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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00:10:58 조회 : 576         
유튜브 (192강, 193강) 거짓선지자, 저주 170606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192강         음성                동영상

 

193강          음성               동영상

 공은주(IP:119.♡.152.148) 17-06-14 11:37 
192강-YouTube강의(거짓 선지자)170606-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192강, 제목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성경에 선지자라고 단어가 하나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앞에 거짓이 붙은 거짓 선지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가 상식으로서는 선지자는 아무나 자기 하고 싶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선지자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면 그러면 거짓 선지자는 그럼 누가 보냈느냐, 예레미야29장19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해서 참된 선지자는 보냈지만, 그들이 그 선지자의 말을 선지자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왜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이 보내셔도 왜 보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땅에 거짓 선지자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땅이 그냥 건전한 땅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드러나지요.

선지자가 없는 땅과 선지자 하나 보낸 땅의 비교가 아니고 참된 선지자를 보냈지만 그것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미 다른 선지자가 진치고 있다는 말은 이 세상이 그냥 선지자가 없는 게 아니고 거짓선지자로 장악돼 있는 그러한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게 예레미야29장31절에 보면 나오지요.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방금 요 두 구절을 가지고 한번 결합을 시켜봅시다.

결합을 시켜버리면 이 땅에서의 참된 선지자다. 라는 특징이 나와요. 그것은 뭐냐, 참된 선지자의 말을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는 겁니다. 듣기 싫어한다는 거예요. 이것은 갈라디아서1장에서 나오지요.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예레미야 구약도 마찬가지지만, 신약 때 와서도 이 세상은 달라진 게 없어요. 똑같습니다.

자, 사람들은 내가 누구냐, 또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하나님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자기가 어떻게 잘 될 것이냐 관심 있지요. 거기에 대해서 선지자는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니가 놓여있는 동네가 어떤 동네냐를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니가 살고 있는 이 터. 이 터가 어떤 터인가를 알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자기 몸 편하고 자기 계획대로 잘 되게 되면 살기 좋은 세상이고, 참 아름다운 세상이고 살만한 세상이고 아마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아~ 이런 정도로 계속나아가면 나는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깔아놓을 만한 세상으로 그렇게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이 세상에 물을 푹~ 젖어들었다고 보면 돼요.

우리라는 것이 이게 단독으로 내가 나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주변에 내 사고방식과 생각을 형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주변에서 사상들이 우리한테 쏟아집니다. 그러면 쏟아지게 되면 우리는 판정을 제대로 해야 되는데, “저것은 참된 선지자의 말” “이것은 진리” “이것은 진리가 아님” 판정을 해야 될 텐데 그 판정하는 그 잣대나 평가기준이 이미 물 들었어요. 죄로 물 들었습니다.

죄로 물 들어서 참된 선지자의 말을 안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고 핍박을 해버리고 그 참된 선지자를 반대로 생각합니다. 어디서 나한테 마귀 말을 이야기해요. 참된 선지자의 말을 마귀 말로 이해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한 번 정리 정돈할 필요가 있지요.

참된 선지자의 말을 반대로 한다는 자체가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하면 이렇게 반박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참된 사람인데, 참된 사람이 볼 때에 잘못된 것들이 왔을 때 잘못됐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아니하냐, 이런 경우도 생각할 수 있거든요. 참된 분이 왔는데 내 쪽에서 잘못되어서 거부한 경우도 있고, 그런데 정말 엉터리 같은 마귀의 종이 왔는데 나는 참되기 때문에 마땅히 거부할 경우, 그런 경우도 있다 말이죠.

그 둘 중에 어느 쪽을 우리가 선호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느 쪽이 항상 우리에게 나타나느냐, 그걸 우리가 파악해야 되는데 이렇게 증거하게 되면 이게 정답이 될 것 같습니다. 참된 선지자의 말을 내가 곧이곧대로 들을 때는 어떤 특징들이 나와요. 그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더러운 세상이 좋다고 이 더러운 세상이 뭐 그리 좋다고 더 오래 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이 세상의 성향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이 세상에 붙들고 이 세상에서 자기 무사안일과 자기의 행복만을 챙기면 그것이 진리인양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

‘내 몸 하나 따시고 내 몸 하나 편하고 내 몸 하나 건강하고 내 주변의 가족과 나와 관련된 쪽이 상당히 내 뜻대로 내 예상외로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더는 소원 없다.’ 하는 그런 식으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주님 사랑하지 않고 자기 사랑하는 문제성 있는 사람입니다. 자, 여기서 인간들이 교회를 왜 세우는지 왜 교회를 출석하는지 교회 가서 은혜 받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진짜 선지자, 사도들이나 예수님이나 많은 선지자들은 이 땅에서 아벨처럼 핍박을 받았어요.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합니다. 핍박을 받는 분이 있는 그런 분이 설교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겠지요. 누가 핍박한다? 교인들이 오히려 목사를 핍박하는, 그런데 그 핍박받는 이유가 단 한 가지 바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고 그걸 고발하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교인들한테 환영받지 못하고 핍박을 당할 때 그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참된 진리를 전하고 복음 전하는 건 좋은데 이 교회가 운영이 될 리가 있습니까? 전기세 낼 값도 안 나올 것이고. 목사 생활비는 고사하고 운영비도 안 나올 것인데 그 교회가 되겠습니까? 바로 교회가 복음이 전파할 때까지만 교회를 운영하는 그게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교회.

