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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0 00:19:47 조회 : 427         
유튜브 강의 (202강, 203강) 판단근거 , 권력관계 170919 이름 : 이근호(IP:119.18.94.40)

202강       음성              동영상


203강       음성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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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은주(IP:119.♡.152.148) 17-09-20 17:05 
202강-YouTube강의(판단근거)170919-이 근호 목사

제202강, 제목은 ‘판단유보’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주변의 상황 속에서 자기가 생존해야 되기 때문에 쉴 새 없이 판단하고, 분석하고, 결정하고, 선택하고, 추진하고, 결과 기대하고,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지나가면 또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요. 그렇게 행동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근거가 뭐냐 하면, 내가 살아야겠다는 거죠.

왜 죽으면 안 되는데? 하는 그 답변은 자기가 몰라요. 이유도 없이 무조건 살아 남다보니까 판단을 하게 되고, 분석하게 되고, 평가하게 되고, 내 생존에 무엇이 유리한지를 또 모색하고 자꾸 연구하게 되는 겁니다. 모든 행동은 바탕에 자기가 무조건 적이죠. 무조건 적으로 맹목적으로 무조건 살아남아야겠다는 거예요.

왜 존재하는가?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죠. 왜 살아야 되는가? 그건 존재하는 목적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왜 살아야 되는가, 하는 답변은 없어요. 있으니까 살고, 왜 있느냐하는 그것에 대한 답변은 없지요.

그래서 인간이 뭔가 판단하고 분석하면서 그것을 자기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걸 진리라고 이야기해요. 옳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옳은 것이 일방적이에요. 왜냐하면 일단 나는 살고보자가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기의 어떤 사람이 “내가 니 죽여 줄 테니까 어떻게 내 뜻대로 하겠느냐?” 하면 그것은 거부해 버립니다. 그게 진리라 할지라도.

그래서 인간 자체가 자기의 의지와 현재 자기 상황을 비교하지 말고 같은 인간들과 비교하지 말고 예수님과 비교해봐야 돼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진리라고 했잖아요.

예수님이 진리라는 말은 본인들은 진리가 아닌 겁니다. 예수님이 진리라고 한 근거가 있어요. 그것은 인간들이 모르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를 유일하게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내가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예수님이 길이란 말은 다른 것은 길이 막혀있다는 뜻이고, 예수님이 생명이라 하는 것은 너희들은 다 죽어있다는 뜻이고,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은 모든 인간들은 악마 편에 서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것을 이제 마태복음 산상설교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취지를 다른 여러 가지 표현으로 나타낸 겁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마태복음5장37절에 보면,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이 말씀은 뭐냐 하면 너희들은 니가 어떻게 살아남느냐를 위해서 니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 악이냐, 더 쉽게 말해서 이미 이 세상 전체가 악인데, 사람은 그 악으로서 안 나타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내가지고 “거봐, 이미 니가 악의 구덩이 속에 이미 일부로 니가 여기 들어 있잖아.” 라는 것을 티내기 위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어떤 분석이나 평가, 의지, 행위를 하게 만들어요.

그러면 그건 아까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 살기 위해서 행동하잖아요. 살기 위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항상 자기 위주입니다. 자기가 우선이지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있는 상황 속에서 자꾸 거기다가 희망과 기대를 걸게 되어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자꾸 맹세를 하는 겁니다.

이게 마태복음5장 37절 말씀은 제가 언급했지만, 앞에 말은 뭐냐 하면 맹세를 자꾸 하는데 그 맹세를 할 때에, 확보된 것이 확실하고 요 확보된 확실한 것 속에서 나는 거기에 같이 놓여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맹세하는 것은 아마 유효하고 효과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맹세를 하게 돼있습니다. 인간들이.

