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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00:15:46 조회 : 416         
유튜브(194강, 195강) 성도의 모습, 종교놀이와 신앙 170620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194강               음성                동영상

 

 

195강                음성               동영상








 공은주(IP:119.♡.152.148) 17-06-21 16:01 
194강-YouTube강의(성도의 모습)170620-이 근호 목사

194강, ‘성도의 모습’입니다. 내가 성도일까? 아니면 성도 아닐까? 사람은 다 한 번 자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니까 성도라는 기준 같은 것을 맞추고 그 기준에 부합되고 맞추고 싶어 할 거예요. 정형화된 성도의 모습으로 규정화된 그러한 기준을 세운다면 어떤 자들이 성도라고 할 수 있느냐 그걸 4가지로 보겠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자신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바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자신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 그래서 이게 복음을 자신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에 여기서 누가 탈락하느냐 하면 개인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은 다 탈락하는 거예요. 개인구원 추구하는 사람.

나 죽어서 천국 가느냐, 마느냐, 이거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복음을 이야기해도 복음을 듣고 난 뒤에도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복음보다 자기 자신을 더 챙기려고 하겠지요. 개인구원은 다 탈락입니다.

복음이 자신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이 복음이 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니 그게 어디서 나왔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복음이 증거가 되는 성경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겠지요. 관심을 갖게 됩니다.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게 되면 자연적으로 말씀에 관심 갖기 전에 관심 갖은 게 있었을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세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 또는 세상에서의 탈출, 애굽에서의 벗어남, 그런 이야기할 때 애굽에서의 벗어남 또는 세상에서의 벗어났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에서 벗어났다 할 때 그게 우리한테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되느냐 하면 관심사가 전에는 말씀보다도 세상에 더 관심이 가있고 머리가 전부 다 세상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거예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존재의 자리를 가질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대단한 존재로 생각할 것이냐, 거기에 관심가지고 있다가 이제는 아까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복음이 자신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정말 이건 중요한 거예요.

복음이 자신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은 내 구원이 우선이 아니다 이 말이지요. 복음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 복음의 피조물로 우리가 있기 때문에 나보다 더 소중한 것에 있다 보니까 그 소중한 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말씀에 나와 있다. 그 말씀에 관심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요.

첫 번째는 복음이 나보다 더 중요하고, 두 번째는 복음이 나왔던 그 바탕이 되는 이 말씀이 어떻게 해서 여기서 복음이 나왔는지, 나보다 더 중요한 게 나왔는지를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세 번째는 뭐냐 하면, 그 말씀에서 복음이 나오는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은 뭐가 되느냐 하면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요. 이게 자기 부인이라 하는 겁니다. 말씀을 덮어버리면 인간은 절대로 죄인이 아니에요.

왜냐 하면 나는 말씀을 어느 정도 안다. 나도 니한테 못지않아. 남하고 비교해서 기죽지 않으려고 하는 애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관심을 말씀으로 갖게 되게 되면 자기가 죄인이 되어버리지요. 왜냐하면 복음이 나오는, 복음을 만든 분이 성경에서는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 이 성경을 가지고 가서 복음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뭐냐 말이지요.

그러면 예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거꾸로 하게 되면 나는 죄인이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에서 복음이 나와서 그 복음이 우리를 건지니까 하나님께서 생각하기를 나보다 더 복음이 우선이 된다. 논리적으로 맞는 겁니다.

자기가 죄인이 되니까 4번째 마지막이 뭐냐 하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성경을 알고, 여기에 관심을 두고 천국 백성을 이미 시작하게 하신 거니까 뭐가 되느냐 하면 감사가 되겠지요. 모든 일에 감사가 되겠지요.

그리고 내가 생각한 현실이라 하는 것이 전에는 내가 만든 현실이라 생각했는데, 성경에서 유발된 성경이 성경답게 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형성되어왔던 환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제 취직했다면서요?(옆 목사님에게) 바로 취직했다는 것은 모든 게 감사하는 거예요. 지난 낮 설교에서 했지만, 주어진 것에 겁내지 마라 했지요.

공익된 것에 대해서 겁내지 말아야 되는데, 힘든 일에 대해서 겁내지 말아야 되는데 겁을 낸다는 것은 자기가 죄인 아니라는 뜻이고 죄인 아니라는 말은 뭐냐 하면 나는 나를 가장 더 소중하게 여기고 모든 관심사가 나한테 쏠려있다는 그걸 반증해주는 거예요.

모든 일에 감사하니까 모든 일에 두려움이 없지요. 내가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목표를 정해 놓고 하는 게 아니고 나한테 다가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죄인 되게 만들기 위해서 다가오는 상황이니까, 내가 죄인 되게 하신 상황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특히 신약성경의 사도바울의 편지에 나오는 성도의 모습이에요.

그러면 이래가지고는 잘 몰라요. 성도 아닌 게 뭐냐를 알아야 되지요. 성도 아닌 것을 4가지로 한 번 뽑아봤어요. 복음보다 구원받은 자기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성도 아닌 자지요. 그런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교회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 목사가 복음을 사랑하겠습니까? 교회를 사랑하겠습니까? 교회를 사랑하지요. 그러니까 성도가 아닌 거예요. 교회가게 되면 복음 아닌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다들 가봤다가 나왔겠지만.

