 있으면 됩니다" 라고 하는데, 사람은 희망만 있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 세상이 주는 희망은 아니고 말이다. 12제자가 전부 다 쓰레기 취급을 당했는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비참하게 순교를 당했는데,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에는 돌에 맞아 죽었는데, 사람이라면 돌에 맞아서 죽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그런 고난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는데, 또한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무엇이라고 하는가? 예수님은 "나 때문에 욕과 핍박을 받을 때는 복이 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라고 하셨는데, 앞선 선지자들도 역시 그러했고, 그러면 하늘에 큰 상이 있다는 것이다.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 '하늘의 열림'과 '이스라엘' !!


일단은 '생명과 힘'과 '사망의 힘'을 먼저 기억해두고, 그렇게 이스라엘 전체가 하늘이 열렸는데, 그게 바로 야곱의 언약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 야곱 언약이 확대되면 야곱의 이름이 바뀌는데, 이스라엘로 말이다. 그러면 그 이름이 이제 구체적이 되면서 12지파가 되고, 그게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는 곳에는 야곱의 언약이 작용하기 때문에, 즉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 주변 나라들이 이상하게 당하고 맥을 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 그들은 시다바리로 있게 된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힘이 강한 애굽이라고 해도 그렇고, 모압과 암몬도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블레셋도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스라엘이 지금도 문자적으로 가지고 있으니, 원자폭탄 200개를 가지고서 이란이든 뭐든 간에 걸리기만 기다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란이나 이라크나 다 시다바리라는 것이다. 물론 팔레스타인도 그렇고 말이다. 심지어 미국이나 영국도 그러한데, 자기 이스라엘을 빼놓고는 다 나라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정신무장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자기 주변 나라들로부터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특히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이스라엘을 부러워하는데, 그래서 "우리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승리하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인데, 문자적으로 이스라엘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뭐라고 하는가? "우리 한국도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합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이휘소 박사와 같은 분이 또 나와야 합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개발해서 저렇게 큰 소리를 치는데, 그러니 우리도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고 말이다. 그야말로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 어린양, 깨어진 돌판 !!


하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그렇게 나오면 안 되고, 그게 무엇인고 하니까, 그래서 지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늘이 열렸다는 것에 꽂혀야 한다" 라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꽂힘의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곧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출애굽을 할 때의 그 어린양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하늘이 열렸다" 라고 하지만 말고, 그것을 구체화를 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어린양이었고, 그 다음이 돌판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제 설교를 했는데, 그런 투박한 물체인 돌판이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그만 깨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 에이, 시시하게 깨지고 말았네 !!


그래서 "에이, 시시하게 깨지고 말았네" 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 깨어진 돌판이 그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깨어진 돌판으로 언약궤를 만드니 그만 유유히 흐르던 요단강도 멈추고 길이 열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리고 성도 와르르 무너지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원자폭탄 200개 이상의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궤가 이제는 혼자서 돌아다니니, 그만 블레셋의 다곤 신상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손모가지와 발목가지가 부러지고 말이다. 블레셋으로는 그야말로 굴욕적인데, 언약궤가 갑질을 했다는 말이다. AS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백화점 직원을 꿇어앉힌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메르스 전염병까지 퍼지니 블레셋이 감당하지 못해서, "제발 이 언약궤를 좀 가져가 주세요" 라고 부탁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다윗이 너무 너무 좋아서 춤을 추었는데, 그런데 다윗의 마누라는 그 의미도 모르고, 그런 자기 신랑을 보고 "체통도 없이 그게 무슨 짓입니까?" 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그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아이도 낳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체화된 영광인데, 그러니 멋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박해 보인다는 것이다. 로마의 대성당처럼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는 말이다. 교인수가 수 천, 수 만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소박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러한가? '분리'이기 때문에, 즉 "너희들의 소망과 우리들의 소망이 분리가 되었다" 라는 것이다.


◈ 들뢰즈의 '힘과 기계' !!


아까 '사망의 힘' 이라고 했는데, 또한 '생명의 힘' 이라는 말이다. 이 힘에 대해서 지금부터 설명하고 싶은데, 이게 어렵기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데, 그래도 강하게 밀고 나가보자는 말이다. 이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이 힘을 눈에 보이게 설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 양반이 바로 '들뢰즈' 라는 철학자인데, 그는 이 힘을 기계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힘을 기계라고 하니, 전문적인 철학자들조차도 그의 책이 너무나 어려워서 고개를 흔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계는 눈에 보이는데, 하지만 힘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반칙이라는 말이다.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서로 적당한 용어를 사용해줘야 하는데, 그런데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설명한다는 말이다.


