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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1 11:38:42 조회 : 4700         
대전 7월 30일 행3강 죄인 속에 심은 보증 : 성령 (구원의 확정) 이름 : 관리자(IP:124.59.85.46)

090730 행3장 죄인 속에 심은 구원의 보증 : 성령

 관리자(IP:124.♡.85.46) 09-07-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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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IP:220.♡.176.169) 09-08-31 12:01 
대전090730a행3장죄인속에심은구원의보증a


오늘 우리 공부가 사도행전 3장 할 차례입니다. 지난 번에는 사도행전 1-2장까지 했습니다. 한 달 전에 했기 때문에 복습 한 번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그림으로 설명해 드리면 여기에는 구약이 있고 구약 끝나는데가 예수님이 오시면 구약이 끝납니다. 예수님이 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이렇게 이야기 했거든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거예요. 아니, 천국이라는 것은 하늘에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오시면 천국이 오느냐.

예수님 뒤에 딸려서 뭐가 온다는 말입니까? 예수님 뒤에 딸려서 천국이 오죠. 예수님이 안 오시면 천국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가 있으매 천국이 왔다는 말은 예수님이 없으면 천국이 없다는 말이죠. 그럼 질문 해볼께요. 예수님 오신 천국 말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천국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아니죠. 예수님께서 이미 사람들이 천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천국 가고 싶어서 천국을 고대하고 있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면 너희들 잘 믿어라 그런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했느냐 하면 회개하라고 했죠.

회개하라 그 다음에 천국이 임한다 했으니까 "회개하라" 라는 말은 누가 했습니까? 예수님 본인이 했죠. 본인이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당신이 뭐야 당신이 뭔데 너무 건방을 떠느냐 말이죠. 우리 잘 믿고 있는데 당신이 뭔데 회개하라 다른 말로 하면, 요한 복음에 나오는 말씀인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이야기 했을 때에 다른 기존의 이미 천국을 가르쳤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이 이 예수님을 방치하겠습니까? 죽여 버리겠습니까? 죽여 버리겠죠.

보통 우리가 성경 보면서 예수님께서 천국 이야기를 할 때 이렇게 충돌이 일어나죠. 충돌이라는 것을 빼놓고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면 안 돼요. 예수님은 낯선,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아주 낯선 천국을 가지고 왔는데 이 천국은 회개하라는 것을 통해서 들어가는 천국인데 그렇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에 그냥 밥 하나 추가 하듯이 예수님 추가 해서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면 뭐가 성립이 안됩니까? 회개하라가 이루어지지 않겠죠.

회개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은 잘못된 천국이다. 잘못된 천국을 버리고 예수님 내가 생각하는 천국을 가거라 회개하라는 것, 뉴턴하는 것이지요. 이 쪽 길로 가다가 돌아서서 저 쪽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 쪽 길은 잘못된 길이고 이 쪽 길은 옳다고 그것을 회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때 회개하라고 했으니까 회개하라는 기준은 누가 제시하겠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죄가 회개하라는 기준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새롭게 하신 그 말씀이 회개하라는 기준이 되겠습니까? 둘 중이 어느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고 반성이 되겠죠. 그런데 새롭게 예수님께서 회개하라고 해놓고 그 다음에 말씀을 줘버리면 회개하고의 기준은 예수님께서 정하겠지요.

예수님 본인이 회개하라고 했으니까. 내 말을 듣고 회개하라고 했으니까 그 기준을 예수님 쪽에서 제시하죠. 예수님 쪽에서 제시한단 말입니다. 예수님 쪽에서 회개하라는 기준을, 이것은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성경에 있는대로 하겠습니다. 금식일 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서기관들..바.사.서..그 당시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금식일 날 금식을 했잖아요. 금식을 할 때에 예수님도 금식을 했습니까? 우리 재아가 이야기 해 보세요.

금식일 날 예수님께서도 금식을 했어요? 네. 안 했습니다. 여기 예수님이 금식할 때 금식하지 않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했죠. 보란듯이 금식일 날. 그 때 예수님의 기준이 뭐냐면은, 너희들 왜 금식일 날 금식을 하지 않느냐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데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면서 건강한 자는 내가 필요 없고 병든 자라야 내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회개 기준이 뭐예요? 소위 "나는 착한 사람인데 더 착해지기 위해서 금식하고 하나님 말씀 지키겠다" 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새로운 기준에 의하면 반성할 거리가 아니고 회개할 거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죄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죄인이 할 수 있는게 의인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거 하나 물어 봅시다. 죄인이 어떻게 하면 의인이 되죠? 재원이. 죄를..사모님. 예수님이 용서해 주시면..틀렸습니다. 정답은 안 됩니다. 될 수가 없어요. 이 땅이고 저 땅이고 안 됩니다. 될 수가 없어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얼마나 휼륭한 사람들인지 예수님이 이야기 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바리새인 보다 더 의가 낫지 아니하며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급의 윤리와 도덕자가 누구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바.사.서).

그런데 그들이 금식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식사하고 식사할 때 또 술이 들어가야 하고 술 잡숫고 식사해서 그래서 예수님 욕 얻어 먹었습니다. 금식일 날 술 먹고 해서 주위 사람들한테 욕 먹고 이렇게 할 때 누가 고자질하니까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하는 천국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이렇습니다. 사람이 신에게 뭘 바치고 행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서 바쳐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예수님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특징이 뭐냐면은 십일조하고 주일성수하고 교회 충성하고 봉사하고 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뭘 알아 차려야 하냐면 내가 뭘 해도 이것은 소용 없는 것이고 주께서 뭘 해도 다 소용있는 것이고 만약에 천국에 구원 받을 때 천사가 검사할 때면 뭘 행했느냐가 아니고 뭘 받았느냐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이 아직도 우리 속에 남아 있을 때 그게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이야기 해 봅시다. 죄인이 어떻게 하면 의인이 됩니까? 똑같은 질문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행하면? 제 질문 잘 들어 보세요. 죄인이 그 다음에 주체 아닙니까? 어떻게 행하면 행함의 주체가 죄인 아닙니까? 죄인이 어떻게 행하면 의인 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정답은 안되죠. 주체가 누구입니까? 주체가 죄인이 회개해도 안되고 예수 믿어도 안되죠. 아 진짜 갑자기 어렵게 되어 버렸는데 죄인이 예수 믿어도 구원 못받아요. 왜냐하면 죄인이 예수 믿는 것을 가지고 로마서에 보면 행함이라고 합니다.

자, 예수님 십자가 있습니다.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예수 피를 믿으면 내가 구원 받는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됐느냐 하면 인간이 예수님 피를 믿어 버리면 이것이 합쳐서 인간의 행함이 되어 버립니다. 믿는 행함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그냥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님 쪽에서 뭐가 오느냐면 성령이 와요. 이게 바로 지난 시간에 강의 했던 사도행전 2장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 내부에 낯선 믿음이 발생되어 버립니다. 낯선 믿음. 낯선 믿음이 오게 되어 버리면 어떤 믿음이냐면은 난 뭘 해도 죄인이며 내가 구원 받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용서 받아서 의인 되는구나 죄인인 내가 예수님의 성령의 피 복음을 인하여 십자가 피로 인하여 용서가 되고,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하는데 피와 살을 주게 되면 용서 되는데, 용서 되어서 의인 되는 이 모든 과정의 주체자가 내가 아니고 우리 속에 들어 온 예수님의 영이 이 일을 행한다는 것이 믿어 질 때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을 선물이라고 에베소서 2:8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을 내게 주셨는데 그 선물은 너가 행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그냥 선물이다. 따라서 왜 선물을 줘서 구원 시키는가 아무라도 내 행함으로 구원 얻었다고 하는 소리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잘 할 수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내가 잘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습니다." 라고 자부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낯선 믿음을 주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서 모든 영광과 공로를 하나님의 선물에 있게 한다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새롭게 나타난 천국에 들어가는 방식이 이 방식입니다.