그러면 두 번째,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교회 운영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거예요. 교회 운영에 대해서 관심 있다 보니까 교회 운영이라 하는 것은 누가 와야 되느냐 하면 사람들이 몰려와야 되겠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뭘 좋아하느냐를 성경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겠지요.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가.

예레미야44장17절에서18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여 우리의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대저 그 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여 우리의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방식이 뭐냐,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린 것을 다 그렇게 해왔어요. 예레미야 당시에 이스라엘이. 선조들도 그랬고 왕들도 그랬고 했는데, 그 때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고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않았어요.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제사를 드릴 때는 모든 것이 만사형통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과 기근으로 멸망을 당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교회가 복음을 전하게 되면 무엇이 그리워지느냐 하면 복음 없어도 너무 잘 먹고 잘살고 아주 매주 십일조가 더 증가했던 그 시절이 좋았던 거예요.

그런데 복음을 전해가지고 사람들이 훅 가버리고 교회 운영 어려우면 예레미야44장에 나오는 이 저주받을 인간하고 똑같은 고백을 하게 되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는 그렇게 교회가 재미있더니만 복음을 전하고 난 뒤에는 다 가고난 뒤에 교회 운영도 안 된다. 누가 책임질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게 바로 평소의 관심사가 자기 자신. 복음에는 관심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예요.

세 번째가 뭐냐 하면 경쟁에서 남을 이기려고 해요. 신자 아닌 사람은. 이 교회가 다른 옆에 있는 교회보다 빨리 성장하고 부흥되기를 원해요.

네 번째는 감사가 없고 항상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불안, 불안하고 걱정, 근심이 늘어나는 겁니다. 늘 불안하지요. 늘 불안하니까 늘 철야해야 되고 늘 돈을 많이 바쳐야 되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특히 신약성경에서 사도바울의 편지에는 성도 아닌 자들을 천국가기 전에 실컷 구경하세요. 교회에서만 아니라 이런 회사에서도 실컷 구경하세요.

또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지요. 복음이라는 신자의 모습은 자기보다 복음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공은주(IP:119.♡.152.148) 17-06-21 16:02 
195강-YouTube강의(종교놀이와 신앙)170620-이 근호 목사

195강, 제목은 ‘종교놀이와 신앙’입니다. 교회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있고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면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행동할 때.

그래서 공부할 때도 뭐하느냐 하면 즐겁게 하라, 이렇게 하지요. 반도체에서 일할 때도 즐겁게 해다오. 뭐든지 세상을 즐겁게 하고 싶어 해요. 돈이 중요하지만, 단순히 돈만 보고 무슨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일에 뭔가 맞다는 느낌. 맞다는 느낌이 뭐냐 하면 일을 하면 돈 이상의 다른 즐거움이 나한테 주어진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행동할 때 나한테 즐거움을 주지 아니하면 어떤 모임이라든지 어떤 자리에 가지는 않겠지요. 물론 강제로 일을 시킬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오래 갈 수는 없고요. 계속 오래 일하고 계속 반복해서 그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이 지금 즐겁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교회를 왜 가느냐, 교회 가는 게 즐거운 요소가 있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는 뭐냐 ‘종교놀이’하는 곳이에요. 종교놀이 하는 곳. 거기에 대한 성경 구절가지고 어떻게 갖다 붙이던 간에 노는 재미. 노는 재미인데 종교 놀이하는 재미가 기대가 되게 되면 그 교회에 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신앙은 뭐냐 하면 아무것도 기대할 자격 자체가 우리가 안 된다는 겁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교회라는 이 종교놀이터에 가서 하게 되면 그 신앙을 갖는 것도 나한테 놀이가 돼요. 신앙을 갖는 것도.

신앙을 갖게 되면 목사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신앙을 갖는 것은 곧 능력을 갖는 겁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는 겁니다. 중보기도 해서 응답받을 수 있는 응답 권을 갖는 겁니다.” 라는 식으로 홍보를 해버려요.

그러면 내가 기도해서 또는 중보기도해서 뭔가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교회 다닐 때 정말 즐거운 일이고 재미난 게임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내 신앙이 비례하면 비례한 만큼 내 기도에 응답도 빈도수가 늘어난다는 생각을 갖게 되겠지요.

내 기도의 응답의 빈도수가 늘어나게 되면 나에게 보다 많은 즐거움이 찾아오게 되는 겁니다. 그거 아주 괜찮은 게임이고 즐거운 게임이에요. 교회 놀이가.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자기가 자기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타고난 욕망과 합치가 되는 거예요.

‘아~ 내가 필요한 존재구나!’ “나, 존재가치가 있구나! 무의미한 게 아니네.” 라고 할 때 한껏 다가오는 것이 이 땅에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있고 자부심 생기고 뿌듯하게 돼요. 사는 게.

