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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23:38:08 조회 : 728         
피와 몸 180202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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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윤범(IP:14.♡.134.25) 18-02-06 11:48 
20180202a 울산강의-레위기 17장 : 피와 몸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오늘 17장 할 차례인데 1장부터 16장까지 무슨 내용인지 다 잊어버렸지요. 지난 1월에도 안 했으니까 1장부터 16장까지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회상하듯이 중요한 포인트를 집어드리겠어요. 레위기 전체가 하나의 흐름으로 돼있으니까.

레위기 1장 1절에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라고 돼있지요. 회막이란 성소 출입구 있는 데를 말합니다. 회막에서 모세를 불렀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는 장소를 하나님께서 임의로 따로 만들어주신 거예요. 회막이 없다, 성소가 없다면 어디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안 만나겠다는 뜻입니다. “감히 너희들이 나를 만나?” 그런 뜻이죠.

그러면 회막을 만들고 성소를 만들었다는 말은 무엇을 강조하느냐 하면, 너희 인간들은 나, 하나님을 만날 자격도 없고 권리가 없음을 분명히 하는, 그걸 확실히 하는 없던 장소가 새롭게 만들어진 거예요.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음을 확정짓게 하는 장소가 회막입니다. 원래 회막은 하나님께서 먼저 만들지 않으면 어디에도 없는 거죠. 있는 장소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게 아니고 장소가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일부러 하나님께서 회막이란 걸 만들어서 그 장막에서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거예요. 허락하신 거예요.

그래서 회막이란 특별한 만남의 장소가 있다는 것은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안 만나주는 것이 마땅한 건데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다면, 이것은 인간들이 하나님 만날 때 은근히 기대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만나면 이것 요청해야지, 이 소원 들어달라고 이야기해야지, 하는 그 모든 것은 인간들의 부질없는 상상에 불과한 헛된 꿈에 불과한 겁니다.

만날 수도 없는 인간을 만나게 해줬다는 말은 그 만남에서 시작되는 모든 내용들은 인간이 상상도 못한 겁니다. 인간의 요구사항과 전혀 관련 없는 거예요. 이것을 오늘날 신약시대로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은 인간과 만날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말은,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보낸 게 아니란 것과 동일한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알기 위해서 애초부터 인간이 소원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과 만날 수 없는 요건이 돼요. 인간이 텅텅 비어있는 게 아니고 뭔가 내심 노리는 게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안 만나주는 이유가 된단 말이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 아는 방법은 이렇게 시작하면 되죠.

도대체 하나님 만나면 어떤 소원과 어떤 요구사항을 하고자 했는지 그것을 탐색해보면 되겠지요. 그것 때문에 안 만나줬으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다 제거하면 돼요. 그걸 다 지워버리면 돼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제일 큰 이유가 뭐냐 하면, 이거죠. 죽어서 천국 가겠다는 것.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안 만나주는 거예요.

천국 들어갈 자격도 없으면서 천국 가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죽어서 천국 가겠다. 이게 욕심이죠. 사탄의 마음이에요. 차라리 노골적으로 마귀도 천국 넣어달라고 하지. 가룟 유다도 천국 넣어주고 악마도 천국 넣어주세요. 마음 어지신 신이십니다. 마귀도 천국 갈 수 있다는 종교가 불교거든요. 대자대비 하잖아요.

죽어서 천국 가겠다는 말을 두 자로 줄이면 구원이죠. 마귀를 앞장세우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구원의 하나님,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 교회가 장사 안 될 리가 없어요. 죽어서 좋은데 간다는데 마다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돈 몇 푼만 내면 구원시켜준다는데 그걸 왜 마다해요.

예수님은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한 답변이 있어야 되겠지요. 죽어서 천국 가겠다, 또는 저 구원해주세요, 할 때 사탄의 마음이거든요. 이걸 아니라고 반박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너는 이미 죽었다. 다른 말로 하면, 쓰레기다. 쓰레기를 성경에서는 더럽다, 오염되었다, 추하다, 또는 영광이 아니다. 로마서 3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다른 말로 “너는 죄인이야.”

너는 죽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언질을 줬어요.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너희가 죽으리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 약속대로 준수할 의무에 따르면 인간이 선악과 따먹었으면 결국 마땅히 죽어야 돼요. 구백년 살아도 소용없어요. 살고나면 결국 내가 죽는다는 것만 남지 구백년 살았다는 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떤 노인네가 구십을 살았다. 구십년 살았는데 뭐 남았습니까? 남기는 뭘 남아요. 초가 타게 되면 남는 건 뭐가 있습니까? 초가 남습니까? 그냥 까만 심지만 타들어갈 뿐이지 남는 게 없잖아요. 인생 구십을 살았다. 자식 다섯 명 키우고, 뭐 쓸데없는 소리나 하지 본인이 뭐 남았어요? 곧 내일모레 죽는 시신이 되어가는 모습, 이제 병원도 감당 안 되는 숨도 못 쉬는 그런 답답한 숨소리, 그런 것만 남는 거예요. 과거에 대기업 임원하고, 내가 옛날 목사였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지금 뭐가 있느냐?

젊을 때 머리카락 새카맣고. 몇 십 년 지나면 허연 것도 다 빠졌는데. 뭐가 있어요. 이빨도 다 빠졌는데. 틀니도 안 맞을 때 결국 남는 건 뭐냐? 내가 죽는 게 사실이구나. 죽인다고 하셨는데 진짜 죽이시네. 주님의 음흉만 말씀만 남아요. 세상의 모든 것은 안개 같이 사라져도 남는 것은 주의 말씀의 확실함만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우리의 똑똑함이 아니라 주의 말씀의 정확함,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이 땅에 살아온 거예요. 이미 죽은 거예요. 쓰레기에요.

아까 말씀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회막 자체가 하나님은 인간을 안 받아준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증거물로 준 게 회막이에요. 회막은 인간이 만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오셔서 비로소 만들게 하신 거잖아요.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게시니 비로소 발생된 게 회막, 만남의 장소란 말이죠. 말씀이 없으면 만남의 장소도 없는 거죠. 장소가 없다는 말은 안 만나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은 인간 왜 만나주는데.

그래서 회막으로 말미암아 안 만나준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서 회막이 있으면, 원래 200규빗, 100규빗으로 직사각형인데 정사각형 두 개로 생각해야 돼요. 여기 제단이 있고. 동쪽에 문이 있어요. 에덴이 동쪽이니까. 생명나무 가는 길이 동쪽이니까 동쪽에 문이 있고 북쪽은 막혀있고 이쪽도 막혀있고. 이 회막을 볼 때 사람을 전부 다 좀비 화 시키는 겁니다. 회막에 올 때 산 사람으로 오면 안 돼요. 죽은 자임을 분명히 하는 쪽으로 사람들을 확정시키는, 회막의 기능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회막이 산 사람을 좀비, 죽은 귀신으로 하는 방법은 뭐냐? 레위기 1장에 “그 예물이 소이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서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3,4) 오늘 17장 하는데 1장부터 16장까지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다시 스토리로 연결시켜보자는 말입니다. 전에 했던 연속성 가운데 17장이 있어야 되니까.

7절에 보면,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어떻게 합니까? 제물을 가져왔는데 안수를 한단 말이죠. 안수한다는 말은 전이된 거예요. 이쪽이 본질이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안수거든요. 제물에다 모든 걸 이양하는 겁니다. 그러면 제물의 움직임은 곧 나의 움직임이에요. 소나 양, 염소.