로마서 11장 35절에 누가 한 번 읽어 보세요. 읽으신 분이 한 번 설명해 보세요. 뒤에 물음표가 있어야 확실한데.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무슨 뜻입니까? 글자 그대로 하면 누가 주께 드렸드리만 그 드린 것에 대해서 갚는 식으로 나한테 구원이 왔다 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예요? "내가 이렇게 십일조하고 주일성수하고 목사를 섬겼더니만, 교회에 충성했더니만 우리 가정에 복을 주셨구나" 라고 여기는 사람은 지금 전혀 믿음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 같으면 이런 감격이 나오죠. 아휴 내가 이렇게... 7월달에 장맛비가 내렸잖아요. 7월달에 비 내리기 전에 대전에 가물었잖아요.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여 비 내려 달라고 했잖아요. 비 내려 주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만약에 교회와서 비 내려 달라고 기도해 버리면 기도해서 7월달에 비가 내렸다면 어떤 논리가 성립이 되죠? 7월 달에 기도를 했더니만 응답을 받아서 비 내린 것이되죠. 그러면 어디에 어긋나요. 로마서 11장 35에 어긋나죠. 우리가 기도를 안 했으면 비가 안 올건데 기도를 했더니만 비가 온 것이 되버리면 35절의 말씀에 정면으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7월달에 장맛비가 와서 흡족하게 저수지에 물이 차 있으면 그것을 뭘로 봅니까? "하나님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또 우리를 살려 주시려고 이렇게 비를 내려 주셨군요". 이렇게 할  때 공로가 누구 공로가 됩니까? 주님의 공로로만 돌리는 것 이게 피조물이 해야 될 일입니다.

이번 수련회 때 다니엘을 했는데 다니엘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단5:23). 하나님께서 호흡을 주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에 보면 하나님께서 벨사살 왕에게 "내가 너에게 평소에 호흡을 주었다" 라고 하시거든요. 그러면 호흡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주셨죠. 우리는 밤에 잘 때 새벽 2시 45분에 호흡하기 위해서 종종 깨어 납니까? 깨어나요? 안 깨어나요? 아 숨쉴 때 되었는데 왜 자고 있지 이럽니까? 잠 자다 보면, 잠에 빠져 버리면 재아야 잠 잘 때 너 호흡할려고 잠시 일어나서 운동하고 이러지는 않지? 그러면 너가 잠 잘 때 누가 너의 심장을 뛰게 하지?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이지.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서 그 하나님께 감사했나? 안하죠. 은혜는 받아 놓고 감사는 안 하고 이런 도둑이 어딨어? 세상에 이래도 죄인이 아니라고!!! 햇빛과 공기를 선인과 악인에게도 주시는데 거기서 감사하는 사람은 성도 밖에 없고 불신자들은 받아 놓기는 마음껏 챙겨 놓고 조금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데모하고 불평하고 반항하고 다 하나님 탓이고 자기 탓 아니고 다 남들 탓이고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데 자기들 입 맛 땡기는대로 감사하고 안 그러면 불평하고.

기본적으로 결국은 신앙을 해도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다시 말해서 믿는 생활하지 않고 악에 바쳐서 교회 다녀요. 교회 와서 악 쓰고 다니면서 금요 철야 하면서 악쓰고 다니면서 남보다 악을 더 쓰면 보너스가 더 있을 줄 알고 악써서 헌신하면 그만큼 복 받을 줄 알고 뭔가 드리면 그게 돈 먹고 돈 먹기 식으로 드리면 받는 걸로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 테크닉, 종교 기술에 불과 합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사람은 악쓰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고 나는 죄인이었는데 이게 웬 은혜입니까? 웬 떡입니까? 하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아는 사람만 구원 받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해서 아직도 거기 몰두해 버리면 그것은 자기 부인이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삭제시켜 가면서 은혜를 주실 거예요. 그게 아니라... 자기게 있으면 자기게 퉁퉁 부어 있어 붓기가 안 빠지면, 자기 안에 자아가 퉁퉁 부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올 자리가, 구석이 없어요. 자아가 퉁퉁 붓고 있어요.

