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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2 16:14:04 조회 : 1063         
[체스터턴의 정통]이라는 대한 책에 대한 서평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 G. K 체스터턴의 정통 ORTHODOXY ] 아비선원(서울: 2016)



저자인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 영국 수필가)을 기독교로 인도한 것은 정통 신앙과 신학을 변증하는 경건서적이 아니라 도리어 정반대로 반(反)-기독교 서적들이었다. 기독교를 맹렬하게 반대하는 각종 사상들을 분석하면서 이상하게도 그 비판들 자기네들 끼리 상호 모순된 반응들을 보인다는 점을 착안했다. 그래서 “아니, 어쩌면 사람들이 종교와 행복의 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최고의 심판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고 고백한다.(p 196)



체스터턴을 그것을 계기로 기독교 자체를 들여다 보게 만들었고, 기독교를 바라보는 외부의 모순점 자체가 기독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외부 세계 자체가 문제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독교에 대해서 이성(理性)적인 공격을 해대고 있지만 그 이성이 인간을 이상하게 만들고 미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성의 극한’에서 발견하게 된다. 자그마한 원 안에서도 자체적으로 무한하고 새로운 진리다발 같은 것을 이끌어낼 수가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커다란 원만큼 풍부하지 못한 것처럼, 인간이 아무리 자체적으로 위대함을 확인하려 하지만 감히 기독교가 품고 있는 원은 따라 가지 못한다. 총알은 지구만큼 둥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구는 아니다. ‘편협한 보편성’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한다.



기독교가 진리에 있어 강자(强者)임을 의식하면서 열등감으로 공격을 해대지만 그 와중에서 공격자는 자신의 ‘정신적 위축’을 감당 못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 이유는 만일 사람이 자기의 세계를 크게 만들고 싶다면 언제나 스스로를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겸손을 시도하면서도, ‘내가 언제까지 겸손으로 일관할 것 같냐’라고 독기를 품지 않는 척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1마일이나 높은 동상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동상은 한 평의 땅에서 실제로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는 극히 좁은 신체적 평수만을 차지하며 사는 주제에 우주 만물에 대해 온갖 상상은 할 수 있으나 과연 진리를 다 함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기독교를 독단을 저지하기 위해서 흔히 교양인들이 “모든 종교는 다 같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 주장의 근원이 되는 ‘내면의 빛’은 밝은 것이 아니라 우울하고 암울하고 최종점을 벌써 알게 된 절망감에 대한 어두운 고백이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나는 나의 내면의 신을 숭배한다”는 말은 곧 내가 나를 숭배한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든지 간에 ‘자기 당착(撞着)적인 이중성’을 공격자 본인에게 되받게 돌려주게 되어 있다. 그것은 기독교 안에서 아주 특출하고 유일무이한 그 무엇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구두쇠면서도 동시에 돈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물다. 호색적인 동시에 금욕적인 사람이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물다. 그런데 만일 온갖 터무니없는 모순으로 똘똘 뭉쳐진 이런 덩어리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즉 근엄하면서도 잔인하고, 매우 멋있으면서도 초라하기 그지없고, 무척 소박하면서도 안목의 정욕에 영합할 정도로 화려하고, 여성의 적이면서도 그들의 피난처이고, 엄숙한 비관주의자이면서도 멍청한 낙관주의지인 이런 악이 만일 존재한다면, 평소에 기독교를 그토록 물어뜯듯이 공격하는 점잖은 합리주의적 선생들이 이런 모순에 찬 대상자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곧 바로 저자(체스터턴)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기독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서 온 것이라는 설명 말고는 달리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사렛 예수가 만일 그리스도 아니라면, 그는 분명 적-그리스도였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인물이 많은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들었다고 하자. 일부 사람은 그의 키가 너무 크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너무 작다고 말하고, 일부는 그가 너무 뚱뚱해서 싫다고 하고 또 다른 일부는 너무 말라서 불쌍하다고 말하고, 일부는 그가 너무 검다고 생각하고 다른 일부는 너무 희다고 여기는 소리를 듣고 나면 우리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오직 다음과 같은 설명뿐이다. “그는 그에게 알맞은 모습을 갖고 있다”고! 즉 기독교는 온전한데 모든 비판가들이 이러저런 모양으로 비쳤다. 아니,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비판하는 모든 자들을 미치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가장 합리적 설명은 이러하다. “예수님에게는 사랑과 분노, 모두 함께 불타고 있다”고. 이것이 정통이다! 이로서 기독교는 심히 상반되는 이 두 가지를 묶어 놓되 그 둘을 격렬한 상태 그대로 견지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한 사람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자유로운 것과 한 사람이 어떤 도시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자유로운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감옥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도시에서도 벗어나는 것을 좋아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 인간은 갇혀 있다.



