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HOME > 성경신학 > 성경신학1
2008-05-04 16:30:44 조회 : 6344         
창세기 4장 교안 이름 : 관리자(IP:220.81.176.141)


창세기 4장 교안

1992년 9월 29일  이 근 호 목사,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3 (p 157)


 과연 창세기 3:15에서 약속하신 그 약속이 실제로 역사 안에서 달성되는데 지장이 없을까?

 아담과 하와의 보호는 곧 그들 위에 던져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보호이다. 우리는 창세기 4: 9에서 하나님에게 대드는 가인의 말대꾸를 들어보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창세기 3: 9에서 [아담아 어디 있느냐]고 찾아오신 하나님은 가인에게는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신다. 여기서 아담과 아벨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하나님께서 아담과 아벨을 보호하는 형태가 다소 차이가 난다. 아담의 부부에게는 가죽 옷을 지어 입혀 약속에 대한 보호성을 보여주셨는데 반해 아벨에게는 [아벨과 제물] (제물만 열납한게 아님)을 열납하는 식으로 긍정적 의사를 드러내셨다.

 창세기 3:15에 볼 것 같으면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몇 가지 요건이 발생되어야 한다. 뱀의 후손의 실체가 드러나야 하고 그 뱀 후손의 실체는 선과 악을 범주로 규정되어야 하고 그 선악의 갈등 속에서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공격이 있어 상처를 받아야하고 더 나아가서는 거기에 대한 여자의 후손의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보복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요소를 모두 만족하는 것 가운데서 비로소 여자의 후손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다.

 창세기 4장에서 우리는 대결이 가능한 배타적 성격을 지닌 두 개의 인물의 등장을 보게 된다. 서로가 다르다고 판정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우리 독자들의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제사 [수납]과 [수납 불가]라는 형태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그 다음의 진행을 주시해 봐야 한다. 가인과 아벨 가운데 누가 뱀의 후손인가 하는 것은 선악의 체제의 갈등 속에서 누가 일을 저지르는가를 보면 된다. 창세기 4: 7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당부하기를 죄가 문에 엎드려져 있으니 주의 하라고 한다. 죄가 가인 너를 노리고 있으니 너는 그 죄를 다스려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에게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부여한 뱀은 자기의 후손으로 가인을 선택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가인은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분노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행위 때문에 일어났다. 가인은 생각하기를 왜 나의 제사는 하나님이 거부하고 동생의 제사만 수납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코 하나님은 둘 다 에게 반드시 양을 제물로 제사해야 받는다는 것을 사전에 언질을 준 적이 없다. 각자의 직업에 적합한 제물을 골라 드렸다. 그런데 어째서 동생의 제물만 열납을 하는가? 일방적인 하나님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가인은 분노를 가졌다. 우리는 국가 이스라엘이 오직 선택에 의해서만 설립됨을 안다. 아벨이 가인보다 더 의롭기 때문에 제사가 열납된 것이 아니다. 두 형제 모두다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제공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더 의로운 나라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신명기 9: 5).

 하나님은 아벨과 가인 두 형제를 통해 선과 악의 기준을 하나님의 약속성취에 맞추어서 재해석하고 계시다. 선(善)이란 하나님의 일방적 결정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이고, 악이란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에 대한 불만을 갖는 자세를 뜻한다. 즉 선과 악이 인간 개개인의 성실도와 양심에 기초하는 윤리적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 선택이 있고 난 뒤부터는 이 약속성취 방법에 대한 태도여하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아벨의 제사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제사와 아벨 자체를 받으시므로 제사의 제물과 그 드린 인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길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처사는 그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제사로 인해 축복의 경로마저 폐쇄하고 자체적인 방식으로 저주로부터 벗어날려는 시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에 의한 약속성취를 전면적으로 무효화 시키려는 시도이다.

 자 그러면, 왜 가인은 죄가 문에 엎드려 공격하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죄를 이기지 못했는가?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신 하나님은 가인을 통해 인간이 선악체제 안에서 악을 꺾고 선을 택할 능력이 상실되어 있음을 보이는 약속의 또 다른 면을 보이기 위함이다. 즉 인간이 선악을 알고 난 뒤 기껏해야 나뭇잎으로 가리는 행위나 혹은 가인처럼 거짓말로 변명하는 정도이기에 선을 이길 수 없는데, 이는 애초부터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여호와로 인해 피조될 때부터 선악 체제에 의해서 피조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있을 때 선악과에 손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본질적 인간 구성요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본해적 존재에 빠졌기에 그 비본래적 체제를 극복할 힘도 그 자체에 갖고 있지 않다 (아벨의 죽음도 여기서 초래된 비극적 결말). 시편 65: 2- 3에 보면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사실상 이런 기도는 여호와를 신봉하는 선택된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축복이다. 그 뒤에 4절에 보면 [주께서 택하시고 오게 하사] 라고 되어있다. 국가 이스라엘에게 있어 [선택개념]이 관권이다. 선택개념을 거부하면 국가 자체가 붕괴된다. 왜냐하면 비선택이란 인간의 선악체제 안에서의 몸부림으로 그 선택의 자리를 메우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늘날 목회의 현주소를 되돌아보자. 과연 선택을 보다 효과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인간의 종교열심과 종교기술 발휘를 최소화하고 억제하는 노력을 경주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반대로 나아가 선택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있는가? 마치 인간의 노력여하에 따라 구원이 좌우되는 듯한 인상을 교회 내에서 심어주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 사상과 연결점이 없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명백한 사이비 이단교회이요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말 선택한 교회라면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행위만이 높이 부각되고 영광 돌릴 것이다).

 연이은 땅의 호소와 거기에 대한 보복은 창세기 5:29에 의해 셋의 후손이 노아를 통해서 소위 [언약] 안에서 처리될 것이다 (창 6:18).

 이로서 우리는 가인의 계속적인 생존과 아벨의 급작스러운 살해당함이 결코 그들 각자의 구원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세기 3:15에서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의 성격을 보여주고 또 그 반대편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시범자로 등장됨을 안다. 그래서 가인에 대한 복수를 사사로운 인간들의 텃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특별한 표시를 해서 보호 하신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야 창세기 3:15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왜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마귀와 악이 활개 치는지 그리고 왜 신자의 마음 안에도 나쁜 것을 더 선호하는 충동이 일어나는지는 다 이런 바탕 때문이다.

 창세기 4장의 가인 족보와 창세기 5장의 셋 족보의 비교에서 우리는 각자가 추가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하나는 약속을 무시한 독자적 선악체제를 가지고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자는 주의(主義)로 나가고 (자기가 자기를 위해 보호하고) 반대로 셋의 후손은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호하면서 성취하고야 만다는 것을 고대하면서 약속의 고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국가 이스라엘,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만을 보여주어야 되지 세상의 자기 방어나 자기 보호시스템을 도입하여 힘을 축적해서는 아니 되는 국가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힘을 의지하지 않고 있노라를 선언이라도 하는 듯이 주의 약속을 위해 갖고 있는 목숨도 주님께서 잘 효용성 있게 이용하도록 드려야 되는 것이 교회의 참 모습이다.

 첨부파일 : 창세기 4장 교안.hwp (16.5K), Down:184
  ◁ 이전글   다음글 ▷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