그게 뭐냐 하면 나는 하늘로부터 맹세하고, 땅으로부터 맹세하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맹세하고, 내 아는 들은 지식으로도 맹세하고 그렇게들 해오는 거예요. 든든한 토대와 근거만 있으면 그 토대 위에서 내가 존재하게 되면 내가 그 토대가 내가 기대하는 맹세나 기도에 대해서 원하는 대로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그런 토대를 자꾸 쥐려고 하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 줄 거야.’ ‘나는 이 거룩한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거룩한 땅의 일부이기 때문에 땅이 거룩하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나도 같이 거룩하니까 내 소원은 들어줄 거야.’

또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 특별히 마음먹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예루살렘 성에, 예루살렘 도성에 와 있으니까 이 도성은 아주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도성이니까 거기서 내가 맹세하게 되면 덩달아 같이 내 맹세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리 생각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 앞자리에 떡~ 앉아있으면 앞자리는 은혜의 자리잖아요. 흔히들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앞자리에 왔으니까 내가 하는 기도나 맹세에 대해서 효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뭐냐 하면 하늘로부터는 말라. 그건 하나님의 보좌다. 그건 니가 거기에 같이 끼어 들 위치가 안 된다, 입장이 안 된다. 이 말이지요.

땅으로는 말라. 이건 하나님의 발등상이다. 이 땅이라는 것이 니 소원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하나님의 구체화된 그런 본부인데 니가 거기다가 니 소원 들어 줄 그런 여유는 없다는 거죠.

예루살렘으로 말하기는 큰 임금님의 성이요. 주님의 계시는 성인데, 예루살렘을 니가 이름 빌려가지고 니 소원 들어주려 하지 마라. 니 머리, 니가 들었던 그동안 지식과 니가 경험이나 체험담, 그것가지고 요번 기도와 요번 내 소원은 아마 성취가 될 걸. 보상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하지 마라.

왜냐하면 너의 머리는 너의 머리카락 한 터럭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 이 말은 결국은 뭡니까?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내 입장에서 뭔가 시도를 할 수 있는 어떤 건덕지도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한 적이 없다. 이 말이에요. 일체.

그럼 뭐냐 그러면 하나님이 주는 대로 니는 존재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너희 말이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그것만 해라. 그거 더 나아가면 악이 된다. 현재 주어진 것에 대해서, ‘아,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구나!’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라고 이미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희 입장이 된다. 수동적으로.

수동적이라 하는 것은 니가 설치기 전에 주님이 너보다 더 설치고 그 설침의 설친 결과로 니가 여기에 존재해서 있는 겁니다. 여기서 더 넘치는 것은 전부 다 뭐가 된다? 악이 된다 했어요. 그러니 이 말씀은 아까 이야기했지만, 처음부터 인간은 이미 악 속에 있는 거예요. 악 속에.

악 속에 있으면서 내가 이 악 속에 있다는 것이 안 들어오는 이유는 자기 사는데 급급해서 그래요. 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악의 일부로서 같은 악이다. 라는 생각을 추호도 안하게 되지요. 할 마음도 없고 안하게 된다. 이 말이에요.

니는 악 속에 태어났다는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만들어진 거예요. 수동적으로 살아야 된다. 그리고 감사해야 된다. 이게 주의 뜻이다. 라고 하고 싶어도 어느새 우리는 내가 능동적이 되어가지고 소원이 있습니다. 이거 들어주세요. 하나님 나 살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겠습니다.

자꾸 이런 것이 툭툭 튀어나올 때, 우리는 처음부터 악에 속했다는 것이 오히려 편이 되는 그러한 도구가 되는 겁니다.
 공은주(IP:119.♡.152.148) 17-09-20 17:05 
203강-YouTube강의(권력관계)170919-이 근호 목사

203강, 제목은 ‘권력관계’입니다. 사람들이 천국가기 위해서 어딜 찾아오느냐 하면 성당이나 또는 교회가지요. 절에 가서 천국가지 않습니다. 절은 천국가려고 온 게 아니고 이 땅에 자기 업을 쌓아가지고 나중에 죽게 되면 극락이란 염라대왕한테 지 자랑질하려고 보통 가거든요.

