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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7 16:38:39 조회 : 5234         
과학정신과 성경 이름 : 관리자(IP:220.81.176.141)


과학정신과 성경

1992년 12월 8일  이 근 호 목사, 성경신학의 실제적용 3 (p 304)


 과학이란 자연 속에서 일정한 질서를 찾는 작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라는 개념 속에 인간도 포함될 수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포함되는 경우는, 인간을 하나의 생물체로 보는 경우이다. 그와 반대로 인간을 다른 생물체로 이해 될 수 없는 다른 무엇이 점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는 경우에, 인간은 과학의 탐구대상이 안 된다. 과학과 신학과의 논쟁은 이 싸움이다. 즉 자연 질서가 어떠하냐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싸움인 것이다.

 딴 것은 다 양보해도 인간만은 양보 못한다하는 것이 신학의 입장이다. 인간만은 다른 관점에서 탐구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과학은, 인간만을 특별히 다른 관점에서 봐주어야 될 특별한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 싸움의 와중에서 제일 난처한 것은 소위 기독교 신자라고 자처하는 과학자들이다. 기독교 신자란, 인간 말고 또 다른 인격을 믿는 자를 말한다. 만약에 인간에게서의 인격이라는 고유의 영역이 과학에 의해서 설 자리마저 빼앗긴다면 하나님이라는 인격체도 과학에 의해서 환상에 불과한 개념으로 전락될 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격 됨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먼저 인간의 그 특별성을 그 어떤 경우라도 양보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보하지 않아야 될 인간의 인격성이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은 합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허상으로 간주하는 절대성을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안 해주든가 아니면 과학의 절대성을 인정하려면 인간을 동물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던가, 둘 중에 하나로 결정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기독교신자로서의 과학자는 성경과 과학을 겸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만약에 과학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화 시킨다면 (예를 들면 과학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과학을 상대화 시켜주는 그 기준이 되는 절대는 어디서 도입되는가? 과학이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평가하는 그 절대적 평가는 어디서 도입되는가 말이다. 성경인가? 신학인가? 아니면 양심인가? 직관인가? 이성인가?

 과학이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다 라는 평가는 과학자로서의 사적 견해이다. 과학이 무엇 때문에 그 사람으로부터 욕을 얻어먹어야 하는가? 무엇이 못마땅해서? 무엇이 미흡해서? 약점이 있다면 보완하고 격려해서 더욱더 완전을 추구하면 되지 왜 미리부터 안 된다고 부정하고 들어가는가?

 과학이 주창하는 탐구방식에 나름대로 불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불만을 가진 사람의 이상실현에 과학적 방식이 애초부터 안 맞는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이것은 그 사람 속에 과학이 도달될 수 없고 풀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속한 무엇이 있음을 양보하지 않고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아의 영속성 문제라든지 영혼, 혹은 마음, 혹은 욕심, 양심 이런 것은 애초부터 과학으로 풀 수 없다는 선입감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것들은 애초부터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두뇌 속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호르몬과 생체기능의 산실이라고 해명하면 어떤가 말이다. 왜 이런 물질적 사고방식을 받아 드리기에 주저하는가? 그것을 받아 드리는 것을 누가 가로막고 있는가? 그것이 혹시 비과학적으로 수납되어온 전통적인 주입식 교육의 영향이 아닌가? 빨리 용감하게 그 환각에서 깨어나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가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믿는다는 것, 종교라는 것, 신(神)이라는 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라가 버리게 되는 무의미한 개념들임을 알 수 있다. 소위 과학자라는 명찰을 달고 과학세계에서 전문가를 자칭하는 인사들이 자기 자신마저 그 과학에 의해서 정복 흡수당해야만 하는 운명에 서있는 위험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로서의 과학자도 자존심은 있다.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고자 한다. 만약에 이러한 과학자가 자연의 질서규명을 순수한 자연 그 속에서 찾고자 한다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그 속에서 어떤 에너지의 흐름의 흔적은 발견할지 모르지만 인격자는 발견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애초부터 비인격적인 자연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의 질서 가운데서도 뭔가 인격자의 활동이 잡힌다면 그 변화를 어떤 인격적 존재의 확인으로 해석해버리고 싶어 하는 본인의 유신론적 선입감의 결과이다.

 비기독교인 으로서 순수하게 과학의 절대성만 추구하는 자들이 자연 질서를 통해서 인격자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떠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비인격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인격에서 출발해서 인격을 발견했노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와중에 이물질이 첨가되었음을 증명해 줄 뿐이다.

 이러한 한계를 알기에 기독교 신자로서의 과학자들은 성경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래서 인격체를 근거로 한 새로운 인격적 과학을 수립하고자 노력한다. 성경과 과학, 이 두 개의 뿌리를 합쳐서 새로운 형태의 과학을 선보이고자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 시도를 원만하게 이루어지려면

첫째, 둘 사이에 의견이 맞아야 되고
둘째, 둘 다 오류가 없는 절대적 사실이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의 조건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둘 사이에 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욱 많고, 과학이 절대적이라면 인간은 인격체가 못되고 하나의 짐승으로 전락되어 생물체의 질서 속에 함몰된다.

 그래서 기독교 계통의 과학자들은 궁극적인 것인 철학에 관한 것은 성경이 담당하고 그 사상을 확인하고 증명하고 보완해 주는 소극적 기능으로는 과학이 담당한다는 묵계가 형성되어 있다. 즉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은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성경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역시 주도권은 성경이 쥐고 있는 셈이다. 성경이 과학의 종착점이 된다면 성경이 꿈쩍하고 있지 않는 이상 과학의 전진이란 없다. 과학이란 다만 성경을 증명하는 시녀가 된다. 시녀는 자기 의사가 없다. 자기주장이 묵살 당한다. 어떤 탐구에 들어가기 전에 성경의 내용과 미리 타협해야만 한다. 행여나 성경 내용과 마찰을 일으키는 자료나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고의적으로 외면해야 한다. 성경은 과학의지를 북돋우어주고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성경은 최고의 과학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여전히 인격적인 분만을 소개한다. 인격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하나님이라는 인격과 인간이라는 인격의 만남 속에서만 비로소 성경이 이해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비인격적인 과학이 대화의 내용에 끼어들 수가 없다. 과학자가 성경에서 어떤 과학적 발상을 찾았다면 그건 성경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마치 어떤 기업가가 성경에서 힌트를 얻어 신상품을 개발하여 히트를 쳤다 고해서 성경이 경영학에 관한 책이 아니듯이 말이다.

 성경은 인간에게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죄를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이 세상의 나라에 대한 집착이다. 이 역사에 대한 희망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심정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과학자에게 과학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그 과학의 안쪽까지 파고든 죄악의 실체를 알고 회개하고 죽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와 함께 한 죽음이다.

 만약에 어떤 과학자가 제대로 성경에서 힌트를 얻는 경우라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며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음을 절감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과학자로 하여금 과학연구의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통한 인류복지 증진이라는 목표가 바로 악마가 원하고 있는 목표임을 발견하고 자신의 과학탐구를 통해서 그것을 증명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첨부파일 : 과학정신과 성경.hwp (30.0K), Down: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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