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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0 16:03:23 조회 : 5018         
전도(선교)와 교회성장과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 이름 : 관리자(IP:220.81.176.141)


전도(선교)와 교회성장과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

1991년 9월 21일  이 근 호 목사,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2 (p 126)


Ⅰ. 서 론

 교회가 성장하려면 무엇보다도 전도를 강조해야 된다는 미신이 한국교회 전체를 뒤덮고 있다. 차라리 솔직하게 이왕 벌린 [교회사업]에 성공하고 싶다고 외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오는 권태와 무기력을 목회자나 교인들이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의욕은 배출되어야 하고 전도하라는 계명의 무거운 짐은 때마다 해소시켜 주어야 속 편하게 하나님을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전도하여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면 주님을 예정보다 앞당겨 오시게 할 수 있는 방도라도 되는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주님의 부탁에 있어 기본취지를 제외한 모든 면에 인간의 뜻이 얼마든지 개입해서 융통성을 부려도 된다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는 본문인가 아니면 제자 하나하나 생기는데 있어 주님의 바른 뜻이 개재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어찌되었던 본문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주님이 요구한 전도와 오늘날 교회들이 즐겨 차용하는 교회성장주의와 상관없음을 보이는데 주력할 것이다.


Ⅱ.본 론

 1. 전도의 원천

 전도의 원천은 교회의 지속적인 유지보존이나 세력 확장이라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전파라는 취지에서 시작이 된다.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가 아니냐는 반문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답변을 생략할 수밖에 없고 그런 질의에 대한 긍정적 해답을 얻고자 하면 가톨릭으로 가면 된다.

 그동안 신학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왔다. 그러니깐 사람들이 편하게 생각하기를 [하나님 나라]가 다 확장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나라]답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 나라]가 성취되었기에 어떻게 널리 전달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룩하신 [하나님 나라]는 한 치의 하자도 없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야 완전해 진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미성립이나 불완전성으로 오해될 소지가 남아있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었기에 확산시킬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완성되지도 않는 [하나님 나라]라면 우리의 구원에 무슨 효과를 줄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인간의 전도가 [하나님 나라]의 미진한 부분을 마저 채운다는 비기독교적인 발상을 우리는 경계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구원의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그것은 복음으로 전달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점을 파악할 수 있는가 하면 전도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할 수 있다. 교회의 설립은 복음 전달의 결과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세워진 교회에서 전해야 하는 것은 자기 교회가 아니라 그 교회에서 전해야 하는 것은 자기 교회가 아니라 그 교회가 전수 받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

 천하가 다 아는 것처럼 죄로부터 인간의 구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복음이 지니고 있는 위력은 무엇인가? 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에게 죄 속에서 탈출시킬 그만한 언약적인 근거를 이미 마련하고 있는 것이 복음이다. 복음을 의지하는 자에게 왜 죄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그것은 복음만이 지니고 있는 죄의 면책작용의 혜택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할 때는 죄와는 그야말로 천리만리 동떨어진 형태와 방법으로 전달되어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여기서부터 교회성장을 지향하는 자들의 인식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복음이란 죄와 무관하게 전달된다는 이 대전제에 그들의 비복음적 성향이 하난 둘씩 밝혀지는 것이다.

 복음이 그렇게 싫어하는 죄가 무엇인가에 그들은 깜깜했던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복음을 안 전하면 죄 인줄 알았다. 왜냐하면 주님의 대명령이기 때문에 그런데 주님께서 전하라고 명령하신 그 복음에 대해서는 정작 오해하고 만 것이다.

 복음이 겨냥하고 축출하고자 했던 죄악을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차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이 겨냥한 죄악이란 흔히 유교적 풍토에서 얼마든지 쉽게 파악되는 사회적 규범적 범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비언약적인 모든 사고방식 자체가 죄가 되며 복음이 이 비언약적인 발상을 고발하면서 전달되어 진다.

 그러면 비언약적인 발상이란 어떤 발상인가? 창세기부터 다 들추어낼 수는 없고 간단히 추려서 말한다면 영웅주의이다. 라멕의 영웅주의, 네피림의 출현, 니므롯의 등장. 바벨탑의 건립취지, 바로 이런 것들이 비언약적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온 지상에 흩으시고 그들에게 제대로 된 언약정신을 펼치시는데 이 언약적 정신은 하나님의 희생정신이며 세상과 거꾸로 살고자하는 정신이며 살고자 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죽고자 하면서 사는 삶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철저하게 영웅주의하고는 담을 싼 사고방식이다.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희생정신을 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전달과정에서도 이 정신이 비쳐야 되고 또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도 이 정신에 합류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말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제자 삼는 과정이요 흔히 언급하는 전도이다.