그러면 진 밖에서는 분명히 사람이지만 안수를 함으로써 회막 안에 들어가면 사람은 소나 양이나 염소로 바뀌어 움직인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그 소나 양, 염소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처지에 있느냐 하면, 제단에 불을 피우고 그 다음에 내장과 정강이를 씻고, 9절에 보면, 단 위에서 불살라 버리죠. 쓰레기나 마찬가지란 말이죠. 죽어 마땅하다 이 말입니다. 소나 양, 염소가.

소나 양, 염소가 진 밖에 나오면 일반인들이에요. 평범한 울산시민입니다. 평범한 울산시민인데 회막 안에 들어가면 소나 양, 염소가 되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몽땅 불태워서 없어져야 될 존재가 되는 거예요. 죽은 존재란 말이에요. 인간끼리 있으니까 서로 살았습니다. 형님, 아우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가면 형님이고 자시고 간에 죽은 존재가 되는 겁니다.

죽은 존재를 불태웠을 때 9절에 보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라. 하나님의 응식은 냄새에요. 하나님의 약속대로 진행된 그 결과물을 냄새라는 형식으로 받아 챙기시는 것이 하나님을 배부르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양식이 돼요. 이 번제의 최초는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정결한 새를 잡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내가 다시는 물로서는 사람 전체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흠향하시고, 기쁘게 받으셨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은 이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세상 것을 통해서 분명히 노출될 때 하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겁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가 노력해도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로 보이는지 몰라요. 따라서 레위기를 줌으로써 네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지? 기다려. 내가 레위기 율법을 줄 테니까 그 율법 따라와.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네가 어떤 존재인지 알 거야.

그러니까 레위기를 보게 되면 억지로 이 땅에서 살려고 하는 모든 스트레스와 마음의 부담을 다 털 수가 있어요.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죽은 귀신처럼 돌아다니는 거였구나. 바이어 만나고 한 건 수 올리고, 뭐 하고 같은 귀신 만나서 노닥거리고 있는 거예요. 가족이 네 식구인데 하나가 생일이다. 귀신 넷이 모여서 죽을 양식, 케이크 먹고 그 다음에 죽을 귀신 태어났다고 노래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레위기 입장에서. 교인들이 교회에 왔다. 이건 죽은 귀신 열댓 명 와서 예배란 걸 드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내가 살게 된 것과 내가 살아야 될 이유를 구분해야 돼요. 내가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아직도 여러분을 안 죽이시고 살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레위기 때문입니다. 내가 움직이는 울산의 레위기. 레위기로 울산바닥에 살도록, 움직이는 레위기로. “네 눈에 내가 살았다고 보지만 사실은 죽은 귀신이야, 좀비야.”라는 식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계속 살게 하시는 거예요.

그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회막인데 옛날 언약이니까 레위기잖아요. 옛날 언약의 완성체가 있어요. 그게 바로 다 이뤘다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보게 되면, 우리와 똑같이 이 땅에 살았다는 이유 때문에 죄 없지만 죄인 되신 분이 있어요. 그분이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아버지한테 버림받죠. 아버지한테 버림받는 말은 하나님한테 버림받는 거잖아요. 그게 우리가 미처 내 자신에 대해서 몰랐던 진짜 내 모습을 예수님이 대신 보여주신 거예요. 하나님 앞에 네 모습은 내가 버림받은 그 모습이란 거예요.

따라서 하나님 앞에 내 모습 보려면 십자가 안에 들어오면 돼요. 십자가 안에 들어오게 되면 예수님이 당했던 그 체험이 우리에게 그대로 일어납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답변 들으나마다 버릴 만해서 버렸지요. 죄가 있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버려야지요. 죽이고 없애버리고. 그리고 죄인을 죽이고 없앰으로 말미암아 누가 흐믓하고 만족스러우냐 하면, 하나님이 만족스럽고 기쁜 거예요.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내심 은근히 요구해야지 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버림받을 요건이 된다는 겁니다. 만나주지도 않는 하나님을 만나줄 거라고 지레짐작 생각하는 그것이 사탄의 마음이에요. 안 만나줘요. 누구 마음대로 만나줘요? 안 만나주는데 이스라엘한테 특별히 만나주는 이유가, 잘났다고 하는 게 아니고 주제파악 하라고 만나주는 거예요.

어디 안에서? 번제 안에서, 레위기의 제사법 안에서. 그러면 번제하게 되면 몽땅 태우면 약간 기분 나쁘려 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뭐라고 합니까? 왜 나름대로 바르게 살고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왜 죽으십니까? 이렇게 속으로 욱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가 이래도 죄 없어, 라고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서 낱낱이 까발리죠.

어떤 사람은 오십년 동안 착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그런데 이 세상, 경쟁사회에서 착실하게 살았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면 집에서 홈쇼핑 하는 순간 여러분은 재래시장을 굶겨 죽게 만드는 죄인입니다. 온라인 쇼핑 때문에 오프라인 가게 다 문 닫게 됐어. 그건 생각 안 했지요. 자기 편리만 생각하고. 그리고 시장에서 값을 깎는다? 또 여러 명 죽였습니다.

부천의 어떤 건물에 2층도 pc방이고 5층도 pc방이에요. 둘이 손님 당기려고 싸웠는데 가격인하로 경쟁을 했습니다. 원래 1000원 받아야 될 사용료가 오기로 버티다가 300원까지 내려갔습니다. 문제는 300원 한다고 그 pc방에 가는 순간 1000원 받고 정상 영업하는 pc방주인들을 자살하게 만들어요. 범죄자입니다. 간접적 범죄자에요. 내가 살아서 이만큼 버텼다는 말은 나 때문에 이유도 모른 체 왜 내가 이렇게 가난해야 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그 굴레에서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해서 비록 학력은 낮지만 착실하게 살았다. 이상하게 착실하게 살았는데 계속 정규직 안 되고 계약직으로 떠돌다 나이 많다고 쫓겨났을 때 왜 나의 착함과 착실함이 남들 다 사는 아파트 하나 못 살고 빌라 월세 방을 전전하게 만드는지 그 내력도 이유도 모른 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삽니다. 그것도 대물림해서. 뭘 착하게 살았어요? 존재한다는 자체가 범죄인데 뭘 착하게 살아요.

자본주의사회도 이렇게 연관돼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이란 것이, 내가 산다는 것이 자기 위주로 사는 입장에서 죽어서 천국을 가요? 하나님께서 그걸 인간으로 간주하겠습니까? 죽을 짐승으로 간주하는 거예요.

그래서 레위기에서 계속 주장하는 것은 핍니다. 네 껍데기 말고 피를 내봐라. 그 피가 깨끗한 피인지. 결국 여기 회막 바깥에 있는 모든 백성의 피는 절대로 깨끗하지 않은 더러운 피. 그 더러운 피가 그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더러운 피가 몸의 내부에 활동하면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지요. 그걸 하나님은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그걸 죽음으로 간주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회막을 줘서 그 인간들을 첫째는 너는 누구냐? 두 번째는 죽고 난 뒤의 혜택. 이 두 가지의 기능을 회막의 제사제도를 통해서 알려줍니다. 죽고 난 뒤의 혜택이에요.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혜택이 입겠다는 이런 사람은 아예 하나님의 법을 전혀 이유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죽은 우리를 죽었다고 확정짓기 위한 법이에요. 로마서 3장에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 입을 막고 모든 사람을 저주 아래 있게 함이라. 그냥 숨 끊어진 정도가 아니에요. 저주를 받는 거예요. 아래 있는 것이 합당하다는 거예요.