◈ 들뢰즈 - '인간은, 우연적으로 뭉쳐진 일시적인 기계에 불과해' !!


그래서 사람들이 들뢰즈에게 항의를 하는데,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인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들뢰즈는 "당신은 지금 거울 앞에서 무엇으로 보이는가?" 라고 하는데, 그러면 당연히 "나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들뢰즈는 "당신은 사람이 아니야. 우연적으로 뭉쳐진 일시적인 기계에 불과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평소에 사람들이 "나는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유의 가치와 의미를 포기하지 못해.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 거야" 라고 하는데, 그렇게 자기 절대화를 하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절대로 자기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계'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기계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해체시켜라' 라는 것인데, 무엇으로 말인가? 들뢰즈에 의하면서 '욕망의 힘'으로 해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제가 앞에서 '힘' 이라고 했는데, '생명의 힘', '사망의 힘' 이라고 말이다.


◈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는 힘 !!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을 구체화를 시키실 때, 그런데 정작 그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들뢰즈와 같은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애굽의 장자들은 죽어나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페인트칠을 하니 이쪽에 있는 장자들은 죽지 않았는데, 그러면 그것을 설명해 주어야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비록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힘은 작용한다" 라고, 그렇게 설명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신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란 것이 무엇인가? 그들의 특징은, 바람과 같이 부는 성령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을 말이다. 


◈ 주께서 던지게 하셨다 !!


12제가 왜 순교했고, 스데반 집사가 왜 순교했는가? 돌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스데반 집사만 보이는데, 그래서 다른 것은 무시하고 돌을 던져도 자기들은 괜찮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즉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라고 말이다. 


(행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래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야? 지금 저 놈이 누구를 보고 이야기하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돌을 던진다는 것은 "내가 너에게 던진다" 라는 의미인데, 그런데 그 '너' 라는 스데반 집사는 어디에 연결되어있는가? 보이지 않는 분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가 보는 안목은 무엇인고 하니, "저들이 나에게 던졌다" 라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던지게 하셨다" 라고, 그렇게 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돌을 들 수 있고 또한 던질 수 있는 힘은, 그것은 바로 지금 자기와 함께 있는 주님이 의도적으로 시켰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데, 즉 그들에게는 그만 주님이 빠져버리고 없으니, "주여, 저들이 하는 짓을 저들이 알지 못합니다" 라고 하는 스데반 집사의 말이 맞다는 것이다.


◈ 모든 것, 'EVERYTHING' !!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보게 되면, 거기에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고 되어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무엇을 하든지' 라고 하는 것을, 그것을 새삼 자기가 정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야말로 영어의 'EVERYTHING', 즉 '모든 것' 이라는 의미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만 자기가 선택을 해버리면,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이 분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어머님이 참석하지 않았는데, 참석해야 '모든 것'이 되는데 말이다(ㅋㅋ).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러니 사도바울의 모든 권면과 명령은 '행하라' 라는 것이 아닌데, 제가 그렇게 수 없이 이야기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보고 행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주님의 행하심의 결과물임을 고백하라" 라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친절함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제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이렇게 쉽게 이야기를 해주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정말로 미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쉬지 말고 무시로 기도하라" 라고 하면, 그것은 "잠도 자지 말고 기도하라" 라는 뜻이 아니고, "기도하게 하신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된다고 하면, 그것은 주님이 시켜서 기도한 것이라고 고백하면 되는데, 그게 바로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다양한 현상 중에서 하나라는 말이다. 전혀 어렵지 않은데, 그러니 그냥 편안하게 막 살면 된다는 것이다.


요즘 방송에 마사(?) 이야기가 나와서 얼마나 신경이 쓰이지는 모르는데, 또한 우리 권사님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겠느냐는 것이다. 권사님, 걱정이 되지 않아요? 물론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하시겠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에게 찬송하는 일을 시켰다고 하는데 말이다.


◈ 생명의 힘으로 만든 기계로서 살아간다 !!


그러한 세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인데, 그게 바로 잠언서 8장 35절에 나오는, 즉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라고 되었는데, 이 생명이 바로 생명의 힘이라는 것이다. 즉 생명의 힘의 결과물로서 구성된, 이것을 들뢰즈의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면, "생명의 힘으로 만든 기계로서 살아간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잠 8:35)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일종의 트랜스포머라고 할 수가 있는데,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을 하는, 그런 '변형체' 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도 모르는데, 자기가 어떻게 변할지 말이다. 그리고 몰라야 하는데, 알게 되면 모든 것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을 골라서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는, 그렇게 주님에게 상납하는 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기가 갑이 되는데, 주님이 갑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초월의 세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소개하고 증거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신약에 나오는, 즉 십자가에서 나오는 생명으로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 이 기계는 고장이 나도 괜찮다 !!


