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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3 22:06:11 조회 : 950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7 - 예수님의 기성품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5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47 - 예수님의 기성품
                                                                                
                                                          16,01,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유일한 통로 !!


오늘은 교재 147페이지부터 살펴보자. 그 제목이 '8강, 유일한 통로' 라고 되어있는데, 이러한 제목이 어디에서 나왔는고 하니,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라고 되어있는데, 즉 다른 이름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행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지금이 연초인데, 그래서 각 회사마다 신년 하례식도 하고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하지만 그게 구원이 되려고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출은커녕 그냥 안주하면서 살려고 움직이는 것인데,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말이다. 따라서 구원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유일한 통로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어제 낮 시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아는 아이라고 하면 그 굴뚝에 관심을 가지는데, 하지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관심이 없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라고 하면, 그런 아이에게는 선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제시하는 구원작업을 인정하지 않으면 천국도 날아가 버리는데, 그리고 자기가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미완료로 남는데, 물론 주님은 다 알고 계시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미완료라는 말이다.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지금 이 난로가 굉장히 따뜻하고 고마운데, 그런데 그 난로 바로 곁에서 온 종일 있으라고 하면, 그것은 지옥이라는 것이다. 뜨거워서 말이다. 목욕탕에 가서라도 사우나 실에서 잠시 있는 것은 시원하고(?) 괜찮지만, 24시간 있으라고 하면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옥은 24시간이든 48시간이든, 그렇게 기한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닌데,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만약에 우리가 지옥에 가서 그 뜨거운 맛을 체험한다고 해보면, 이 땅에서 인생이 망가진 것을 가지고 불평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거지 나사로처럼 망가진 사람은 없는데, 죽을 때까지 몸이 아프다는 말이다. 몸이 아프면 친구고 뭐고 외로울 사이도 없는데, 개나 와서 친구를 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을 하신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거지 나사로가 고생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주변 사람들은 구원이나 구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쪽 세계는 가봐야 안다" 라고 나오는데,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부자에게 하면 뭐라고 하겠는가? 한 대 얻어맞는다는 것이다. 부자는 자기는 이왕 지옥에 왔지만, 동생들은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걱정을 하는데, 그래도 장남이라고 자기 동생들을 살려보려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장남 역할을 굳이 부자가 하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 성도들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는 그렇게 자기 역할을 했고 말이다.  


◈ 미리 오신 예수님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유일한 통로' 라는 것은 구출과 관련이 있는데, 탈출, 빠져 나옴, 건짐을 받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탈출에 대해서 시답지 않게 여기고, "죽으면 자동으로 탈출이 되는데, 미리 당겨서 생각할 필요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유일한 통로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 유일한 통로가 죽어서 그냥 열린다고 생각하면, 그게 무엇이 문제가 되는고 하니, "예수님께서 이 땅에 미리 오셨다" 라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죽으면 알아서 와라" 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에게 미리 당겨서 가시는데, 즉 주님은 살아있는 채로 유일한 통로와 만나게 해주시겠다는 말이다. "죽어서 어디에 갈래? 천당에 갈래? 지옥에 갈래?" 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고, 주님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미리 당겨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입장에 난처해지는고 하니, 물론 주님은 마음을 단단히 잡수시고 오시는데, 삭개오와 같은 사람, 그리고 이미 구원을 받은, 즉 세리와 창기, 12제자, 물론 여기에서 가룟 유다은 제외인데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그 시대에서 처신하기가 굉장히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천국에 가고 싶어서 나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나대지 말자 !!


어제 낮 시간에 2016년도의 표어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혹시 기억이 나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 집사님은 혹시 아세요? "책임지지 말자" 라고 했는데, 역시 기억력이 참 좋네요(ㅋㅋ).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자신이나 이 세상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 비슷한 것이 하나 나가는데, 즉 "나대지 말자" 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댄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책임지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그런데 주님이 미리 당겨서 오시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니 주님이 나대신다는 말이다. 주님이 그렇게 알아서 나대시는데, 우리까지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서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하면 그것은 주님의 행하심을 가리고 모독하는 것이 되고 마는데, 예수님이 유일한 통로라고 하면, 예수님이 유일한 통로의 값을 하도록 우리는 그냥 조용히 있어주자는 말이다. 주님이 우리를 데리고 이리 저리로 데리고 다니면서 이리 저리 흔들고 하면, 우리는 그대로 흔들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이 우리를 흔들면, 거기서 무엇이 발생되는고 하니, 이것은 어제 주일학교 시간에 설교한 내용인데 말이다. 즉 "하늘에 계신 분이 이 땅에 내려오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여러분을 데리고 가시기 위해서 미리 오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데리고 가십니까?" 라고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는 4가지 비유를 가지고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 아줌마와 누룩 !!


첫째는, 아줌마가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그 안에 누룩을 집어넣었는데, 그러면 누룩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성도는 다른 사람들과 상대하기가 상당히 당황스럽고 난처하다는 말이다. 상대방인 누룩이 없고 자기는 들어있으니, 서로가 좋은 친구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전혀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의도적으로 "나는 신자다" 라고 티를 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방금도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나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굳이 자기가 나대지 않아도 자기 속에 있는 누룩이 온 몸에 퍼지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저는 "말씀이 퍼진다" 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씀이 퍼지고 확대가 된다는 말이다.


◈ 보물상자와 하늘나라의 열매 !!


둘째가 무엇인고 하니, 농부가 밭을 가는데 뭔가 '툭' 하고 걸리는 게 있다는 것이다. 땅을 갈면 흙만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뭔가가 걸려서 보니 보물이 든 보물상자가 있다는 말이다. 누룩이 말씀인데, 그 말씀이 퍼지게 되면 우리 안에 무엇이 생성되는고 하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물이 만들어지면, 그 보물은 나중에 주렁주렁 하늘나라의 열매가 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이다. 


