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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00:14:30 조회 : 338         
유튜브(196강, 197강), 이스라엘의 미래, 주님의 약속 170704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196강      음성           동영상


197강      음성           동영상


 

 공은주(IP:119.♡.152.148) 17-07-06 16:40 
196강-YouTube강의(이스라엘의 미래)170704-이 근호 목사

196강, 제목은 ‘이스라엘의 미래’입니다. 사람들이 현재에 있는 이스라엘에 되게 미련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서 거기서 메시아가 언제 오느냐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메시아가 언제 오는지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남겨두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의미냐 하면 성경에 나와 있는 이 약속의 말씀이 실제로 이 땅에서 증거물로서 이렇게 등장되게 되면 그 증거물을 자기들이 확인을 함으로서 성경 말씀이 진짜다. 성경 말씀 내용은 오류가 없다. 확실하다. 구원의 책이 맞다. 이렇게 정립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바로 성령을 통해서 바로 믿어지는 게 아니고 성경에 나와 있는 이 예언들이 21세기 현재에 약속들이 뭔가 군데군데에 발생이 되게 되면 그 발생된 증거물들을 수집해서 과연 성경은 믿을만하구나! 라고 생각해서 안심 놓고 성경을 믿고 싶은 그러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 가운데 아직도 21세기에 여전히 있다고 그들이 그렇게 간주하는 나라가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지금 팔레스타인 지역에 1948년에 독립했다는 그 이스라엘 나라. 그 이스라엘 나라를 성경에 약속대로 실현하게 된 그 증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한, 성경이 진리인 것을 믿을만한 건덕지가 계속 유효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그들이 믿고 싶은 게 뭐냐하면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가가 지금 가동되는 그걸 믿고 싶지요. 그게 십자가입니다. 이스라엘이 존재한다는 그게 십자가에요. 그게 복음이에요.

사도바울이 이스라엘 건국되거든 그거 믿으면 당신은 신앙인이다. 믿는 자다. 성도다. 그렇게 확정 지었던가요? 아니지요. 현재 이스라엘이 국가가 존재하고 있고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서 자기 신앙이고 싶어 하는 것은 마치 뭐와 같은가 하면 내가 세운 교회가 아직도 유지가 되고 작업이 돌아가고 헌금 나오고 전기세 다나오고 교인들 있으면 주님 살아계신 증거라고 믿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본인이 믿고 싶은 거예요. 증거물로 삼는 거예요. 예를 들면 목회자가 어떤 개척교회를 했는데 목회자가 개척교회를 하면서 생각하는 게 뭐겠어요? 뭘 하겠어요? 내가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 걸고 시작했으니까 이 교회가 계속 유지되면 우리 하나님이 교회와 함께 있는 거고, 교회 몇 개월 안돼서 문 닫으면 하나님이 안 계신 거예요.

이 성경 말씀이 진리가 아닌 거예요. 내가 세운 교회 문 닫아버리면 이 성경이 진리 아닌 거예요. 그게 아니지요. 그러니 처음부터 성경을 자기가 구원받고자 하는 사적인 구원 욕구에 준해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뭘 믿을만할까? 라고 자꾸 믿을만한 것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본인이 성경에서 믿을만한 것. 이 믿을만한 것을 끄집어내는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남들에게 하나님 살아계시고 예수님이 이렇게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했다. 하는 것을 설득력 있게 할 때에 내가 설득력 있게 성경을 본 그 근거로 해서 남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전도하려 하는 겁니다.

성경에 이스라엘 나라 나오잖아. 거 봐. 에스겔 약속대로, 예레미야 약속대로, 선지자가 이야기한 대로 지금 이스라엘이 1948년도에 독립했잖아. 그 때는 마지막에 자기 백성 모은다 했으니까 모아놓은 나라 지금 있잖아. 우리 한 번 거기에 성지순례 가볼래? 가가지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들이 아직까지 여호와 믿고 메시아오기를 기다리는 거 눈으로 한 번 목격해? 어떤 자신감을 담으려 하는 거예요. 자신감을.

