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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1 06:39:35 조회 : 1640         
마르크스 사상 이름 : 이근호(IP:119.18.86.67)

칼 마르크스 Karl Marx(1818 ~1883)의 사상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 이후, 헤겔의 사상은 서구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 노장헤겔학파는 현실에 이성이 구현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현실과 화해하려 하였고, 청년헤겔학파는 현실에 이성이 구원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서, 현실 속에 이성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 비판 활동을 수행했다.

쳥년헤겔학파는 종교 비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인륜적 실체로서의 국가(헤겔의 국가관)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경험적 존재로서의 국가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려 했다. 즉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고 국가가 종교에 의탁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1842년 [라인신문]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현실을 지배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 등을 목도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국가란 사유재산 체제의 정치권력일 뿐이며 모든 문제는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종교는 왜곡된 현실의 원인이 아니라 그것의 결과이기 때문에, 왜곡된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종교와 국가 비판을 넘어 그 토대인 사유재산 체제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또한 헤겔 철학 자체를 비판한다. 헤겔 철학이 현실로부터 논리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로부터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논리가 주어가 되어 현실이 술어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헤겔이 철학적 해석에 의해 존재하는 것과 화해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주장을 가지고 헤겔을 공격하는데 포이어바흐는 감각적인 것, 실증적인 것이 사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포이어바흐의 문제점은, 인간과 역사를 정적이고 고정적으로 것이라는 것이다. 감각 대상이나 감관 존재인 인간 그 자체를 직관하여 인간을 형이상학적으로 고정시킴으로써 정작 중요한 감각적 활동, 즉 인간의 실천 그리고 실천을 통한 사회와 역사 형성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와 역사가 인간의 실천과 분리되어 사회와 역사에 대한 주체적 파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즉 현실 속에서 사회와 역사를 형성하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철학의 근본 원리로 삼지 못했다는 것이 포이어바흐의 오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헤겔의 변증법을 합친다.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의 토대 위해서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당대의 기계적 유물론과는 차원이 다른 실천적 유물론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다.

개인은 단순히 물질과 기계에 눌려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진정한 휴머니즘은 개인적 차원의 도덕적, 이타적 실천이 아니라 사회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함으로써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휴머니즘’이다. 이를 위해 역사의 영역으로 탐구가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사적(史的) 유물론’으로의 확장이다.

인간론에 있어 마르크스는 헤겔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헤겔이 말하는 정신은 사유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헤겔이 말한 정신이란 자기 바깥에 어떤 것도 없는 존재로,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고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기 내부에 타자를 만들어낼 뿐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절대이념(정신)은 자신의 추상성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 내부에 자연을 끌어내며 그것을 내적 타자로 정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을 내적 타자로만 보는 헤겔의 정신은 그 자체로 현실적 존재가 될 수 없고 ‘비(非)-존재’로 본다.

의식은 의식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내기에 의식 대상이 의식 내부에 있는 내적 타자로서의 대상일 뿐이며 그 대상의 대상으로서 의식이 존재하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헤겔은, 인간의 육체는 자연에 대한 정신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의식의 소외태, 반정립일 뿐이다. 따라서 헤겔은 인간을 정신 혹은 정신적 존재, 다시 말해 사유 주체이자 자기의식으로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연의 일부인 육체의 토대 위에서 의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유 주체가 아니라 생명활동의 주체 혹은 삶의 주체로서 인간을 보는 것이다.

헤겔의 비대상적 사유 주체는 자기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아닌 것(자연, 육체, 사물, 제도 등)을 만들어 그것들을 모두 지양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실현할 뿐이지만, 생명 활동 주체 혹은 삶 주체는 자기 바깥에 대상(자연, 육체, 사물, 제도)을 갖고 동시에 그것의 대상으로 존재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

헤겔은 인간의 자기 생산을 하나의 과정으로, 대상화를 스스로 자기의 바깥 ‘대상으로 됨’으로, 즉 외화(外化) 그리고 이 외화의 지양으로 파악하는 식으로 노동의 본질을 파악한다. 인간이 노동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면 거기에 그의 생각과 의지와 노동이 들어가고 그의 생각과 의지와 능력이 무언가로 되며, 이 과정의 지속적 반복 속에서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깥 ‘대상으로 됨’은 단순히 주체의 노동과 형식의 표현이 아니라 주체가 대상으로 전화됨 혹은 주체가 대상으로 바뀜을 의미한다고 마르크스는 보고 있다. 인류사 차원에서 볼 때에 생산과 사물과 인간에 의해 변경된 자연, 제도, 문화, 구조 등은 단순히 대상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적 전화 과정이며, 인류 그 자신인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소외 개념은 결국 이런 맥락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외, 곧 인류 차원에서의 인간의 자기부정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이다. 인간은 사물, 자연, 제도, 사회구조를 등을 마음대로 조종하기는커녕 그것들과 낯설어지고 대립하며 심지어 그것들에 의해 지배받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개별 인간과 거대한 권력과 조화 혹은 일치를 위해서 불가피하는 고통이 발생된다. 헤겔은 이 고통 극복의 필연성을 정신의 운동 과정 속에서 담아냈고, 마르크스는 인류 차원의 생명 활동과 삶 속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실현이 자기 긍정의 산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생산 체제나 사회구조 등에 의해 제약당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 바로 역사를 발전시키는 방안이다.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과 인간 발전이 병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이 인류 차원의 자기부정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할 정도로 역사가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을 변혁시키는 것과 인간 활동 혹은 자기 변혁의 일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할 수 있으며 또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헤겔에게 역사는 정신의 역사로 존재할 뿐이며, 인간의 육체적 삶, 생명 활동, 육체는 역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포이어바흐는 역사와 인간을 분리하기 때문에 양자를 실천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생명 활동 및 생산 활동과 직접 결부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배제하고 인간 의식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다. 즉 의식은 곧 ‘사회적 산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의식적 삶이 혹은 이들의 연대적 삶이 사회의 법칙적 운동을 좌우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흐름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역사의 우연적 전개를 말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이데올르기ideologues’라는 허위의식을 타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르기는 지배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개인들의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이념만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를 대립적으로 보는 변증법적 사유가 필요하다. 변증법은 하나의 통일체를 대립 속에서 파악하고, 대립을 통일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데올르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역사적 지평과 사회적 지평과 개인적 지평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에 기초한 사회’이어야 하고 ‘개인에 기초한 역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 지평을 삶의 지엽성과 국부성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식은 결박당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개인은 인간의 사회적, 역사적 한계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그것을 실천하려는 삶 속에서만 개인적 지평은 마련된다. 내가 곧 나를 위한 주체가 아니라 사회적, 역사를 새로 재편하는 주체로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말한다. “공산주의란 우리가 성취해야 할 어떤 상태가 아니며, 현실이 형성해야 할 어떤 이상도 아니다. 현 상태를 지양해나가는 현실의 운동을 우리는 ‘공산주의’라 부른다. 이 운동의 제반 조건은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전제로부터 생겨난다.” 즉 공산주의는 미래를 위해 벌리는 운동이 아니라 ‘지금’ 벌리는 운동이다. 지금이 없는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첨부파일 : 마르크스 사상.hwp (31.0K), Down: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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