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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6 01:01:06 조회 : 3529         
Re..부천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02 - 인간론2-1 이름 : 이장우(IP:)
05부천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02 - 인간론2
                                                
                                                                05,02,21    강의: 이근호 목사


◈ 예수님은 인간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아담 안'으로 !!

"사람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은 예수님 앞에서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입니까?" 라는 말은 성립이 되는데, 그런데 "사람은 무엇입니까?" 라고, 이렇게 묻게 되면, 처음부터 예수님은 인간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아담 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아담아, 내가 만든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라고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에서 물으시는데, 이것을 어떤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은 개별적으로 있지만 혼자 있지 못하고, 관계와 더불어 일어선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에 이런 놀이 한 적이 있지요.  꼬마 때에 "철이야 어디 있지" 하고 물으면, 이불 속에 가만히 있다가 웃으며 일어나는데, 이불과 함께 벌떡 일어나지요.  즉 이불과 함께 인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릴 때 이런 놀이를 해보셨지요?  아니면 저만 했나요?  이 놀이처럼 이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사건들과 정황들과 더불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것이 다 이렇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누구에게 질문을 던질 때, 질문을 한 그 의도가 모두 다 어떤 것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면서 질문에 연결된 의도를 교묘하게 은폐합니다.  이것을 숨겨 버리고 단지 자기 관심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라고 하면서 자기를 연출하고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즉 주위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고려해서 함께 일어나는 의문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이 사건을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 인간은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행위도 뭔가 노리고 !!

말이 좀 어렵게 되는데 쉽게 하면, 사람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행위도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노림수를 가지고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는데, 그 목적과 노림수 라는 것은 새롭게 지어낸 것이 아니라, 주변에 이미 자기가 알고 있던 것, 궁금했던 것, 그리고 기대하던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일어나는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인과 차를 마실 때도 기분이 좋은 때는 부드럽고 곱게 마시는데,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서 기분이 나쁘면 함부로 마시는 것입니다.  똑 같은 차를 마시는데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입니다.  

◈ 하이데거 - 우발적인 사건 !!

'하이데거' 라는 유명한 철학자는 이것을 가지고서 '우발적인 사건' 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발적인 사건이란, 이 세상이 개체가 아니고 우발적인 사건과 더불어 모든 것과 연관지어서 더불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 복음서 -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가지고 우리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특징이 무언가 하면,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느꼈습니까?  다시 한번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오셨지 우리를 불러서 의논하고 대화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통보하려고 오신 것이지 말입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이미 땅에 대하여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꿰뚫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입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즉 성경을 성취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예수님 등뒤에 당기고 오시는 것은, 모든 성경 말씀, 즉 전 우주의 목적을 다 성취하시려고 우리 면전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개별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 자기 코앞에 있는 일, 자기만의 일, 그것 밖에 모르는 우리와 엄청난 주님과의 마주침인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바로 이런 마주침이지, 우리가 그 앞에서 무언가 의논하고 협조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당해야 하고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공격하셔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말씀을 펼치면서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 세상에 지혜가 무엇인가 배워볼까?" 라고, 이렇게 하지 마시고, "주여, 또 치시옵소서. 제가 당하겠나이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보는 바람직한 태도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모두 악하다고 전제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요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그러니 그 속에서 우리의 선한 것을 내세우려고 하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공격하러 오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이번 두 번째 시간에는 예수 안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구약-십자가-신약-계시록"이 있다면, 이미 구약 때에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것입니다.

성전도 짓고, 십일조도 하고, 기도도 해보고, 금식도 해보고, 바리새인들이 이레에 두 번식이나 금식도 하고, 구제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할 것 다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자기를 때리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해보았는데 그것이 결국 실패라는 것입니다.  인간 쪽에 모든 것을 다 해보았지만 결국 실패라는 것입니다.

◈ 구약 - 인간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어서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가 !!

그런데 이 실패한 그 실패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어서 인간이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가를, 사실 우리는 그것을 감추고 싶었는데, 주님은 그것을 폭로시키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아모스서 5장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다윗처럼 기타를 치고 찬송해도 그것도 소용없고, 절기를 지켜도 아무런 소용없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를 다 동원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 전체를 통해서 증거하는 바이고, 인간이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명확한 판정만을 받은 것입니다.

(암 5:5)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그러므로 "왜 인간이 안 되는가?" 라는 질문은, 다윗도 부활되지 못하고 무덤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다윗도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왜 인간이 안 되는가를 예수님과 부딪힘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 폭로가 되는 것입니다.  즉 뚜껑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 인간의 내부 - 하나님이 미워요 !!