마지막 비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해서 구원은 받았으면, 말씀이 들어온 자체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면, 그게 보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늘나라의 열매이고 과실을 맺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까, 하늘나라의 보물과도 같은 성도들이 천국에 가면서 넓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찾는 사람들이 적은 쪽으로 간다는 말이다.


◈ 외면을 받는 좁은 길 !!


그것이 바로 좁은 길인데, 즉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은 길로 간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게 여자친구라면, 조금 사귀다가 그 여자가 친구가 뭐라고 하겠는가? "너는 교회에 다녀도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고 이상하다. 그러니 이제 그만 헤어지자"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제가 방금 이야기한 것을 정리해보면, 첫째는 아줌마와 누룩인데, 아줌마는 가만히 있는데 이 누룩이 자기가 알아서 퍼진다는 것이다. 자기는 나대지를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한 보물이 되어서, 하늘나라의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전혀 남들이 기대하지 않는 외면을 받는 좁은 길로 가더라는 말이다. 


이러한 4가지(?)의 비유를 한 마디로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그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등에 보면 나오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그렇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그대 이름은 '이방인' !!


요즘같이 연초에 신년식을 한다고 하면서 거기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당신은 이런 일을 왜 하십니까?" 라는 것과 같은 것인데,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아니겠죠?" 라고, 그런 의미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그쪽에서는 할 말이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들이 하는 것이 전적으로 무엇을 먹고 입을지, 바로 거기에 관한 일이기에 말이다. 인간들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잘 알고 계시는데, 그런 일을 하는 자들을 3글자로 '이방인'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방인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라는 것에 전적으로 매진한다는 것이다.


◈ 요한계시록은, 한 시간이면 오케이 !!


지금 요한계시록의 겨울수련회를 앞두고 있는데, 요한계시록을 하나의 덩어리를 본다고 하면, 여기에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 윤 집사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집사님이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목사님, 그것 참 걸려있는 게 많아서 복잡하고 힘이 들겠습니다" 라고 해서, 제가 "한 시간만 하면 끝납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고 하니, 요한계시록 1장부터 22장까지 모두 축구공에 집어넣어서, 그러면 요한계시록의 자리가 고정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이 밀가루라면 여기에 요한계시록을 누룩처럼 집어넣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킬 것은 하나도 없는데, 다만 우리 속에서 어떻게 퍼지는지를, 즉 하나님께서 구출을 하시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시느냐는 것이다.


물론 요한계시록의 방식인데,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온 몸에 퍼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666이 어떻고, 날짜가 어떻고,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고정화를 시키는데, 문제는 고정화를 시키는데 있어서 그 들어가는 입구를 어떻게 찾느냐는 말이다. 


◈ 무조건 나는 성도가 맞다 !!


기존 교회에서 2,000동안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그 입구를 어떻게 찾았는고 하니, 여기에 인간이 있고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있다고 하면, 기존의 인간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정성과 지식, 또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뚫으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뚫으려고 하면 무엇이 문제인고 하니, 자기가 성도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말이다. 누가 그것을 확인해주겠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생각인데, 즉 "무조건 나는 성도가 맞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제 요한계시록이 궁금하니 그것을 살펴보자고 나온다는 말이다.


◈ 법과 명령의 차이점 !!


그러면 어제 오후시간에 한 것처럼, 그것은 법과 명령의 차이점을 간과한 셈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법과 명령의 차이점에 대해서 좀 더 쉬운 예를 들게 되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면 아이들은 숙제를 해서 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그렇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요?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숙제라는 법은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숙제를 함으로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제 설교시간에 '정당화된 위반' 이라고 했는데, 성경말씀이 바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치밀하게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죄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보다 더 신앙생활을 완벽하게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죄를 양산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법을 지키려고 하면, 이전처럼 법을 지키지 않았으면 몰랐을 죄가, 새롭게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죄가 더 새록새록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 현장에서 말이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더 엄격한 법을 스스로 만들어서, 마치 자학을 하듯이 그렇게 더 깊이가 있는 법을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서, "이것만 지키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종이다. 그러면 죽도록 충성했다고 칭찬을 해주시겠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점점 더 법을 만들어간다는 말이다. 그게 끝이 없는데, 그런 가운데 자기는 죄의 값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계속해서 숙제는 하는데 공부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자기를 좋아하는 대상이 없기에 말이다. 이게 문제인데, 아무리 교회에 다니고 성경공부를 해도, 자기보다 더 좋은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하는 자기가 예쁘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 역시 나는 소중해 !!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던, 수련회를 하던 간에, 일단 "나는 소중하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뚫으려고 하니, 그 결론이 "역시 나는 소중했었어" 라는 것 외에 달리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성경구절을 해석해도,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선택하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역시 나는 소중해" 라는 것과 동일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으면, 다른 것들은 다 반려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고통인데, 이런 지독한 자기 사랑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한 짓이 바로 이러한 짓인데, 즉 "우리는 위대하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슬렘들이 "알라는 위대하다" 라는 것과도 같은 것인데, 사울이라는 사람이 "여호와는 위대하다" 라고 하면서 한 짓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죽였다는 말이다. 


그러면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여호와가 위대하고 예수님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니가 위대하잖아? 그렇지?" 라고 하시는데, 즉 "니가 나를 이용해서 천당에 가려고 하잖아? 솔직히 말해? 너의 마지막 목적은 너 자신이 잘 되는 것이지? 그렇지? 니가 기도를 하던 무엇을 하던지 말이야" 라고, 그렇게 팍팍 쑤시고 들어오신다는 것이다.


