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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2 23:49:14 조회 : 1019         
내재하는 외부 160902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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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윤범(IP:14.♡.134.67) 16-09-06 10:07 
20160902a 울산강의-레위기 1장 : 내재하는 외부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부터 레위기를 하겠습니다. 레위기를 할 때 출애굽기와의 차이성이 뭐냐? 그것부터 알고 있어야 되겠지요. 출애굽기에서 핵심이 있다면, 내가 누군지를 하나님 앞에서 발견하는 겁니다. 모세가 시내 산꼭대기가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꼭대기로 불러내십니다. 시내 산은 2281미터고 위치는 지금 어딘지 확실치 않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 위에 올라갔을 때 남성만 해도 오십만 되는 사람들이 어떤 상태냐 하면, 대기 상태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네가 누군지 똑바로 알란 말이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기를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거든요.

여기서 거룩한 백성이란 개인적으로 거룩하냐, 아니면 환경이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한지 우리가 분별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이라 할 때는 개개인을 거룩하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고, 복잡한 문제일 수 있는데 개인적인 자질이 우수해서 거룩한 백성으로 쳐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환경이 있어요. 그 환경 안에 놓이게 되면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인 노력 같은 것은 의미 없이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조성한 환경 자체가, 하나님은 여기 계시고 백성들은 대기해 있지요. 여러분이 알기 쉽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 나타났고 백성들이 대기한 상태, 이것이 바로 거룩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온 거예요.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어요. 시내 산에 간다는 것도 하나님과 모세 둘 사이의 이야기지 백성들은 그냥 모세 따라왔을 뿐입니다. 와보니까 이러한 배치가 돼있고 이러한 무대가 형성돼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천국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거룩이다. 그런데 거룩을 누가 마련하느냐는 겁니다. 내가 바르게 살아서 마련할 것이냐, 착실하게 살아서 거룩을 마련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어떤 환경 속에 집어넣어서 그 환경 속에 있는 자는 자동적으로 거룩해질 것이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살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선교하고, 목사 말 듣고 교회 착실히 다니고, 성경공부하고, 이렇게 해서 거룩이 될 것 같으면 주님께서 시내 산까지 끌고 오지 않았습니다.

시내 산이 있어요. 가봐야 거룩하지 않습니다. 거룩이란 하나님께서 친히 장만해줘야 돼요. 그 무대를, 그 마당을 주께서 친히 마련해줘야 됩니다. 마련되면 그들은 거룩 속에 들어가는데 거룩 속에 들어갈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개개인은 죄인으로 바뀝니다. 이게 바로 거룩한 백성들이에요.

자녀들에게 아침에 도시락 싸주죠. 요새는 없지만. 옛날 우리 엄마는 도시락 열 개나 쌌어요. 삼촌들, 고모들, 자식들이 많아서 툇마루에 놔두면 큰 삼촌부터 하나씩 들고 가면 다 소비되는데,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에게 도시락 싸준다고 할 때 그 자식들은 들고 가서 먹으면 되겠죠. 그런데 그걸 엄마가 준비하는 거예요.

방금 제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물어봅시다. 어느 가정에서 자식이 도시락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도시락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집의 엄마가 만들었겠지요. 그걸 주체라고 합니다. 도시락 만든 주체는 여기서 엄마가 되는 겁니다. 만약에 엄마 없는 집에 아빠가 도시락을 쌌다면 그 주체는 아빠가 되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우리가 거룩한 사람 만드는 주체가 누가 될까요? 오늘 죽어도 낙원에 가려면, 거룩한 백성이 되려면, 도시락을 엄마나 아빠가 준비한다면 거룩은 누가 준비하느냐는 겁니다. 이게 주체문제입니다. 이방민족은 본인이 도시락을 준비해야 돼요. 이게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고 난 뒤에 40일 동안 깜깜 무소식이에요. 올라갈 때 도시락도 물 컵도 안 가져갔어요. 한두 시간 만에 내려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40일이 되도 안 내려오니까 죽었다고 봐야지요.

죽었다 치고, 모세는 죽었어요. 출애굽기 32장에서 시내 밑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기들이 거룩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자하심이란 백성들의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 금으로 자기가 아는 인자에 가장 가까운 형상을 만들어요. 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름 붙이기를 여호와라 하고 오늘은 여호와의 날이라고 여호와를 섬기는 축제를 벌였습니다. 어디에서? 시내 산 밑에서. 시내 산 위에선 아무 소식이 없어요.

그들이 송아지를 섬길 때 그냥 송아지를 섬기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날이 여호와의 축제에요. 요새 같으면 여호와를 위해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부흥회를 한 거예요. 이것이 스스로 구원받기 위해서 자기가 만들 수 있는 도시락의 한계입니다. 극치고, 전부에요. 그런데 하필 그때에 모세가 내려올 때 딱 맞아떨어진 거예요.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같고 왔습니다. 돌 판을 약속이라 해서 언약 판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는 거룩은 언약을 이루는 거예요. 백성들의 생각은 자기 쪽에서 거룩을 담을 도시락을 자기가 만드는 것, 모든 정성과 성의를 다하여 만든 그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 중에 누가 맞느냐는 거죠. 모세는 돌 판을 깨버렸습니다. 너희들이 하는 짓거리를 내가 올라가보니까 이건 완전히 말짱 가짜였다. 모세가 만약에 하나님과 독대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것은 다 집합했으니까, 가장 고상하고 거룩한 것은 다 모아놨으니까 하나님이 이 정도 성의를 봤으면 내칠 일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 가본 사람을 이긴다는 것. 직접 하나님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숫자 많다고 우기는 거예요. 성의와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섭섭지 않게 복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건 니 생각이고, 직접 독대를 해야 돼요. 모세가 이야기하는 것은 언약과 더불어 왔던 ‘돌 판+제사법’입니다. 돌 판이란 이것 하라, 하지 마라는 명령이죠. 제사법은 네가 했던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일괄 되게 없애주겠다. 그 죄를 깔끔하게 삭제하겠다. 내 거룩을 걸고 없애주겠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내민 도시락을 집어던지는 그 작업과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모든 것을 거절하는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주님께서 준비한 도시락을 내미는 교체하는 현장이 제사하는 현장입니다.

이야기를 간단하게 가겠습니다. 모세가 없을 때 그들은 정성을 다하여 나름대로 거룩을 만들었지요. 그걸 버리지 말고 그대로 가져오라. 그 앞에 브랜드를 붙여야 돼요. 이것이 바로 죄다. 이것이 바로 거룩이 아닌 것의 절정이다. 그러니까 자기의 행동을 감추지 말고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돼, 하지 말고 그대로 가져오되 이런 짓거리가 죄입니다, 라고 가져오란 말이죠.

고물을 가져와야 새 것과 바꿔주지요. 엿을 그냥 줍니까? 신발 가져와야 엿 주잖아요. 주님이 준비하신 천국에 필요한 엿, 자칫하면 엿 같은 이야기인 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나름대로 새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가져와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바꿔치기 해야 돼요. 만약에 바꿔치기 안 하고 우리가 뭘 압니까? 그냥 주시옵소서. 이렇게 되면 기존에 있는 신발에 엿을 담는 게 되기 때문에 더러워서 못 먹어요. 내 것, 죄 내놓고 의로 바꿔치기 해야 됩니다. 주님께선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닙니다. 죄인을 부르러 온 거예요.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가 의인 되겠다고 고난주간 만들고 부족하다고 두드리고 금식했는데 진짜 창조주이신 주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고난기간에 자기 사람들과 함께 술 잡숫고 식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보다 못해 참지 못한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우리와 같이 금식하는데 너희들 선생은 죄인들과 함께 술 잡수시냐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병든 자라여 내가 의사인 것을 눈이 떠져서 보이지 자칭 자기가 알아서 잘난 기분에 도취되어 그것으로 천국까지 이어보겠다는 자들이 언제 의사가 온 줄 알기나 하겠느냔 말이죠. 지 잘난 맛에 살아가는데, 지가 똑똑한 맛에 자기 경건한 맛에 자기 신앙 좋은 맛에 살아가는데.

