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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12:48:47 조회 : 159         
십자가에서 함께 죽음 이름 : 이근호(IP:119.18.83.168)

갈라디아서 2:19-20 십자가에서 함께 죽음


내가 나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십자가 안까지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결국 나를 더욱 더 살려내는 식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나의 죽음’이란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헐어버렸다고 자부했던 율법 행함의 의가 나 안에서 다시 세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이해하려면, 십자가 이후에 어떤 것들이 십자가를 욕되고 하고 모욕하는 태도인가부터 점검해 봐야 합니다.


달리 말해서, 여전히 나 안에 어떤 요소들이 기어이 내가 나에게 집착하게 만드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는 ‘행함’에 대해서 분석하여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행함’은 결과물을 기대합니다. 나를 없애는 결과물이 아니라 나를 더욱 뚜렷이 드러내기 위한 결과물을 원합니다. 반면에, 십자가란 ‘죽음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행함의 끝은 이 땅에서 ‘죽음이었더라’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비교할 때는, 주로 산 사람과 산 사람끼리 하게 마련입니다. ‘죽은 자의 업적’하고는 비교할 경우는 있지만 ‘죽은 자의 죽음 그 자체’와 비교하지는 않습니다.


즉 그 어떤 ‘죽음’도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대가 죽는 것을 좋아하는 경우는 평소에 극도로 그 사람을 미워한 자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미운 이유는, 자신의 살 권리‘를 옹호하지 않고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앞세우면서 자기 사람을 찾습니다.


평소에 인간들이 시도하는 일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죽음 그 자체 이야기’를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골라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이 보기에 ‘이미 죽은 자’입니다. 돌아가신 자입니다. 그런데 그 ‘돌아가신 분’이 그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 계십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이미 몽땅 ‘죽은 자의 천지’가 됩니다. ‘성도의 죽음’이란 육신이 늙어 힘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자신이 ’이미 죽은 자‘임을 증명해보이는 현상임을 알게 됩니다.


이럴 때, 이미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서 죽은 자에 속함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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