그러한 정보를, 놀라운 진리를 이스라엘에게 줬다는 말은, 너희들이 자신이 저주받아 마땅하다는 현장이 돼야 거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영생의 혜택이 그러한 절차를 거쳐야 얻게 되는 겁니다. 먼저 욕심내면 안 돼요. 나 착하니까 괜찮으니까 하나님 복 주세요.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안 돼요.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돼, 라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죽어 마땅한데 하나님과 함께 있어도 살았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누구냐?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장은 거룩한 존재에요. 그러면 많은 쓰레기 같은 인간을 회막이 안치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백성을 제사장처럼 거룩한 사람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이 회막 안에 있는 제사법을 통해서 성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사장이 하나의 모델케이스에요.

제사장은 아담의 자손이잖아요. 보통 인간인데 회막 밖의 일반인과 어떤 차이 나는가? 모세는 시내 산에서 차이 남을 계속 부여받게 됩니다. 복장부터 다릅니다. 속옷부터 복장 하나하나가 거룩의 혜택을 입은 자로 무장되죠. 거룩 안에 들어있어요. 그리고 제사장이 되기 위해선 복장만 갖추는 게 아니에요. 제사장이 활동하는 공간, 제사장이 접촉하는 모든 기구와 천막부터 해서 그 내용 사이에는 전부 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거룩한 기름과 피가 뿌려져 있어요.

기름과 피니까 기름은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죠. 피는 그분의 죽음이 되는 겁니다. 신약적으로 하면 예수 안에서 거니는 사람만 제사장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흘리신 피의 효과로 말미암아 선악과 따먹고 마땅히 죽을 인간이 생명나무 과실을 먹을 수 있단 말이죠.

그래서 지난 수요일에 선악과는 생명나무의 뒷면이라 했습니다. 아담은 하와의 뒷면이라 했지요. 아담 이름은 흙이고 하와 이름은 생명. 속의 생명으로 인하고 겉의 남자가 살게 돼요. 그런데 세상에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속이 아니고 뒤쪽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에 보면 수컷을 잡아요. 수컷은 이 땅에 나타나는 대표자니까.

왜 여자와 남자 중에서 수컷이 되느냐 하면, 지금 소나 양, 염소가 인간을 대체하는 짐승이잖아요. 원래 들에 있던 소나 양이에요. 그러나 인간이 죄인이고 그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기 위한 율법적 작업에 소나 양이 개입된다면 인간을 대체물로 하나님 앞에 제단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제단에서 활동하는 제사장은 모델이니까 인간이고 소나 양은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죠. 짐승 같은 인간을 인간 같은 인간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바로 성막 안에서 이뤄진다는 말이에요. 얼마나 큰 사랑이에요. 그 사랑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인간 아니다. 짐승보다 못한 걸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짐승을 잡을 때 수컷, 암컷을 나눈다고요. 수컷을 남성을 의미하고 암컷은 여성을 의미하잖아요. 레위기 1장에서 수컷을 드린다는 말은, 이 땅 인간 세계에서는 아담이 대표자가 되고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이 돼요. 마지못한 종속물이 아니고 여자 자체가 남자를 사모하게 돼있어요. 그리워하게 돼있단 말이죠.

이 말은, 남자는 그 자체로 완성물이지만 여자는 미완성물입니다. 왜냐? 처음에 아담을 만들어놓고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는 어떤 목표가 될 대상이 없지만 여자는 그냥 여자로 사는 게 아니고 바라봐야 될 대상이 있어요. 결합돼야 할 대상이 있어요. 그게 남자에요. 남자를 돕기 위해서 여자를 만들었잖아요. 창세기 2장에서.

남자 입장에서 여자를 하대하고 무시하지만 그 여자 없이는 남자는 그냥 죽을 수밖에 없어요. 본래 죽음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남자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영생을 주기 때문에 무시하는 여자를 통해서 죄 없는 의인의 상태로 돌아갈 기회를 남자가 얻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의 이름은 죽어야 돼요. 흙이고, 여자의 이름은 생명입니다. 밖으로 드러날 때는 남자가 큰소리쳐도 여자의 생명의 효과를 남자가 흡수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어요.

어쨌든 수컷을 바침으로서 이 세상 대표자가 남자라는 것이 분명하고 수컷을 죽임으로 하나님께서 흐믓해 하시는 겁니다. 레위기 1장 17절에 보면,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러니까 인간들은 죽는데 기분 좋으신 분은 하나님. 속이 다 시원하다. 에스겔에 보면 그렇게 나와 있어요. 내가 저놈들 저주하니까 이제 속이 시원하다고 돼있어요.

레위기 2장 11절에 보면 소제 이야기하면서 누룩을 넣지 말고 이스트 첨가하지 말고 꿀을 첨가하지 말라는 말은, 이제 좀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모델은 이전처럼 세상에서 양식을 자기 입맛대로 자기를 스스로 생존시키는 방식은 사는 의미 없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13절에 소금을 치라는 겁니다. 이스트 쳐서 말랑말랑해서도 안 되고 꿀 넣어서 자기 원기회복 할 필요도 없고.

소금을 친다는 말은, 너희들은 원래 네 식대로 생명을 공급해서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소제 드릴 때마다 회상케 하는 거예요. 그걸 분명히 해두는 겁니다. 나는 내 식대로 해서 사는 게 아니구나. 죽음의 또 다른 양상임을 알란 말이죠. 세상에선 물론 꿀을 넣고 맛있게 먹지요. 하지만 이렇게 산다고 해서 생명이 아님을 분명히 하란 말이죠. 제사를 통해서.

그 다음에 3장 17절에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고 했어요. 뭐든지 먹지 말라 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요. 이것은 창세기 2장에 선악과 따먹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먹지 말라, 먹지 말라는 것은, 네가 스스로 너를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골라 먹을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기름과 피는 네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죽은 너희를 생명을 줄 때 하나님의 만족을 경유해서 주어진 기름과 피가 그냥 생존이 아니라 영생을 주게 된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유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유한, 성막 제사를 경유한 기름과 피가 살리는 거예요. 이 말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회막 근처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건 죽은 시체에요.

이번에 수련회할 때 엘리야 이야기, 사르밧 과부에게 아들이 죽잖아요. 그럴 때 얼마나 낙심합니까? 선지자가 들락날락하다 애꿎은 아들이 죽으니 무슨 난리에요. 아들이 죽으라고 선지자 대접했습니까? 이건 마리아, 마르다 가정과 똑같잖아요. 나사로도 예수님 잘 섬겼는데 돌아온 결과가 뭡니까? 멀쩡한 오빠가 죽었잖아요. 참 기가 차지요.

예수님 섬기고 대접할 때 어떤 마음이 작용할까요? 나는 하나님을 섬길만한 자격이, 하나님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하나님은 인간을 안 만나주는데 나는 특별히 착하니까 만날 줄 거라는 악마의 생각이 든 거예요. 예수님 섬긴다고 해서 별난 인간 아니란 말이죠. 오히려 예수님을 섬김으로서 더 건전한 장소에서 가까운 자리에서 정말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권리도 없고 자격도 없고 천국 갈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아야지요.

주님께서 나사로를 죽여 버립니다. 죽임으로 생존이냐, 아니면 생명이냐, 그 차이점을 깨닫게 하죠. 그동안 생존의 끈을 못 놓은 거예요. 죽기 살기로 살기 위해서 살은 거예요. 이유도 모릅니다. 사는 목적도 몰라요. 그냥 태어났으니까 생일축하 받으면서 돌잔치 가락지 받으면서 그때부터 줄곧 남들 사니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 같이 따라가면서 살아 붙었어요.