내 신앙은 신앙도 아닙니다. 내 경건은 거지같습니다, 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전혀 안 먹힌다는 것을 수긍한 사람만 주님을 모든 병을 고치시는 의사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잘난 바리새인보다 못난 막달라 마리아를 받아주시는 주님, 그 원칙은 구약에 이미 밑그림을 다 깔아놨어요. 구약은 그냥 그림이에요. 얇은 판이에요. 신약은 까는 게 없고 수직적인 사다리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말씀 지키면 부자 되고 못 지키면 거지 된다는 말씀이 신약에 와서 서버리면 천국 간 사람이 부자고 지상에서 재벌도 하늘나라에서 보기에는 거지꼴이라는 겁니다. 수평으로 있던 이미지가 수직으로 서버리면 우리의 생명을 하늘에 있고 땅에선 이미 죽은 자로다. 골로새서 3장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통으로 본다는 것은 구약에 평지로 돼있는 그림 안에 수직적인 신약이 어떤 식으로 무늬가 깔려있는지 채취하는 거예요. 무늬를 그려볼 수 있는 안목이 있을 때 성경을 통으로 보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키면 네가 장수하고 부자 되고 못 지키면 네가 거지 되고 졸지에 저주받아 죽는다고 돼있는 것이 구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선 오히려 진짜 맞아죽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가난하게 오셨잖아요.

이러한 판 속에서 인간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느냐에 대해서 구약은 테스트하는 환경으로 주신 것이고 그건 모형이고, 실제는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통해서 다 실체가 드러나는 겁니다.

늦게 오신 분이 있어서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거룩이냐, 아니면 거룩한 사람이냐? 이 문제를 이야기했어요. 거룩한 사람과 거룩이 달라요. 거룩은 관계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이 관계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내 산꼭대기에 하나님이 오시지 않으면 거룩과 거룩한 사람 모두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시내 산 밑에서 15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 동안의 기록이 레위기에요.

그전에는 거룩과 거룩한 사람의 등장을 이야기한 것이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 차이점을 이야기했지요. 출애굽기는 거룩한 사람이 생뚱맞게 등장한 것이고, 레위기는 거룩한 내용에 대해서 설명한 겁니다. 없는데 생긴 것이 거룩이고 레위기는 그 생긴 내용이 뭐냐를 들춰보는 거예요.

민수기는 뭐냐? 그 거룩에 합당치 않는 것을 잘라내는 작업, 숫자로 탈락시키는 작업을 하는 게 민수기입니다. 그 방법은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의 위력에 대해서 겁먹고 있는 사람들을 다 잘라내요. 특히 광야에서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요. 우리가 물도 없고 고기도 없고 고생하고 죽겠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럼 돌아가라고 잘라내는 작업. 잘라내면 숫자가 줄잖아요. 그럼 숫자 다시 헤아려요. 그래서 숫자 세는 민수기에요.

누가 탈락했는가? 쉽게 말해서 누가 남은 자냐? 기준은 출애굽기에 기준이 왔어요. 거룩이 와서 거룩한 사람이 만들어지는가? 그건 레위기에서 소개할 거예요. 레위기는 제사에 대한 것이거든요. 제사가 들어가면 거룩이 구체화, 인격화 되면 거룩한 사람으로 전환이 됩니다. 그럼 이 사람들을 어디서 모집하는가? 죄인에서 모집해요. 이 말은 하나님의 의는 죄에서 나온 겁니다. 하나님의 천국은 지옥에서 나와요.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지옥 삶을 살면 돼요. 죄 지으면 되는 거예요. 자꾸 착해지려고 하지 마시고. 천국에선 착한 사람 한 사람도 못 들어갑니다. 천국에 간 사람 중에 착한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열두 제자? 그 사람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우리 가운데 누가 높은지 시합한 사람들이에요. 베드로는 배신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배신까지는 안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여분의 죄 지을 게 많이 남아있어요. 베드로가 지은 죄 수준까지 내려가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우리는 대단히 착한 사람에 해당됩니다. 써먹을 쿠폰이 많이 남아있다고 보시면 돼요.

없는 거룩이 생겼고 없는 거룩한 사람 등장하고, 이것이 출애굽기고. 레위기는 어떻게 죄인이 거룩한 사람으로 전환되는지 그 관계에 대해서 레위기에서는 제사법으로 그걸 바꾼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 아는 것 같지요? 맞아요. 이게 정답이에요. 결론인데 상세히 들어가면 죄인이 어떻게 거룩한 사람이 되는지 그 과정까지 아셔야 됩니다. 이런 순서, 이런 순서, 이런 순서, 땡, 드디어 거룩.

그림으로 그려볼까요? 어렵게 할 필요 없다고 생각되거든요. 어떤 사람이 죄졌다. 시커멓다고 봅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거룩하다. 하얗다고 보는 거예요. 그럼 그 사람을 데리고 어떤 장치 또는 시스템 속을 통과하는 겁니다. 이걸 주유소에 가면 있어요. 세차하는 것. 그냥 가만 앉아 계시면 둥그런 걸레가 돌고, 안에선 뭘 하는지 몰라, 물 붓고 세차하잖아요. 이 시스템이 레위기입니다. 그냥 가만있어서 통과했을 뿐인데 거룩한 백성이 생산되는 겁니다. 그럼 이 장치를 어떻게 꾸미느냐 하는 거예요. 현대건설에 부탁해야 되겠어요? 그 꾸미는 장치에 대해서 레위기에서 상세하게 잘 나왔습니다.

레위기의 전체적인 구조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위기는 거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는 거룩한 사람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사람은 인격체거든요. 거룩을 인격체에 담으려면 처음부터 담는 게 아니고 거룩한 동물이 먼저 등장하고 사람으로 단계를 바뀌어서 나갑니다. 동물이 등장하는 것은 수소, 암소, 염소 종류도 괜찮고. 양 종류, 그리고 새 종류도 괜찮아요.

새 종류는 그냥 드리는 게 아니고 한 쌍,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피 흘리고 죽고, 또 한 마리는 피 전혀 흘리지 않고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아무 거리낄 것 없이, 어떤 것도 구애받지 않고. 염소도 마찬가지에요. 한 마리는 죽고, 또 한 마리는 아사셀 양이라 해서 광야로 내보지요. 염소는 문둥병이 등장할 때.

그러면 이렇게 동물부터 출발했다면 나중에 사람 입장에서 가만있으면 안 되겠지요. 뭔가 마중 나오는 식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문둥병자에요. 문둥병자는 사람 취급 받지 못했어요. 너는 나가 죽으라고 해서 공동체에서 추방시켜버렸습니다. 그 당시 공동체에서 추방시킨다는 말은 가장 끊기 힘든 것에 나간다는.

인간 입장에서 가장 끊기 힘든 게 뭐냐 하면, 직장에서 잘리는 게 아니에요. 가족에서 잘리는 게 제일 힘들어요. 너는 내 아들, 내 딸 아니야. 오죽 했으면 그게 끊어지겠어요. 사람의 한계가 뭐냐 하면, 기어이 가족만큼은 자기가 끌어안는 것이 인간의 인정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내가 심지어 지옥 가는 한이 있더라도 딸이 지옥 간다면 천국 간 내 권리를 딸의 입장료로 바꿔치기할 정도로 엄마는 자식 사랑이 지극해요. 이건 혈육적인 관계입니다. 이건 인간의 힘으로 못 끊어내지요. 못 끊어내기 때문에 인간은 죄인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 있다, 없다는 마지막 판정받은 테스트가 뭐냐 하면, 양을 천 마리 드린 게 아니에요. 기도를 40일 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원한 게 아니에요. 네 자식을 바쳐라. 그것도 그냥 자식이 아니에요. 사랑하는 자식입니다. 미워서 나가 죽든지 말든지 나는 몰라, 이런 자식이 아니고 네가 있음에 내가 살 이유가 있다고 하는 그 자식을 그것도 아버지 손으로 바치라 해요. 아버지 손으로 자식을 바치라는 것이 뭔 뜻이냐 하면, 인간이 이 땅에서 만들어지기 이전에 성부와 성자가 계셨잖아요. 물론 성령도 계시지만. 창조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합류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죽어서 천국 간다고 하니까 그냥 막 들어가는 줄 알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심정도 모른 채 그 나라에 가도 심심해서 못 살아요. 당구장이 있습니까, 탁구장이 있습니까? 월드컵 예선전을 벌입니까? 거기 붉은 악마가 올 일이 없어요. 올림픽이 열립니까, 골프장이 있겠어요? 술집이 있어요, 노래방이 있습니까? 이 땅에서 재미나는 걸 기대했다간 자진해서 퇴학하고 싶을 거예요. 도저히 여기 있다가는 미칠 것 같아.