성경이 구라가 아니라는 거예요. 성경이 실제로 현실 그대로라는 것을 이스라엘 역사가 존재하는 걸로 증명하려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그 이스라엘이 가짜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게 가짜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사람들은 로마서11장에 보면,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 나오지요. 거기에 참감람나무를 현재 이스라엘로 보는 거예요. 현재 이스라엘 국가로 보고 돌감람나무를 유대인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예수 믿는 사람. 그 사람을 봐가지고 그 참감람나무가 돌감람나무와 하나가 될 때에 그 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다 얻으니까 아브라함 혈통치고 온 이스라엘이니까. 혈통적으로 아브라함 자손 중에서 한 명이라도 지옥 가는 사람은 한명도 없어야 돼요. 왜? 온 이스라엘이니까. 혈통적으로. 심지어 가룟유다까지 구원 받을 걸. 가룟유다는 유대인 아닙니까? 온 이스라엘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전략을 짭니다. 현재 유대인들이 자꾸 예수 믿는 것으로 돌아오게 되면 벌써 메시아 올 때 됐고, 그나마도 안 돌아오고 버티는 인간은 전환란 3년반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한 고역과 고생을 시키게 되면 고문을 가하는 거죠. 고문을 가하게 되면 그들이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주여! 우리가 메시아를 못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개과천선해서 돌아온다. 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온 이스라엘이라는 숫자가 다 맞아져서 온 이스라엘이 천국 간다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은 일단 다 천국가고 그리고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님 믿는 사람 합쳐서 천국 이룬다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은 다 구원받는 겁니다.  일단은 다 자기 백성이니까. 왜 그래야 되느냐, 그래야 하나님이 구약에 남긴 약속이 이게 실효성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약이 남긴 온 이스라엘은 무조건 복 받은 민족, 택한 민족이니까 그 선택이 취소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취소 안 된다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은 빈틈이 없어야 되니까. 주님이 자기 약속을 도중에 “오! 아니네.” 하고 이렇게 취소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 자기 약속을 온전히 이루니까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그리고 이방인들 들어간다. 이렇게 해석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뭐냐 하면 구원론 중심의 성경해석입니다. 구원론 중심이에요. 주님께서 구원 못해서 아주 환장하신 하나님으로 보는 거예요. 성경의 구약에서의 이스라엘은 예레미야 애가 2장1절에 보면,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것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 이리되어있어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참된 이스라엘은 기존 이스라엘이 먹고 들어가는 게 아니고 오직 이스라엘을 뚫고 이스라엘 속에 있는 메시아를 겨냥해서 구약 성경이 있는 겁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을 겨냥하는 거예요. 구원은 예수님만 구원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택하신 백성이라 하는 것은 이스라엘 속에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주의 이름으로 동행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구원되고 안 되고는 우리 인간이 짐작하거나 해석할 권한이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구원 되고 안 되고는 예수님의 주되심이 우선이고 주되심에 입각해서 원하는 자만 뽑아 세우면 되는 거예요. 그 원하는 자만 뽑아 세웠을 때 그게 로마서11장에서 온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거기에 유대인들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모세도 유대인이잖아요. 예레미야도 유대인이죠. 이방인도 있을 수 있는데. 유대인이니까 약속대로 들어간다는 권한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과 위치에 있지 않아요. 어느 누구도. 이방인도 구원해주지요? 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이방인에게 일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작정된 자만 그냥 뽑아갈 뿐이지 “저, 우리 구원될 자격 있잖아요.” 하고 먼저 나설 권한은 일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이스라엘이에요. 이걸로 끝나는 거예요.
 공은주(IP:119.♡.152.148) 17-07-06 16:41 
197강-YouTube강의(주님의 약속)170704-이 근호 목사

제197강, 제목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의 약속한 바, 주께서 나타나실 때에 어느 인간도 “야! 주님이다.” 이렇게 알아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 근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는데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약12Km된다는 겁니다. 그 베들레헴 근처 양치는 목자가 성경의 박사가 돼가지고 “이 근처 쯤 메시아 태어나는데.” 이렇게 해서 찾아내는 게 아니지요.

누가 강권해서 가보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천사가 와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럴 때 그는 보고 하나님께 찬양을 했지요. 그래서 구원 받고자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강권해서 그리스도가 메시아인 걸 알고 난 뒤에 추후 적으로 찬미가 되고 찬양이 되고 예수님 고백이 되는 거예요.

자기가 구원받고 싶어서 구원자 탐색해서 찾아낸다는 자체가 그건 100%가짜 구원입니다. 천국 못 갑니다. 반드시 구원에서는 외부적인 도움 자가 있어야 돼요. 천사든, 성령이든. 도와주는 자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자의 특징은 본인의 노력과 본인의 관심사가 자기를 구원했다는 이야기를 하나의 원인으로서 제시할 수 없어요. 열심이라든지 행함이라든지. 그래서 왠 은혜냐,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성경에 그런 예가 많지요. 에스더 같은 경우에 자기 사촌오빠 모르드개가 이야기하기 전에 에스더가 궁궐에 있으면서 바깥에 유대인들이 1년 지나면 완전히 몰살을 당해요.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본인이 성경 연구해서 알았습니까? 누가 와서 전해줬지요. 모르드개가 전해줬잖아요.

그것처럼 항상 택한 백성, 구원 받기로 작정한 사람은 주님께서 그냥 방치하는 법이 없어요. 끝부분에서 건진다던지 나이 90되어서 건지던지 어떻든 간에 반드시 데려가는데 공통점은 있어요. 자기가 애써서 구원되지 않았다는 그런 공통점은 있어요.

그래서 주님의 약속에 의해서의 교회라 하는 것은 특정 교회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이 특정 교회가 주님의 구원 받는 교회라고 만약에 자부한다면, 그 특정 교회가 교회를 주님께서 만약에 부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를 들어 부순다는 말은 유황불에 부순다는 뜻이 아니고, 깡패로 부순다는 말이 아니고, 다 거듭났다고 여기고 30명 모였는데 나중에 1년도 안돼서 2명 남았다든지 3명 남았을 때에 그럼 앞에 나머지 28명이 한 고백이 뭐가 돼요?