 그러니 전도 자체가 교회 팽창주의나 교회성장주의를 혐오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이러한 정신이 빠진 복음은 복음이 아니거나 복음을 오해하고 있다는 실증이 더 날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의 수를 기록한 것은 주님의 능력의 지속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숫자가 계속 유지되었다 라는 것을 보기보다는 그 많은 자들이 자의와 타의에 의해 각처로 흩어졌다는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코 그들이 그 숫자를 그리워하면서 다시 모이지 않았다. 만약 숫자 팽창에 관심을 더 가졌으면 복음 전파에 차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또 그들이 수의 증가에 자극 받아 전도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자극 받아 전도했다. 통계에 연연하기보다는 종말이 이미 되었다는 긴박감을 복음 안에서 발견하는데 기쁨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님의 계속되는 일관된 사역에 기대를 가졌다.

 그래서 이모든 점을 감안해 볼 때. 전도의 핵심은 과연 우리가 바른 복음을 바르게 전하고 있느냐에 있었지 얼마나 사람들을 교회에 데리고 왔느냐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각가지 이단사설이 난무한 그때나 지금, 주님께서 한결같이 우리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바른 복음과 진리이다. 그리고 이 복음 안에서 한결같이 고난이 강조되어 있다.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았기에 주어지는 필연적인 현상이 바로 고난이다.

 바른 복음을 전해도 사람이 오지 않은 점에 대해서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 사도 바울이 우리보다 먼저 언급해 주고 있다. 이것 자체가 구약의 성취라고 말이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행 28:26-27)

 전도란 종말 때의 언약의 백성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으로 구원과 심판을 가름하는 기준을 그들에게 알려주어 하나님의 택한 자가 누군가를 걸려내는 작업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대로 바로 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책하지도 않는 자가 구원받았노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교회성장주의자들이 말하기를 전도를 어떤 식으로도 막는 것은 사탄의 행위라고 규정하는데 이것은 백 번 천 번 옳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데 전도하지 않는 자는 신자가 아니라는 것도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전도라 하느냐에 대해서는 성경대로 정해져야 되지 결코 교회성장차원에서 언급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2. 교회성장주의자들의 근본취지의 비복음성

 이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교회를 중심으로 일하며 교회 밖에서는 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란 종말 때 나타나는 언약의 동체이다. 따라서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 말을 들으려면 언약이 있어야 하고 그 언약을 밖으로 드러내어야 한다. 비언약적인 요소로 무장하고 결집되어 있으면서도 교회중심 운운하는 것을 우리는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전도할 때도 사업식으로, 목회하는 것도 회사 경영하는 식으로 하면서 과연 교회를 들먹일 자격이 있을까?

 또 이들은 말하기를 완전한 교회가 이 지상에 어디 있는가 한다. 교회가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도하면, 한 명도 구원할 수 없다고 주창한다. 우선 대중 사람들을 일단 교회에다 모아놓고 그 다음 작전으로 그들을 교육하면 되지 않는가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이 성경에 어는 부분과 마찰되는가 하면 주님이 생각하는 완전성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점과 충돌된다. 교회가 지향하는 그 방향이 교회와 복음의 완전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얼마나 풍족한 실적을 올렸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시켜서 한 일인가 아닌가, 주님의 주신 방법으로 했는가 아니했는가, 주님 주신 힘으로 했는가 아니했는가 로 판명되는 것이지 실적이 얼마나 미미한가와 상관없이 말이다.

 왜냐하면 교세가 미미하든 굉장하든 어디까지나 주님이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그 자체가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볼 수 없다.

 교회성장주의자들은 복음을 전한다면서 복음의 실체도 모르기에 일단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모이게 하는데 주력하므로 주님의 교회에서 인간의 교회를 변질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이 많이 모여야 부흥이라고 가르쳤으므로 주님이 생각한 교회다움에 왜곡을 가져다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들은 또한 복음의 내용을 복음전달 수단의 비복음성으로(사업적 성장방식) 피해를 보게 한 책임을 져야한다.


Ⅲ. 결 론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죄용서를 전하고, 복음이 무엇을 거부하는지도 모르면서 거북스러운 사업식 착상으로 복음을 남발한 이들은 중세의 면죄부 판매와 같은 맥락에서 평가 되어야 마땅하다. 누가 주님의 참사역을 반대했던가? 복음이 무엇을 극복하고 생겨났는가? 바로 영웅주의, 권세주의가 아닌가? 섬김받는 자가 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고, 마음을 높은데 두지 말라는 성경 말씀이 과연 복음 전달에 지장이 되는가? 도움이 되는가?

 만약 사업식으로 전하는 전도에는 큰 방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참복음이 바르게 전달되는 데는 오직 이 방법뿐이다.

 신자(信者)는 필연적으로 전도하게 되어있다. 빛이 어찌 빛을 안바랄수 있으며 소금이 어찌 그 맛을 나타내지 않을 수 있으리요. 생명이기에 생명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인위적 방법을 다 동원해서 세일즈 하는 식으로 판촉방법으로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시키시는 방법이 아니다.

 누가 진정 전도의 방해자인가? 그것은 교회성장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주님의 전도명령과 무관한 사람들이며 자기 탐욕을 자기가 주체 못하는 자들이다.

 죄를 이기라고 외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에게 사로잡힌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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