지옥에 다 있잖아요. 술친구, 노름친구, 바람 피웠던 여자도 거기 있고. 거기선 날 알아주거든요. 천국은 아무도 안 알아줘요. 예수님만 찬양 드리니까 자기는 홀대 받는 느낌 아닙니까. 주님만 쳐다보고 사는데 자기 쳐다보는 사람 없다니까요.

천국 가도 장가 한 번 더 가지. 그런 마지막 희망마저 주님께서 마태복음 22장에서 끝장내버려요. 천국에서 장가간다고? 천국엔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간다. 그 이야기 듣고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놀랬어요. 무슨 낙으로 사노? 장가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면 자식도 없을 것 아니냐? 사는 재미가 뭐냐?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것은 내 중심, 내 욕구 중심으로 통일적인 나의 세계관으로 천국을 만들려고 헛짓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서 자꾸 천국을 나로 인하여 즐거운 행복을 아마 그대로 보장해주는 나라가 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사람은 창세전의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을 몰라서 그래요. 우리가 태어나고 난 뒤에 엄마, 아빠, 형제가 있으니까 우리끼리 살게 되면 이게 천국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죠.

그것은 주님의 창세전의 의견과 전혀 달라요. 내가 여기 있음에 행복이잖아요. 지난 수요일에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첫째는 그냥 살아보자. 이유도 없어요. 살고 싶어요. 이유가 뭔데? 몰라요. 두 번째가 이왕 사는 것 잘 살아보자. 세 번째가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이 세 개 빼놓고 울산바닥에 사는 목적이 없잖아요. 교회 오는 목적이 전부 이것 때문에 그래요.

교회 왜 오느냐? 인생 만회하기 위해서. 뭔가 결핍된 걸 채워 보상 받기 위해서. 그건 본인만의 천국이에요. 육적인 천국이라니까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하늘나라 갈 수 없어요. 주께서 마련한 도시락은 영적 세계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던 사랑, 그 사랑을 알면 그 나라에 합류할 수 있고, 그 사랑 모르면 합류될 수 없어요.

그 사랑을 알려면 어떻게 하느냐? 이 세상에 어느 교회도 성부, 성자가 했던 사랑을 설치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하면, 기존에 나밖에 모르는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거예요. 이건 고물이고 말도 안 되는 줄 아시고 그 다음에 교회에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게 되면, 예수님의 사랑이 준비돼있어요. 그게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치라는 그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죽을 때 그것이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아낌없이 이 땅에 우리를 위해서 내보내신 사랑과 일치된 사랑이 돼요. 그게 바로 관계라는 겁니다. 관계는 우리가 어떻게 만들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이미 다 만들어놨어요.

제가 어릴 때 경산에 삼성동이 있어요. 외갓집인데 방학 때에 가게 되면 이모가 별명이 천심이라. 마음이 너무 착해요. 대구에 사는 조카들 오게 되면 온종일 놀다 저녁 쯤 되면 소나무 가지로 수제비를 만들어주면 그 냄새하며 그렇게 맛있어요. 우리가 수제비를 만든 게 아니에요. 이모다 다 만들어놨어요. 아직도 살아계십니다. 95세인가.

창세전에 아버지가 다 만들어놨어요. 창세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기로 이미 작정하셨고 아버지는 십자가 지도록 명령을 하셨고. 그 십자가 안에는 십계명이 다 들어있어요. 모든 율법, 모든 제사가 들어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일점일획이라도 어기는 사람은 지옥 불에 간다고 했거든요. 하나라도 어기지 않고 다 이루어야 돼요. 다 이루었다는 말은 이미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이야기가 다 끝난 상태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산상설교를 함으로 말미암아 바리새인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지요. 자기 딴에 최고로 앞장섰다고 나처럼 잘 지킨 사람이 있는지 보라고 으스대는 그 인간을 향하여 누구든지 바리새인보다 더 의가 낫지 아니하면 아무도 못 간다 하니까 이건 바리새인들이 큰일 날 판이에요. 어떤 분은 산상설교를 어떻게 지키느냐고 하는데 그건 지키라고 준 게 아니고 인간은 지킬 수 없다고 분명히 하기 위해서 전시한 거예요.

어떤 분이 그런 질문을 하느냐 하면, 구하라 구할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이걸 어떻게 지킵니까? 자기는 성의대로 금요철야하고 두드려봤다는 겁니다. 그래서 뭘 구했냐고 하니까 이것저것 구했다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한테 좋은 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이 원하는 좋은 것은 예수님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몰라요.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나오지요. 좋은 것은 성령이 좋은 것이에요. 누가 고기를 달라는데 뱀을 주겠는가,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는가? 이 말은, 너희들이 기껏 구하는 것은 전갈이고, 뱀이고, 돌덩어리 달라고 한 거예요. 천국에 어울리지 않고 부합되지 않는 것, 그냥 이 땅에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잘 살고 행복한 것, 그런 것들만 실컷 구하고 두드리고 했지요. 이건 지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8장에 들어가면 문둥병자를 그냥 용서해버려요. 앞에서 산상설교에서 이야기한 것은 모든 인간은 문둥병자고 저주받은 자고 하나님의 진 밖에서 거룩한 백성 밖에서 문둥병자는 무조건 쫓아내야 돼요.

성경 하나 찾아봅시다. 출애굽기 4장 6절을 누가 읽어보세요.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흰지라”

모세가 손을 자기 품에 넣었습니다. 품에 넣기 전에 멀쩡하지요. 멀쩡한 손을 분명히 확인하고 난 뒤에 어디에 넣느냐? 물속에, 시냇가 속에, 대수대야 속에? 아니에요. 멀쩡한 자기 품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빼보니까 문둥병이에요. 문둥병은 저주받은 자의 표상입니다. 거룩한 진 밖으로 내놔야 될 인간이죠. 옛날에 문둥병은 주님의 저주받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병이에요.

모세가 자기 주제파악을 해야 됩니다. 남들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위에서 보면 문둥병 환자, 저주받은 자에요. 모세가 이스라엘 대표해서 그런 거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문둥병 환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주받는 이유를 몰라요. 그래서 일 년 뒤에 저주받아야 될 이유에 대해서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통해서 이래도 저주받을 자 아니야, 라고 엑스레이 찍듯이 CT촬영하듯이 단체로 촬영했어요.

모세 누나가 모세가 하나님의 종이 되는데 큰 공로자에요. 모세에겐 남자 형이 있어요. 누가 있었는데 누나가 미리암이에요. 엄마가 모세 못 키운다고 갖다 버릴 때 끝까지 따라가서 갈대를 엮어서 역청을 발라서 나일 강에 띄었지요. 그때는 이름도 없었어요. 그때 애굽의 공주 아니었으면 그냥 죽었어요. 그때 누나가 가서 유모를 소개했지요. 그래서 친엄마가 유모로 해서 모세를 키우잖아요. 막장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어요. mbc 아침드라마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요.