이것을 들뢰즈는 기계라고 표현했는데, 그러면 성경공부를 하는 이 소중한 시간에 이런 어려운 철학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이 양반이 이 기계를 이야기하면서 사용한 아주 적절한 표현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이 기계는 고장이 나도 괜찮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저는 이 표현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는데, 즉 고장이 나도 괜찮다는 것이다.


보통은 기계가 고장이 나면 더 쓸 수가 없는데, 그런데 들뢰즈가 보기에는 이 힘이 구체화가 된 기계, 즉 인간이라는 기계, 개라는 기계, 고양이 집을 지어주는 기계, 그리고 벽돌을 던지는 9살 짜리 기계, 그런 모든 기계는 고장이 나도 고장이 난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기계가 기계답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계가 고장이 났다고 해서 함부로 당신에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니가 '저 기계는 고장이 났다' 라고 하는 순간, 너는 이미 힘에서 벗어나서 그만 딱딱해지고 만다" 라는 것인데, 즉 "나에게 쓸모가 없으니 고장이 났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 집에 청소기가 고장이 났다고 하면 "아, 청소기를 또 새로 사야만 하겠네" 라고 하면서 걱정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결국 무엇인가? 그동안 청소기를 유리하게 자기에게 소속된 기계로 보았는데, 청소기는 분명히 기계인데, 그러면 그것을 사용한 자기는 무엇이라는 말인가? 졸지에 기계 앞에서는 자기는 기계가 아닌 것으로, 즉 자기는 갑이 되면서 기계에서 그만 벗어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들뢰즈가 보기에 그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다. "너도 고장이 났구나. 나도 고장이 났어. 우리는 서로 같은 기계야" 라고 하면 이 세상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니가 건방지게도 내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지? 이제 바꾸어야 하겠어" 라고 한다면, 그 순간 자기는 그만 신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 그 어떤 신도 상정해서는 안 된다 !!


그래서 들뢰즈 철학의 문제점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 어떤 신도 상정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인데, 즉 "자연은 자연 그대로 시작과 끝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지, 신이 있으면 안 된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있으면 그 신으로 인해서 싸움이 벌어져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되니까 말이다.


모든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고, 그것은 신들의 싸움인데, 신들마다 다들 자기가 잘랐다고 하니, 그만 들뢰즈는 화가 나서 신을 없애고 자연 그대로에, 그래서 들뢰즈는 이것을 신이라고 하지 않고 '일자(一者)' 라고 하는데, 즉 하나밖에 없는 '자(者)' 라는 것인데, 즉 '자연 그대로' 라는 것이다. '스피노자' 라는 철학자는 이미 그 이전에 이야기를 했는데, 즉 자연 전체가 신이라는 말이다.


◈ 불교적이고 윤회적인 들뢰즈 철학 !!


그러니 이것이 불교와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이런 불교적 경향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윤리를 재조명하자는 것인데, 그들이 말하는 윤리가 무엇인가? 모든 윤리의 문제점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려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인공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제대로 없앨 수 있을까?" 라고 하면서, 거기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을 욕망의 기계로 보자는 것인데, 이 욕망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힘이 잠시 뭉쳐지면 자기가 되고, 그게 다른 것에 뭉쳐지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뭉쳐졌다가 흩어지면 그만인데, 그렇게 일시적으로 뭉쳐진 것에 왜 마음을 빼앗기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들뢰즈의 철학인데, 그러니 불교적이고 윤회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런 모든 내용까지도 성경말씀에, 즉 언약 안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언서 3장 16절을 찾아보겠는데, 성경에 3장 16절에 중요한 것이 많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한국교회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 구절이라는 말이다(ㅋㅋ).


그러면 잠언서 3장 16절을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잠 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심방을 갈 때 이 성경구절 이상은 없는데, 최고라는 말이다. 대심방을 해도 이 한 구절이면 족한데, 그러면 나올 때 봉투가 따라나온다는 것이다(ㅋㅋ). "목사님, 하나님이 이런 놀라운 축복을 준비하셨는데, 저는 장사를 한다고 바빠서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심방을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오른 손에는 오래 사는 것이 있고, 왼 손에는 부자가 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말이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그야말로 땡 잡았다는 것이다. 이 한 구절만 있어도 부흥회를 할 수 있는데, 이 구절은 헌금을 하는 목요일에 집중적으로 하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왜 그런 것을 가지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제시하면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성경말씀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교회에 충성하지 못하고 목사를 제대로 섬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좋아할 간증거리를 몇 개만 모아서, 그런 식으로 밀어 부치게 되면, 얼마든지 부흥회를 성공적으로 끌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 '우편 손에는 장수, 좌편 손에는 부귀가' 라는 의미는?


