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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4 16:27:08 조회 : 6256         
[기독교 세계관의 이해와 적용]을 읽고 이름 : 관리자(IP:220.81.176.141)


[기독교 세계관의 이해와 적용]을 읽고


1992년 10월 19일 이 근 호 목사,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3 (p 228)


 인간이 글을 써야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써봐라 자기 이야기 밖에 안 되는데.

 기독교인에게는 모든 활동에 있어 하나님의 사명과 연결된다. 그 사명은 복음 전파이다. 복음 전파가 성직자의 점유물은 아니다. 이미 신자가 되었다는 그 순간부터 전도는 시작되었다. 신자가 하는 모든 일상생활이 복음전파와 직접, 간접으로 연류 된다 (로마서 12: 1-13).

 영적 예배라는 것이, 분위기 잡은 예배의식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의 헌신적 활약상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양 교수님의 글 쓰는 행위는 복음전파 행위이다. 주님의 명령이 기도하고 신자의 유일한 삶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살아생전 어떤 일에 보람을 걸겠는가! 나중에 주님의 얼굴을 직접 뵈올 때 후회 없는 인생으로 남기를 소원하셨기에 이런 땀의 열매가 나왔다고 여겨진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리라!] 주님을 위해 사는 분이 있다면 그 자체로서 심판의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그분을 비난하면 곧 주님을 비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31-46). 주의 종이 달리 주의 종이겠는가, 주님께 헌신한 사람을 비난하면 지옥을 자청하는 일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그 사람이 힘이 센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배후에 계시는 주님이 두려운 것이다.

 이런 저런 점을 참작할 때, 본 책은 무시무시한 책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능력을 감지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본 책에 대한 아쉬운 점을 피력해 본다. 그래도 두렵지 않는 것은 본 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1. 본 책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 중의 하나는 [이원론]이라는 표현이다. 철학에서도 이원론이라는 표현은 정말 남발하기 곤란한 용어이다.

 [이원론]에는 보통 수직적 이원론이 있고 수평적 이원론이 있는데 양 교수님을 이점을 혼동해서 사용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치 성경에서는 이원론이 지양되는 것처럼 이해하시는 것 같다.

 구속사적으로 봤을 때, 성경은 수평적으로는 이원론이 아니다가 포로 이후 본격적으로 이원론으로 접어드는데, 여기에서도 시간적 이원론과 수직적 이원론이 섞여 나오는 소위 [묵시세계]에 접어 들게 된다. 따라서 성경에도 구약 후반부부터 염연히 이원론이 존재하고 있다. 결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다.

2.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기독교적이 되는 것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셨는데, 아마 기독교인다운 생활까지를 요구하시는 말씀이리라.

 그런데 이 세상에는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얼마든지 기독교정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세네카의 윤리나 칸트의 윤리철학이나 인도성자종교).

 자 그러면 그런 자의 생활조차도 어떤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 만약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선행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하나님의 자연은총의 일부인가? 그들은 늘 신에 대하여 감사하고 영화롭게 하려고 애쓰는데, 그렇다면 그들에게 무엇을 또 요구할 것인가?

3.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항목마다 분명 [기독교적]이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실상 그 내용을 보면 기독교적이 아니라 (다시말해서 유일 무일한 메시아론에서 이론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유신론적 철학이면 누구나 제시했던 주장들이다. 용어를 다르게 붙인다고 기독교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교수님께서, 고상하고 점잖은 비기독교적이면서 종교적이고 유신론적인 윤리주의자들의 주장과 어찌 그리 같은 주장을 하시는지 아쉬운 감이 든다. 예를 들면 처음에 제시한 창조 - 타락 - 구속 이라는 신의 활동은 유대교를 비롯해서 세계의 거의 모든(불교도 포함) 종교의 보편적 틀이 이미 되어있는 실정에 있다. 따라서 양 교수님이 제시한 그 틀이 결코 기독교의 유일무일 성을 특징으로 하는 복음정신에 많이 미흡한 감이 있음을 솔직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건전한 시민정신과 건강한 개인생활 같은 것은 마치 계몽주의 사회학자들의 의견을 듣는 듯하다.

4. 양 교수님의 시도는, 교회안에서만의 거룩을 범우주적으로 확대시켜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이 되는 세계상을 설정하는 논리적 기반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일종의 통합을 위한 노력인데, 과연 이 노력 자체가 성경 상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작업인지 검토되어야 한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복음의 속성은 기존의 인간 사고를 고발하고 공격하고 정죄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데 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 고해서 모두다 전문 성직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는 모두 복음 전달자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한결 같아야 한다 (전하는 방식은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바뀌겠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치 있고 나머지는 무가치하고 허무함을 전해야 한다. 이런 복음만이 비기독교적이면서도 천하의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깨끗하게 사는 이교도는 불신자들이 천하의 마귀라는 그 정체가 드러나고 또 예수 들먹이면서 실상은 교회부흥을 노려서 목회자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데 몰두하는 이단들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다.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라고 외쳤던 사도바울도 (고린도전서 2: 1- 3) 어디 십자가만 알았겠는가! 십자가란 세상 모두를 원수로 취급하는 것이고 부정하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6:14).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인간 활동을 전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달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야 거기서 회개가 일어나면서 오직 그 아들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사모할 것이다.


 그러면 양교수님의 글은 복음으로 가치없단 말인가? 복음 전달의 정신은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으로 그분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막 신앙 생활에 눈 뜨는 학생들에게 본 책음 더할 나위없이 충격을 줄 것이고 신앙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첨부파일 : [기독교 세계관의 이해와 적용]을 읽고.hwp (34.0K), Down: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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