그런데 신앙이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십자가에서 나오거든요. 십자가지신 분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신앙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 신앙은 내가 존경을 하고 게임을 벌이고 하는 이거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돌발적으로 찾아오는 겁니다. 이게 뭐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는 분의 신앙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만 그런 고백을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수시로 회사 들어갔다 짤리고 들어갔다 짤리고 수시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럼 내 뜻이 뭐냐 하면 나는 즐겁게 살기를 원하는 게 내 뜻이에요. 내 존재함의 보람을 느끼는 게 내 뜻이에요.

그런데 그걸 차단시키고 그걸 찢어버리고 깨부수는 식으로 다가올 때, 내일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것. 내 인생이 아니고 주께서 어디로 인도할지 그건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내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것을 믿는 거예요. 로마서8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 그런 뜻이지요.

누가복음14장11절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가 높아지는 것이 굉장히 즐겁고 재미나는 게임이 되는 겁니다. 축구할 때 지는 게 취미가 되어 축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축구선수가 되어가지고. “맨날 나는 지는 게 소망입니다.” 하면 취직 안 시켜줍니다. 축구팀에 안 불러주지요.

어떤 축구선수는 돈을 480억인가 줬는데 축구 안하고 저 미국에 놀이공원에 놀러갔답니다. 상하이 축구팀에 테베즈라는 선수가. 480억을 줬는데. 축구 안하고 놀러갔다 온 모양이에요. 중국의 팬들이 나가라고 난리에요.

사람이 낮아지기 위해서 사는 사람 없어요. 사람한테 비웃음받고 실패자라는 소리 들으려고 인생사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러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예수님의 가신 길과 자기가 가야될 길을 주께서 이끄시는 길이 같은 노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싸움이 무슨 싸움이냐, 나는 내가 즐겁기를 원한다. 종교놀이를 통해서 하는 그것과 신앙은 완전히 충돌이 되겠지요. 두 번째 생각할 것은 이 종교놀이가 계속 즐거운데 이제 교회 좀 승진할 거 다 승진하고 일반 평신도에서 서리집사에서 돈 내고 장립집사 돈 더 내가지고 장로 됐다. 그 다음부터는 재미없어요. 권태와 지루함이 생깁니다. 하나님, 삼위일체 이제는 지겨워. 예수 십자가도 지겨워.

그러면 교회를 뭐로 만들겠어요? 이제는 재미나는 놀이터로 만들겠지요. 어떤 장로가 됐는데 교회가 재미없다. 그러면 장로가 돼가지고 무슨 친목회를 만들던지 하겠지요. 독도 가서 기도하는 친목회 이런 거 만드는 거예요. 일본에서 선교하기. 일본 후쿠오카 온천 놀러갔다 오기. 여 권사님 바자회 하느냐 수고했는데 권사님들 모시고 제주도 놀러갔다 오기. 모세의 기적을 맛보기 위해서 목포가보기. 하여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그냥 놀러가는 것.

사람 모였으니까 니나 내나 지겹잖아.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게. 그러니까 무슨 낚시회, 회 만들어가지고 계속 즐거움 거리를 유발하는 거예요. 맛집 찾아다니고 이런 거.

그런데 신앙생활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와 높이에 더욱 더 들어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행위나 태도, 자기의 포부가 점점 더 이게 깨트려지고 좌절됩니다. 점점 더. 그런데 그 좌절되는 내 꿈이 깨어지더라도 점점 더 괜찮아져요. 내 꿈이 깨어지더라도. 오히려 신나.

다음에는 또 뭘로 나를 작살내려고 하시는가. 1억짜리 깨던지 발로 밟던지 반도체 깨던지. 이렇게 해서 작살내던지. 깜놀하지요. 깜짝 놀라게 만들어요.  내 인생을 뭘로 째고 찢어버릴지. 주님의 하루, 하루 이끄시는 가운데 세심한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신앙은 뭐냐 하면 내가 따로 만드는 신앙판을 주께서는 용납을 하지를 않습니다. 그게 1억짜리든 2억짜리든 깨어버리지요. 내가 이만큼 이 교회 와서 몇 년간 신앙생활 했던 그 과거의 이력을 날마다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종교 놀이하는 사람들은 여러분, 명절날 식구들 모이면 안 믿는 사람들 제사지내고 그 다음에 덕담 좀 하고 복 받으라, 누구 딸 시집가야 되지 않느냐 그런 소리하고 성적 이런 거 묻다가 본론 들어갑니다. 본론 들어갈 때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 담요하고 화투 끄집어내지요. 다시 반복해서 그 화투판을 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종교 놀이는 종교 놀이가 좀 새롭게 하고 싶으면 담요하고 화투판 끄집어내듯이 예배부터 먼저 시작하고 시작합시다. 계속 이렇게 끄집어내는 거예요. 종교 놀이를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그리 되면 뭔가 주께서 커버 해줄 줄 알고. 그걸 경건한 모임으로 만들 줄 알고 하는 거예요. 모든 것이 정기적으로 행사처럼 행사 치루듯이 진행되는 겁니다.

그런데 신앙은 뭡니까? 내 신앙을 따로 구축 못하도록 주께서는 저지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날마다 그것마저도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신앙과 종교놀이의 차이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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