그 정도 공로라면 보상해야 될 텐데 모세가 흑인 여자와 결혼한다고 하니까 니 취향이 그것밖에 안 되냐? 그 한 마디 했다고. 그동안 누나가 그만큼 키워줬는데. 그리고 홍해 건널 때 여자 성가대 대장했어요. 그 정도로 했는데 저주받았어요. 문둥병자 됐어요.

그건 출애굽기는 가족의 틀을 벗어날래, 안 할래? 그걸 묻는 겁니다. 가족이란 육의 절정이에요. 아무리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자기 자식 아프면 하나님 앞에 삿대질 할 인간이 우리들입니다. 이 정도 성의 보였으면 됐지 더 이상 어쩌란 말입니까? 이 정도 하나님 섬기고 봉사하면 됐지, 더는 못합니다. 더 이상 어떻게 헌신하란 말입니까? 치려면 저를 치지 아무 죄 없는 갓난아이를 왜 치십니까?

제가 이런 이야기하니까 혹시 성경 보신 분들은 이런 장면이 기억납니까? 다윗과 밧세바와 관계해서 태어난 아기가 있지요. 이름도 없어요. 태어나자마자 시름시름 앓습니다. 다윗이 통곡하면서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잘못은 저한테 있는데 하나님은 저 얘를 죽입니까?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요? 응답은커녕 그 얘는 죽었어요. 그때 비로소 다윗은 응답을 받았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나를 치지 않고 내 대신 자식을 쳤구나. 이것이 시편 51편에 나오지요. 내 죄를 사하기 위해서 우슬초로 정결케 하시고,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셨지요. 내 몸에 난 가장 귀한 자식을 죽음으로써, 본인이 죽인 거예요, 내가 살았다. 그 증거로 주신 것이 밧세바가 낳은 자식을 여디디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뜻의 솔로몬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다윗에서 정실부인은 자기 죄를 품고 있는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를 안으로 내밂으로써 내가 의인된 것은 주님의 약속이지 내가 아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나의 구원은 없었습니다. 오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지점에 와있습니다. 성경 어딜 봐도 처음부터 나 자신의 구원은 없습니다. 약속 사람의 구원, 이것만 성경에 있습니다. 창세전에 주께서 예정된 사람만 구원이지 혈육으로 얽힌 나의 구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구원은 포기하시고 우리 안에서 살아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써의 나를 주께서는 구원하시는 겁니다.

나의 구원이라면 내 열심과 행함과 십일조, 선교하기, 봉사하기, 교회 충성하기, 청소하기, 이런 게 내가 만든 도시락이지만 예정된 사람의 구원은 오직 십자가 피만 있으면 돼요. 십자가 피+행함은 일체 없습니다. 피에 행함을 보탠다면 그건 피에 대한 모독이에요. 그건 은연중에 나의 구원을 못 버렸다는 성령이 안 왔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 옛사람은 뱀의 허물처럼 미련두지 말고 벌거벗어야 돼요. 우리 힘으로 우리 자신을 못 벗깁니다. 그런데 고마우신 우리 주님께서 매일같이 우리를 죽여주십니다. 죽을 때까지. 랍스타 뜯으면서 죽여주시고, 뷔페 먹으면서 죽여주시고, 지중해 크루즈 여행하면 죽여주시고, 경치 좋다고 죽여주시고, 울산 앞바다에서 낚시하면서 죽여주시고, 부동산 열 배 뛰게 하면서 죽여주시고, 아이 공부 대상 받게 하시면서 죽여주시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죽어가는 방향으로 바꿔치기, 껍데기를 벗기는 방향으로 죽여주시고. 어떤 분은 치매 걸려서 죽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멀쩡하게 까불다가 그 날 밤에 죽는 수도 있고. 죽는 방법은 주님이 알아서 죽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 할래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 어차피 껍데기는 주께서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골라잡아서 죽을 때 이렇게 죽을래, 그렇게 하지 마세요. 자식들 애먹이고 죽든지, 유산 10억 있는데 자식들 자기들 것이라고 좋다고 까불다가 다 쓰고 죽던지 그건 주님 마음대로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내가 가야 될 고향으로 가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성령 받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특징입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떤 죄를 짓고 과속하다 걸리시거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죽이는구나. 천국은 돈 사랑하지 말라고. 과속하다 걸린 게 돈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걸린다는 게 돈 문제거든요. 살아야 된다. 그 다음에 잘 살아야 된다. 두 번째 항목에 걸려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죽이시는 것은 뭐냐 하면, 이 땅에서 우리가 자신의 허물, 껍데기가 어떤 죄로 층층이 죄들이 더덕더덕 붙어있기에 다른 것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십자가 피로만 구원되는지를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확인하시면 되는 겁니다. 다른 것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어떤 분이 십일조 문제로 질문하기에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십일조는 십 퍼센트를 내는 게 십일조가 아니고 나중에 레위기 할 때 하겠습니다만 민수기, 신명기에도 나와요. 그 약속의 땅에서 생산된 것은 그 몸까지 주님의 것이에요. 몽땅 다 드리고 90%를 되돌려 받는 거예요. 10% 차이나서 십일조라 하는 거예요.

다시 진도 나가봅시다. 여기 동물에서부터 사람으로 가는데 사람 취급 못 받는 것이 마중 나오지요. 동물과 문둥병자와 먼저 만나요. 문둥병자는 다른 말로 저주를 뒤집어쓴 사람인 거예요. 그런데 나쁜 짓해서 저주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저주를 위해서 저주받는 사람이에요. 이 말이 어려운데요. 문둥병은 약이 없습니다. 제사장은 폼으로 있느냐?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준 저주가 언제 그 저주가 축복으로 풀리는지 목격자 역할 하라고 제사장이 있는 겁니다. 제사장이 안수해서 병 낫는 게 아니에요. 문둥병은 사람이 개입해서 나을 병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이 개입했어요.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 만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지요. 레위기, 민수기 말이 맞습니다. 불쌍히 여겨줄 때 하나님 주신 저주가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그 저주가 풀리면서, 다른 말로 불쌍히 여김 받을 때 문둥병이 언제 없어졌지? 없어질 때 진 밖에 나갔던 사람이 진 안으로 들어오게 돼있어요. 그때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고 새를 잡는 거예요. 하나는 죽어야 되고 하나는 공중으로 날려 보내고.

그걸 마태복음 8장에서 문둥병 낫게 하면서 예수님께서 그 제안을 한 거예요. 내가 공짜로 용서해줄 테니까 네가 누구 덕분인지 알라고 제시한 겁니다. 저주와 동물의 희생이 만날 때 이 장치가 뭐냐? 바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 안에서 이게 다뤄지지요. 그럼 제사장이 무슨 재주가 있어서 이 사람을 바꾸느냐, 그건 10분 뒤에.
 한윤범(IP:14.♡.134.67) 16-09-06 10:08 
20160902b 울산강의-레위기 1장 : 내재하는 외부
(강의:이근호 목사)


첫째 시간을 요약하게 되면, 모세도 사람이고 사람들끼리 있으면 네가 누군지, 하나님이 누군지를 상상하게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이끄시는데 어디로 이끄시는가? 너는 거룩하지 않다. 거룩은 네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이다. 그런 환경이 조성된 곳에 가게 되면, 마치 새가 새장 안에 들어가 있으면 갇혀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이란 환경 속에 갇힐 때 환경의 효과와 환경의 능력을 받아서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겁니다.

출애굽기 19장에 시내 산 밑에서 너희는 거룩한 내 백성이라 할 때 개개인 면접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에요. 일괄적으로 이 환경 보이지, 너를 거룩하게 만들고야 말리라. 개인적인 성과, 업적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룩이 필요한 모든 장치와 시스템은 다 시내 산 위에서 내려와요. 십계명 할 때 밑에서 똑똑한 사람, 박사가 올라가서 한 소리 거들고 이런 것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가 회의해서 건전한 결론을 도출해내겠습니다. 그런 것 없어요. 일방적으로 이게 거룩이라고 그냥 주시는 거예요.