그렇다면 이 본문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제 스스로가 감격스러운데 말이다. 천국과 지옥, 그 개념은 신약에 와서 완전히 밝혀지는데, 그것은 이 지구가 완전히 뭉개지고 난 다음에 분리되는 세계인데, 그게 천국이고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지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천국이 중심이 되고 지옥은 변두리가 되는데, 그야말로 캄캄한 세계라는 것이다. 빛은 어둠과 함께 대비가 되면서, 즉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라고 했으니 말이다. 거기는 어두운,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쪽은 무엇인고 하니까, 밝은 빛이 있는 곳이란 말이다.


(마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그런 소망은 우리 인간의 아이디로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지금 제가 그것을 반대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갇혀 있는 세계에서도 인간은 극락을 만들어내는데, 불교노래인 회심곡에 보면 지옥이 상세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에서는 지옥과 극락을 만들고, 또 성경은 성경대로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어서 천국과 지옥을 만들고, 그렇게 사람마다 종교가 다르니 각자 존중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국과 지옥은 신약시대에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알려진 것인데, 최종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야곱언약을 통해서 구멍이 뚫렸는데, 거기로 언약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언약이 내려오면서, 지상에는 이스라엘이란 것이 구체화가 되어있는데 말이다.


◈ 언약이 지상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실제로 구체적으로 있다는 것은, 그 의미를 아는데 있어서 그게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먼저 유리한 점은 무엇인고 하니, "천국과 지옥에 어디에 있어?" 라고 추궁하는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봐라.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죽을 사람이 죽지 않았고,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그렇게 실제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라고 할 때는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리한 점은 무엇인고 하니, 구체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우리 인간이 살아 생전에 사용하는 용어의 형식으로 빌려서 사용되기 때문에, 그런 점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라고 하는 잠언서 3장 36절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이 이미 사용하는 용어를 가지고, 잠언서 8장 35절과 36절에도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생명과 사망이 나중에 천국과 지옥과 관련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의 그림자이고 모형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형이 사용하는 용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를 표현하다가보니, 오른 손에는 장수이고 왼손에는 부귀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불리한 점인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식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이 구체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구체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 본래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는 불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곧 장수이고 부귀 !!


그래서 잠언서는 인간이 지키지 못하고, 결국 잠언서를 지킬 분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을 받으면서, 이제 제대로 잠언서 3장 16절의 "오른 손에는 장수를, 왼손에는 부귀를" 라는 말씀을, 그것을 예수님 자신의 모습으로 설명해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인데, 그것이 장수라는 말이다.


그 다음에는 오른 손이 한 것이 왼 손이 그냥 받는데,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받는 쪽이 왼 쪽이라는 것이다. 그런 왼 쪽에는 부귀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천국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말로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영광의 나라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잠언서라는 두루마리에 있는 모든 내용을 보여준 분이기에 말이다. 


(녹취 구 - 그러면 목사님, 지난 시간에 하신 잠언서 23장 17절의,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라는 의미가, 그게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라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는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라는, 그러한 의미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할 수밖에 없는 자들임을 고백하면서 말이죠. )


거지 나사로가 낙원에 갔을 때, 장수라는 것은 오래 산다는 의미이지만, 모형적인 이스라엘인 이 땅에서 우리 인간들이 사용할 때는 말이죠. 그런데 거지 나사로가 구멍 속의 언약 안에 잠기게 되면, 그냥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거룩으로 예수님과 영원히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영광스럽게 말이다. 그게 바로 장수의 진정한 뜻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부귀라는 것은, 예수님의 그 격에 맞게 모든 혼수품들이 준비가 되는데, 예수님을 빛내기 위해서 말이다. 신랑과 신부에 어울리도록 말이다. 그런데 그 결혼식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되는데, 그렇게 지속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부귀영화가, 그런 보석들이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빛내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부귀라는 말이다.


◈ 집사님, 일찍 죽으세요 !!


그래서 심방을 가서 잠언서 3장 16절 말씀을 설교하려고 하면, "집사님, 힘드시죠? - 예, 힘들어요. - 그러면 일찍 죽으세요" 라고. 그렇게 되어야 그것이 말씀에 입각한 제대로 된 설교라는 말이다. 물론 그러면 봉투가 나오는 것은 고사하고 입이 불퉁하게 튀어나오겠지만 말이다(ㅋㅋ).


