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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6 13:42:23 조회 : 1722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의 정신분석학

1. 프로이트 이론의 과학성

정신질환에 전공하고 치료하는 의사로서 프로이트는 매일 신경증을 앓고 있던 사람들을 늘 만난다. 신경증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참고로, 신경증( 어느 정도 사회적응이 가능) 과 정신병(사회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이 다르다.

신경증(노이로제)에는 히스테리, 강박신경증, 도착(倒錯)증,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이 있다.

히스테리 환자는 어릴 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발생된다. 언어를 통한 자기 동일성이 불안정해진다. 그래서 욕망이 끝없이 다시 생겨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 욕망을 충족시키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타인의 특정 단어나 행동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

강박신경증은 어릴 때 자신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그래서 그는 계속 발전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반복해서 과도한 손 씻기나 자위행위, 확인하고 또 확인해보는 것.

도착증 환자는 그는 거세(부모의 강제적 관여)를 거부하고 기본적인 환상 속에 빠져버린다. 그는 거세를 믿지 않는다. 거짓이라고 본다. 그에게는 욕망의 대상(남근)과 성적인 쾌감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일치한다. 예를 들면 부질없고 무심한 사물에 집요함을 보이는 것.

우울증은, 자기애를 충족시킬 대상을 상실한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애도(哀悼)하면서 그 애도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애도로 바뀐 상태에서 과도한 양심적 알레르기(면역체계)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자기 학대, 자기 제거로 이어진다

정신병에는 외인성 정신병(치매, 간질)와 심인성 정신병(정신분열증, 편집증)이 있다.

정신분열증은 모든 기표로서 하나의 개념 혹은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증세. 예를 들면 “나는 나폴레옹이다!”라는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돈키호테 같이 사는 것.

편집증의 주체는 하나의 기표로 어떤 의미라도 나타낸다. 주체는 하나의 명확한 개념에 묶여 있지 않는다. 무슨 말이라도 믿지 아니하고 거리를 두고 자신을 파괴하는 공작으로 본다. 의부증, 의처증이 예다. ]

프로이트는 처음에 (물리학적으로 경도된) 생물학의 방법으로 신경 현상을 연구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체 기관과 그것의 무대인 뇌(신경 체계)를 조사해도 그것은 기껏해야 의식 과정의 정확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지 의식 과정의 이해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신경체제의 이 가설을 철저하게 검토한다. 매우 강력한 자극은 신경체계의 정상적인 작용을 교란시킬 수 있다. 요컨대 프로이트는 일종의 심인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심인(心因)적인 설명의 강점은 사람의 특이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유전적인 또는 유기적인 특이성을 상대화한다는 점이다. 어떤 유전적인 또는 유기적인 변이는 신경증과 유사한 현상을 발현시킬 것이다. 그렇지만 신경증이 반드시 생물학적인 또는 생리학적인 변이에 의하여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적인 경험과 관련하여 당시 생물학의 해명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강력한 이론이 없는 가운데 새로운 해명의 가능성을 찾았다. 그것이 꿈이라는 소망충족성향다.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꿈을 분석하면서 실마리를 찾는다.

2. 무의식의 철학

(1)무의식은 마음속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정신 활동을 말한다. 의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쾌-불쾌의 원리와 ‘정신을 촉발하는 자극의 양’ 곧 충동의 원리에 따라 실시된다. ‘충동’ 정신과 신체 사이의 경계선에 있는 개념으로, 신체기관 내에서 발생하여 정신에 도달하는 자극의 심리적 대표자로 나타난다.

무의식은 ‘쾌락원칙’을 따르고 의식은 ‘현실원칙’을 따른다. 무의식 속에는 ‘억압’이 작용하고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어떤 것을 되돌려 보내어 의식과 거리를 두게 한다. 이것이 정동(예를 들면 불안, 기쁨 등등)이다. 이 정동이 충동을 대표해서 의식층에서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은 이것을 ‘현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정상인이나 정신병 환자들이나 무의식에서 조작된 환상을 만들고 있고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신체는 불쾌감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경향을 유아 때에 갖는 최초의 경향과 동일시한다. 이런 식으로 프로이트는 정신을 신체에서 유도해낸다. 무의식이란 단순히 잠시 잊혀졌다가 다시 의식 속에 떠오르는 기억이나 관념을 말하는 전의식(前意識)과는 다르다. 무의식은 의식에 떠올릴 수도 없고 접근하려고 해도 거부당한다. 전의식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마음의 일차 지형학적 모델이다.