일방적인 거룩과 인간들이 생각해서 의논해서 협의해서 만들어낸 것과 충돌 지점이 있어야 될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경계선이거든요. 경계선이 충돌이에요. 충돌은 언약의 깨어짐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서 기분 더러워서 돌 판을 깨버렸잖아요. 그 깨어진 돌 판은 버리지 않습니다. 그걸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깨었다는 사건을 상자 안에 담습니다. 그게 언약궤라는 거예요.

너와 나의 만남은 죽이 안 맞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을 봐라. 너와 나 사이에 모든 충돌과 갈등을 해소시키는 시스템을 봐라. 그 시스템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일로 인하여 거룩 될 수 없는 너희를 계속 거룩한 백성으로 간주해서 끌고 가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작업이 되는 겁니다.

레위기는 그 내용에 대해서 소개한 거예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인이 거룩한 분과 어떻게 동행이 되겠습니까? 말이 안 되죠. 서울에 아파트에 사는 새댁이 지들끼리 옷 벗고 편하게 살다가 갑자기 시골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시어머니 등장했을 때 비상 걸리죠. 반바지 못 입거든요. 정숙한 새댁처럼 어머니, 오셨습니까, 인사하지만 속으론 언제 가실지 하죠. 어떻게 시어머니와 새댁이 동행을 하겠어요. 그 문화적 세대 차이도 그렇게 심한데 인간이 쫓겨났던 천국과 쫓겨난 주제에 죄 지어서 죽어가는 인간들이 모여서 어떻게 동행이 가능해요. 불가능하죠. 그 불가능함을 계속해서 부각시키는 거예요. 불가능한데 가능하다는 거예요.

불가능한 가능이 거룩이고 불가능은 더러움이랄지, 성경에선 오염이라고 돼있는데, 불결한 것. 여자가 아기를 낳을 때 불결하다. 딸 낳으면 66일, 아들 낳으면 33일이 지나야 원상회복이 된다고 할 정도로 인간의 몸에서 일어난 것은 다 불결해요. 그렇다면 불결한 몸 말고 주께서 원하는 인격체, 몸이 중간부분에 들어가야 되죠. 그것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다른 사람과 차이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동행해도 안 죽는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안 죽을 만한 장치를 몸에 많이도 걸쳐놨어요. 그냥 세상사는 대로 살면 죽습니다. 죽어야 되는데 특수한 복장으로 바꿔 입었더니만 하나님과 동행해도 출근했다가 안 죽고 퇴근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복장에 무슨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아브라함 자손들은 그리스도를 옷 입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 옷을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레위기에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옷만 걸쳤더니만 의인으로 간주해주더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그 가능한 내용이 레위기에 나오는 겁니다. 지금도 레위기 1장에 들어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출애굽기에 대해서 정립돼야 레위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시내 산에서 15개월 동안 머물 때 준 게 레위기입니다. 머물고 난 뒤에 민수기에서 숫자 헤아리고 군대가 되어서 그곳을 떠나지요. 떠나면서 낯선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민족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약속이 없을 뿐이지 무기는 발달했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무기는 없는데 약속은 있어요. 쉽게 말해서 거룩한 하나님은 동행하는데 스스로 내 힘으로 무찌를 수 있는 무기는 없고, 저쪽은 스스로 자기를 사수하고 공격할 만한 무기는 있고. 둘이 붙는 겁니다. 저쪽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이상한 민족이에요. 제대로 무기도 없으면서 큰소리는 되게 쳐요.

누가 이기느냐? 이스라엘이 이겨요. 그게 시편에 나옵니다. 너희들은 활과 창과 인간의 병기를 자랑하나 우리는 오직 주의 이름만 자랑한다. 이 싸움이 뭐냐 하면 누가 힘이 세냐가 아니라 누가 거룩하냐의 싸움입니다. 누가 죄가 남아 있느냐, 죄가 없어졌느냐, 그 싸움이에요. 죄 없는 쪽이 죄 있는 쪽을 이깁니다. 구약에서. 신약에선 죄 없는 죄 용서 받은 쪽만 천국에 가고 나머진 도살 처분되죠. 지옥 됩니다.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서 구약에서는 편평한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신약에선 수직으로 세워서 주님은 위에 있고 이쪽은 아래쪽에 있고.

그러면 제사장 이야기만 하면 레위기는 다 끝난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사장이 관여합니다. 처음에 제사장이 벌이는 제사법이 나오거든요. 끝에는 제사장 잘 섬겨라. 십일조 이야기로 끝나요. 레위기가. 제사장이 뭐기에 제사장 이야기하면 죄가 의로 바뀌는 그 시스템, 장치가 완료되느냐? 제사장은 맏아들이기 때문에 그래요. 십일조를 맏물이라 하죠. 아브라함에 아들이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거든요. 우리 눈에는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났지만 정작 맏이는 이삭이 맏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맏이. 야곱에 에서가 있지만 이삭이 보기에는 에서가 먼저 나왔으니까 에서가 형이고 야곱이 둘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야곱이 맏이고 에서가 둘째가 되는 겁니다.

둘째라도 첫째 다음이니까 괜찮겠지, 하는데 그건 맏이의 의미를 몰라서 그래요. 맏이는 몽땅 다 가져갑니다. 도 아니면 모지요. 남겨두는 것 없습니다. 그럼 둘째, 셋째 아들은 뭐냐? 첫째 아들의 노예가 돼야 돼요. 왜 그러냐 하면, 모든 축복은 맏이에서 맏이로 이어집니다. 둘째, 셋째는 맏이 집에 머슴으로 평생 살아야 돼요. 노동력만 제공하는 머슴이 아니고 만약에 형이 아들이 없을 때는 둘째, 셋째 아들은 장가 못갑니다. 대기상태에 있어야 돼요. 형수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된다. 둘째가 못한다면 셋째가 형수와 결혼해야 되고. 형수가 70이고 시동생이 20이라도 할 수 없어요. 맏이가 다 가져갑니다. 맏이가 없이는 구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게 이스라엘 나라 자체가 만들 때부터 그랬어요. 죽음의 천사가 왔을 때 유월절 양이 둘째, 셋째 살리려고 죽는 양이 아닙니다. 맏이가 있어야 맏이가 대를 잇는 위잖아요. 위가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만한 맏이로 바뀌어야 그 집 족보가 대대로 심판을 면제받는 집안이 되는 겁니다. 땡 잡은 거죠, 뭐. 만약에 전주 이씨 이성계가 영적 사람이라면 전주 이씨 모든 사람, 덕혜옹주까지 구원받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좋은 제도가 어디 있어요.

괜찮은 맏이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와 아는 사이라면 그것은 태어나서 천국 가는 게 아니고 천국 가야 될 인물로 지상에 미리 태어난 게 돼요. 창세전부터 예정된 채 태어나야 된단 말이죠. 그 족보의 특징은 뭐냐? 레위 언약이라는 족보의 특징이죠. 우리는 제사장을 믿습니다. 그 가문을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그 문제입니다.

대구 근처 구미에 가면 유명한 고택이 있어요. 전에 <인간극장>에도 나왔는데 안동에도 고택이 많잖아요. 일 년에 한두 차례 도산서원이나 이런 데서 제사 드릴 때 온 집안 다 모이죠. 제사 왜 드립니까? 서열 매기고 하잖아요. 며느리는 반찬도 잘해야 되겠지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양반 집안이라는 겁니다.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거죠. 그 집안에서 하는 것은 주로 조상한테 제사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가족중심이고 족보중심이라는 걸 아시기 때문에 그 중심에 새로운 낯선 족보를 집어넣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육의 족보는 다 저주받지만 하나님의 진짜 영생 얻는 족보는 지상에서 확인해야 돼요. 죽음의 천사가 와서 산 족보냐, 아니냐? 그게 확인돼야 돼요. 확인되고 살아남는다면 그거는 죽어서도 천국 가고 이 지상에서 확인되지 않고 죽는다면 그건 죽어봐야 지옥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확인돼야 돼요.