다 주의 은혜로 했습니다. 라고 해서 왔는데 다 흩어졌을 때에 그럴 경우에도 주님의 교회는 여전하다. 라고 한결같이 고백하면 되겠지요. 그렇지요?

그 말을 다시 한 번 모아서 정리해 보면, 교회에 나오더라도 예배드리더라도 교회에 연연하지 않겠지요? 다음 주일에 이 사람들이 다 사라진다 할지라도 구원이라는 것은 교회 때문에 생긴 게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활동에서 주어졌기 때문에 거기에 연연하지 않겠지요.

그러면 그 교회의 목사가 설교할 때 그 교회에 연연하는 설교가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전혀 안 나오겠지요. 교회에 연연하지 않는 조로 설교가 된다면 그러면 그 설교의 핵심은 뭐가 되겠어요? “교회는 우리가 관리하고 우리가 유지. 지탱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친히 이 시간도 관리하십니다. 심지어 흩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교회가 깨어지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는 깨지거나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보통 인간들에게는 그러한 주님의 조치가 나중에는 은혜롭지만 막상 인간들은 육정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속해있는 단체나 소속에 대해서 항상 거기에 대해서 안절부절하고 염려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중에 하나가 시편13편4절을 읽어보겠어요. 시편13편4절에 보면 다윗이 그 원수한테 굉장히 시달릴 때에 하는 신앙고백이 나오는데요. 4절에 보면,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이리 되어있어요.

하나님의 약속 같으면 우리에게 “야, 약속이다. 됐지? 약속 잘 간직해. 나는 간다.” 이러면 간단할 것 같은데 시편13편 앞에 죽보고 뒤에 죽 보고 4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원수를 구원될 자에게 이렇게 마주치게 하고 만나게 하고 부딪치게 하고 엮이게 만들어요.

우리는 약속이라는 것이 딱 규격화 되어가지고 달랑 이건  믿습니다. 하면 약속 믿는 게 그게 굉장히 간편한 것 같지요. “이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아! 성경 믿습니다.” 끝났잖아요. 별 문제 없잖아요. 그런데 주의 원수를 왜 우리에게 붙여주십니까?

왜 붙여줘요? 딱 주님하고 나하고 “이거다!” “예, 믿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됐지 왜 주의 원수로 하여금 우리에게 찾아들게 만들고 왜 하느냐? 그것은 원수가 바깥에 있는 게 아니고 믿습니다. 하는 우리 내부에 이미 원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의 약속을 내가 믿어버리면 나는 건전한 내가 돼요. 괜찮은 나 되고, 하자 없고 별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정확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사람이 돼버려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어요.

내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뭡니까? 믿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하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예수를 믿는 내가 나의 결정에 의해서 나는 가뿐하게 구원됐다. 그런 근사하고 괜찮고 온전한 나를 다시 나에게 그걸 내가 갖고 싶은 거예요. 그런 나를 회수하고 싶은 거예요. 괜찮은 나를.

그렇게 되어버리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나 자신의 기대치, 욕구를 내가 충족한 게 됩니다. 그러니 주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보내지 아니하면 우리는 구원이 안 되지요.

내 적은 주님의 적입니까? 아니지요. 그런데 내 적이 주님의 적이고 나는 주와 한편이기를 우리가 소망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문제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언제 느낍니까? 잘 안 느끼고 싶지요.

내가 문제 있고 남은 문제 있는데 나는 문제없다고 싶다고 그렇게 우리가 소망인데 그게 아니고 주의 원수가 우리 속에 원수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면, 약속은 주의 구원의 약속에 의해서 주님이 알아서 하지, 내가 결심 먹는다고 해서 내가 야무지게 ‘내가 믿음생활 잘해야지!’ 이리 한다고 해서 구원에 골인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은 우리가 주의 원수가 찾아와서 작동을 해줘야 날마다 우리는 그 사실을 감사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교만치 아니하고 자만하지 아니하고 시건방지지 아니하고 그리고 어제 믿었으니까 오늘 당연히 믿는 것처럼 그렇게 까불지 아니하고 어제 믿은 나를 내가 믿어버리면 이건 주님의 활동보다도 괜찮아진 나를 계속 붙들려고 하는 그런 나의 의지가 강한데, 그 의지 문제 있습니다.

주님의 의지로 구원받는데 갑자기 어느 날 주님의 의지가 나의 비장한 각오로 바뀌었어요. 소위 순교자 되고 싶은 열망, 오지에 가서 선교하면서 작렬하게 죽고 싶은 그러한 희망, 열정, 나에 대한 열정.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가 심어준 열정이라면,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성경 말씀을 다시금 봐야 되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안의 공로만 드러나는 해석이 되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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