줄곧 참된 교회는 이 가짜 교회들 속에서 그런 식으로 우연적으로 출몰하는 식으로 사라졌다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또 성령에 의해서 나타났다가 또 반복적으로 밉상 받고 미움 받으면서 그렇게 교회는 소멸되고 또 나타나고 그것이 바로 참된 선지자의 기능이 반복되는 그런 교회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이 땅에서 늘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안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보내지 않은 자가 설교하는 교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교회,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과 자기 사랑에 충족시키는 설교를 내뱉는 교회.

 “예수를 언급하고 삼위일체를 언급해도 결국은 여러분은 행복해야 됩니다.” 라는 그걸 마지막설교의 결론으로 내놓는 교회. 악마의 교회 그 교회는 이 땅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이 땅이 영원할 까지만 영원할 겁니다. 이 땅이 멸망 받을 때 같이 멸망당하는 교회입니다.
 공은주(IP:119.♡.152.148) 17-06-14 11:38 
193강-YouTube강의(저주)170606-이 근호 목사

193강, 제목은 ‘저주’입니다. 저주라 하는 것은 자기를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이미 저주를 품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성경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 그 자리에 가야 되는데 그게 우리의 피조물의 마땅한 태도인데,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간주하고 거기다가 뭐를 집어넣느냐 하면 신께서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었으니까 책임지라는 이야기지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들었으니까 만드신 분이 책임져야지 만들어진 자가 책임 못 집니다.” 라는 이 투가 그런 툭툭 던지는 생활의 이런 단편들이 “하나님이 책임지세요.”라는 투로 도도하게 나올 수가 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평소에 자기가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 책임질 수 있는 것을 한 번 살아보거든요. 인간이 신을 찾을 때가 언제입니까? 본인이 모든 일이 본인이 알아서 잘할 것 같으면 신을 찾겠어요? 안 찾지요. 신을 찾을 때 언제냐 하면 본인이 잘 안 될 때, 답답할 때에요.

그렇다면 일이 잘 안되고 답답하게 되면 내 형편에 맞는 내 위치에 맞는 내 주제에 맞는 그러한 목적을 내가 제대로 세웠는지 아니면 오버했는지 내가 지금 욕심을 부려놓고도 안된다고 지금 신에게 항의하는지를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되는데, 사람은 본인이 욕심을 내는 게 아니고 욕심이 인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욕심이 시키는 대로 화부터 버럭 내는 거예요. 신에게.

이 약하고 약한 진짜 아무것도 아닌 벌레만치도 못한 인간을 왜 갈굽니까? 나름 최선을 다하여 나쁜 짓 안하기 위해서 평생을 착한 일만 하기. 그런 정신 상태로 그런 인생관으로 이렇게 살아가는데 왜 내 인생을 이렇게 답답할 정도로 콱콱 막히게 하십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책임지라는 이야기거든요.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어요. “사랑한다면서 인간을. 사랑하면 사랑 값을 해야지. 아니 사랑한다고 하면서 괴롭히기 이런 사랑이 다 있어?” 이렇게 따지는 용도로 신을 찾습니다. 물론 남 보는데서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지요. 너무 세게 나오면 또 없는 몇 가지 더 나오겠다 하는 겁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세게는 안 나오지만.

우리가 회사 직원들이 뭐 따질 것 있을 때 사장에게 따질 때, 그냥 빈손으로 갑니까? 주스 사 들고 갑니까? 주스 한 박스 5천원내지 6천원짜리나 좀 세면 만원짜리 들고 가잖아요. 마트에서 흔히 살 수 있어요. 사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는 겁니다. 뇌물은 아니지만 성의를 표하면서 내 쪽에서는 이 정도로 당신한테 좋은 감정으로 다가서니 내 속마음을 좀 알아 달라. 속마음.

내가 이거 없는 돈에 해가지고 주스 사들고 사장님 찾아가는데 사장님! 미워요. 하는 식으로 찾아갈 때, 사장님이 내 이 겉 말고 이 속 마음을 좀 이해해줘가지고 좀 깊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 깊은 대화가 뭡니까? 철야기도고 산기도고 그런 거잖아요. 깊은 대화가.