공부들 하니까 공부했고 취직하니까 취직했고, 남들 결혼하니까 결혼했고, 아파트 사니 같이 살고, 남 칠순 하니까 칠순 했고, 요양병원 가니까 요양병원 갔고. 뭐에요. 그게. 넓은 길 따라 다 지옥 간 거예요. 나이아가라 폭포 같아. 우린 거기 물 한 방울 같고. 폭포에서 떨어지니까 다 떨어지는 거예요. 떨어질 때 신났지. 떨어지고 보니 지옥인데.

예수님이 개입해야 돼요. 예수님이 회막이거든요. 예수님이 만남의 장소 아닙니까. 예수님이 개입하니까 이건 생존이었지 생명이 아니었단 겁니다. 그리고 생존에 있는 입장은 생명을 요구할 어떠한 권한도 없어요. 주면 받고 안 주면 그만인 안 줘도 마땅한 그런 입장이지 저에게 생명나무 따먹게 하옵소서. 어디 선악과 따먹은 주제에 그런 망발이 나옵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엘리야가 죽은 아이에게 세 번 겹칩니다. 그러고 나니까 애가 살아났지요. 그 애가 살아날 때 엄마가 살아난 거예요. 이 선지자가 우리 집에 올 때 그냥 참기름이나 주려고 온 게 아니고 평생 아무리 살아도 몰랐던 것, 생명이란 위에서 줘야 받는 것이지 신학공부하고, 신학교 간다고 오는 게 아니거든요. 삼위일체 공부한다고 생명 오는 게 아니에요. 교회 다닌다고 생명 오는 게 아니에요.

이건 줘야 오는데 줘야 오는 그 이유가, 요구조건이 뭐냐 하면, 네가 죽은 인간이란 걸 자인하는 거예요. 분명히 하자 이 말입니다. 살만 한 인간 살리는 게 아닙니다. 살 자격도 없는 인간을 살리는 겁니다. 그래야 모든 공로가 주님의 공로만 높아지기 때문에 아버지가 기뻐하는 거예요.

수컷은 대표성을 이야기하고 물론 제사장도 남자지만. 모든 제물이 집대성해서 제사장 같이 거룩한 백성 만드는 거예요. 제사장은 자기가 착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고,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인데 이걸 레위기 2장 9절에서 기념이라 했어요.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소제물 중 일부를 취해서 지금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신다는 것을 증빙하고자 하는 겁니다. 기념하고자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전체 이스라엘에 대해서 거룩의 기념물이 되고, 전체 이스라엘은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 가운데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계신다고 이방민족에게 증거하는 기념물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얻어진 기념물이에요.

예수님께서 그 율법을 다 이루었다 할 때 그게 십자가 형상에서 나타날 때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야기하잖아요. 그 죽음으로 나타날 때 바로 그 죽음에 뛰어들란 말이죠. 그 죽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죽는다는 모험을 하란 말이 아니고 지금 죽어 있는 그대로 오란 말이죠. 죽기 살기로 뛰어봐? 내가 결심해봐? 이것도 투기고 오긴데 이렇게 하란 말이 아니고 그냥 뭘 해도 그런 투기나 결단을 내리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소급해서 죽은 상태인 것을 인정하면 돼요. 참 쉽지요.

젊은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 젖을 물리면서 “아기야 젖 많이 먹어라. 죽은 엄마한테 나오는 젖이야.” 그러면 그 엄마는 영생 얻은 사람이에요. “이것 먹고 큰 사람 되라.” 이러면 엉뚱한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아기야 젖 먹어도 죽었고 난 젖 먹여도 죽은 거야. 십자가 앞에서.” 이것이 생각난다면 그 사람은 아기한테 영생을 먹이고 있는 중이에요. 왜? 그 자체가 결과물이기 때문에.

2장 12절에 보면, 소제를 드릴 때 뭘 드리느냐 하면, “처음 익은 것으로”라고 돼있지요. 첫 이삭. 이게 뭐냐 하면, 원래 안 생겨도 되는데 하나님의 제사에 의해서 첫 번째로 발생된 거예요. 그리고 4장부터 번제 다음에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가 나오잖아요. 그것은 딱 두 가지 내용이에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걸 줄이면 먹지 말라.

네가 먹지 못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너는 영생을 얻는다. 네가 먹어서는 안 되는, 아니 네가 먹고자 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망쳐버린 너를 내가 못 먹게 함으로 영생을 얻는 거예요. 그게 피와 기름입니다. 기름은 기름 부음과 관련돼있고 피는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생명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결국 피인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냄새니까 깨끗한 피가 돼요. 더러운 피를 말씀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깨끗한 피가 되잖아요. 깨끗한 피와 이쪽 더러운 몸과의 관계에요. 그러면 몸에서 죄를 뽑아내야 되겠지요. 그걸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것이 레위기에 쭉 나와 있어요.

세상에 일반 사람과 같이 있어도 구분 안 되는 몸이잖아요. 세상적인 몸이죠. 애굽에서 살던 몸 아닙니까. 애굽에 살던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서 율법은 뭐냐 하면, 절대로 저들과 같이 살아선 안 된다. 그들의 풍속을 따라선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지킬 수 있어요, 없어요? 지킬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 사고나 몸이란 것은 이미 주변 환경에 의해서 거기에 완전히 스며든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안 되냐? 하나님의 말씀은 몸에 스며드는 게 무엇이 들어있는지 뽑아내는 용도로 준 거예요. 부정적이라니까요.

주사기가 뭘 넣는 거지만 뭘 뽑는 주사기도 있다니까요. 이미 우리는 뭐로 무장돼있습니까? 같은 인간들끼리 통용되는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생존을 향하여 질주하는 거기에 필요한 모든 장치가 몸의 장치들이에요. 우리가 배우는 영어, 수학, 모든 것이. 생명 얻는데 영어 몇 점 받아서 영생 얻습니까? 필요 없지요.

그러면 영어, 수학 하지 말까요? 왜 해야 됩니까? 고도의 기술이 돈으로 나오잖아요. 전문적 기술이 없는데 컴퓨터도 못하는 데 무슨 월급을 줘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으로 완전무장 돼있는 거예요. 뭘 하는 것은 우리 생존이 딸려 나오는 겁니다. 그것 하지 말라하면 죽는데. 그게 바로 생명을 방해하는 생존의 근성이에요. 근성.


10분 쉽시다.
 한윤범(IP:14.♡.134.25) 18-02-06 11:49 
20180202b 울산강의-레위기 17장 : 피와 몸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제사장이 모델이라 했는데 레위기 8장 35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요. 제사 이야기 다 해놓고 속죄제 제사는 그 뒤에 나오는 율법을 통해서 주사기로 죄를 뽑아내요. 그 죄를 제사법에 의해서만 되지 지가 알아서 또 착한 사람 되면 안 돼. 제사법을 경유하지 아니하면, 제사장 같은 모델, 제사장 모델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도 안 죽는 것. 회막이 만남의 장소 아닙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어도 안 죽는 그러한 존재가 되는 거예요. 제사장 위임식 할 때는 모든 백성들의 모델로 보시면 돼요.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사망을 면하리라는 말이 뭔 뜻이냐 하면, 어감이 어떻습니까? 네가 7일 동안 회막에 안 머물고 밖에 나가면 죽는다. 그러면 처음부터 죽는다는 게 돼요. 죽어야 되는 데 회막 때문에 살았다는 뉘앙스 아닙니까. 그리고 회막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이스라엘의 모델로, 대표성으로 기능하는 거죠.

레위기 10장 7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요.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하니라” 제사장들 이야기인데 제사장들은 관유가 있어요. 관유 자체를 밖에 들고 나가면 죽는다고 돼요. 제사장이 좀 뭐 하게 되면 너는 죽는다. 제단에 다른 불로 하면 너는 죽는다. 포도주나 독한 술을 먹으면 너는 죽는다.

