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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5 13:13:10 조회 : 3407         
민주주의 어두운 단면 이름 : 이근호(IP:117.55.130.48)

민주주의의 어두운 단면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05-1859. 프랑스)과 폴라니Karl Polanyi(1886-1964. 미국))의 사상을 중심으로-

 

1. 토크빌의 사상

토크빌이 살았던 19세기 초중반은 자유주의적 공리주의가 주요 지배 사상이었다. 자유주의적 공리주의 사상이란 개인을 독자적인 원자(原子)적 존재로 간주하고 각자의 생래적인 정열과 충동을 갖고 움직인다고 보았다. 자신의 민족을 극대화하고 불만족을 극소화하기를 꾀하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모든 차별을 없애는 평등에 대한 강한 욕구와 더불어 본인에 대해서는 무제한한 자유를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공리주의적 사회 추구의 지상 목적은 행복이다. 즉 자유주의적 공리주의 사회란 개인의 이익들의 산술적 총합을 의미한다.

토크빌은 이런 사회관을 반대하면서, 사회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내려온 공통의 신념(혹은 가치)을 공유한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규정한다. 즉 공통의 신념이 없이는 어떠한 사회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유주의적 공리주의 사회는 개인들이 오로지 경제적인 이익을 탐해서 일시적으로 결속된 무리이기 때문에 개인들의 이익이 상충될 경우, 집단이 와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와는 달리 토크빌의 사회관은, 일시적인 이익 추구를 위한 단체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내려 온 공유된 가치가 담겨 있기에 무엇보다도 지성과 덕성을 집단 내에서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계약설을 토크빌은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는 사회계약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시적으로 사람들은 같은 지도자나 같은 법률에 복종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체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토크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사회를 지탱하는 지성과 덕성이란 조급한 이익을 노리고 당장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구성되어진다. 가부장제 가족제도나 그 지역만의 공동체나 교회나 길드 같은 것들은 오랜 문화가 집적되어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을 생태적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생태적 사회에 있어 민주주의가 제대로 접목될 수 있을까?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정치적 조작에 의한 여러 조건들의 평등화로 보았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경제적, 심리적 조건들을 개념화한 것으로 간주했다. 평등을 사모하고 지향하는 정신들이 전 세계민을 민주주의 제도로 정착시킨 것이다. 여기에는 법적인 평등, 사회적 평등 그리고 존중의 평등 정신이 포함된다.

 

하지만 민주제도 이전의 군주제도에서는 신체적 억압 형식으로 지배나 통치 의지가 표출되었다면 민주제에서는 심적인 억압이 조성되어 있다. 즉 민주주의 이전의 사회 같으면, “너는 내가(군주)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엄포했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신은 당신 자유롭게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생명과 재산 및 당신 소유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생각에 따르지 않는 당신은 우리 사회에서 이단아로 찍힐 것입니다.”는 식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 사회의 본질 속에서는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와 민주적 전제(Democratic Despotism)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민주주의사회의 다수는 수적인 논리에 근거하여 도덕적· 지적인 권위를 누리는 집단이다. 귀족사회에서의 권력관계는 출신 성분에 의해 -영주-인민으로 구성되었다면, 모두 다 평등한 민주사회의 권력관계는 다수 대 소수라는 수적인 우열에 의해 구성된다. 즉 한 사람의 지성보다는 다수의 지성의 합이 더 도덕적이고 더 진리적이라는 점에 합의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통념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다음과 같은 횡포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1830년대 미국의 남부 남켈로라이나에서는 주민의 55%가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백인보다 흑인의 수적인 우세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흑인을 도덕적·지적인 권위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토크빌에 의하면 실제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수적인 우세 뿐만 아니라 여론을 장악하고 주도하는 세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수의 횡포라고 부른다. 이것은 곧 평등을 운운하지만 실제로 있어 불평등을 야기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백인들의 여론에 반대되는 흑인들의 다수 의견은 백인들로부터 비난 받는 것이 두려워서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되고 기존 여론에 순응하게 된다.

 

토크빌이 말하는 민주적 전제란 현대인들의 상반된 심리 상태, 지배되기를 바라는욕구와 자유로운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현장에서 나타난다. 첫 째, 사람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심각하지 않다. 둘째, 정부는 국민들의 전반적인 생활을 보조하고 보호하는 역할만 충실히 이행하면 된다. 셋째, 따라서 행정의 중앙집권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관료제가 만연해진다. 이 관료들로 인간은 인간의 정부에 바라는 의지는 위축되고 순응되고 굴절되면서 결국 정부가 인민의 목자(牧者)가 되는 상황을 두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민주적 전제란 인민들이 물질로 삶을 행복지수를 높이려는 성향으로 인해 인민의 정치적 결정권이 축소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물질주의는 개인주의와 결합하여 이기주의가 조장되는데 민주주의 사회가 환경을 제공하는 바가 되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전통적 사회의 지성과 덕성을 좀먹게 하는 것이라고 토크빌은 외친다. 개인주의는 처음에는 공공생활의 덕성을 모독하지만 갈수록 모든 공공의 가치를 공격하고 파괴하며 결국은 이기주의로 전락된다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악덕에 해당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공연하게 용인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사회가 표방한 평등화가 야기된 결과이다. 국가 공무원들만으로 통치 엘리트층을 형성하게 되며 이들은 전능하고 단조로운 통치기구를 결성해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생활까지 사사건건 개입하여 간섭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토크빌이 보기에 선거라는 것도 인민이 정부에 예속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다수 인민의 지지가 도리어 민주주의의 취지를 훼손되는 현상을 낳는다는 사실을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들이 늘 깨우쳐야 된다는 것이 토크빌의 경고다, 정치적 주체인 인민이 권력을 행사할 때, 도리어 개인의 자유가 제약당하는 이 아이러니를 통해서 진정한 사회란 지성과 덕성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점에 근거해서 토크빌을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2. 칼 폴라니의 사상