(2)강박행위: 고통스런 기억이 억압되어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 것은 무의식만이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이며 무의식적 행위를 통해 무의식에서만 충족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의미조차 의식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내 안에 의미를 만들어내고 의미 있는 행위를 만들어내는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의식의 현상 방식: 징후로만 등장하는데 꿈이나 말실수나 농담을 통해서 불쑥 튀어나온다.

(3)꿈: 꿈은 본래 의미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변형되거나 왜곡되어 나타난다. 잠잘 때 우리 머릿속에 나타난 꿈을 ‘현재내용(나타난 내용)’이라고 부르고, 꿈의 숨겨진 의미를 ‘잠재 내용(숨겨진 내용)’이라고 부른다. 숨겨진 내용은 꿈꾼 사람의 자유 연상을 통해서 찾아내야 한다.

‘꿈의 해석’이란 ‘나타난 내용’을 ‘숨겨진 내용’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반대로 꿈의 ‘숨겨진 내용’을 ‘나타난 내용’으로 바꾸는 것을 ‘꿈의 작업’이라고 한다.

꿈의 작업: 여기에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응축(압축), 치환(대체), 대리 표상이 그것이다.

첫째 과정은 ‘응축’은 나타나는 꿈이 숨겨진 꿈보다 내용이 적어지는 것인데, 숨겨진 내용의 일부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얼굴은 A 같은데, 옷 입은 건 B 같고, 걸음걸이는 C 은데 실제로는 D의 역할을 하는 경우다. 이건 네 사람이 한 사람으로 응축되어 나타난 것이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물이나 장소도 마찬가지다. 마치 여러 개의 사진을 한 장의 필름 위에 찍어 놓은 것과 비슷하다. “당신의 결혼을 축하합니다.”는 말을 ‘축 결혼’이라는 말로 압축한 전보문과 같다.

둘째 과정 치환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숨겨진 요소’가 그것과는 별 관계가 없이 암시적 성질만을 갖는 비슷한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요한 요소에서 중요하지 않는 요소로 강조점이 변해서 꿈이 이상한 모습을 띠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꿈에 샹들리아에 머리가 부딪혀 피를 흘리는 꿈을 꾸었다면, 이 여자가 평소에 머리털이 많이 빠지는데 그 전날 어머니로부터 “애야, 너 그렇게 머리털이 빠지다가는 나중에 머리가 엉덩이같이 되겠구나”라는 소리를 들었다 칩시다. 그러면 자신의 신체가 피해보는 것을 기피하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면서 유사성 있는 물체로 대체한 것이다.

셋째 과정인 대리표상은 ‘어리석다’나 ‘서두르다’ 같은 개념은 시작각인 영상으로 바꿔놓는 것을 말한다.

이런 방법으로 꿈은 본래 내용을 왜곡하고 가공하고 변형한다. 이것은 ‘꿈의 검열’ 때문에 일어난다. 검열은 숨겨진 내용이 의식구역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깊은 수면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도덕적인 의식이 무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여 억압하는 것이다. 실은 밤에 꾸는 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낮의 활동하게 되는 모든 일상생활이 이러하다. 이 억압의 내용이 곧 선천적으로 부모로부터 지니고 나오는 쾌락의 에너지, 곧 ‘리비도Libido'이다.

(4)죽음 충동과 생존 본능: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의식의 대립이라는 구조로 생각했으므로 인간의 본질적 에너지인 리비도(성욕구)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자아 보존욕구를 상정했다. 이 자아 보존욕구는 외계의 위험이나 불쾌한 상태로부터 피하기 위해서 리비도에 대항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에 지배 감정이나 공격성이 표면에 나온다고 생각했다.

죽음충동은 개체 발생상 가장 오래된 충동으로 여겨진다. 곧 ‘정신의 죽음’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생활에 있는 무의식적인 자기 파괴적·자기 처벌적 경향에 주목했다. 퇴행의 궁극점이며 생명 발생 이전의 원초로의 회귀를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생사나 존재, 비존재의 구별도 없고 명시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곤란해서 죽음이라 은유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곧 인간의 죽음의 이미지와는 관계없이 비생명으로 향한다는 의미다.