이렇게 뚜껑을 열어보니까, 라면이 끓듯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 이라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적개심, 적개심 하니 "공산당이 싫어요" 하는 적개심이 생각나는데, 신에 대한 미움, 반발심이 뚜껑을 닫아서 그렇게 뚜껑을 열면 항상 이것이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신 자체가 하나님이 미운 것이지요.  미운 감정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미운 감정이 섞인 체 말씀대로 기도하고, 말씀대로 전도하고, 말씀대로 찬양하고, 말씀대로 예배 참석하는 것을 백날을 해보았자, 그 미움이 함께 섞여서 도출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미움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늘 폭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산의 마그마처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

그러면 어째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폭발하는 말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끊어지고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흙, 흙의 형상, 아담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 모든 인간의 삶은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귀환의 생애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씩씩거리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료보험이나 생명보험을 해도 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 가인 - 씩씩거리면서 돌아가는 인간의 대표 !!

그 대표자가 바로 '가인' 이지요.  씩씩거린다는 사실을 본인이 몰랐습니다.  이렇게 몰랐는데 언제 알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당장 드러난 것입니다.  그 여파가 누구에게 미친 것입니까?  가만히 있는 동생을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가인아, 죄가 너를 덮친다' 라고 하셨습니다.  즉 덮친다고 하신 대로 덮친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데 자기 속성을 거부할 수 없게 작용하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즐기고 죄를 원하고 있습니다.  죄 짓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은 위선이고,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죄를 짓고 싶어서 환장한다는 것입니다.

◈ 목사의 설교 - 여러분은 죄를 짓고 싶어 환장하고 있습니다 !!

목사는 이걸 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이 설교를 해주어야 합니다.  죄를 짓고 싶어 환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걸음자국 자국마다, 자신의 속에 있는 죄가 휘발유가 되어 가지고 발동기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우리는 교회도 가고, 그 교회 간발로 볼링장도 가도, 골프장에도 가면서 씩씩거리는 것입니다.

이러니 하나님의 처사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자기에게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이 저 사람에게 가야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와야 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것을 잘 모르지요. 내가 한 수 가르칠까요? 저 복은 나에게 와야 되고, 저 인간은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지금 잘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지요.

"하나님, 저 이단은 벌써 심판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 이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라는 식으로  따지고, "하나님, 김일성으로 끝내어야지 김정일로 물려주면 우리민족의 통일이 안 됩니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지금 일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늘 나오지만, 그것을 평소에는 감추고 있습니다.  행여나 그것이 들키면 성질이 안 좋은 하나님께서 벌주면 안 되니, 평소에 항상 감추면서 아닌 척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언제 들키는가 하면, 분명히 자기는 최선을 다했는데, 거기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 적당치 않을 때는 폭발해 버리는 것입니다.

언제 말입니까?  교통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될 때, 가게가 무너질 때, 애가 학교에서 맞을 때 말입니다.  때릴 때는 괜찮은데, 성적이 떨어질 때, 시험에 떨어질 때, 운전면허 여섯 번 떨어질 때, 기차 놓칠 때, 이럴 때에 평소에 하나님에 대하여 싫었던 감정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 요나서 - 북쪽 이스라엘이 변질되어 있음을 대변 !!

그 대표적인 사람이 성경에서 나오는 '요나' 입니다.  요나 알지요?  구약의 요나 선지자 말입니다.  요나서 1장, 2장, 3장을 보고서 덮어버린 사람은 요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4장을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 무엇이 나옵니까?  니느웨가 회개해서 심판이 면죄되니 누가 죽으려고 했습니까?  요나 선지자가 삐져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어떤 암시도 주지 않았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재미로 선지자 노릇을 합니까? 점치는 놈이 점이 틀리면 점치는 노릇을 못하게 되는데, 선지자의 예언이 틀려 버리면 선지자 노릇을 못하게 되는데, 못하게 되면 그동안 선지자라고 우겼던 자신의 위신과 명예와 체면은 도대체 누가 보상해 주는 겁니까?  그동안 충성스런 개처럼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모든 일을 다 했는데, 지금 와서 하나님께서 나를 차버리면 나의 자존심과 위신은 어디에서 찾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요나서의 핵심입니다.  이만큼 북쪽 이스라엘이 변질되어 있다는 것을 요나를 통하여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의 핵심인데, 이 요나서를 가지고 선교신학이 어떠니 해외 선교를 하자면 요나를 본 받으라고, 이상한 소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선교라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자체에 선교란 성립이 안 됩니다.  이것은 또 무슨 이상한 소리하느냐고 하지만, 자기가 여기서 저쪽에 갈 때는 선교가 성립이 됩니다.  여기 있는 복음을 저기 옮기겠다는 것이 성립이 되는데, 그런데 저기 있는 복음이 여기로 오면 선교가 안 되지요?  