 

폴라니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에 내재된 모순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폴라니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적인 틀을 공박하는 일부터 시작을 한다. 그들은 시장경제만이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인양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폴라니는 말한다. “인간의 행동 동기는 경제적 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을 생산으로 이끄는 유인책은 경제적 동기만이 아니라 정신적 만족감에서도 비롯된다. 따라서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동기만을 선택하여 그것을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류다라는 것이다.

 

수도승들은 종교적 이유에서 교역을 하는 것도 그 한 예가 된다. 결정적인 요인은 사회적 유대감 형성이다. 그 정신적 근거는, 개인은 사적인 물질적 이득보다 우선해서 사회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부여한 명예나 상호간의 배품의 관계구조에서 도망치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 본인 스스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무란 일방적으로 받거나 일방적으로 주는 사이가 아니라 호혜성 속에서 성립한다. 그 사회에 머물고자 하는 본성이 경제적 동기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사회의 각 영역들을 분리해서 파악해서는 아니 되고 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경제 우위가 아니라 사회 우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폴라니가 볼 때에 기존의 경제학자들의 인식이 잘못되게 만든 역사적 시점이 따로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 시점이 바로 19세기부터다.

 

19세기 유럽의 인식은, 인간이란 경제적 동기로 움직인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19세기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과거 인류사마저도 경제 위주로 왜곡시켜 놓았다. 인류 역사상 교환을 통해 이익과 이윤을 얻는다는 동기가 인간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폴라니는 말한다. 물론 시장이라는 제도가 석기 시대 이래로 아주 일반화되었지만 그렇다고 경제를 주도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물자의 희소성과 상품 선택의 원리에 인류의 삶이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서 결속력을 다져나간 것이 인류의 대처 방식이었다. 인류가 원했던 바는 물자가 아니라 그 사회 내에서의 신임이요 명예였다. 가장이 비록 넉넉하게 가정을 부양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버지로서의 권위마저는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전통적 인간 사회였다. 후한 손님 접대, 공동체 활동, 종교적 행위, 혼인 잔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수확물들을 재배분 되었는데 이런 분배는 모두 물질적 이득을 노리고 실시한 일이 아니라 친족 간의 유대감을 더 우선시한 것이다. 따라서 19세기 이후의 경제학자들이 곡해처럼 오로지 경제적 동기에서 실시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사회가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인류사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근대 시장 개념과 자본주의적 분위기에 어디서 어떤 계기로 광범위하게 지배 인간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폴라니의 의견에 의하면, 19세기 강대국들의 벌린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으로부터 야기된 상황이라고 한다. 중상주의 국가의 출현과 기계시스템 문명의 출현으로 인하여 시장 경제가 사회의 다른 면까지 잠식하고 장악하게 만들었다. 즉 국가 주도적으로 상업활동을 국가 전 영토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심지어 농촌지역까지!

 

중세시대 유렵의 교역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국지시장(local market) 과 원거리-무역은 아주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식량공급은 중세도시의 물질적 존속을 위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며, 이러한 목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국지시장이 조성되었다. 더구나 군사적, 정치적 기반으로서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한 교역을 통제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중세도시의 국지 시장은 경쟁적인 성격을 띠지 않았으며 도시 행정의 규제 아래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그런 시장이었다. 공산품 또한 장인 길드들의 필요에 의해 자체적으로 규제 되었고 여기에서 나오는 생산량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보장되는 수준 정도로 제한되었다. 이렇듯 경제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저절로 가격이 조정되는 그런 시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원거리 무역에 있어 도시의 위치는 달라진다. 원거리 무역으로 가져오는 향신료, 소금에 절인 생선, 포도주 등과 같은 것들은 외국 상인들이 관할하는 영역이 따로 분리되었으며, 여기에서는 자본주의적 도매업 형태도 교역되었다. 그러므로 도시 주민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원거리무역과 국지 시장 교역을 따로 분리해두었던 것이다.