죽는다는 말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피와 몸의 만남입니다. 현재 몸은 죽은 몸이에요. 죽은 몸이 복장 갖추고 회막에서 일하니까 안 죽고 살아있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 피를 다루고 기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유, 기름. 그리고 피 뿌리는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피가 뿌려진 기구를 만져서 그래요. 피 있는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참 희한하죠. 좋게 이야기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철저하게 준수하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것은 인간을 대표해도 안 받아줘요. 이것은 하나님이 철저하게 자기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고수가 성경책에 신화적인 내용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놀랍게도 사흘 만에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내 말 맞지? 내 말이 팩트지? 내 말이 진실이지. 농담이나 전설의 고향이 아닙니다. 인간이 지어낸 신화가 아니란 말이죠.

말씀대로 오신 분이 말씀대로 죽었고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했잖아요. 무슨 종교생활을 해요. 종교생활은 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팩트지 종교가 뭐 중요해요. 종교는 도 닦고 자기감정에 도취돼있고 마약 같은 건데.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든 성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짓거리를 취미생활이지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이건 약쟁이, 마약 투여자와 똑같은 거예요. 프로포필 주사 맞는 게 더 나을 건데. 은혜 받은 것보다도.

성경이 진리고 성경대로 해야 된다는 말은, 피 앞에서 죽은 몸으로 세워져라 그 말이에요. 이걸 지켜서 영광 돌린다는 게 아니에요. 못 지키는 몸으로 자기 죄를 노출시키란 말입니다. 말씀 앞에서. 성경 말씀 지킨다는 게 언어도단이고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란 걸 인정하는 겁니다.

성경말씀 지키시는 분이 이미 따로 계셔요. 예수님만, 예수님뿐이에요. 그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아요. 예수님도 지켰으니 나도 뒤따라 지키란다. 그게 아니고 온전히 지킨 분의 대행체로 이름이 바꿔져서 구원받는 겁니다. 내 이름으로 가는 게 아니고. 그분의 성과에 그분의 공로에 묻혀서 구원받는 거예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예수 이름만 부르고 예수의 피만 부를 뿐이에요. 요양병원에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그런 예수의 피만 바라보는 데 제일 큰 장해요소가 레위기 17장에 나오는데 17장 내용이 피 먹지 말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어떤 짐승을 잡을 때는 반드시 회막 앞에서 잡으란 이야기거든요. 제가 1장부터 이야기하는 이유가, 어째서 이런 원칙이 수립돼있는가를 알려드리기 위해서 1장부터 끌어당기는 겁니다.

17장 7절에 보면, “그들은 전에 음란히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음란하게 섬기는 숫염소라고 돼있다고요. 누가요? 이방민족들이. 이방 민족적으로 살아왔던 몸들이 평소 행세대로 하게 되면 그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음란한 거예요.

음란의 삼요소. 돈과 권력과 명예입니다. 음란, 간음 이런 게 아니에요. 음란은 우상숭배를 두고 이야기하는 건데 음란은 평소에 우리가 몸을 살리기 위해서 뭘 필요로 하고 뭘 갈구하고 뭘 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예수 이름 부르면서 철야하면서 금식하면서 불렀던 게 돈과 권력과 명예입니다. 이게 음란이에요. 이게 애굽적이에요.

골로새 3장에 의하면 땅에 있는 것들은 다 음란한 거예요. 이게 요한계시록 17장에 보면, 땅에 있는 나라가 음란의 나라로 통일돼있어요. 그게 바로 큰 성 바벨론이라고. 돈 빼고, 권력 빼고, 명예 빼고. 차 떼고 포 떼면 다 떼면 장기 뭐로 두지요? 차라리 손발을 자르라 해라. 돈과 권력과 명예 빼버리면, 여기에 하나 더 붙일까요? 사인방, 건강. 회복주사 붙일까요? 돈과 권력과 명예, 건강 빼고 사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공무원9급 시험에 합격했다. 선서, 나는 죽어도 7급 안 되렵니다. 이런 사람 봤어요? 승진과 권력과 명예를 자진해서 포기하는 사람 봤습니까? 난 이제부터 중풍 걸릴래요. 자진해서 중풍 걸리겠다는 사람 봤어요?

건강 조지고 명예 조지고 권력 조지고 돈 왕창 내리겠다는 대목이 레위기 마지막에 나옵니다. 너희들에게서 이것 필히 제거한다는 겁니다. 신명기 28장에도 그게 나와요. 네가 들어가도 저주받고, 나와도 저주받는다고. 저주가 어떤 저주냐? 내가 땅에서 산다는 자체가 저주의 뱀처럼 저주만 흡입하면서 산다는 자체가, 더 나아가서 내가 살았다는 자체가 저주일 수밖에 없도록 내가 만들어줄게. 차라리 죽여 주옵소서,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도록 만들어줄게. 이게 주님 주시는 복이에요.

수요일에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모든 현실은 주님의 언약의 관할에서 못 벗어나요. 라반과 파생 언약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야곱이 그냥 혼자 하나님 만나러 가면 되는데 라반이 들어붙었어요. 라반은 철저하게 육적인 사람이에요. 이게 발목을 잡아요. 왜 그렇게 하느냐? 언약이란 하늘 쳐다본다고 오는 게 아니고 땅의 저주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오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이 땅에서 고생하고 불행하게 되는 거예요. 제일 싫어하는 걸 통해서 우리에게 내가 제일 원하는 것, 천국이 거기서 나와요. 그게 언약이에요.

예수님이 어떻게 왔습니까? 좋은 옷 입고 왔습니까? 멋들어지게 왔어요? 비참하고 초라하게 왔지요. 모든 사람에게 흠모할 요소가 없어요. 예수님 자신이 돈과 권력과 명예와 건강을 포기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메시아를 찾을 때 혹시 이런 게 있을까 하고 찾는 거예요. 초창기에는 병이 낫고 오병이어 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땅의 임금 삼으려했지요. 야, 멋지다! 이런 분을 대통령 삼으면 우리나라 절로 복 받겠다.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한 거예요. 차라리 허경영이한테 찾아가라.

똑같은 사고방식이에요. 나한테 잘해주면 당신에게 잘해주겠습니다. 이게 거래 아닙니까. 약정.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 챙기면 되지 않느냐는 그러한 호소. 주님이 거기에 말려들었어요? 그런 것은 교회 목사한테 요구하세요. 돈, 권력, 명예, 건강은 목사한테 기도해달라고 하세요. 기도 받고 둘 다 지옥 가라고. 주님이 주시는 것은 피. 몸은 피, 피에는 몸. 무슨 몸? 죄악 된 몸.

돈을 포기합니까? 미쳤어요. 권력을 포기해요? 주신 권력을 왜 마다해요. 명예? 남이 우러러 보는데 왜 그걸 피합니까? 건강?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고, 버스 뒷자리에 쓰여 있어요. 이걸 마다할 인간은 없지요. 이 몸 그대로 가져와요. 나는 돈 밖에 모르고, 권력 있으면 좋고, 우리 가정에 명예가 희망이고, 건강은 기본이고. 이러한 더러운 몸이 저주받을 몸이라는 걸 수긍하고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면 됩니다.

뭐 가난하게? 세상에 가난하게요? 이 세상에 돈 없어서 가난한 사람은 많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없어요. 돈은 없지만 언젠간, “치토스, 먹고 말 거야!” 하는 것처럼 인생 뭐 있어. 비트코인 해서 한 방만 터뜨리면, 그저 로또 사서 한 방만 노리는 거예요. 죄 없다고요? 같잖아서 말이 안 나와요. 살아있는 게 죄인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문둥병 이야기를 14장에서 합니다. 문둥병 환자 끄집어내요.