제가 대덕교회에서 전도사로 있을 때, 실제로 그런 식으로 심방설교를 했는데, 그때는 본문이 요한복음이었지 싶은데 말이다. 영생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그러니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저는 전에 시골에 있으면서 이런 설교를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화를 내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 사람이 아마 새댁이었지 싶은데, 물론 지금은 50대의 중년 아주머니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당황을 했는데, 말씀대로 전한 것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회장은 괜히 부교역자를 잘못 두어서 교인을 하나 잃고 말았는데, 물론 그 사람 뿐만은 아니지 싶은데 말이다(ㅋㅋ).


잠언서 3장 16절을 다시 보겠는데, 범위를 넓혀서 13절에서 17절까지 보자.


(잠 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잠 3: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잠 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잠 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잠 3: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잠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언약이 작용하게 될 때, 그것이 오른 손에는 장수하는 것으로 구체화가 되고, 왼 손에는 부자가 되는 것으로 구체화가 된다는 것이다. 즉 오래 살면서 부자가 되는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17절에 보면, 그렇게 오래 살고 부자가 되는데, 그 길은 힘든 것이 아니라 즐겁고 또한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는 어떤 조건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가? 여기 13절에 보니,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무엇이 있다고 하는가? 복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니 이 모든 것이 바로 다윗언약에서 약속한 것이라는 말이다. 반드시 언약이라는 말이 붙어야 하는데, 즉 다윗언약에 의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


다시 정리하면, 하늘이 열리고, 구멍이 뚫리고, 언약이 주어지고, 거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믿음 소망 사랑의 새로운 내용이 나오는데, 그런데 그 대전제가 무엇인고 하니,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언약은 여호와의 말씀인 지시사항과 관련이 되어있고, 그 지시사항에 순종하면 생명을 얻고, 반면에 그것을 위반하게 되면 사망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속에는 생명의 힘이 있게 되고, 또한 사망의 힘도 같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힘이 주체가 되어서 가미되면 인간이 피동적이 되는데, 그 피동적인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기계라고 했는데 말이다. 들뢰즈 철학에서는 이런 힘이 잠시 뭉쳐진 것을 기계라고 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적절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인용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힘이 뭉쳐진 것이 기계인데, 그러면 이 기계란 것이 무슨 의미인가? 기계인 자기가 그 힘을 극복할 수 있는가? 전혀 없는데, 그래서 이것이 굉장히 적절하다는 것인데, 즉 사망의 힘이 오게 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아서 반드시 지옥에 가야한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천국이 간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생명의 힘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가? 어쩔 수 없이 천국에 가야하는데, 자기는 아무리 지옥에 가고 싶어도 말이다. 왜냐하면, 힘이 구체화가 된 단순한 피동적인 기계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니 그 사람 속에는 항상 생명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의 힘이 주어지게 되면, 그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오른 손에는 장수이고 왼 손에는 부귀라는 말이다. 거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지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킨다' 라는 것이 무엇인가? 피동적인 입장에서는, 자기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킬 만한 힘에 의해서 지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스데반 집사님이나, 그리고 에스겔이나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의 경우에, 그러한 선지자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출생 이전부터 이미 택하여 세웠다고 하는데, 그런데 예레미야는 뭐라고 불평을 하는가? 자기가 말한 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너는 왜 우리를 보고 욕을 하느냐?"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선지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천상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인데, 미가나 예레미야, 또한 에스겔도 그렇고 말이다. 그들이 천상회의에 가보니, 거기는 그야말로 요란 속의 정숙 상태인데, 바깥은 매우 요란하고 시끄럽지만 거기는 조용하다는 것이다.


◈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욥기 1장에 보면 그 천상회의가 나오는데, 하나님과 마귀가 이야기를 할 때는 조용한데, 그런데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의 욥의 경우에는 아주 요란스럽다는 것이다. 천막이 무너져서 자식들이 열 명이나 죽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많던 재산도 다 날리고 말이다.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제가 어제 낮 설교시간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아무런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 모든 일어난 일은 한 가지 일에 불과하고, 다른 나머지는 모두 다 거기에 종속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욥을 자신의 언약을 펼치기 위한 구체적인 인물로 세웠다고 하는, 그 일만 일어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신의 모습, 자신의 속성을, 즉 "내가 이런 하나님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욥에게 그 모든 속성을 다 담아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욥은 미리 당겨서 온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 즉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그것을 미리 앞당기는 기능을 욥이 감당했다는 말이다.  