오늘 강의 제목이 좀 어려워요. [내재하는 외부] 상당히 어렵지요. 안쪽에 존재하는 바깥.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보통 사람은 인간끼리 살다가 교회 다니다가 죽으면 천국 가겠지, 천국은 바깥에 있어요. 죽어서나 가는 바깥세상이 되죠. 성경에 천국은 죽어서 가는 바깥세상이 아니고 우리 삶 속에 개인 속에 우리 마음속에 이미 외부에 있는 천국이 내재하는 방식을 사용하시는 겁니다. 죽어서 천국 가서는 안 돼요. 그러면 천국 못 갑니다. 이미 살아있을 때 하늘나라 가줘야 돼요.

그 이야기가 로마서 14장 17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나라는, 천국은 성령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천국 안에 있다고 돼있어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마태복음 23장에 의와 신과 인, 다 같은 말이에요. 하나님이 만족한 거룩 상태를 의, 신, 인이라 하는 겁니다.

십일조 이야기할 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신 거예요.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면 이것은 먹고 마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행함과 관계없지요. 그리고 안이비설신, 인간이 보고 듣고 하는 것과 관계없지요. 하늘나라 저기 있다, 여기 있다, 멋있어 보인다. 이것과 관계없는 거예요.

천국이 어디 있느냐? 지중해 해변이 천국입니까? 가보면 돈만 비싸지. 뭐가 천국이에요, 도대체? 야구장에서 통닭 뜯고 맥주 마시면 천국입니까? 천국이란, 참 이런 비밀은 아무나 가르쳐주는 게 아닌데. 자기 자신을 외부인에게 몽땅 내주는 게 천국이에요. 내 인생을 내가 관리하면 천국이 아니고 스트레스 받아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렇게 되면 천국이 아니고 지옥입니다. 그러니까 펜션 지어놓고 여름 휴가철에 누가 오잖아요. 그러면 천사들 온 것처럼 자기는 냄새나는 이불 덮으면서 깔끔하게 다리미질해서 하루 15만원 벌려고 깨끗하게 해드리잖아요. 손님을 대접하듯이 자기 자신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자기가 관리하지 않고 예수님한테 내어주는 게 천국입니다.

성령은 외부에서 오신 건데 내재하기 위해서 왔다면, 우리가 몸이 추접스럽더라도 그냥 내어드리세요. 다리미질 안 해도 침대 삐걱거리더라도 무조건 주님이 들어오게 되면 천국이에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책임질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주님이 이미 접수하고, 점령했기 때문에 주님의 인생이지 내 인생 아니거든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내 안에 좀비 사는 거예요. 그야말로 내 안에 괴물 사는 것처럼 주님이 사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내 마음에 안 드는데 내 안의 주님은 마음에 든다는 데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아요. 제 인생 어떻습니까? 괜찮네. 이러면 괜찮은 거죠. 거지 나사로 그랬잖아요. 죽을 때까지 거지고, 죽을 때까지 아프고. 부자가 와서 놀리고 개가 와서 함부로 하는 그 정도 인생인데 천국에선 천사를 대기시켰어요. 왜냐하면 VIP기 때문에. 무슨 VIP가 거지고, VIP가 온 몸에 악취가 나고 몸이 아프고 그래요. 그래도 VIP에요.

그렇게 허름하면 허름할수록 극히 미미한 존재라도 주께서 내주했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 대해서 불평불만 할 자격이 안 돼요. 내 인생에 대해서 내가 시비 걸지 마세요. 자기 성정이나 성질에 대해서 자기가 자책하거나 자기가 자기를 때리지 마세요.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가끔 스팀으로 피부 관리나 하고 마사지나 하주시고 때리지 마세요. 아무리 못 나도 주께는 귀한 존재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먹이고 입히시고 키우십니다. 잘 먹고 잘 살란 말이 아니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못난이를 그렇게 하신 거예요.

열두 제자 가운데 목회 성공한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노아가 8명 전도했어요. 전도한 거예요? 같은 식구지 전도라고 할 수 있어요. 택한 백성은 주님이 알아서 건지기 때문에 내가 내 구원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시고, 교회에 대해서 걱정해도 주님이 걱정하지 교인들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교인은 해체할 수 있습니다. 해체할 때 비로소 교회인 걸 드러내죠. 그 해체의 과정이 민수기거든요.

제사장은 뭐냐? 맏아들이다. 맏아들의 특징이 남들은 다 땅이 있는데 제사장, 레위지파는 땅이 없어요. 드론 같아. 공중에 붕 떴어요. 착지할 때가 없어요. 착지하게 되면 사건 일으키기 때문에. 그래서 레위지파 제사장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너는 하나님 나로 인하여 산다. 제사장이 먹은 음식을 음식이라 하지 않고 응식이라 합니다. 응식을 구분할 때 거제와 요제를 통해서 구분해요. 나중에 레위기 보면 나오는데 흔드는 이런 제사는 나중에 제사장의 식량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십일조가 있고. 그건 백성들이 바치거든요. 양 같은 것, 넓적다리.

그러면 제사장들은 어느 정도로 아슬아슬한 인생이냐 하면, 만약에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겨서 여호와한테 십일조 안 하고 여호와에게 양식과 고기를 안 갖다 준다면 그들은 그 즉시로 하나님의 존재감과 더불어 다 죽어야 될 사람들이에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에요. 백성들이 믿음이 없어져서 이제 하나님에게 소홀하다? 그럼 같이 자기 형편도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다 백성들이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하나님에게 정성이 지극하다? 그러면 그 덕분에 제사장이 사는 거예요.

그래서 땅이 없는 거예요. 백성들의 믿음 여부에 따라서 양식이 제공되거나 끊이거나 하는 아슬아슬한 위기 속의 사람들이죠. 그게 바로 오늘날 성도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나오죠.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구약에서는 이 땅에서 살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면 잘 먹고 잘 살고 못 살면 거지된다. 거지 나사로는 신약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신약에 자기가 성도인데 자기 빼놓고 주변이 전부 다 믿음이 하나도 없고 예수도 안 믿고 복음도 거부하고 전부 다 세상 따라 갔다. 그러면 우리는 굶어죽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지요.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은 구약 때고 신약 때에는 세상이 믿음이 없고 혼자서 신앙 생활한다면 굶어죽지는 않아요. 그럼 뭐하냐? 외롭지요. 소통할 사람이 없으니 외롭지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제발 목돈 같은 것 교회에 내지 말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주신 건데 왜 도로 드립니까? 지가 하나님보다 정성이 더 지극한 겁니까? 하나님이 정성 드려 줬는데 경우 밝아도 너무 경우 밝아. 마음대로 먹고 마시라고 주신 건데. 뭐든지 감사히 쓰시면 그게 하나님 영광이 되는 거예요. 주여, 랍스타 뜯으라고 또 주시는군요. 뜯으면 되는 거지 그걸 안 한고 목사님 드려야지. 그런 짓은 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해서 더 돋보이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믿음 있는 건지 아니면 자기 의 주장하는 건지 다시 봐야겠다. 너, 수상하다.

사람이 뭘 행하게 되면 반드시 보상을 기대하기 돼있어요. 이미 우리는 다 받았어요. 더 행한다고 보상을 더 받는 건 없어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게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도시락입니다. 받은 대로 그냥 사시고, 돈 좋아하면 돈 좋아하는 것으로 사세요. 그것도 받은 거예요. 돈 안 좋아한다고 기부하는데 그 기부한 것, 오른손이 한 것 왼손이 다 챙기고 있어요. 내 두뇌에 새겨있다고. 절대로 모를 수가 없어요. 도끼로 반 잘라낸다고 잊어버릴 줄 압니까?