◈ 성령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신다 !!


성경에 나오는 공식 중의 하나가 곧 이것인데, 즉 "성령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신다" 라는 것이다.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데, 물론 자기에게로 인도하는 것도 전혀 아니고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잘난 척을 하는 것을 질질 끌고 와서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는데, 왜 그렇게 하시는가? 성령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지옥심판을 미리 앞당겨서 경험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조금 전에 48시간 사우나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은 2시만 있어도 지옥이라는 것이다.


여자들이 목욕탕에 가면 최소 2시간은 한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30분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면 동작이 느려서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말이다. 그렇게 좋고 시원한 목욕탕도 2시간이 지나면 힘이 드는데, 그러니 지옥에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참혹하지 그지없다는 것이다.


원래 지옥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가야하는데, 마치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다 군대에 가야하듯이 말이다. 그게 바로 아담의 보편적인 속성 때문에 그러한데, 즉 우리는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모두가 지옥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리 지옥을 맛보게 하면 그것은 성도이고, 반면에 죽고 난 뒤에 지옥을 맛보면 그것은 성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면 성경을 다 안 것인데 말이다. 


그러면 지옥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우리가 나대지 않아도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버림을 받은 사건을 반복해서 재현시켜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십자가에 와있는지 아니면 근처에 가지도 않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아는고 하니, 십자가 앞에 섰던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스스로 이 세상에 확장시키는, 그러한 작업을 성령을 통해서 하셨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저수지에 물이 담겨있는데, 그러면 그 물막이를 뽑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물이 나오는데, 그러면 그 밑에서 가뭄이 들어서 물도 전혀 구경하지 못했던 논과 밭의 주인들이 드디어 물 구경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야, 물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십자가 마개를 뽑게 되면 !!


그렇게 십자가 마개를 뽑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면 벌써 요한계시록을 모두 다 한 것이 되는데 말이다(ㅋㅋ). 즉 보좌에서 마개를 뽑게 되면, 그러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무엇이 흘러가는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했던 그 저주가 온 세상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마치 물이 퍼지듯이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두 적시게 되면,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그 저주가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미처 몰랐지만 주님만이 아시는 그 죄의 값을 미리 받으신다는 말이다. 자기가 행동으로 개인적으로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죄 값을 받는다는 것이다.


◈ 남이 지은 죄의 벌까지도 받아야 !!


그래서 전도서 1장에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가 지은 죄만 자기가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이 지은 죄도 자기가 받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들인데, 아담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우리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게 구약에 보면 나오는데,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는데 그 벌을 누가 받는가? 백성들이 받는데,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받지 말아야 하는 대단한 자들도 아니지만 말이다. 다만 다윗이 대표로 인구조사를 하니, 하루에 7만명인가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은 한 통속인데, 자기가 아무리 잘해도 남이 잘못하게 되면 우리는 동일한 벌을 받는다는 말이다.


1998년 우리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울었고 자살한 해였는데, 소위 IMF 사태가 터진 해라는 말이다. 그 사태를 누가 저질렀는가? 김영삼 대통령인가? 아닌데, 그것을 어느 누구를 특정해서 지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빈털털이가 되어서 미국으로 간 사람이 있는데, 그리고 우리교회에도 부도가 나서 그만 완전히 망한 분도 있고 말이다. 


2008년도에 리먼 사태가 일어났는데,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무슨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래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바르게 산다고 해서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닌데,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니가 무슨 일을 했던지 그것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살아간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이러한 원천을 전혀 모르는데, 그래서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라고, 그것을 염려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먹고 마시는지, 그 원천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도는 무엇인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라는 것인데, 즉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공중에 나는 새도, 들의 들풀도 예수님 덕분에 산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나중에 늙어서 죽으면 알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하지 말고, 성령께서 미리 당겨서 그런 사실을 알게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너는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일 알면 안 됩니까?"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인데, 내일이라는 것 자체가 보장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주님께서 내일 살려주실 때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지, 오늘만 살고 그만 살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수련회가 있고 해도 저도 부르면 가야 하는데, 수련회 강의를 반드시 제가 해야한다는 이유도 없고 말이다.


◈ 장소 없는 묘사


그러면 요한계시록을 파고 들어가는 입구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차이점인데, 그것으로 요한계시록은 끝이 난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은 한 시간이 아닌 5분만에도 끝낼 수 있는데, 즉 "요한계시록은 이방인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관한 책이다. 끝!",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이 요한계시록의 세계는 없는 세계인데, 이게 핵심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교재에는 뭐라고 되어있는고 하니, '장소 없는 묘사'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번 수련회에서 할 요한계시록에 관한 교재를 읽어보았는지 모르겠는데, 물론 어렵기는 하지만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미리 읽었다고 여기고 강의를 시작하기에 말이다.


'장소 없는 묘사' 라는 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장소가 없다는 것은 있지 않은 것이고, 묘사라는 것은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요한계시록은 있지도 않은 세계를 묘사한 것인데, 특히 이방인들인 우리의 눈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요한계시록 자체는 없는데, 그래서 요한계시록 강의는 쉽다는 것이다. 무시하면 되니 말이다. 있지도 않는 세계라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아담에 속한 자들은 모두가 다 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죄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라고 하는 문제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몇 명이 되지도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방인인데, 그러니 모두가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렇게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요한계시록은 성경책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인데, 그러니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삼국유사를 끄집어내어서 특별히 수련회를 하고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삼국유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벌벌 떨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한국교회와 요한계시록 !!
 