1장부터 8장까지 속죄제, 속건제 했지요. 그 다음에 모델케이스, 제사장 위임식했지요. 제사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회막 밖에 나가면 죽는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이 하늘의 결과물을 주고 보니까 생명 있는 곳과 저주의 땅으로 구분되지요. 그리고 저주의 땅이라도 다행스러운 것은 나중에 나옵니다만 절기가 있는 그 날은 회막에 있는 효과를 전부 다 무상으로 혜택주는 날이 절기 날입니다. 대 속죄일이 대표적이고.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대 속죄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대 속죄일을 통해서 회개하나 안 하나 일괄적으로 용서해버려요. 용서하게 되면 그 다음에 뭐가 중요하냐? 용서받은 이스라엘 진과 그 밖이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이 되는 겁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진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레위기 14장에 나오는 문둥병 환자입니다.

문둥병 환자는 인간의 신체에다 제사장이 이미 갖고 있는 기름과 피의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못하고 쫓겨나서 살아야 될 그들에게 피와 기름이 어떤 효과를 주게 되면 어떤 절차에 의해서 진 밖의 인간이 진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서 거룩한 백성으로 통합되는 그 과정을 보여주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둥병 환자의 존재 이유는 경과, 과정, 절차를 보여줘요. 시작은 저주받은 문둥병, 그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추방되어 마땅한 문둥병자가 어떻게 해서 멀쩡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에 합류가 되느냐? 그 절차에 모델케이스가 된 제사장이 개입합니다. 제사장은 오른쪽 귀뿌리, 오른쪽 손가락, 오른쪽 발목에 피를 뿌려서 거룩이 되지만 저주받은 문둥병자에게는 순서를 바꾸죠. 피를 뿌려놓고 위치는 마찬가지에요.

그렇다면 문둥병 환자를 제사장 같이 거룩한 사람으로 바꾸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문둥병 들게 했다가 하나님의 자비로 깨끗하게 되면서 절차에 따라 오게 돼있어요. 절차 가운데 대 속죄일에 있는 그 일이 문둥병 환자에게 사적으로 할당됩니다. 그게 1이 아니고 2에요. 두 마리.

제물이 왜 두 마리가 필요할까요? 제물 두 마리가 필요할 경우가 있어요. 속죄제, 번제 드릴 때도 두 마리가 필요해요. 제사장이 대 속죄일에 자기를 위해서, 백성들을 위해서 할 때. 자기를 위해서 속죄하고 번제를 드리면서 경과, 항상 경과가 중요해요. 제사장도 한 번 거룩하다고 항상 거룩한 게 아니에요. 율법에 의하면 죄 지을 수밖에 없지요. 왜? 몸 자체가 아담의 몸이고 더러운 몸이니까. 계속 꾸준히 더러운 몸을 하나님과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러운 몸을 거룩한 몸으로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 만나줘요. 바꾸는 데 무엇이 개입되느냐는 거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개입되겠죠. 나중에 신약에 가면 예수님이 개입하시겠죠. 어쨌든 개입된 그것이 절차를 구분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대 속죄일에는 두 마리 염소, 문둥병이 깨끗하게 될 때 여기 두 마리는 두 마리 새. 둘 다 특징이 있어요. 두 마리 염소부터 하면, 임의로 추첨해요. 제비 뽑힌 염소를 죽입니다. 죽이면 피 나오죠. 그 피를 살아있는 염소에 발라서, 바르든 안 바르든 관계없이 그냥 광야로 보내버려요. 대 속죄일을 봅시다.

8장은 아론의 위임식이야기인데 위임식이 거창한 이유가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만드는 거라 했지요. 16장 8절에 보면,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아사셀이란 떠나보낸다는 뜻이에요. 떠나보내게 된 염소. 떠나보냄 자체를 위해서 준비된 염소. 이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데 조건이 있어요. 두 번 다시 진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이게 대 속죄일이에요. 따라서 염소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한 마리 죽고 한 마리 떠나보내요. 두 마리 염소로 시작했지만 1로 축약합시다. 한 마리 염소에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칩시다.

엘리야가 아이에게 덮치면 두 사람이지만 나중에 살아난 것은 엘리야 세계에 포함되면 엘리야 기능이 담겨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아이도 엘리야 기능, 엘리야는 엘리야 기능, 전부 하나의 기능이 되죠. 두 사람을 하나의 기능으로 결합시키는 거예요. 연합시키는 겁니다. 이 연합이 바로 로마서 6장에 나오는 세례라는 거예요.

예수님 인생에 나밖에 모르는 음란이죠. 음란은 돈과 권력과 명예와 건강이죠. 이런 것을 갖고 있는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킨다고 돼있는데 우리말로 연합이 곧 세례라고 돼있어요.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걸 연합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혼자 일하고 우리는 박수치는 게 아니고, 김연아처럼 혼자 피겨스케이팅도 있지만 남녀 짝을 이뤄하는 커플로 하는 것 있지요. 혼자하면 탈락이죠. 남자가 여자를 띄워야 하는데 혼자 합니까? 박수만 치면 돼요?

성도란 주님과 연합해서 사는 것이지 박수만 치는 게 아니죠. 피나 바르자, 이런 게 아닙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에요. 나는 날마다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는 겁니다. 교회 나와서 헌금하고 예배 쇼 관람하면 그게 성도인 줄 알아요. 성도란 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완전히 박탈된 사람이에요. 내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목적이 뭔지 그런 건 네가 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이끄는 데로 갈 뿐이야. 맞닥뜨리는 데로 살 뿐이지 그래서 모든 일에 감사하고 고마워하잖아요.

어떤 사람이 성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간단해요.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뻐하게 되면 성도고, 신학하고 되게 연구하는 데 이상하게 우울해하고 한 맺혀있고 복음은 파고 들어가는데 지 복음 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성도 아니에요. 감사 가운데 마음껏 자유로워야 돼요. 그런데 실제로 복음 안다고 해놓고 이런 나쁜 짓했는데 벌주면 안 돼요. 인간들이 생각하는 벌은 뭐예요? 명예와 건강과 권력과 돈에 손실 나는 걸 벌 받았다고 하지요. 주님은 진짜 벌 받았겠네.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었으니까.

그러면 전세방에 사는 사람은 벌 받은 사람이에요? 자기 집 없으니까. 나가라 하면 나가야 되니까. 지금 천국 못 가고 영생 못 얻어서 벌벌 떠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자길 살리기 위한 행세, 돈과 권력과 명예와 건강, 이걸 잃을까봐 벌벌 떨잖아요. 그래서 그들의 그걸 움켜쥐기 위해서 교회 나올 때 흥정합니다. 주님과. 얼마 바칠 테니까 얼마 줄 겁니까?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거예요. 야바위꾼이 같아. 야바위꾼이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돈 넣어야 돈을 벌지.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바다에 가야 고기 잡고.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있어도 꼽뿌 없으면 못 먹는다고 서영춘이 이야기했잖아요. 못 들어봤어요. 그 만담을. 뭘 바쳐야 복을 받지. 인간들아. 이게 교회 아닙니까. 순종하고 봉사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예쁘다고 복 주지. 그 복의 내용이 뭡니까? 돈과 권력과 명예. 점점 인간을 지옥으로 가속화시키는 게 교회입니다. 버린 인간 더 버립니다. 벌벌 떨게 만들었어요. 이번 주 교회 안 나갔으니까 손들고 알아서 벌서겠다. 이런 마귀적인 생각이 드는 거예요. 목사 욕했으니까 삼대가 벌 받을 거라는 그런 엉터리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좋아요, 좋아요. 그걸 평생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걸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타내는 겁니다. 주여, 이것 때문에 죽으셨지요. 내가 못 고치는 병 때문에 돌아가셨잖아요. 나는 환자고 병자입니다. 주님은 의사에요. 내 손으로 못 고칩니다. 교회 간다고 못 고칩니다. 기도한다고 안 고쳐져요. 자식 망해도 절대 안 고쳐집니다. 집에 불나도 안 고쳐져요. 세종병원에 불나도 안 고쳐져요.