그 일을 제외하면 다른 아무런 일도 없는데, 욥도 그것을 눈치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욥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욥의 친구들도 그런 말을 했는데 말이다. 즉 "하나님이여, 제가 죄를 지은들 그것이 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영향이 있겠습니까? 제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의로움이 손상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말이다.


◈ 니가 왜 신경을 쓰는가?


그것을 달리 말하면,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일은 고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꾸만 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간단한데, 즉 "니가 힘든 것에 대해서 니가 왜 신경을 쓰는가?"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가? 자기가 힘드니 자기가 신경을 쓰는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구강의를 친절하게 녹취를 해주시는 인천에 있는 구 목사님의 경우에, 수시로 식당운영이 어렵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런데 그렇게 하신 분이 누구인가? 주님인데, 물론 구 목사님이 그러한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닌데, 분명히 믿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괴로운 것은 괴롭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 목사님은 막 살고 있는데, 물론 저도 그렇고, 우리가 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냥 성질대로, 기분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은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인데, 즉 생명의 힘과 사망의 힘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 그것을 우리 인생을 통해서 마음껏 보여주라고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막 사는 것도, 이런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 매우 개인적인 문제 !!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하겠는데, 우리에게는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 손에는 부귀가 있다" 라는 것이 매우 개인적인 문제로 보인다는 것이다. "미련한 자는 이렇고, 지혜로운 자는 이렇다" 라고 하면, 그것도 역시 개인적인 문제이고 말이다. 잠언서 19장 10절도 보면,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치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라고 되어있고 말이다. 


(잠 19: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치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방금 이것을 개인적인 문제라고 했는데, 그런데 저는 이것을 세 글자로 '구체화' 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구체화라는 말이다. 그리고 '기계' 라고 했고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결국 신약에서는 주님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해서, 그래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구원은, 자기 마음속에 !!


신약의 구원은, 개인적인 자기 마음속에, 그 영혼 속에 하나님의 힘이 작용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깥에 있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서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예수님이 12제자들을 데리고 많이 하셨다는 것이다. 물 위를 걷게 하시고, 물고기를 잡아서 아가리를 벌리니 거기서 동전이 다 나오고 말이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그들이 많이 보았지만, 이구동성으로 외친 마지막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저 사람을 죽여라" 라는 것인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마음이 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을 선점한 것이 있는데, 누가 선점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원수인 마귀가 어떻게 했는가? 주님이 인간의 마음을 찾아오신다는 것을 알고 미리 우리의 마음을 장악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을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라고 하는데, 그렇게 이미 마귀가 장악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불순종을 한다는 것이다. 행패를 부리고, 화풀이를 하고, 이렇게 강의시간에 전화를 하고 말이다(ㅋㅋ). 모든 것은 남의 탓인데, 물론 잘된 것은 모두가 자기 탓이고 말이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공주처럼 생활해도, 자기 마음에 편하지 않으면 그 결혼생활은 불행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수지처럼 '보라빛 향기'를 불러도, 아무리 예쁜 옷을 입고 큰 집에 살아도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