요한계시록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즉 없는 세계라는 말이다. 그러니 한국교회를 교회사에 나오는 모든 신학자들에게 발하고 싶은 것은, 물론 따지고 보면 그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왜 있지도 않은 세계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지, 그게 수상하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없는 세계인데, 그런데 그들은 있다고 상상을 하면서 그 세계를 어떻게 통과하느냐고 하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신천지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협박공갈을 친 것인데, 마치 굿을 하지 않으면 아들이 죽는다고 해서 돈을 뜯어내는 무당들처럼 말이다. 과연 신천지만 그러한가? 조용기 또한 그러한데, 이렇게 한국교회 전체가 이렇게 있지도 않는 세계인 요한계시록 가지고 협박공갈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아까 누룩 이야기를 했었는데, 밀가루에 누룩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가? 이미 요한계시록이 그렇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지키고 말고 하는 게 아니고 말이다. 어떤 경우에만 말인가? 이방인들이라고 하고 없는 세계인데, 그런데 말씀이 침투하니 어떻게 되는가?


◈ BECOME !!


물론 우리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요한계시록의 세계를 무시하고 싶은데, 그런데 우리 내부에 말씀이 퍼지니 요한계시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이 되어간다는 말이다. 즉 우리가 자체적인 요한계시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 'BECOME' 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서, 요한계시록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야기하는,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달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요즘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구닥다리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다는 말이다. 물론 요즘도 육룡이 나르고 어쩌고 하기는 하는데, 아무튼 요한계시록은 그런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그것으로 끝 !!


지금 현재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그것으로 끝!", 그렇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에 이방인의 사고방식 외에는 달리 우리에게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나라와 그 의는 우리의 의중에는 없는데, 우리는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이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신년사를 하고 하루빨리 회사를 잘 운영해서 경제를 제대로 굴러가게 해야하는데, 그리고 곧 설이 다가오니 거기에 신경을 써야하고 말이다. 그래서 세배를 하러올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방앗간에 가서 떡국을 빼고 해야지, 언제 요한계시록까지 신경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언제 요한계시록에 관심을 가졌었냐는 말이다.


그래서 목사들이 이 요한계시록을 협박용으로 사용하는데, 교인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 오지를 않으니 말이다. 즉 "당신들이 이 요한계시록을 통과하지 못하면 지옥에 갑니다. 그렇게 지옥에 가도 좋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인들이 "목사님,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하면 목사는 뭐라고 하는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니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이것도 지켜야 하고 저것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으니, 죽도록 교회에 봉사하세요. 십일조도 그것으로 만족해하지 마시고 더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완전히 사기인데, 아들이 죽는다고 협박을 해서 굿을 강요하는 무당과 무엇이 다르냐는 말이다. 


우리 속에서 누룩이, 즉 말씀자체가 작용하게 되면,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이방인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경우에 동반해서 요한계시록을 체험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체험이 되는 것인데,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서 교재 147페이지를 보자.


** 솔로몬이 하는 그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이 됩니다. 잠언서 21장 1절에 보면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라고 하는데, 그리고 25장 2절이 결정적인데,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통로를 백성들에게 제시하지 않는데, 일방통행입니다.


(잠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 25: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교재의 작은 제목이 '유일한 통로' 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어떤 자격으로 온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왕의 자격으로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통로는 왕이 살피는 일과 관련이 되어있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숨어 계시는데, 나타나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서 이사야서 45장 4절을 찾아보자.


(사 45:4)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여기에 보면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라고 하는데, 하지만 현재 이스라엘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이스라엘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스라엘인 것과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스라엘이 합치되는 줄로 착각했다는 말이다.


◈ 누가 진짜 이스라엘인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고 하니, 이사야서 6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하는 대목인데 말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고 뭐라고 하시는가? 다 잘라내는데, 나무를 그루터기만 남고 다 잘라내어 버린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속에 이스라엘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이번 요한계시록 교재에도 그게 나오는데, 소위 '남은 자' 라는 것이다. 그게 여기 이사야서 6장에도 나오는데, 그게 바로 '그루터기' 라는 표현인데 말이다.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는데,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느냐는 것이다.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켜져서 그루터기는 남아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시느냐는 말이다.


(사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 그루터기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그 큰 밤나무나 상수리나무를 잘라내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기에는 참 아까운데, 그동안 이것을 지탱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것을 자르니 그 뿌리부분, 즉 그루터기가 나와있다는 것이다.


◈ 엽전 꾸러미 !!


어제 오후시간에 설교를 하면서 엽전 꾸러미 이야기를 했는데, 즉 엽전에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십자가의 피가 통과할 경우에만 꾸러미 자체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막혀있는 것이 문제이니 말이다. "나는 이스라엘이다" 라는 것과 같은 것들이 그 구멍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을 하시는데, 즉 "너희는 나를 몰라도 나는 너희 이스라엘을 택했다" 라고 하시는데, 이 말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조금 쉽게 설명하면, "니가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이스라엘은 따로 있다. 어쨌든 니가 생각한 이스라엘이 아닌데, 그러나 내가 내 마음에 생각한 이스라엘은 결코 포기하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가만히 숨어 계신다고 하면, 그러면 일은 누가 하시는가? 그게 바로 교재에 나오는 내용인데, 숨어있는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왕이 나타나서 일을 살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왕만 찾으면 된다는 말이다. 


◈ 왕이여, 어서 오소서 !!


그렇게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심중에 있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을 두고, 그분을 곧 '주여!' 라고 하는데, 즉 "왕으로 오신 분이여!"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주께서 살펴서,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을 데리고 가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야만 하는 왕이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호산나!" 라고 하는, 그러한 의미라는 것이다.