(5)선천적인 것

선천적인 에너지 : 선천적인 것은 주로 성적(=생존본능)인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충동과 욕망이다. 이처럼 쾌락을 향해 인간을 밀어붙이는 에너지를 ‘리비도'다. 바로 이 리비도가 태어나면서부터 유아의 행동과 성격을 규정한다. 리비도가 만족의 대상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게 되면 자기애(自己愛), 곧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보인다.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나쁜 욕망 가운데 개표적인 것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사랑의 대상을 고수하려는 욕망이다. 이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라고 부른다. 중요한 건 ‘나’란 존재가 결코 고상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6)후천적인 것

무의식도 여러 부분으로 분열되어 있어 의식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을 억압하는 무의식도 있다. 곧 여러 가지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다. 이것을 정리하는 것이 마음의 2차 모델이다. 개인의 성격 구조를 분석하는데 있어 새로운 개념이 도입된다. 그것이 바로 ‘이드id(=거시기)’와 ‘에고ego(자아)’와 그리고 ‘슈퍼 에고super ego(초자아)’이다. 1차 원억압에 의해서 에고가 지형학적으로 자리 잡고 2차 억압에 의해서 초자아가 자리 잡는다.

이드는 완전히 무의식적 충동이지만 초자아는 의식적인 요소도 있고 자아는 모두 의식이다.

이는 선천적인 여러 가지 본능의 원동력으로 모든 리비도의 원천이다. 이것은 비논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동물적이고 맹목적이다. 오로지 쾌감이나 쾌락만을 추구하고 고통스런 것을 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쾌락 원칙’이라고 하며 자아와 초자아의 밑바탕을 이룬다.

초자아는 내 안에 존재라는 외부 세계(기성세대)의 대변자이다. 사회에는 요구하는 도덕률이나 금기나 규율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개는 부모에 대한 동일시, 그러니까 부모와 자기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해서 부모의 행동이나 생각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교육을 통해서 익히게 된다. 초자아는 자아를 시켜 이드의 성적 충동이나 공격 충동을 내부에서 억압하도록 통제한다. 곧 사회 문화적 규율의 내면화를 실시하는 것으로서 ‘양심이라고 부른다.

자아는 이렇듯 초자아와 이드의 중재자가 된다. 자아는 이드와는 달리 ‘현실 원칙’(쾌락 원칙이 아닌)에 따라 움직인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연히 ‘인식 기능’이 발달한다. 하지만 끊임없는 이드와 초자아의 대립으로 인하여 거기서 유래하는 갈등과 긴장 때문에 불안은 언제나 개인의 무의식 속에 있게 된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승화’가 필요하다. 즉 충동의 목표나 대상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성욕에서 이탈하여 예술이나 창작, 또는 창조 활동으로 대상을 전이시킴으로써 충동을 좀 더 고차원적인 일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복음적인 평)

인간은 단독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의 관계로 설정되어 움직이고 있다. 예수님의 언약적 관계가 밝혀지면 자연적으로 독자적 존재라고 우겨대는 그 고집이 실은 인간 배후에 존재하는 악마와의 관계성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임이 밝혀진다.

즉 사단은 인간은 앞장 세우면서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 목적은 바로 ‘예수님의 주되심’을 성토하는 속성의 발휘다. 예수님의 세계에 거부하고 ‘인간의 세상’을 수립하려고 조종한 것이다.

프로이트의 철학은, 언약의 등장으로 밝혀지는 ‘사단과의 관계성’이라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철학이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경향은 과학성 쪽으로 경도(기울어진)된 진리관 때문이다. 즉 과학적일 때만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란 인간의 이성이 내놓은 ‘해석’의 일종일 뿐이다. 자기애(自己愛)를 해명하기 위해 해석, 자기애를 옹호하기 위해 해석이 곧 과학이다. 기존의 의식 중심의 해석을 넓히고자 무의식 영역까지 착안해서 파고들어가지만 해석이란 아무리 우회해도 무의식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 지평에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의식적 차원은 언어라는 인공적인 매개만 허락하고 구성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곧 인간의 자기 증명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언약도 무시될뿐더러 악마의 존재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인공적 세상뿐이다.

 첨부파일 : 프로이트의 과학성.hwp (36.0K), Down: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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