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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4 16:30:05 조회 : 6320         
창세기 2장 3장 교안 이름 : 관리자(IP:220.81.176.141)


창세기 2장 3장 교안

1992년 9월 22일  이 근 호 목사,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3 (p 152)


 창세기 2장 3장을 보게 되면 1장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라는 신명(神名)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국가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출 6: 3) 창세기 초반부터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봐서 창세기는 국가 이스라엘의 건립취지를 겨냥한 모세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창세기 2장 3장의 의미도 과거사건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가 이스라엘의 사명과 연결을 지으면서 이해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한 테마 위에 전개되는 동일한 하나님 행위의 연속으로 봐야 한다. 이상 두 가지 테두리 속에서 2장 3장을 해석하자.

 여호와의 작업의 시작은 인간창조로 부터 시작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축으로 해서 모든 것을 해명하고 관여하고 계신다. 따라서 에덴동산이라는 것도 인간이 진정 무엇이어야 하느냐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등장된다. 결코 에덴동산 유지를 위한 인간이어서는 아니 된다. 이런 뜻에서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나라의 원형이나 원천이 될 수 없다. 단지 표상이나 상징은 될 수 있다 (참조: 에스겔 28:13 / 계 21:18-22). 상징이 된다는 말은 실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에덴동산에 설치되어 있는 각양 좋은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 그것이 저주의 땅으로 변하는가를 지침 하는 계기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이 에덴동산이 인간 창조와 어떤 연결성을 지니고 있느냐를 통해서 에덴동산의 설립취지를 알자는 것이다. 만약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에덴동산에 접근하면 불교의 극락사상과 동일하게 된다. 즉 아름다운 것을 위해 매진하는 인간의 활동을 하나님이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성경 자체가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 유지에 있다 (교회 부흥이나 교회 성장이나 선교나 전도나 개인이 복 받는데 있는 게 아님). 그래서 에덴동산의 존재도 인간이 얼마나 맨 처음 창조한 그 인간의 모습을 지속시키는데 뭔가 도움과 지침이 되어야 한다.

 창세기 2장에서 여호와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차원이 아니라 달리 묘사해주고 있다. 그것은 흙 - 사람 (육체) - 생령 (산사람) 이라고 묘사해서 인간에게도 여러 단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인간끼리 사회나 교회에서의 계급이나 구별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 전체가 동일한 변신 속에 놓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만약 에덴동산에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반드시 이 인간의 단계도 역순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에덴동산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제한에 기인된다. 어떤 제안이냐 하며는 동산 한가운데를 점유하고 있는 두 개의 상반된 성격을 지닌 나무에 관한 제한이다. 왜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을까? 이는 에덴동산의 성격을 묘사해주기 위함이다. 즉 어떤 경우에 에덴동산이 파괴되는가? 그것은 선악나무 과실을 따먹을 경우에 한한다. 그렇다면 에덴동산은 선악나무에 의해 묘사될 수 있는 본질이 있다. 어떤 본질인가 하며는 적어도 [선악을 아는 자는 머물 수 없는 세계] 라는 본질이다. 뿐만 아니라 [선악을 아는 것과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과 전혀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공존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 밖에 없다. 따라서 에덴동산에서 밝혀진 인간의 [피조성] 이란 무엇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하며는 [선악]과 [영생]을 동시에 지닐 수 없는 존재, 그 자체가 피조물 존재라는 것이다 (발전된 피조물 개념). 만약 이 피조물 주제에 신(神)이 되려면 신(神)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공존의 특권]을 자기도 지녀야 한다. 그것이 불가한 것은 인간이 여전히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덴동산은 [선악] 쪽을 기피하므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몫인 영생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공간을 설정했다. 이것이 에덴동산 설립취지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라고 당부한 것은 상대적으로 [너는 피조물로서 영생에 참여할 특권을 받은 은혜를 감사하라] 라는 말로 이해된다. 만약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언명이 없었으면 피조물인 인간은 영생을 피조물 고유의 속성인 냥 여길 것이다. 신(神)의 생명의 참여시키는 은혜로서가 아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바로 국가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작업이요 은혜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가지 일밖에 모르신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속성인 영생에로의 참여이다. 이것이 또한 국가 이스라엘의 설립취지이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또 하나의 보여줄 은혜의 장치가 있는데 이는 [아담의 이름 부여] 특권이다. 아담이 이름 붙여 주는 대상에는 각종 들짐승과 새도 있지만 [여자]도 포함된다 (창 2:19-23). [이름] 이란 [이름] 붙힘을 당하는 쪽이 [이름]을 붙여주는 분을 위해 봉사해야 되며 모든 궁극적 책임은 [이름 붙이는 쪽]에서 져야한다. 따라서 타락 사건이 만약 일어난다면 이 아담을 중심으로 하여 [이름] 붙임을 당한 쪽은 함께 타락된다 (예를 들면 노아심판에 누가 당하느냐를 보면 안다). 그리고 그 관계도 다 깨어진다.