지금 강의가 이렇게 되면 이게 일종의 요한계시록 강의의 스포일러가 되고 마는데, 그래도 주님께서 저를 언제 데리고 갈지 모르니 할 이야기는 해야한다는 것이다. 연속극처럼 다음 편을 남기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ㅋㅋ).


'호산나' 라고 할 때 종려나무가 등장하는데, 요한계시록에는 두 가지 무늬가 있는데 하나는 종려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사자, 즉 라이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마지막 대목에 보면, 야곱이 12지파를 약속하면서 나오는 것이 종려나무이고 사자인데, 그것을 유다지파를 통해서 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하나님의 무늬가 된다는 말이다. 


(창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창 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러면 종려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성전의 제일 뒷부분에 보면 성전의 구조자체가 종려나무로 되어있는데, 이게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나와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전의 마지막을 터치했다는 것은, "이제 세상은 끝났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만이 알고 말이다, 


그런데 이방인들, 즉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자들에게는. 그들은 이것을 모를 뿐만이 아니라, 이 요한계시록이 없는 세계이고, 그야말로 구닥다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할 때는, 요한계시록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에게 요한계시록을 설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 다시, 요한계시록의 세계는 없다 !!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의 세계가 있다고 여기는 자들을 모두 없다고 하도록 돌려보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자체를 있다고 여기는 것이 수상하기에 말이다. 즉 "요한계시록은 실제로 있는 세계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전혀 100퍼센트 사기인데, 왜냐하면 그들의 실제 속마음은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이방인들이기에 말이다.


"그래도 성령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요한계시록이 있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할지 몰라도, 그런데 제가 처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자기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데, 그러니 자기는 성령을 받았으니 요한계시록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그것은 성령을 받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성령을 받게 되면 자기가 지키고 말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 요한계시록이 자기 내부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 저기에 있는 저 화분이 자라듯이 그 사람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말이다. 저기 화분에 아직까지 꽃이 있는데, 저 선인장 꽃이 요한계시록이라면 우리교회는 요한계시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우리교회는 망해야 한다는 말이다. 


◈ 찢어지는 커튼 !!


다시 말해서, 진짜 합치가 되는 요한계시록을 위해서 기존의 요한계시록을 안다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 무너져야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그냥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무너지는고 하니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왜 액션영화에 보면, 총에 맞고 죽을 때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커튼과 같은 것을 잡고 멋있게 죽는데, 그러면서 커튼은 쫙 찢어지고 말이다. 그 커튼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는 자연세계라는 것이다. 그렇게 커튼이 찢어지면, 그 안에서 종려나무 커튼, 그리고 사자 커튼이 다시 등장한다는 말이다. 즉 옛날에 성전에 있었던 그 하나님의 무늬, 천사의 무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은 털끝만큼이라도 지킬 것이 없는데, 그런데 목사들이 뭐라고 하는가? "신부가 되어서 신랑이신 주님을 따라야 됩니다" 라고 하는데, 요한계시록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어디서 공갈을 치느냐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방인들의 사고방식인데, 그런데 이게 2,000년 교회역사 속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한데, 그래서 신천지가 나타났다는 말이다.


여기서 이사야서 45장을 보겠는데, 15절과 16절을 보자.  


(사 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사 45: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 숨어 계시는 하나님 !!


여기 15절에 보면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라고 하는데, 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인가? 그 이유가 16절에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보이는 모든 것은 우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만약에 숨어있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상이 된다는 것이다. 즉 나타난 것은 다 우상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실 일은 간단한데, 인간들이 생각하는 우상적인 하나님을 다 정죄하는 일, 그것을 왕이 살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하나님은 '아버지' 라는 이름으로 숨어 계시기에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아버지는 한 통속인데, 예수님은 오직 숨어 계시는 아버지만 이야기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숨어있기에 아무도 모르는데, 따라서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제자들도 모르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어라" 라고 하시는데, 그 들을 귀도 나중에 성령이 오셔야 생기는 것이지, 성령이 오지 않으면 그런 귀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이 예수님을 평가하고 하나님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러니 그들에게는 성경자체가 없는 세계인데,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는 말이다. 그러면 왜 교회에 나오는가? 그것은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데, "혹시라도 모르니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놓으면 낫지 않겠는가?" 라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가지보지는 않았지만, 있다고 치고 미리 들어놓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이고, 그런 이방인이 생각한 성경해석도 역시 이방인의 생각이니까, 그러면 결국 그 나라와 그 의는 물 건너간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기껏 교회놀이만 하다가 막을 내리고 만다는 말이다.


◈ 추방을 시키기 위해서 !!


그러면 요한계시록 강의를 왜 하는가? 추방시키기 위해서, 즉 아닌 자를 추방시키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구원이 아니라 추방이라는 말이다. 구원을 받은 자는 추방이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목자의 양은 그 어떤 권세가 와서 목자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방시키는 작업이 왜 필요한고 하니, 떨어졌다는 것은 가짜였다는 말인데, 그러니 추방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왜 시계에 녹이 쓸면 브러시를 가지고 털어 내지를 않는가? 바로 그렇게 녹을 털어 내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래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교회 교인들도 보면 어지간이 붙어있는데, 우리 이 집사님이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목사님, 요즘 교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목사님의 설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한다는 말이다(ㅋㅋ).


아마 제가 그 말을 평생동안 잊지를 못하지 싶은데, 그렇게 불고 또 불어서 추방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이 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 어떤 환난이나 곤고가 와도 말씀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 교회는 오직 말씀만을 고집해야 !!


그래서 교회는 오직 말씀만을 고집해야 하는데, 떨어질 사람은 오직 자기의 행복만 추구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다가도 자기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면 다 떨어지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이방인들이 사는 목적은 오직 자기의 행복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여유가 있고 편하게 살지, 자기 몸도 건강하고 말이다.