그래서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보게 되면 성령은 누구를 찾아오는가? 그 사람의 마음을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로마서 2장에서는 '마음의 할례' 라고 하는데, 즉 "너의 마음이 문제이니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놀라운 기적과 같은 것에 신경을 쓰지 말고 말이다. 그러면 마음의 할례는 어떻게 받는가?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주님 : 니 마음이 문제이니, 마음의 할례를 받아라.
* 성도 : 마음의 할례는 어떻게 받습니까?
* 주님 : 니 마음을 들여다봐라.
* 성도 : 예, 보았습니다.
* 주님 : 그냥 보지 말고, 말씀을 가지고 보아라.
* 성도 : 예, 말씀을 가지고 봅니다.
* 주님 : 어떻게 니가 말씀을 지킬 수 있던가?
* 성도 : 아니요, 안 됩니다.
* 주님 : 그러면 왜 안 되는데?
* 성도 : 제 안에 괴물이 들어있습니다.
* 주님 :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너는 성령을 받은 것이야.
* 성도 : 감사합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은 자기 마음이 아니라, 두 개의 힘이 서로 충돌하는 일종의 개싸움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이렇게 표현하니 좀 거시기한데, 아무튼 우리 마음이 그런 두 개의 힘이 작용하는 투견장과도 같다는 것이다.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매일같이 티격태격 싸우는, 그런 싸움장소가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는 말이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어떻게 보면 천사와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악마와 같은, 그런 상반된 힘이 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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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킬 박사와 하이드 -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R.L.B. 스티븐슨이 지은 괴기 소설. 1886년 출간된 작품이다. 학식이 높고 자비로운 의사인 지킬 박사는 본래부터 인간은 모두 잠재적으로 선과 악의 두 가지의 모순된 성질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 이중성을 약품으로 따로따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상을 한다. 마침내 약품을 만들어 복용한 결과, 지킬 박사는 악한 성질만을 지닌 잔인하고 흉악한 인간 하이드로 변신한다. 그는 하이드로 변신해 있는 동안에는 모든 도덕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한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러나 점차 악이 선을 이기게 되고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로 변신하여 지킬 박사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마침내 하이드는 살인을 하고 경찰에게 쫓겨 체포되려는 순간에 모든 것을 고백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현대인의 성격 분열과 이중성을 다룬 매우 특징적인 작품으로, 발표될 당시에는 사회의 여러 계층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오늘날 이 작품의 제목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이중 인격자를 비유하는 관용어로서 쓰이고 있다. - 계몽사 백과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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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 !!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망했는데, 그러면 그 망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압축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그 역사가 바로 자기 인생의 역사라는 말이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는데, 그들이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사사기에 나오듯이 말이다. 그렇게 한 그들의 모든 몸부림이, 지금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반영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니가 말씀대로 살면 오른 손에는 장수이고, 왼 손에는 부귀가 있다" 라고 하는 잠언서의 말씀을 좋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알지만, 하지만 무엇인가? 잠언서의 다른 곳을 보면, "니가 이렇게 살면 어리석은 자이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하는 것의 구체화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면면인데, 그게 잠언서에 다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잠언서를 보면서 좋은 것만 골라서 보면 안 되는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있는데, 그런데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하는가? 이상하게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서, "잠언서에서 아무리 미련하다고 해도, 이게 내 성질에 맞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뇌물을 받지 말라" 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물론 누가 그런 것을 좀 줘봤으면 좋겠는데, 아예 주변에서 뇌물을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말씀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ㅋㅋ). 


이제 교재 131페이지를 보자.


** 방금 읽은 잠언서 19장 10절 말씀은 "어디서 종이 함부로 주인을 다스려?" 라는 것인데, 즉 "종은 종 값을 해야지, 어디서 함부로 자기 위치를 벗어나서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들어?" 라고 추궁하는 말이죠. 그러니 종은 종다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지시하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바로 주께서 인정하라는 지혜입니다.


(잠 19: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치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어떤 가난한 사람이라도 마음만은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아무리 노동자라고 해도 술집에 가면 다 사장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라고 말이다. 여러분은 술집이나 노래방에 잘 가지 않아서 모르지 싶은데, 다 사장님이라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그러면 "종은 인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죄송하지만 종은 사람이 아닌데, 제가 아까 이야기를 했지요. 슬기로운 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도 같은 존재라고 말이죠. 마찬가지로 종은 사람이 아니고 기계입니다. 그냥 기계라는 겁니다.    


◈ 종은 인간이 아닌가?


여기에 "종은 인간이 아닌가?" 라고 되어있는데,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은 없는데, 아무리 "가난하면 인간이 아닌가?" 라고 해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종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슬기로운 여자도 보통 사람이 아닌데, 즉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물론 그냥 오면 안 되고 언약을 품었을 경우에 말이다. 그냥 오면 자기 성질을 품고 오기에 안 되고, 미처 자기가 몰랐던 소망을 품고 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여자, 즉 그런 아내가 있는가? 물론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아내의 마음도 역시나 싸우고 있는 투견장이고, 또한 자기의 마음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주님의 투견장이고, 상반된 힘의 대결장인데, 그게 바로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사가 안 된다. 부자가 되어서 좋은 아파트에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것이,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장사가 잘 되고 넓은 아파트에 살아도 그 마음은 역시나 투견장이라는 말이다. 환경이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행복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닌데,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오는가? 궁금하면 500원인데, 너무 썰렁했나요? (ㅋㅋ)


◈ 나를 마음껏 유린해라 !!


행복은 자기 안에 괴물이 들어있음을 매일같이 자인하면 되는데, 즉 "그래, 니가 나를 마음껏 가지고 놀아라. 하지만 내가 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너와는 이별이다. 그러니 내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니가 마음껏 나를 유린해라. 하지만 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어서어서 마음껏 농락해라" 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라고 하면서 십자가 앞에서 그대로 자기를 드러내면 되는데, 그렇게 엑스레이를 찍으면 된다는 것이다. 병원을 회피하지 말고, 가서 정기검진을 받아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 안에 마귀가 들어있습니다" 라고 진단이 나오는데, 하지만 그 힘이 바로 생명의 힘이라는 말이다.  