어린 청소년들 보면 생각이 자기 밖에 없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자기 밖에 모르니까 하나님이 지난 밤에 내 심장을 눌러서 움직이게 했다는 성경 말씀을 안 믿고 "그것은 기본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하고 "근데 왜 내 뜻대로 안 해주시는데요." " 내 기도 열심히 했는데 왜 기도 응답 안 해주시는데요." 불평 불만을 먼저 터트려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런 경우를 우리가 참 많이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그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방금 이야기 한 것이 구약 초반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 뒤에 천국이 따라오고 이 천국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선물받은 믿음으로 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이란 무엇으로 산다? 행위, 또는 행함. 여기 두 가지가 있죠. 종교적으로는 종교 행위가 있을 거예요.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교회에 봉사 충성하고. 윤리 도덕적으로는 남한테 해꼬지 않고 사회에 나가서 구제하고 어려운 사람 돌봐주고 자식들 잘 키우고 그런 것이 있을 거예요. 이 두 가지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게 뭐냐?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 보면 사모님 잘 아시죠? 마음으로 간음하면 간음죄 됩니까? 안 됩니까? 되죠. 이렇게 종교적으로 윤리 도덕을 행위로 주장하는 바.사.서에게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간음해도 간음죄가 된다고 할 때, 이게 만약 25년 동안 마음 속으로도 한 번도 간음 안 하다가 25년 생일 날 오후 두시에 마음에 품으면 그 사람 간음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25년 동안 한 번도 마음 속으로도 간음하다가 25년 나이 60되어서 잠깐 5초동안 간음하면 간음죄가 됩니까? 안 됩니까? 되죠. 되니까 이것은 결국은 그동안 잠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본성도 자기가 제대로 몰랐던 것입니다. 25년 후에 이것이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산상 설교에 뭐가 나오느냐면은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가지고 염려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거 염려 안 합니까? 해요. 우리 하루 일과가 이거잖아요.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을 한 글자로 하면 뭐가 되요? 돈이잖아요. 돈이니까 그 앞서서 이야기 한 것이 뭐냐 하면 "돈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라 만약에 돈을 사랑하면 누굴 미워함이라? 우리는 둘 다 할려고 해요.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것이 성립되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돈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은 누구를 미워하게 된다? 하나님을 미워하게 되고 만약에 더 놀라운 사실은 진짜 하나님 사랑하십니까? 진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뭐를 미워해야 해요? 돈을 미워해야 해요. 재아야 무엇을 미워해야 해요? 돈을 미워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사랑한다고 해놓고는, 하나님 사랑한다는 말만 하고 그 다음에 다른 말을 붙이지 않아요. "저는 목사님 돈을 억수로 미워해요"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자녀 교육 왜 시킵니까? 너는 나처럼 가난해서는 안된다. 자녀 교육, 과외 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 때문입니다. 돈 때문이예요. 돈 버는 기술 가르치기 위해서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뛰어나면 뭐가 된다? 뛰어난 것, 그 만큼 돈이 된다.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돈으로 인간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한 달 수익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그 사람의 인생 성공 실패를 돈으로 측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올 때도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이 차이가 나요. 돈 있는 교회하고 돈 없는 교회하고 차이가 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복 받았다는 의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말로 하면 수익이 많다는 뜻입니다. 좀 잘 산다 이말입니다. 잘 사는 집은 복 받은걸로 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하지 말라? 돈이 무엇을 방해한다?  돈이 하나님을 방해하는 거예요.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떼를 쓰는 거예요. 안되는 일을 떼를 쓰는 거예요. 큼직막한 낙타를 요만한 바늘 구멍에 집어 넣으려는 정말 우직스러운 정말 안되는 짓을 하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시니까 제자들이 놀라서 그러면 예수님 물어 봅시다. 그러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정답은 사람은 할 수 없다. 죄인이 어떻게 하면 의인될 수 있습니까? 여러가지 이야기 했지만 다 틀린 답이고 정답은 사람은 할 수 없다. 이것이 즐거워야 해요.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모든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스트레스를 종교라는 스트레스, 교회라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야 해요. 예를 들면 교회 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 발 끊었습니다. 구원 받습니까? 못받습니까? 못받아요. 그럼 교회 나오면 구원 받습니까? 못받습니까? 못받아요. 교회 나와도 안 나와도 구원 받지 못합니다. 정답은 사람이 교회 나온다는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냐면 교회 나와도 안 나와도 상관없이 이미 구원이 되었습니다 라는 요소을 본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강의 해야할 사도행전 3장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람 속에 하나님이 뭘 집어 넣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십니다. 성경대로 하면 뭘 집어 넣느냐면 성령을 집어 넣습니다. 성령을 집어 넣어 버리면 고후1장에 나오는 말씀이예요. 아파트 살 때 처음에 보증금 주죠. 보증금 주고 중도금 주고 보증금을 주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미 이 집은 기어히 내 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보증금을 주어요. 보증금을 주었다는 말은 너는 너의 것이 아니고 내것이다. 이미 너는 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2절 보면 이 보증금을 가지고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제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똑같은 문제입니다. 교회 다니면 구원 받습니까? NO. 교회 안 다녀도 구원 받습니까? NO. 그러면 구원 받는 것이 뭐가 있어야 합니까? 내가 교회 차 타고 다니는 행위가 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뭐가 와야 한다? 보증금이, 하나님이 주시는 보증금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고후1장 22절에 보면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도장을 찍으시고 요새는 사인이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느니라.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어떤 것이 궁금해야 하냐면은 그럼 목사님 왜 성령을 받으면 이미 완벽하게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으로 저한테 해주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 버리면 이제는 내가 어떤 죄를 짓더라도 내가 교도소에 들락날락한다 할지라도 내가 교회를 안나온다고 할지라도 내가 헌금을 한 푼도 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성경공부에 참석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내 행위와 상관 없이, 진짜 이혼을 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내가 구원이 됩니까? 라는 말을 저한테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눈초리 보니까 영 질문을 할 마음이 없습니다. 왜 질문을 안 하느냐면 사람은 구원 받았으면 됐지. 구원 챙겼으면 이젠 입 싹 닦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자기 평소에 가지고 있는 욕심과 욕구. 돈 좋아하는 것 돈 좋아하고, 집에 가서 자식들 돈 벌라고 닥달내고 하는 내 세상 성공, 내 하고 싶은것 하면서 줄창 나가기 바라죠. 구원 문제 해결 되었는데 "고맙습니다." 하고는 두 번 다시 안보고 도망치기 바쁘죠.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심보도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 중에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 주었는데 아홉 명 다 가버렸습니다. 돌아온 사람 딱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 돌아와서 말하기를 "나는 죄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자기 챙기기 급급하고 "아!! 오늘도 챙겼다 기적 챙겼다. 자기 신께 챙겼다. 고맙다." 라는 이것만 할 뿐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딱 돌아와서 하는 말이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은혜를 주셨다니 비로소 나는 죄인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약간 어렵습니다. 제가 다시 질문하고 답변하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든지간에 심지어 죄를 짓는것과 상관없이 왜 우리는 구원이 확정 되는 이유가 뭡니까? 라는 질문이 그거예요. 성령이 오게 되면 왜 우리는 구원이 확정 됩니까? 정답은 벌써 나왔습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뭐가 되냐면 우리는 죄인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죄인으로 살기 때문에, 죄인으로 살게 되면 여기서 나오는 것은 이런 소리를 하면 안되지만 위가 안좋아서 방구를 뀌면 그 주변 사람들이 방구 냄새를 다 맡죠. 죄인이 어디에 존재하든 그 주변에 죄가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죄가 뭐냐고 물으면 죄라는 것은 살고자 하면 반드시 나오는 것이 죄예요. 우선 나부터 살아야 되니까. 남이야 죽든 말든 나부터 살아야 되니까. 이것은 어른탓 할 것 없이 어린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린애들이 부모한테 잘하는 것은 부모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적응하는 거예요. 환경에 적응해서 자기 나름대로 한 번 살아 남고자 하는 몸부림치는 거예요. 갓난애기들도 마찬가지이고.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한쪽애에게 젖을 주면 저쪽에서 발로 차고 이러지요. 똑같이 나누어야지 만약에 빵도 똑같이 나누지 않고 차이가 나면 둘이 싸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은 날 때 부터 자기 밖에 몰라요.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이 어린애에서 어른 되었다고 달라질게 없어요. 인간은 어디에 존재해도 주변에 있는 것을 다 끌어 모아서 내 사는 쪽으로 재구성하게 되어 있어요. 남편을 만나든 자식을 만나든 누굴 만나도 내가 사는데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통박을 재고 계산 팍팍해서 유리하다 싶으면 만나고 불리하다 싶으면 안 만나고 저 사람이 나에게 이용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게 되어 있어요. 항상 중앙에는 나 밖에 없어요. 천상천하유아독존 하거든요. 불교에서 천하에 나 밖에 모릅니다. 이 집에 나 밖에 모르는 애가 두 명이나 있어요.

질문입니다.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이 성령 받았으면 달라질까요? 안 달라질까요? 1번 달라진다. 2번 안달라진다. 성령 받아도 안 달라집니다. 안 달라져야 해요. 성령 받아도 안 달라집니다. 왜 달라지지 않느냐면 30살 때 예수 믿잖아요. 나중에 교회와서 30년 다니면 60세 되죠. 60세 되는 사람들 행동하는 것 보세요. 처음 믿을 때 보다 더 못해요. 목사 장로 처음 교회 온 사람보다 더 못해요. 지금 성도 아닌 사람을 말씀하시는거죠? 성도나 성도 아닌 사람이나 목사 장로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요.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자기 관리하고 이건 나쁜 일이야!!! 정신 바짝 차려도 인간은 정신 차린다는 이성이 앞서는 것이 아니고 충동, 그 순간에 뭔가 돌아 버리면 자극 받으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성질이 나와 벌면 순간적으로 쌓아왔던 윤리 도덕이 한꺼번에 다 날라가 버려요.  인간은 거룩거룩 조심해야 돼 다른 말로 하면 조신해야 돼 라고 하다가도 누가 옆에서 건드려 버리면 성질, 성격 나옵니다. 30년 동안 참고 참은 것 한 번 푹 쑤셔 버리면 하루 아침에 폭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한 발짝도 십자가 앞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개를 묶어 놓으면 개 줄을 한 5미터 묶어 두면 제자리죠. 그런데 재아가 개 목걸이를 한 62키로 정도 묶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한 150미터 묶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자기는 자유라 하겠지. 62키로 묶어 놓고 그런 개 목걸이 없겠지만 하여튼 예를 들어서 62키로묶어 놓고 주인이 중앙에서 줄을 살살 잡아 당기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62키로 떠났지만 와 보니까 역시 십자가 앞이죠. 자기가 30살 때 예수믿고 60되었으니까 인간된 줄 알죠. 살살 잡아 당기면 맨 그 자리에서 한 발작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80되면 어때요? 혹시 집에 80된 어른들 모신 분이 있습니까? 어때요? 행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성자입니까? 죄인입니까? 완전히 개 입니다.