그리고 불교에서는 제사제도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이 땅에 있는 자기 업보가 거기서 하나의 효과를 본다는 겁니다. 이 땅에 업을 많이 쌓고 선을 많이 쌓아놓으면 자기한테 복 받고 복 받아도 아직 남아있는 의는 자손들에게 제공이 되게 되면, 자손들은 그 조상 덕분에 모든 하는 일이 만사형통이 되고 그러면 그 자손들은 또 조상 덕분을 받기 때문에 제사제도해가지고 제사제도를 통해서 조상님 편안하게 모시라고 상부상조하는 겁니다. 그런데 관심 있는 것이 불교라는 겁니다. 극히 이기주의지요.

그런데 그와 못지않게 성당이나 교회들이 마찬가지로 이기주의입니다. 종교라는 게 다 그래요. 지 좋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교회를 선택하게 되면 뭐냐 하면 어느 교회를 갈까? 하고 자기가 교회를 골라 보는 겁니다.

골라 볼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느냐 하면, 교회 고루는 것은 자기의 의사, 자기의 의지, 자기의 생각이 반영되어서 교회를 고른다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게 큰 오산이에요. 그게 크게 잘못되었어요.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를 않아요.

성경은 인간이 어떤 의지를 발휘하고 행동을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이 나야 돼요. 하나님의 허락 없이 자기 인생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했다는 말은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하느냐 하면 이 세상에 눈에 보일 때는 인간들만 눈에 보이지요. 인간사회니까.

하나님은 인간들만 보시는 게 아니고 인간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까지 같이 봐요. 그게 뭐냐 악마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악마라는 말이 나올 때 인간들은 ‘나는 예수 믿지. 악마는 안 믿을 거야.’ 그렇게 보통 생각하잖아요.

악마 여기 있고, 예수 있으면 나는 악마는 싫어! 나는 예수 믿을 거야. 이렇게 자기가 선택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악마가. 성경에 보면 악마는 인간이 선택할 게 아니고 이미 거기에 예속되어있어요. 복속되어있어요.

처음에 제가 이야기했듯이 인간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된다. 이 말을 달리 이야기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악마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악마로 하여금 인간을 장악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게 아까 말한 하나님의 허락이에요. 하나님은 허락 없이는 인간은 못 움직입니다.

그런데 허락할 때 악마를 통해서 허락하신 거예요. 악마를 통해서. 그러면 악마를 통해서 허락하면 이 사실을 인간은 모르고 있지요. 지 잘났기 때문에 무슨 결정을 해도 자기가 알아서 결정하는 걸로 자꾸 오해를 하고 있다 말이죠. 오해를 한 거예요.

그러나 악마를 딱 집어넣고 나중에 교회에 악마를 집어넣으면 이게 어떤 관계냐 하면 권력관계에요. 권력관계라 하는 것은 못 빠져나온다는 겁니다. 이미 하나님이 악마에게 인간을 통치하도록 권력관계를 줬다 이 말이지요.

창세기3장에서 아담의 자손들은 다 그런 운명에 빠져있습니다. 죄가 왕 노릇하는 거예요. 빠져나올 수가 없지요. 그러면 인간이 자기 나름대로의 구원 받기 위해서 교회를 찾아 나갔다. 할 때, 구원받기 위해서 라는 그 자기 생각 자체가 악마가 그렇게 시킨 거예요.

구원받아야겠다는 게 악마의 생각이다 말이죠. 구원 받도록 뭔가 내 인생에 대해서 조치를 해야 되겠다. 이제 나이도 많으니까 이제 죽어서 어디 갈 줄 모르니까 천당이나 가야 되겠다. 라는 시도를 악마의 덫에 의해서 취지에 의해서 권력관계에 의해서 그런 생각이 들도록 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받도록 했다는 그 말을 그렇게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지고 간편하게 펴면 되는데 왜 자꾸 당신은 악마라는 걸 자꾸 집어넣느냐! 여러분, 그런 의문점 들지요?