그래서 연초에는 그렇게 찬바람을 맞아가면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빌기도 하는데,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데, 즉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고 하는, 그게 우선이고 아니고 사실은 그게 전부라는 말이다. 노아가 방주를 크게 지어놓고 정작 구원을 받은 노아 식구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노아의 고집, 사실은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도를 했지만 그게 안 되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하나님께서는 다른 통로를 백성들에게 제시하지 않는데, 일방통행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한 왕, 즉 모든 것은 왕을 통해서 주어지고, 하나님에게 올라가는 것도 왕을 통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백성으로 하늘을 쳐다보면 왕만 보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왕과 백성이 같이 보이는 겁니다. 


◈ 하나님의 일방통행 !!


여기에 '일방통행' 이라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이 숨어 계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지상에서 인간들이 작대기로 아무리 찔러도, 주님 엉덩이에도 닿지 않는데, 없다는 말이다. 천국이 있어야 쑤시든지 말든지 할텐데, 없다는 것이다. 그게 인간의 의식 속에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들 자체가 우상이기 때문인데, 우상에게 무슨 천국이 있느냐는 말이다.


◈ 그런데 중세신학의 경우에 !!


그래서 중세철학이 문제가 되는데, 보에티우스, 아벨라드,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그리고 루터가 좋아했다고 하는 어거스틴, 아마 칼빈도 좋아했지 싶은데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의 본성 속에서 신의 속성을 끄집어내자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작업을 했다는 말이다. 그것을 '공유적 속성' 이라고 하는데, 즉 인간과 하나님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이란 것이다.


예를 들어서, 12년 혈류병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서 병이 나았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누구에게 달려드는가? 여인에게 달려들어서 "당신이 무엇을 했기에 구원을 받았는가?" 라고 하는데, 중세의 신학자들은 바로 그러한 것을 끄집어낸다는 말이다.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들어와서 병 고침을 받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일방적이고 우연적인 권한의 행세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내고 누구에 몰려가는가? 중풍병자에게 가서는, "너는 어떻게 해서 죄 사람을 받았지? 지붕을 뚫어서 그런가? 그러면 나도 그렇게 새치기를 해볼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무슨 신기한 일만 일어나면, "당신은 얼마나 기도했지? 금식을 했지?" 라고 하면서, 그것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신학과 철학은 무엇인고 하니, 교회부흥에 보탬이 되는 목회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인데, 물론 오늘날 신학교 교수들도 역시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개혁주의 신학이 이단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 되면 되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죄인으로 들통이 나면 그것이 곧 구원인데, 거기에 굳이 신학이 왜 필요하냐는 말이다. 예정론이 왜 필요하고, 창조론과 종말론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어디 그것을 알면 구원이 되는가? 그게 과연 구원의 능력이라도 되느냐는 말이다.


◈ 구원의 능력은 오직 십자가뿐 !!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능력은 오직 십자가뿐인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 외에 다른 것은 알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조직신학이 필요하고 조직신학이 필요하냐는 말이다. 목회신학은 왜 튀어나오고 하느냐는 것이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것은 신학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기가 공부한 것을 가지고서 거기에 의미를 두니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마치 그게 중요한 것처럼, 그게 구원의 능력에 보탬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날 따라 해봐라. 이렇게!" 라고 하는, 그런 식이라는 말이다.  


숨어있는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창안하고 기대하는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데, 전혀 이방인인 우리가 몰랐던 방법으로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고 나면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이 되기에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이스라엘이 되면 우리 내부에 언약이 살아있게 되는데, 그 살아있는 언약이 자생적으로 퍼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 정말로 축하합니다 !!


그게 마치 암 세포처럼 퍼지는데, 그러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 나온다는 말이다. 물론 퍼진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지고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닌데, 거지 나사로는 끝까지 거지인 상태로 퍼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숨어있는 것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고 치밀한지 모른다는 말이다. 거지 나사로를 보고 복을 받았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철저하게 숨어 계신다는 것이다.


"이번에 또 잘렸습니까? 복을 받았군요" 라고, 그러한 소리를 누가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암에 걸렸습니까? 정말 축하합니다" 라고, 누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아니 장남이 대학에 또 떨어졌어요? 이런 기쁨을 누구와 함께 나누어야할지 모르겠지요? 정말로 좋겠습니다" 라고,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축하한다는 사람이 있었는가? 모두가 도망을 치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상황을 성령께서는 반복을 시키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철저하게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나타나도 전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우리에게는 철저히 숨어있는 것이 되고, 이것이 바로 살피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들마다 모두가 다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렇게 해서 언제 목회성공을 합니까? 교회부흥은 언제 됩니까?" 라고 나오는데, 그러니 교회는 숨어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교회가 되게 하시지,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교회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지체는 많아도 몸은 하나 !!


어제 낮 시간에 이야기한 것처럼, "지체는 많아도 몸은 하나다" 라고 하는 의미는, 그것은 예수님과 같은 무덤을 사용한 사람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것이다. 즉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말이다. 살아서 천당에 가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에도 나오듯이, 교회라고 하는 것은 함께 죽고 함께 산 사람들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기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결코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 강의제목은 '숨겨진 것' 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즉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제 교재 148페이지를 보자.


** 사도바울은 "내가 어찌하든지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간다" 라고 하는데, 말이 좀 이상하지요?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로 간다고 하는데, 그러니 십자가의 길을 가야 거기에 영생이 있고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겁니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바울은 "내가 어찌하든지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간다"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은 자는 무엇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부활의 세계와 연결이 되지 않은 상태라는 말이다. 그러니 부활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부활의 세계로 가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어디를 가야하는가? 오직 십자가의 길을 간 사람에게만 부활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 십자가의 길이 곧 부활의 길 !!