어른 보고 개라고 하면 안 되지만 개입니다.  삐지기 일등! 자기 밖에 모르는 일등! 그런데 그 모습이 결국 장차 누구 모습입니까?  지금 아주 젊잖은, 젊잖기 이를데 없는 목사 제 모습이 나이 80되버리면 두뇌에 시넵스라는 세포가 고장나 버리면 인간 아닙니다. 그걸 가지고 귀신 다른말로 하면 좀비, 걸어다니는 시체. 이것이 인간입니다. 똥 싸고 오줌 싸고 그거만 하면 다행이죠.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 밖에 몰라요. 노인네의 특징이 뭐냐면 자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이 젊을 때는 이 몸이 내 것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나이가 들면 이 몸이 남의 몸이 되어 있어요. 씻겨 줘야돼. 먹여 줘야돼. 입혀 줘야돼. 놀아줘야돼. 이게 짐이 돼요. 그러다 몸이 아파 보세요. 그냥 가위가 있으면 뚝 잘라가지고 자아하고 육체를 저 병원 창문 열고 이 몸은 갖다 뚝 던지고 싶어요.

자기는 아프고 싶지 않은데 이 몸이 아파 그래서 자기는 놀지도 못해. 자기는 머리가 안 아프고 싶은데 편두통이 생겨. 그러면 도대체 처음에 어릴 때는 이 몸이 곧 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면서 몸하고 자아하고 점점 분리가 돼요. 몸이 나의 이성, 똑똑한 윤리 도덕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려요. 이것이 로마서 7장에 나오는데 나는 착해지고 싶은데 내 속에 다른 성깔이 있어 가지고 나로 하여금 나를 추접스러운 인간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점잖은 체 하다가 음식 남았는데, 참 맛있는 고기 한 점 마지막 남았는데 전부 다 점잖은 체 하고 다 빼가지고 마지막 것을 안 먹는 거예요. 그 때 그 중에서 가장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것을 먹게 되었습니다. "아이구 고기만 밝히고."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먹어 가면서 "나 죄인이다 왜?" 결국 죄인이 고기 한 점 먹는 보너스를 받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먹고 싶어도 자기가 의인인 줄 알고 점잖은 체 하고 빼다가 결국 고기만 뺏기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죄인입니다.

인간은 왜 죄인이냐면 사람이 자아가 나빠서 죄인이 아니고 어떤 몸이냐 하면 죄된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한 자로 이야기 합니다. 육. 다른말로 하면 육신이라고 합니다. 육신은 육의 몸은 죽어야 되고 영의 몸으로 살려야 되죠. 로마서 8장.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면 왜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어떤 행위와 관계없이 구원이 확정되느냐 그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0절 누가 읽어 보세요.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몸은 죄로 인하여 그 다음에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살리라 이 원칙을 누가 지킨다? 1번 내가 지킨다. 2번 예수님이 지킨다. 몇 번입니까? 예수님이 지키죠. 여기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한테 예수님께서 작업을 걸어와요. 어떤 작업을 합니까? 우리의 육은 어떻게 하겠다고? 죽이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을 살리겠다고? 영을 먼저 보내 가지고 영이 만약에 여기에 침투해 있으면 우리 죽을 영의 몸은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행 작업이 무엇입니까?  우리 몸을 죽여야죠. 그래야 교체 되잖아요.

우리 몸을 죽이는 그 작업이 어떤 작업의 연속이다? 우리 몸을 살리는 작업의 전제 작업이죠.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 살림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 말이죠. 그러면 교회 왜 다닙니까? 교회 다니는 이유가 뭡니까? 자기가 죽는 이유를 알아야 해요. 그래서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해요? "주여 속히 죽여 주옵소서."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주여 속히 살려 주옵소서." " 나같은 죄인은 속히 죽어도 괜찮습니다. 그래야 속히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웃는 것은요...교회에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 봤습니까? 지가 죽을라고 커피 석 잔 먹어 가면서 금요 철야 하는 그런 교회 봤습니까?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이 뭐예요? 교회가 아닐 수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반대로 가르치니까. 결국은 뭐냐? 불교, 절에서는 뭘 해요? 살아 있는 나를 더 살리기 위해서 부처한테 기도하는 것이 절이잖아요. 그러면 앞에 있는 건물이 한국식이냐 고딕식이냐 그것을 떼놓고 건물은 바람 불어서 지붕이 홀라당 날아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교회 지붕하고 벽하고 날라가면 남는 것은 뭐가 남아요? 마루만 남죠. 마루만 남았는데 지금 금요 철야 기도한다고 사람들이 모여 있잖아요. 지금 앞에 있는 지붕 날라가니까 뭐도 날라 갔어요? 지붕위에 있는 십자가 신호도 날라갔잖아요. 벽도 날라갔으니까 그러면 남는게 뭡니까? 마루만 남죠. 이 마루만 보고 예상해서 이것이 교회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이미 성령이 왔기에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하지만 주께서 영원한 세계에 있으니까 어서 그 세계를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소원입니까? 사도 바울의 소원이죠. 이런 기도하고 있으면 이것은 뭐가 되고? 지붕과 벽이 없더라도 교회가 되고 "하나님 내가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도움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라고 나오면 이것은 뭐가 돼요? 앞에 있는 지붕하고 벽이 다 날라 갔으니까 이것은 절간이 됩니다.

이렇게 천사가 와서 판정하고 돌아갔습니다. 돌아간 후 이틀 뒤에 바람이 날라 갔으니까 이 사람들이 돈을 내가지고 건축 리모델링을 새로 했어요. 보니까 교회식으로 했고 지붕위에 십자가 달고 밤에는 네온사인 달았습니다. 이것은 뭡니까? 겉으로 보면 교회고 여기서 리모델링한 것이 실제로는 뭐가 되요? 이것은 절이 되겠지요. 사람이 얼마나 자신감 있으면 얼마나 성령 받은 것이 이렇게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성령 온 것이 얼마나 고마우면 아주 웃으면서 기쁨으로 자신 만만하게 "주님 지금 저의 몸을 데려가도 오히려 저는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얼마나 자신만만 합니까?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이런 사람을 뭐라고 하느냐면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의 어떤 환란이 와도 이런 사람을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요16:33)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면은 교회 바람 불어서 날라가도 괜찮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 문제도 신경 안 쓸 정도로. 자기 자신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뭘 걱정 하겠습니까? 반드시 벌을 받거나 저주 받거나 심판 받거나 이런 것을 걱정하겠지요. "아! 이러면 우리 집안 거덜나겠다." 걱정하겠지요. 이러한 두려움이 마귀가 주는 두려움이거든요.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게 되면 이미 그 사람의 몸은 예수님의 몸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발생해도 그 사람이 걱정할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몸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주님께 등기 이전 된 몸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몸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조차 없게 돼요. 필요 조차 없게 되면 내가 사는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살려 주는 인생이 되겠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뭘 찾아요? 인생을 살면서 뭘 찾겠습니까? 하루 스물 네 시간 동안 뭘 찾아요? 은혜만 찾겠지요. 거저 주신 것만.