대 속죄일에 염소를 보낸다는 것은 떠나는 기능과 죽어야 될 기능이 사실은 모든 인간에게 겹쳐져 있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게 인간이다. 그런데 그걸 대신 보여줬다는 말은, 대신 보내준 법과 결합이 돼있다면 나는 마땅히 천국에서 쫓겨나야 됩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 기능자로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거예요. 나는 언약의 뒷면이 되는 겁니다. 욕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오직 욕심만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구원받은 사람의 표시가 돼요.

그걸 문둥병 환자에 적용할 때는 새 한 마리 잡고 피가 나오면 피를 날갯죽지에 바르면 창공에 마음껏 날아다녀요. 비로소 죄로부터 사함을 얻는 죄의 스트레스, 죄가 있으면 저주가 오잖아요. 그 저주에서 뭘 해도 저주받지 않는 그 가뿐함, 세상의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버리는 그 양상, 그걸 마음껏 자랑하는 거예요. 내가 구원받음을 자랑하는 게 성도가 아니에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게 성도지요.

레위기에서 제사법 주고, 문둥병 처리해주고, 피 먹지 말라고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할 거고, 그 다음에 제사장들은 거룩한 백성으로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절기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너희들은 필히 저주받는다. 그것으로 끝나버려요. 내 손에 장을 지질게. 너희들은 반드시 너희들의 원하는 돈, 건강, 명예, 권력 다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이 약속의 땅에서 너희들은 추방된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애초부터 천국에 올 수 없는 존재였는데, 이것을 세상에 나가서 증거하란 말이죠. 이걸 증거한다는 말은, 이미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람이에요.

17장 봅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잡든지 진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주에서 끊쳐지리라”

이 말은 반드시 경유하란 말입니다. 회막을 경유해서 잡으란 말이죠. 경유하지 않으면 내가 평소에 내 몸을 내가 살리는 방식으로 오늘도 단백질 공급해불까? 목살 어때? 삼겹살은? 김치에 싸서, 파절이와 같이 된장 발라 먹으면 얼마나 맛있겠느냐. 맛있지요. 그런데 뭘 경유 안 했어요? 하나님의 기쁨을 경유하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경유하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경유하지 않으면 결국은 나는 살만 하기에 살아야겠다는 자기 영광을 포기 못한 게 돼버려요.

삼겹살도 못 먹는 북한 주민은 죽어라. 나는 살아야 되겠다. 이 이야기거든요.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는 이건 독단적인 자기 영광이에요. 그런데 삼겹살 먹으면 천국 보내줍니까? 천국은 삼겹살 먹으면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삼겹살 먹어도 들어가는 곳이 돼야 돼요. 그것도 김치와 쌈 싸먹어도 들어가는 나라에요. 천국은 삼겹살 아니라 오겹살 먹어도 괜찮은 나라가 천국이거든요.

그렇게 되려면 삼겹살 안 먹어도 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우리가 갖고 있어야 돼요. 삼겹살 먹을 위치도 안 되고 먹을 권리도 안 된다는데 만약에 누가 공짜로 해주면 거기서 감사와 고마움이 절로 나오겠지요. 그래서 제가 감사와 고마움이 있어야 주와 함께 있는 사람의 표시라 했지요.

과속했는데 평소에 경찰 나오지도 않았어. 하필 다른 사람은 다 봐주고 내 차만 걸렸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거짓말해야 되겠어요? 경찰한테 할 필요는 없지만 주님한테 감사해야지요. 왜 그러냐 하면, 과속에 걸리면 크게 걸리면 칠만 원짜리잖아요. 칠만 원이 만약에 휴지 조각이라면 별로 가슴 안 아프잖아요. 그런데 일당이 오만 원이라면 그건 가슴 아프지요. 어느새 경찰에 걸려봤을 때 나는 돈으로 사는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온 몸으로 짜릿하게 느낍니다. 1년 10억이 넘고 한 달 수입이 1억이 넘는 그 사람이 칠만 원 끊겼다. 그러면 가슴 아프겠습니까? 오늘 껌 값 나갔네.

그런데 맞벌이하는 부부인데 남편은 놀고 있고 아줌마가 빨리 배달하려고 나가다가 걸리면 배달도 취소되고 칠만 원 벌금내야 되면, 차라리 죽여주옵소서. 하겠지요. 주님께서 그래 소원대로 죽여줄게. 다음에 더 큰 것 걸린다. 왜? 죽어야 빨리 천국 갈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범사에 감사해야지요. 이런 식으로 죽으라고 인생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구나. 모든 게 주께서 손대야 눈이 시선이 생존에서 주께서 개입하는 순간만 생명으로 가지 개입하지 않으면 절대로 생존에서 못 빠져나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존이에요. 9 to 5, 계속 생존이에요.

그래서 뭘 잡을 때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소 잡는다고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군침 흘렸겠지요. 그런데 회막을 경유하지 않았어요. 이것 피 흘린 자로, 약속의 땅에서 피는 오직 하나만 용납됩니다. 제단에서 죽었던 자의 피. 그러면 너희들은 생존을 위해서 짐승을 잡았단 말은, “나 죽으면 안 돼”를 경유한 피잖아요. 그건 용납이 안 되지요. 나는 안 죽어야 돼, 라고 우기는 피, 우기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그건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없어요. 그래서 율법 준 거예요. 또 죄를 뽑아내는 거예요. 평소에 네가 어떤 행동할 때 죽어 마땅함을 알고 행동했느냐, 아니면 나만 살아야 된다고 행동했는지 그걸 주사기로 뽑아내는 겁니다. 율법을 줘서.

그런데 그 당시에 사람들이 음란하게 염소를 섬겼다는 말은, 그 당시 지역에서 짐승을 잡을 때 그쪽 동네의 알 수 없는 신에게 제사 드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상을 섬겼다는 말이 아니고, 우상이 다른 게 아니에요. 나를 살게 하도록 신이 계셨다면 무조건 우상이 되는 겁니다. 나를 죽게 하면 우상이 아니지만 나를 더 살게 했다면 우상이에요. 여호와나 삼위일체든 우상이에요. 그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은 오직 피, 피 먹지 말라는 말이에요. 어떤 피? 내가 스스로 살기 위한 피는 먹어서는 안 된다. 정말 너한테 필요한 피는 어떤 피냐 하면, 회막에서 매일같이 흘려지는 어린양의 피. 네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영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란 말이죠. 그걸 히브리서에서는 피 언약이라 해요.

성소에는 지성소라는 게 있어요. 7월 10일에 대제사장일 1년에 한 번 밖에 못 들어가요. 평소에는 향단이 성소에 있어요. 커튼이 쳐져 있고 북쪽에는 테이블이 있고 남쪽에는 등잔대가 있어요. 지성소는 평소에는 못 들어가고 대제사장도 1년에 한 번 밖에 못 들어가요. 7월 10일 대 속죄일만큼은 향단이 여기 있는 것이 아니고 들어가서 연기를 피워요. 너무 무서워서. 연기를 피우고 방울을 달아야만 들어갈 정도라면 얼마나 무서운 분이 이스라엘과 함께 있습니까. 뜰의 제단에서 매일같이 양 잡으라 했으니까 이건 무엇을 말하느냐? 밖에 돌아다니는 인간은 사람이 아닙니다. 죽은 인간입니다. 죽은 인간을 죽은 인간이라고 분명히 하는 그것이 율법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 되게 하는 거예요.