그 사무엘상1장에 보세요. 사무엘엄마 한나가 아주 깊은 대화를 나누잖아요. 아들 달라고. 믿음 있는데 자꾸 주위에서 믿음 없다 해가지고 내가 한이 맺히니까 나도 아들 달라고 깊은 대화하잖아요. 한나의 기도응답 받았잖아요. 한나나 나나 똑같은 인간인데 응답 못 받을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나와서 기도한다는 것은 니도 해봐라. 된다는 식으로 우리는 그런 어떤 사인처럼 신호처럼 그렇게 해석들을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든 것은요, 저주를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었어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2장에 나옵니다. 창세기2장에 그 동산 이름이 뭐죠? 에덴동산. 아주 즐거운 동산이에요. 그러면 즐거우려면 100% 즐거워야지.

직장이나 애들 놀이방 있잖아요. 카페 놀이방 있지요. 놀이방 이름에 에덴놀이방이라 칩시다. 학부모들이 에덴놀이방해가지고 니는 여기서 놀고 있어라. 엄마는 쇼핑하고 갔다 올게, 하는데. 그 에덴놀이방에다가 독사 한 열 댓 마리 넣어놓으면 그게 에덴입니까? 그게 에덴이에요. 그게. 그게 하나님이 말하는 에덴이라고요. 에덴동산.

그런데 인간은 에덴이 뭐냐, 자기 위주에요. 지금 여기 있는 내가 나에게 요만큼이라도 해코지나 나를 지금보다 힘들게 한 요소들이 완전히 없는 걸 우리는 낙원이라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니 생각이고. 그건 인간들 생각이에요. 왜 에덴동산에 뱀 있으면 안 됩니까? 그리고 뱀 정도가 아닙니다. 그 어린애 놀이동산에 그것도 제일 중앙에 한복판에 애들이 조금만하면 다가갈 수밖에 없는 그 중앙에다가 이 놀이기구를 타는 애는 영원히 죽으리라. 이런 놀이기구를 왜 만들어놔요. 애들 위주의 놀이동산이라면 그게 없지요.

에덴동산은 인간들 위주로 만든 동산이 아닙니다. 하여튼 이 세상에 어느 동산, 어느 순간, 어느 지점이라도 사람위주로 만든 어떤 나무나 은행나무나 아카시아나 그리고 뱀장어나 코끼리 인간 위주의 그런 존재가 없어요.

지금 서울이나 경기도나 남쪽 충청도 아주 심한데, 가뭄 비 안 오지요. 비 안온다고 지금 기도하고 기후제 드리는데, 한 번 물어봅시다. 비 왜 와야 됩니까? 비 왜 와야 되지요? 우리가 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권리가 있습니까? 우리가 뭔데요? 우리가 이 땅에서 천년 삽니까? 이 만년 살아요? 비 줘도 100년밖에 못 살아요. 100년 하는 것은 많이 늘인 겁니다.

어떤 사람은 비 줬는데 50대에 뇌졸중 걸려 죽은 사람도 있어요. 비 줘도. 공기 줘도. 비 왜 와야 됩니까? 가물 때 내가 누구냐를 한 번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비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한 적이 있습니까? 당연한 걸로 여기잖아요. 언제 감사했습니까?

지금 밤에 달뜨지요. 하나님께서 달을 없애봅시다. 달을 없애면 또 달 달라고 난리일 거예요. 사는 게 저주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아주 인품 좋고, 아주 침착하고, 사리분별하고 저주입니다. 인품 좋은 거 있잖아요. 그거 저주거든요. 인간성 좋은 거. 남 배려할 줄 알고 이웃 돌볼 줄 알고 인정 베풀 줄 아는 것. 그게 저주의 증거에요. 착한 일하시고 지옥가면 돼요. 이웃 사랑하고 지옥가면 되고. 하나님 섬기고 지옥가면 돼요.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외에는 못가는 곳입니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저주와 축복은 근거가 뭐냐 하면, 지가 편하면 축복이고 지가 뭔가 비가 안 와가지고 농사가 힘들면 그게 저주인 줄 알고 있어요.

아무 일없이 잘 되는 것. 그거 저주입니다. 신명기7장, 8장에 보면 나오거든요. 모든 일이 만사가 잘되니까 하나님이 별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필요치가 않아요. 아까 192강에서 했지만, 답답하니까 찾는 거예요.

왜 니가 답답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 물으면,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할 자라는 그 분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이 주어진 겁니다. 예수의 피는 아! 저주도 받으면 받아야 마땅한 것이 인간이구나! 그래서 인간은 없고 인간은 육입니다.

주님의 저주권과 축복권을 증거하는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땅의 사람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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