아침에 눈을 떴으면 아! 오늘도 생명 주셨구나! 그런데 눈을 떠서 보니까 집이 아파트다 아! 아파트를 주셨구나! 딸이 피아노를 친다. 아! 피아노도 주셨고 피아노 치는 딸도 주셨구나! 집에 강아지가 보이면 아! 강아지도 주셨구나!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것을 알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이 나한테 주셨구나! 그러니까 이 사람은 스물 네 시간 뭘 찾아요? 하나님이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서 그 다음에 뭘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 이 사람은 교회 가나 안 가나 집에 있으나 어디를 가나 천국이죠. 찬송가에 있죠.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죠. 아마 절에 가는 사람은 그런 찬송을 못하고 기쁨을 못받고. 교회 가는 사람, 은혜 받은 분. 나는 죄인인 것을 알고 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느 교회 가나 집에 있어도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10분 쉽시다.
 관리자(IP:220.♡.176.169) 09-08-3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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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에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준다 지난 시간에 했거든요. 왜 성령을 보내시는가? 아까 한 것을 또 잊어 버렸으니까 다시 할께요. 성령이 오게 되면 특징이 뭐냐 하면 우리 몸을 죽여 버려요. 우리는 살고 싶은데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 몸은 죽여 버리고 죄의 몸은 죽고 우리의 무슨 몸으로 살리라?  영의 몸으로 살리라. 재아씨 몸 있죠. 나중에 구 십 넘으면 살겠어요? 죽겠어요? 죽죠. 그게 슬픈 이야기가 아니고 그게 입구야. 코스야 코스.

왜냐하면 그렇게 죽어 줘야 영의 몸으로 교체가 되어지는 겁니다. 그 이야기 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이 오는데 왜 성령이 먼저 와야 하냐면 성령이 누구 몸에서 왔을까요? 성령을 보내 준 몸은 누구 몸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그 몸이 아니고 이 땅의 몸이 아니라 부활하신 몸이예요. 부활하신 몸에서 성령이 왔다는 것은, 성령은 아까 62키로 개 목걸이 이야기 했는데 62키로 개 목걸이 줄을 중앙에서 살살 잡아 당기면 결국 어디로 올까요? 성령을 보내 준 분에게 오겠죠. 성령을 보내 주신 분이 예수님의 어떤 몸입니까? 부활한 몸이죠. 그러면 우리 몸도 주와 함께 뭐한다? 부활되리라. 참 쉽죠.

주께서 먼저 낚시대 던지면 고기가 낚시대를 물죠. 낚시대를 살살 잡아 당기면 그 낚시대에 물린 고기는 누구한테 와요? 낚시대 던진 낚시꾼에게 오겠죠. 낚시군이 어떤 모습이다? 초라한 모습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천사와 같은 몸이죠. 그러면 거기에 성령받은 사람이 딸려 가면 우리 몸도 어떻게 돼요? 예수님처럼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으리라. 알겠죠?

자, 그러면 어떤 학생이 피아노를 친다고 합시다. 주님께 잠깐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피아노 잘 치게 하고 남한테 봉사하게 하고 역시 하나님 믿어서 피아노 잘 치는구나 성공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성령이 와 버렸어요. 성령이 와 버리면 피아노 치는 것은 무슨 몸이냐면은 그 몸은 육신의 몸이거든요. 육신의 몸은 어떤 몸이다? 죽어가는 몸이죠. 그러면 죽어가면서 피아노를 치겠죠. 어떤 사람에게는 바이올린 켜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다. 이 사람은 피아노 치면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이올린 켜면서 죽어 가겠죠. 어떤 사람한테는 목사한테 왔어요. 목사는 복음 전하면서 죽어가고 있겠죠.

왜 이 사람은 피아노고 이 사람은 바이올린이고 이 사람은 목사냐면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서 자기 한계. 평소에는 자기 욕심, 자기가 상상한 그런 하나님, 엉터리죠. 그런 것을 이 사람은 피아노를 치면서 교체 하게 되어 있고 이 사람은 바이올린 켜면서 교체하게 되어 있고 이 사람은 목사 하면서 교체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하는 내가 좋은 것이 아니라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주님이 좋은 쪽으로 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와 가지고 줄을 살살 잡아 당기면 결국 예수님 쪽으로 몰리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해서 몰리게 되면 제가 한 번 물어 보겠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목사 세 명이 있습니다. 1번. 각기 잘 한 것을 자랑한다 2번. 자기 자랑하지 않는다. 몇 번 입니까? 2번이죠. 그것이 뭐냐면은 2장 42절 입니다. 봅시다.

42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4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렇게 자기게 없고 서로서로 우리는 다 같은 하나님 은혜 받았습니다 하고 모일 때에 이것이 바로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이 된다 이말입니다. 특징이 뭐겠어요? 왜 이렇게 합니까? 성령이 오게 되면 나는 피아노 최고다 나도 이게 최고다가 아니라 뭐냐면은 당신도 구원 받았군요. 나도 구원 받았어요. 예수님의 주신 은혜에 서로 감사할 때 이게 바로 주께서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3장 들어가겠습니다.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누굴 만나죠. 이거 어렵습니다. 그림으로 그리겠습니다. 제일 위에 예수님이 계시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해서 하늘 나라에 계시죠. 하늘에 계신 예수님.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여기 베드로와 요한이죠. 사도들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성령을 주었죠. 성령을 주게 되면 베드로와 요한은 무슨 사람이 됩니까? 영의 사람이 되면서 자기 자신을 뭘로 보았죠? 육신으로 보았죠. "나는 죽을 몸이다" 했습니다. 사람이 왜 죽을 몸인데 왜 이 땅에 살게 합니까? 자기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주신 것을 증거하라고.

자, 그런데 3장 여기에 앉은뱅이가 있어요. 베드로와 요한이 누굴 만났습니까?  앉은뱅이를 만났어요.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만났을 때 앉은뱅이는 뭘 요구합니까? "나는 걷기를 원하고 거지꼴을 면하다. 벗어난다. 나 거지 안됐으면 좋겠다" 하는 거예요. 이 소원은 영적인 소원이예요? 육적인 소원이예요? 이것은 죄에서 나온 육적인 소원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와 요한은 뭘 받았습니까? 영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육적인 사람을 서로 만나게 해주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만나게 해줬을 때 뭘 달라고 합니까? 육이니까 "돈 주세요. 나 돈 좋아해요. 당신이 하나님 믿는 사람이면 돈 주세요. 당신이 하나님 믿는 사람이면 걷게 해주세요." 이렇게 하니까 베드로가 말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저는 주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뭘 원했습니까? 걷기를 원합니다. 돈을 주세요. 나는 거지입니다.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육적인 것을, 죄에 대한 것을 원했을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원하지 않는 낯선것을 이야기 하죠. "나는 예수님 믿기를 원한다" 했어요.

그럼 문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믿으라고 해서 믿음이 생겼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앉은뱅이에게 믿음을 주었습니까? 1번 베드로와 요한이 믿으라고 해서 믿음이 생겼다. 2번 앉은뱅이에게 예수님께서 믿음을 주었다. 몇 번 입니까? 사도행전 3장15-16절 한 번 읽어 보세요. 재아가 읽어 보세요.