그 갇혀 있음을 기독교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알린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전능함이 오히려 하나님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교다.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온전한 하나님이 되기 위해 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반란자이기도 하다”(p 299)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탄이 사람을 시험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동산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에게 버림받아 울부짖는 그 순간이 자진해서 반역의 자리에 선 참된 하나님의 모습이다. 이처럼 이 세상 어느 종교가 하나님이 잠깐 동안 무신론자처럼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은 ‘가라앉은 배’이다. 하지만 십자가 달고 잠수함으로 변모되어 있어 물의 압력을 견뎌내는 유일한 종교다. “하늘의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가 도무지 들을 수 없기에 우리는 별의 총총한 침묵의 방에 그냥 앉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p 343)



(평)


체스터턴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인물 중에 유명한 자가 C. S 루이스이고 요즈음 와서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다. 루이스는 기독교 청년들에게 이렇게 강하게 저자를 추천한다. “강한 무신론자로 남고 싶은 젊은이는 그의 글을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달리 말해서, “주변에 무신론자의 논리에 밀리고 싶지 않거든 그의 논리로 무장하면 된다”는 말이다.



기독교를 합리적으로 방어하는데 필요한 논리를 체스터턴은 빠짐없이 원론적으로 제공했다고 보인다. 유물론이든 유심론이든, 관념론이든, 실재론이든, 기술주의든 반(反)기술주의든, 지성주의든 반(反)지성주의든, 진화론이든, 모든 것을 과학으로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과학주의든, 앎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회의(懷疑)론이든, 인간의 의지를 천명 니체주의든, 어떤 종교적 신념도 허용하지 않는 자유사상이든, 인간에게는 내면적 신적 원리가 있다고 믿는 신지(神知)주의든 불교사상이든 간에 이들 사상의 최종 주장 부분을 건드리면서 (그들 사상을 일일이 본 책에서 거의 서술해놓고 있지 않다) 그 허술하고 비현실적이고 모순된 점을 가볍게 처리하고 있다.



이 책은 본격적으로 정통신앙의 교리를 설명하거나 나열하는 대목이 전혀 없다. 성경에 대한 어떠한 변론이나 주석이나 해설도 없다. 단지 기독교에 대한 모든 공격이 자체적인 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 자체가 극히 합리주의자이다.(p 309) 단지 이 모든 거짓 사상에 대한 공격은 원죄 교리에 서 있어야 가능하다 고 믿는 합리주의자이다.



그는 그 어떤 완전 교리를 거부한다. 차라리 “스스로 나름의 이단을 창설하려고 노력했는데 거기서 마지막 손실을 가하고 보니 그것이 정통신앙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p 15)



한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복음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단지 그동안에 기독교를 둘러싼 그의 격정을 사심 없이 묘사한 책이다. 어쩌면 자신이 만든 가상의 적들과 싸운 내력을 말하는 책일 것이다. 단지 격려하고 싶은 그가 이상(理想)적인 세계를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아이에게 동화가 따로 필요 없다. 그가 사는 것이 곧 동화이기 때문이다.”(p 128)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첨부파일 : [체스터턴의 정통]에 대한 서평.hwp (17.5K), Down: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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