그러면 십자가의 길은 무엇인가? 자기가 고생하는 길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분의 의미가 점점 더 커지는 길인데, 즉 자기는 더욱 더 죄인이 되고, 그리고 주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으로 만나는 길인데, 그래야 동행이 된다는 것이다. 그 길에 접어들지 않으면 부활도 없다는 말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시비를 거는 분이 있는데, "아니 그렇게 해서 도대체 몇 명이나 구원을 받겠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주님에게 있어서 몇 명이 구원을 받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이 될 자는 모두 다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몇 명이냐고 물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그래도 조금은 남겨놓아야 하는데, 강의를 하다보니 지금 또 하게 되는데 말이다(ㅋㅋ).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는 우리가 헤아리는 숫자가 아닌데, 그 숫자의 헤아림은 천사의 몫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개인이 없는데, 즉 주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활동을 해주어도 이제는 천사가 하는데, 인간은 그만 빠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말이기에 말이다. 인간은 이제 할 일을 모두 다 했다는 것이다. 얻어터지던 지옥에 가던,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교재를 보자.


** 사람이 인생 길을 가는데, 그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면 천국이 보이지 않고 십자가부터 보이지요. 그 십자가 속에 천국이 있다는 겁니다. 천국이 먼저 보인다는 것은 이단입니다. 십자가 속에 천국이 있습니다.


◈ 십자가 속에 천국이 있다 !!


여기에 "십자가 속에 천국이 있다" 라고 하는데, 이렇게 십자가에 들어간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이 친히 주인공이 되셔서 죄인으로 만드는 작업의 결과물로 다가서는 것인데, 마치 거울 앞에 서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다가설 때, 그 길이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이스라엘에게만 해당이 되기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 이야기는 현재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스라엘의 배반과 배신, 그리고 주님에 대한 오해, 또한 법을 지켜서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하는 그들의 실수, 그것은 우리가 지금 일상에서 매일같이 하고 있는 일이고, 그 결과도 역시 그러하다는 말이다.


바로 그 길을 먼저 가신 분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먼저 걸어가심으로서,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4글자로 '님 그림자' 라고 하는데, 아마 노사연이 불렀지 싶은데 말이다. "저만치 앞서가는 님 뒤로 그림자 길게 드린 밤, 님의 그림자 밟으려 해도 서러움이 가슴에 이네 ♬" 라고, 참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인데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님 그림자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아버지만 보고 있는데, 그래서 마귀가 와서 "돌이 떡이 되게 하라" 라고 해도, "나는 아버지의 말씀대로만 산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아시는데, 숨어있는 분이기에 말이다. 즉 아버지는 숨어있고, 나타난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아버지만 바라보았듯이 이제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면 되는데, 즉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이 닦아놓은 길을 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서 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아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이, 즉 요한계시록이 늘 폭발하면서 그 길을 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 성도는, 예수님의 기성품 !!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기성복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강의제목으로 이게 더 좋아 보이는데 말이다. '워홀(?)' 이라는 현대의 사진작가가 마릴린 몬로의 사진을 반복적으로 찍어서 전시를 했는데, 그리고 코카콜라와 통조림을 반복적으로 찍어서 전시를 했는데, 즉 원본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를 않는데, '시뮬라시옹' 라고, 즉 사본만이 보인다는 것이다. 복제물만 말이다. 그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소자(小子)' 라는 것인데, 즉 "이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그게 곧 현대판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이 현대판 이스라엘의 특징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데, 그렇게 이미 구원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각자 각자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죄를 지어서 우리 모두의 죄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의(義)로 된 동일한 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유니폼을 말이다.


여기서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17절을 살펴보자.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엡 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여기 12절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숨어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는데, 이스라엘은 언약에 속한 자이기에 말이다. 언약에 속한 것을 영적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신인 마귀와 싸우는데, 세상이 아니라 세상의 우두머리와 싸운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과 싸운다는 것이다.


여기 13절부터 보면, 진리, 평안의 복음,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등이 나오는데, 이것이 개인의 것인가? 아니면 집단의 것인가? 집단의 것인데, 개인 용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즉 동일한 것을 같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똑같은 것을 받기 때문에 누가 더 잘났다는 것이 없는데, "너는 상급이 많고 나는 적다" 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동일하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정리해보면, 그렇게 하려면 먼저 "성경세계는 없다" 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만 하는데, 즉 성경전체가 구라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고 하는, 그것이 우리의 전부이니 말이다. 잘먹고 잘살면 그것으로 만사오케인데, 왜냐하면 자기가 편하기에 말이다.


강의처음에 뭐라고 했는가? "나보다 더 소중한 자는 없다" 라고 했는데,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는 것보다도 자기 손가락이 찔려서 피가 나는 것이 더 아프다는 것이다. 자기만 잘 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씀이 암 세포처럼 조용하게 퍼지게 되면, 자기는 원하지 않는 길을 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요한계시록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온 몸에 성경전체가 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없던 세계가 자기 안에서 느껴지면서, 이게 '있다' 라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있는가? 죽어봐야만 아는 세계를, 죽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그 나라와 그 의' 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는 것에 올인을 했는데, 그것은 이방인들이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무엇인고 하니, "먼저 그 나라의 그 의를 구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되면서 성경전체가 자기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는데, 물론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하는데, 사실은 미친 정도가 아니라 죽었다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미친 것도 자기의 뜻이 아닌데, 눈이 오는 날에 머리에 꽃을 꽂고 나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한예슬이 나오는 그런 드라마가 있다는 말이다(ㅋㅋ).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신부나 수녀처럼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치지 않아서 미친 척을 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물론 그들은 말하기를,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입는 것이 아니라 전도용으로 입는다. 그래서 평소에는 사복을 입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인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왜 건방지게 자기들이 거기에 손을 대느냐는 것이다. 왜 나대느냐는 말인데, 왜 제복을 입고 티를 내느냐는 것이다.