15절.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16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완전히 낫게 했다 하지요. 읽었으니까 한 번 설명해 보세요. 본인의 믿음입니까? 누구로 부터 나온 믿음입니까? 제가 건방지게 예수님이라고 합시다. 재아는 앉은뱅이 입니다. 옆에는 베드로와 요한이예요. 베드로와 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너한테 너가 원하는 돈은 줄 것 없고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했습니다. 그랬을 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데 내가 예수니까 여기 믿음이다 했을 때에, 자, 앉은뱅이가 걸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냐면은 누가 저 앉은뱅이를 걷게 했는가?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베드로와 요한, 너희가 걷게 했다고 말해요.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아까 16절. 내가 걷게 한 것이 아니고 너희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예수님이 주신 이 믿음이 앉은뱅이에게 작용해 가지고 죽은 자도 낫게 한거죠. 그렇다면 예수님은 지금 죽어 있는 거예요?  살아 있는 거예요? 살아 하늘에 계시면서도 그냥 아무 일 안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서도 구원 받을 자에게 믿음을 주시죠.

베드로와 요한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앉은뱅이에게 직접 믿음을 주시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할 일이 없죠?  왜 옆에 있죠? 아까15절에 보면 바로 예수님께서 앉은뱅이를 낫게 했다는 것을 남한테 말하는 목격자, 증인하는 거예요. 만약에 연극을 한다면 "여러분 내 동생이 바로 구원을 받았어요. 이것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내 동생을 구원 했습니다" 라고 전하는 일을 형이 하는 거예요. 또 다른 안 믿는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고 믿는 거예요.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를 친다고 할 때, 피아노 참 솜씨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은혜를 주셔서 한 것입니다" 라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둘(재원이, 재아)이 웃는 이유는 평소에 싸워서 이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연극이니까. 사이가 안 좋아도 사이 좋은 연극을 해도 괜찮아요. 자 3장 다 했어요. 질문 할 테니까 답변해 보세요. 왜 성령 받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앉은뱅이를 만나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났다는 말은 예수님이 지금 일을 하신다는 말입니까? 일 안 하신단 말입니까? 일 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일 하신다는 말은 저 앉은뱅이라도 예수님이 믿음 주면 지금 예수님께서 저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활동성의 일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결국 뭐냐면은 사명을 가진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보고. 만약에 우리 재아가 지금 하는 일이 없다면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그런데 할 일이 있잖아요. "너 사명이 뭐고?" 하면 "나 바이올린이 사명이예요." 라고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었어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에서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사명입니다. 개는 사명이 있어요? 없어요? 사명이 없죠. 개는 하루 종일 노는 것이 사명이예요.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이것이 일이듯이. 사람이 사명이 없으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가장 힘든 것이 뭐냐면은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나이 많아도 사명이 늘 있게 되어 있습니다. 3장 20절을 봅시다. 제가 읽을께요.

20절.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자 그림으로 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행동하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는 것은 자기가 행동한 것만 알아요. 지금 박태환이가 뭐하죠? 수영요. 박태환이가 이태리에 가 있는데 어떻게 알았어? 뉴스 나와도 시골에 농사짓는 할머니가 박태환이에 대해서 알겠어요? 할머니는 관심이 없어요. 박태환이에 대해서 김연아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지 않아요. 지금 감자나 캐고 있는 것만 관심 있어요. 여러분들은 관심이 있으니까 알지요. 사람들은 자기가 관심있는 것만 알아요.

지금 볼리비아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십니까? 나도 몰라요. 볼리비아에 관심 없으니까. 볼리비아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가 누구인지 몰라요. 그렇잖아요. 관심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것만 관심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이 예정하신 분, 예수님을 보내게 되어 버리면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을 망태기, 그물 가지고 예정한 노선. 철도 알지요? 기차 철도, 구원의 철도에 우리를 집어 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집어 넣어 버리면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예정하신 주님이다." 그러면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 버리면 우리의 남은 코스는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어떤것에 관심이 있든지 박태환에게 관심이 있든지 관계없이 주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코스대로 천국에 집어 넣어 버려요. 그 뜻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 "왜?" "누구십니까?" "나는 예정한대로 너한테 왔다." 예정이 뭐냐? 미리 정했다는 것입니다. 미리 정한 코스대로 가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중.고등부 설교 본문인데요. 잠언서 20장 24절.

이것은 나중에 재아가 유학 가더라도 노트에다 이 말씀을 적어 놓으면 괜찮아요. 재아가 한 번 읽어 보세요.

24절.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보세요. 우리의 길은 예정된 코스. 예정된 분이 우리한테 오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길이 아니고 우리 앞길은 예정된 코스로대로 가는데 그 예정된 코스에 대해서 안다? 모른다? 이 본문대로 모른다. 그러면 도착 지점은 안다? 모른다? 안다. 왜 예정된 코스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예정이 무슨 예정이냐면 "너는 이미 창세전 부터 구원 받았음" 이라는 예정이예요. 그러면 구원의 종착점은 뭡니까? 천국이잖아요.

예정된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믿게 하면 우리는 어떤 경로를 밟게 되든지 우리는 모르지만은 뭐는 안다? 마지막 골인 지점은 우리가 예수님 만나는 그 천국에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럴 때 제가 아까 이야기 한 구조.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처음과 나중되시는 분이 오시게 되면 우리는 마지막 주님 계시는 구조 안에 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 만약에 재원이가 어디가서 실패했다, 죄를 지었다 이렇게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신경써야 되겠어요? 그러면 안되죠.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자살하면 안되죠. 왜? 그것은 하나의 예정 된 코스니까. 어디로 가는? 천국가는 코스죠.

우리는 큰 길로 가기를 바라지만 주께서는 좁은 길로, 생명의 길로, 골목길로 접어들어서 가기는 결국은 천국으로 골인됩니다. 우리 구자근 사모님이 오용익 목사님하고 결혼하셨는데 왜 목사님하고 결혼하셨을까요? 정답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목사님이 '갈라서자" 라고 한다고 "갈라서자" 라고 하면 안되고 "당신이 그 따구 소리 한다고 해도 예정된 코스니까 나는 신경 안쓴다 당신 맘대로 하세요"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21절. 예정된 코스인데 이 예정된 코스가 예정은 창세 전에 예정 되었고 이것을 길게 쭉 깔아 버리면 역사가 되겠죠. 역사 속에 재아도 있고 재원이도 있고 전에는 아빠도 계셨고 아빠는 먼저 데려 가시고 엄마도 계시고. 코스 속에 이것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영원 전 부터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힘으로 구원 못 받기 때문에 예수님 자기 피로 용서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지요. 그럼 문제입니다. 창세 전 부터 이 사이에 누가 있겠어요? 어떤 분이 있는데 여기 있잖아요.

지금 사도행전 3장 21절 입니다. 누가 있습니까? 선지자.  창세와 예수님 사이에 선지자가 있죠. 예수님 이후에 누가 있습니까? 우리가 있죠. 그러면 우리하고 누구하고 동창생이 되는 거예요. 동창생이란 말은 같은 학교 출신을 가지고 동창생이라고 합니다. 같은 기에 졸업한 사람을 동기동창생이라고 합니다. 기는 달라도 같은 학교 출신이면 동창생이라고 합니다. 선지자하고 우리하고 동창생이 되는데 이 선지자의 특징이 뭐냐면은 예정된 코스에, 같은 기차에 선지자는 앞 칸 탔고 우리는 뒷 칸을 탄 거예요. 이래도 참 이해 안되면 문제다 그렇죠?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지금 죽었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했잖아요. 그 하나님의 우리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주님 말씀에 의하면 지금 죽었다? 살았다? 살아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 열차는 무슨 열차 입니까? 죽어도 사는 열차예요. 재아 아시겠어요? 이런 이야기는 검정 고시에 안 나오죠. 죽어도 사는 열차는 어떤 열차입니까? 이런 것은 안 나오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죽은 아브라함을 살려내는 하나님, 죽은 이삭을 살려내는 하나님, 죽은 야곱을 살려내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한테 오시게 되면 죽은 우리를 살려내는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그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어떤 관계예요? 같은 기차에 탔죠. 그러니까 우리는 뭐냐 창세 전에 예정된, 기차 앞에 뭐가 있느냐면 예정된 기차예요.