◈ 나는 가을에 쓴 편지 !!


하지만 이 잠언서를 보고 나서 그대로 살아갈 위인은 아무도 없는데, 그리고 이 잠언서에서 나오는 말씀들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이다. "여호와와 사귀어라" 라고 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사귀고 싶어도 보이지도 않는 여호와와 어떻게 사귀느냐는 말이다.


또한 이 잠언서에서 이야기하는 지혜는, 즉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 손에는 부귀가 있다" 라고 좋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하지만 막상 그 지혜대로 살아가는 조건을 살펴보게 되면, 그것은 도저히 우리 인간들로서는 성취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도사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지키지 않으면 되는데, 이 잠언서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이 잠언서가 자기 안에 들어와서, 자기가 걸어 다니는 잠언서가 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성령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말이다. 어제도 그런 설교를 했는데, "가을에 편지를 쓰지 말고, 내가 편지가 되자" 라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 132페이지를 보자.


** 마찬가지로 종은 사람이 아니고 기계입니다. 그냥 기계라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농업형 경제구조에서 그 당시에 농업생산을 하려면 생산수단이 필요합니다. 요즘 같으면 그 수단이 기계가 되겠지요. 그런 생산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 전쟁을 통해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일종의 계약을 합니다. "밥은 먹여준다. 하지만 주인이 없는 종은 없으니, 주인에게 종속된 노예로 살아라" 라고 말이죠. 


◈ 노, 노, 노 !!


지금 여기 교재 132페이지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까, "잠언서대로 살고 싶은데 외부환경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귀농을 하려고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서 비닐하우스를 3동 지었는데, 수박을 키우려고 말이다. 그런데 제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10억 대출을 받아서 농사를 지으면, 일년 연봉이 2,500만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도시에서 월급쟁이를 하는 것이 훨씬 더 낫고 안정적인데, 그런데 시골에서 살면 좋은 점은 무엇인고 하니, 그레도 비교대상이 없어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시골에서보다 많이 벌어도 상대적인 박탈감을 많이 느끼는데 비해서 말이다. 그런 정서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는데 그만 흉작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내부의 영혼 문제가 아닌데, 어디까지나 외부의 문제라는 것이다. 엘리뇨 뭐든 외부의 문제인데, 자기 인격이 아무리 고상해도, 그런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잠언서에서는 "부지런하면 잘 산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자기가 부지런하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보니까, "'노, 노, 노' 한다고 예스가 아니라, 노가 된다" 라고 하는데, 그게 요즘 젊은 아이들의 사고방식인데 말이다. 자기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예스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역시 노가 된다는 것이다. 


◈ 왜 당신의 노력으로 달성하려고 하는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인데, 즉 "잠언서에서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 손에는 부귀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을, 그것을 왜 당신의 노력으로 달성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한데, 그런데 사물을 보는 순간 "그래, 내가 그렇게 되어야지" 라고 하면서, '나' 라는 것이 그만 들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어떤 분에게서 메일이 한 통 날아 왔는데, "이제 '나' 라는 마귀에서 벗어났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내일이 되면 또 어떤 메일이 날아올지는 모르겠지만(ㅋㅋ), 그렇게 우리 인간은 평생동안 '나' 라는 탈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기는 이렇게 노력하면서 살아가는데, 그런데 왜 잠언서의 말씀처럼 해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 손에는 부귀가 있다" 라고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숨겨진 마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곧 구체화된 천국 !!


두루마리의 그 말씀은 '나' 말고 다른 분이 지키는데, 그런데 우리는 그게 탐이 나서, "야,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왼 손에는 부귀가 있단다. 그러니 그것을 내가 한 번 해볼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귀농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우리가 그 엘리뇨를 누가 담당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날씨가 그렇게 변덕을 부리는데 말이다.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냥 살아가면 되는데,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면서 그것마저도 아우르는 힘이 있는데, 즉 개인적인 문제를 넓게 아우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생명의 힘이고 사망의 힘인데, 그 힘에 의해서 여호와를 보다 많이 더 알아 가는 관계가 곧 영생이고, 그것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천국이라고 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곧 구체화가 된 천국이라는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만만하게 보지 않도록 해주시고, 특히 우리 자신을 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우당탕탕 설치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고,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는 생활이 되게 하옵소서. 에브리팅,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5,10,27 오후 2시에 마침.


                                                                       가을엔 편지가 되겠어요.
                                                                      부자만 되게 해준다면...


 

 첨부파일 : 15대구강의('잠언'속의그리스도)42-힘과기계(130페이지).hwp (71.0K), Dow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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