인간은 절대로 행한 대로 보상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 마음씨가 더 못됐어. 그게 감사를 날려버립니다. 행해놓고 뭔가 30배, 60배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자체가 음흉하게 꼼수 쓰고 있는 거예요. 주면 주는 대로 그냥 쳐 잡수시면 되는 거예요. 이건 하나님 것, 이건 교회 낼 것, 이런 것 없어요. 모든 게 하나님 것이에요. 형광등 깜빡 거리면 자기 돈 내서 갈면 되고. 아이고, 집사님 훌륭하십니다. 훌륭할 것 뭐 있어요. 주의 돈 쓰는데 뭐가 문제겠어요.

이 말은 신약시대에는 재산 많다고 저주받은 자가 아니고 가난하다고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이 말이에요. 제 말은. 형편 잘 풀린다고 뭔가 이상하고 형편 안 풀린다고 복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문제는 외롭다는 것. 다른 차원, 위상학적으로 이미 차원이 달라요. 위에서 사는 사람이 지상에 돈 많고 적고 상관없어요.

이게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의한 청지가 소위 깨끗하다는 바리새인보다 훨씬 지혜로워요. 불의한 청지기가 퇴직 전에 밥 먹고 살려고 자기 미래를 대비했던 나쁜 사람이잖아요. 남의 재산 횡령한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그 예를 든 것은 신약에서는 내재돼있는 외부세계, 지금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 관심을 갖는 자가 그 사람이 복음적이란 말입니다. 거지 나사로가 그 예고, 불의한 청지기가 그 예고,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처럼 지나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 착하게 살 생각하지 마세요.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은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닙니다. 빛과 소금이란 반드시 제사장을 거쳐서 나와야 돼요. 유일한 제사장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빛과 소금이란 예수님처럼 사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빛으로 산다는 것은 위험한 짓이에요. 세상을 일괄적으로 어둠으로 처리해버리거든요.

청와대 초대 받고 너, 어디 갔다 왔노? 어둠에 갔다 왔다. 어디? 청와대. 너, 미쳤나? 그래, 미쳤다. 이런 사고방식. 대통령이 와서 나는 너를 풀어줄 권세도 있고 붙잡을 권세도 있는데 너, 내 말 들으라. 그럴 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당신 마음대로 안 되는 거요, 라고 할 때 그게 또라이 같잖아요. 그게 그 순간 빛이 되는 거예요. 뇌물 받는 것, 또는 회사에서 불의한 공사에 개입할 때 빛으로 산다는 것은 이게 어둠이라고 깨닫고 살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회사 취직해서 팀원이 뇌물 받고 백만 원씩 갈라먹는데 나는 예수 믿는다고 안 받고 그런 쓸데없는 짓하지 마시고 이게 어둠이구나, 하고 얼른 챙겨서 랍스타 뜯고 놀러가고. 그걸 거절하게 되면 주께서 분명히 30배, 60배, 100배라고 했으니까 계산한다고. 삼천만 원 복 주겠지. 안 줍니다. 쫓겨나요. 세상이란 것이 우리의 행동으로 바뀔 환경이 아니에요.

아까 출애굽기에서 거룩한 환경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지요.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룩한 제사장이 있음으로 우리는 자동적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겁니다. 조건이 있어요. 제사장이란 의미를 인정해줘야 돼요.

제사장은 뭐냐? 제목처럼 내재하는 외부지요. 이것은 상징인데 신약에 오게 되면 외부에 계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셨잖아요. 내재하는 외부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같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지정해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제사장이 함께 있기 때문에 어떤 이방인들이 달려들어도 저들은 거룩이 없고 우리는 거룩이 있으니까 우리는 승리한다고 생각했겠어요? 생각 안 합니다.

말씀이란 우리 힘으로 말씀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신명기, 출애굽기, 레위기를 준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만 주면 사람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간호사 될 때 이론 배우고 졸업할 때 실습하잖아요. 실습한다는 것은 실패를 반복해본다는 거예요. 미리 실패를 해본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말씀의 기준은 정해져 있고 제사장만 있으면 승리한다, 라는 것을 실습해보니까 어떻습니까? 이게 실습이 안 되는 거예요.

저들은 장대하고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아서 게임하나마나 우리는 패배합니다. 울고불고 난리 났어요. 통곡했지요. 나중에 민수기, 신명기에 보면 그들의 주특기가 우는 거예요. 운다고 해서 좋아 봐주는 게 아닙니다. 운다는 게 그만큼 믿음이 없는 거예요. 제사장 있는데 왜 웁니까? 하나님이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뭐예요? 세상에 결혼식에 신랑 있으면 됐지 왜 우느냐 말이죠.

결혼식에서 울 때는 언제냐 하면, 신랑이 총각 때 사귄 여자와 손잡고 도망칠 때, 마치 <졸업>이란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이 여자를 사랑하겠느뇨? 아니요, 하고 도망칠 때 그때는 결혼식이 개 판 되는 거예요. 결혼식에 울 때는 신랑이 없을 때 울란 말이죠.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지금 신랑이 내재하는 외부, 외부인이 내재하는 데 왜 우느냐 말이죠. 이미 접수했는데. 이미 엉망진창인 우리를 접수했잖아요. 고물인 줄 알고 접수해요.

어떤 사람 보면 전문가가 왔는데 드라이버 들고 고친다고 빼내서 주여, 하루 석장을 읽는 걸 다섯 장으로 늘이겠습니다. 기도 시간 30분인데 한 시간으로 늘이겠습니다. 앞으로 꼬박꼬박 성경 쓰기를 하겠습니다. 성경을 왜 씁니까? 인쇄돼있는 걸. 요새 스마트폰에도 성경 다 있는데 그걸 왜 써요? 글 쓰는 것은 치매 걸린 할머니가 치매 좀 덜 하라고 글 쓰는 연습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죄 지면 돼요. 그냥 하루하루 죄 지면 돼요. 하루하루 돈만 사랑하고 하루하루 자기만 사랑하고 그렇게 살게 되면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살다가 지옥 가고, 나는 목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 시키는 대로 해보란 말이죠. 성령 있는 사람은 그 가운데서 이런 죄도 용서가 되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돼요. 이래 사나 막 살면 돼요. 막 산다고 구원받는 것 아니거든요. 막 살아보면 자기가 누군지, 누가 동행하는지를 그때그때 양상이 드러나요.

그것이 레위기에 대한 모든 말씀은 중간에 예수님이 알아서 동행해주는 겁니다. 내가 온 것은 죄인을 부르러 왔잖아요. 파트너가 죄인이에요. 너는 죄인이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 의를 세우지 마라. 내가 있잖아요. 예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없고 성령이 없는 사람은 남한테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본인이 수치를 안 당할 짓거리만 자꾸 연구해요. 이케요, 저케요? 하면서 자꾸 자기가 경건을 쌓아서 이 정도하면 기 안 죽겠지, 이 정도하면 헌금했다고 큰소리치겠지.

자꾸 그렇게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그걸 놀이, 자기 종교에요. 자기를 숭배하는 놀이, 우상이에요. 맨날 옆에 있는 집사 때문에 삐지고. 방석 가지고 교회에서 싸우고. 저 인간 오지나 말지. 주께서 오게 하셨어요. 자기가 알아서 온 게 아닙니다. 가게 하는 것도 주께서 가게 하셔서 가는 거예요. 그리고 가든 오든 간에 우리는 성령 안에 있으면 되지 교회 안 갔다고 해서 예배 안 드린 게 아닙니다. 성령 안에 있으면 그 자체가 주께서 받으신 사람인데 교회 갔다고 해서 또 그걸

옛날에 제가 초창기에 대덕교회 있을 때 저한테 그런 질문해요.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서 정치적 협상했다는 거예요. 남편이 등산을 좋아하니까 한 달 두 번은 등산 가주고 그 대신 두 번은 교회 오기로 합의를 봤다는 겁니다. 결국 그것은 제가 보기에 자기가 법을 만들었어요. 홀로 서기 위해서. 이 정도 하면 하나님께서 나쁘다고 하지 않겠지, 경건하다고 하겠지. 그게 뭐냐 하면 자기가 남편과 협상한 게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자기와 협상해서 교회에 앉아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죄인으로 온 게 아니고 잘난 사람으로 앉아있는 거예요. 잘난 사람으로 앉아있으니까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 그건 안 들리고 이것 하시면 복 받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리고. 좀 더 착해지게 되면 복 더 받겠지, 라고 하게 되니까 그건 바로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할뿐더러 들어가 봐야 천국이 짜증나서 자퇴할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지금부터라도 복음 전하는 교회를 자퇴할 사람이에요.