◈ 선교의 주체는 언제나 주님 !!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자기가 지금 목사인데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하면 일반교회에서 이것을 중국에 선교한다고 하지요.  이런 선교란 성립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한국에 있는 자기를 중국에서 훈련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이건 선교가 아니지요.  같은 예수님의 장에서 이곳에서 훈련을 받다가 저곳에서 훈련받는 것입니다.

첫째 시간 마지막에 한 것 벌써 다 잊어버렸지요.  자기가 선교한다면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선교를 당하는 나'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중국에 보냅니까?  그러니 선교는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내가 하는 선교가 되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자꾸 내가 선교한다고 생각하니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잖아요.  자꾸 돈을 달라 하고, 이상한 사진 찍어 보내고, 본 교회 와서 헌신 예배하면서 돈 달라고 하고, 무슨 앵벌이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놀고 와서는 말입니다.  

주님의 선교라는 것은, "나는 예수 믿었으니 나는 빼놓고 저쪽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교와 전도는 택한 백성의 범위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택하신 자에 대한 전도는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즉 "오늘은 네가 여기서 고생했으니 내일을 저기 가서 고생하라" 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에 여자 같으면, "지금까지 15년 동안 이 남자하고 결혼하여 선교하였는데, 이제는 이혼하고(?) 저 남자하고 선교하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찌 표현이 좀 이상합니까?  아무튼 주님은 이런 방식으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 택한 자는 주님이 알아서 책임지고 선교하시는데, 이걸 가지고 자꾸 교인들보고 선교 안 한다고 닦달을 해대니 교인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교인들이 바빠서 못하니 어떻게 합니까?  "그냥 돈만 내라" 라는 것입니다.  돈 받아서 자기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선교사들이 그것으로 먹고살지 않습니까?

첫 시간에 한 것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여기에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를 여기에 있게 하신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시키시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자기가 주인이 아닙니다.  말로는 "주, 예수여!" 라고 잘도 하지요.  말로는 이렇게 하고서는, 항상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버리니, 그것이 무슨 주 예수냐는 말입니다.  

◈ 예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시키시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시키시는가?" 라는 것이 항상 관심이 집중되어야 하는데, 이미 창세기 1장과 2장은 물 건너가고, 창세기 3장 이후에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이 되었는데,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의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창세기 1,2장을 찾으면 안 되고, 이제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지요?  사는 것만이 아니라 죽는 것도 주의 일인 것입니다.  죽는 것도 선교라면 스데반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감독이 엑스트라에게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지, 총을 14발이나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서 벌떡거리면 무슨 그런 영화가 다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 그런 영화도 있다구요?  아무튼 죽을 때는 빨리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나 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로 하나님께 섭섭할 때가 언제인가 하면, 아까 말한 그 '적개심' 이라는 것이 언제인가 하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하게 죽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와서 꽃 한 송이 꽂아주는 사람도 없이 한 15년쯤 지나가 "그 사람은 죽었는가? - 죽었단다" 라고 하면, 동네 개죽은 것처럼 취급당할 때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통터지는 것입니다.

◈ 이근호 목사가 죽었단다 !!

살아있을 때 좀 안 알아주더라도, 죽었을 때는 다음에 좀 뜨고, 크로스 빌리지에 이근호 목사가 죽었다는 소식도 뜨고 해서 찾아와서 부조도 좀 하면 딸내미에게 좀 주기도 하고, 그래야 할 텐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한 15년쯤 지나서, "그 사람 어떻게 되었노? - 벌써 죽었단다 - 아, 죽었구나" 라고 하고서, 15초만에 그 이야기 끝내어버리면, 이근호의 위신과 체면을 어디서 찾느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평소에 하나님 예수님 백날 부르짖어도 그 속에는 자기가 왕초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세세히 끄집어내시는데 우리 주님이 도사라는 것입니다.  이러 것을 어떻게 끄집어내시는가 하면, 똑 같은 기적을 두 번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기적은 일회용 !!

예수님은 어린이 도시락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린애의 그 도시락을 늘 가지고 다녀야 합니까?  물론 가지고 다닐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은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한 번 기적은 일회용입니다.

요즈음 환경문제로 일회용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데, 주님은 진짜 일회용을 무엇이나 다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수십 년 전에 감기가 들어서 기도해서 낳았다고 해서, 그런데 또 감기가 들어서 기도하였더니 나았다는 것은, 그것은 마귀가 한 짓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 다시 같은 기적을 베풀지 않으니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인간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적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였는데 일어났을 경우에, 주님의 은혜로 일어난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상한 기적이 일어나면, 예상했다는 인간의 자기 공로가 섞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주님의 공로가 아니라 마귀의 장난이고 말입니다.


2005. 5. 12일 이장우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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