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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4 16:31:16 조회 : 6182         
창세기 6장 - 11장 교안 이름 : 관리자(IP:220.81.176.141)


창세기 6장 - 11장 교안

1992년 10월 6일  이 근 호 목사,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3 (p 204)


 인간의 죄가 땅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아는가?

 인간의 범죄로 인해 애꿎은 가축과 짐승까지 함께 죽음이 초래되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당이 더렵혀졌을 때, 땅을 정화하기 위한 시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땅은 원래부터 죄를 허용할 수가 없다. 이것이 이 땅위에 사는 인간들이 알아야 될 철칙이다. 국가 이스라엘이 타민족을 정복하고 멸절시킨 정당성은 바로 땅을 정화하는 데부터 시작된다 (민수기 35:34). 그런데 죄란 도대체 무엇인가? 땅을 더럽게 하는 것은 모두 다 죄이다. 무엇이 땅을 더럽게 하는가? 선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는 악이다. 결국 창세기 4장에서 6장까지의 기록은, 인간으로서 악을 이길 수 없음을 보이는 증거들이다. 왜 인간은 악을 이길 수 없는가에 대해서는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인간이 육체가 되어 하나님의 신이 함께 있지 아니하므로 필연적으로 악이 관영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땅은 악에 대해서 배타적이다. 이는 타락 후의 인간세상 자체가 땅과 융화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말이 된다. 이 사이에 그 어떤 안식도 생기지 않는다. 만약에 안식이 생긴다면 그것은 분명 외부에서 간섭한 은총이 그 가운데 개입된 결과이다. 그 개입된 것이 바로 노아언약이다.

 노아언약은 노아의 구원만을 위하여 제기된 언약이 아니다. 단순히 노아식구의 구원이라면 노아식구에게는 처음부터 물방울 하나라도 젖셔지지 않게 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아식구도 예외 없이 홍수 속에 놓이게 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소위 [은혜를 입었더라 (창 6: 8)]의 의미가 [방주]라는 의미와 연결시켜놓기 위해서 노아식구를 방주 속에 들어가서 심판 때를 지나게 한다. 만약 노아식구가 무사히 심판 때를 넘긴다면 그들에게 중대한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대대로 전하는 것이다.

 홍수심판의 취지는 땅의 정화에 있다. 그럼으로 인해서 그 위에 사는 인간에게 안식(노아)이 돌아가게 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노아의 후손들은 이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노아식구가 구원됨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심판을 통과했기에 비로소 주어진 결과이다. 그래서 노아식구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맹렬한 심판을 전해야 한다. 심판의 사실이 구원으로 옛일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재적인 일이 된다.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심판을 배경으로 해야 한다. 심판 속에서야 제대로 된 구원의 의미가 있다. 구원 전하기 위해 구원받은 게 아니라 심판 전하기 위해 구원받은 것이다. 심판의 증거자로서 구원된 셈이다.

 그렇다면 노아식구의 구원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나? 노아식구가 은혜를 입었다고 했는데 은혜를 입었다는 말은 구원의 근원이 자기네들 속에는 없고 딴 데 있다는 말이다. 그 딴 데가 어딘가?

 노아방주 안에도 심판이 들어있었다. 그 심판은 노아가 심판 당한 게 아니라 정결한 짐승과 새를 잡아 하나님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리는 일이다. 이 제사야 말로 이번 노아홍수사건의 전모를 밝혀준다.

 분명 노아방주 안에는 더러운 짐승과 새들도 있었다. 왜 그것들까지도 구원받아야 하나? 구원이란 더러운 것으로부터 탈출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된 짐승을 동승 시켰다는 이야기는 노아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핵심을 나타내주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즉 깨끗한 것이 희생되어 오히려 더러운 것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약에는 그 중심에 의인의 죽음이 놓여있다. 비록 제물로는 짐승과 새를 잡지만 동급동종제사의 원칙에 따라 언젠가는 그 제물의 실체가 밝혀질 날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에서 밝혀진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그 번제를 받으시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선함이라가 아니라)]고 하신다. 뭔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의 근거가 인간이 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이라니!

 악은 저주로서 갚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정결한 짐승의 제사로 인해 새로운 질서 속에 땅의 법칙은 놓이게 되었는데 이 법칙이 소위 조직신학적으로 말하면 [일반은총]이요 성경신학적으로 말하면 [노아언약]이다. 즉 모든 인류는 노아의 덕을 보고 있으니 나중에 죽어서 지옥가도 핑계치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죄에 대해서 더 이상 하나님께 항변할게 없다 (로마서 1:21).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5:45에 [악인과 선인 구분하지 않고 해를 비취게]하는 그 자비도 다 노아언약에서 나왔다. 어떻게 해서 [진작 복음이 한국 땅에 일찍 들어오지!]라는 불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노아언약을 전후로 하여 등장하는 모든 것, 예를 들면 방주, 노아식구, 무지개, 속된 짐승, 정결한 짐승, 까마귀, 비둘기, 이 모두가 심판과 언약을 통한 구원을 나타내는 재료들이다. 그것들은 반드시 영원토록 노아언약을 소개해야 될 책무를 지니고 있다 (특히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못 먹는 음식 규정 같은 것. 레위기 11장).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노아의 세 아들이다. 이 세 아들 사이가 저주의 자식과 축복의 자식으로 나뉘게 된 것은 노아언약의 영원성 때문이다. 아버지 노아의 약점을 들추어내기를 원했던 함은 저주를 받았고 뒷걸음칠 치면서 아버지의 수치를 담요로 덮어준 셈의 행위는 노아언약의 속성과 아버지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역을 충분히 반영시켜 주고 있어 노아는 술이 깨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 [셈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는 셈에게 그런 정신을 주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또한 땅이 은혜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만약 땅의 원리에 따르지 않는 함은 그 자체로서 힘겨운 세월을 살 수 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국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의 정당성을 재차 입증해 주게 된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사역의 취지에 땅의 평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이스라엘도 그 원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바벨이라는 지역은 고대의 유명한 영웅인 니므롯의 고향지역이자 함의 땅이기도 하다 (창세기 10:10). 거기에서 니므롯 그의 나라를 건설했다. 그런데 그 나라의 근본 취지는 무엇인가? 자기 이름을 세계만방에 드날리고 그것도 모자라 하늘까지 닿게 하는데 있다. 바로 이런 근성은 철저하게 反노아언약적이다. 땅이 이런 나라를 용납할리 없다. 하나님의 은총이 불필요한 나라, 자체적으로 힘을 길러 자체적으로 [땅 위의 삶]을 구가하려는 나라, 이런 나라가 창대 하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지 아니했다. 그 나라는 산산조각 나서 전 세계로 모두 각기 흩어져 버렸다. 따라서 현 전 세계의 국가는 모두 이런 취지하에 세워진 세속나라들이다. 정말 하나님이 진정으로 창대하기를 원하는 나라는 노아언약에 딱 맞는 은혜로만 가득차 있는 나라인데 그 나라는 아브라함을 선택함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바벨탑 금지는 단순한 제거하기 위한 심판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은혜의 나라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소극적인 입장에서 좋은 대조적 배경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첨부파일 : 창세기 6장 - 11장 교안.hwp (30.5K), Down: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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