예정된 기차에 같이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애는 피아노 치고, 어떤 애는 바이올린하고. 어떤 사람은 대전에 살고, 어떤 사람은 해남에 살고.. 거기 살더라도 아브라함이 멀리 있으되 같은 기차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기차에 달리고 있습니다. 이 기차가 성령이 있으면 이 기차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자, 21절 다시 봅시다.

21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선지자들이 누굴 이야기 했느냐 하면 예수님을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그 기차의 운전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이 운전사이신데 창세 전의 운전사가 역사 중간에 타요. 선지자들이 하는 말이 나중에 이 기차 운전사가 탄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누굴 예정했냐면은 예수님께서 우리 구세주가 탄다는 것을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차 중간에 타시면 이 기차 중간에 타신 예수님께서 선지자로 말하면.. 그러면 이 예정된 곳에 예수님만 예정되셨겠어요? 예수 믿는 우리도 예정되었겠어요? 미리 예정된 거예요. 25번째 56번째 1126번째 칸에는 "대전에 사는 가족들이 탑니다" 라고 미리 예정된 거예요.

이것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예정되었다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뭘 쳐다 봅니까? 선지자들은 예수님 하신 일을 이야기 할 것이고 우리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이 기차에 어떤 작용을 할거라고 하거든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느냐면은 "그를 하나님께서 받아 두셨다" 이 말이죠. 예수님께서 승천 하시면 누구도 승천 됩니까? 기차 자체가 들려 올라가죠. 기차에 탄 우리도 결국은 하나님께 들림 받죠.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무덤에 있는 자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요. 팬티를 바지 바깥에 입은 사람을 뭐라고 하죠? 슈퍼맨. 슈퍼맨이 하늘에 올라갈 때 쫙 모으고 올라가죠. 예수 믿고 죽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듯이 그들도 같이 딸려서 올라가는데 그걸 가지고 휴거라고 합니다. 휴거는 한자 말인데 들려서 올라가는 거예요. 청소기로 빨아 땡기면 먼지가 빨려 들듯이 빨려서 올라가요. 개들은 몰라요. 개들은 그냥 살다가 가죠.

우리 인간들은 이것을 알아요. 안 믿는 사람들이 "그것은 구라야 구라야 거짓말이다" 라고 하면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이것이 구라가 아니고 실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먼저 올라가신 것입니다. "너는 어떻게 믿어지지 난 봐도 안 믿어지는데" 그러면 이렇게 하세요. 그 올라가신 분이 성령을 보내 주게 되면 성령 받은 사람은 그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만약에 안 믿는 사람은 뭘 안 받은 사람이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4장 2절을 봅시다.

2절.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여기 보면 누가 싫어한다고 했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은 도 전함을, 십자가 그것을 전함을 싫어한다. 왜 싫어할까요? 그들은 성령을 받지 않아서 입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당연히 싫어합니다. 성령을 안 받으면 우리 속에 악령이 있어요. 악령은 복음이야기 하면 무조건 싫어해요. 얼굴 빛이 달라져요.

사람은 참 좋은데 복음 전하면 안색이 바뀝니다. 그것은 자기도 숨길 수 없는 자기 본색을 복음이 들어올 때 접촉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술을 먹게 되면 분명히 술을 먹을 때는 술이 들어 간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나중에 술을 많이 먹게 되면 술의 특징이 뭐냐면은 속에 들은 술 아닌 것도 바깥에 토하게 합니다. 복음이 그래요. 복음을 거부하는 요소가 들어가면 복음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더러운 것이 함께 토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듣게 되면 내가 얼마나 복음을 평소에 싫어했는지. 복음 듣기 전 까지는 하나님 좋아하고 예수님 좋아하고 하다가 갑자기 복음을 듣게 되면 "당신은 죄인이며 당신은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며 오직 성령이 와야 구원 받습니다" 하는 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속에서 잠자고 있던 마귀가, 악마가 깨어나 가지고 "나하테 그 따구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휼륭한 사람인지 남들이 나한테 다 그런 소리 하는데 뭐라고 나보고 죄인이라고 두 번 다시 나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말라" 고 들을 때 성경은 그것을 즐거워하라고 했습니까? 슬퍼하라고 했습니까?

"즐거워하라 너가 구원 받았다." “너도 저 사람하고 똑같은 사람인데 너는 복음을 듣고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너 속에 성령이 임했다." "너는 오늘 밤 죽어도 천국에 간다." 참 이런 이야기를 공개 석상에서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 의로 구원 받는다고 했다가 쫓겨 났습니다. 자 7절에 봅시다.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해 놓고 그 다음에 8절을 봅시다. 8절을 보면 이에 베드로가 무엇에 충만했다고 했습니까? 성령에 충만하다고 했죠. 우리 두 청소년들도 앞으로 성령 받았으면 성령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잠깐 멈추었다 하겠습니다.
 관리자(IP:220.♡.176.169) 09-08-31 12:10 
대전090730c행3장죄인속에심은구원의보증c


사도행전 4장 8절에 보면 베드로가 뭘 충만했다고 했습니까? 성령에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결합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는 안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결합이 돼요. 하나님은 자기 피조물이기 때문에 들락날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여러분 성령을 받고 싶죠?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죠? 그러면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것이 문제인데. 성령 받은 사람 특징이 10절에 나오죠.

10절.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십자가 못박으면 사람이 죽어요? 살아요? 죽지요. 보통 죽으면 끝이잖아요. 죽으면 끝인데 그런데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죠. 성령을 통해서 살아난 거죠. 예수님이 성령 받아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났다면 만약 우리도 성령 받았다면 우리도 어떻게 돼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겠어요? 죽겠어요? 살겠지요. 지난 번에 강의 했잖아요.

포크레인 알죠? 성령이 포크레인이라면 어떤 시체한테 성령이 임하니까 어떤 시체? 예수님. 예수님 시체에 성령이 임하니까. 죽은 시체를 포크레인이 집어서 올리듯이 그 포크레인을 작게해서 우리 속에 들어오면 죽을 우리 몸도 그 포크레인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 문제 입니다. 다음 중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네 사람 중에서 몇 번 입니까? 1번. 석가모니 2번. 목사님 3번. 공자님 4번. 예수님 당연히 4번이죠. 그걸 묻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아는 것이니까. 왜 앞에 세 사람은 왜 안 됩니까? 세 사람은 왜 안되는 것입니까? 아시는 분 없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난 그 정보, 그 정보가 능력으로 담겨 있는 사람은, 앞에 세 사람은 부활이 없잖아요. 죽었다가 살아난 분에 의해서만 그 사람도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12절에 나옵니다.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른 이름을, 이름이죠. 이름. 이름은 사람 이름인데 공자, 부처, 목사 이근호 이름들이 계속 나열되어 있는데 그 많은 이름이 왜 우리를 구원 못하느냐 말입니까? 이 많은 이름은 육에서 나온 이름이거든요. 죽으면 죽는 이름이거든요. 오직 한 이름 주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은 죽었다가 살아난 이름이거든요. 우리는 서로를 믿으면 안 돼요. 내가 우리 아버지를 믿는다든지 엄마를 믿으면 안 돼요. 여기 재아 재원이는 엄마를 믿으면 안 돼요.