하나님이 허락해서 구원받은 마음을 줬다. 은혜롭게. 이러면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그 말 자체가 문장이. 그런데 굳이 악마를 집어넣은 이유가 뭐냐, 그것은 바로 교회를 본인이 선택할 때 필히 악마가 인도하는 악마의 앞잡이가 인도하는 교회를 찾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이미 시작부터가 내 구원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그래요. 내 구원. 내 구원중심이지요. 내 구원 어떻게 하면 나는 구원받을까 부터 그런 마음조차도 악마의 마음이고 그런 마음에 부합되도록 거기에 합당한 교회들을 본인이 그걸 고를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는 악마를 통해서 그렇게 몰아세워 들어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죽으신 그 사건의 현장이 지금 이 세상이거든요. 이 세대잖아요. 그러면 이 세대가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되려면 무엇이 반복되어야 하느냐 하면 결국 인간들은 예수님을 반복해서 싫어했다. 라는 사실이 교회를 통해서, 어떤 기도원을 통해서라든지 성당을 통해서라든지 계속해서 이것이 계속 반복돼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줘야 돼요.

그래서 한 때 십자가가 아니고 끝까지 예수님 재림할 때까지 계속 십자가 사건이 툭 툭 반복해서 터지는 그런 세대가 될 때 이 세대가 포괄적으로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는 말이 성립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십자가 죽을 때만 악한 세대고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회개했다. 그리 되면 안 되거든요. 계속 세대는 악한 세대로 지속되어야 되니까. 그걸 위해서 많은 악마가 필요했고 악마는 많은 성당과 교회를 세우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궁금한 게 있을 거예요. 그러면 악마가 세우지 않는 교회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머리이고 그의 지체는 뭐 그런 교회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 교회에 대해서는 사도행전20장28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자, 어떤 교회가 있는데 감독이 있습니다. 목사가 있어요. 목사가 있는데 성령이 세운 목사의 특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본질을 그 본질만을 전파하는 목사가 있는 교회는 참된 교회지요.

하나님의 자기 피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피는 하나님이 하늘나라에서 스스로 칼로 찔러 자살했습니까?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피가 흘리려면 하나님이 이 땅에 나타나셔야 되지요. 그분이 누구지요? 예수님이지요. 그 예수님이 예수님 됨을 어디서 드러내느냐 사람들에게 십자가 죽으심으로 피를 흘릴 때 나타나지요.

그러면 피가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겁니다. 피가 참된 교회의 유일한 증거가 되지요. 피라는 것에서 벗어나면 교회 아니요, 피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하면 그것은 성령이 함께 있는 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피를 피되게 유발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들어온 교인들은 어떤 교인이어야 하느냐 하면 예수님의 피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죄인 됨을 인정하는 자들만 거기에 모이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 교인들이 처음에는 나 천당 갈란다. 하고 껄떡 껄떡 오다가 내가 천당 갈란다. 하는 결국 이것이 무엇을 유발시켰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악마적 발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참된 교회가 되는 겁니다. 구성이 되는 거죠.

그럼 그 작업은 본인이 못해요. 본인이 아무리 흉내 내고 해봐도 역시 자기 것으로 회수되기 때문에. 그러면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주게 되면 자기가 이 교회에 찾아오는 그 동기마저 그 의지마저 이게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악마의 죄가 된다는 것.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는 느끼는 게 뭡니까?

예수님의 피 안에서 비로소 내가 예상 못한 구원을 얻게 됐다는 것을 발견하는 거예요. 구원의 근거가 나는 구원받아야 되겠다는 이 의지가 있는 게 아니고, 내가 구원받아야 되겠다는 이 의지와 그것 때문에 애매하게 억울하게 죽으신 그 피와의 만남이 근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피 앞에서 나는 저 피를 소유해야지. 그러면 안 되고 저 피는 바로 내가 저 피를 소유해서 구원받겠다는 나의 구원의 의지가 죄가 되게 하는 피임을 결과적으로 수용할 때, 그 사람은 오직 피만을 증거 하는 참된 교회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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