 하나님은 국가 이스라엘을 건립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신(神)을 보내셨다. 그분이 바로 여호와이다. 그분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다라서 이름 붙여진 그분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그 명이란 다름 아닌 [언약] 이다. 이점은 차차 밝혀질 것이다. 어쨌든 언약이란 타락 이후에만 주어진다. 선악과 금지조함을 언약이라고 볼 수 없다. 단순히 금지조항일 뿐이다.

 [이름]이 아담에게서 붙여진 존재들은 아담을 바라보면서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면 아담은 이제부터 무슨 일을 하느냐? 여호와 차원에서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을 하든지 선악체제로 빠져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엘로힘 체제에서는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린다 고해서 여호와에게 귀염 받는 것이 아니다. 선악체제에서 움직인다면 다시 육체로 (창 6: 3) 흙으로 (창 3:19) 돌아갈 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인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은 죄의 근본적인 동기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고 그 결과와 여호와의 개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죄의 동기는 인간이 [神]이 되겠다는데 있다. 피조물에서 신으로 도약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신이 갖고 있는 상반된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는 것이다. 간교한 뱀이 아담의 지배 테두리를 벗어나 외부 인물로부터 사주 받았고 여자도 또한 그 뱀의 유혹을 받았고 아담 역시 여자로부터 권유를 받게 된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준하여 흙과 밀접한 위치로 복귀된다.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저주라 부르셨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죽음]이라 보는데 있다. 죽음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인간 창조원리에 따르면 [생령(산사람)]이 못되는 편에 속한 것은 모두 죽음이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라는 언급은 이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자기 몸을 가리는 것은 현 자신들의 모습이 비본래적 상태가 되었음을 스스로 체득하고 있는 순간이다. 즉 벌거벗음은 신체와 그것을 비(非)수치로 여기는 마음이 본래적 인간의 상태라면 그 상태가 와해된 것이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비본래적인 자신의 상태를 대신하여 다른 것을 자기의 몸의 일부로 여기고 싶어 했다. 왜 하체를 주로 가렸을까? 생명활동의 중심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선악체제에서 다시 한 번 자신들을 살피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체제가 인간들이 보기에 낯설어 보이고 어색해 보이는 지경에 와 있다는 말이다. 벌써 처음 창조로 이탈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꼭 인간이 타락할 때 개입할 필요가 있었는가? 인간들을 방문하지 않고 가만 놔두었을 때 여호와 쪽에 무슨 손해 보는 일이 있나?

 여기서 여호와의 활동에 대해서 후대 국가 이스라엘이나 교회가 오해하지 말아야 될 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여호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하신다는 주장이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여호와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여호와의 최종적 목적이 아니다. 최종 목표는 창세기 2: 1- 3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안식을 취하시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은 이 목표에 예속된다.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 양쪽을 다 지상에 존재케 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마서 9:22-23). 목회의 목표도 여기에 국한해야 하는 것도 말할 나위도 없다.

 여호와의 개입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 세상을 안식을 향한 새로운 바탕으로 삼아 세계와 역사의 재편성을 시도하기 위해 찾아오신 것이다. 이제부터 역사 속에 움직이는 모든 움직임 하나도 모두 피조세계 재편성을 위한 여호와의 노력과 수고의 손때가 묻게 될 것이다.

 인류역사의 원리는 결정되어졌다. 그것은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대결장으로 간주하시고 그렇게 일을 진행시키신다. 빈틈없이! (뱀의 후손이란 뱀 새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 배후 인물을 겨냥한 말이다. 여자의 후손도 같은 취지다.)

 아담이든 여자든 그들의 부부생활의 모습도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나 의의도 없다 (고린도전서 7:29에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 같이 하라]고 했다.) 여자의 이름도 아담에 의해서 새로 불리워진다. 생명(하와)이라고!

 부부의 서열은 그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줄 계시가 된다. 즉 남편 덕에 여자도 덩달아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먼저 여자 쪽에서 자신의 죄성을 고백하는 행위와 고통체험에 긍정해야 한다 (디모데전서 2:15에 보면 해산하므로 구원을 얻는다고 되어있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자신들의 비본래적 육체를 가린 행위를 죄의 긍정이라고 보고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몸소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힌다. 어쨌든 구원에 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이미 선악체제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편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제부터 인간은 지상에 없다. 오직 죄인뿐이다. 계속해서 죄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활동의 도구로서 합당한 삶의 태도이다.

 흙으로 돌아갈 인간은 그들의 속성과 맞도록 근본된 토지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거기서 여호와의 계속 되는 활동을 바라보고 고대해야 한다. 약속의 계통에 참여될 자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여호와에게 속한 권한이다.

 여호와는 지금 새로운 적을 향해 계속 공격하게 된다. 그 적은 바로 선악체계를 고집하는 자들이다.

 국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 그대로 싸우는 민족이다. 오직 여호와가 적으로 간주하는 세력을 위해서 여호와께 전적으로 예속된 국가이다.

 은혜로 인간의 그 어떤 종교적 노력도 부정하면서 싸우는 그때의 교회이다.

 첨부파일 : 창세기 2장 3장 교안.hwp (26.5K), Down: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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