 

원거리 무역이 확장되어 자본의 영향이 강해질수록 그러한 분리도 갈수록 더욱 엄격해졌다. 국지 시장 영역에 대한 원거리 무역 상인들의 영향력 확대는 도시의 안정적 기반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거리 무역 상인들의 상업활동은 도매업으로만 제한받았으며 소매업으로서의 진출은 엄격히 금지된다. 왜냐하면 원거리 무역이 도시의 제한을 벗어나면 독점과 경쟁의 문제가 나타나게 되고 따라서 도시 존립에 위협이 되는 독점을 막기 위해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규제가 가동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지 시장은 도시 조직의 규제 하에 놓여 있으며 원거리 무역은 도시와 도시 간의 교역으로만 제한되었으므로 주변의 농촌지역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달리 말해서 교역의 관점에서 보자면 농촌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런데 중상주의의 전면적 실시는 도시에서 자본주의적 원거리 무역을 통해서 도매업에 종사하던 상인들로 하여금 국지 시장에로의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하도록 만들었다. 교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영국과 프랑스 등 대서양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업지역에서 상업과 교역을 새롭게 조직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었다. 다시 말해서 지방적으로 분산적이었던 중세의 경제 질서가 붕괴되면서, 경제에 근본적인 구조 개편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즉 시장이 전국 시장에로의 확대는 중앙집권적 연방국가의 등장을 필요로 하여끔 했다. 중상주의는 비경쟁적 상업을 지탱한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시대적 수명을 다한 국지지상 및 원거리 무역의 배타주의를 단번에 분쇄해 버린다. 중상주의적 국가 경영에서 영토 내의 모든 자원은 대외적 목적을 위해 집중되어야만 했다. 그 결과 국내 정치의 차원에서 자절로 봉건제와 자치 도시의 배타주의로 조각 나 있던 전 국토가 하나로 통일되었다.

 

경제적 차원에서 이러한 통일을 이루기 위한 매개역할을 한 것이 바로 자본이다. 즉 화폐로서의 자본이 통일을 가능케 한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자본주의 시작이다. 기존의 자유주의적 경제 학자들은, 시장을 출현을 자연적인 진화로서 설명하고 있다. 개인의 물물교환에서 순조로운 과정을 거처 국지시장으로 또한 그것의 확대가 원거리 무역을 가져왔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폴라니는 이 이론에 반대하는 것이다. 즉 중상주의 경제 체제 아래서 전국적 규모의 국내 시장은 국가 개입이라는 강제에 의해서 창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중상주의 체제 아래서 기계제 문명의 출현으로 대량생산이 빚어지면서 경제의 성격과 확 달라진다. 기계제 문명은 노동자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뛰어드는 분업의 현장은 노동자들의 생활패턴을 표준화시켜 버린 것이다. 사람에 맞춘 기계가 아니라 기계에 맞춘 인간이 되어야 했다. 자발적 원리보다는 조직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에 접어들자. 시장체제는 대량생산을 감당하기 위해 개별적 시장들은 하나의 자기 조정 시장 체제로 전환된다. 자기조정 시장체제란 단순히 경제적 편리를 위함이 의미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여타의 모든 사회적 가치들이 시장경제 합리성에 맞추어서 제 자리를 잡게 하는 체제를 말한다. 폴라니가 강조하는 바는, 시장의 출현이 진화의 산물이 아니며 기계제 문명이 몰고온 충격에 대한 필사적인 사회적 반응과 변신의 모습이다 는 겁니다.

 

 

18세기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해서 기계의 성격을 폴라니는 둘로 나눈다. 18세기 이전에 동원된 생산 기계들은 값싼 다용도 기계인 것에 비해, 18세기 이루의 기계들은 값비싸고 정교한 특수용도의 기계이기에 기계값의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인간 쪽에서 희생이 되어야 하는 기계다. 어떤 희생? 대량생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생산 수단 말고, 생산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인간과 토지와 화폐는 어떻게든 생산 수단인 기계에 맞추어서 합리적으로 다룰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을 포함한 사회적 관계는 합리적인 생산성이라는 이름하에 생산의 차원으로 응축되고 수렴되어야 했다. 만약이 이게 원활치 않고 예전처럼 인간, 토지, 화폐 등이 그냥 주체적인 사회적 위상을 고수하게 되면 비싼 기계를 가동하는데 지장을 주게 된다. 쉽게 밀해서 토지와 인간과 화폐는 시장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구매될 수 있어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늘 확보되어 한다. 그래야 멈추지 않는 대량생산 체제가 갖추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토지와 화폐가 전체 사회에서부터 제 가치와 의미를 박탈 당한 셈이 된다. 인간과 토지는 화폐는 결코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서는 고유 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에 허용되지 말아야 했었다. 하지만 이들 사회적 복합요소는 임금(賃金)과 지대와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시장 체제에 빨려 들어가 돌아가고 있다. 이는 사회 전체가 시장의 부속물로 전락해버린 지경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 있는 일들 중에서 갑자가 노동만이 따로 떼어져 시장 바닥에서 상품으로 흥정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나머지 의미 있는 가치들도 덩달아 자기 조정 시장의 법칙에 휩쓸리게 될 수밖에 없다

 첨부파일 : 민주주의의 어두운 내막.hwp (45.5K), Down: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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