◈ 바른 것이 아닌, 달린 사는 삶 !!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깨끗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닌데, 달리 산다는 말이다. 광고에도 보면 '이상해지자' 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우리는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없는 세계가 우리에게는 있는 세계가 되고 말았는데, 즉 남들에게는 없는 심판의 시기가 이미 우리에게는 도래한 심판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 심판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인데, 그게 로마서 5장 21절에 그대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키기는 무엇을 더 지킨다는 말인가? 무엇을 더 낸다고 해서 성도가 더 빨리 되고 하느냐는 것이다.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 니가 어때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약속한 것의 절반을 했는데, 처음부터 반만 낸다고 했으면 되는데, 괜히 다 낸다고 해서 그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지적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구원이라는 것은 니가 손을 댈 문제가 아닌데, 그런데 왜 너의 구원의 문제에 니가 개입을 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부부가 졸지에 하루사이에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죽었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닌데, 일종의 폼이니 말이다. "왜 너의 구원에 니가 손을 대는가?" 라고 하면, 물론 우리는 할 말이 있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면 주님은 "니가 어때서?" 라고 하면, 우리는 "지금 제가 거지와 같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거지도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되었다는 말이죠.


교도소에 가도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주님께서는 "교도소에 갈래? 아니면 지옥의 보일러 속에 들어갈래?" 라고 하시는데, 보일러 속에 가면 타기라도 하는데, 그런데 지옥에서는 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그러한데, 불이 붙어도 타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런데 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불이 붙으면 연소가 되는 것인데, 그러면 산소가 타서 연소가 되어야하는데,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만 붙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마치 지옥과 같다는 것이다. 아무튼 천국과 지옥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라는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도 더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다.  


◈ 이상하자 !!


그래서 성령을 받은 자는 '이상하자'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바울인데, 그렇게 예수를 믿는 자들을 싫어하던 사울이 예수님의 종이 되어서 사도바울로 설치는 것,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게 미쳤다. 어디 번개를 맞았나?" 라고 했지 싶은데, 번개를 맞은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맞았는데, 성령세례를 받으면 정말로 이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유일한 통로, 즉 탈출할 통로는 오직 하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거기로 탈출해야한다는 의식이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떠나야하고, 전혀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았던 것을 가지고 실패와 성공을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싸우는 싸움이 육과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신들과 싸움이다보니,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그만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왜 욕을 하는가?


제가 이번에 '내부자' 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참 황당무개하고 더러운 영화인데, 무려 700만이나 보았다는 것이다. 그 영화를 보면 틈만 나면 욕을 하는데, 사람들이 왜 욕을 하는고 하니, 그것을 바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려워서 욕을 한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 상대방에게 욕을 한다는 것이다. 


이게 엽전 꾸러미의 구멍이 막혀서 그러한데, 뚫으니 욕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뚫지 말라고 말이다. 마귀가 여기서 버티는데, 뚫려야 하는데 그것을 마귀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최후로 지킬 것이 아직 남아있을 때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욕이 나온다는 말이다. 물론 예수님도 욕을 하셨는데, "이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말이다. 가벼운 욕은 아닌데, 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계시라는 것이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하는데,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하라고 하고 말이다. 그리고 원수를 갚는 것은 주님께 맡기고, 자기가 나대서 설치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로 긍휼히 여기고 용서를 하고 말이다.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렇다고 해서 이 대목을 가지고 착하게 사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되는데, 이것은 다른 정신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렇게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면 '미쳤다' 라고 하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래, 나는 미쳐도 주의 사랑에 미쳤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만 더 하고 마치겠는데, 여기 교재를 보자.


** 잠언서 16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결정적이잖아요. 이게 다윗언약의 특징이란 겁니다. "나는 왕을 앞장세워서 내 백성과 상대하겠다. 정말 너희가 여호와께로 오려면 내가 보낸 왕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를 통해서 오너라" 라는 겁니다.


(잠 16:10)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 모든 책임은 왕이 다 진다 !!


잠언서 1장 1절에 보면,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라고 되어있는데, 즉 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왕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찾고 있다는 말인가?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백성을 찾는데, 백성은 주도권이나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잠 1: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모든 것을 왕이 책임을 지는데, 백성이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백성에게 주어지는 미래와 그 운명은 왕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백성은 백성으로 살면 되는데, 쓸데없이 나라를 걱정하면서 나대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나라도 아닌데 왜 걱정을 하고 말고 하느냐는 말이다. 왕이 모두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아기 예수님에게로 인도한 그 힘이 역시 그들을 피신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은 예수님 중심으로 관련된 일들로만 동방박사들이 움직이게 되어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우리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심지어는 뜨개질을 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이다. 절에 가서 비빔밥을 얻어먹어도 주님께서 보살을 통해서 주셨다는 말이다. 그러니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는데, 즉 그 나라와 그 의로 인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 나라와 그 의, 그것이 바로 원본인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원본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이지 않는 주님 덕분으로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는 세속적인 것도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줄 압니다. 그럴 때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죄를 더욱 더 깨닫게 하려는 주님의 작전으로 여기고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6,1,23 오후 10시에 마침.


                                                          오늘 오토바이를 타고 돈까스를 배달한 것도,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일인 줄 감히 믿습니다. 
                                                                            그런데 너무 추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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