누굴 믿어야 돼요? 예수 이름 외에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적이 없습니다. 누구 이름입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가 구원을 얻으리라" 그 말이 다른 이름은 안되기 때문입니다. 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성령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안 받은 사람은 어떻게 이야기 할까요? 공자도 부처도 예수도 다 인간인데, 다같은 4대 성자인데 "난 예수 보다도 우리 엄마가 더 좋아 왜? 밥해주기 때문에 난 공자보다도 우리 아빠가 더 좋아 왜? 날 먹여살릴려고 돈 버니까" 라고 할 수 있겠죠. 왜냐면은 성령 안 받은 사람은 같은 인간의 이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름끼리 만든 탑이 있어요. 그 탑이 무엇일까요? 바벨탑. 그 바벨탑의 목적지가 어디 있을까요? 하늘 꼭대기. 사람들은 가만 놔두어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추구하는 것입니다.

피아노를 친다 그럼 피아노를 칠 때 그냥 안치죠. 목적이 있잖아요. 세계에서 제일 잘 치는 사람. 이미 세계보다 뛰어난, 그럼 세계보다 더 뛰어난 것이 뭐냐? 하늘보다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영웅, 영원히 하늘까지 높아지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대충 켜는 것, 아니죠. 남들보다 더 뛰어난..홉스라는 사람은 "끊임없는 전진" 끊임없는 뜻이 뭐예요? 끊어지지 않는, 전진은 무엇인지 알지요?  "전진" 연예인 이름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전진을 하여 만대만, 천만천 만나면 서로서로 투쟁하는 것. 이것을 만인대 만인의 투쟁이라고 홉스가 이야기 했습니다. 나중에 여러분 철학 공부를 해야 돼요. 인간이라는 것은 만약에 내가 오천 원 가졌다. 오천 원 가진 것 기쁠까요? 안 기쁠까요? 없을 땐 오천 원 기쁘지요. 그런데 오천 원 가진 것을 자랑할려고 하는데 앞에 만 원 가졌다. 아이구 기죽어 들어간다 말입니다.

대전에서 피아노를 제일 잘 친다. 우쭐 되었거든요. 전국 대회 나갔다. 예선 탈락. 기 팍 죽죠. 이게 뭐냐면은 끊임없이 인간은 끊임없이 원인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무조건 앞서야 해요. 이것을 가지고 비드게스타(?)는 두 글자로 게임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게임이다." 이 게임은 끝이 없는 게임. 온 몸이 피곤할 때까지 계속하는 게임이예요. 고스톱이 끝나지 않는 고스톰이예요. 그 다음에 좀 쉬었다가 연습해서 또 도전하고 도전하고 왜 해야 하는데 이유 없어요. 무조건 남을 이겨야 해요.

자, 공무원 시험 치는데 공무원 10명 뽑는데 2명이 왔어요. 2명이 합격 했어요. 기분 좋습니까? 기분 안 좋습니까? 기분 별로죠. 공무원 10명 뽑는데 현재 공무원이 백대 일이거든요. 공무원 10명 뽑는데 천 명이 왔어요. 그런데 합격되었어요. 기분 좋죠. 왜 동일하게 합격되었는데 왜 한 쪽은 기분 좋고 한 쪽은 별로예요? 그것은 자기 혼자가 아니라 주변 상황과 뭘 했어요? 게임을 했어요. 인간은 취직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남을 이기는 것에서 쾌감. 어떤 게임을 해서 게임장에서 승자가 되는, 최후의 남은 자가 되는 그 게임에 들어가야 자기가 유쾌해져요. 기분 째져요. 기분 좋아져요.

그래서 사람은 남을 이기기 위해서 자주 사람들 있는 곳에 자주 참여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혼자 살면 재미 없어서 못 살아요. 왜 재미 없을까요? 혼자 치는 고스톱 재미 없어요. 같이 쳐야 재미있어요. 왜 재미있을까요? 자꾸 내 욕망이 게임을 원하거든요. 자꾸 내 욕망이 나를 가만 두지 않고 게임에 몰두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이라는 것은 결국은 내 욕망에 놀아나는 허수아비가 인간입니다.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고... 

참 그런데 이런 죄 밖에 모르는 인간을 예수님께서는 "야!! 너 게임 안해도 구원 받아" 어떻게요? 게임에서 벗어난 이미 승리하신, 이미 최후의 승자가 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가 게임에서 지더라도 구원받게 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이름과 섞이지 않은 이름입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13절을 봅시다.

13절.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뭐가 없는 범인? 학문 없는 범인. 그냥 보통 사람. 범인이라면 죄 지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 신학교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냥 고기 잡던 사람인데 말하는 것 보니까 기죽지 않거든요. 우리 두 분의 엄마가 그래요. 무슨 이야기 하면 기 죽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기탄없이 말해요. 앞뒤 재지 않고 그냥 좋게 이야기 해서 성령께서 이야기 하는...그렇게 하니까 베드로나 우리 집사님의 공통점이 뭐냐면은 "어쨌든 우리 힘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잖아"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과 없이 마음껏 이야기 하죠.

그러면 이 말에 반대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받은 사람이 "우리는 우리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다 행하신 것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라고 하니까 거기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반대하는 취지가 뭐예요? 그 반대한다는 것이 뭐예요? 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뭐예요?

다시 이야기 할께요. "우리는 아무 행함도 없이 예수님 믿기만 해도 공짜로 구원 받는다" 라고 했을 때 거기에 "반대한다" 라는 취지가 뭐예요? 반대한다는 것이 뭐예요? 결국은 사람은 구원 받는것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뭘 해서 구원 받는다? 자기 잘나서 구원 받는다는 거예요. 게임에서 승자는 구원 받고  패자는 지옥 간다는 말 아닙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게임은 승자만 영광을 받고 패자는 저주받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과연 천국과 지옥도 그랬을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패자고 누구나 승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만 승리자고 그 승리자를 "우리는 죄인이며 예수님은 의인입니다" 라고 믿는 사람만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게임을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구원 받는 것도 자기 평소 하는 식대로 자기가 승자가 되어야 구원받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7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17절.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이것이 그 다음에 뭡니까? 어디에 퍼지지 못하게 한다? 민간에.  민간이 뭐예요? 세상에 이렇게 퍼지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재아가 이야기한 가운데서 친구들이 "그 이야기 딴 데가서 하지마" 라고 자제시킨 이야기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무슨 이야기인데? 뒷담화ㅎㅎㅎ그러니까 자제시킬만 하지. 진짜 "우리는 아무리 착해도 구원 못받고 오직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할 때 "쉿 그러면 게임이 안되잖아"

한국의 성남하고 유벤투스하고 축구를 했어요. 몇 대 몇이예요? 3대 0으로 한국이 졌거든요. 피스컵이라고 통일교에서 주최하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만약에 3대 0인데 마지막에 심판이 예수님이라면 성남 백 점. 유벤투스 빵 점. 이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면 축구 게임 왜 했어요?" "누가 하라고 했어?" 마찬가지로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도 그 것 가지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믿으라" 그것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는 게임인데 잘나야 구원 받는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난 것도 없고 아무 착한것도 없는데 예수님이 착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의인이고 우리는 죄인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2009-08-27 14:26:47 녹취 : 이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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