예배당 세우고 간판 걸고 목사 데려가다 절에 부처 모시고 중들로 장사하는 교회 세워서 저희들끼리 놀고. 이게 신앙생활 아닙니다. 종교놀이에요. 어떤 사람은 평생을 교회 놀이하는 아줌마들 있어요.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거예요. 노인들 봐주라 하면 무상으로 봐주고. 하여튼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 놀이하는 게 그렇게 신나. 기뻐. 구역 권찰 다 하고 돌아다니고 목사 수행원 역할 다 하고. 선지자 섬기듯이 섬긴다고 교회 놀이하는 것. 교회 놀이 왜 하겠어요? 나 하나 고생하면 자식들 잘 풀리겠지. 잘 풀리는 게 뭐지요? 돈과 명예와 건강, 이것 아닙니까. 잘 풀리는 건 좋은 데 잘 풀려도 나중에 지옥 가면. 잘 풀린 사람도 지옥 안 간 사람 없잖아요. 잘 풀려서 지옥 가잖아요.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냈다고 하던 사람들 어디 갔어요? 지금 지옥 갔잖아요. 마태복음 7장에 나오잖아요. 제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 누군데?” 제가 주일 낮에 그런 설교했잖아요. 주께서 성령 주시지 않았습니까? 나, 안 줬는데. 주께서 준 적도 없는 저희들은 받았데. 이게 코미디도 아니고 뭐예요? 성령 받았다고 룰루랄라, 이상한 소리하고. 할렐루야 외치고. 저희끼리 받았어. 난로 곁에서 뜨거우니까
박수 치니까 신경조직이 자극 받아서 열기 올라서 뜨거운 거예요. 체온 재보세요. 한 37도 쯤 올라가있지. 박수치니까 지가 에너지를 발산하니까 뜨겁지.

그래놓고 은혜 받았다고. 은혜 주는 데가 어디 있어요. 은혜는 주님이 주면 주고 말면 마는 거지. 은혜를 목사가 줍니까. 지가 뭔데 은혜를 줘요? 그리고 은혜 받을 자격이 됩니까? 사는 것도 밉상인데 뭘 달라고 해요. 하여튼 밉상 같은 시누이들 있지요. 오빠예, 하고 찾아와서 다 가져가고. 옆에 있던 시누이는 가져가라 하고. 아이고, 자기 주제 파악도 못하고.

기도란 감사기도 외엔 필요 없어요. 감사를 몰랐던 죄, 회개 그 기도 외엔 필요 없다고요. 햇빛 주고 공기 주신 것 감사기도 못합니까? 우리가 노력해서 햇빛, 공기 얻어요? 울산의 태화강 까마귀들 보세요. 볼 때마다 속 터지는데 주께서 친히 기르시잖아요. 들풀 보세요. 어떤 분에게 그렇게 답변했어요. 여러 가지 인생 고민하기로, 들풀처럼 사세요. 누가 들풀에 오줌 눠도 다 받아야 돼요. 더럽다고 피할 수도 없어요. 인생은 그냥 주는 대로 오줌이고 똥이고 뭐고 다 받아야 돼요. 그런데 주께서 친히 기르세요. 아궁이에 집어넣기도 하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주님의 결과물이에요. 우리 노력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아기가 잘 먹여서 건강하다. 얼추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잘 먹이도록 환경 조성을 주님이 하셨어요. 우리 애가 초등학교 6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컸습니다. 엄마가 잘 키웠겠지요. 그러나 왕따 당하지 않는 것도 주께서 허락한 거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 원대로 행복을 추구하고 요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경쟁사회입니다. 네가 죽나 내가 죽나 싸워야 될 사회에서 양심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양심이 어디 있어요. 양심 찾다가 굶어죽습니다. 대충 양심이요? 급해 보세요. 대충 양심도 사단 나요. 깨져버립니다.

17장 11절 봅시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이런 대목이 어려워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생명이 아니다. 아시겠습니까? 너희들의 먹는 피는 생명이 될 수 없어. 오히려 생명과 반대, 죽음을 초래할 뿐이죠.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1절에 나오죠. 피가 죄를 속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진 밖의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죄로 봐요. 하나님의 눈은 죄 덩어리라고 죄를 본다고.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살려주세요, 이렇게 나온다고. 뭐라고 살려주나, 죄를 살려주나, 악마를 살려줘요? 왜 살려줘야 되는데? 무슨 그런 의무가 있습니까? 인간들은 이야기해요. 만들어놨으니까 살려줘야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어졌지 너희들 살리려고 하나님이 나중에 계신 게 아니잖아요.

아버지가 됐으면 아버지 값을 해야지. 자식이 어려우면 도와줘야지. 그게 하나님 아버지 아니냐. 그렇게 주장하거든요. 그래 아버지가 살리는 자식은 따로 있어요. 누굽니까? 내 기뻐하는 자, 사랑하는 아들, 누굽니까? 예수님 살려줬잖아요. 예수의 나라가 하늘나라 아닙니까. 아들도 아닌 악마의 종을 성령을 보내서 천국 아들 만들어줬잖아요. 아바 아버지라 부르도록 했잖아요. 뭘 더 원해요, 뭐가 더 필요합니까? 아버지라 부르면 그걸로 범사에 감사하면 되지 무슨 욕심이 있어서 돈은요, 명예는요?

명예란 말은, 제발 수치 당하는 일은 안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걸 이야기한다고요. 밥 먹고 집에 돈 있어도 자살하는 이유가 뭡니까? 검찰청에서 나올 때 사진 찍히는 것 부끄러워서 자살하잖아요. 돈 받아먹었다고 자살한다고. 검찰에서 조사만 나와도 자살한다고요. 검사, 판사들 자살 많이 했지요. 공기업 임원들 많이 했지요. 여러분, 노숙자는 자살 잘 안 해요. 주로 나는 이 정도 명망 있고 이 정도 격식이 있고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남들에 의해서 포장된 사람들이 자살해요.

자살한 유명한 사람 있지요. 김성수 목사가 교인이 다섯 명쯤 됐습니까, 그 사람 지방대학 나왔습니까? 교인 열 명만 되도 자살 안 했습니다. 설교 올리면 만 명씩 보니까 자살한 거예요. 다음에 더 잘해야지. 설교 더 멋지게 해야지. 많은 사람이 알아보잖아요.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사람 되면 얼마나 좋겠는데. 서 목사 유튜브 안 올렸으면 무슨 짓을 해도 몰랐을 거예요.

명예, 이게 악마의 올무입니다. 함정입니다. 말려든 거예요. 돈, 명예, 권력, 건강, 결국 다 죽습니다. 요양병원 다 갑니다. 우리는 함정에 빠진 것을 우리 힘으로 못 빠져나오는데 함정에 빠진 이곳까지 피 흘리기 위해 오신 분 앞에 죄인 여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하신 말씀, 난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원칙이 우리 속에서 발산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을 이용할 게 아니라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뭐라고 먼저 이야기하시는지 그것부터 깨닫게 하옵소서. 정말 저주받아 마땅함을 이제는 새삼스럽게 인식하고 그것이 유일한 우리의 본 모습이고 현실인 것을 외면치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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