이것 하라, 저것 하라, 하지 않고 왜 예수님은 이렇습니다, 그 이야기만 하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예수 믿었으니까 이제부터 이것 하세요. 뭔가 뒤에 것을 듣고 싶은데 그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예수님은 이런 분이니까 알아서 기세요.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어디라도 예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라 했으면 좋겠어요? 참. 신앙인이 아니고 자꾸 자기가 얼마나 잘났는지 자랑질 하려고 일부러 교회 온 사람 같아. 이 정도로 자긴 자기 관리 잘하고 있다고. 그것은 백 프로 마귀의 표적입니다. 악마가 노리고 있어요.

제사장은 백성들과 단절돼요. 제사장은 분명히 같은 형제고 같은 사람이지만 결별됩니다. 그게 민수기 3장 12절에 보면,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난 자를 대신하라 했으니까 그때는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아서 문설주와 문지방에 피를 바르면 처음 난 자가 산다 했지요. 그리고 둘째, 셋째는 필요 없다 했지요. 처음 난 자가 그 가정을 대표하기 때문에 처음 난 자가, 목 위가 구원받았으면 나머지 지체는 구원받는 거예요.

로마서 8장에 예수님을 맏아들이라 했지요. 맏아들이 구름 위에 가 있으면 밑에 있는 발바닥은 지면에 있지만 속성은 구름 위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거예요. 성령 안에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키가 크지만 키가 많이 커야 되지요. 지상까지 하늘까지 닿으려면. 어쨌든 원리는 그 원리에요.

그래서 어린양 대신 레위인을 집어넣은 거예요. 레위인아, 너는 항상 죽음과 가까이 해라. 어떤 죽음? 최종 죽음. 그냥 숨 끊어지는 것은 죽는 게 아니에요.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다음에 심판이 있으리라. 히브리서 9장에 나오는 말씀 아닙니까. 심판에 이르러야 죽음을 맞보는 건데 사람은 살아서는 맨날 숨 끊어지는 것만 걱정하지 심판은 걱정 안 하잖아요.

그래서 미리 앞당겨서 이스라엘한테 심판을 현실화시켜요. 아예 미래에 있는 심판을 내부에 집어넣는데 그 장소가 제단이에요. 제단에서 날마다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그러면 구역별로 족보별로 돼있는 지파가 보는 거예요. 아침에도 피어오르고 저녁에도 피어오르고 월삭이라 피어오르고 안식일마다 피어오르고, 7월 1일 나팔절이라 피어오르고, 7월 10일은 속죄일이라 피어오르고, 맥추절, 유월절이라고 피어오르고.

지금 농사짓는 게 급한 게 아니에요. 제사장이 제사를 원활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거룩한 사람이 돼요. 이 땅에서 죄를 짓더라도 우리는 거룩하지만 해결책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내재하는 외부, 제목이 어렵다 싶으면 바꿀 수가 있어요. 화장터. 화장터의 특징이 연기가 피어올라요. 오늘도 누가 갔구나.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구나. 피어오릅니다. 이스라엘은 화장터인데 무슨 화장터냐 하면, 내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내 대신 죽어야 될 제물이 연기가 되어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장소와 백성들과는 단절돼있어요. 단절됐다는 말은 죄 처리 문제에 대해서 네가 관여하지 마라. 착하게 산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저 안에 있는

그 약속을 모세언약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맺은 약속에 의하면, 십계명을 통해서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율법으로 죄인으로 만들고 아무도 지킬 수 없어요. 십계명 제일 마지막 계명이 탐내지 말라 했지요. 이건 죽기 전에는 다 지킨 거예요. 탐이란 뭐든지 등장하게 되면 탐심으로 오게 돼있어요. 로마서 7장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십계명을 못 지킵니다.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범죄 할 때는 고소하고 고발할 마음이 있지만 내가 사랑한 사람이 뭔가 죄를 지으면 우리는 고소하기는커녕 감추기에 급급해요. 왜 내 자식이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식을 바치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주의 말씀, 율법을 지킬 수가 없어요. 그쪽은 끊어진 장소의 특수 집단, 제사장 집단이 있어서 우리 행함으로 지킬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서 계약된 대로 처리해주는 겁니다.

이제 레위기 1장 봅시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여기에 장소가 회막이죠. 회막은 하나님이 모세와 만나는 곳, 또는 인간의 맏아들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 회막이 신약에서는 십자가가 되겠지요. 십자가에서 주님은 인간을 만나주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모든 레위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만나는 장소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늘 주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언약의 완성이에요. 언약의 완성이 환경을 이룹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예외 없이 무조건 의인이 되는 겁니다. 그걸 예수 안에서 의인, 사도 바울이 예수 안에서 의라는 것은 네 인생에 손댈 것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내가 믿음이 좋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로 그렇게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구약의 단절된 격리된 특수 구역을 통해서 신약의 상황을 구약 때부터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제사장, 정말 고맙지요. 그들은 자칫 복장 불량하고 만약에 제사 드릴 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건 정말 김정은한테 잡혀서 총살당하는 식으로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 당합니다. 함부로 다른 불로 피웠다가는 나답과 아비후처럼 불이 나서 죽어버려요.

온갖 기적은 제사장이 구경 다하고 백성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그냥 양이나 염소나 곡식이나 바치면서 알아서 해주세요. 그러면 알아서 다 해줘요. 그게 바로 모세언약입니다. 백성들아, 네 일은 네가 하지 말고 제사장이 왜 있는지 알아? 모든 것을 제사장한테 일임하란 말이죠. 전문가도 아닌 게 어설프게 전문가 흉내 내지 말고 죄 처리하는 전문가한테 맡기세요. 그게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내가 이리저리 해도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은 주께 이미 구원하셨기에 십자가가 이론이 아니고 실습하기 위해서 우리가 십자가 말고 뒤에 갖다 붙이는 그것이 실패로 끝나고 쓸데없는 헛짓으로 우리에게 느끼게 하시는 작업을 성령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헌금해봐야 자기 헌금 많이 했는데 너는 뭐 했노? 시기와 질투와 육의 열매 맺지요. 봉사해봐야 내가 아니면 교회 무너져. 내가 앞서서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뺀질거리면서 안 해. 봉사해놓고 형제들 전부 욕하고, 씩씩거리면서 하고. 뭐든지 움직이면 나는 했는데 너는 뭐했노? 맨날 이런 식이에요. 조금만 움직여도. 그래서 우리교회는 신기하게 돌아가요. 돌아갈 만큼만 돌아가요.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정도만 돌아가요. 자진해서 기쁨으로 주의 은혜라 할 것만 있고 뭘 해놓고 삐질 것 같으면 아예 안 합니다.

어떤 사람은 12년째 청소 한 번 안 한 사람 있어요. 제가 명단 다 알아요. 그런데도 아주 보람찬 웃으면서 교회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 대범한 믿음을 찬양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도 웃으면서 참석하는 그 대범함,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그 정도로 나는 나에 대해서 포기했노라, 그걸 아주 선언하고 사셔요. 그게 믿음의 교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남의 시선이 얼마나 평생 스트레스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성경만 안 보면 정말 나 같이 깨끗하고 경건하고 착실한 사람 없는데 성경만 펼치면 나 같은 죄인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성령 안에 있는 사람만 나타날 수 있는 십자가의 효과요, 능력인 것을 이미 구원되었음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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